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임플란트 180316강의야고보서

안양20180316a약2장5절(임플란트)-이 근호 목사

야고보서2장5절부터 하겠습니다. 야고보서2장 5절,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찌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 이 5절에서 세상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세상이라 하는 것은, 세상이라는 말을 했다는 자체가 지금 주님께서 세상을 주시하고 있다는 뜻이지요. 세상을 주시하고 있다. 그러니 이것은 야고보서5장에도 나와 있어요. 늘 이렇게 주시한다.

또 다른 말로 하면 5장에서는 심판하신다. 심판주가 문 앞에 나와 있다. 이렇게 되어있어요. 그러면 우리가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뭐냐 하면, 같은 인간끼리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 같이 동고동락했던 그들이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가 중요한 게 아니고 위에 계신 분이 나를 어떻게 보실 것인가, 그 싸움이 벌어져요. 그 싸움이.

인간들끼리 같이 있어버리면 거기는 역사가 형성됩니다. 인간들과 인간들 사이에는 방금 뭐가 있다고 했습니까? 역사가 있지요. 역사가 어려우면 그냥 전통이라 보면 돼요. 이 말도 어려우면 그냥 관행이라 보면 됩니다. 좋은 게 좋다는 이야기죠. 하나님께서 이 인간 역사를 세상으로 볼 때는 뭐냐 하면 바로 말씀으로 보거든요. 이 전체를.

여러분들이 다 아시는 이야기를 제가 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볼 때는 여기 뭐로 보신다? 말씀으로 다른 말로 하면 계시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말씀 따라 말씀하고 우리의 역사하고 같을 수도 있잖아.’ 라고 생각을 가질 수 있겠지요. 하나님 생각이나 우리생각이나 뭐 별 차이가 없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말씀 따라 오신 분이 계세요. 예수님이 말씀 따라 오셨고 그 당시 사람들은 역사와 전통과 관행으로 뭉쳐져 있었고. 섞였다 이 말이지요. 어떤 일이 벌어졌어요? 십자가 죽음입니다.

심지어 열두 제자도 예수님을 다 버렸잖아요. 그러면 여기 열 두 제자가 예수님을 버릴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거예요. 그건 뭐냐 하면 인간은 혼자 있는 것이 아니고 역사와 전통과 관행으로 둘둘둘 도포 감듯이 감고 있었던 겁니다. 감고 있어가지고 내 행동이 어떻냐, 옳으냐, 그르냐를 역사와 전통과, “옆 사람 이웃사람한테 물어봐야지.” 요게 인간의 자연스러운 행태가 돼요. 이게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된다고요. 평소에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이럴 경우에 “어떻게 하면 되지?” 이래지. 말씀이나 주님한테 물어보는 그런 것은 별로 없지요. 다른 사람한테 어떻게 비췰까가 중요한 겁니다.

왜 그러냐 하면 다른 사람이 없으면 내가 욕을 얻어먹으니까. 이질감을 느끼면 외로워서 못사니까요. 그동안 정답게 산 것도 그들 덕분인데 내가 하나님의 말씀 덕분에 이게 헤어지면 “아휴, 나는 못 살아.” 이렇게 될 것을 벌써 그걸 상상만 해도 우리는 겁이 나는 거예요. ‘아휴, 혼자서는 못 사는데.’ 이런 거요. 손녀 같이 있을 때는 힘들지만, 또 떨어져있으면 섭섭하잖아요. 쓸쓸하잖아요.

사람이 같이 있을 때는 거기서 뭐가 형성되느냐 하면 유대감이 형성되고 그게 역사가 되고 전통이 되고 그것을 초코파이 정이라 하는 겁니다. 정. 그게 정이에요. 초코파이 선전할 때 정이라는 말을 하거든요. 인정을 이야기해요. 인정. 이 인정에 울고불고해요. 사람이 울고불고하는 이유가 하나님의 계시 때문에 복음 때문에 울고불고하지 않습니다. 인정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못돼먹은 인간을 뭐라고 하느냐 하면, 인정머리 없다고 이야기하지요. 인정머리가 없다. “너는 어떻게 사람이 뭐 인정머리가 없다.” 이리 하잖아요. 그런데 예수님이 인정머리 있었어요? 없었어요? 없었지요. 스데반 집사 있었습니까? 없었습니까? 없었지요. 사도바울은 사람들이 미쳤다고 했거든요. 그리고 선지자들 보세요.

