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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덮친 사태 180209강의야고보서

안양20180209a약2장1절(덮친 사태)-이 근호 목사

오늘은 야고보서2장1절하겠습니다. 한 번 보세요. 야고보서2장1절에 보면 야고보서에서요, 주 예수 이야기가 딱 한 군데 나와요. 그래서 이 야고보서가 예수님 복음이야기인지 아니면 옛날 유대교이야기인지 내용을 얼른 보면 구분이 안 될 정도로 그렇게 인간의 행함에 대해서 어떤 예시를 많이 해놨잖아요.

그런데 2장1절에 보면, 인간의 행동에 대해서 예시를 많이 한 이유가 야고보가 어떤 전제를 깔아놨어요. 어떤 전제냐 하면 2장 1절에 나옵니다. 내 형제들아, 해놓고 형제조건을 달아놨어요. 형제의 조건이 뭐냐 하면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이렇게 되어있지요. 이게 굉장히 특이해요. 보통 형제라 하는 것은 어떤 종류냐 하면 형제라는 말을 할 때는 이건 보통 상투적인 이야기는 뭐냐 하면 같은 아버지, 어머니를 갖고 있는 그런 육적인 가족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형제라 할 때는 이건 다 아시지요.

그런데 형제라고 이거 외에 다른 육적인 연관성도 없는데 형제라고 했을 때는 이건 어디서 나왔느냐 하면 바로 구약에서 이스라엘 전체를 하나의 형제 또는 초대교회 때 예수 믿는 사람들끼리 형제라고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형제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가족이 육적이라면, 육체적이라면, 형제는 정신적으로 생각을 같이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정신적으로 형, 동생 한다고 해서 형제 되는 거 아니에요. 우리는 한 부모의 소속되어있다는 것을 다 같이 공감을 해줘야 돼요. 한 부모. 우리는 한 뿌리에서 나왔다는 것을 공감을 해줘야 돼요.

마피아가 그거 아닙니까. 야쿠자가 그거구요. 조폭들이 그거거든요. 일본 야쿠자들이 팔목 잘라가지고 피 내면서 인간은 두 번 형제 있다. 하나는 부모로 태어난 형제 있지만, 이제는 의리! 의리로 맺은 형제 있다. 이리 하잖아요. 돈 앞에서는 아무 소용도 없는 형제. 진짜 돈 앞에서는 형제도 없을뿐더러 그렇게 의리 찾아도 소용없어요.

그러니 이 형제라고 할 때는 한 부모에서 나온 거예요. 그걸 야고보에서는 위에서 나왔다 해요. 위에서. 이 야고보서는 엄청난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오늘날 사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한테는 내 형제들아, 할 때 우리는 딱 보게 되면 ‘아이고, 뭐~ 같은 교인들끼리 믿을 수 있겠어?’ 이러한 내용부터 탁 나오지요. 형제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돈 빌려가서 안 갚았겠습니까. 보증 서달라고 얼마나 했겠습니까? 형님! 동생! 이래가지고 얼마나 사기를 쳤겠어요. 이 세상 자본주의 사회에서. 옛날도 마찬가지고요. 의리가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니고. 의리는 배신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지 않습니까.

그런데 야고보서는 아주 단정을 해요. 형제들아! 이 말은 뭐냐 하면 니나 내나 우리는 주님이 주신 덮어씌우신 운명에서 우리는 벗어날 수 없을 정도로 하나가 되었다는 겁니다. 성경에서 이런 경우에 아주 대표적이고 알기 쉬운 예가 뭐냐, 전부다 한 밀폐된 공간에 갇혀있었던 적이 있어요. 그게 방주입니다.

