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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소유권 정리 180209강의빌레몬서

서울의존강의20180209a 빌레몬서1장(소유권정리)-이 근호 목사

오늘은 빌레몬서 1장 11절부터 보겠습니다.

11절, 저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12절, 네게 저를 돌려보내노니 저는 내 심복이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오네시모는 종이고 빌레몬은 오네시모의 주인이고. 여기 종과 주인 사이에 누가 끼어드느냐, 사도바울이 끼어듭니다. 사도바울은 개인적인 자격으로 끼어드는 것이 아니고 사도바울은 하나님께 받은 사명이 있어요. 기능이 있다고요. 그 기능이 뭐냐, 복음 전파하라는 기능을 부여받았습니다.

그러면 사도바울은 결국 본인의 위상을 본인이 결정하지 못하고, 사도바울의 주인이 따로 있죠. 우리 주님의, 복음의 종이죠. 그러면 예수그리스도와 사도바울의 관계, 그 관계를 빌레몬과 오네시모와의 관계에다가 그대로 대입을 하는 겁니다. 대입을 하면서, 사도바울이 뭐라고 하느냐 하면 “오네시모가 너의 종은 맞는데 그걸 형제라고 할 수 없겠느냐?”라고 제안을 해요. 형제. 형제까지 돼버리면, 지금 사도바울과 빌레몬과 갖은 관계가 형제관계입니다. 예수 안에서 형제. 그 형제관계까지 오네시모가 격상하게 되는 겁니다. 신분이 격상하게 되는 거죠.

그런데 여기서 오늘날 자본주의, 현대사회에서는 그런 게 별 의미가 없어요. 왜냐하면 현대사회에서는 뭐가 없느냐 하면 종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집에 강아지하고 고양이는 있죠. 그러니까 개(오네시모)한테 물어보지 않고, 사도바울이 빌레몬한테 “너희 집에 있는 개(오네시모)를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쳐주면 안 되겠느냐?”하는, 이런 파격적인 제안을 한 것이라고 보시면 되는 겁니다. 현대인들은 인간을 개라고 보지 않죠. 민주주의 사회니까 형식적으로써는 인간위에 다른 주인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종이라는 것이 헌법상으로 용납이 되지를 않죠.

그런데 경제적으로 종속이 될 경우에는 종은 아닌데 흔히 종 부리듯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종 부리듯. 상대적으로 정신적으로 박약하고 정상이지 않는 그런 사람을 값싼 노동력으로 부려먹기 위해서, 살살 달래서 계약서에 도장 찍게 만들고 나라에서 장애자들에게 주는 모든 비용을 자기가 가로채고, 그렇게 그 사람을 종 부리듯 하죠. 종 부리듯 한다고 해서 종은 아니에요. 왜냐하면 그 계약 관계가 끊어지게 되면 언제든지 자유인이 될 수가 있고, 정신적으로 아이큐가 떨어지는 사람의 친척이 와가지고 내 아이 내놓으라고 하면 그건 고발감이 되는 겁니다. 종에서 다시 자유인이 되는 거죠. 그거는 무슨 관계냐 하면 경제적인 관계 때문에 그렇게 된 거죠. 신분 자체가 종이 되지를 않아요.

그런데 옛날의 종이라고 하는 것은 경제적 관계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고 신분 자체가 종이에요. 신분 자체가. 왜 그런가 하면 이게 전쟁에서 포로로 잡혀오게 되면 그게 종이 되고, 종들이 필요했다는 그 이유가 농경시대에 노동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전쟁을 해서 가지고 오는 겁니다. 여자든 남자든 전부 다. 이것은 이스라엘도 예외가 아니에요. 민수기 31장에 보면 미디안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모압을 통해서 40년 뺑뺑이 돌고 애굽에서 올라온 사람 중에서 두 사람 빼놓고는 다 죽어요.

갈렙과 여호수아 빼놓고는 다 죽고 난 뒤에 그 후에 태어난 사람을 데리고 모세가 요단강을 통해서 약속의 땅의 진입을 노리게 되는 겁니다. 근데 그 가는 길, 풀이 잘 나있는 길에 주인이 없을 리가 없죠. 주인이 있죠. 그 민족들하고, 미디안이고 모압이고 간에 전쟁을 하게 됩니다. 민수기 32장에 보면. 홍해를 건너와서, 여기가 지중해고, 사해있고, 위로 100킬로 요단강 있고, 그 다음에 갈릴리 호수가 있고, 여기 광야에서 40년 동안 다 죽이고, 요단강을 통해서 공격한다 이 말이죠.

