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선입견 파괴 180316강의베드로전서

서울의존강의20180316a 베드로전서1장 1-7절(선입견 파괴)-이 근호 목사

1절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2절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3절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4절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5절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6절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7절 너희 믿음이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전서를 오늘부터 시작하겠습니다. 1장 1절에 1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2절,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라고 이렇게 되어 있는데, 여기에 ‘나그네’라는 말이 나오죠.

나그네라는 말이 나오고, 그 다음에 그 앞에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두니아, 라는 지명이 나오는데, 지금의 터키지역인데, 이걸 대한민국이라고 본다면, 강원도-본도, 그 다음 경상북도-갈라디아, 그 밑에 경상남도-갑바도기아, 전라도 충청도-아시아, 경기도 서울-비두니아, 라고 이렇게 생각하시면 쉽습니다. 어쨌든 터키의 전 지역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면서 뭐라고 했느냐 하면 나그네라고 했거든요.

그러면 그 나그네라고 지칭이 되는 사람들, 현재의 터키인데, 그때는 터키가 없고 본도, 갑바도기아, 갈라디아, 아시아, 비두니아, 뭐 이런 식으로 했는데, 흩어진 성도가 있다는 겁니다. 흩어진 성도가 없으면 이런 이야기를 안 했을 거예요. 그럼 흩어진 성도가 이 중에 어디에 있다는 말입니까? 예를 들어서 아시아 이 지역에, 우리나라 같으면 충청도 전라도에 있다고 합시다. 이 사람은 아시아에 거주하고 있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나그네라고 되어 있거든요. 나그네. 그러면 우리가 아는 상식으로는 나그네라고 하는 것은 아시아에 살다가 갑바도기아 또는 비두니아로 돌아다니는 것을 나그네라고 하잖아요. 근데 그 사람이 평생 아시아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아시아라는 동네에서 한 발짝도 나간 적이 없고 늙어죽었다. 그래도 나그네입니까? 나그네 아닙니까? 어디 옆 동네로 가 본 적도 없는데요? 돌아다닌 적도 없는데요? 출장 간 적도 없는데요? 우리의 세상적인 관점에서는 이 사람을 나그네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냥 붙박이라고 하죠. 그냥 터 잡고 사는 사람. 그러면 나그네라는 말이 성립이 되려면, 본도 갈아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두니아 말고 다른 동네가 제시되어야 합니다.

그 다른 동네가 어디에 있느냐 하면 바로 4절에 나와요. 4절,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이래 되어 있죠. 그렇다면 베드로가 이야기하는 것은 이 나그네라는 사람의 소속이 어디 갑바도기아입니까? 아시아입니까? 비두니아, 본도입니까? 갈라디아입니까? 어느 쪽이에요? 거기에는 일체 소속이 되어 있어요? 안 되어 있어요? 나그네니까, 어디 소속이 되어 있으면 나그네라고 할 수가 없잖아요.

그러면 이런 세상에는 소속이 안 되어 있고, 어디에 소속이 되어 있느냐 하면 하늘에 간직한 나라에, 하나님이 주신 천국에 소속되어 있죠. 그렇죠. 그렇다면 베드로전서를 시작하면서, 1장 1절에 베드로가 말하기를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뭐 이렇게 되어 있는데,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 지역민이에요. 그 거주지가 맞다 이 말이죠.

그러면 베드로가 편지를 할 때, 나그네라고 이야기한다고 할 때는 그 지역민한테 이야기하면 안 되고, 딴 동네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맞는데, 나그네라는 말을 하면서 그 지역민을 이야기했다는 말은, 그 지역에 살지만 그 지역에 소속되어 살지 않는 사람들에게 편지하노니, 이래 되는 거예요. 소속되어 살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럼 이 편지는 하늘에 간직한,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하늘에 간직하신 기업, 하나님의 그 나라에 성령이 없어서 소속이 안 된 사람 같으면, 이 베드로전서는 뭐냐 하면 희대의 사기극입니다. 희대의 사기극이에요.

