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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사무엘상 35강( 한 사람), 마태복음 97강( 재림의 요소) 180213강의-

한 사람(삼상 11장 1-15절) 대전- 35강 이근호 목사

2017년 2월 13일

본문말씀: 사무엘상 11:1-15

(삼상11:1) 암몬 사람 나하스가 올라와서 길르앗 야베스를 대하여 진치매 야베스 모든 사람이 나하스에게 이르되 우리와 언약하자 그리하면 우리가 너를 섬기리라

(삼상11:2) 암몬 사람 나하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 오른 눈을 다 빼야 너희와 언약하리라 내가 온 이스라엘을 이같이 모욕하리라

(삼상11:3) 야베스 장로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에게 이레 동안 말미를 주어 우리가 이스라엘 온 지역에 전령들을 보내게 하라 만일 우리를 구원할 자가 없으면 네게 나아가리라 하니라

(삼상11:4) 이에 전령들이 사울이 사는 기브아에 이르러 이 말을 백성에게 전하매 모든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울더니

(삼상11:5) 마침 사울이 밭에서 소를 몰고 오다가 이르되 백성이 무슨 일로 우느냐 하니 그들이 야베스 사람의 말을 전하니라

(삼상11:6) 사울이 이 말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매 그의 노가 크게 일어나

(삼상11:7) 한 겨리의 소를 잡아 각을 뜨고 전령들의 손으로 그것을 이스라엘 모든 지역에 두루 보내어 이르되 누구든지 나와서 사울과 사무엘을 따르지 아니하면 그의 소들도 이와 같이 하리라 하였더니 여호와의 두려움이 백성에게 임하매 그들이 한 사람 같이 나온지라

(삼상11:8) 사울이 베섹에서 그들의 수를 세어 보니 이스라엘 자손이 삼십만 명이요 유다 사람이 삼만 명이더라

(삼상11:9) 무리가 와 있는 전령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길르앗 야베스 사람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내일 해가 더울 때에 너희가 구원을 받으리라 하라 전령들이 돌아가서 야베스 사람들에게 전하매 그들이 기뻐하니라

(삼상11:10) 야베스 사람들이 이에 이르되 우리가 내일 너희에게 나아가리니 너희 생각에 좋을 대로 우리에게 다 행하라 하니라

(삼상11:11) 이튿날 사울이 백성을 삼 대로 나누고 새벽에 적진 한가운데로 들어가서 날이 더울 때까지 암몬 사람들을 치매 남은 자가 다 흩어져서 둘도 함께 한 자가 없었더라

(삼상11:12) 백성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사울이 어찌 우리를 다스리겠느냐 한 자가 누구니이까 그들을 끌어내소서 우리가 죽이겠나이다

(삼상11:13) 사울이 이르되 이 날에는 사람을 죽이지 못하리니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중에 구원을 베푸셨음이니라

(삼상11:14)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오라 우리가 길갈로 가서 나라를 새롭게 하자

(삼상11:15) 모든 백성이 길갈로 가서 거기서 여호와 앞에서 사울을 왕으로 삼고 길갈에서 여호와 앞에 화목제를 드리고 사울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거기서 크게 기뻐하니라

암몬 족속의 조상이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죠. 롯에게 딸이 둘이 있었는데, 소돔과 고모라성의 멸망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은 세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서쪽으로 지중해가 있고 북쪽으로 시리아가 있고 그 밑으로 레바논, 요르단이 있고, 그 옆으로 갈릴리 바다, 그 밑으로 요단강, 사해바다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이죠. 야베스라는 동네는 요단강 동쪽으로 있고, 그 밑에가 암몬이라는 나라가 있고, 그 밑에가 모압이라는 나라가 있고, 그 밑으로 에돔이라는 나라가 있어요.