방주는 그저 가족끼리 친해지고 싶어서 같이 있는 것이 아니고 나가면 죽어요. 왜? 물이니까. 이걸 성경에서 노아방주를 언급하면서 여덟 식구와 같이 있었다는 것을 한 가족이니까 당연히 있는 것이라 이리 생각하시면 안돼요. 달리 갈 데가 없어요. 예수 믿는 거 보고 달리 아무런 갈 데가 없고 다른 믿을 것도 없는 그러한 사태. 그러한 사태가 우리에게 덮쳤다. 라는 인식을 갖은 사람은 형제입니다. 집안이 다 말아먹고 돈 날리고 집에 불나고 지진 나고 다 없어진다 할지라도 주 예수 없이는 못 산다는 것을 공감하고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을 찾는다는 자체가 엄청난 모험이 되는 겁니다. 그런 사람이 있으면 기적이지요. 미라클이지요. 기적이지요. 기적!

아! 참, 그런 사람 모였으니까 이게 있는가 싶지요. 세상에 나가 보세요. 교회에 보세요. 그런 사람 있는가. 없어요. 다 제각기 자기 가정 복 받기 위해서 교회 나온 거예요. 제각기. “이거 다 날아가도 불나도 저는 예수님만 있으면 더는 소원 없어요.” 이런 사람을 물론 우리가 말은 그렇게 합니다만, 우리가 막상 안 당해보니까 나도 그 신앙 유지될지 안 될지 장담하기 곤란할 수 있는데, 성경에서 노아방주 할 때 우리가 언제 했느냐 하면 히브리서 11장 때 했어요.

그 때 노아를 가지고 믿음의 조상이라고 본 겁니다. 한 번 생각해보세요. 믿음의 후손은 조상 따라가기 마련이지요. 조상이 밖에 못 나오고 하나님이 정해준 구역 내에서 구차 없이 살아갈 운명이라면 조상이 그렇다면 그 믿음의 대대로 연이은 그 자손들도 똑같은 처지에 있습니다. 똑같은 처지에. 그 처지는요, 인간이 자유하기 때문에 자기 팔자는 자기가 알아서 한다, 하잖아요. 그런데 전혀 자기가 팔자를 알아서 할 수 있는 입장이 안 되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하는 겁니다.

히브리서11장에 모세가 공주의 아들 됨을 거절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고난 받기를 즐겨하셨으니 이는 장차 하나님이 주시는 상을 바라봄이라. 그렇게 되어있지요? 그렇게 될 때 여러분들은 이것만 생각하면 돼요. 사태. 지금 어떤 낯선 상황이 덮친 거예요. 대만에 갔던 어떤 한국 사람이 지진 나가지고 호텔이 삐딱하게 엎어진데 있었어요. 자, 이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 사람이 나중에 살아남았는데 이런 말을 했어요. “나는 앞으로 인생에 대해서 말을 안 하겠다.” 그게 굉장히 의미심장했어요. 나는 뭘 해서 성공해야지. 뭘 해서 해야지. 그것에 일체 말하지 않겠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지금껏 그 사람은 자기가 선택해서 자기가 결정해서 살아온 인생입니다.

그런데 대만에 갔다가 호텔에 묵어가지고 호텔에 삐딱하게 되었는데 하루 만에 금방 구조 받은 것도 아니에요. 12시간 지나서 하루 갇혀서 딱 살아왔을 때 그 사람은 뭘 생각하느냐, 도대체 내가 뭐냐는 거예요. 내가 뭐냐?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 이런 이야기거든요. 내가 뭐냐? 이걸 제 표현대로 하면 ‘사태’에요. 사태. 우리가 원치 않는 사태에 우리가 그냥 말려든 거예요.

이걸 뭐냐 하면 오늘날 이 세상은 불로 심판받게 되어있는 사태. 아~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이걸 굉장히 심각하게 보지를 않습니다. 소소한 눈앞에 있는 즐거움 있잖아요. 눈앞에 있는 여기에서 내가 얼마나 빛내고 얼마나 성공하고 그리고 자기 인생에 실패감과 자괴감에 빠지는 것. 코앞에 있는 성공했다고 좋아하고 실패했다고 낙담하는 그런 속에 있거든요.

그런데 제대로 성경을 보게 되면 성공, 실패라는 것이 이제는 무의미한 사태에 우리가 놓여있는 겁니다. 성공, 실패가. 그게 뭐냐 하면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라, 믿음. 오늘 믿음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할 거예요.

