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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안양20180316a약2장5절(임플란트)-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야고보서

안양20180316a약2장5절(임플란트)-이 근호 목사

야고보서2장5절부터 하겠습니다. 야고보서2장 5절,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찌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 이 5절에서 세상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세상이라 하는 것은, 세상이라는 말을 했다는 자체가 지금 주님께서 세상을 주시하고 있다는 뜻이지요. 세상을 주시하고 있다. 그러니 이것은 야고보서5장에도 나와 있어요. 늘 이렇게 주시한다.

또 다른 말로 하면 5장에서는 심판하신다. 심판주가 문 앞에 나와 있다. 이렇게 되어있어요. 그러면 우리가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뭐냐 하면, 같은 인간끼리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 같이 동고동락했던 그들이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가 중요한 게 아니고 위에 계신 분이 나를 어떻게 보실 것인가, 그 싸움이 벌어져요. 그 싸움이.

인간들끼리 같이 있어버리면 거기는 역사가 형성됩니다. 인간들과 인간들 사이에는 방금 뭐가 있다고 했습니까? 역사가 있지요. 역사가 어려우면 그냥 전통이라 보면 돼요. 이 말도 어려우면 그냥 관행이라 보면 됩니다. 좋은 게 좋다는 이야기죠. 하나님께서 이 인간 역사를 세상으로 볼 때는 뭐냐 하면 바로 말씀으로 보거든요. 이 전체를.

여러분들이 다 아시는 이야기를 제가 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볼 때는 여기 뭐로 보신다? 말씀으로 다른 말로 하면 계시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말씀 따라 말씀하고 우리의 역사하고 같을 수도 있잖아.’ 라고 생각을 가질 수 있겠지요. 하나님 생각이나 우리생각이나 뭐 별 차이가 없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말씀 따라 오신 분이 계세요. 예수님이 말씀 따라 오셨고 그 당시 사람들은 역사와 전통과 관행으로 뭉쳐져 있었고. 섞였다 이 말이지요. 어떤 일이 벌어졌어요? 십자가 죽음입니다.

심지어 열두 제자도 예수님을 다 버렸잖아요. 그러면 여기 열 두 제자가 예수님을 버릴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거예요. 그건 뭐냐 하면 인간은 혼자 있는 것이 아니고 역사와 전통과 관행으로 둘둘둘 도포 감듯이 감고 있었던 겁니다. 감고 있어가지고 내 행동이 어떻냐, 옳으냐, 그르냐를 역사와 전통과, “옆 사람 이웃사람한테 물어봐야지.” 요게 인간의 자연스러운 행태가 돼요. 이게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된다고요. 평소에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이럴 경우에 “어떻게 하면 되지?” 이래지. 말씀이나 주님한테 물어보는 그런 것은 별로 없지요. 다른 사람한테 어떻게 비췰까가 중요한 겁니다.

왜 그러냐 하면 다른 사람이 없으면 내가 욕을 얻어먹으니까. 이질감을 느끼면 외로워서 못사니까요. 그동안 정답게 산 것도 그들 덕분인데 내가 하나님의 말씀 덕분에 이게 헤어지면 “아휴, 나는 못 살아.” 이렇게 될 것을 벌써 그걸 상상만 해도 우리는 겁이 나는 거예요. ‘아휴, 혼자서는 못 사는데.’ 이런 거요. 손녀 같이 있을 때는 힘들지만, 또 떨어져있으면 섭섭하잖아요. 쓸쓸하잖아요.

사람이 같이 있을 때는 거기서 뭐가 형성되느냐 하면 유대감이 형성되고 그게 역사가 되고 전통이 되고 그것을 초코파이 정이라 하는 겁니다. 정. 그게 정이에요. 초코파이 선전할 때 정이라는 말을 하거든요. 인정을 이야기해요. 인정. 이 인정에 울고불고해요. 사람이 울고불고하는 이유가 하나님의 계시 때문에 복음 때문에 울고불고하지 않습니다. 인정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못돼먹은 인간을 뭐라고 하느냐 하면, 인정머리 없다고 이야기하지요. 인정머리가 없다. “너는 어떻게 사람이 뭐 인정머리가 없다.” 이리 하잖아요. 그런데 예수님이 인정머리 있었어요? 없었어요? 없었지요. 스데반 집사 있었습니까? 없었습니까? 없었지요. 사도바울은 사람들이 미쳤다고 했거든요. 그리고 선지자들 보세요.

예레미야, 에스겔, 이사야, 그 사람들 다 고난 받았습니다. 인정머리 하나도 없어요. 너무 냉정해요. 냉혹해요. 예수님 입에서 뭐가 나오느냐 하면, 아까도 우리끼리 말씀드렸지만, 롯의 처를 생각해라. 뒤돌아보면 작살난다. 너무 인정머리가 없어요. 뒤돌아보면 작살난다. 그러면 우리는 뭐로 하면 되겠습니까? 역사와 전통과 관행 이걸 아까 정이라 했지요.

인정머리하고 둘둘 감아가지고 주님이 좋기는 좋지만, 인정머리 없다는 소리를 들으면 그게 더 싫어. 그래서 ‘아이고, 뭐, 주님은 나중에 만나고 우선 사람하고 친하게 지내는 것이 이게 남는 장사다. 이게 인생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생각이 아주 강렬하지요.

그래서 그럴 때마다 주님께서는 그걸 아시겠어요? 모르시겠어요? 다 알지요. 아니까 주님께서는 그런데 대해서 다시 말해서 이 전체에 대해서 계속해서 야고보서2장5절 말씀, 계속해서 말씀을 주시고 말씀으로 모이게 하는 겁니다. 말씀으로 모인다는 말은 뭐냐 하면, 각각 우리는 괜찮은 사람이라 모인 게 아니고 우리는 아무리 말씀을 해봐야 우리는 ‘나는 내 살아온 행세 나는 안 버리겠습니다.’ 라고 아주 마음에 작심들을 하시고 모인 거예요.

