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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18 겨울수련회 열왕기하 제1강 - 패턴 (1) - 재정리자유게시판열왕기하

2018 겨울수련회 열왕기하 강해 제1강 - 패턴 (첫날 저녁1)

강의 이근호, 녹취 한윤범

먼저 기도하고 시작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알아야만 될 사항을 외면하지 않게 하옵소서. 여러 가지 복잡하고 힘들다고 할지라도, 주님의 희생으로 쓰여진 말씀을 받아들이는 귀한 시간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이 세상에 왕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은 열왕기하인데, 그 이전에는 열왕기상이 있었겠죠. 열왕기(列王記), 즉 왕들의 기록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왕이 있다는 자체가 그만큼 이 세상이 멸망할 수밖에 없는 근거를 제시하고 있는데, 원래는 왕이 필요가 없다는 말이죠. 그런데 왜 왕이 있어야하는 겁니까? 왕은 하나님 한 분으로 충분합니다. 다른 왕들은 필요하지 않는데, 그런데 왕이 등장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제거하기 위해서 왕을 주셨다는 겁니다.

옛날에는 왕이라고 했지만 지금은 대통령으로 보면 되는데, 그러면 대통령이 왜 필요합니까? 이 세상을 떠나기 싫어서 대통령이 필요한 겁니다. 살고 싶어서, 즉 죽기 싫어서 대통령이 필요하다는 말이죠. 이 땅을 떠나고 싶어도 대통령이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고 하는데, 그런데 대통령이 이 땅을 떠나서 천국에 가는데 무슨 보탬이 됩니까? 아무 보탬이 안 되거든요. 그래서 대통령이 이 땅에 있다는 것은, 그것은 우리가 얼마나 천국에 가기 싫어한다는 증거물로 우리 눈앞에 얼쩡거리게 된다는 겁니다.

당신은 아니야 !!

구원을 시키지도 못할 인물이 지도자라고 행세할 때, 그러면 우리는 "당신은 우리의 구원자가 아니요" 라고 언급해주어야 하는데, 그때는 반드시 근거가 있어야 돼요. 그 근거가 우리가 이번에 살려보고자 하는 열왕기하의 주된 내용입니다. 즉 "대통령 당신은, 왕 당신은 내게 영원한 영생을 주는데 전혀 기여하지 못하고 오히려 방해가 될 뿐입니다" 라는 고백을 우리가 할 수 있도록, 그래서 이 땅에 왕을 등장시켜 놓았다는 말이죠.

예를 들어서, 군인들이 사격연습을 할 때, 가상으로 인민군 표적들이 나오지요. 한 방을 쏘아서 맞으면 넘어지고, 그리고 다른 쪽에서 난데없이 등장하면 또 총을 쏘아서 넘어뜨리고 한다는 겁니다. 그렇다 왜 그렇게 인민군 가짜 그림들의 벌떡벌떡 일어나는 겁니까? 그것은 제대로 총을 쏠 수가 있는지 점검하기 위해서 그렇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땅의 지도자들은 총 쏘라고 있는 거예요. 즉 "너는 우리의 행복을 보장해주지 못해. 너는 영생을 주지 못해" 라고 말이죠. 김영삼도 마찬가지, 박근혜도 마찬가지, 또 문재인도 마찬가지인데, 즉 "구원도 못해주는 것이 왜 자꾸만 껄떡대고 세금을 달라고 하는지?" 라는 식으로, 그것을 하라고 벌떡 일어나서 5년마다 바꾸고 한다는 겁니다. 그게 바로 열왕기상하라는 말이죠.

바꾸고 또 바꾸고 !!

그래서 우리의 시민권은 빌립보서에 나오는 말씀처럼 하늘에 있는데, 그렇게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기 때문에, 하늘에 있다는 결론을 이 세상에 하늘에 있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우리의 마음을 빼앗고 우리에게 행복을 줄 것 같은 가짜 왕들을 우리 앞에 자꾸 얼쩡거리게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왕이 교체되고 이 땅이 영원한 세상이 아닌 것을 확인해주는데, 그렇게 해서 열왕기하에서 왕들을 바꿔치고 바꿔치는 겁니다.

(빌 3:20)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러니 왕의 있음 자체가 바로 죄라는 것인데, 죄라는 것은 우리 생각엔 없어야 되는데 말이죠. 그런데 왕이 있다는 것이 곧 죄가 있다는 것이라고 하면, 그러면 그 죄가 왜 개입돼야 합니까? 그것은 곧 죄의 개입으로 인해서, 즉 그들이 인도하고 안내해줘요. 죄의 원천까지 그들이 아주 고맙게도 인도해주고 있다는 겁니다.