자, 믿음이라 하는 것은 어떤 하나님에 의해서 일방적 주어지는 사태 속에 우리가 갇혀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겁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더 쉽게 말씀드릴까요. 하늘에서 지붕을 만들어서 뒤집어 씌웠다 이 말입니다. 하늘에서.

그러니까 소소하고 사소한 일이라고 제가 이야기했는데, 내가 결정한 것에 대해서는 사람들은 거기에 심각한 일로 생각하거든요. 나름대로 심각한 일을 했는데 이게 성공을 안 거두면 나는 어떻게 살지? 라는 그러한 것이 하나님의 형제들한테는 하나님에게 태어난 같은 형제들한테는 그런 것이 심각한 문제가 될 수가 없다는 거예요.

사람에게서 가장 심각한 것은 뭐냐 하면, 자기의 명예와 관련된 겁니다. 그 사람 그렇게 잘 먹고 잘살았는데 망했데~ 망했데! 자, 지금 안 망했어도 유지로 간당간당해도 망할까봐 인간은 겁내요. 뭔가 쫓기듯이 망합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안 망해도 쫓기고 있는 것이 인간이거든요.

그런데 믿음이라는 것이 뭐냐 하면, 더 이상 쫓길 필요가 없는 거예요. 왜? 누가 납치했으니까. 하나님이 하늘의 은사가 나를 납치했으니까. 이걸 사태라. 납치한 사태가 일어나고 보니까 내가 내 홀로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은 그것은 다 부질없는 일이라는 것이 들통이 난 거예요. 누구한테 욕 얻어먹는 것도 아무것도 아니고. 돈 있다가 없어지는 것도 아무것도 아니고. 중요한 것은 아버지께서 우리 아버지께서 나를 아들로 받아줬다는 것. 그것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야고보서식으로 이야기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나를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줬다는 이 사태 앞에서는 이 방주 앞에서는 이 안에 들어온 것만 해도 더는 소망이 없는 거예요. 더는 바람이 없는 거예요. 노래처럼, 더 바램은 내게 죄가 됨이라 하는 것처럼. 이 물이 있는 입장에서는 이것만이 유일한 살길이거든요. 생명이 여기에만 있다 말이지요. 밖에 나가면 뭐냐 하면 옛날에 한 가닥 했던 사람들. 성공, 실패가지고 매일같이 스트레스 받는 그런 일상적인 사람들이 존재했던 그 세상이 하나님이 주신 심판의 물로서 완전히 덮어버렸거든요.

예수님께서 이야기했어요. 인자가 올 때는 그러함이라. 옛날에는 노아 때는 물로서 전체를 심판했지만, 앞으로 뭘로 심판한다 했습니까? 불로서 심판하는 사태가 일어나는 겁니다. 그럴 경우에 노아가 비오는 걸 보고 방주를 만든 게 아니에요. 참 중요한 문제입니다. 노아가 비오는 걸 보고 방주 만든 것이 아니고 비 온다는 약속 때문에 방주를 만드는 것도 약속에 포함이 되어있어요. 쉽게 말해서 내가 예수 믿는 것도 예수님의 뜻이에요. 자기 백성이기 때문에 봐주기 위해서.

도래하지 않는 일을 내 백성이기 때문에 소위 임시 특혜를 준다 할까. 특혜를 베풀어가지고 니는 돈 이런 것으로 가정 행복에 닦달하지 말고 이 예수의 피를 믿어라. 그러면 살리라. 니가 죄인이라도 의인이 된다.

적어볼게요. 죄인이라도 뭐가 된다고요? 의인되지요. 그러니까 죄인에서 의인되려고 애써야 돼요? 애 안 써야 돼요? 애를 안 써야 돼요. 만약에 죄인이 의인되려고 애써버리면 이게 죽어요. 주님의 의인되심이 죽어요. 그걸 보통 개혁신학에서는 칭의라 하는데 의인이라 칭해준다 말이죠. 칭의란 별로 좋은 말 아니에요. 그건 엉터리인데.

