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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강남-요한복음 16장 16절(기시감)180313b-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요한복음

강남-요한복음 16장 16절(기시감)180313b-이 근호 목사
자, 두 번째 시간 하겠습니다. 목자들의 들판을 제가 봤다고 했지요. 했는데 그 목자들이 천사의 현존을 만났습니다. 자, 천사가 어디있느냐 하는 거예요 여기서. 저는 가서 천사 못봤습니다.
천사가 못봤다는 말은 목자들은 천사를 봤는데 나는 천사를 못봤어요. 그러면 목자들이 자기들도 그 다음 들판에 가서 또 봤겠습니까? 또 안봤겠지요. 그렇다면 이것은 이 세상에 갇혀있다는 뜻이예요. 이 세상에 갇혀있다는 뜻입니다.
보고싶다고 해서 볼 수 나타났기는 했지만 보고 싶을 때 보지 못한다는 말은 딱 한가지 경우 밖에 없어요. 나타나는 세계가 보이는 세계보다 더 컷을 경우에만 국한됩니다. 그렇잖아요. 맞지요? 네?
보이는 세계는 볼수 있는 세계. 차타고 비행기타고 가면 볼수 있는 세계 있잖아요. 목자들 들판. 그런데 여기에 아무리 걸어가도 안보인다 했는데 그때 아기 예수 태어날 때 나타났다는 봤다는 말은 바깥세상에 더 큰 세상이 있다는 뜻이예요.
그리고 이쪽 세계에서 보이는 세계에서 그쪽을 뚫으려 할때에 그냥 큰게 아니고 아까 그 연속되 있으면 그냥 보면 계속 보이겠지요. 그런데 이게 불연속되었기 때문에 봐봐야 이게 나타나지 않는 한 안보이게 되있다 이말이죠. 안보이게 된거예요.
그래서 그러면 인간은 기다려야 하느냐? 마냥 나타나기를 기다려야만 하느냐? 이렇게 이런 질문이 나올수 있겠지요. 기다리면 언젠가 천사 나올 때 물론 천사 오기전에 그냥 기다리면 안되고 카메라를 250대 숨겨놔야되요. 나타나면 자동적으로 촬영 찰칵 찍히도록. 어떤 귀신 추방작전 비슷해가지고. 이렇게 하는데.
이런 의도, 이런 의도 자체에서 만약에 천사가 나타난다면 이것은 이 의도와 천사 나타남과 이 불연속성이 아니고 연속이 되어 버려요. 그래서 그렇게 나타난 경우는 마귀만 나타나지 진짜는 나타나지를 않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뭐냐 하면은 바로 사무엘 보고 싶다고 죽은 사무엘 보고싶다고 무당한테 찾아가지요. 이 무당이 불러내는 무당이라는 중간매체를 통해서 불러낸다는 말은 이건 뭐냐 하면은 사울 왕 자신과 이미 악한 이 무당이 한통속인 것을 하나님을 이용해서 사무엘을 통해서 지적한거거든요.
어떤 의도에 충족된 것이 아니고 그 의도자체를 문제 삼는다니까 그 의도 자체를. 의도 자체를 문제 삼아요. 십자가 중심의 설교 아닌 특징은 뭐냐? 십자가가 빠져 버리면 우리의 하는 모든 의로운것이 경건해져버려요.
그런데 십자가 포함된 설교는 우리가 구원받고자 하고 예수 믿고자 하는 의도 자체도 뭐가 되요? 지적당해야 되요 십자가를 통해서. 그 의도 때문에 주께서 은혜를 주셨다면 내 의도와 내 기도와 주셨다면 이것은 불연속이 아니고 연속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이것은 주님 홀로 이루신 새 언약의 가치가 모독받아요.
기도하면 어디 예수님이 어디 쫄따구도 아니고 바로 쫓아와 응답해야 됩니까? 그런 것은 없어요. 나중에 나옵니다만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말이 그런 뜻이 아니거든요. 그럼 천사들의 이 현존에서 그러면 기다리지 말고 끝까지 가서 끝까지 세상 끝날 때 나타나겠네요 라고 한다면 이것은 누구의 오류냐 하면은 요한복음 11장에 나오는 마르다 마리아의 오류예요.
오빠 죽고 난뒤에 예수님 뒤늦게 가니까 마르다가 화가 단단히 난겁니다. 삐졌어요. 제발 돌아가기 전에 오라고 내가 전갈을 보냈잖아요. 왜 죽고 난뒤에 오십니까?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죽고 난뒤에 온 이유가 있다.
나를 믿는자는 죽어도 살겠고가 될려면 반드시 전제가 뭐여야 되요? 죽을뻔 정도가 아니예요. 예수님의 약속은 죽어도 살겠고가 될려면 진짜 죽어야되요. 진짜 죽어야 되는데 오빠는 죽었는데 오빠를 사랑하는 그 두 남매의 오빠에 대한 기대는 안죽은 거예요.
예수님한테 화를 내는 것은 예수님을 사랑한게 아닙니다. 예수님에게 지금 관심있는게 아니예요. 우리 죽은 오빠 살려내라는 이야기 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시다바리가 되죠. 죽었으니까 주님이 책임지라고 하는거죠.
그것은 뭐냐하면은 우리가 평소에 예수님을 잘 대접했기 때문에 이만한 혜택을 우리에게 주셔도 되잖아요 라는 뜻이겠죠. 그러면 그 혜택을 부여받는 그 마르다 마리아 자아들은 불연속이 아니고 뭐가 되느냐 하면은 연속이 되고 확장이 되요.
나는 잘되야 된다. 예수님 때문에 예수님을 잘 섬기니까 예수님 덕을 봐야된다. 이게 계속 확장이 되겠지요? 그러면 오빠는 죽었지만 누구의 고집은 안죽었어요? 마르다 마리아의 고집은 안죽은거예요.