근데 이 땅이 괜찮은 땅이에요. 풀도 나고 목축하기 좋은 땅이에요.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의 그들이, 자기 아이들 많고 목축이 많으니까 가나안 땅에 들어갈 생각도 안 하고 여기가 좋사오니, 하다가 눌러앉고자 하다가 모세한테 아주 혼나죠. “니들은 어떻게 살 궁리부터 하느냐? 하나님이 주신 목적은 여기에 있는 가나안 열 족속을 치라고 올라가게 했는데, 살 궁리부터 하지 마라!” 그래서 그들은 마음을 고쳐먹고 다 치고서 다시 이 땅을 차지해도 되냐고 해서, 그러면 그 땅을 차지하라고 하게 되는 겁니다.

여기 모압 암몬 미디안, 여기서 칩니다. 치면서 하나님이 승리케 하죠. 그럼 여기서 뭐가 생깁니까? 필히 포로가 생기는 거예요. 이 포로를 뭐라고 규정을 해야 하느냐 하면 진즉에 죽어야 될 존재가 포로입니다. 하나님께서 다 죽여 버려라. 그런데 남자를 안 여자는 다 죽여 버리고 남자를 모르는 여자는 그냥 데리고 살아도 괜찮다고 하십니다. 근데 그때그때마다 조건이 달라집니다. 토실토실한 양하고 이런 것들은 챙겨라 이 말이죠.

그러면 이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이스라엘 외에는, 이스라엘 민족 앞에 다른 이방민족은 사람으로 쳐줍니까? 쳐주지 않습니까? 사람으로 간주를 하지 않아요. 이게 성경에서 참으로 기본적으로 중요한 거예요. 기본적으로. 존재하는 사고방식 자체가 이래 돼야 해요. 이스라엘 민족 외에 다른 민족은 사람으로 쳐주지 않아요. 그냥 뱀의 후손들이에요. 하나님의 적이다 이 말이죠. 그러면 이스라엘은 사람입니까? 사람 아닙니까? 이스라엘도 마찬가지로 사람 아니에요. 항상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동행할 때는, 이게 조건부에요. 조건이 있어요. 조건이.

성막에서 제사 지낸다는 조건하에 동행하는 겁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동행이 안 돼요. 원래 동행할 수가 없어요. 십자가마을에 손승범씨가 질문을 했죠. 원래 동행이 안 되는 겁니다. 인간이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전부 다 가짜에요. 왜 동행이 안 되느냐, 동행할 가치조차도 없기 때문에 동행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면 동행할 가치가 언제 생기는가, 그들 속에 하님을 대표해서 하나님의 이름이란 분이, 하나님의 이름이란 분이 거기에 같이 동행하면 하나님의 이름을 보고 같이 동행해요. 그 이름이 일어나는 곳에서 일어나는 표시와 사인이 있는데, 그게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는데, 오늘날 교인들이 자기의 삶에, 현대 생활에 보탬이 되고 싶어서 성경을 보는 경향이 있어요. 구약성경부터 죽 내려와야 하는데, 김밥 옆구리 터지듯이 옆으로 기어들어갈라고 하는 거예요. 옆으로. 그 대표적인 것이 뭐냐, 삼위일체라고 하는 겁니다. 삼위일체. 성부, 성자, 성령님이 계시다. 어디 앞에? 인간 앞에. 인간이 성부, 성자, 성령, 세 분이라고 하면 문제가 있으니까, 삼(三), 위(位)라고 해놓고, 이 분이 전부 다 하나니까 일체(一體)라고 해서 삼위일체(三位一體)라고 그렇게 하자.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세 분이니까 삼위고, 그 분이 전부 다 하나니까, 여기서 한 분이라고 하면 안 돼요. 하나라고 했어요. 하나니까 일체라고 하자고 용어를 붙인 거예요.