왜 그런고 하면, 왕이 정치를 잘했다고 싶을 때는 백성들이 넉넉하게 살아갈 수가 있거든요. 그러면 하나님을 찾기보다는 정치를 잘하는 임금님을 추앙하게 돼있다는 말이죠. 그렇게 백성들이 "우리의 임금님 때문에 잘됐다" 라고 할 때, 그게 바로 숨겨있는 죄, 그러한 죄의 원천으로 우리를 미끄러져 내려가게 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훌륭한 왕이 있음으로서 인해서, 그렇게 아니라고 한다면 우리가 망하면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도 있는데, 그런데 왕이 너무나 훌륭하다는 말이죠. 왕이 훌륭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부르짖을 기회조차도 박탈을 당할 경우가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가정에서 남편이 문제를 일으키고 말썽을 좀 피우면 좋겠는데, 그런데 따박따박 월급을 갖다 주고, 그리고 6시에 땡 하면 집에 들어온다는 겁니다. 그리고는 팔을 걷어붙이고 아이들 숙제를 봐주고 청소를 다해주는데, 그야말로 아내가 손에 물도 못 만지게 한다는 말이죠. 그리고 TV드라마를 볼 때도 끝까지 봉사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럴 때 아내가 "주여, 어서 이 세상을 떠나기 하옵소서" 라고 합니까? 그런 기회가 주어지던가요? "공주도 한 두 번이지 이런 대접은 이제 지긋지긋해요. 받기 싫어요" 라고 하던가요? (ㅋㅋ) 그만큼 괜찮은 남편 때문에 푹 죄에 젖어드는 겁니다. 그러니 죄라는 것은, 이 세상을 살만한 곳으로 왜곡하도록 해석하게 만드는 모든 요인들, 그게 곧 죄가 된다는 말이죠. 떠나야 할 곳을 머뭇거리게 만드는 그게 죄가 된다는 겁니다.

만약에 왕이 없었다고 하면 !!

여기서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봅시다. 왕이 있어야지 우리 자신의 죄를 안다고 했는데, 그런데 만약에 왕이 없다고 하면, 그러면 순수하게 하나님만 쳐다보고 "왕은 필요가 없어. 우리는 하나님만 있으면 돼!" 라고 하면서, 그렇게 살아갈 수 있지 않겠느냐는 말이죠.

과연 그렇습니까? 그렇게 살아갈 수 있습니까? 만약에 방금 제가 한 말이 맞다고 하면, 즉 "그러면 우리가 왕도 필요가 없이 깔끔하고 투명하게 하나님만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면 되지 않겠는가?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다운 아닌가?" 라고 했을 때, 하지만 그렇게 나오면 어떻게 됩니까? 그 하나님이 바로 우상이 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그 하나님은 진짜 하나님이 아니라는 말이죠. 그러면 진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하나님을 뜯어낼 때, 즉 우리가 생각이 하는 하나님이 뜯겨져 나가야 비로소 처음으로 얼굴을 내미는 분인데, 그렇게 자기를 공개하는 하나님이 참된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그렇게 하나님 뒤에 진짜 하나님이 숨어있는데, 물론 인간들은 진짜 하나님은 생전 생각도 못하고 "오직 하나님만 충성하고 사랑하겠습니다" 라고 하는데 말이죠. 하지만 그렇게 하나님과 순수하게 관계를 맺음으로서 자기는 순결하고 거룩하다고 여기는 것이 곧 착각인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오인과 오해를 자꾸 유발시킨다는 겁니다.

그런데 선지자는 왜 뒷북을?

이렇게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어디 있느냐 하면, 이제부터가 어려워요. 선지자가 백성들을 가르치는 게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평소에는 가만히 있다가 왕 때문에 문제가 일어났을 때 뒤늦게 튀어나와서, "왕이시여, 그것은 잘못입니다. 우상숭배입니다. 그래선 안 됩니다. 그것은 율법에, 언약에 어긋납니다" 라고, 그렇게 지적질을 하는 방식으로 등장한다는 말이죠.

그렇다면 백성들의 입장에서 두 가지 경우를 생각할 수 있어요. 첫 번째는 "선지자, 네가 해라" 라는 겁니다. 남의 일에 간섭하는 것이 얼마나 재미가 있는지 모르는데, 그렇지요? 두 번째는 "왕 나서기 이전에 네가 사전에 예방하지" 라는 것인데, 그런데 왜 뭔가 일이 벌어지면 와서 뒷북을 치듯이 지적질을 하느냐는 겁니다.

선지가가 왜 그렇게 해야 하느냐 하면, 왕과 백성이 결탁돼있기 때문에 그래요. 왕이 등장할 때, 백성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고 하니, 눈에 안 보이는 추상적인 하나님보다는 차라리 가까이에 있는 왕이 자기들에게 아쉽고 필요한 것을, 그렇게 자기들의 소망을 들어주었으면 한다는 겁니다. 왕이 영웅적인 희생정신을 발휘해서 다 획득해서 자기들에게 제공했으면 좋겠다는 말이죠.