어떻든 간에 죄인인데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는 관계 때문에. 사람을 좋은 사람을 만나야 돼요. 주님을 안다는 이것 때문에 죄인이 아니고 뭐됩니까? 의인되는 거예요. 그 의인은 뭐를 자랑하느냐 하면, 예수님을 자랑하게 되어있는데 예수님 자랑할 때 뭔가 밑천이 있어야 돼요. 그 밑천이 뭐냐, “내가 한평생 죄인이었습니다.” 를 밑천을 깔아야 돼요.

그러면 야고보서에서 행동을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뭡니까? “니가 이래도 죄인 아니야?” 하는 그런 뜻이에요. “니 이래도 죄인 맞잖아.” 라는 이야기가 야고보서 1장부터 쫙 써있는 겁니다. 이게 이해되어야 돼요. 이해되시지요? 여러분보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이것 듣는 사람보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지금 뭘 이해하라는 말이냐 하면요. 성경에서 뭘 하라, 하라, 하는 말은 그거 안 하면 탈락시킨다는 말이 아니에요. 협박용이 아니고, 내가 너에게 명령을 줄 때는 이 예수의 마음은 느긋한 마음인데 니도 그 느긋한 마음을 니가 나하고 같은 마음을 갖고 있느냐를 보는 거예요.

주님께서 세리와 창기를 불러서 구원했다 칩시다. 그런데 주님께서 부르실 때는 주님 입장에서는 느긋하지요. 왜? 그 사람이 자기 행함으로 의인될 가능성이 있어요? 없어요?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느긋해요? 니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니가 세리고 강도임에도 불구하고 니가 오늘밤에 낙원에 있으리라. 이 느긋함. 그 느긋함을 공유할 때 그게 믿음이에요. 그러면 우리가 죄인이라 할 때는 결국은 믿음이 없을 때를 죄인이라 하잖아요. 이제 제 논리 이해하시겠습니까?

자, 내가 죄인이라는 말은 뭐냐, 믿음이 없을 때 하는 행동들이 죄가 되는 거예요. 그러면 믿음이 없을 때의 행동들이 뭡니까? 내가 성공해야지. 제가 두 번 다시 이야기 안한다고 했지만, 이야기하겠습니다만, 내가 무슨 결정을 할 때 옳은 결정이기를 해서 잘되면 나는 성공이라고 여기고 못되면 나는 인생 조졌다. 인생 실패로 보잖아요. 그런 생각 자체가 뭐에 포함된다? 불신앙이고 그게 죄이고 육이 있는 이상은 죽을 때까지 없어지지 않아요. 이게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야고보서1장에서 우리가 누누이 봤듯이 하나님의 은사가 주어져요. 하나님의 은사가 딱 주어지니까 은사하고 지상에서의 내가 헐떡거림. 안 돼! 안 돼! 이러면 안 돼! 주여! 이러시면 안돼요. 이렇게 마주하면서 얼마나 우리가. 야고보서2장에 주욱 나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사랑하고 뒤에 죽 나오잖아요. 형제를 질타하고 니 나보다 못해. 이런 거 있잖아요. 그것과 하늘의 은사가 마주할 때 우리는 야고보서가 “니 믿음 있어?” 라고 묻고 있는 책입니다.

“니 믿음 있어?” 다시 말해서 “니는 느긋함이 있어?” 못난 너를. 딕훼밀리라는 가수가 불렀던 노래가 있어요. 60이상은 압니다. 그 이하는 몰라요.

해도 잠든 밤하늘에
작은 별들이
소근대는 너와 나를
흉보는 가봐
설레이며 말 못하는
나의 마음을
용기 없는 못난이라
놀리는 가봐

랄랄랄라
랄랄랄라
랄랄랄라
라라라라라라라

미소 짓는 그 입술이
하도 예뻐서
입 맞추고 싶지만은
자신이 없어
누군가가 요놈하며
나설 것 같애
할까 말까 망설이는
나는 못난이
나는 못난이
나는 못난이

나는 못난이거든요. 그 못난 자를 아시고, 잘난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구원했다는 말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건사했다는 말 알지요? 거두어주는 거예요. 이게 사태입니다.