그럴 때 우리가 주의 말씀을 듣게 되게 되면 우리가 그 말씀을 지키고 싶어도 지킬 수 있을까요? 못 지킬까요? 못 지킵니다. 이게 제일 중요한 거예요. 만약에 지킨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거짓말하는 거예요. 왜냐 하면 인간의 인정머리는 하루아침에 떨어져나가는 게 아니에요. 감추게 되지요.

“주여! 믿습니다.” 하고 감추면서 막상 어떤 가까운 이웃이 되든지 심지어 자식이 몸이 아프면 말씀이고 예수건 간에 화들짝 놀래가지고 “주여, 이럴 수가 있습니까?”하고 주님께 원망하고 내 자식 살려내라고 난리에요. 데모를 하고. 그 데모하는 게 새벽기도 이런 건데. 데모하고 난리도 아니지요. 본색 드러나는 거예요.

그래서 법칙이 뭐냐 하면 하나님께 말씀들을 때는 “귀 있제. 들어라.” 이 정도가 아니고 너희들을 휘저어 놓을 것이라는 겁니다. 말씀이 우리에게 들어올 때 ‘말씀하옵소서. 우리는 좋게, 곱게 듣겠나이다.’ 그건 우리 생각이고 실제로는 우리가 만만치 않아요. 만만치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 전체를 뭐라고 했던가요? 세상이지요.

세상의 특징이 있어요. 뭐냐 하면 ‘한통속’이라는 말이지요. 한통속. 그래서 우리가 이 세상 속 일부가 돼가지고 말씀을 우리가 듣는다. 안돼요. 안됩니다. 따라서 억지라도 요걸 빼내기 위해서는 난데없는 회오리바람이 말씀으로 인하여 회오리바람이 일어나도록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이걸 가지고 성경에서는 뭐라고 하는가 하면 ‘고난’이라고 해요. 고난. 자, 오늘 본문 그 뒤를 봅시다.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무슨 뜻인지는 알잖아요. 한글로 돼있으니까. 무슨 뜻인지는 알지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무슨 뜻인지는 감이 오지요? 그러니까 집안이 넉넉지는 않지만 믿음 좋다. 그런 뜻이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되고 싶습니까? 문제는 이거에요. 무슨 뜻인지는 아는데 실제로 우리가 이렇게 될까봐 겁나지 않습니까?

믿음도 좋고 넉넉하게 살고 싶고.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싶지요. 굉장히 가난한데 믿음 좋다고 해서 되게 좋아라 하는 사람 있어요? 그런 사람 있습니까? “나는 지갑에 돈이 만원밖에 없는데 믿음 있어. 그러니까 나는 행복해.” 그게 솔직히 말해서 그게 좋은 겁니까? 그게 인생의 소원이겠어요? 그게.

제발 Please! 저한테는 그런 일이 안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부자도 되고 덤으로 믿음 좋고. 이러고 싶지. 조용하게 살고 싶습니다. 그렇게 요란스러운거 저는 내 취향에 안 맞습니다. 하고 우리는 약간의 거부반응이 일어나지요. 그런데 이 본문에서는 뭐냐 하면 가난하지만, 믿음에 부요하게 하는 사람을 뭐라고 되어 있느냐 하면, 가난한 자로 그 다음에 세 자가 나와요. 가난한 자로? 택하사. 택하사! 이거 놓치면 안 되겠지요.

자, 이건 무슨 말이냐 하면 가난한 자가 천국가기 위해서 일부러 가난했다. 성립돼요? 성립 안돼요? 성립 안 되지요. 나는 부자인데 천국가기 위해서 돈을 이웃에게 다주고 일부러 가난하게 되었다. 그래서 천국 간다. 요거 말 돼요? 안 돼요? 요거 사기입니다. 절대로 그 사기에 넘어가면 안돼요. 그걸 가지고 ‘자기 의’라고 합니다.

내 구원받기 위해서 이런 헌신과 이런 낮춤까지 다했다. 교회에서는 아주 인기가 높지만 고거 사기꾼입니다. 택함에 있어서는 돈 유무와 그리고 환경 크게 일체 반영해 주지 않습니다. 조건보고 택하고, 이런 거 없습니다. 그 조건부로 택해 주는 거 없습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아까 이야기했잖아요. 이 전부가 뭐라고 했습니까? 한 통속. 자꾸 이런 말을 잊지 마세요.

세상 전부가 잘난 놈, 못난 놈 할 것 없이 전부 다 세상이라는 한 묶음. 한 통속이 되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니는 가난해서 천국가고, 이런 거 없습니다. 가난한 자들이 주의해야 돼요. 가난하기 때문에 “아이고, 천국으로 가야지.” 이건 도피지 믿음이 아닙니다. 가난한 자인데 나는 고구만 전도, 오이전도지 뭔지 하여튼 나는 가난하지만, 돈 생각은 하지 않고 전도만 합니다. 사기꾼입니다. 그래가지고 교인 수 모았다 해가지고 돌아가서 강연회 하는데 절대 속아 넘어가면 안 됩니다. 하여튼 교회에서 튀는 것 전부 다 사기로 보면 돼요. 그 배후에는 돈 내라. 돈 끌어 모으는 수작으로 연극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제는 안 속겠지요. 절대로 속으면 안돼요.

모두 한 통속이에요. 그러면 신앙도 다 이게 뭐냐, 그걸 자기 의라 합니다. 남한테 자랑거리가 있을 때, 근근히 사는 그 힘든 인생 가운데서 그래도 힘을 낼 수 있는 것은 뭐냐 하면, 남한테 의시대고 자랑거리 있다는 자기 의. 그거 하나 믿고 “에고, 참자. 참자.” 해서 살아가는데. 참자해서 참자로 살아가는 것은 그건 기쁨의 신앙이 아니에요. 억지지.