강원도-본도, 그 다음 경상북도-갈라디아, 그 밑에 경상남도-갑바도기아, 전라도 충청도-아시아, 경기도 서울-비두니아, 라고 이 지역을 우리나라로 이야기했잖아요. 이렇게 구체적으로 지명을 이야기했는데, 그래서 구체적으로 지명을 이야기한 걸로 봐서는 이건 사기극이 아니다. 왜? 구체적으로 지명을 이야기했기 때문에. 없는 나라를 이야기한 게 아니라 있는 지명을 이야기했기 때문에 희대의 사기극은 아닌데, 어떤 편지의 대상자가 있는데,

그런데 나그네라는 말을 함으로 말미암아 살기는 여기에 살되 하늘나라에 소속된 사람에게 편지하노니, 라고 이렇게 돼버리면 이 편지를 대하는 사람들 가운데, 천국 갈사람 같으면 기뻐하겠고, 만약에 천국을 못 갈사람 같으면, 도저히 갈 수 없는 사람 같으면 이 베드로전서의 내용은 희대의 사기극에 지나지 않는다 이 말입니다. 제가 하는 이야기는.

그렇다면 이 베드로전서의 편지의 내용가운데서, 이 세상일에 대해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자, 하나님 앞에 도움을 얻고자 하는 사람한테는 이 베드로전서가 하등 소용이 없는 편지가 되는 겁니다. 거부감을 유발할 수밖에 없어요. 특히 여기 2절에 보게 되면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라고 되어 있죠.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택하심을 입었다고 했으니까 이거는 피동성입니다. 본인이 본인을 택하지 않았다 이 말이죠. 근데 인간은, 만약에 천국이 있다면 본인이 본인을 선택해서라도 가고 싶어요. 그렇다면 이 베드로전서는 그 사람들한테는 희대의 사기편지가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 강의하는 자나 강의를 듣는 사람이 출발을 어디서부터 해야 되느냐 하면, “여러분 택함 받았죠?”라는 출발부터 해서는 안 되고, “자, 이 베드로전서가 왜 사기극인지 한번 조사해봅시다.”라고 이렇게 시작을 해야 된다 이 말이죠. 왜냐하면 편지를 듣는다고 해서 다 천국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럼 천국 갈 사람을 해놓고, 좋은 고기 나쁜 고기 가려내는 것처럼, 천국 갈 사람이 있다고 치고, 못 갈 사람이 고기라면 한 마리, 두 마리.. 빼내는 식이에요. 제외시키는 방법을 사용하자 이 말입니다. 제외시키는 방법. 거기에 이 베드로전서의 편지가 적절합니다. 하나 둘 빼내는 데에는. 반대로 뭐, “사람이라면 듣고 억지로라도 믿고 교회 나오세요.”라고 하면서 끌어 모으려고 하면, 이것은 나그네를 위해서 준 편지라는 취지가, 이게 없어져버려요. “인간이냐? 그렇다면 다 납득이 된다.”이래 되어 버린다니까요.

이것이 베드로전서만 그렇겠어요. 모든 성경이 다 그렇죠. 사도바울의 편지를 볼 때 성령 받지 아니하면 못 알아듣는다 이 말이죠. 그런데 천국가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사도바울의 편지를 인용하는지. 만약에 우리가 그들 입장이라면 사도바울의 편지나 베드로의 편지는 이거는 사기입니다.

자, 사기가 뭐냐 하면 사기라는 것은 누굴 교묘히 속이는 것을 사기라고 하잖아요. 그럼 사기가 아닌 게 뭐냐 하면 인간이 뭘 행하게 되면 그 결과가 제공되는 것이 사기가 아니에요. 인간이 뭘 행하게 되면 제공되는 것. “이거 가져보세요.”라고 하면 “예. 가질게요.”라는 행함. “이걸 갖겠습니다.”하고 손을 내밀어 이걸 갖게 되면, 이건 내 것이 되었다는 결과를 낳았을 때, 그건 사기가 아니에요. “가져보세요.”라고 해서 손을 내밀었는데, “안줘.”라고 하면 이거는 사기죠. 그렇죠.