아까 노아 이야기했지요. 노아가 물 심판 이전에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은혜를 주셔가지고, 은혜 주셨다는 것이 이렇게 술 먹고 들고 자는 게 은혜가 아니고 뚝딱! 뚝딱! 남들이 이해 안 되는 짓거리를 하는 거예요. 남들이 안 하는 짓. “집사님 뭐하셔요?” “몰라도 돼.” 뚝딱! 뚝딱! 방주 만드는 것. 아무 쓸모 짝도 없는 것. 예수 믿는 게 오늘날 취직하는데 무슨 쓸모가 있습니까? 가정행복에 무슨 쓸모가 있어요? 본인이 알아서 준비했습니까? 아니에요.

주님께서 시킨 거예요. 신앙을. 지금까지 안다 치고. 지금부터 어렵습니다. 제가 방금 두 가지 이야기했습니다. 하나는 뭐냐, 믿음을 두 가지의 방식을 사용하는 거예요. 첫째는 내가 준비하는 믿음과 두 번째는 하늘의 은사. 은사라는 말은 선물입니다. 선물. 하늘의 선물로 준 거 하고 내가 준비하는 거 하고, 내가 준비하는 것은 사단 나는 거예요. 큰 탈나는 거예요. 왜냐하면 이것은 치매에 걸리면 다 날아가 버리니까. 내가 준비한 거 치매에 걸리면.

그러면 하늘의 은사는 뭐냐, 니가 벌써 치매에 걸렸다 치자 이 말입니다. 니가 치매에 걸렸다 쳐도 니 의식이라든지 너의 감정이라든지 너의 이성, 따짐이지요. 여러 가지 절제. 이런 것을 하늘에서 개무시하고 주신 은혜에요. 우리 스스로 이리 생각하면 제일 쉽습니다. 우리가 성령 받아서 믿음이 생겼잖아요. 그럼 나를 이름을 고치세요. 제가 이가인데, 이름을 아예 바꿔버리는 거예요. 이 치매라고. 이 치매는 다른 말로 하면 등신이지요. 이 등신. 공 등신. 등신이 가는 나라. 천국이에요. 미리 등신이 안 되면 그건 못 갑니다. 미리 치매 환자 아니면 못 가요. 왜냐하면 똑똑하기 때문에 자기가 준비해요.

“목사님, 헌금은 몇 프로 냅니까?” “내가 교회는 몇 번 가면 됩니까?” “이런 행동은 해서는 안 되지요?” “이런 행동은 해야 되지요?” 자꾸 꼬물짝 꼬물짝 준비한다는 그 자체가 결국 자기는 뭐 되기 싫다는 말이에요? 나는 치매환자 되기 싫고 나는 병신, 등신 되기 싫다는 겁니다. 이게 뭐냐, 바로 하늘의 은사가 없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혼란스럽던 신앙생활 오늘 깔끔하게 정리합시다. 정리하고 오늘밤에 낙원에 갑시다. 골치 아픈 거 하나도 없어요. 지금 골치 아픈 거 하나도 없어요. 똑똑해서 탈이라. 똑똑해서 탈이고 신학교 나와서 탈이고. 바보 안 되려고. 세상에서는 바보 되면 실패자에요.

그러니 결국은 내가 내 실패를 거부하고 있다는 강력한 어떤 힘 같은 게 내 안에 작용하고 있습니다. “니는 똑똑해야 돼! 니는 남한테 지면 안 돼!” 이런 거요. 언젠가 제가 낮 설교에서 이런 이야기했지요. 지지난 주인가. 인간에게서 가장 큰 문제는 승부근성이라고 했습니다. 승부근성. 인간의 악마적인 요소가 승부근성이에요.