성령의 일은 억지가 아닙니다. 자연스러워야 돼요. 여기 모임도 자연스러워야 돼요. 억지로 왔다. 하면 안 되지요. 누굴 위한 억지입니까? 이리 모여가지고 성경공부하면 하나님이 복 줄줄 알고? 하나님께서 특별히 사랑하는 백성이라 알아 줄줄 알고? 그거는요, 하나의 수작이에요. 절대로 그러면 안 됩니다. 자연스럽게 흩어지고 자연스럽게 모여야 돼요. 그래야 주도권이 주님한테 있어요. 우리에게 있으면 안 됩니다. 항상 사람은 내가 있는 곳을 절대화 시킬 가능성이 굉장히 많아요.

내가 다니는 교회이기 때문에 다른 교회보다 우수하다든지 내가 이 몸에 장착되어있기 때문에 나는 남보다 더 뛰어나다든지 그러할 가능성이 악마로부터 유혹을 받을 수가 있어요. 택했다는 것은 조건을 보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모였으니까 구원해 주는 거 없습니다. 헌금, 십일조 했다고 구원해 주는 거 없습니다. 그리고 농땡이 부린다고 해서 구원해 주는 것도 아니에요. 농땡이도 자연스럽게 하세요. 뭐든지 억지로 하면 안돼요. 억지는 이상해.

억지는 분명히 뭔가 노림수가 있어요. 억지는 뭔가 노리는 게 있어요. 이것하면 우리 아들이 사업이 안 되는데 내가 열심히 헌신하면 내 업을 보고 지금도 믿음의 농땡이 부리는 아들한테 엄마의 성과급이 저쪽으로 갈 수 있다는 노림수 때문에 나라도 기도해야지. 이렇게 나오는데 이걸 흔히 중보기도라고 하는데. 그것도 엉터리입니다.

그러지 마세요. 그 자식도 사실은 엄마 말 잘 듣는다 하지만, 물어보면 세상과 한 통속입니다. 마치 내가 옛날에 한 통속인 것처럼 그 자식도 똑같이 한 통속이에요. 모두 다. 똑같습니다. 자, 지금 뭘 강조하느냐 하면, ‘택했다’ 를 강조하지요. 자, 이제부터 어렵습니다.

자, 하나님의 말씀이 가난한 자를 택했다고 하지요. 이제부터 어려워요. 말씀이 택하면 그 사람이 재산이 10억이든 20억이든 관계없이 무조건 가난한 자가 돼요. 그 사람이 5000억을 가져도 가난한 자가 돼요. 왜냐하면 그 사람이 본인의 주도권은 돈에 있는 것이 아니고 택함에 있음을 본인이 수용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집에 5000억 있는데 남한테 손님한테 자랑할 때 우리 집에 복 받아 5000억 있다. 이렇게 하는 게 아니라 “나, 주께 선택받았어. 나 믿음 생겼어. 나 너무 좋아.” 그럼 친구가 “야, 니 돈 좀 자랑해라.” “돈 자랑은 이건 구역질나서 못하겠어. 주면 주고 가져가면 가져가고. 그건 주님 거고. 중요한 것은 내가 택함 받아서 신앙인이 되었다는 것이 중요해.” 라고 누굴 증거 하겠습니까? 예수님을 증거 하지요.

사도행전1장8절에 보면, 성령이 임해야 예수님을 증거 할 수 있어요. 이번에 강남강의 할 때 제가 칠판에다가 글을 썼지요. ‘성령 받지 않고서는 구원받는 방법은 없다.’ 그걸 단선이라 해요. 단선. 선이 하나밖에 없다 했지요. 성령 받지 않고서는 구원받을 길이 없어요.

늦게 오시면 이런 혜택이 있어요. 지금까지 한 걸 다시 반복해서 합니다. 반복해도 괜찮은 이유가 먼저 오신 분이 30분 들어도 무슨 이야기했는지 못 들어요. 지금 야고보서2장5절이고요. 2장 5절 보면,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그 대목을 지금하고 있습니다. 설명을 더 하게 되면, 하나님이 세상이라고 할 때, 이 세상을 세 자로 뭐라고 했지요? 한 통속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돼요.

세상에서 뛰어난 사람 없어요. 세상은 전부 다 한 통속인데, 그 증거로 인간 몸에 뭐를 휘감겼다 했습니까? 역사와 전통과 관행이에요. 인간은 혼자 생각하고 혼자 공부하는 줄 알지요. 아닙니다. 전부 다 주변에서 체험한 것들이고 체험한 것들에 그 의미가 같이 실려 들어와요. ‘아, 이 행동은 요런 의미이다.’ ‘요런 행동은 요런 뜻으로 판단하라고 우리 엄마가 이렇게 이야기했어.’ 그러니까 사람은 혼자 사는 거 같지만, 다 주변과 소통하기 위해서 연결된 관계로 이렇게 도포 말 듯이 둘둘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성경을 본다든지 누굴 만날 때는 내 생각으로 만나는 게 아니고 익히 아는 그러한 분위기를 가지고 그걸 아우라라고 합니다. 아우라. 그 분위기를 가지고 성경 말씀이나 대인관계에 나서게 돼요. 그러면 그 쪽에서 내가 하는 행동을 통해서 저 사람은 학교는 어느 정도 나왔고, 저 사람의 집안은 어디고, 저 사람의 출신 성분은 어떻고, 파악이 가능한 이유는 바로 우리가 둘둘 말은 그 관행과 관습과 역사와 전통은 공히 저쪽도 같이 둘둘 말아 있기 때문에 공통성을 찾아낼 수 있는 연결고리가 형성되는 겁니다.

그래서 인간과 인간관계는 결속이 되지요. 결속이 되니까 세상은 뭐라고 했습니까? 전부 다 한통속이 되는 거예요. 유별나게 나는 똑똑하고 니보다 잘났다고 할 수가 없어요. 한통속인 거예요. 그러니까 이 세상에 대해서 주님께서 어떤 대행을 줬느냐 하면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했다, 했지요. 아까 했습니다. 다시 한 번 합니다.