에돔은 야곱의 형 에서의 후손들이고 모압과 암몬은, 창세기 19장에서 소돔과 고모라 멸망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 세 사람이 있는데, 아브라함 조카 롯과 롯의 두 딸입니다. 자식을 놓을 수가 없어서 아버지하고 두 딸과 관계를 해서 낳은 자식이 모압과 암몬입니다. 근데 그 모압과 암몬의 뿌리가 어디서 나왔느냐 하면, 바로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을 당한 거기서 나왔거든요. 멸망을 당했다는 것은, 멸망의 요소를 경험한 후손들은 그 속에 멸망의 요소가 내재되어 있다고 그렇게 보시면 되는 겁니다.

어떤 징후를 갖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세상을 멸망시켰다. 심판하셨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심판하셨다가 소돔과 고모라잖아요. 베드로후서 3장에 보면 옛날에는 물로 심판했지만 앞으로는 불로 심판하겠다. 하나님은 인간을 심판하셨다는 것을 바꾸게 되면 같은 뜻인데,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되죠. 하나님은 뭘 하신다?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에요. 그러면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은 심판을 극복해야 나갈 수가 있겠죠.

왜냐하면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냥 가만히 있는 하나님이 아니시고 심판을 하려고 계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과 함께 한다는 조건은 어떤 조건이냐 하면 하나님이 내세우는 심판의 조건을 극복할 수 있는 사람만 하나님의 심판을 이겨서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있겠죠. 그럼 심판하는 하나님에서 제일 중요하게 알아야 할 것은 뭐냐 하면 심판의 기준이 뭐냐는 겁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기준이 뭐냐?

보통 하나님은 자비를 베푸신다고 하는데, 자비라고 하는 것은 심판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자비를 베푸는 거예요. 심판 할 수 있는 분이 자비를 베풀기 때문에, 일단은 심판을 받아라 이 말입니다. 일단 심판을 받고, 심판을 처음부터 안 받겠다고 하지 말란 말이죠. 모든 인간은 죽어야 된다. 이게 심판의 하나님의 천명입니다. “선악과 따먹었으니까 죽어야 돼.” 죽어야 되는 인간이 살라고 하지 말고, 자꾸 살라고 교회 나오지 말고, 일단 죽자. 매 맞자. 일단 매 맞고 그 다음 이야기는 그 다음이야기고 일찍 좀 맞자. 이런 식입니다.

모든 인간은 다 죽이십니다. 그 죽음 앞에서 인간들 입에서는 뭐, 이제 두 돌 되고 갓난아기 죽인다고, 참 걔들이 무슨 죄가 있어 죽이냐고 상당히 측은해하잖아요. 하나님은 그게 아니에요. 일단 맞자. 일단 죽자. 누구 자식이고 누구자식이고 간에, 뭐 그런 것은 아예 고려대상도 안 된다. 일단 죽고 난 뒤에, 모든 인간이 해골이 되고 난 뒤에 그 다음의 조치가 자비의 조건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자비의 조건 안에 뭐가 들어 있느냐 하면 일단 맞자가, 이게 포함이 되어 있어요. “때려주옵소서. 죽여주옵소서. 내가 저 강아지 사랑하는데 죽여주옵소서. 일단 강아지 죽여주시고, 나 죽여주시고, 그 다음의 처분은 하나님의 자비에 맡깁니다.” 이게 바로 자비를 믿는 사람, 구원되는 사람의 특징이죠. 우리가 자비를 요구할 자격은 없어요. 자격 없음, 구원받을 자격 없음을 인정해야 됩니다.

근데 인간들은 교회 나오면서 반대로 생각해요. 일단 살자. 일단 바쁘게 살고 나중에 짬나면 교회 갈게. 일단 살고, 나이가 들어서 퇴직하고 별 할 일이 없을 때 그때 교회 갈게요. 지금은 나라 일하고 자식 키운다고 바빠 가지고 지금은 주님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습니다. 시어머니 모셔야 되지, 순서가 하나님은 0순위에서 밀리죠. 일단 살고, 딸은 시집보내야 되니까 시집은 보내고 그 다음에 이야기합시다.