예레미야, 에스겔, 이사야, 그 사람들 다 고난 받았습니다. 인정머리 하나도 없어요. 너무 냉정해요. 냉혹해요. 예수님 입에서 뭐가 나오느냐 하면, 아까도 우리끼리 말씀드렸지만, 롯의 처를 생각해라. 뒤돌아보면 작살난다. 너무 인정머리가 없어요. 뒤돌아보면 작살난다. 그러면 우리는 뭐로 하면 되겠습니까? 역사와 전통과 관행 이걸 아까 정이라 했지요.

인정머리하고 둘둘 감아가지고 주님이 좋기는 좋지만, 인정머리 없다는 소리를 들으면 그게 더 싫어. 그래서 ‘아이고, 뭐, 주님은 나중에 만나고 우선 사람하고 친하게 지내는 것이 이게 남는 장사다. 이게 인생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생각이 아주 강렬하지요.

그래서 그럴 때마다 주님께서는 그걸 아시겠어요? 모르시겠어요? 다 알지요. 아니까 주님께서는 그런데 대해서 다시 말해서 이 전체에 대해서 계속해서 야고보서2장5절 말씀, 계속해서 말씀을 주시고 말씀으로 모이게 하는 겁니다. 말씀으로 모인다는 말은 뭐냐 하면, 각각 우리는 괜찮은 사람이라 모인 게 아니고 우리는 아무리 말씀을 해봐야 우리는 ‘나는 내 살아온 행세 나는 안 버리겠습니다.’ 라고 아주 마음에 작심들을 하시고 모인 거예요.

그럴 때 우리가 주의 말씀을 듣게 되게 되면 우리가 그 말씀을 지키고 싶어도 지킬 수 있을까요? 못 지킬까요? 못 지킵니다. 이게 제일 중요한 거예요. 만약에 지킨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거짓말하는 거예요. 왜냐 하면 인간의 인정머리는 하루아침에 떨어져나가는 게 아니에요. 감추게 되지요.

“주여! 믿습니다.” 하고 감추면서 막상 어떤 가까운 이웃이 되든지 심지어 자식이 몸이 아프면 말씀이고 예수건 간에 화들짝 놀래가지고 “주여, 이럴 수가 있습니까?”하고 주님께 원망하고 내 자식 살려내라고 난리에요. 데모를 하고. 그 데모하는 게 새벽기도 이런 건데. 데모하고 난리도 아니지요. 본색 드러나는 거예요.

그래서 법칙이 뭐냐 하면 하나님께 말씀들을 때는 “귀 있제. 들어라.” 이 정도가 아니고 너희들을 휘저어 놓을 것이라는 겁니다. 말씀이 우리에게 들어올 때 ‘말씀하옵소서. 우리는 좋게, 곱게 듣겠나이다.’ 그건 우리 생각이고 실제로는 우리가 만만치 않아요. 만만치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 전체를 뭐라고 했던가요? 세상이지요.

세상의 특징이 있어요. 뭐냐 하면 ‘한통속’이라는 말이지요. 한통속. 그래서 우리가 이 세상 속 일부가 돼가지고 말씀을 우리가 듣는다. 안돼요. 안됩니다. 따라서 억지라도 요걸 빼내기 위해서는 난데없는 회오리바람이 말씀으로 인하여 회오리바람이 일어나도록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이걸 가지고 성경에서는 뭐라고 하는가 하면 ‘고난’이라고 해요. 고난. 자, 오늘 본문 그 뒤를 봅시다.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무슨 뜻인지는 알잖아요. 한글로 돼있으니까. 무슨 뜻인지는 알지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무슨 뜻인지는 감이 오지요? 그러니까 집안이 넉넉지는 않지만 믿음 좋다. 그런 뜻이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되고 싶습니까? 문제는 이거에요. 무슨 뜻인지는 아는데 실제로 우리가 이렇게 될까봐 겁나지 않습니까?

믿음도 좋고 넉넉하게 살고 싶고.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싶지요. 굉장히 가난한데 믿음 좋다고 해서 되게 좋아라 하는 사람 있어요? 그런 사람 있습니까? “나는 지갑에 돈이 만원밖에 없는데 믿음 있어. 그러니까 나는 행복해.” 그게 솔직히 말해서 그게 좋은 겁니까? 그게 인생의 소원이겠어요? 그게.