예를 들면, 그 이상적인 왕이 솔로몬인데 다윗이나 솔로몬 때 백성들이 별로 한 것이 없어요. 초반기에 솔로몬과 하나님이 계약해서 잘했다는 것 때문에 넘치도록 축복을 받으니까, 이제 백성들은 제2의 솔로몬, 제2의 다윗만 고대하고 있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 왕들이 등장하면, 북쪽에선 여로보암 다음에 나답, 바아사가 나오고, 이쪽 남쪽은 르호보암 다음에 아비암, 아사, 여호사밧 순으로 나오는데, 그렇게 나올 때마다 백성들은 무엇을 생각하느냐 하면, 선대에 잘 나갔던 것, 즉 하나님의 기적으로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고, 그렇게 승리하게 되면 보너스가 주어지게 돼있다는 겁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짓는데 있어서 성전을 짓는 재료들이 풍성하다는 말은, 성전에 계시는 하나님께서 직접 전쟁을 해서 이스라엘 주변의 나라들이 갖고 있는 그들의 노동의 결실물을 하나님께서 빼앗아 와서, 그래서 자기들은 아무런 노동도 하지 않은 풍요로운 삶으로 보장해줬다는 축복의 결실, 그것을 백성들이 계속 기대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런 왕이 좋았는데 그 왕이 또 나타나지 않을까? 다윗과 같은 왕이 어디 있느냐?" 라고, 그렇게 나온다는 말이죠.

우리 목사님은 참 훌륭해요 !!

실제로 교회도 마찬가지인데, 그저 생활비도 올리지 않고 비천한 가운데서도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는 목사님이 와서는, 그 동네에서 "이런 목사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다" 라고 해서, 다른 교회 교인들까지도 그 교회로 오고, 그렇게 자기들은 가만히 있어도 교인들이 오니까, 처음에 교회를 지을 때 목돈을 냈던 장로들은 이제는 안 내도 되는데, 십일조를 안 해도 교회는 돌아간다는 말이죠.

교회란 시설물관리와 거기에 필요한 인건비를 충당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이제는 가만히 있어도 교회가 돌아가니까, 그렇게 헌금이 나오니까 뭐라고 합니까? "우리 목사님이 바르게 목회를 하니까 주님이 축복해서 교회가 잘 돌아간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는 거예요.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하는데, 자기가 돈을 안 내도 된다는 것은 감추고 엉뚱하게 딴 소리를 한다는 말이죠(ㅋㅋ).

제가 오늘 낮 설교시간에 그런 이야기를 했거든요. 인생을 살아가면서 거짓말을 안 하고 사는 사람들을 만나봤으면 좋겠다고 말이죠. 입만 떼면 거짓말을 해대는 관계가 바로 부부관계인데, 즉 누가 누가 거짓말을 잘 하느냐는 게임인데, 살면 살수록 그 기술이 늘어간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왕을 주신 이유를 알겠죠? 남을 희생을 이용할 요량만 하지, 즉 가만히 있어도 축복이란 이름으로 오는 공짜 심보의 구체화가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자기 공짜를 정당화시켜주는 하나님인데, 하지만 무엇을 잘했다고 이런 하나님을 찾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찾고 싶은데, 왜냐하면 창세기 3장의 사건으로 아담의 후손들이 살기가 너무 빡빡하고 힘드니까, 그래서 고생을 덜하고 싶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선 왕을 보내서 어떻게 하십니까? 왕을 찾는 자들에게 왕이 주어질 때, "이제 왕이 고생해서 우리가 덕을 보자. 왕이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맺어서 우리 백성들은 덤으로 많은 혜택을 누리자" 라고 하는데, 그런 사고방식이 도대체 어디서 나왔느냐는 겁니다.

몰라, 몰라요 !!

왜냐하면 그렇게 복을 원한다면 "나는 복을 받아 당연하고 마땅하다" 라는 근거가 있어야 된다는 말이죠. "이 땅에서 힘들지 않고 살아야 될 자는 바로 나다. 나 같은 인간은 고생을 덜해야 되고 마땅히 행복해야 돼" 라고 하는데, 그런 터무니없는 망발이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나오느냐는 겁니다.

성경에 과연 그런 근거가 있습니까?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까? "당신을 왜 그런 생각을 합니까?" 라고 하면, "나도 몰라" 라고 하는데, 결국은 무지죠. "남은 힘들어도 나는 행복해야 된다" 라고 하는 일방적인 주장을 왜 하는지, 그것은 몰라요. 알 수가 없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모르는 것에 대해서 계속 추가적으로 왕을 주시는데, 그렇게 왕을 주게 되면, 왕이란 죄를 실어 나르는 지위, 그런 위상을 이스라엘과 유다에 허락함으로 말미암아서, 그러한 죄의 개입이 어디로 찾아간다고 했습니까? 몇 분이 지났다고 벌써 다 잊어버렸지요? 죄의 원천을 찾아가게 만든다는 겁니다.

왕, 하나님, 백성 !!

백성들이 왕을 찾을 때, 그 뒤에는 괜찮은 왕을 주실 것이라고 하나님이 있다고 여기는데, 그래서 백성들은 왕을 찾고, 그런 하나님, 그이고 다윗과 같은 왕, 이 셋이 하나의 세트가 되어서 진짜로 오신 왕과 하나님을 죽여버린 사건이 곧 십자가 사건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왕과 하나님과 백성은 떨어질 수가 없다는 말이죠.