그럼 오빠를 왜 죽입니까? 뭐도 죽이는 거예요? 죽을 인간만 죽인게 아니고 살아 있으면서도 죽는다는게 뭐를 의미하느냐를 예수님께서 가르치는 거예요. 다시 말해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곧 뭐가 죽는다? 살아있는 내가 이미 죽은자인채로 예수님을 앞에 서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믿음이예요.
나는 살아 있어도 진작에 죽은놈입니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예수를 믿는거라 이말이죠. 왜냐하면 예수님이 어떤 분이냐가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를 사용할려고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 다시 이야기 합시다. 예수님은 어떻다? 죽은자를 살려야지요. 그럼 죽은자의 역할을 누가 해야될게 아닙니까? 누가 죽은자의 역할을 해야되지요? 바로 여러분. 우리가 죽은자의 역할을 해줘야 되요.
살아있으면서 죽은자의 역할을 한다는 말은 평소에 우리의 모든 기대와 목적이 의미 없다는 사실을 물론 마리아는 오빠 죽은걸 통해서 하겠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죽으심을 통해서 우리는 다시한번 확인들어가야 되지요.
아! 육이기에 인간이기에 살아도 산게 아니고 하나님 보시기에는 죽어 있는거구나. 그런데 죽어 있는거구나 라는 생각을 집어 넣은 것 조차도 죽은자도 살겠구나 라는 주님의 자기의 연속성, 자기의 활동에 연속성에 일환으로 우리가 거기에 가담되고 있는거예요. 포함되고 있는겁니다. 덮쳐지고 있는거예요.
그런데 그 속에서 마리아의 그 화남과 분노 속에서 지금 마리아의 분노의 대상은 예수님이 되고 말았어요. 자기 자신이 아니고. 믿음이 없을때는 항상 자기 빼놓고 남을 분노의 대상으로 삼는 겁니다.
뭐라고 아이디어를 내느냐. 예, 마지막때에 우리가 다시 사는 것을 믿습니다. 마지막때에. 여기서 오늘 두 번째 강의 어려운거예요. 마지막때가 되게 되면 과연 주님 오십니까? 우리 시대에는 주님 안오시지만 우리 후손들은 주님 오신다는 말이 이게 옳은 말이냐 말입니다. 이게 맞는 말이예요?
이게 우리 선배들도 그런 이야기 했어요. 왜 마지막때를 후손한테 미룹니까? 후손이 무슨 죄가 있다고. 우리 후세대가 무슨 죄가 있다고 예수 오심을 우리 후세대에게 미뤄버려요. 그들은 우리 죽고 난뒤에 그들은 어떤 세계냐 하면 그들은 이런 세계에 종말이 아니고 현재예요.
어떤 현재? 영원한 현재입니다 그들은. 오늘날 우리가 영원한 현재를 느끼듯이. 그것과 꼭 마찬가지예요. 인간은 자기의 세대를 자기의 영원한 현재로 봐요. 종말로 안봐요. 우리 후세대가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종말이란 우리 후세대에 올꺼라고. 우리가 지금 이야기 한것처럼 똑같은 이야기 한다고요. 그러면 그 후후세대들이 뭐라고 이야기 합니까? 우리의 종말은 후후후후세대에 올거라고.
자, 그렇게 된다면 시간이 마냥 기다린다고 해서 주님이 현존을 파악할 수는 없습니다. 마냥 기다린다고 해서. 목자의 들판에 카메라 한 200대 깔아놓고 온 매스컴 다 끌어놓고 백날 밤에, 별이 빛나는 밤에 카메라 열어놔봐야 천사 안 나타납니다.
가다가 고라니 같은거 있데요 보니까. 들판에. 그 쥐하고 고양이 이스라엘도 고양이 많아요. 고양이하고 이런게 돌아다니지 카메라 포착되지 않습니다. 왜? 우리 의도가 이미 노출됬기 때문에 의도가. 아마 마귀가 보낸 귀신은 몇몇 포착될지도 모르지.
우리의 의도가 이미 노출되었기 때문에 그런식으로 우리가 보는 것으로 믿음을 확장시키는 일은 벌어지지 않아요 보는 것으로. 왜? 주님의 성령은 보이지 않는 곳으로 보는것의 한계를 넘어섰기 때문에 그래요.
너희는 지금 보지만 나중에는 보지 못할것이라. 하지만 다시 내가 올때는 너희가 기뻐하리라 왜? 성령을 보내주기 때문에. 그렇다면 이 마지막때를 그러면 마냥 기다리면 안되. 지금도 안되. 그러면 마지막때를 우리가 어떻게 알수 있느냐. 이게 어려운거예요. 이게.
마중나오는 거예요. 마중나온다는 말은 뭐냐 하면은 제가 이제 수서역을 딱 내려서 가는데 가만있으면 움직이는거 있잖아요. 그거 걷는거 불편하다고 깔아 놓은거 있잖아요. 보도블럭이 움직이는거 있잖아요. 그거 타고 왔는데.
맞은편에서 오는데 젊을 때 우리 처남하고 똑같이 생긴 사람을 봤어요. 젊을 때 우리 처남. 우리 처남이 아마 그때 한 우리 처남이 30대 초반때 지금은 50대 초반 중반이니까. 30대 초반때 우리 처남하고 똑 닮았어요. 안경쓴거 까지 똑같이 닮았어요. 진짜 닮았어요. 어디서 본듯한 얼굴.
자, 그걸가지고 오늘 제목이 기시감이예요. 기시감. 기시감 어디서 본듯한 얼굴이예요. 낯익은 얼굴. 낯익었다. 이걸 프랑스말로 데자뷰라 하는데 어디서 본듯한 얼굴이다. 그러면 이걸 주님께서 어떻게 제자들을 보내요.