이렇게 하는데, 주님께서는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안 그래요. 그때는 모든 인간이 잠을 자다가도 다 작살나죠. 노아 홍수가 날 때 잠자고 있었던 사람도 있었고 일하고 있었던 사람이 있었더라도, 시집가고 장가가는 사람이 있더라도 홍수해일이 넘치니까 다 싹 쓸어가죠. 완전히 포항 흥해에요. 지진이 일어나서 흥해 사람들 살던 집들이 다 무너졌잖아요. 화장실에 있었더라도 지진이 일어났을 건데요.

그래서 이 암몬, 모압이 있다는 것은 무엇의 징후냐, 하나님은 심판의 하나님이시다. 소돔과 고모라는 끝나지 않았다. 그 원칙은 지속된다. 이걸 증거로 모압과 암몬을 이야기한 겁니다. 에돔도 마찬가지에요. 에돔은 조상이 에서라고 했죠. 그 에서하고 라이벌 관계가 누구였냐 하면 바로 야곱이었습니다. 야곱. 야곱은 복의 근원이라고,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복을 받았습니다. 근데 심판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한쪽이 복을 받고 한쪽은 복을 안 받고, 이게 아니라 한쪽이 복이 오게 되면 한쪽은 심판, 저주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왜 그러냐 하면 미술에서 스크래치 기법으로 위에 있는 색깔을 벗겨내면 아래에 깔려있는 시커먼 색깔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처럼. 자비라고 하는 것은, 일단은 심판 위에 자비이기 때문에, 자비를 한쪽에 줬다는 말은, 너가 자비를 받을 수 있어서 준다는 말이 아니고, 하나님의 속성은 심판도 있지만 자비도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한쪽을 편애해서 자비를 줬기 때문에 다른 쪽은 남아있는 자비, 남아있는 구원, 남아있는 복은 없고 필히 자비와 축복과 구원의 반대속성이 드러나야 돼요. 저주와 심판이 드러나야 돼요.

그러니까 세상이라는 것은 인간들이 요구한대로 세상이 되는 것이 아니고, 그냥 하나님의 자기 속성 축복과 저주, 양과 염소, 가라지와 알곡, 그 구분된 사실을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그림판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림판. 도화지. 주께서 친히 그림 그려나가는, 또는 연출하는 무대라고 이래 보시면 우리가 마음이 편합니다. 에돔이 같이 있다는 말은 야곱이 약속에 땅에 들어가서 야곱답지 못할 때는 누구와 한통속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죠? 에돔과 한통속이 될 가능성이 있죠.

복의 조건을 갖출 때에 복이 있는데, 그 조건에서 탈락이 되면, 조건이 사라지고 없어지면 이스라엘은 언약의 조건이 없는 이상, 사랑의 조건을 거부하는 이상은 그만 에돔과 마찬가지가 돼버리는 거예요. 원래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이 그냥 말로 추상적으로 오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 이스라엘한테 올 때는 반드시 덮개로 와요. 덮어주는 것. 덮어주는 거예요. 죄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죄는 그대로 있되 덮어지는 거예요.

외손녀가 오줌 누고 똥 누고 할 때 그냥 기저귀가 덮어주는 거죠. 냄새 좀 난다 싶으면 쌌어요. 덮어주는 거예요. 근데 파스 새로 붙이듯이 더러운 기저귀는 벗어버리고 샤워기로 깨끗이 씻겨주고 다시 새로운 기저귀로 덮어주고 이렇게 하죠. 애는 아니지만 누가 옆에서 그렇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화장실 가기 싫은데. 조금만 기다리세요. 한 20년만 기다리면 요양병원에서 그렇게 해주겠죠.