그렇다면 하늘나라가 “이거 드립니다. 이거 받으세요.”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성질의 것이냐 이 말이죠. “여러분! 하늘나라 다 갖고 싶죠? 예, 하늘나라 드리겠습니다. 하늘나라 소식을 전할 테니, 베드로가 베드로전서 편지를 써서 하늘나라를 드릴 테니까 받을 사람은 다 받으시면 다 천국 갑니다.” 이렇게 돼버리면, 받는다는 행함만 제공된다면 누구나 하늘에 간직한 나라에 다 갈 수가 있잖아요. 그렇죠. 그러면 이 베드로의 편지는 고맙죠. 사기가 아니라 고맙다 이 말이죠.

그런데 그 베드로 편지의 내용이 그게 아니고, “이거는 인간이 달라고 해서 받을 수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라고 이래 나온다면 천국가려고 만반의 열심을 다한 사람한테는, 만약에 그런 내용의 편지를 베드로전서라는 이름을 안 밝히고, “여기에 이런 내용의 편지가 있는데 한번 보니까 어떠냐?”라고 물어본다면, “이거는 완전히 이단이네. 이거는 사기네.” 이렇게 나온다 이 말이죠.

어떻게 인간이 수용을 한다든지 받는다든지 뭐 그런 것도 없이, 왜 인간이 어떤 태도를 취하기 전에, 인간이 뭘 하기 전에 이미 구원이 결정이 됐다는, 그게 어떻게 납득이 될 이야기냐? 뭐 그런 게 다 있어? 그거 이단 아니야? 그거 이단이네! 이래 된다 이 말이죠. 제 말이 지금 어려운가, 어려워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어느 교회에 갔더니만 “택하지 않은 사람들은 나가세요.”라고 하는데, 우리는 그게 이단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그렇지 않고 “예, 잘 나오셨습니다. 교회 나오는 행위도 주께서 알아주시고 기도소리를 무시하지 아니하시고 여러분이 예배 참석하시는 그 성의도 다 알아주셔서, 하나님은 여러분을 어여쁘게 여겨서 다 사랑하시고 구원하십니다.” 이러면 우리는 그 교회에 나간 보람을 갖잖아요. 보람을. 여러분, 보람이라는 게 뭐예요? 자기가 수고한 그 대가를 누릴 때 그게 보람이잖아요. 보람을 갖잖아요. “내가 뭘 해도 내가 기대한 것은 제공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면 그건 보람을 갖는 것이 아니고 기분이 되게 나쁜 거죠.

그러면 그런 목사한테 뭐라고 합니까? “당신 사기꾼이지? 이단이지?”라고, 이렇게 화가 나서 이야기한다 이 말이죠. 제 말은 그 사기꾼이 베드로다 이 말입니다. 그 사기꾼이 베드로다 이 말이에요. 행함도 없이 구원받는다는 이 말 자체가, 이게 교회가 하는 모든 것을 개무시 하는 것밖에 안 돼요. 교회에 왔는데, “여기에 택함 받지 않은 사람들은 다 나가시기 바랍니다.” 이러면 교회 되겠어요? 교회 운영이 되겠어요? 이 형광등 전기세라도 나오겠습니까? 안 나오잖아요.

교회에 사람이 없으면 운영이 안 되고 교회 문닫아버리면, 교회 문닫아버리면 사람들의 그 다음 생각이 뭐냐 하면 “교회가 문 닫으면 무슨 수로 천국 갑니까?” 이래 나오죠. “교회 문 닫아도 천국 갑니다.”라고 한다면 그건 사기꾼이에요. 이건 이단이죠. 누구의 안목으로 보기에는? 이 세상에서 나그네가 아닌 사람들이 보기에는. 나그네가 아닌 사람이 보기에는 이미 그 사람은 사기꾼이고 이단이라는 말이죠.

여러분! 나그네라는 말이 뭡니까? 스스로 나그네 되고 싶은 사람은, 뭐, 사업이 망해서 피해 다니는 사람이면 몰라도, 스스로 나그네 되고 싶은 사람은 없어요. 어디 정착하고 싶어요. 그런데 나는 경기도 서울... 어디에 있든지 나그네라는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 “이미 하나님께서 나그네로 확정지어줬기에 그 운명을 내가 거부할 수 없습니다.”라는 그런 사람에게만 나그네라는 것이, 이게 합치가 되지 않습니까? 그렇죠? 아닌가?