아까 집사님하고 식사하면서 이야기했지만, 승부근성이 성경에서 대표적인 사람이 야곱입니다. 지고는 못 살아요. 다 이겼어요. 속여서라도 이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근성을 이용해요. 어떻게 하느냐, 하나님이 야곱한테 져버려요. 질 때 야곱이 하나님을 이기고 그 다음에 울고 통곡한 겁니다. 내가 이런 놈인 줄은 몰랐습니다. 내가 이런 놈인데 내가 자칭 뭐다? 복의 근원이라고 착각한 거예요.

야곱은 복의 근원 아닙니다. 야곱 속에 야곱이 모르는 다른 분을 하나님께서 만들어내기로 야곱을 이용한 거예요. 우리를 구원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죽고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구원되었기에 예수님 구원 받을 때, “너도 같이 있었어!” 라고 통보해 주는 거예요. 말씀으로. 주일날 설교할 거 미리 말하면 안 되는데. 그래서 날마다 우리는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 사는 겁니다. 눈에 보이는 껍데기는 뭡니까? 내가 보인다고요. 지지난주 설교에서 겉모습은 내가 보이니까 남들이 나를 보고 나에 대해 평가하니까 자연적으로 우리도 나에 대해서 남한테 안 꿇리려고 안 지려고 나의 겉모습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쓰는 거예요.

이걸 주목이라고 할 수도 있고, 지목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같은 말 아닙니까. 지목하는 거, 주목하는 거. 주목이라 봅시다. 사람이 일상생활하면서 누가 어디 뭔가 주목하는 경우가 되면 어떤 물건이라든지, 어떤 사건, 앞일에 대해서 주목하게 되면, 뭐를 놓치느냐 하면 ‘초과적인 영향력을 놓치게 됩니다.’ 초과적인 영향력.

초과적인 영향력이란 뭐냐 하면 야고보서2장1절 이야기하는 거예요. 야고보서1장에서 하늘의 은사가 있다 했지요. 여러 번 이야기했으니까 다시 이야기 안합니다. 야고보서1장에 보면 가장 좋은 은사는 1장 11절에 어디서 옵니까? 위에서 오지요. 야고보서가 이런 이야기하는 것도요, 사람보고 설득하는 게 아닙니다. 이건 신앙 있는 사람만 알아들으라는 이야기에요. 위에서 은사가 와요. 그러니까 이건 인간의 노력과 행함은 야고보서에서는 전혀 들어갈 자리가 없어요. 열심히 합시다. 이건 없어요. 야고보서에서는 없어요. 은사부터 시작해서 은사로 돌아가는 거예요.

그 은사가 2장1절에서는 뭐냐 하면 영광의 주를 우리 주 예수 믿는 믿음이라는 말이지요. 그 믿음을 저는 방금 뭐로 표현했습니까? 믿음을 ‘초과적인 영향력’으로 표현한 거예요. 초과적인 영향력. 초과적인 영향력은 말은 굉장히 어려운데 아까 쉽게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의 죄인을 위해서 오셨거든요. 죄인을 위해서 오셨다는 이야기는 2장 뒤에 계속 나오는데. 죄인으로 오셨다. 그러면 죄인이 아는 죄인은 죄인이 자기 자신을 아는 그 범위가 만약에 한 자기 반경 25Km라면 그러면 죄인은 기껏 25Km 상황을 안다면 그러면 초과적이다 라는 말은 뭐냐, 26Km, 27Km, 28Km 이리 된다 말이지요. 그런데 26, 27Km돼봤자 인간은 25Km초과 못하니까 기껏 평생을 살아도 1살부터 91살까지 평생을 살아도 지가 체험하고 지가 알고 있는 정보, 알고 있는 것만 걷어 모아 가지고 이게 인생이고 이게 현실이라고 우기는 거예요. 기껏 자기가 아는 거.

제가 언젠가 그런 이야기했는데. 강원도에 있는 어떤 할머니는 나이가 90인데 한 번도 강원도를 벗어난 적이 없답니다. 90인데 제주도도 안 가봤어요. 강원도를 벗어난 적이 없답니다. 그러면 그 할머니가 아는 지식은 결국 어디서 나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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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