"나는 무조건 행복해야 되고 나는 영생을 얻고 천국에 가야 된다" 라는 욕망이 왕을 찾았고, "나는 못하지만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왕이 해낼 것이고, 그 능력이 어디서 오느냐 하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능력이 주어지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이 보내신 왕 덕분에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 라고 하는데, 이게 바로 유대교가 아닙니까?

낮에도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유대교가 모든 종교의 종합선물이에요. 모든 것이 그 안에 다 들어있어요. 유대교의 기본적 바탕은 바로 "우리가 원하고 있다" 라는 것인데, 무엇을 말인가요? 하나님의 축복을 원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 "네가 무엇인데 복을 받아야 돼?" 라고 한다면, 제가 여러 번 이야기를 했지만, "그것은 몰라" 라는 겁니다.

그래서 인간은 "무엇을 한 적이 있어? 글쎄? 내가 왜 원할까?" 라는 사실, 즉 자기가 왜 행복을 추구하고 원하느냐는 것에 대해서 끊임없이 자기 반성과 자기 분석을 계속해서 해나가고 있다는 겁니다. 오늘날에도 여러 가지 정신분석학이나 철학에서 계속에서 시도하고 있다는 말이죠.

그런데 신학에서는 이것을 왜 안 하느냐 하면, 신학은 그 자체가 교회에 교인들의 숫자를 모으기 위해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신학 역사가 그래요.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도 몇 문장만 외우면 하나님의 성도로 봐주기 위해서, 그래서 만든 것이 삼위일체라는 말이죠. 삼위일체라는 문장을 외우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겁니다.

이게 전부 다 교회라는 것을 정신적 통합체로 구성해서, 그렇게 사람들을 모아서 교회가 힘, 즉 자체적인 권력을 얻기 위한 일이기 때문에, 그러니 신학은 진리를 추구하는 게 아닙니다. 어떻게 교회를 키울 것이냐 기여할 때 신학이 가치가 있다는 말이죠.

동성애를 용납하라 !!

미국의 어떤 신학자는 "동성애를 용납하라" 라는 신학을 펼쳤는데, 제가 그 사람의 신학을 십자가 마을에 써놨습니다. '데리다를 읽는다. 바울을 생각한다' 라는 것이 그 내용인데 말이죠. 로마서를 다시 해석해서 동성애를 용서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한다는 겁니다.

왜 신학자가 그렇게 주장하느냐 하면, 교회가 이 사회에서 자꾸만 관심 밖에 있으니까, 그래서 돈이 안 들어오는 거예요. 과거에 교회에서 하던 할 일을 이제는 국가에서 복지정책으로 다 하니까, 교회도 한 소리를 하고 싶은데 그게 통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도 여러분한테 필요한 기관입니다. 사회단체입니다. 우리 교회가 책임지고 사회를 위해서 빛과 소금이 될 테니까, 여러분이 협조해주시고 아이들을 좀 보내주세요. 우리는 언제든지 개방돼있고 열려있습니다. 기존신학은 너무 고리타분한데 우리는 다 깨쳤습니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종교는 살아야 된다고 하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불교와 천주교가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면서 권력층을, 틈새시장을 노린다는 말이죠. 나라가 미처 못하는 것을 교회가 담당해서, 그래서 교회는 부동산을 제공하고 나라에서 복지자금을 타내서 운영비를 충당하는데, 그러면 목사의 생계보장도 되고 말이죠.

교회는 무조건 살아남아야 한다 !!

하지만 그렇게 하는 모든 것이 무엇입니까? 이것은 결국 교회는 진리에 관한 문제가 아니고, 교회는 무조건 살아남아야 되겠다는 것이죠. 그러면 저는 묻는데, "왜 살아남아야만 되는데요?" 라고 말이죠. 그러면 "교회는 예수님의 머리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라고 하는데, 하지만 말이 앞뒤가 바뀌었다는 겁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주께서 살아계시기 때문에 그 몸을 만드시는데, 그걸 왜 인간이 만들어야 되느냐는 것이죠.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되는데, 고객이 원하니까 만든다고 말이죠. 그렇게 하면 될 것을 가지고, 무슨 유형교회도 있어야 되고 하면서, 되도 않는 신학 이야기를 하지만, 교회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 붙든다고 되는 게 아니고, 오히려 그게 교회를 망친다는 겁니다.

예수님만이 머리가 되는데, 그런데 머리도 아닌 것이 왜 간섭을 하느냐는 말이죠.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신학은 탈락인데, 진리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겁니다. 교회가 작아지면 진리가 아니고 복음이 아닌 줄로만 알고 있다는 말이죠.

진리를 알기 위해서 기껏 노력한다는 것이, 인간은 자기의 미래에 대해서, "내가 왜 행복해야 되지? 행복하지 않아도 되는데 왜 행복을 추구하지?" 라고 하면서, 도대체 무슨 괴물이 들어있기에 '나'로 하여금 이렇게 더 살아야 되고, 행복해야 되고, 죽으면 안 되는지, 그게 어디서 나왔는지 연구하고 있다는 겁니다.