나그네라는 말은 머물 곳이 없다는 뜻이에요. 본도, 갑바도기아, 갈라디아, 아시아, 비두니아, 이곳이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뜻이거든요. 그런데도 남들이 보기에는 그곳에 있어요. 본인이 본도 갈라디아, 강원도 경상북도 그곳에 있는데, 나는 나그네라고 하는 이 말은, 지금 자기 집에서 45년 째 살고 있는데 나그네라는 거예요. 붙박이처럼 박혀 살면서, 온 동네 구박질 다 하면서. 하도 오래 살다보니 자동적으로 그 다음 순번으로 이장이 되었어. 그래놓고 자기는 나그네래.

그 말은 뭐냐 하면, 내가 여기서 살았기 때문에 나그네가 아니라, 살았기 때문에 분명히 나는 본토박이인데, 주께서 내가 살았던 그런 것은 인정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나를 이 땅에서 떠날 사람으로 규정했습니다. 그게 나그네잖아요. 그게. 자기는 이 땅에 박혀 사는데, 자기가 하는 모든 행동의 결과가 그 지방에 박혀 사는 결과를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곳의 사람이 아니다. 그러면 너를 너 되게 한 그 분이 누구야? 이렇게 묻게 되겠죠.

니가 지금의 너를 안 만들었다면, 니가 지금의 니가 되는데 아무런 책임이 없다면, 그러면 누구야? 오늘날 너를 이렇게 만든 게 누구야? 거기에 대해서 지금 베드로가 베드로전서를 통해서 소개를 하고 있는 겁니다. 소개하는 거예요.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베드로전서는 희대의 사기극입니다. 이거는 인간이 시도해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결과를 차단시킵니다. 베드로와 그 일당은 사기집단이에요. 가능성을 다 배제해버리니까. 인간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은 다 배제해버려요. 이단이든 사기든 뭐 같은 말이니까 어떻게 말해도 상관없어요.

제가 사기라고 하는 것을 이렇게 극구 강조하는 이유는요. 베드로전서를 알아듣고 이해한다는 것은, 이미 우리의 모든 태도가 시작부터 끝까지, 이미 우리는 다 알고 있는 입장에서 나오는 태도가 되어야 된다는 뜻입니다. 자, 기존의 흔하고 흔한 교회의 교인이 한명 있다고 합시다. 흔하고 흔한 교회에 다녀요. 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합니다. 행동을 하게 되면 그 사람은 이런 행동을 함으로써 미지의 무슨, 지금까지 없었던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은근히 기대를 하는데 분명치가 않아요. 지금 하는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자기는 이간이기 때문에, 신이 아니기 때문에 모른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거기에 비해서 베드로전서는 이미 시작과 끝을, 성도라면, 나그네라면 다 알고 있다는 겁니다. 다 알고 있는 그게 뭐냐 하면 2절에 나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피 뿌림으로 시작해서 피 뿌림으로 끝난다. 나그네는 피 뿌림에 합치되는 태도와 경향성과 행위를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나는 이렇게 했더니만 나는 이렇게 복 받았다.”가 나오는 게 아니에요. “십일조 했더니만 복 받았다.” 이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피를 위해서 헌금하게 되었고, 그 헌금의 결과가 피 뿌림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렇게 나와요. 모든 인간의 행동에 피 뿌림이 제거되어 버리면 남는 것은 뭐냐, “나는 이런 행동을 하기 전에는 그런 결과가 안 나올 건데, 이런 행동을 함으로써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된다.”라는 쪽으로 나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중보기도 아닙니까? ‘내가 기도를 안 하면 이런 결과가 안 나올 건데, 빡세게 기도를 하게 되면 바로 이런 결과가 나올 거야.’라고 생각할 때 그 사람이 기도하는 태도, 기도하는 경향, 기도하는 행동의 취지, 그것은 자기가 원하는 어떤 결과를 은근히 바라면서 저런 것들이 나오는 거예요. 자기의 행동이죠. 나는 이런 행동을 해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나 지금 살아있어서 살아있는 자답게 행동하고 있다.’를 만방으로 보여주는 겁니다.