제자들을 그 세월과 세월이 이렇게 과저 현재라고 하게되면 제자들은 성령오게되면 성령은 제자들로 하여금 세월을 거꾸로 가게 만들어요. 거꾸로 가게 만들면 제자들은 뭐를 느끼느냐 하면은 자기가 옛날 살았던 시절에 지옥생활을 마주치는 모든 상활들로부터 자기가 경험했던 지옥의 모습을 기시감있게 다 체험 하는 겁니다.
나도 저렇게 살았어 나도. 저렇게 살았는데 저것 때문에 울고 불고 했었어. 이미 성령이 왔다는 것은 몸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미래의 영이 왔다는 거예요. 미래의 영이. 미래의 영이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온거예요.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성령이 와버렸잖아요. 그러면 제자들은 뭐냐하면 성령의 담지자. 아따 어렵지요? 담지자. 담지자라 하는 것은 뭔가 담아 있는 인간이예요. 뭔가 담겨 있는 인간. 이걸 철학적인 용어로 담지자라 하는데 일반적인 용어로는 잘 안나오는 용어예요.
뭔가 그릇에도 담아있다 예요. 담지자에요. 뭔가 포함하고 있는 거예요. 성령을 성령이 포함된 사람같으면 이미 예수님의 영이거든요. 예수님이 이땅을 이미 마무리지었잖아요. 이 땅이 어떤 세계인지 다 알지요. 악마가 어떤 식으로 인간을 겁주고 살았다는 것을 다 알잖아요.
그걸 이미 경유하고 그걸 거치고 가신분의 성령이 제자들속에 들어와버리면 제자는 만나는 사람마다 과거 인물이예요. 저거저거 꼬라지는 내가 옛날 세상 주님몰라 철닥서니 없는 그 사고방식하고 똑같이 하고 있네. 반갑다 친구야. 이 짓해서 나 지옥갈뻔한거야 이 짓해서. 만난사람마다.
옛날 젊을 때 처남 만난것처럼. 만나는 사람마다 마주치는 거예요. 저쪽에서는 과거에서 현재 미래로 가고 있고 이쪽에서는 미래에서 현재에 그냥 파견근무하는겁니다. 더 쉽게 말씀드려서 이번에 이스라엘 유적 답사를 했는데 성지순례 말도 하기 싫어. 유적답사를 했는데 여리고에 갔단 말이죠.
여리고에 딱 가니까 우리나라 60년대인거예요. 이스라엘이 완전히 철통 철망을 쳐버렸어요. 이스라엘은 이스라엘땅에 팔레스타인 자치구에 있다고 생각하고 팔레스타인은 자기들 살던 땅에 이스라엘이 야금야금 갉아 먹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동쪽에 요단강있고 여기 갈리리 바다 있고 요단강있고 여기 사해바다 있는데 사해바다는 10배정도 큽니다. 갈리리보다도. 갈리리는 이쪽이 21km 이쪽이 10km 둘레가 54km 정도 쯤 되요. 이거 외운다고 애먹었습니다.
여기에 이스라엘이 지중해 가장 깔끔한데 지도가 깨끗한데 이렇게 깨끗하지가 않아요. 지저분해요. 군데 군데 갉아 먹은거 같애. 사실은 갉아 먹은게 아니고 누가 누구를 갉아 먹었느냐 하면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는 사람들을 갉아 먹었는데 마치 면적이 이쪽이 훨씬 넓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팔레스탄인이 이스라엘을 갉아 먹은것처럼 느끼죠.
여기하고 세겜지역하고 베들레헴 이쪽에서는 뭐냐 하면은 철망을 쳐놨어요 철망을. 압사해라. 굶어 죽으라. 봉쇄를 해버렸어요. 나라가 한두개가 아니예요. 지금 다 뚝뚝 다 떨어져 있다니까요. 연락도 안되요. 동굴파다 걸려가지고 동굴 폐쇄당했어요.
완전히 포위되서 꼼작도 못하는거예요. 그러니까 여기는 자치구가 팔레스타인 자치구가 있지만 세금을 자치구에 내지만 수도시설이 됩니까? 의료보험 혜택이 되요? 경제개발이 됩니까? 아무것도 안되요. 아무것도. 완전 60년대로 그냥 멈춰 있는거예요 멈춰 있는거.
만약에 여기서 이스라엘로 탈출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 사람이 자기 옛날 그리워서 다시 여기 들어갔다고 생각한다면 그 기분이예요. 내가 이 동네에 이렇게 살았다. 여기 세겜 지역에 제가 들어갔습니다. 이 적색분쟁 지역이예요.
들어갔다하면 돈 없다 생각해서 체포해가지고 죽여버리든지 해가지고 이스라엘은 이렇게 위험한 곳이니까 이스라엘 관광오지 마세요 하면 IS가 그런 조치 하면 관광수익 확 줄어든다는 그런 수법을 쓰는데 우리가 희생물이 될 수가 있어요. 될수 있다고요.
그런데 같이 갔던 이상현 목사님은 그냥 차로 그냥 들어갔어요. 들어가자마자 외무부에서 메시지 한100통 들어왔어요. 빨리 도피하시오. 빨리 피하시오. 메시지가 위치추적해가지고 빨리 나오라고.
우리는 완전 덜 봤는데 봐야될 야곱의 우물 보지도 않았어요. 세겜 이런거 뭐 보지도 않았는데 너무 아까워서 못가겠어요. 가는데 관광객 왔다고 반갑다고 희한하게 여기 아무도 안오는데 관광차가 하나도 없어요.
아무도 없는데 들어왔다고 좋다고 하는데 좀비처럼 달려드는데 거기서 좀비 첨 봤어요. 빈민가 아이들 완전히 뭐 우유가 있겠어 할 일은 아이 놓는거 밖에 없어요. 아이들은 많이 낳았지 그 빈민가 동영상 보면 나와요. 빈민. 뒷골목.