제멋대로 '패턴'을 끄집어내는 인간 !!

그 연구하는 과학과 인공지능, 모든 철학들이 집결해서, 제가 여기서 끝날 때까지 그들이 얼마나 노력하는지 정리를 해드리겠습니다. 제가 여기에 무작위로 이렇게 '01101100' 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저의 마음대로 인데, 자연세계 자체가 무작위라는 말이죠. 이것은 제멋대로 인데, 그렇게 인간은 제멋대로 속에서 무엇을 끄집어내느냐 하면, 패턴을 끄집어낸다는 겁니다.

하나의 예를 들면,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은 0, 개를 키우는 사람은 1, 아무 것도 안 키우는 사람은 뛰어넘고, 이렇게 보면 011인데, 역시 개를 키우는 사람이 많으니까 이렇게 되겠지요. '001110110' 라고 말이죠. 11 다음에 0이 나올 확률이 많아지는데, 그래서 개를 키우는 사람이 두 번 나올 때 고양이는 한 번이라고 패턴화를 시키는데, 질서화를 말이죠.

이런 짓을 왜 하는지 모르겠지요? 그것은 바로 무작위한 가운데서, 인간은 거기서 의미를 끄집어내는 겁니다. 즉 나름대로 질서를 본인이 부여하는 거예요. 그래서 11 다음에는 0이 나온다고 하면서, 그렇게 패턴화를 시키고, 또한 질서화를 시킨다는 말이죠.

계속해서 패턴화, 패턴화 !!

그 다음에는 골프채가 있는 사람을 1, 없는 사람을 0으로 하면, 이것만 보는 것이 아니고 좀 더 길게 보는 겁니다. 골프채가 있는, 이런 패턴 하에 있는 사람이 하나씩 나온다면, 그러면 이 전체가 골프채가 나오기 위해서 이러한 절차, 여기에선 골프채를 1로 했지만,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 개를 키우는 사람을 합쳐서 좀 더 나가보니까 어떻게 됩니까?

만약에 이 사람이 골프채를 가지고 있다면, 이 전체를 1로 간주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를 0으로 간주한다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단순화에서 점점 더 복잡화로 층이 높아지기를 시작하는데, 여러분은 아직도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지요?

세 번째 이야기는 무엇인고 하니, 현재 전쟁 중에 있는 국가를 1, 그리고 전쟁이 끝난 국가를 0이라고 했을 때, 이 패턴은 고양이를 가지고 있는 경우와 같이 단순하지가 않는데, 그리고 골프채의 경우가 아니고, '10011001' 라고 하는 전체적인 상황 속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패턴화를 찾아내는 겁니다.

그러면 집에 고양이 키운다고 자랑질하는 16세 소녀가 세상을 보는 눈과, 그리고 골프채가 우리나라 경제에 기여하는 바라고 생각하는 40대 아저씨가 이 세상을 보는 범위가 누가 넓겠느냐고 했을 때, 40대 아저씨가 높겠지요. 어느 동네에 14살 아이가 "짬뽕이 좋아, 짜장면이 좋아" 라고 하면서 비교를 하다가, 16세에는 "고양이가 좋아, 개가 좋아" 라고 하다가, 그들이 40대가 되면 "골프채가 있다, 없다" 라고, 그렇게 나온단 말이죠.

그러다가 나이가 60세에 가까이 되면 어떻게 됩니까? "이러다가 그만 전쟁해야 될지도 몰라. 그래서 우리도 핵을 준비해야 돼" 라고 하는데, 마치 홍준표처럼 말이죠. "언제까지 미국에 기대해선 안 돼. 북한도 했으니 우리도 사이좋게 준비해야 된다" 라고 한다고 하면, 그것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어떻습니까?

그러면 사람들은 60세가 된 홍준표라는 사람의 시건머리가 14세의 "짬뽕이 좋고 짜장면은 싫어" 라고 것보단 더 깊어졌다고 생각하겠지요. 그럴 때 사람들은 이 사람을 지도자로 뽑는다는 말이죠. 이 말에 기분이 상한 분도 많이 있겠지만, 예를 들어서 그렇다는 겁니다. 세상의 추상화, 정신화 구조는 이러한데, 즉 단순화에서 복잡화로 넘어가면서 추상화가 된다는 말이죠.

마지막 네 번째 사례는 무엇인고 하니, 복음이 있다는 것을 1, 복음이 없다는 것을 0으로 하면, 그렇다면 어떤 패턴을 해도 이 패턴은 부질없는 것이라는 것을 1로 하고, 그래도 살만큼은 살아야 되지 않는가를 0으로 한다고 하면, 이 패턴화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겁니다.

막장 드라마든, 황금빛 인생이든 !!

그런데 14세에서 60세로 가면서, 60대에 은퇴한 사람들은 맨 날 TV조선이나 JTBC의 썰전을 보는데, 그리고 20대는 맨 날 요리프로를 보는데, 그러면서 60대가 20대를 보고 뭐라고 합니까? 제발 수준이 있는 것을 보면서 생각하는 것을 좀 높이라고 하는데, 하지만 그게 말이 됩니까?