이 세상에 대해서 외부에서 주목하시는 분이 있지요. 그러면 하나님은 이 세상에 속합니까? 속하지 않습니까? 하나님만이 한통속에 속하지 않지요.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이 땅에 보냈다면 한통속 된 예수님과의 결별이 일어나지요. 이 결별이라 하는 것은 헤어짐을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같이 있어도 의사소통이 되겠습니까? 안 되겠습니까? 전혀 되지를 않지요.

그 의사소통이 전혀 되지를 않는다는 것을 유난히도 보여주기 위해서 택했던 자가 열두 명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그들이 열 두 제자에요. 우리는 생각하기에 열 두 제자가 예수님과 인간들 사이에 중간단계로 더 성숙된 단계로 생각하시는데 그건 오해입니다. 일종의 세상의 대표자들이에요.

갈 데까지 갔는데 예수님과 그들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갭이 있었다는 것. 3년 동안 배웠고 합숙훈련 했습니다. 그러나 그 갭은 절대로 뛰어넘을 수가 없지요. 그러면 베드로는 어디로 갔는가, 세상으로 갔습니다. 누가복음 마지막에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글로브하고 한 제자, 그 사람 어디로 갔는가, 역시 세상으로 갔습니다.

이 말은 뭐냐 하면, 이 뜻은 말씀을 주게 되면 ‘우리가 이해해서 믿으면 구원을 받잖아.’ 하는 것이 성립이 안 된다는 겁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제가 처음에 했듯이 우리는 베드로든 야고보든 누구든 우리는 뭐다? 한통속이기 때문에.

한통속이라는 말을 제가 다시 한 번 설명해 드리면 인간은 자기가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결심내린 것이 아니고 세상의 지금까지 전해온 역사와 관행으로 둘둘 말아있는 거예요. 인간이면 그럴싸하게 고개 끄덕이면서 동의할 수밖에 없는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빠져나올 생각도 없어요. 빠져 나오면 외로워서 못 사니까. 푹 젖어있었던 거예요. 그 젖은 것 가지고 뭘 이해한다? 주께서 주신 말씀과 역사를 이해한다. 이건 전부 다 엉터리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상식에 의하면 이건 상식이지만, 말씀은 그냥 결과 없이 빈손으로 돌아가지는 안거든요. 그러니 말씀의 완성이 다 이루었다 하는 분이 예수님이고 예수님을 중심으로서 야고보서2장 5절을 하게 된다면 하나님께서는 뭐냐 하면, 아까 오실 때 하던 이야기입니다.

이제부터 시작합니다. 뭘 이야기했느냐 하면, 택하사 이야기했지요. 자, 택하사, 라는 말이 성립할 때 택하는 준비나 택할 수 있는 만반의 조건을 우리 인간 쪽에서 제시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그래야 택함이 돼요. 착하다고 택하고 심지어 중요한 것은 가난한 자라고 천국에 가까운 게 아니라는 사실. 가난한 자는요, 부자 되지 못해서 한 맺힌 자들이에요. 돈 보면 환장하는 자들입니다. 새벽기도 제단 엎드리는 것은 돈 달라고 하는 거예요. 시위하고 데모하는 것들이에요.

따라서 뭐냐 하면, 가난한 자의 조건을 결정은 우리가 내리는 것이 아니고 주께서 내립니다. 택하면 5000억 있어도 가난한 자에요. 왜냐하면 예수님을 증거 하기 때문에. 돈이 있는 둥 없는 둥 해요. 오천억 있어도 회사에서도 별로 신경 안 써요. 그냥 예수님만 증거 해요.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누구 것이다? 그것이 오늘 본문 5절 마지막에 나옵니다.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다는 거예요. 5절 마지막에.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아니하면, 요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야고보서가 근거를 구약의 근거를 대기 때문에 저도 구약을 제시할 수밖에 없어요.

지금부터 약간 복잡해요. 어렵지는 않아요. 약간 복잡한데, 야고보서2장5절 설명하기 위해서는 구약과 결부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구약의 특징이 있어요. 구약의 특징은 뭐냐 하면 애굽과 가나안 사이에 끼인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애굽과 가나안인데. 어제 울산강의에서 했지만, 애굽이 함 민족입니다. 가나안 민족이 함 민족이에요. 셈 민족은 이 동네에 있지 않습니다. 셈 민족은 갈대아 우르동네에요. 갈대아 우르동네에서 하란을 통해서 이렇게 세겜을 통해서 아브라함이 여기에 파견 근무하는 거예요. 일종에. 함 땅에 셈의 족속 한 사람이 파견한 거예요. 여기 들어온 거예요.

특히 브엘세바라는 남쪽에 브엘세바라는 그 동네에서 아브라함은 굉장히 자기가 낯선 동네입니다. 하나님께서 멀쩡하게 남들 다 부동산 소유하고 있는데 자기 땅이라고 하니까 무슨 의미인 줄 몰랐어요. 하나님께서는 기근을 일으킵니다. 애굽으로 내려가요. 애굽으로 내려가면 애굽에서 뭐가 기다리는가 하면 사건이 기다립니다. 그 사건은 뭐냐 하면 소유로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의 소유로서는 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사건이 기다립니다. 현재 아브라함에게 소유하고 있는 것은 아내입니다.

아내를 성상납하지요. 바로 왕에게. 그렇게 해서 생존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한 겁니다. 밤중에 하나님께서 난데없이 바로에게 찾아왔습니다. 왔을 때, 아브라함이 느낀 것은 뭐냐 하면 아브라함의 약속은 아브라함 내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동행해서 직접 이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애굽에서 경유해서 다시 약속의 땅에 왔을 때 약속에 땅에서 있는 모든 약속은 내 행함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브라함은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 약속을 이룰 구체적 인물은 어디 있느냐, 바로 나가 아니고 내 배에서 날 나의 자손, 이삭이 되는 거죠. 그런데 아브라함과 이삭 사이에 아브라함의 행함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으로 된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이삭과 아브라함 사이에 행할 수 있는 모든 요소는 절단 나야 돼요. 깨져야 돼요. 그래서 아내 사라가 불임여성입니다. 애기를 못 낳아요. 이거 누구 자식이냐? 제 자식 아닙니다. 제 행함으로 접근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반대로 해야 돼요. 아버지가 자식을 낳는 것이 아니고 자식을 위해서 아버지가 먼저 예고편으로 그 자식을 보여주기 위해서 예고편으로 아버지가 먼저 있었던 거예요. 자식이 먼저고 아버지가 나중이고. 이건 유전하고 반대가 되는 겁니다. 아버지 날 낳으시고. 이러잖아요. 자식이 아버지를 낳는 거예요.

