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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노예 180112강의빌레몬서

서울의존강의201801012a 빌레몬서1장(노예)-이 근호 목사

오늘은 빌레몬서입니다. 신약성경 351페이지, 1절로 3절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우리의 사랑을 받은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과 및 자매 압비아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 지어다”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천국이 무엇이냐, 천국이 어떻게 생겼느냐, 라고 궁금해 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천국은 이렇다, 라고 이야기할 때는 과정으로 이야기하고, 천국 그 자체의 존재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어떤 원칙을 두고 이야기하는데, 그 원칙이 3절에 나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으면 그게 천국입니다.

사람들이 세상사는 것이 너무 힘드니까, 거기에 대한 보상책으로 넉넉하게 여유롭게 살 생각을 합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기입장에서, 고통스러운 자기가 표 나게 고생 안 하고자 하는 그런 요소를 자꾸 기대하고 있는 거예요. ‘천국가면 쉬겠지. 천국가면 맘 편하겠지. 천국가면 고생 안 하겠지.’라는 기대를.

그러면 그것은 자기로부터 고통이 없게 해서 자기가 편한 데로 가기 때문에 자기의 생각에서 벗어나질 않아요. 그것은 자기나라지 천국이 아닙니다. 천국이 아닌 거예요. 천국을 이야기할 때는 자기를 빼고 이야기해야 해요. 내가 어떻게 되든지, 어떻게 고생하든지, 그거는 완전히 제외시키고 이야기해야 돼요. 세상 사람들에게 교회에서 천국을 전할 때, “여러분! 곧 괜찮게 됩니다.”라는 것을 꼭 집어넣는데, 사실은 성경적으로 하게 되면 “여러분은 잘 됩니다.”라는 것을 빼고 이야기해야 돼요.

우리가 잘 된다는 것은 한도 끝도 없어요. 1년에 몇 억을 벌어야 잘 되는 겁니까? 한 20억 벌면 그걸 잘 된 것으로 알고 스톱할 거예요? 20억 노리지 않겠어요? 노리죠. 그럼 얼마나 잘 돼야 잘 되는 것일까요? 얼마나 좋아해야 나는 천국 왔다는 만족감을 본인이 느끼겠습니까?

인간은 밑 빠진 독과 같아서, 밑에서 욕망이 올라오고 그 욕망에 대해서 세상은 충족시키지 못합니다. 본인을 포기하지 못하고 생각하는 모든 천국은, 그건 지옥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본인 자체가 천국에서 만든 것이 아니고 지옥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아담의 저주 속에서 우리가 태어났기 때문에 우리 자체에 무슨 이상이 있어요. 문제 있습니다. 고장나있어요. 고장 난 것을 가지고 고장 난 인간이 원하는 천국은 고장 난 천국이죠. 엉터리 천국이다 이 말이죠.

우리 자신과 예수님하고 한번 비교해보세요. 예수님에 비해서 우리는 가짜입니다. 인간 아닙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아들 아니고요. 그럼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면, 아들이 간 곳이 천국이라면, 아들이 아닌 자는 어디에 가야 당연한 거예요? 그 아들의 나라가 아닌 곳에 가야 당연하죠. 지옥가야 당연한 거예요. 아들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아버지와 아들이 있는 나라, 그 나라에서 뭔가 주어지는데, 3절에 보면 “그리스도를 좇아”, 이것은 ‘그리스도를 따라서’입니다. 이게 원천이고 그 원천에서 뭔가 제공된다는 뜻에서 ‘좇아’입니다. 그 다음에 뭐가 나옵니까?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 것이다.’라고 했죠.