자비가 덮개라는 말은 덮개의 요소가 외부에서 왔다는 말입니다. 내부에서 올라올 것은 죄밖에 없고 자비를 주시는 분은 그 죄를 덮어주는 거예요. 죄를 덮어주는 것이니까 죄가 없는 곳에는 덮개가 의미가 없죠. 덮개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서는 계속 죄를 살리고 살리고, 계속 죄를 살려내야 되는 겁니다.

교회에서 말씀을 줄 때, 그 말씀 하나하나가 내 맘에 들어올 때마다 내가 미처 생각지도 못한 그 죄가 계속해서 나오게 하시는 이 절차가 자비의 절차 안에 전제로 이미 세팅이 되어 있어요. 포함이 되어 있어요. 죄를 지적할 때 고맙다고 해야 돼요. 그 죄를 지적했다고 해서 그 죄로 인하여 저주받거나 징계 받거나 심판받지 않습니다. 그 죄로 인하여. 히브리서 12장에 나오는 말씀에서 아버지를 모르기 때문에 징계 받지 나쁜 짓을 모르기 때문에 징계 받는 것이 아니에요.

나쁜 짓 했다고 깜짝 놀라는 것은 본인이에요. 나쁜 짓해서 깜짝 놀란다는 것은, 그 사람이 관심을 덮개에 두어야 하는데, 자기의 반듯한 행동에 둬버리니까 깜짝깜짝 놀라는 거예요. 내가 이런 나쁜 짓을! 이렇게 하면 하나님은 같잖아서 웃죠. “원래 그래. 니 왜 그래? 여기 와서 왜 딴소리를 해? 얘가 이상하네. 니 원래 그렇다니까. 원래. 딴사람 이야기하듯이 이야기하면 곤란하지.”

만약에 어떤 남자가 군에 입대를 했다. 군에 입대하고 난 뒤에 첫날, 둘째날에는요, 여기가 군대인지 집인지 분간을 못해요. 막 꿈을 꾸는데 여전히 집이라. 깨보면 낯선 곳에 와있다 이 말이죠. 낯선 곳에 와있죠. 훈련받으면서 이상해요. ‘왜 내가 훈련을 받지? 내가 이런 것 할 사람이 아닌데.’ “뒷동산에 올라가면 우리 동네 보일까” 거기에 가고 싶어서. 여러분, 돌아갈 곳이 없어요. 죽은 인간은 돌아갈 곳이 없어요.

우리가 가는 본향은 우리의 본향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고향이에요.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가본적도 없는 곳에 가요. 가본적도 없는 곳에. 그 집으로 가자고 하는데, 그 집은 우리 집이 아니고 주님이 가신 집이고 나와 상관이 없는 집이에요. 나하고 상관없는 집이기 때문에 인간성이 달라져야 해요. 익히 아는 곳에 가는 것이 아니고. 엄마가 보고플 때 해도, 백날 보고파도 그 엄마 지금 지옥에 가 있는데, 그럼 같이 지옥갈래요?

엄마가 보고픈 게 아니고,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새롭게 관계를 엮어주신 주님의 고향에 가는 거예요. “가자! 우리 집으로!”이래된다 말이죠. 애굽으로 돌아가면 안 돼요. 광야의 실패는 바로 애굽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어요. 그들이 아는 고향의 전부는 애굽이었습니다. 그들의 몸을 둘러싼 현실감각은 모두 애굽에서 나온 수입한 감각이었어요. 출생이 그 출생이었습니다. 행동하는 것, 밥 먹는 것, 모든 풍습이라는 것, 그래서 광야에서 율법이라는 것은 애굽의 풍습과는 달라야 된다. 뭔가 달라야 된다. 다른 인간으로 생각을 달리해야 된다는 거예요.