그러나 인간이 김밥 옆구리 터진 것으로 볼 수 있는 위치가 없어요. 인간을 만날 때 하나님께서 누굴 보내십니까? 성자를 보내시죠. 성자. 예수님,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죠. 그럼 아들은 몇 분입니까? 한 분이죠. 아들은 한 분이죠. 그럼 예수님을 누가 보냈습니까? 성령이 보냈잖아요. 한 분이잖아요. 신약 마태, 마가, 누가 공관복음에서는 성령께서 예수님을 보냈지만, 지금은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셨죠. 성령께서 한 분이고, 성자가 한 분이고, 성부가 한 분이고.

그럼 인간은 한 분만 믿으면 되는 겁니다. 이렇게 세 분을 김밥 옆구리로 옆에서 보면 안 돼요. 이런 자리가 없다니까요. 이런 자리를 하나님이 허용한 적이 없어요. 성령이 한 분 오셔서, 성령이 한 분 오신다면 거기에 누가 계십니까? 성자하나님 계시고 성부하나님 계시잖아요. 그러면 됐잖아요. 무슨 삼위일체가 왜 필요합니까? 믿음이 없으니까 믿음을 지식으로 때우려고 하는 거예요. 지식이라는 것은 언어의 나열이잖아요.

근데 그 언어가 어떻게 구성되고 어떻게 성사가 됩니까? 그거는 그 사회에 통용되는, 일반적인 통념에 의해서 언어가 만들어져요. 이게 병이다. 병이라고 하면 한국 사람은 아는데 미국사람은 모르죠. 병이 뭐지? 병byung? 이러잖아요. 병이라고 하는 것은 한국 사람끼리 통하는 단어를 동원한 겁니다. 예수, jesus도 마찬가지고. 예수아도 마찬가지고. 다 그런 거거든요.

인간의 지식은 단어에 담겨서 지식이 오게 되고, 그 단어는 어떻게 만들어지느냐 하면 인간이 알 수 있는 그림으로써 만들어져요. 그림부터 먼저 구상이 되고 그 그림에 단어를 맞추는데, 그림과 단어가 이게 일치가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비슷하게 맞추지 일치되는 것은 없습니다. 코끼리도 마찬가지고 개도 마찬가지고. 고양이도 마찬가지고. 고양이 당사자에게 물어본 적이 없습니다.

인간들의 편리에 따라서, 자기들의 분류방법으로 제 3자의 대상을 일방적으로 그렇게 했기 때문에 동물과 식물한테도 그것이 안 통하는데, 하나님에게 성부성자성령을 붙인다고 그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어요? 통하겠어요? 안 통하죠. “하나님 어떻게 부르면 좋겠습니까?” “니가 알아서 뭐할래?” 왜 하나님의 이름을 알려고 하죠? 모세가 왜 하나님의 이름을 알려고 했습니까? 하나님은 모세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어요.

그 이유가 뭐냐 하면 인간은 이름을 알아버리면 그걸 결과적으로 딱 자기 것으로 소유하려고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서 이게 병인데, 병이 무엇입니까? 아, 이게 병이구나! 하고 가져올 수가 있다 이 말이죠. 근데, 하나님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여호와다. 아, 여호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면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소유대상이 될 수가 있어요. 안 되죠. 이름을 부르면 하나님이 하늘에서 쪼르르 쫓아와야 됩니까?

인간들이 부르는 이름은 인간들끼리 부르는 이름이에요. 호명하고 호칭하면 쪼르르 앞에 달려와야 할 이름. 전화하면 전화 받아야 할 이름. 여러분 전화번호부에 하나님의 전화번호 있습니까? 하나님 전화번호가 몇 번입니까? 010- 그 다음에 몇 번입니까? 2384- 뭐 이렇게 되는 겁니까? 호출하면 오는 겁니까? 전화번호부에 성부성자성령 전호번호 뭐 이런 거 없죠. 이름이라는 것은 인간에게 내가 저쪽을 부를 때 이름이라고 하는 겁니다. 내가, 그러니까 내가 건사하는 거예요. 내가 굳게 토대를 잡고 있는 마당에서 누구 이름을 부르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버리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는 말은 그렇게 이름 부를 자격이 있는가에 대해서 하나님은 다시 생각하시는 거예요. 인간은 죽은 존재기 때문에 이름 부를 자격도 없어요. 미친 사람이 중얼중얼한다고 다 내려올 필요가 없어요. 인간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 왜 부르는지, 뭣 때문에 부르는지, 왜 불러야 되는지 아무 이유를 몰라요. 그냥 어느 유력한 타인 부르듯이 그냥 답답해서 불러보는 거예요.