그럼 이삭은 어떻게 낳는가. 야곱이 낳아요. 야곱은 누가 낳는가. 죽 점선을 이어보면 누가 낳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아무 행함도 필요 없이 모든 천국 갈 조건을 혼자 구비하시고 그 다음에는 줄 사탕처럼 길길이 이어져서 어디까지? 아브라함까지 이어서 그 사탕 줄에 있는 사람의 공통점이 뭐냐 하면, 나의 행함과 별개였습니다. 라는 것을 보여주는 그걸 가지고 두 자로 로마서에서는 ‘믿음’이라고 해요.

믿음이라는 것은 나를 안 믿는 거예요. 왜냐하면 나는 아까 배웠던 거 해보면 한통속이기 때문에. 나는 뭐가 있다? 세상의 역사와 관행과 전통으로 둘둘 말았어요. 세상의 역사와 전통이라 하는 것은 대인관계에서의 유리하게 형성되는 겁니다. 인간과 인간이 만날 때 뭐를 내놓습니까? 어제 밤에 이거 했다. 나는 오늘 이거 했다. 행함과 행함으로 흥정하는 거예요.

인간 모든 관계는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정치적 협상과 타협으로서 맺어지는 게 인간관계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남편과 아내 아닙니까? 남편과 아내는 절대로 한 몸이 될 수가 없어요. 흥정관계고 서로 필요한 요소에 대해서 필요할 때만 있는 관계에요. 그게 역사와 전통과 관행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게 용납이 되는 거예요. 그게. 용납이 된다 이 말이죠. 더 노골적으로 말해서 돈 관계지요. 내 자식은 니 얼마 줄래? 그런 관계인데, 세상에 있는 모든 관계는 이렇게 나 중심의 이익관계가 형성되는 겁니다.

그러니 이런 역사와 전통가지고 주의 말씀을 우리가 받아들인다. 백 프로 거짓말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information, 정보에 불과하고 지식에 불과하지 절대로 아닙니다. 따라서 택함은 택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택함이 우리 몸에다가 뭘 하느냐, 요번 제목을 정해봤습니다. 임플란트. 우리 잇몸에다가 박아버려요. 이건 우리의 행함이 아닙니다. 동행하시는 주님의 자기 일이기 때문에 자기 과제기 때문에 자기 과제를 우리를 바탕으로 우리를 데리고 사용하시는 거예요. 제목도 적어놔야지. 나중에 되면 다 잊어버려요. 우리 잇몸에다가 박아버립니다.

하나 박는데 백오십만원 필요 없어요. 그냥 일방적으로 박는데 그걸 성령의 세례라 하거든요. 성령으로 박아버리면 예수님이 다 이루심이 그 안에서 같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면 주께서 마지막 때 우리에게 뭘 보겠어요? 우리의 행함을 보겠습니까? 우리의 잇몸 안에 들어있는 걸 보겠습니까? 그걸 로마서8장에 나옵니다. 너희 안에 성령이 없으면 그리스도 사람이 아니다. 조건이 달랑 하나에요. 성령이 있으면 그리스도 사람이고, 성령이 없으면 그리스도 사람이 아니에요.

교회는 나름대로의 교회는 한통속이기 때문에 교회는 뭐가 있다? 역사가 있고 관행이 있고 전통이 있고 법이 있어요. 전혀 이건 주의 계시가 아닙니다. 인간들이 교회라 하는 것은 조직체를 하기 위해서 흥정하고 타협한 겁니다. 구원 해줄 테니까 돈을 내라. 이런 식으로 흥정한 거예요. 하지만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계시에서는 그런 게 없어요. 교인들이 교회 와서 돈 낼 때도 구원은 기본이고 보너스로 뭐냐, 우리 가정 남산위에 노루새끼처럼 잘 뛰어 놀게 해주시고 사업 잘되게 해주시고 이걸 추가적으로 얻어요. 이걸 바알종교라 하는데.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애굽과 가나안 사이에 뭐냐 하면, 아브라함 자손을, 잘 들어보세요. 아브라함이 애굽에 다녀왔잖아요. 그러면 아브라함 자손은 어디를 다녀와야 합니까? 필히 어디를 다녀와야 돼요? 애굽을 다녀와야 되잖아요. 애굽을 경험하지 않으면 뭘 모른다? 약속의 땅의 의미를 몰라요. 애굽을 다녀와야 되지요. 애굽을 다녀오면서 다녀온 애굽에서 빼냅니다. 빼내면 남자는 사십만명이 올 때, 이 사람이 애굽사람입니까? 그 사람이 둘둘 감아있는 게 애굽사람일까요? 아니면 딴 거 일까요? 애굽이지요. 애굽입니다.

자, 그러면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을 가나안 땅을 모였는데 이 가나안 땅이 같은 함족입니까? 이게 애굽이에요? 애굽에서 나왔던 힘이 아니면 애굽에 못 들어갑니다. 애굽에서 나온 힘이. 애굽에 나올 때 어린 양 피 발랐지요. 어린 양의 피를 계속 받는 것이 언약궤입니다. 그래서 시내산 가가지고 언약궤 구조 설계도를 받아와야 돼요. 모세가. 받아와서 중심이 언약궤가면 되는 거예요. 언약궤 없이 가면 안 되는 거예요. 십자가 영 있으면 되는 거예요. 성령이 없으면 백날 교회 충성해도 안 되는 겁니다.