그런데 베드로전서는 뭐냐 하면 피 뿌림부터 시작해요. 피 뿌림이라는 것이 뭐냐 하면 살아있는 게 아니에요. 피 뿌림이라는 것은 이 땅을 다녀가신 예수님이나 너나 둘 다 이 땅에서는 죽은 자다. 이 뜻이에요. 피 뿌림이라는 게. 피라는 것은 죽지 않고 생기지 않는 법이잖아요. 피 뿌림을 입었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사람들에게 밉상 받아서 죽었던 그 피. 거기서 생산된 그 피를 누구한테 뿌린다? 어떤 자기 사람한테 뿌리게 되면, 예수님이 이 땅의 사람이 아닌 것처럼, 죽은 자인 것처럼, 그 사람도 살았다는 이름은 있으나 사실은 이 땅에서 예수님처럼 죽은 자처럼 취급을 받는 것입니다.

따라서 거기에 합당한 그 내용을 뿜어낼 수 있는 태도를 보일 수 있느냐 하는 겁니다. 그 태도를. “이미 죽은 자입니다.”라는 그 태도를 보일 수 있느냐 하는 겁니다. 그게 피 뿌림이에요. 어디 뭐 계란프라이에 후춧가루 뿌려서 아이고 맛있다고 하는, 요리에서 뿌리는 그런 뿌림이 아니에요. 인간 자체가 완전히 달라지고, 달라진 그 인간의 태도나 경향성이나 취지나 소망 같은 게 다 달라지는 거예요. 그게 피 뿌림이에요.

자, 피 뿌림하고 고춧가루 뿌리는 차이는 뭐냐, 고춧가루는 그 뿌림이, 짜장면 먹을 때 고춧가루 치는 것은, 콩나물국에 고춧가루 치는 것은, 이거 먹고 살라는 뜻이거든요. “살아있는 자야! 이거 먹고 더 튼튼하게 살아라!” 근데 피 뿌림은 “니가 산자 행세를 하면 안 돼! 니는 이 땅에서 이미 죽은 자처럼 살아야 돼!”라고 해서 피 소스를 뿌리는 거예요.

죄라는 것은 뭐냐 하면 살고자 하는 것이 다 죄입니다. 아무리 경건하게 살고 거룩하게 살아도, 그렇게 해서 더 살아보겠다고 하는 노림수를 갖고 있으면 그건 죄가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피 뿌림과의 태도가 정반대의 태도가 되기 때문에. 정반대기 때문에. 제가 아까 강의하면서 베드로전서가 이 시대의 사기극이라고 했죠. 안 믿는 사람에게는, 성령 안 받은 사람에게는.

그리고 베드로전서는 사람들을 끌어 모으기 위함이 아니라, 가짜는 하나 둘 빼내기 위해서 주신 편지에요. 이게 사기극으로 드러난 사람은, 사실은 천국 못 간다는 사람이라고 빼 낸 거예요. 그런 이야기를 했잖아요. 근데 이야기가 좀 진전됐잖아요. 우리는 산자가 아니라 이미 죽은 자라는 것을 확인시킨다고 할 때, 이게 만약 교회 같으면요, 저쪽 뒤쪽부터 벌써 다 나가기 시작합니다. 우르르 다 나가요. 엄마 같으면 그냥 안 나가요. 딸보고 “야야 나가자! 나가자! 이상한 소리한다.” 우리들이 알았던, 우리들이 기대 걸었던, 자기의 행함으로 자기가 구원받겠다고 기대해서 교회 왔던 것하고는 안 맞으니까, 이상한 교회니까 나가자! 이래 할 거고.