그러면 이 말은 인간에게는 천국 갈 수 있는 은혜와 평강이 생산되지 않죠. 생산되지 않는 것, 그리고 인간이 아무리 돈을 준다고 해도 살 수 없는 은혜와 평강. 이것을 예수님으로부터 부여받고 아버지로부터 부여받는다면, 더는 딴 것 욕심내지 맙시다. 더는. 다른 것은 더 욕심내지 맙시다. 은혜와 평강, 이것이 주어지기 위해서 그냥 하늘에 있는 은혜와 평강을 나누어준 게 아니에요.

그냥 하늘에 있는 평강과 은혜를 나누어주게 되면, 이건 구원받을 사람이 예수님과 그리고 하나님과 늘 있었던 천사들밖에 없어요. 탕자는 집에 들어와도 받아주질 않아요. 그러면 천국에, 은혜와 평강에 무슨 요소가 더 추가되어야 하느냐 하면, 집 떠난 탕자도 받아줄만한 은혜와 평강이 있어야 되거든요. 이 토대, 이 근거를 위해서 하늘에 그냥 계셔도 되실 분이 사서 고생하시는 겁니다. 고생할 필요도 없는 분이 사서 고생을 하셨어요. 영화 15도에 이 땅을 오셨습니다. 오셔가지고 은혜와 평강을 주시는데, 은혜와 평강이 드러나도록 주시죠.

은혜와 평강이 드러나려면, 은혜와 평강에 반대되는 사고방식을 지닌 자에게만 그 가치를 보여주는 겁니다. 의인들은 소용이 없어요. 조금이라도 자기에게 수완이 있고, 능력이 있고, 자질이 있고, 자기가 스스로 개과천선할 수 있은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이 은혜와 평강은 모독을 받습니다. 쓸데없는 것 저리가라고 차버리죠. “내가 열심히 하고 있고, 하고 있는데, 뭐 나보고 아무것도 못한다고? 무능력자라고? 내가 뭔가 이렇게 종교적인 경건과 거룩을 할 수 있는데 해봤자 소용이 없다고? 기도해봤자 안 들어준다고? 그러려면 은혜와 평강 가져가!” 하고 배척하겠죠.

그 일을 누가 했느냐 하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한 거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나름 경건한 사람들이었어요. 성경에 나오잖아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십일조 하는 이 모든 것들, 자기가 한 행동들을 남 안 줍니다. 자기의 거룩에 눈 쌓이듯이 소복소복하게 쌓이는 겁니다. 적금통장에 쌓이듯이. 거기에 비해서 죄인은 아무것도 자기 스스로 누적할 생각도 못하고 적금 부을 생각도 안 해요. 적금은커녕 그냥 반대로 노출시킬 생각을 하죠. “주님, 저 이것밖에 안 됩니다. 나는 나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자입니다. 내 것 지킨다고 그거 때문에 분주하고 그거밖에는 생각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패턴이 굉장히 단순해보이지만, 사실은 구원받는 죄인들의 패턴은 세상 전부를 잘 알고 있다는 거예요. 뭐 공부를 많이 해서 잘 아는 것이 아니고, 살아봤자 죄밖에 지을 게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러한 논리와 세상의 의미를 갖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 빌레몬에게 편지라고 하는 것은 천국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래 보시면 되는 겁니다. 천국의 내용을 담고 있으니까, 우리가 여기서 해야 하는 것은 그 내용을 형성하는 천국의 그 원리와 원칙, 그 방식을 뽑아내면 되겠죠.

그런데 이 빌레몬서에 그게 공식으로 나와 있는 것이 아니고, 어떤 식으로 나와 있느냐 하면, 사도바울이 오네시모라고 하는 그 노예, 그 노예가 있는데, 노예한테는 반드시 주인이 있죠. 그 노예의 주인이 누구죠? 빌레몬이 주인이고 그 종이 오네시모죠. 노예가 있는 거예요. 옛날에는 요새 가정부라고 하는 그 정도의 의미가 아니에요. 주인은 노예의 생명의 은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노예라는 제도를 나쁜 의미로 생각하잖아요.