제발 Please! 저한테는 그런 일이 안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부자도 되고 덤으로 믿음 좋고. 이러고 싶지. 조용하게 살고 싶습니다. 그렇게 요란스러운거 저는 내 취향에 안 맞습니다. 하고 우리는 약간의 거부반응이 일어나지요. 그런데 이 본문에서는 뭐냐 하면 가난하지만, 믿음에 부요하게 하는 사람을 뭐라고 되어 있느냐 하면, 가난한 자로 그 다음에 세 자가 나와요. 가난한 자로? 택하사. 택하사! 이거 놓치면 안 되겠지요.

자, 이건 무슨 말이냐 하면 가난한 자가 천국가기 위해서 일부러 가난했다. 성립돼요? 성립 안돼요? 성립 안 되지요. 나는 부자인데 천국가기 위해서 돈을 이웃에게 다주고 일부러 가난하게 되었다. 그래서 천국 간다. 요거 말 돼요? 안 돼요? 요거 사기입니다. 절대로 그 사기에 넘어가면 안돼요. 그걸 가지고 ‘자기 의’라고 합니다.

내 구원받기 위해서 이런 헌신과 이런 낮춤까지 다했다. 교회에서는 아주 인기가 높지만 고거 사기꾼입니다. 택함에 있어서는 돈 유무와 그리고 환경 크게 일체 반영해 주지 않습니다. 조건보고 택하고, 이런 거 없습니다. 그 조건부로 택해 주는 거 없습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아까 이야기했잖아요. 이 전부가 뭐라고 했습니까? 한 통속. 자꾸 이런 말을 잊지 마세요.

세상 전부가 잘난 놈, 못난 놈 할 것 없이 전부 다 세상이라는 한 묶음. 한 통속이 되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니는 가난해서 천국가고, 이런 거 없습니다. 가난한 자들이 주의해야 돼요. 가난하기 때문에 “아이고, 천국으로 가야지.” 이건 도피지 믿음이 아닙니다. 가난한 자인데 나는 고구만 전도, 오이전도지 뭔지 하여튼 나는 가난하지만, 돈 생각은 하지 않고 전도만 합니다. 사기꾼입니다. 그래가지고 교인 수 모았다 해가지고 돌아가서 강연회 하는데 절대 속아 넘어가면 안 됩니다. 하여튼 교회에서 튀는 것 전부 다 사기로 보면 돼요. 그 배후에는 돈 내라. 돈 끌어 모으는 수작으로 연극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제는 안 속겠지요. 절대로 속으면 안돼요.

모두 한 통속이에요. 그러면 신앙도 다 이게 뭐냐, 그걸 자기 의라 합니다. 남한테 자랑거리가 있을 때, 근근히 사는 그 힘든 인생 가운데서 그래도 힘을 낼 수 있는 것은 뭐냐 하면, 남한테 의시대고 자랑거리 있다는 자기 의. 그거 하나 믿고 “에고, 참자. 참자.” 해서 살아가는데. 참자해서 참자로 살아가는 것은 그건 기쁨의 신앙이 아니에요. 억지지.

성령의 일은 억지가 아닙니다. 자연스러워야 돼요. 여기 모임도 자연스러워야 돼요. 억지로 왔다. 하면 안 되지요. 누굴 위한 억지입니까? 이리 모여가지고 성경공부하면 하나님이 복 줄줄 알고? 하나님께서 특별히 사랑하는 백성이라 알아 줄줄 알고? 그거는요, 하나의 수작이에요. 절대로 그러면 안 됩니다. 자연스럽게 흩어지고 자연스럽게 모여야 돼요. 그래야 주도권이 주님한테 있어요. 우리에게 있으면 안 됩니다. 항상 사람은 내가 있는 곳을 절대화 시킬 가능성이 굉장히 많아요.

내가 다니는 교회이기 때문에 다른 교회보다 우수하다든지 내가 이 몸에 장착되어있기 때문에 나는 남보다 더 뛰어나다든지 그러할 가능성이 악마로부터 유혹을 받을 수가 있어요. 택했다는 것은 조건을 보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모였으니까 구원해 주는 거 없습니다. 헌금, 십일조 했다고 구원해 주는 거 없습니다. 그리고 농땡이 부린다고 해서 구원해 주는 것도 아니에요. 농땡이도 자연스럽게 하세요. 뭐든지 억지로 하면 안돼요. 억지는 이상해.

