죽음 놀이 180406
20180406a 울산강의-레위기 19장 : 죽음놀이
(강의:이근호 목사)
오늘은 레위기 19장 할 차례입니다. 레위기 19장 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너희’라는 말은 생각해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특정 개인을 부르는 게 아니고 어떤 집단을 구원합니다. 집단, 단체를 구원할 때는 모델이 있어야 되겠지요. 하나님과 너희라는 집단 사이에 한 분을 대표해서 그 한 사람이 말씀을 대신하게 되면, 모세의 말을 하나님의 말로 알아듣는 무리, 그게 너희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생각하면 쉬운데요. 사람이 자기 내부에서 올라오는 자기 생각을 안 믿고 자기 바깥의 어떤 사람에게 자기 운명을 맡긴다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모험입니까? 보통 큰 모험이 아니죠. 사람은 자기 쪽으로 방향이 정해져있어요. 모든 걸 내 쪽으로 끌어 모으는 거예요. 애들 보면 그런 게 많잖아요. 맛있는 게 있으면 할아버지가 맛 좀 보자고 하면, 안 돼! 앞의 방향이 저쪽이 아니고 내 쪽으로 오게 돼있습니다.
원래 인간은 자기밖에 모르게 돼있어요. 방향을 내 쪽이 아니고 저쪽으로 가져간다는 것은 사실 인간으로선 가능할까, 생각해봐야 돼요. 한 가지 예를 들면, 교회에 교인수가 많은 게 좋습니까, 아니면 그 교회에 사도 바울이 방문하는 게 좋습니까? 주의 종 사도가 하나님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준다면 그 순간은 교인수가 몇 명인지 생각이 안 나지요. 사도 바울에게 마음을 빼앗겨 버리면 방향이 내 쪽에서 사도 바울 쪽으로 바뀌는 겁니다. 그럴 때 우리는 사도 바울에 속한 ‘너희’가 되는 겁니다.
너희란 말은 무엇을 전제로 하느냐 하면, 너희가 O가 되려면 나는 X가 돼요. 내 생각 안 하고 주님께서 보내신 분의 말씀이 더 중요한 거예요. 교인수가 중요한 게 아니고 말씀이 있느냐가 중요하죠. 우리 집 한 달 수입이 얼마인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집에 늘 말씀이 있느냐, 믿느냐가 더 중요한데 그 사람은 너희에 속해요. 너희란 말을 볼 때 너희의 반대말이 문법적으로 우리가 되지만 사실 우리가 아니고 너희의 반대말은 나가 돼요.
이런 이야기를 왜 초반에 하느냐 하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하나님께서 누구에게 말씀을 한다는 것은, 너희는 하나님 것이지 너희가 흔히 말하는 나, 너희가 너희들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내가 내 자신의 것이 아니란 뜻이에요. 그렇다면 여기 거룩하란 말은 뭐냐 하면, 이걸 쉽게 풀이하면 인간이 평소에 어떤 걸 내놓지요? 보통 자기 것을 내놓지요. 더 쉽게 이야기하면, 당신은 무엇에 그렇게 진지합니까? 당신이 인생 살면서 가장 진지한 게 무엇이냐고 묻게 되면, 그것은 평소에 그 사람이 내놓고 싶은 것에 대해서 그렇게 진지하게 돼있어요.
인간에게 뭔가 내놓고 싶은 게 있다는 자체가 인간이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인간은 나에 대해서 내놓을 게 없어야 돼요. 너희에 대해서 내놓을 게 있어야 되지 내가 나만이 따로 챙긴 게 나오면 안 되는 겁니다. 그것은 레위기 19장에 하나님께서 너희라고 한 말에 부합되지 않아요. 하나님께서 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