옛날에는 안 거둬들여도 되는 사람인데, 주인이 워낙 마음이 착해서 그 사람에게 일시키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어서 생존을 보장하는, 그러한 어진 분들, 그게 바로 주인과 종의 관계입니다. 요즘말로 하면 정신병자들 데려다가 새우 잡이 시키는 겁니다. 염전에 가두어놓고 일시키는 것. 그 사람들에게 나라에서 주는 최저생계비 다 빼돌리고. 소 키우는데 소하고 같이 풀에서 자게하고. 죽든지 말든지 일만 직사하게 시키는 그런 관계. 그걸 주인과 노예라고 보시면 돼요. 세상적으로 볼 때는 주인은 약한 자들을 등쳐먹는 악하고 나쁜 인간이잖아요.

그런데 정신병자나 그 가족의 입장에서는 자기 가족도 감당 안 되는 것을 감당해주는 고마운 분이라고, 정신병자를 부려먹는 인간이 정신병자나 가족에게 그런 식으로 갑질을 하고 있는 겁니다. “고마운 줄 알아. 이것들아! 내가 10년 동안 데리고 있었기에 밥이라도 먹고 살았지. 네 집에 가면 소문 다 나고, 이상한 형제 있다고 해서 네 동생 결혼도 못해. 혼사도 다 깨져. 니들이 귀찮게 여기는 것을 내가 거둬서 10년 동안 재워주고 밥 먹여줬으면 됐지. 그래서 나라에서 주는 보조금 가로채도 마땅하지”라는 그런 정신자세가지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나쁜 사람이라고 하는데, 사실은 옛날에는 다 그렇게 했어요. 노예라고 하는 것은 내가 안 거둬주면 굶어죽어요. 옛날에는 농경시대기 때문에 토지가 없는 사람은 도적질이 아니면 살 길이 없습니다. 도적질하다 잡히면 빨리 죽고, 종으로 살면 죽는 게 약간 지연되는 그 차이뿐이에요. 따라서 그 당시의 노예라고 하는 것은 포로 잡힌 자, 전쟁에서 승리한 쪽이 전쟁에서 패배한 쪽의 그 백성들을 포로 잡는데, 그 종으로 잡힌 것도 고마운 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실은 그 적이라고 하는 것은 곱게 온 것이 아니에요. 우리하고 전쟁했잖아요. 전쟁했다는 말은 조금 전만 해도 너 죽인다고 달려들던 사람들이에요. 죽인다고 달려들었는데 전쟁에서 승리하고 나니까, “살려주세요!”가 된 거예요. “그러면 살려줄 테니까 뭐든지 다 할 수 있느냐?” “뭐든 못하겠습니까? 다 하겠습니다.”라는 그런 계약이 된 사람들이에요. “살려주는 대신 종이든 뭐든 다 하겠습니다.”하고, 동의하에 종이 되었기 때문에 그거 뭐, 할 말이 없죠. 계약이 그렇게 되었기 때문에.

그럼 그게 싫으면 이기든지. 저쪽이 이긴다는 말은 뭡니까? 저쪽의 칼 부리가 전쟁에서 진 우리를 향하고 있는 거죠. 그러니까 전쟁할 때는 그냥 단순히 지고이기고 정도가 아니고, 지게 되면 반대 상황으로 우리가 그쪽의 노예가 되는 거예요. 이기니까 주인행세를 하지, 졌으면 입장이 반대로 바뀌는 거예요. 따라서 야무지게 노예로서 다뤄야지 노예를 사람 취급해버리면, 순국선열에 대한 모독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몸 바쳐서~♬ 몸 바쳐서~♬ 모든 가정을 버리고 추운 날 남한산성에서 전쟁했던 그 모든 군사들, 오랑캐 물리치기 위해서 전쟁했던 군사들의 그 희생정신을 짓밟는 거예요.