이쯤 이야기하면 저한테 묻는 게 있어요. “목사님, 어떻게 하면 성령 받을 수 있습니까?” 이리하는데 그건 저도 세상의 한통속이기 때문에 저한테 물으면 안돼요. 사도바울은 말하기를 들어도 깨닫지 못한다 해서 사도바울은 자기 소관의 교인이 하나도 없어요. 목회라는 거 없습니다. 사도바울은 주의 종이기 때문에 목회자가 주님이지 자기가 아니에요. 아버지가 보낸 자만 예수님께 오기 때문에 자기가 아버지에게 보내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어떤 권한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택한 백성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다 건진다고 요한복음6장39절에 이야기했거든요.

따라서 선교, 전도, 목회, 다 이건 인간들의 불신앙에서 나온 거예요. 결국. 해외선교부터 해가지고. 더 노골적으로 말해서 전문 직업 갖고자 하는 데서 핑계대기 위해서 돈을 우려내는 한 방법일 수도 있고요. 주님이 부활 안했으면 우리끼리 해서 하늘나라 확장합시다! 지금 주님이 우리보다 더 많이 해요. 아버지가 살아계셔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계속 일하고 있어요. 우리는 일 방해자입니다. 그뿐이에요.

따라서 믿음이라 하는 것은 내가 방해자인걸 알 때 이게 비로소 행함이 또다시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는 가운데서 주님께만 증거 되고 주님께 감사하게 돼요. 그러니까 막 살아야 돼요. 얻어터져야 돼요. 얻어터질 때 나보다 더 생생하게 현존돼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는 겁니다. 우리는 절대 한통속을 포기 못합니다. 죽을 때까지 포기를 못합니다. 나밖에 모른다는 것을 때려죽일 때까지 포기를 못합니다. 다른 사람은 고함을 지르겠지만, 오늘 조용하라 해서 조용히 해요.

이 사람들이 나올 때 점잖게 나왔어요. 여기 나올 때 미리암은 찬송가를 불렀던 미리암은 아주 신이 났어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여 우리가 용사되니까 이제 우리는 땡잡았다. 그 땡잡은 사람들 어떻게 됐습니까? 그들은 그렇게 찬미함으로서 그게 찬미인줄 알았습니다. 찬양인 줄 알았지요. 소프라노, 엘토 이런 거 하면 찬양대하게 되면, 파이프 오르간 하게 되면 찬양인 줄 알았어요. 찬양은 그게 찬양이 아닙니다. 원망이 있어야 돼요. 애굽으로 내려가야 아브라함이 돼요.

원망 없이는 찬양이 안 나옵니다. 원망 조건 주께서 밀어붙입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해요. 내비게이션이 있는 거예요. 내비게이션이 어디로 인도하느냐, 물 없는 곳으로 인도해요. 교회 안 되고 사업 안 되는 쪽으로 인도하고 교회 나와서 애 교통사고 나는 것이 물 없는 곳으로 인도하고 양식 없는 곳으로 인도합니다. 그들은 전부 다 이제는 주의 백성이라고 생각했어요. 애굽이란 생각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주께서 껍데기 하나씩 벗겨냅니다.

우리가 어떻게 삽니까? 무슨 문제냐 하면 생존을 거론해요. 생존. 광야에 생존거론 할 때 그걸 딱 노린 자가 있어요.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어디 갔지요? 시작하기 전에. 광야 갔지요. 사탄이 예수님께 제일 먼저 한 시험이 뭐였습니까? 생존이었습니다. 생존문제가 우리는 인간 문제라 생각하잖아요. 철학이나 과학이나 모든 매스컴에서. 국민들 대통령 지금 생존문제 하잖아요. 마태복음4장에서 생존문제가 인간의 문제가 아니고, 사탄이 인간을 억압하는 문제로 보는 거예요. 어떤 인간도 생존문제에서 탈피할 수 없었던 것은 악마가 누루고 있었던 거예요.

인간 세계의 진리가 뭐냐 하면 니 이러면 죽는데이. 니 죽는다! 이게 유일하게 인간의 마지막 진리이냐 안 진리이냐를 결정하는 그 포인트에 있는 게 뭐냐 하면 이러다가 다 죽는 게 아닐까? 사는 게 남는 건데.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살아남아야 숨은 쉬어야 되지 않겠느냐. 아버지여, 호스 꼽읍시다. 안 돼! 지금껏 효도해야 돼. 꼽아야 돼. 사는 게 남는 거라고. 뽑아야 될 사람을 계속 뒤늦게 되지도 않는 효도 짓한다고 계속해서 병원에다가 호스 꼽게 만들고 이게 왜냐 하면 아버지를 생각한 것이 아니고 본인의 평소의 생활에 기본 바탕이 철학이 그렇다는 거예요. 나는 죽는 게 그렇게 두려운데 우리 아버지도 얼마나 두려워할까?

죽는 게 두렵다는 히브리서2장15절의 말씀, 죽는 게 두렵다는 말은 결국은 무슨 뜻이에요? 모든 사람이 죽음에 갇혀있다는 뜻이잖아요. 그러면 진리가 뭐예요? 사는 게 진리고, 무엇 때문에 교회 옵니까? 밥 먹고 살기 위해서 교회 나오고. 그럼 무엇 때문에 아침에 설거지 했어요? 다 살기 위해서. 머리 미장원에서 하는 것도 전부 다 살기 위해서. 더 멋있게 살기 위해서. 모든 게 산다는 것에서는 찐드기를 해놓으면 쥐들이 와서 들러붙잖아요. 몸부림치면 어떻게 됩니까? 빠져나올 수 있습니까? 못 빠져나옵니까? 늪이지요. 그 늪이 뭐냐 늪의 두께가 너무 두꺼워요.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사는 것이 남는 거다.