이거는 아이들 축구만 하고 아무것도 없어요. 경찰도 이상해해. 여기 왜 왔습니까? 동양인 이니까 봐주는거예요. 동양인 이니까. 동양인 이니까 봐주는 거예요. 서양인 같은면 미국편이라고 이거는 진짜 참. 동양인 이니까 그냥 봐주는 거예요. 제 아내는 빨리 나가자고. 저는 뭣도 모르고 들어왔고 하여튼.
이스라엘에서 인터넷 차단 시켜버렸어요. 구글이 안되요. 빠져나갈길도 안되요. 구글이 안되니까. 구글 안되니까. 차단 다 시켜놨어요. 그 동네에 이미 탈출한 사람이 그 동네에 다시 간다고 봅시다. 아이고 사는 꼬라지하고는 이렇게 되겠지요.
그 일을 누가 하느냐? 너희가 이세상에 속하지 아니한거예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했지만 내가 너희들을 데려가지 않고 남겨두는 것은 바로 이 세상이 진리가 아님을 이 세상이 멸망의 지옥임을 알려주기 위해서 그들을 보내는 거예요.
미래가 현재에 덮치는 겁니다. 미래가. 묵시가. 이미 완성된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했지요. 시민권을 하늘에 가진자가 하늘에서 오는게 아니고 지상에서 지상으로 가는겁니다.
가가지고 교회하는 행세, 성지순례하는 그 모양 전부다 이런 짓거리가 지옥갈 짓거리였다라는 것을 고발하게 하지요. 아무짝도 쓸데없는 짓을 다 낱낱이 다하도록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보내는 겁니다.
그러면 제자들의 운명은 누구 운명을 닮았느냐 하면은 예수그리스도의 가는 십자가의 길을 그대로 재현할 수밖에 없어요. 스데반집사가 가는길, 사도바울의 가는길, 사도바울이 이야기 했지요. 나는 모든 것 아무것도 없으나 모든 것을 가진자로다.
예수님은 더 어렵게 이야기 했어요. 없는자는 빼앗기겠고 있는자는 더 받을 것이다. 이게 두 개의 중첩현실이 아니면 도대체 설명이 안되요. 마태복음 14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없는 것은 빼앗길 것이고 없는데 뭘 빼앗겨. 없는 것은 빼앗길것이거 있는자는 더 받을 것이다. 있는데 왜 더 받아요?
이것은 뭐냐 하면은 이세상 자체가 주님 보시기에 없음이라는 말외에는 다른 말로 표현할길이 없는 거예요. 하나님이 원하는 의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원하는 소망이 있습니까? 아무것도 믿음이 아무것도 없는거예요.
없기 때문에 소위 있다고 우기는 것은 있음에 의해서 다 강탈 당해야 되요. 그런데 그 세상에 누가 있느냐? 그 세상에 진짜 있음이 주님의 성령에 의해서 파견된 사람은 그 사람이 있는자가 되고 있는 사람은 하늘의 은사 선물을 받고 받고 무한대로 또 받을것이예요.
그게 마태복음 13장에 이야기고 그걸 근거로해서 마태복음 13장에 비유들을 설명해줘야되요. 누가 해석할거예요? 그게 어떻게 해석이 불가능합니까? 예배당 부흥할려고 하는데 어떻게 해석되요? 교회 예배당 짓고 부흥할 그것이 지옥갈 행세인데. 그게 예수님 십자가를 가렸는데.
그거 제자들이 구상 안했겠습니까? 이미 제자들이 옛날에 다 해봤던 거라니까요. 젊을 때 처남이라니까. 젊을 때 처남을 내가 다 경험했잖아요. 그런데 젊을 때 처남을 내가 만났단 말이죠. 그 처남 아닌걸 알지요. 지금 50이 같이 늙어가고 있으니까 아는데.
어떻게 그걸 젊을 때 처남을 딱 봤을 때 바로 예수님의 분신으로서 다시 이 세상에 머물면서 예수님의 증인자라고 하기 위해서 주께서는 사도행전 1장 8절에 성령이 너희에게 오게되면 너희는 땅끝까지 뭐가 된다? 예수님의 증인되는 거예요.
그런데 다른데 갈필요 없어요. 그 자체가 이미 그 자체가 움직이는 천국입니다. 아들의 나라예요. 다른데 가기는 뭘가요. 죽으면 그만이지 죽는게 소원이지 다른나라 갈거 없어요. 움직이는 천국은 움직이는데 제자들은 움직이는게 성령과 함께 움직이는 거예요.
시민권을 하늘에 있는자가 땅에서 움직인다 이말이죠. 그러니까 땅에는 시민권이 없어요. 루터는 오해해가지고 두가지 시민권이 있다고 하는데 주민등록 두 개도 아니고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리.
주민등록증 하나밖에 없어요. 하늘 시민권 있으면 땅에는 죽은자예요. 무슨 시민권 두 개가 있어요. 주민등록있고 뭐 두 개 있는가요? 주민등록 두 개있다고 하니까 이게 소위 복음학교나 그런 선교단체에서 구라를 쳐 구라를 치는겁니다. 헌금도 하고 세금 내라고. 말도 안되는 소리.
우리 교회 어떤 사람이 아주 멋진 질문을 했어요. 유재훈씨인가? 아주 멋진 질문을 했어요. 이화여대 대학생들이 대모를 하는거예요. 동상을 부스라고 무슨 동상? 김활란동상 이화여대 설립자 동상 없애라고. 왜냐하면 이화여대 김활란 여사는 이화여대 세우면서 그때 일제에 협조해가지고 이화여대 세웠는데
이제는 그 일제의 압잡이 되어서 조선사람을 강탈한 그 자를 부끄럽지도 않나! 동상 끌어내려라! 막 대모를 한단말이죠. 이런 점에서 목사님은 복음으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게 질문이예요. 질문 안보셨어요? 보셨지요? 답변을 그렇게 했지요.