인간을 부를 때는 정확하게 누구누구라고 불러야 됩니다. 이름이 다 다르기 때문에. 어이~! 해가지고는 여러 명이 올 수가 있고 아무도 안 올수가 있잖아요. 정확하게 김OO 이OO, 라고 불러야 오듯이, 하나님을 호칭할 때는 정확하게 불러내야 하는데, 불러낼 수 있는 그런 걸려있는 이름이 없다 이 말입니다. 그럼 하나님의 이름이 뭐냐, 하나님의 이름은 그게 따로 계셔요. 하나님의 이름이라는 분이. 하나님의 이름이 따로 있다는 말은 하나님과 상대할 사람은 하나님의 이름이라는 분만 상대하지, 그 외에는 상대를 안 하는 겁니다. 인간은 죽은 존재기 때문에 상대를 안 해요.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을 이스라엘 속에 삽입을 시켜놓고, 이름이 있다는 조건 때문에 하나님은 그 이스라엘과 동행하는 겁니다. 주님을 보고, 동행하시는 분을 보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거예요. 내 인간요소 말고 주님의 요소를 심어놓고 우리와 동행한다 이 말이죠. 그래서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뭐냐 하면 나는 죽고 내 안에 누가 산다? 그리스도가 사는 조건하에 하나님은 우리를 상대하는 겁니다.

죽어라 철야하고 금식하고 웃기지도 않아요. 부르면 부를수록 누가 오겠어요? 귀신만 들끓죠. 귀신만 와요. 귀신만. “그래, 왜 불렀느냐?”하고 호리병 속에서 나타나고, “왜 불렀느냐?” “누구십니까?” “나는 니가 부른 예수잖아.” 마귀가 예수를 왜 인정을 못하겠습니까? 마귀는 인간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데. 예수를 원하면 예수를 주고, 뭐 하면 다 주는 거예요. 예수 만났다고 좋다고 하고. 진짜 하나님을 만났으면 내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자격도 없고, 부를 필요도 없고, 내 죄 때문에 그냥 지옥가도 합당합니다, 라는 그러한 느낌으로 다가와요.

그게 바로 사울(바울이 되기 전)이 예수님을 만날 때 이미, 사울이 예수님에게 제시하기도 전에 예수님 쪽에서 이미 사울을 규정해버렸습니다. 뭐라고? 니는 나를 뭐하는 자라고 했습니까? 핍박하는 자. 핍박하는 자예요. 핍박하는 자를 주님께서 안 만나도 되는데 만나주시잖아요. 안 만나도 돼요. 근데 만나주시잖아요.

그래서 인간이 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자기가 뭔가 안다는 것이 문제인데, 아는 것 때문에 인간은 엉터리 하나님을 부르고 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때는 알 필요도 없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필요도 없고,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어요. 왜냐하면 열심히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교회봉사해도 하나님 보시기에 그게 아무것도 안 한 짓이 되기 때문이에요.

왜 그러냐 하면 항상 나로부터 시작하는 일이기 때문에, 이거는 하나님께서 애초부터 거부할 수밖에 없는 짓이에요. 그런 짓거리를 하고 온 겁니다. 제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그럼 아무것도 안 하면, 평생을 아무것도 안 하다가 늙어 죽어서 지옥가면 나만 손해가 아니냐, 라고 생각이 되겠죠. 나만 손해라고. 뭐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고 찔러야지, 뭐 아무것도 안 하고, 해봐도 소용이 없지만 답답하잖아요. 참을 수가 없죠. 아무것도 안 한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죠.