이거 육이 있는 이상 나이 80, 90, 100살 된다고 인간될까요? 여기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요? 못 빠져나오지요. 못 빠져나옵니다. 40년 동안 다 죽여 버려요. 죽이려고 애굽에서 데려나온 겁니다. 죽이려고. 달랑 두 사람 남았어요. 갈렙과 여호수아. 갈렙과 여호수아는 오늘 야고보서2장5절 끝에 있는 말씀입니다. 갈렙과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에 간 이유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약속이기 때문에 가야된다는 겁니다. 잘 들으세요.

약속을 믿어서 가는 게 아니고, 약속이기에 내 속에 약속이 임플란트, 약속이 들어있기에 내가 가기 싫어도 질질 끌려서 약속이 주도권을 쥐고 나를 데려가야 된다는 겁니다. 약속이 데려가기 위해서는 필히 우리는 뭘 해야 된다? 우리의 본색이 드러나야 돼요. 나는 예수고 십자가고 복음이고 뭐고 간에 나는 오로지 내 사는 것이 남는 것이라는 그 강력한 발을 뺄 수 없는 이게 나의 진면목이고 참모습인 것을 유지해주시기 바랍니다. 남의 가정 죽든 말든. 내 가정만 잘되고 내 몸만 잘되고, 가정으로 또 분해해보면 내 새끼 하지만 나중에 새끼보다도 내가 잘되어야 돼요. 내가 잘되어야 된다는 것은 죽을 때까지 견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복음입니다.

그리고 택한 사람의 특징이 뭐냐, 내가 이런 모습이기에 내 힘으로는 절대로 구원될 수 없습니다. 내 증거는 내가 죄인 중에 괴수 인 거 외에는 증거 할 게 없습니다. 성령 받은 사람입니다. 임플란트 있는 사람이에요. 아까 말씀하시니까 그렇게 교회에 속아 넘어갔던 이유는 교회 탓이 아니에요. 바로 자신의 그것을 고상한 걸로 거룩한 걸로 땜질하는 그 비용이었습니다. 주께서는 죄인을 부르러 왔는데, 교회가 대인관계잖아요. 남은 기도 2시간하고 찬양할 때 눈물 흘리고 이러니까 나는 언제 저 정도 수준으로 올라가느냐 해가지고 따라 흉내 낸 거예요.

저 사람은 십일조, 십지조 내니까 기분 좋거든요. 나도 기분해가지고. 30배 받았다. 60배 받았다. 하니까 나는 언제. 돈 놓고 돈 먹기거든요. 산에 가야 범을 잡고 그거와 똑같은 거예요. 인생은 한방이니까 한방 터지면 재판 터지면 나도 된다 싶어서 전능하신 하나님 믿고 한 거예요. 그 밑바닥에는 뭐냐 하면 죽으면 안 된다는 지을 수 없는 나의 주홍글씨 같은 거예요. 그걸 독약이라고 하는데. 선악과의 독약.

이 독약이 암 조직에 퍼졌는데 어떻게 내 손으로 치유가 돼요? 안되지요. 치료하겠다는 인간들이 사기꾼들입니다. 치료 안 됩니다. 안된 채로 그냥 데려가요. 천국에로. 치료해서 데려가는 게 아니에요. 이들을 치료해서 데려가는 게 아닙니다. 언약궤에요. 언약은 약속이거든요. 약속대로 요단강을 건너갑니다. 그럴 때 이 약속의 땅에 있는 사람들이 쫓겨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훌륭해서 쫓겨난 것이 아니에요. 언약궤 때문에 다 쫓아냅니다. 언약궤. 누가? 여호수아가. 여호수아가 들어올 때에 누굴 만나요. 누굴 만나느냐, 군대장관을 만나지요. 군대장관은 여호수아한테 이야기합니다. 나는 니하고 계약 안한다. 나는 너그 선생하고 모세하고 계약 끝났다. 모세에게 준 약속대로 하니까 니는 목격담만 전해라. 목격담만.

그래서 민수기에 보면 땅에 들어가기 전에 지도 펴놓고 들어가기 전에 땅 제단 다 합니다. 요건 누구 땅 누구 땅. 이건 말도 안 되는 소리거든요. 마치 인덕원 근처에 부동산을 남의 땅인데 큰아들은 이 땅하고 요건 둘째 아들 니가 하고. 말도 안 되는 걸 하는 거예요. 여호수아는 믿었지요. 믿은 이유가 세겜에 나중에 두는 언약궤를, 세겜에는 언약궤도 있지만, 요셉의 뼈도 있어요. 요셉의 뼈를 이동해서 왔거든요. 요셉이 뭐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약속대로 반드시 우리 아브라함과 이삭과 나는 막벨라 굴에 묻힌다. 막벨라굴은 애굽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요. 약속의 땅에 있어요.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이것을 임플란트, 약속이 너희들로 하여금 너희들을 죽여서라도 반드시 가게 하신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게 바로 주님의 택하심으로 하여금 우리에게 일어난 변화입니다. 사업이 변화고 몸이 아프고 그런 게 아닙니다. 그게 변화가 아니라 뭐가 변화냐 하면 자기 자신을 십자가 앞에서 말씀 앞에서 다시 볼 수 있는 안목이 열린다는 것. 이게 변화의 처음이고 마지막이에요. 복음 안다고 해서 갑자기 수입이 늘어나고 그런 거 없어요.

어제 울산강의에서도 그런 이야기했지만, 여러분들이 일이 꼬인다고 해서 여러분이 잘못해서 일이 꼬인 게 아니에요. 세상은 한통속이기 때문에 울산에 화학공단이 있거든요. 가끔 새요. 그러면 독가스가 퍼지지요. 그러면 기도 못해서 게을리해서 독가스 맡았습니까? 한통속이라니까요. 차사고 일어나서 5명 죽었습니다. 그 중에 예수 믿는 사람 없겠어요? 내가 예수 덜 믿어서 죽은 게 아니라니까요. 차라리 이 세상은 죽도록 돼있는 세상이에요.