그럼 장로는 나가는가? 장로는 안 나가요. 왜냐하면 장로는 부동산 소유자이기 때문에 장로는 안 나갑니다. 안 나가고 목사보고 나가라고 해요. 자기 가게니까. 자기 업소거든요. 업소의 조폭 같은데 왜 나가요. 다른 사람보고 나가라고 해요. 부동산 구입했다고. 그 교회에 돈 별로 안 낸 사람은 우르르 나가고. 중간쯤 남아있는 사람은 애매하게 목돈 낸 것도 아니고 장기적금으로 십일조 낸 것 밖에 안 되니까, 이런 사람은 발을 뺄까? 말까? 설교자 바꾸면 계속 있을 요량이죠. 어쨌든 간에 나가게 되면 다 나가는, 부동산 소유자 빼놓고 다 나갈 이야기를 하고 있다니까요. 베드로가. 베드로전서가 그런 거예요.

2절에 봅시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미리 아셨다 이 말입니다. 미리 아셨다. ‘미리 아셨다’는 것을 요즘 제가 강의하면서 주로 써먹는 것이 뭐냐 하면 ‘응시’라는 것입니다. 미리 보는 거예요. 우리 쪽은 못 보는데 주님 쪽은 보고 있는 거예요. 그냥 보고 있는 것이 아니에요. 구원하기 위해서 보고 있는 거예요. 구원하기 위해서. 구원하기 위해서 보시는데, 그 인간을 구원하는 데는 그 인간의 행함이 아무소용이 없어요.

뭐가 필요 하냐, 예수님 자신의 피 뿌림으로만 종결돼요. 시작도 피 뿌림이고, 제가 시작과 끝을 안다고 했죠. 시작도 피 뿌림이고 끝도 뭡니까? 피 뿌림이에요. 처음에 예수 믿을 때는 피 뿌렸으니까 그 다음부터 예수 믿었으니까 십일조 하자. 십일조로 끝나는 것이 아니에요. 끝까지 피 뿌림이라니까요. 시작도 피 뿌림이고 끝도 피 뿌림이라면 중간은 뭐가 되겠습니까? 피 뿌림이죠. 중간도. 순간순간 피 뿌림이에요. 십자가의 공로입니다. 십자가의 공로만 계속 나오는 거예요.

이렇게 하면 목돈 낸 것도 아니고 애매하게 낸 사람들까지도 다 나갑니다. 이러면. 처음에 돈 몇 푼 안 낸 사람은 빨리 나가고, 안 냈으니까 미련 없이 나가고. 한 5년 다녀서 목돈이 들어갔다 싶어서 그동안 머뭇거렸는데, 이 대목하게 되면 다 나가요.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해서 택하심을 얻었다는 이 말은, 그 사람 속에 무엇이 스며들어간다? 예수의 피가 스며들어가는 거예요. 따라서 예수님의 피가 스며들지 않으면 그 사람은 구원받은 자가 아니고, 천국 갈 수 없고, 이 땅의 사람이지 나그네가 아닙니다. 나그네 아니에요.

자, 그 다음 문제, 예수님의 태도라고 했는데, 제가 방금 태도라는 말을 했죠. 제가 태도라는 말을 쓰는 이유가 있어요. 이 십자가복음에 대해서 안다는 사람이 하도 많아요. 하도 많아가지고 골라내기가 참 곤란해요. 하도 자기가 복음을 안다고 해서. 골라내야 되는데. 그때는 어떻게 아느냐 하면 이 태도를 통해서 알 수가 있어요. 태도. 태도가 뭐냐 하면 아까 뭐라고 했습니까?

두 가지를 이야기했죠. ①번, 하나는 무슨 태도? 내 행동에 어떤 결과를 기대하게 하는 이런 태도가 있어요. 은근히 기다리죠. ②번, 두 번째는 뭐냐 하면 그 태도는 피 뿌림으로 인해 피 뿌림만 드러내는 태도에요. 이 태도가 있을 게 아니겠습니까? 첫 번째 것 이거 가짜거든요. 이거 나가야 돼요. 이런 태도는. ‘예수님 피 믿었으니까 앞으로 우리 가정이 잘 될 것이다.’라는 이런 결과를 기대하는 것, 이런 것 전부 다 가짜입니다. 이 사람은 예수의 피 뿌림과 크림소스 뿌린 것 하고 구분이 안 돼요.