억지는 분명히 뭔가 노림수가 있어요. 억지는 뭔가 노리는 게 있어요. 이것하면 우리 아들이 사업이 안 되는데 내가 열심히 헌신하면 내 업을 보고 지금도 믿음의 농땡이 부리는 아들한테 엄마의 성과급이 저쪽으로 갈 수 있다는 노림수 때문에 나라도 기도해야지. 이렇게 나오는데 이걸 흔히 중보기도라고 하는데. 그것도 엉터리입니다.

그러지 마세요. 그 자식도 사실은 엄마 말 잘 듣는다 하지만, 물어보면 세상과 한 통속입니다. 마치 내가 옛날에 한 통속인 것처럼 그 자식도 똑같이 한 통속이에요. 모두 다. 똑같습니다. 자, 지금 뭘 강조하느냐 하면, ‘택했다’ 를 강조하지요. 자, 이제부터 어렵습니다.

자, 하나님의 말씀이 가난한 자를 택했다고 하지요. 이제부터 어려워요. 말씀이 택하면 그 사람이 재산이 10억이든 20억이든 관계없이 무조건 가난한 자가 돼요. 그 사람이 5000억을 가져도 가난한 자가 돼요. 왜냐하면 그 사람이 본인의 주도권은 돈에 있는 것이 아니고 택함에 있음을 본인이 수용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집에 5000억 있는데 남한테 손님한테 자랑할 때 우리 집에 복 받아 5000억 있다. 이렇게 하는 게 아니라 “나, 주께 선택받았어. 나 믿음 생겼어. 나 너무 좋아.” 그럼 친구가 “야, 니 돈 좀 자랑해라.” “돈 자랑은 이건 구역질나서 못하겠어. 주면 주고 가져가면 가져가고. 그건 주님 거고. 중요한 것은 내가 택함 받아서 신앙인이 되었다는 것이 중요해.” 라고 누굴 증거 하겠습니까? 예수님을 증거 하지요.

사도행전1장8절에 보면, 성령이 임해야 예수님을 증거 할 수 있어요. 이번에 강남강의 할 때 제가 칠판에다가 글을 썼지요. ‘성령 받지 않고서는 구원받는 방법은 없다.’ 그걸 단선이라 해요. 단선. 선이 하나밖에 없다 했지요. 성령 받지 않고서는 구원받을 길이 없어요.

늦게 오시면 이런 혜택이 있어요. 지금까지 한 걸 다시 반복해서 합니다. 반복해도 괜찮은 이유가 먼저 오신 분이 30분 들어도 무슨 이야기했는지 못 들어요. 지금 야고보서2장5절이고요. 2장 5절 보면,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그 대목을 지금하고 있습니다. 설명을 더 하게 되면, 하나님이 세상이라고 할 때, 이 세상을 세 자로 뭐라고 했지요? 한 통속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돼요.

세상에서 뛰어난 사람 없어요. 세상은 전부 다 한 통속인데, 그 증거로 인간 몸에 뭐를 휘감겼다 했습니까? 역사와 전통과 관행이에요. 인간은 혼자 생각하고 혼자 공부하는 줄 알지요. 아닙니다. 전부 다 주변에서 체험한 것들이고 체험한 것들에 그 의미가 같이 실려 들어와요. ‘아, 이 행동은 요런 의미이다.’ ‘요런 행동은 요런 뜻으로 판단하라고 우리 엄마가 이렇게 이야기했어.’ 그러니까 사람은 혼자 사는 거 같지만, 다 주변과 소통하기 위해서 연결된 관계로 이렇게 도포 말 듯이 둘둘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성경을 본다든지 누굴 만날 때는 내 생각으로 만나는 게 아니고 익히 아는 그러한 분위기를 가지고 그걸 아우라라고 합니다. 아우라. 그 분위기를 가지고 성경 말씀이나 대인관계에 나서게 돼요. 그러면 그 쪽에서 내가 하는 행동을 통해서 저 사람은 학교는 어느 정도 나왔고, 저 사람의 집안은 어디고, 저 사람의 출신 성분은 어떻고, 파악이 가능한 이유는 바로 우리가 둘둘 말은 그 관행과 관습과 역사와 전통은 공히 저쪽도 같이 둘둘 말아 있기 때문에 공통성을 찾아낼 수 있는 연결고리가 형성되는 겁니다.