그러나 '알쓸신잡'을 보든 '황금빛 인생'을 보든 무엇을 보든, 나중에 나이가 들면 다 똑같다는 겁니다. 아무리 "인간이 지혜가 있다. 정신적으로 깊이가 있다. 혜안이 있다" 라고 해도, 그것이 다 부질없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이 세상은 무작위, 즉 무의미하기 때문에 말이죠.

과학자들이 연구를 해서 인공지능을 새로 개발했다는 겁니다. '딥러닝(Deep Learning)' 이라고 해서, 병렬로 연산해서 학습을 반복하면 스스로 깨우치는 게 있다는 겁니다. '알파고' 다음에 '알파고제로'가 나와서, 인간들을 빼고 저희들끼리 바둑을 두고 약점을 스스로 보완하면서, 그런 식으로 인공지능이 발달하는데, 하지만 인공지능을 발명해봤자 이런 패턴은 '011' 식으로 하는 다른 것보다 조금 더 긴 것뿐이지, 이게 복음입니까? 아니라는 말이죠.

결국, '나는 정당하다' !!

제가 지금 이런 이야기하는 것은, 인간들이 태어나서 살아가는 환경이, 그게 자기의 전공분야가 있고 자기 일에 전문가라고 우기게 되면, 그 다음부터 그 선에서 패턴이 그만 중지가 돼버려요. 즉 "목사님, 복음이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소를 키우는데 전문가입니다" 라고 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소가 천국보다 더 소중해진다는 말이죠.

다시 말해서, "나는 복음에 대해서 죄인인 것을 받아들이겠는데, 그런데 소를 키우는 것까지도 죄라고 하면 못 참습니다" 라고 하는데, 하지만 소를 키우는 게 어디서 나왔습니까? 지난 수요일에 야곱이 양을 키우고 염소를 키우는 이야기를 했지요. 야곱이 어디 멘델의 법칙을 이용했습니까? 야곱이 양을 키우는 전문가라고 우기는 순간, 그 순간 야곱은 떨어져 나가야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아무리 "인생이 뭐냐? 성경이 뭐냐?" 라고 해도, 우리는 이 패턴을, 이 질서를, 이 범위 안에서 못 빠져 나왔다는 겁니다. 우리는 결국 이것을 통해서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나는 정당하다. 그러니 내가 하는 일까지 죄라고 몰아세우지 말라" 라고 한다는 말이죠.

여기에 목회까지 포함시키면 어떻게 됩니까? "이 아파트 단지를 얼마나 돌면 교인이 몇 명이 나오겠느냐?" 라고 하면서, 자기가 목회자니까 자기 질서화를 유지하는 겁니다. 물론 하늘나라를 확장시키고 마귀와도 싸우기 위해서 그런 짓을 한다고 하는데, 그러면 자기가 하는 그 일, 그러한 패턴화는 죄가 아닙니까?

무슨 말이냐 하면, 예를 들어서 어떤 교회에 교인이 40명이 있는데 옆에는 5천명이 모이는 교회가 있다고 합시다. 처음에는 객기를 부리면서 "나는 하나도 안 부럽다" 라고 하는데, 그래도 40명이 유지될 때는 안 부러워요. 소박하게 보내면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만 열 명이 옆 교회로 갔거든요. 그래도 안 부러울까요?

이 사람에겐 큰 교회 목사가 왕인데, 그리고 그 목사 뒤에는 하나님이 실재한다고 보는 겁니다. 즉 "나-백성-하나님", 그렇게 셋이 한 세트로 돼있어요. 그래서 "왜 나는 5천명이 못 됐느냐?" 라고 하는데, 그러면 저는 묻습니다. "네가 뭔데 돼야 되는데?" 말이죠. 그러면 할 말이 없다는 겁니다.

죄의 원천을 찾아서 !!

우리가 열왕기를 보게 되면, 자기가 추상화나 패턴의 다양성, 즉 남들보다 더 시건이 있음을 자랑하기 위해서, 그렇게 자기가 공부를 많이 했다는 것을 점점 늘어봤자, 하지만 그게 복음 앞에선 어떻게 됩니까? 이런 죄의 개입은 죄의 원천을 찾아간다는 겁니다.

죄의 원천이 뭐냐 하면, 우리 인간은 죄라는 것을 몰라요. 하나님께 왜 버림을 받아야만 되는지, 그것을 인간이 죽어도 몰라요. 오직 예수님이 아버지한테 버림을 받는 그 현장만이 유일하게 죄가 죄답게, 즉 저주가 저주답게 드러나는 순간이 된다는 겁니다.

인간을 구원하는 게 목적이 아니고, 아니 구원이 되려면 본인이 누군지 알아야 구원이 되는데, 그런데 본인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그냥 구원만 외치고 있다는 말이죠. 고기를 잡는 사람이 고기가 잘 잡히지 않으니까 교회에 가서 기도를 했는데, "주여, 고기를 잡히게 해주시옵소서. 베드로는 봐주면서 저한테는 왜 안 해줍니까?" 라고 말이죠.