피 뿌림이라는 것은 자기 죽음을 이야기해야 되는데, 크림소스는 아무리 뿌려봐야 자기는 생생하게 살아 있잖아요. “아이고 맛있다!”이래된다 이 말이죠. 피가 맛있는 겁니까? 아니잖아요. 같이 죽었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같이 죽었다는 확정된 증거잖아요. 그런데 크림소스나 짜장소스 같은 경우에는 이거 먹고 내가 더 신나게, 이만큼 잘난 인간이라는 것을 유별나게 드러내기 위해서 예수님이니, 십자가니, 그런 것을 자꾸 가져오는 거예요.

모든 복음에 관한 이야기를 지식으로 다 수용하는데, 본인의 태도는 본인이 갈수록 더 생생하게 살았어. 더 생생하게 살아가지고 자기가 하는 행동에 대해서 남한테 자랑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게 태도라는 거예요. 태도. 남한테 과시할 거리를 잔뜩 진열해놓는 자세. 마음자세. 그게 태도입니다.

2절을 다시 보게 되면 “성령의 거룩함”이죠. 성령의 거룩함이라고 하는 것은 성령께서 시작과 중간과 마무리까지, 성령께서는 뭐만 이렇게 내세웁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만 내세우는 것이 바로 성?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182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16,617 자유게시판 20180319b 부산강의 : [시편]8(3편)-관계 재정리 시편 최고관리자 18-03-21
16,616 자유게시판 20180319a 부산강의 : [시편]8(3편)-관계 재정리 시편 최고관리자 18-03-21
16,615 강의 환원적 해석 180320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8-03-21
16,614 강의 유튜브 강의 (226강, 227강) 거짓과 진실, 새로움과 옛것 180320 - 최고관리자 18-03-21
16,613 자유게시판 20180315b 울산강의-레위기 18장 : 하체 레위기 최고관리자 18-03-20
16,612 자유게시판 20180315a 울산강의-레위기 18장 : 하체 레위기 최고관리자 18-03-20
16,611 강의 관계 재정리 180319 시편 최고관리자 18-03-19
16,610 자유게시판 176강-신 32장 44-52절(모세의 고백)20180318-이 근호 목사 신명기 최고관리자 18-03-18
16,609 자유게시판 서울의존강의20180316b 베드로전서1장 1-7절(선입견 파괴)-이 근호 목사 베드로전서 최고관리자 18-03-18
16,608 자유게시판 서울의존강의20180316a 베드로전서1장 1-7절(선입견 파괴)-이 근호 목사 베드로전서 최고관리자 18-03-18
16,607 강의 [18 대구강의] 전도서속의 그리스도 30 - 중층결정 - 최고관리자 18-03-18
16,606 묻고답하기 430년 후 갈라디아서 최고관리자 18-03-18
16,605 자유게시판 강남-요한복음 16장 16절(기시감)180313b-이 근호 목사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8-03-17
16,604 자유게시판 강남-요한복음 16장 16절(기시감)180313a-이 근호 목사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8-03-17
열람 ➜ 강의 선입견 파괴 180316 베드로전서 최고관리자 18-03-17
16,602 강의 임플란트 180316 야고보서 최고관리자 18-03-17
16,601 강의 하체 1 180315 레위기 최고관리자 18-03-15
16,600 자유게시판 225강-YouTube강의(본향)180313-이 근호 목사 - 최고관리자 18-03-15
16,599 자유게시판 224강-YouTube강의(인생이란)180313-이 근호 목사 - 최고관리자 18-03-15
16,598 자유게시판 129강-창 32장 26-29절(이스라엘)180314-이 근호 목사 창세기 최고관리자 18-03-15
16,597 묻고답하기 안식의 깊은 욕망 - 최고관리자 18-03-15
16,596 강의 기시감 180313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8-03-13
16,595 강의 유튜브 강의 (224강, 225강) 인생이란, 본향 180313 - 최고관리자 18-03-13
16,594 자유게시판 279강-갈 3장 6-9절(아브라함의 의)180311-이 근호 목사 갈라디아서 최고관리자 18-03-12
16,593 자유게시판 175강-신 32장 40-43절(심판)20180311-이 근호 목사 신명기 최고관리자 18-03-11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