그래서 인간과 인간관계는 결속이 되지요. 결속이 되니까 세상은 뭐라고 했습니까? 전부 다 한통속이 되는 거예요. 유별나게 나는 똑똑하고 니보다 잘났다고 할 수가 없어요. 한통속인 거예요. 그러니까 이 세상에 대해서 주님께서 어떤 대행을 줬느냐 하면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했다, 했지요. 아까 했습니다. 다시 한 번 합니다.

이 세상에 대해서 외부에서 주목하시는 분이 있지요. 그러면 하나님은 이 세상에 속합니까? 속하지 않습니까? 하나님만이 한통속에 속하지 않지요.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이 땅에 보냈다면 한통속 된 예수님과의 결별이 일어나지요. 이 결별이라 하는 것은 헤어짐을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같이 있어도 의사소통이 되겠습니까? 안 되겠습니까? 전혀 되지를 않지요.

그 의사소통이 전혀 되지를 않는다는 것을 유난히도 보여주기 위해서 택했던 자가 열두 명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그들이 열 두 제자에요. 우리는 생각하기에 열 두 제자가 예수님과 인간들 사이에 중간단계로 더 성숙된 단계로 생각하시는데 그건 오해입니다. 일종의 세상의 대표자들이에요.

갈 데까지 갔는데 예수님과 그들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갭이 있었다는 것. 3년 동안 배웠고 합숙훈련 했습니다. 그러나 그 갭은 절대로 뛰어넘을 수가 없지요. 그러면 베드로는 어디로 갔는가, 세상으로 갔습니다. 누가복음 마지막에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글로브하고 한 제자, 그 사람 어디로 갔는가, 역시 세상으로 갔습니다.

이 말은 뭐냐 하면, 이 뜻은 말씀을 주게 되면 ‘우리가 이해해서 믿으면 구원을 받잖아.’ 하는 것이 성립이 안 된다는 겁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제가 처음에 했듯이 우리는 베드로든 야고보든 누구든 우리는 뭐다? 한통속이기 때문에.

한통속이라는 말을 제가 다시 한 번 설명해 드리면 인간은 자기가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결심내린 것이 아니고 세상의 지금까지 전해온 역사와 관행으로 둘둘 말아있는 거예요. 인간이면 그럴싸하게 고개 끄덕이면서 동의할 수밖에 없는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빠져나올 생각도 없어요. 빠져 나오면 외로워서 못 사니까. 푹 젖어있었던 거예요. 그 젖은 것 가지고 뭘 이해한다? 주께서 주신 말씀과 역사를 이해한다. 이건 전부 다 엉터리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상식에 의하면 이건 상식이지만, 말씀은 그냥 결과 없이 빈손으로 돌아가지는 안거든요. 그러니 말씀의 완성이 다 이루었다 하는 분이 예수님이고 예수님을 중심으로서 야고보서2장 5절을 하게 된다면 하나님께서는 뭐냐 하면, 아까 오실 때 하던 이야기입니다.

이제부터 시작합니다. 뭘 이야기했느냐 하면, 택하사 이야기했지요. 자, 택하사, 라는 말이 성립할 때 택하는 준비나 택할 수 있는 만반의 조건을 우리 인간 쪽에서 제시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그래야 택함이 돼요. 착하다고 택하고 심지어 중요한 것은 가난한 자라고 천국에 가까운 게 아니라는 사실. 가난한 자는요, 부자 되지 못해서 한 맺힌 자들이에요. 돈 보면 환장하는 자들입니다. 새벽기도 제단 엎드리는 것은 돈 달라고 하는 거예요. 시위하고 데모하는 것들이에요.

따라서 뭐냐 하면, 가난한 자의 조건을 결정은 우리가 내리는 것이 아니고 주께서 내립니다. 택하면 5000억 있어도 가난한 자에요. 왜냐하면 예수님을 증거 하기 때문에. 돈이 있는 둥 없는 둥 해요. 오천억 있어도 회사에서도 별로 신경 안 써요. 그냥 예수님만 증거 해요.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누구 것이다? 그것이 오늘 본문 5절 마지막에 나옵니다.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다는 거예요. 5절 마지막에.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아니하면, 요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야고보서가 근거를 구약의 근거를 대기 때문에 저도 구약을 제시할 수밖에 없어요.