죽으면 성도는 데려가는 거고 불신자는 지옥 가는 거예요. 이건 우리의 행동으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니듯이 우리의 행동으로 벌 받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선악과를 심어놓은 우리의 독소는 모든 일을 우리가 세밀하게 살펴서 내 뜻대로 안되면 내가 주님 앞에 헌신을 제대로 못하고 충성을 못하고 신앙생활 소홀히 했기 때문에 벌 받는다고 공과 과오를 따지는 그러한 스트레스를 계속해서 주는 거예요.

거기에 장단 맞추어서 목사들이 뭐라고 합니까? “그거 봐! 목사 안 섬겼으니까 벌 받았잖아.” 거기에 같이 장단 맞추어 춤을 추고 있어요. 무당춤을 추고 있어요. 참, 얼마나 믿음이 약했으면 같이 춤을 추겠어요. 얼마나 약했으면. 우리가 얼마나 이기주의였으면. 내거 지키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 못돼 먹은 것. 다시 이야기합니다만, 평생 갑니다. 요거 백날해도 소용없습니다. 평생 갑니다. 징크스 제거하고 금기사항 알아서 피해가고 시험 치기 전에 머리 안 감고 그것도 재미삼아 한번씩 보고 궁합보고 재미인데 뭐~ 이러면서도. 요거 평생 못 놓습니다. 놓지 마세요. 놓지 않은 채 천국 갑니다. 그거 발휘하고 놓지 않은 채 구원받아요. 왜? 그러니까 고맙지요.

성령의 일은 항상 감사하고 고마워요. 억지라는 게 없습니다. 억지 들어오면 마귀 일이에요. 처음에는 거부반응 일어나고 기도를 좀 해야 안 되겠느냐, 성경 두 장 더 봐야 되지 않겠느냐, 헌금 몇 천원이라도 보태야 되지 않겠는가 하다가도 내가 누굴 위해서 그런 일을 하느냐를 되돌아보게 만들어요. 이것이 누굴 위함이냐는 말이지요. 누굴 위함이냐? 건성으로는 잘 알지요. 주의 영광을 위해서 이 헌금을 하며, 하늘나라를 확장하고, 배운 가락이 있어가지고 온갖 다 써먹어요. 그런데 따져보세요.

결국은 내 것 손상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내것 손해나지 않기 위해서. 내 가정 화평 깨지 않기 위해서 하는 억지 몸부림치는 거, 울부짖음에 불과한 겁니다. 그렇다면 이건 원망밖에 나올 수 없어요. 십일조 했는데 수입이 내 예상보다 훨씬 적게 늘어났어요. 원망이지요. 해도 원망이고 안 해도 원망이에요. 전에 수요 참석했는데 못했다. 바빠서 못했다. 사돈 만나느냐 못했다. 그런데 토요일날 집에 수도가 새더라. 그러면 뭐가 나옵니까? ‘하나님 참, 끝 있네. 아니 그 수요일 날 참석 안했다고 그래 토요일에 수도가 터치는 야~~ 정말 째째하다. 정말.’ 이런 생각 들겠어요? 안 들겠어요? 들지요.

아들이 변변치 못하고 자리를 못 잡으니까 모든 탓을 엄마 탓으로 돌리는 거예요. 내가 성의가 부족했고, 기도가 부족했고, 요새 골프 치러 다닌다고 성경은 보지도 않고. 자꾸 천주교에서 말하는 내 탓이요! 내 탓이요! 차 뒤에다 붙여놓고. 다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남들 보기에는 겸손해보이고 온유해 보이고 화평과 자비와 양선과 사랑과 성령의 열매처럼 보이고. 이 더러운 짓을 이게 더러운 짓이거든요.

그럴 때 이야기합니다. 왜, 햇빛 주시는데 감사 못했습니까? 왜 공짜로 공기 주셨는데 감사 못했어요? 꼭 미세먼지 들이 닥쳐야 감사할 겁니까? 주께서는 우리의 생명주시고 하는데 거기에 대한 감사는 없고 내 것 들어오고 나오고 출납계산 그 장부계산해가지고 맨날 오늘은 요거 감사하고 요건 원망하고. 이 생활이 광야생활이에요. 이 생활이.

주께서는 그 때마다 뭘 줬느냐 하면, 예상 밖의 일을 해요. 요건 좀 어렵기 때문에 10분 쉬고 두 번째 시간에 하겠습니다. 예상 밖이라는 것은 전제가 뭐냐 하면 요걸 전제로 해요. 나 의식. 나라는 의식. 내가 예상한다는 것은 나의 이런 범주가 바로 나라는 것을 인간은 그 때 그 때마다 구축해요. 요 정도 되면 요건 나고 요거 바깥에는 너고, 남의 거고. 요게 있는데 주님께서는 예상 밖을 이야기해요. 그럼 예상 밖의 이야기는 뭐를 깨느냐 하면 나라는 요 범주 있잖아요. 이 범주를 찢어버려요. 니는 너를 지금도 아직도 모르고 있다. 니가 어떤 인간인줄 모르고 남들 눈에 보이기에 이 정도하면 남한테 기죽지 않겠지. 라는 남의 인정받기를 고려해서 급조해서 그 때 그 때마다 나라는 것을 구축하는 겁니다.

이것은 언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느냐 하면 부부싸움 할 때. 그런 게 굉장히 일어나요. 남편이 한마디 했는데 이상하게 나를 무시하는 느낌이 들었어. 급조, 급하게 우리 집안이 이런 집안이라는 것을 남편에게 상기시키지요. 다시 과거로 돌아갑니다. 니 시집올 때 니 마음대로 라고. 나라는 것이 이 정도 바운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할 때 남편의 그러한 것을 상기 시켜서 “까불지 마라. 나한테 함부로 대들면 니 당신 당해.” 라고 할 때 그럴 때 예상 밖의 사태가 일어날 수 있어요. 그러면 내가 남들을 의식해서 구축했던 이것이 수정당해야 된다는 그 과정의 반복이 광야입니다. 10분 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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