학생들이 그렇게 이야기 하는 것은 나라 없던 시절에 얘기죠. 나라 없던 시절. 그러니까 나라 없던 시절에 나라 없는 것이 악한 것이고, 자기 나라 독립해 있으면 이게 선하다는 사고방식. 그게 누굴 위한 것이냐면 본인의 생존을 전제로 해서 그런 선악이 나오죠. 자기 나라, 자기생존을 전제로 해서.
그래서 김활란 그 사람한테 욕할려면 김활란이 일제에 협조한 것은 나라가 있어야 학교도 있고 신앙도 있고 교회도 있다 그런 말도 안되는 신학이거든요 김활란 그 사람이. 기독교를 이용해서 장차 이 나라 청년들을 생각에 지식인을 만들기 위해서 더 여성 지식인을 만들기 위해서 이화여대를 만들었잖아요.
그거 왜 했어요? 장차 나라가 잘되면 나라가 다시 회복되거나 나라가 잘되면 이 여성들을 키우는게 좋다 인재를 키우는게 좋다고 해서 했다 이말이죠. 지금은 협조하지만, 후대를 위해서 좋다고 해서 한거예요.
그러면 김활란 사고방식이 뭡니까? 나라 없으면 우리의 뭐도 없다? 우리의 생명도 용납되지 않는다 허락되지 않는다 이렇게 보잖아요. 그 생각이 복음적이예요? 복음적 아니예요? 복음적 아니죠.
뭐가 선합니까? 나라가 있는 것이 선하다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복음에서는 우리의 시민권은 어디에 있다? 하늘에 있고 우리는 죽었고 우리의 생명은 어디있다? 하늘에 있잖아요. 그러면 우리의 나라는 없어요? 있어요? 있어요.
세상 끝장나고 날 나라가 성령을 통해서 미리 이땅에 우리가 미리 성도로 살아가지 않습니까? 살아가는거 거든요. 그러면 이 나라는 누구나라입니까? 내 나라가 아니지요. 대모를 할려면 김활란 박사 동상 할려면
그런 나는 우리는 생존을 위해서 살지 않는데 왜 김활란 박사는 생존을 위해 살았습니까? 라고 구호를 외치면서 대모를 하라 이말이죠 내말은. 우리 죽을라고 하는데 왜 김활란은 살라고 했습니까? 그러니까 잘못했으니까 끌어냅시다 이렇게 대모해야된다는 말입니다. 제말은 그런뜻이예요.
그런데 대모하는 여학생들이 그렇게 대모합니까? 이 이화여대 살아야 우리가 잘산다 자기의 생존을 전제로 하잖아요. 이게 무슨 대모가 되요. 권력다툼이지. 권력다툼이잖아요. 수상한것들. 어떻게 살고자 합니까? 살고자하면 죽을것인데.
같은 이론입니다. 트럼프하고 김정은하고 평화협정했다. 복음적으로 어떻게 해석합니까? 내가 오후때 했잖아요. 어떻게 해석합니까? 어떻게 해석하면 되요? 아 아깝다 죽을수 있었는데. 서울에 한 3개만 터뜨려도 대충 가잖아요.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
왜? 파견근무도 자꾸 하게되면 고생이잖아요. 사도바울이 뭐 때문에 소원했습니까? 후딱 끝내고 파견근무 끝내고 좀 쉽시다. 이거 했잖아요. 사도바울이 스데반 집사를 얼마나 부러워했겠어요. 행님 좋겠습니다. 나는 뭐지? 나는 제대도 안하나? 이럴거 아니냐 이말이죠.
그러면 김정은이 핵개발한 것이 얼마나 절호의 찬스 좋은 기회입니까? 쏴라 쏴라! 해야지요. 대모해야지요. 태극기 부대 대모해야됩니다. 제발 쏴주세요! 폭탄 터뜨려 주세요. 그런데 평화 협정을 좋아한다? 이것은 정신상태가 뭔가 잘못되었습니다.
그게 뭐냐하면은 사람에게 주님의 이런 성령의 일을 방해하는게 뭐냐하면 인간의 기대와 인간의 나름대로의 목표. 기대와 목표가 매일같이 생산되기 때문에 이게 문제입니다. 사람이 기대하고 목표한다는 것은 이것은 자기 영광을 같이 섞게 되있습니다.
목사가 설교하면서 지난해 우리 교인이 350명 올해는 기도 바짝해가지고 400명 목표 채웁시다. 그거 하는 순간 사도바울이 그 자리에 갔으면 이게 뭡니까? 그게 바로 적색구역. 그게 지옥이예요. 그 교회가 바로 지옥이예요.
왜? 기쁨을 어디서 얻습니까? 350에서 400명 될 때, 비로소 우리는 기뻐할만하다는 기존 생각을 계속 지속하고 있잖아요 연속성 지속하고 있잖아요. 그러면 그거 누가 결정해야되요? 광야에 예수님이 시험받았잖아요.
그러면 예수님이 누구하고 대결했습니까? 마귀하고 했지요. 마귀가 제시한 그 제시한 조건이 뭐였습니까? 세상 영광이잖아요. 세상 영광. 세상에서 부러움 받고 인기 얻고 잘되고 성공하고 그러면 그 교회는 대한 예수교 마귀교회가 되는 겁니다.
온 유적지 마다 전부다 마귀교회 다 세워놨어요. 마귀교회. 온 유적지마다. 사진 안찍을려고 애썼는데 사진 막 찍혔어요. 갈리리라고 해가지고 언덕위에 나는 나무 십자가 3개 꽂혀 있는줄 알았지. 옛날에. 미리 동영상 보고 그게 아니란걸 알지만.