그런데 하나님에게만 참을 수가 없는 것이 아니에요. 인간의 행동은 반드시 참을 수 없어서 나온 행동들만 행동하게 되어 있어요. 대표적인 게 소변 누는 것. 그 다음에 집에서 밥하는 것. 사흘 동안 밥 안 한다고 하다가 참을 수가 없어서 밥해요. 모든 행동은 하고 싶어서만 행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쩔 수 없이 하게 되어 있어요. 어쩔 수 없이. 주님에 대해서 마중나간 것도 주께서 먼저 건드려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주님을 고백하게 되어 있어요. 주님 쪽에서 먼저 건드려줬기 때문에.

그래서 저는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한번 테스트해보라고 해요. ‘이제부터 내가 예수 믿으면 나는 개다. 안 믿겠다.’하고 한번 테스트 해봐요. ‘교회도 안 나오고 성경도 안 보고 기도도 안 하고 나는 그냥 나쁜 친구와 같이 살래.’ 같이 살든지 한번 해보란 말이죠. 해봐가지고 그게 아주 자연스럽고 거기에서 안식을 누리거든, 편하거든 그건 처음부터 믿음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동안 남 믿는 것 시늉이나 한 사람이에요. 자기가 유발한 ‘가짜 나’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안 하려고 하니까 아무것도 안 할 수가 없어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요.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 그래서 뭔가를 하게 됩니다. 뭔가를 했을 때, 그게 바로 하나님께서 죄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답답증을 준 겁니다. 답답해서 기도했는데, 그 기도가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기도가 아니에요. 인간은 뭘 해도 인정 못 받아요. 다만 내가 답답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다는 그것이 바로 그동안 꿍하고 참고 있었지만 비로소 나의 죄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인간은 죄만 짓고 구원받는 거예요. 의를 한 번도 한 적도 없이 구원받는 겁니다. 이게 구원받는 사람의 보편적, 모든 공통점이에요. 진짜 천국 간 사람의 공통점이 내가 죄인 중에 괴수가 되는 겁니다. 그리고 나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그게 분명해지고, 그러니까 감사에 감사의 꼬리를 물고 계속 터져 나오는 겁니다.

전에는 내가 힘들게 일하고 돈 벌어서 밥과 반찬을 했다. 그래서 이거는 내 공로라고 생각을 했는데, 일하게 된 것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이, 나만을 위해서 살아온 나에게 하나님께서 이런 진수성찬을 차려줬다는, 그 앞에서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그러한 기회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식사시간을 통해서 주시는 겁니다. 식사시간을 통해서.

한 가지 쉬운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자식이 세 명이 있다. 세 명인데 우연히 자식 한 명 주워가지고 네 명이 됐다 칩시다. 하나는 재벌 집 아인데 훔쳐 와서 네 명이 됐어요. 그러면 아버지가 자식들을 보면서 뭐라고 생각하느냐 하면, 저 자식들을 어릴 때부터 이만큼 누가 키웠다고 생각합니까? 본인이 키웠다고 생각을 해요. 본인이. 이게 바로 죄인 거예요. 본인이 키웠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나 자식은 절대로 부모가 키웠다는 생각이 안 듭니다. 아무리 아빠엄마가 밥을 해줘도 그 밥을 먹고 안 먹고는 누가 결정한다? 내가 결정한다는 것을 세상에! 두 살도 안 된 애가 그걸 보인다니까요. 두 살도 안 된 애가. 난지 3개월도 안 돼서 그 모습을 보여요. 6개월 되서부터 으음~ 싫다고 고개를 돌리죠. 엄마는 김치하나 얹어가지고 쫓아다니고, 애는 도망치기 바쁘고, 밥 한 번 먹어주면 뭐 하나 줄게, 라는 거래가 형성되어가지고 그래서 밥 한 번 먹어주고. 또 해주고. 모든 결정은 본인이 하는 거예요.

그런데 부모는 착각하기를 저 자식은 내가 키웠다는 거예요. 자식은 거기에 절대 수긍을 안 합니다. 내가 인간성이 좋아서 아버지라고 대해주고 고맙게 여긴다고 하죠. 내가 인간성이 좋아서. 다른 자식 같으면 아버지한테 효도를 안 하는데 내가 워낙 인간성이 좋아가지고 아버지한테 효도한다는 거예요. 엄마한테 효도하고.

그게 바로 하나님이 개입하지 않고 인간들끼리 민족을 이루고 국가를 이뤄버리면, 거기에 각자의 정답이 있어요. 뭐냐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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