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하다는 자
갈라디아서 2:6-10 유명하다 는 자
인간에게 있어 ‘자비’란 어울리지 않는 혜택입니다. 사람이 자비를 갖는 것은 사치다. 주어도 감당 못합니다. 그 가치를 모릅니다.
인간이 진실로 원하는 것은 자비가 아닙니다. 자비란 자신을 비참하게 만든다고 여깁니다. 인간이 원하는 것은 자존감입니다. “누구든지 날 건드리지 마라. 신이라 할지라도!”입니다.
꽃으로도 자신을 때리지 말라고 항의합니다. 자존심은 곧 최고 존엄감의 다른 표현입니다. 즉 자신만이 유일한 경배의 대상이라는 말입니다.
이렇듯 인간은 출생하고부터 이 성격이 외부로 노골화되기까지 계속 키워집니다. 작은 씨앗이 큰 나무가 되듯이 작은 악마가 큰 악마가 되는 것입니다.
사태가 이러니 이 세상에 신들이 너무 많습니다. 자연스럽게 경쟁에 돌입됩니다. 이 세상은 그래서 ‘인정투쟁’의 장입니다.
‘유명한 자’로 간주되는 자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 시대를 대변하면서 다른 이들의 삶의 목표로 등장됩니다. “나도 저 사람처럼 되었으면 좋겠네.”를 유발합니다.
목표가 있다는 말은 ‘이미 삶의 방향이 그 쪽이다’는 것으로 정해졌다는 말입니다. ‘안 유명하기’는 삶의 목표에 끼지 못하고 배제된다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과 ‘율법 지킨 자’를 구분합니다. ‘율법 지킨 자’가 율법을 대신할 수 없는 겁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의 끝’은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노선에 있는 자들은 압니다. 예수님 이외에 그 어떤 자도 예수님의 취지를 가릴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주님의 노선에 들어선 사람에게 예수님을 가리는 그 모든 것에 격분합니다. 이 격분이 가능한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자기 자신부터 격분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죄에 분노할 줄 모르는 이는 자신의 우상을 치워버린 자가 아니기에 예수님으로 통하지 않는 다른 노선에서 살아가는 자입니다. 인간은, 자신이 자기를 보는 방식으로 타인을 보게 마련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사도가 된 사도 바울 앞에 베드로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