낭만적으로 생각해가지고 갈리리 언덕에 능있고 보통 그 빈민골에 못사는 아이들 놀이터 있잖아요. 산 중앙에는 이렇게 능선처럼 아이들은 학원갈 돈 없는 애들 오후에 모여서 놀잖아요. 무덤한 열댓개 있고 무덤에 뒹굴고 그런 1970년대 영자의 전성시대에 나오는 그런 시대는 개발지역 있잖아요. 그렇게 생각했지.
십자가 3개 강도 이렇게 있는줄 알았지요. 세상에 성당으로 막아놨어. 완전 성당 지어놨어. 성당 구경하는것이지. 거기 들어가보니까 뭐가 있느냐 돌이 있어요 돌. 예수님 뉘였던 돌. 그 돌에 뽀뽀하고 난리났어. 현존 현존. 그 돌있음이 현존이예요.
돌을 통해서 예수님의 죽으심을 상상하는 겁니다. 연속성을 자기가 강하게 지금 부여하는거예요 연속성을. 자기가 생각할수 있는 모든 것을 생각해요. 그거 현존아니예요. 왜냐하면 예수님의 십자가 뉘였던 그 돌에 누워있을 그 당시에 지나가던 참새 두 마리가 짹짹 거렸어요.
그러면 그걸 현존할려면 뭐가 있어야되요? 성당 날아가고 참새 두 마리 날아가야되요. 참새 두 마리만 있으면 안되요. 저뒤에 산밑에 누가 노인네가 어~ 기침소리, 기침소리까지 있어야되요. 현장성 그래도 보존되야되요 현장성.
그리고 그것만 있으면 안되요. 소리만 있어도 안되고 냄새도 있어야되요 냄새도. 저녁한다고 누가 수제비 끓이고 그 수제비 끓이는 냄새까지 나와야되요. 그러나 그게 가능합니까? 세월은 기다려 주지 않고 날라가 버리죠. 없지요. 현장은 보존되지만 현존은 보존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하나님을 붙잡을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스스로 나타낼 그것만 스스로 나타낼 거기에만 하나님이 나타나기 때문에. 스스로 나타날때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보이기 때문에. 그게 바로 천사가 목자를 만난 이유입니다.
그러면 목사님 주님은 나타날 때 어떤 현상이 있습니까? 물으면 바로 우리를 불연속적으로 다시 돌려보내죠. 우리를 불연속적으로 보내요. 우리는 자아는 항상 인간은 불연속적이여야되요.
연속성 인간은 기대와 목표가 있다는 것은 현재 내가 이렇게 있으면 내가 기대한 목표가 있잖아요. 이걸 연속 있게 마련이예요. 이렇게 이렇게 해서 나중에 내일되면 이렇게하자. 적금 넣었으면 내일 적금 탈것이다. 항상 모든 것이 연속적입니다.
밥솥에 쿠쿠밥솥에다가 쌀을 담아놨으니까 15분만 있으면 밥 될 거야. 삐! 하고 밥이 될거야. 이게 연속성이예요 전부다 연속성. 삐 될려면 허락이 있어야되요. 그러면 이거는 허락 없이도 잘만 삐 하던데요?
그것은 평소에 주님의 연속성을 누가 가려버렸어요? 나의 기대성이 그걸 가려버린거예요. 14분 50초 가가지고 쿠쿠 고장났어. 삐 안해. 밥통 열리지도 않아. 그게 마땅한 조치입니다.
왜? 그동안 늘상 됬다고 해서 우리한테는 마치 밥이 되야될 어떤 권리라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어요. 그게 아까 무슨 통합적 사고방식이거든요. 통합적 사고방식. 나는 내가 아는 것이 반드시 되어야 마땅하다는 통합적 사고방식. 나는 그런 권리가 있다는 통합적 사고방식.
이게 한번 잘되면 그 다음부터는 목표 목표를 높입니다. 계속 목표를 높여가고 목적을 높여가고 다양하게 가게되요. 그러면 이거는 주의 영광을 우리가 훼손하는 것이 되는 겁니다.
20절에 봅시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이것도 어려운게 우리가 아는 상식에서 제자들이 지금 세상과 함께 있잖아요.
자,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구가 한 뭐 125만이라고 합시다. 이것보다 적겠지만 한 125만 합시다. 그럼 제자들 숫자가 몇 명이냐 하면은 한명 죽었으니까 11명이잖아요. 그렇지요? 그럼 11명은 어디에 속합니까? 125만에 일부로 속하지요. 11명이니까. 11명.
11명 포함해서 125만이라 이말입니다. 이거는 분리가 안되요. 세상과 함께 있어요.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안봐요. 너희들이 갑자기 여기서 울고 통곡함으로서 갑자기 뭐가 됩니까? 이쪽과 이쪽. 이 사람 빼놓고 나머지는 뭐한다?
기뻐하는게 되요. 기뻐하는게. 같이 있어도 뭐가 다르냐 하면은 서식지가 달라요 서식지가. 사는곳 기거하는 곳이 다르다니까요. 이것은 외향과 외적인 모습으로 파악될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그 주일 오전에 그런 설교 했잖아요. 떨기나무가 불 붙었잖아요. 그 떨기나무 불 붙어서 감나무 됬습니까? 그래 주님 사라지고 난뒤에 만약에 모세가 다시 떨기나무 갔으면 그 떨기나무가 감나무 됬습니까? 포도나무 됬어요?
맨 무슨나무 되요? 그냥 떨기나무 예요. 똑같아여. 외향적으로 파악이 안된다니까요. 그래서 제가 그랬잖아요. 능력이란 전혀 같아 보이지만 전혀 질적으로 다른 요소가 있다. 주일 낮에.