그런데 예수님이 베드로한테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게 해서 고기를 잡게 한 결과가 뭐였습니까? 자기한테 고기를 잡게 해주신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저주했다는 겁니다. 그게 고기를 잡는 혜택이 없이도 얼마든지 가능한데, 복잡하게 고기까지 주면서 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죠.

베드로는 그 정도가 아닌데, 물 위를 걸었고, 그리고 장모의 병이 나았습니다. 혜택이 한 두 가지가 아닌데, 귀신을 쫓아냈고 오병이어 기적에 동참했고 이루 말할 수가 없지요. 그렇게 해줘도 결국 뭐냐 하면, 단절, 즉 패턴화를 시키는 이쪽 세계와 복음의 세계는 건너갈 수 없다는 겁니다. 도저히 뛰어가려야 뛰어갈 수가 없게 돼있다는 말이죠.

그러면 패턴화하면 할수록 자신의 지식이 점점 늘어나고, 그래서 그만큼 세상에 대해서 보다 정밀해졌고 정확하게 안다고 우기게 되는데, 그 모든 것은 죄에 가까워졌다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은 반대로 이야기하는데, "네가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천국 못 간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게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 왔다" 라고 말이죠.

(마 18:3)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인간 세계에서는 무수한 변화는 변수를 많이 모집해서 변수를 보다 더 확률 높게 유지하려고 해요. 그래야 실수가 없을 테니 말이죠. 그런데 그 변수를 어느 세월에 다 끌어 모읍니까? 몇 살을 살아야 변수가 다 나옵니까? 철저에 철저를 기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변수를 다 고려했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게 안 되는 겁니다.

내가 다리를 놓아야지 !!

그런데 성경은 뭐라고 합니까? 우리 인간이 "변수로서 보다 더 진리에 가깝게 가도록 하겠다" 라는 말은 무슨 심보를 드러내느냐 하면, 단절이 돼있는 복음의 세계와 인간 세계를, 그것을 본인이 확보한 정보와 지식으로 뛰어넘으려고 한다는 말이죠. 즉 여기가 자기가 다리를 놓으려고 한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기도해서 병이 나았다고 하면, 어떤 종류의 병이냐는 겁니다. 류마티스나 요즘 유행하는 독감, 그런 것은 손을 대지 못할 겁니다. 얼마나 지독한지 몰라요. 그런데 그냥 미열 정도는 기도해서 낫겠다고 한다는 말이죠. 사실 그런 것은 약국에 가서 판콜에이 한 병을 먹으면 다 낫는데 말이죠.

하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병이 생기는데, 그 병을 낫기 위해서 감기는 성경 두 장 읽고 기도는 30분을 했는데, 그런데 독감은 두 장으로 안 되고, 일곱 장으로 늘여야 되고 또 기도는 한 시간을 해야 된다고, 그렇게 처방전을 내린다는 겁니다. 처방전을 신부나 목사가 내리도록 환자는 그 입만 쳐다보고 있는데, 그렇게 서로 협상이 다 돼있다는 말이죠.

무당이 그냥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닌데, 고객들이 무당짓을 하도록 부추겨요. 그런 짓을 못하겠다고 하면, 자기가 알아서 지킬 테니까 머리 위에 손을 얹어달라고 하는데, 그래야 기분이 좋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병이 나았잖아요. 그러면 그 목사 안수 때문에 병이 나았다고 하면서, 그게 홍보의 재료가 되는 겁니다. 한 마디로 전부 다 개판이라는 말이죠.

왕과 참 선지자 !!

이제 슬슬 본론에 접근해갑니다. 열왕기상, 열왕기하라는 것이, 옛날 기록이 왜 있느냐 하면, 열왕기상하를 다 읽어보면 왕들의 특징이 나와요. 왕들의 특징은 "하나님, 살려주세요" 것인데, 거기에 대해서 선지자의 특징이 뭐냐 하면, 여기 앞에 뭔가 하나 붙여야 되지요. '참' 선지자라고 말이죠.

엘리야 시대에는 선지 생도가 많아졌는데, 그리고 그게 그 뒤에 엘리사 시대 때는 선지자들이 굉장히 많았고 말이죠. 그런데 그만 나라가 망하니까, 그래서 예레미야 때는 그들이 그만 가짜 선지자가 되고 마는데, 즉 월급쟁이 선지자가 된다는 말이죠. 반면에 참 선지자는 점선인데 "죽으면 죽으리라" 라고 말이죠. 그런데 만약에 그 살려고 하면, 짐승이 그만 물어 죽인다는 겁니다.

여로보암 왕이 벧엘에서 금송아지를 섬겼는데, 어떤 선지자가 남쪽에서 올라가서 여로보암 앞에서 이렇게 이야기를 해요. "당신은 거짓 제단을 만들었기 때문에, 나중에 남쪽에 요시야란 왕이 나오는데, 그 왕이 이 제단에서 이미 죽었던 사람의 재는 다 뒤집어지고, 이런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죽여버립니다" 라고 했다는 겁니다. 그게 300년 이후에 일어나는 일인데 말이죠.