“바르게 삽시다.” “아니야. 아니야. 그건 육이야.” 바르게 사는 것이 아니에요. “예수 믿어서 바르게 살아야지.” “아니야. 그거 아니라니까.” 주님의 덮개에 관심이 있다가 갑자기 나는 바르게 사는 인간으로 되돌아오면 안 돼요. 그건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하고 똑같은 겁니다. “예수 믿었으면 이정도로는 바르게 살아야지.” “아니야. 아니야. NO. NO.” 그건 아니에요. 예수 믿고 바르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이야기를 몇 십 년을 해야 되는지 모릅니다. 아무리해도 못 알아들어요. 아무리해도. 육이라는 평면을 뚫고 나와야 된다고요. 육이라는 평면을. 뭐, 좀 성경알고 복음 좀 아는 사람이라고 해서 들이대보면 전부다 다시 육의 평면을 사수하고 있어요. “이러시면 아니 되옵니다.” 뭘 이러시면 아니 되는데? 상감마마! 뭐 이런 것. 관심사가 본인한테 있습니까? 덮개한테 있습니까? 이걸 묻는 거거든요.

예수님을 이용해서 못난 내가 훌륭한 나로 달라진다? 그런 것은 법당해서 하라고 해요. 법당에서. 절에 가서 하라고요. 절에 가서. 도 닦는 그런 거. 공자 맹자연구해서 하면 돼요. 공자 맹자, 노자 이런 거요. 그건 도올 김용옥한테 가서 다 배우면 돼요. 김도올한테. 도올선생한테 가서 배우면 돼요. 법륜스님 있죠? 법륜한테 가서 배우면 돼요. 혜민스님 있잖아요. 머리 깎는 사람 많습니다. 그런 사람한테 하면 돼요. 인간은 어떻게 해야 인간답게 사느냐? 그런 것 다 배워요.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범죄자였습니다. 왜 이걸 기본으로 몰라요? 제가 지난 주일에 이야기를 했거든요. 주님께서는 신이 되셔서 이 땅에 범죄사건을 일으킨 거예요. 전부 다 범죄자 안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그 마당에 자진해서 범죄자가 된 겁니다. 사람들의 판, 이러면 되고 이러면 안 된다는 그 지평선에서 완전히 충돌되는 분이 예수그리스도에요.

자, 사무엘상 11장에서 여기 야베스라는 이 동네 사람들이, 야베스가 사실은 요단강 동쪽에 있으면 안 돼요. 요단강 안쪽으로 와야죠. 뭐 여기가 좋사오니, 라고 해서 바깥으로 나간 거예요. 목축지가 되니까. 이게 베냐민지파거든요. 베냐민 지파가 사사기(20장)에서 아주 작살이 났습니다. 그래서 밀려가지고 이곳까지 온 모양인데, 베냐민지파가 나쁜 짓을 했거든요. 레위인의 첩을 강간해서 죽여 버렸어요. 그러니까 그 시체를 열두 토막을 내서 열두지파한테 보냈을 때, 우리 이스라엘이 범죄한 지파를 싸고돌아야 하느냐, 우리 이스라엘이 어떤 이스라엘인데, 이거는 율법에 어긋나니까 다함께 모여서 베냐민 지파에게 징벌을 주자고 했을 때, 이 야베스는 우리는 빠진다고 한 거예요.

빠졌다고 화나가지고, 니는 우리 편 아니라 해서 베냐민 지파 조지고 야베스 조지고. 그래서 인구수가 얼마 되지도 않아요. 야베스가 이스라엘 사람인데 동네가 요단강 바깥에 사는 사람들이에요. 여기에 사니까 옆에 누가 있어요. 암몬족속이 쳐들어온 거예요. 그러니까 다급해서 이스라엘에게 통보를 한 거예요. “같은 형제들이여 살려주세요.”라고 한 겁니다. 이 점에서 우리가 분명히 알 것은 사람은 적이 없으면 나를 몰라요. 인간은 항상 자기 자신을 점잖은 사람으로 포장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항상 자기 속에서 나쁜 것은 버려버리고 좋은 것만 추려서, 나에게 좋은 기억만 있는, 좋은 기억의 덩어리에서 자기 자신을 조립하는 거예요. 좋은 거만 모아서 조립하니까, 자기가 좋은 사람일 수밖에 없죠. 좋은 사람으로 있으니까 남들에게 비난이 오게 되면 거기서 뭐가 됩니까? 자기장점을 총동원해서 극구 자기를 사수하고 방어하죠. 수비에 나가죠. 그러면 적에 대해서 수비가 강화될수록 누가 더 우수한 존재가 됩니까? 내가 더 우수한 존재가 되죠.