그게 왜그러냐? 주님의 신성, 창조성, 주님의 그 신적인 요소가 피조물 속에 섞여 버리면 피조물은 달라진거 없어요. 동일해도 다루시는 하나님이 그 피조물 다루게 하는거예요. 여기 20절에 보면 11명을 어떻게 다룹니까? 울게 만들고 나머지는 어떻게 합니까? 웃게하지요.
많이 웃으라 하세요. 지옥갈 사람이 웃어본들 그 얼마나 웃겠어요. 지옥 문 앞에서 하하하 막 웃어줘야 지옥가서 엉엉 울지요. 그러니까 지옥가기전에 마음대로 승리! 승리! 승리를 외치고 브라보! 위하여! 뭐 Cheers! 맘대로 하라 하세요. 빰빠라 불고 이렇게 하란말이죠. 죽 넓은길로 가가지고 전부다 푹푹 빠지듯이 전부 지옥으로 빠집니다.
그들이 웃는 것을 그들이 희극적이고 행복하고 웃는 것을 목표로 삼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누가복음에 뭐라고 했느냐 하면은 차라리 너희는 울으라 합니다. 우는자가 복이 있다. 웃는자는 그들의 웃을일을 다 했기 때문에 웃는자는 저주가 있을것이고 우는자는 복이 있다 했거든요.
그래놓고 다른데 가면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웃으라 이래요. 웃으라 한다는 말은 그들은 그들이 따라올수 없는 아무리 모방해도 기뻐할수 없는 기쁨이 너희에게 주어질 것이다. 거기에 나오죠.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리니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뭐가 된다?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언제 오실 때? 성령께서 오실 때. 어떤 사람은 주님께서 오실때라고 하는데 주님 오셔봐야 뭐 얼마 보지도 못했어요.
기껏 40일 있다 했는데 사실은 40일 함께 있는 것이 아니고 두 번 나타났는가 그렇죠? 그렇지요? 사도행전에 보면. 40일 계신건 맞는데요. 몇 번 나타나지도 않았어요. 그 저 예수님이 마지막 당부한 교회가 있어요. 교회.
교회안에 들어가면 뭐가 있느냐 하면 바위만 있어요. 거기서 마지막 당부했어요. 니가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님의 마지막 당부 갈릴리 바다, 갈릴리 바다 곁에서 고기 잡아가지고 농어인지 뭔지 모르겠습니다. 그 갈릴리 바다 가면 그 고기가 맛있답니다. 예수님께서 먹으신 고기라고 해가지고 그 식당이 유명해요.
그것도 뭐냐면 현존을 눈에 보이는 그것가지고 뽑아낼려고 하는거예요. 연속성을 또 시도하는 거예요. 성령 필요 없이. 그거 먹으면 갑자기 마음에 막 희열하고 그거는 자기의 감정의 연속성이예요. 그 기쁨은 그것은 몇분 안가는 그 기쁨은 별로 좋아하지도 않아요.
그 이야기하고 주께서 헤어질 때 내가 지금은 음악을 뺏습니다만 거기다 음악을 하나 깔았어요. 그대여 아무 걱정말아요 라는 노래를 깔았다가 깔았다고 해가지고 높으신 분이 뭐...다시 뺏지만 그대여 걱정하지 말아요. 지난간 것은 다 의미가 있고 찬송가는 아니지만 마지막 헤어진걸 생각할 때 그게 적당하다고 했는데 뭐 했지요 과거완료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나타나실 때 사람들은 뭐가 궁금하냐 하면은 전에 예수님이 헤어질 때 베드로가 그렇게 반항했잖아요. 나 저사람 모른다 했잖아요. 그러면 두 번째 나타난다고 해가지고 베드로가 개과천선 했을까요? 그 인간이 그 인간이지.
이제는 뭐 사람은 보는 것으로 인간은 바뀌지 않습니다. 보는 것으로. 그러면 사도행전 1장에 나오는 성령이 베드로에게 임하지요. 오순절 베드로에게 임하지요. 그 베드로에게 임한 장소가 뭐냐하면 마가의 다락방이예요.
마가의 다락방에 보면 마가의 다락방이 최후의 만찬도 한곳이고 거기 성령이 임한곳이 되고 마가의 다락방에 동영상도 올려놨습니다. 마가의 다락방 올라가다가 나는 잘못올라가가지고 남의 가정집 가가지고. 아이 미안합니다 하고 나오고.
오순절 베드로 성령받고 난뒤에 그 사람이 베드로가 모양이 달라졌어요? 갑자기 뭐 훤한 향수를 새로 발랐는지 그런게 나타납니까? 향기가 나고 뭐 그런게 있어요? 없어요. 똑같아요. 똑같은데 뭐가 있다? 성령이 있는거예요. 오늘날 성령 받은 성도가 똑같아요.
성령 받으나 안받으나 회사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커피나 뽑아봐. 똑같아요. 복사나 해라. 똑같다니까. 다른거 없어요. 성령 받았다 해서 교회에서 목사들이 안알아 줍니다. 똑같다니까요. 본인이 똑같아요.
늘 항상 성령은 뭐냐? 우리한테 지적해요. 의와 심판과 죄에 대해서 지적한다고요. 죄가 뭡니까? 죄가 바로 주님을 제자들과 떠날 수 밖에 없게끔 요소 그게 죄잖아요. 그게 뭐냐하면 바로 연속성 추구 아닙니까? 기대와 목표 갖는 거잖아요. 이게 죄다 이말이죠.
오늘하고 내일하고 끊어져 있어요. 내일일은 내일 되야지. 오늘도 오늘만 끊어진게 아니라 오후 2시와 3시가 끊어지고 두시반과 두시 31분이 다 끊어져 있어요. 매일같이 모든게 끊어져 있다 이말이예요. 끊어지고 허락하셔서 목숨 연장시켜주시고.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이게 물인데요 이거 허락했고 이거 팔 꺽이는거 허락했고 허락했어요. 이게 슬로우비디오 이어버리면 이렇게 부드럽게 되는거예요. 이거 끊기면 아~하고 못먹는거예요.