그때 왕이 "네가 건방지구나. 저 놈을 잡아라" 라고 하면서 손을 내밀었는데, 그 순간 그만 손이 그만 석고상처럼 굳어졌어요. 다시 오므려들지 않는데, 그래서 기도해달라고 해서 기도해주니까 풀렸다는 겁니다. 그렇게 풀리니까 여로보암이 "당신은 참 선지자다. 당신을 위해서 많은 재산을 주겠다" 라고 했는데, 물론 그 선지자는 거절을 하고 말이죠.

여로보암이 왕인데 하나님을 찾는데, 자기가 왜 하나님을 찾습니까? 자기의 왕 지위를 내려놓기 위해서 찾아요? 그게 아니면 왕의 지위가 계속해서 강화되고 사람들의 존경받기 위해서 하나님을 찾아요? 존경받기 위해서 하나님을 찾지요. 이것이 바로 죄라는 겁니다. 왕이 됨으로써 비로소 새롭게 등장한 죄라는 말이죠.

다시 말해서, "그 어떤 일이 있더라도 확보된 나의 권력 자리는 포기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신이시여, 내 자리를, 내 것을 지켜주시고 확장시켜주소서" 라는 것인데, 그래서 좋은 선지자 만났으니까 자기가 드릴 것을 드리겠다고 나서는 겁니다. 그런데 이 선지자는 성경에 이름도 안 나왔는데, 하나님께서 이 선지자를 보고, "오던 길로 가지 말고 다른 길로 빠져라" 라고 지시를 내리신다는 말이죠.

북쪽은 왕, 남쪽은 성전 !!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왕과 대비되는 것은 바로 성전인데, 이 성전은 유다, 즉 남쪽에 있다는 겁니다. 남쪽에 있는 성전은, 북쪽의 어떤 것도 이것을 대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는데, 성전은 그냥 건물처럼 보인데, 그러나 북쪽은 성전을 대체해서 인간 권력자가 있는데, 그게 성전을 대신하고 있다는 겁니다.

벧엘과 단에 세운 성전은 남쪽성전을 모방해서 여로보암이 만들었는데, 그렇게 만든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남쪽 성전을 찾아가지 말라고 한 거예요. 그러니 북쪽의 모든 왕의 속성은 남쪽 성전의 취지를 거부하는 속성으로 그들은 살아가고 있는데,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북쪽 나라를 떼어준 겁니다. 그리고 일반 백성은 그 취지를 전혀 모르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지금까지 왕의 혜택을 입었기 때문에 말이죠.

선지자와 여로보암 왕의 이야기는 열왕기하가 아니고 열왕기상에 있는 이야기인데, 성전 중심에서 남쪽에서 하나님 사람, 즉 선지자를 지적하기 위해서 왕에게 보냈단 겁니다. 그런데 이 선지자가 왕은 피했지만, 북쪽의 늙은 선지자가 거짓말로 "나도 선지자인데 천사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나한테 대접을 받으세요" 라고 나오자, 여기에 그만 넘어가고 말았다는 겁니다.

"왕을 피하라" 라는 것은 북쪽에서 어떤 대접도 받지 말라는 것인데, 이건 성전 유지에 어떤 타협의 여지도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만 늙은 선지자의 대접을 받고 말았다는 것이죠.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그래서 그만 사자가 와서 이 선지자를 물어 죽였다는 겁니다.

물론 사자가 먹지는 않았는데, 즉 배가 고파서 죽인 것이 아니라는 말이죠. 이 선지자는 성전의 위치에서 죽음을 보여주는데, 그러니 선지자가 죽음으로 말미암아서, "죽음을 야기한 성전이 없는 이쪽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죽은 세상이다" 라는 것인데, 이것을 열왕기에서 선지자가 이야기한다는 말이죠.

선지자는 권력을 취하지 않아 !!

선지자는 어떠한 자기 권력을 얻고자 하지 않는데, 그리고 그 나라에 대해서 기여하지도 않아요. 그냥 백성들과 왕과 한 통속이 되어서 잘 되고자 할 때, 하나님이 숨겨놓은 언약의 법칙을 들이대서 "이러니까 죄지. 이러니까 저주받아 마땅하지" 라고 하면서, 그 말만 던지고 사라져요. 그래서 "저를 살려주세요" 라는 것이 없는데, 왜냐하면 성전 안에 있는 자는 영원히 죽지를 않기 때문에 말이죠. 주님의 지시를 받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겁니다.

결국 선지자가 이야기를 하는 것은 결국 "우리 죽자" 라는 것인데, 그런데 우리는 살고자 하기 때문에 죄의 육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말이죠. 만약에 여러분이 죽었다고 한다면, 여러분은 제2, 제3의 선지자로서 유유자적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겁니다.

10분만 쉬어야 되겠지요.

2018,1,16 재정리함 - 녹취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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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185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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