만약에 그 적이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됩니까? 예수님이고 하나님이고 무조건 공격당하면 인간은 반발하게 되어 있어요. 그 사람이 바로 얍복 강가의 야곱이었어요. 얍복강의 지명이 새로 생겨요. 브니엘이라고. 브니엘. 하나님과 대면했는데 내 생명이 보존되었다. 하나님과 대면했는데 내 생명이 보존되었다는 말이 뭐냐 하면 내가 살았다는 개념을 옛날에 살았다는 개념하고, 하나님 만나고 난 뒤에 살았다는 개념이 완전히 확연히 달라졌다는 것을 증언하는 겁니다. 완전히 다르다는 거예요.

옛날에 살았다고 하는 것은 거울보고 신체가 왔다 갔다 하는 그걸 보고 살아있다고 했죠. 그런데 거울만 봤지 하나님 앞에 나를 비춰 본적이 없죠. 왜냐하면 하나님을 만나본적이 없으니까. 그런데 다가오신 하나님이 뭐 화친의 손으로 좋게 오시는 것이 아니고, 내 것을 빼앗아가겠다고, 완전히 내 것을 털어내겠다고 오실 때 강력하게 저지하게 되어 있죠.

만약에 내가 가장 귀하게 여기는 딸에게 교통사고를 일으켰다. 그러면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겠습니까? 원망스런 하나님이겠습니까? 원망스럽죠. “이렇게 불안해서 저는 더 이상 못삽니다.” 뭐 다른 신을 믿든지 다른 종교로 가야죠. 내가 이 종교를 믿어서는 교통사고 일어났으니까 앞으로는 더 큰 사고가 일어나겠다. 이래가지고서는 불안 불안해서 못 살겠다는 겁니다. 복음 전하면 다 튀어버리는 이유가 뭡니까? 불안한 거예요.

내가 알고 있는 예수,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이 아니에요. 내가 알고 있는 성령도 아니고. 내가 아는 복음은 내가 잘 되는 것이 복음인데. 이렇게 불안스러워서 못 믿겠다는 거예요. “십일조 안 해도 됩니다.” 이게 복음이 아니에요. 나의 불안을 유발시킵니다. 십일조 했기 때문에 3대가 복을 받았는데, 이걸 안 하게 되면 3대가 작살이 나는데? 이거 미친 짓이지. “하지 말라고 해도 나는 하겠습니다.”라고 한다면 감사히 받고.

뭔가 복음에 불안하다는 말은 지금 다른 예수를 믿고 있었다는 거예요. 다른 예수 믿고 있었던 거예요. 복음을 듣는데 불안하지 않는 이유는 뭐냐, 처음부터 다 털린 채로 복음을 들어버리면, 다 털렸잖아요? 없잖아요? 없는데 마구 들어오잖아요. 용서가. 사랑이. 주께 감사를 안 할 수가 없죠. 근데 지킬 게 있다면 주께서 주시지를 못해요. 섞여버리니까. 내가 지키고 싶은 나의 의도 따로 있고, 그 다음에 모자란 부분은 예수님한테 의를 달라고 하고.

이래가지고 예수님의 의와 나의 의가 같이, 함께 서로 사맛디 아니할세. 이게 섞이지가 않거든요. 안 된다 이 말이죠. 한쪽을 치워야 된다 이 말입니다. 오른쪽의 흙을 놔야 사탕을 줄 게 아닙니까? 꽉 쥐고 있으면 안 되잖아요. 때찌!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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