모든 것이 주님은 항상 살아 있기 때문에 항상 허락하십니다. 그리고 항상 예수님의 십자가에 피의 공로만 드러내요. 성도한테 성령안에서는. 니가 물먹는것도 나의 십자가 증거하라고 준거다 이말이죠.
모든 것에 대해서 이미 다 이루었다. 새언약이죠. 이 살과 이 피로 다 이루었다는 것을 우리를 통해서 증거하려는 겁니다. 그게 바로 성도가 갖고 있는 신성함, 성령이죠. 신적인 요소입니다.
뭐 신적인 요소가 키가 그것밖에 안되고 그러냐. 장가도 못가고. 남들보기에 예수님이 그렇게 독특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이사야 예언대로 심히 보기에 심히 아름다운것이 없다 했습니다. 그렇죠?
끌린만한 챠밍포인트 매력포인트가 없다니까요. 평범하기 때문에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도 의심할 수밖에 없는거예요. 평범해도 너무 평범하니까. 뭐 키가 크다든지 안그러면 공중부양한다든지 내눈을 바라봐 이래가지고 뭐 사랑하는 사람이 이사랑이라는 가수가 된다든지 자기는 또 인정안하고 있지만 허경영이처럼.
그렇게 뭔가 독특한, 독특한걸 뭐라고 하냐 하면은 이거예요. 기행. 기행. 예술가는 기행해야 예술가 답잖아요. 머리 막 기르고 좀 유별하게 보여야 야~ 뭐 받은 모양이다 그거 아니예요. 주님 얼굴할 때 아주 도사처럼 만들어놔요. 머리 이만큼 기르고 키크고.
여러분 예수님은 마리아 닮았어요. DNA가 마리아 DNA라니까. 마리아 DNA예요. 미남이냐 아니야 하는것도 모호예요. 너무 평범해서 유별날게 없어요. 그러니까 사람들은 보고는 믿지를 못하겠다는 거예요. 이거는 사도바울도 마찬가지고.
말에는 힘이 있는데 뭐 얼굴보니 뭐 시원찮네. 이렇다 말이예요. 그래서 후대에 사도바울 그릴때 대머리로 그려놓고 그래요. 대머리라고 성경에 안나오는데 대머리로 그려놓고. 대머리가 대머리 세계에서는 또 자기들끼리 또 미남이 있다이말이죠. 일관성이 없어요.
어쨌든간에 능력이란 전혀 달라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달라요. 하지만 다릅니다. 왜냐면 이땅에 살때는 마주쳐서 지옥을 이미 이세상이 지옥이라는 것 멸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는 입장이기 때문에 다가서기 때문에 그 마음은 자유 그 자체입니다. 자유예요.
그래서 제가 주일에 했지요. 구원은 탈출이 아니고 침몰이라고. 자유인이기 때문에 어디든지 갈수 있어요 어디든지. 구애받지 않아요. 어디든지. 왜냐하면 단선이기 때문에 성령이 단선이기 때문에.
성령 받고 이거 하고 이게 아니고 복선이 아니고 3개 4개 5개 아니라 단선이예요. 성령받았기 때문에. 이 세상이 지옥인 것을 확신하고 예배당도 마찬가지 예배당은 더욱더 지옥이고 마지막에 마지막 심판은 마지막때에 하나님 집에 심판이 떨어질것이라고 베드로전서4장에 나오지요. 집부터 싹쓸이 하는거예요.
그럴싸해 보이니까. 이 그럴싸해 보이는식으로 살지 마세요. 식당에서도 무한리필 되거든 칼국수 하나 더 시키고. 제발 평범하게 구애받음이 없이. 혹시 갈라설려고 하거든 그동안 붙어 있어서 감사합니다 이런식으로.
미워하는데 그러면 안되라고 하는 순간 그거는 뭐냐하면 옛날 지옥에 있을 때 지옥에서 탈출하지 못할 때 이게 안되가 되요. 왜? 어떤 기대와 목적으로서 주님의 영광을 안가린다 하면서도 이미 뭔가 노림수 가지고 살아왔잖아요 노림수가지고.
주님 덕분에 뭔가 어떤 예수믿는 티를 내볼려는 어떤 노림수 같은게 있어요. 그런것들이 불연속될 구원을 연속적으로 이어볼려는 시도같은거예요 시도. 그래서 여러분들이 교회가서 이상한 복음아닌 설교 하거든 그것도 주께서 허락하신거예요.
허락하면서 아 저게 바로 사람들 지옥보내기 위해서 사탄이 사탄의 종들이 양의 탈을 쓰고 저런 설교 해가지고 사람들이 훅 가가지고 우르르 은혜 받았다고 난리도 아니구나. 라는 것을 이렇게 팔짱끼고 남의 구경 진짜 남입니다 남 구경하듯이.
참 나도 옛날 어지간히 해가지고 돈 꼴아박았지 교회 한 몫돈 수천만원 이런짓 많이 했지. 라고 하면서 무한한 기쁨의 리필을 무한 기쁨 리필을 하라고 이 지옥같은 상황을 마딱뜨리게 한겁니다. 도피하지 마시고 기쁨을 위해서라도 세상속으로 그냥 통과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께서 기쁨을 주신 이 기쁨을 우리가 어디다가 날려보냈는지 백날 들어도 염려 초초 불안 여전한 이유는 주여 주님의 영광을 가리고 있기 때문인줄로 압니다.

제자들이 갔던길을 우리가 그대로 가고 있사오니 성령주실 때 제자들처럼 미래의 삶 하늘의 삶 살면서 시민권을 자랑할수 있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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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