지금부터 약간 복잡해요. 어렵지는 않아요. 약간 복잡한데, 야고보서2장5절 설명하기 위해서는 구약과 결부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구약의 특징이 있어요. 구약의 특징은 뭐냐 하면 애굽과 가나안 사이에 끼인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애굽과 가나안인데. 어제 울산강의에서 했지만, 애굽이 함 민족입니다. 가나안 민족이 함 민족이에요. 셈 민족은 이 동네에 있지 않습니다. 셈 민족은 갈대아 우르동네에요. 갈대아 우르동네에서 하란을 통해서 이렇게 세겜을 통해서 아브라함이 여기에 파견 근무하는 거예요. 일종에. 함 땅에 셈의 족속 한 사람이 파견한 거예요. 여기 들어온 거예요.

특히 브엘세바라는 남쪽에 브엘세바라는 그 동네에서 아브라함은 굉장히 자기가 낯선 동네입니다. 하나님께서 멀쩡하게 남들 다 부동산 소유하고 있는데 자기 땅이라고 하니까 무슨 의미인 줄 몰랐어요. 하나님께서는 기근을 일으킵니다. 애굽으로 내려가요. 애굽으로 내려가면 애굽에서 뭐가 기다리는가 하면 사건이 기다립니다. 그 사건은 뭐냐 하면 소유로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의 소유로서는 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사건이 기다립니다. 현재 아브라함에게 소유하고 있는 것은 아내입니다.

아내를 성상납하지요. 바로 왕에게. 그렇게 해서 생존 버틸 수 있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727건 중 14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2,402 강의 죽음 놀이 180406 레위기 최고관리자 18-04-06
2,401 강의 [18 대구강의] 전도서속의 그리스도 31 - 몰락의 가속도 출애굽기 최고관리자 18-04-04
2,400 강의 이면지 180403 - 최고관리자 18-04-03
2,399 강의 유튜브 강의 (228강, 229강). 국가의 정체, 장벽 - 최고관리자 18-04-03
2,398 강의 사무엘상 36강( 구원의 손잡이), 마태복음 98강( 시간의 중첩) 180327 - 최고관리자 18-03-27
2,397 강의 환원적 해석 180320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8-03-21
2,396 강의 유튜브 강의 (226강, 227강) 거짓과 진실, 새로움과 옛것 180320 - 최고관리자 18-03-21
2,395 강의 관계 재정리 180319 시편 최고관리자 18-03-19
2,394 강의 [18 대구강의] 전도서속의 그리스도 30 - 중층결정 - 최고관리자 18-03-18
2,393 강의 선입견 파괴 180316 베드로전서 최고관리자 18-03-17
열람 ➜ 강의 임플란트 180316 야고보서 최고관리자 18-03-17
2,391 강의 하체 1 180315 레위기 최고관리자 18-03-15
2,390 강의 기시감 180313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8-03-13
2,389 강의 유튜브 강의 (224강, 225강) 인생이란, 본향 180313 - 최고관리자 18-03-13
2,388 강의 [18 대구강의] 전도서속의 그리스도 29 - 나는 죽음이다 - 최고관리자 18-02-27
2,387 강의 죄 꽃다발 180220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8-02-20
2,386 강의 유튜브 강의 (222강, 223강), 전부와 부분 , 건너지 못할 강 180220 - 최고관리자 18-02-20
2,385 강의 사무엘상 35강( 한 사람), 마태복음 97강( 재림의 요소) 180213 - 최고관리자 18-02-13
2,384 강의 사랑과 소유 180212 시편 최고관리자 18-02-12
2,383 강의 소유권 정리 180209 빌레몬서 최고관리자 18-02-10
2,382 강의 덮친 사태 180209 야고보서 최고관리자 18-02-10
2,381 강의 [18 대구강의] 전도서속의 그리스도 28 - 경멸 사도행전 최고관리자 18-02-07
2,380 강의 지적질 180206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8-02-06
2,379 강의 유튜브 강의 (220강. 221강) 지식과 진리, 세상 달리보기 180206 - 최고관리자 18-02-06
2,378 강의 피와 몸 180202 레위기 최고관리자 18-02-02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