전쟁을 했으면 야무지게 끝까지 그 전쟁에서 희생정신의 빛을 내기 위해서라도 노예를 절대로 정상인으로 봐줘서는 안 돼요. 그렇게 되면 이 나라를 지켜왔던 선조들의 희생이 아주 무가치하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성경 잠언서에도 나오죠. 노예를 마치 아들로 취급해주면, 잘 해주면 자기가 아들인양 겁 없이 까분다 이 말이죠. 고양이 예뻐해 주니까 침대에 올라오죠. 강아지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하물며 사람일까 보랴. 사람인 노예가 어디서 주인하고 맞먹으려고 합니까? 말이 안 되죠. 노예라고 하는 것은, 노예의 임무는 자기를 잃어버리는 겁니다.

제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아이고, 목사님 요새 무슨 노예가 있습니까?”라고 하는데, 노예 없었던 적이 없습니다. 앞으로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노예는 계속 됩니다. 요즘 노예는 뭐냐 하면 자기를 잃어버리지 않고 자기를 챙기는 그것이 죄의 노예가 돼요. 죄의 노예. 악마의 노예가 됩니다. 자, 악마의 노예란 뭘 노리느냐 하면 자기의 의로움, 다른 말로 하면 자기 정당성을 챙기는 것입니다. 악마의 노예란 자기 정당성입니다. 독자적으로 홀로 살라고 하는 자. 악마는 숨어서 안 보이니까. 악마는 자기 앞에 종을 내세웁니다.

악마가 하는 일이 뭐냐 하면 예수그리스도를 부정하게 만드는 거예요. 그러나 악마는 정면에 나타나서 부정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 사람, 인간을 앞장세워서 철저하게 예수그리스도가 하는 일을 부정하게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공로가 뭐예요? 모든 인간은 죄인인데 예수님의 공로로 구원받죠.

예수님의 공로가 뭐냐, 사람은 할 수 없으되 예수님의 의로, 예수님의 공로로 천국 가는 것이잖아요. 그러면 거기에 대척되어 있는, 예수님이 하는 일에 반대하는 쪽의 핵심은 뭐예요? 예수 당신 덕으로 가는 것이 아니고 누구 덕으로 간다? 내 덕으로 간다는 정신이 형성될 때, 그게 바로 악마의, 사탄의 집단이라니까요. 사탄의 종이라니까요. 오늘날 교회가 그렇다는 겁니다. 교회가. 예수 믿는 것도 자기가 열심히 해서 믿는 것이고.

모든 게 자기가 선택을 하는 거예요. 자기 선택. 자기 결심, 자기 선택이에요. 선택이란 언제나 둘 중의 하나. 선택이라는 것은 둘 중의 하나에요. 그렇잖아요. 선택은 둘 중의 하나잖아요. 선택을 왜 하느냐, 선택하는 내가 좋으라고 하잖아요. 내가 만약 선택했다면 그 선택 자체는 자기 자신이 얼마나 정당하고, 내 자신이 얼마나 의로운가를 티내기 위해서 선택이라는 행위를 보여주거든요. 근데 선택 할 때는 언제나 둘 중의 하나에요. 둘 중의 하나라는 말은 뭐냐 하면 나한테 선택당하지 않는 것은 나의 적이라는 뜻입니다. 나한테 선택당하지 않은 자는 나의 적이다.

드라마가 이렇게 스토리가 전개되게 되면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하는 그런 법은 별로 없어요. 여자가 주인공이라면 꼭 남자는 적어도 두 명 내지 세 명은 붙어요. 여자 비서 하나에 남자 세 명 달라붙어요. 도경이에다가, 5년 전에 사귀었던 남자에다가, 현재 상무에다가 ,전무에다가, 백진희 다 좋아해요. 뭐 저글러스인가 뭔가, 거기에 보면 나와요. 자, 선택을 강요하게 되는데, 그 선택을 본인의 정당성을 위해서 선택하면서 사람들은 무슨 말을 집어넣느냐 하면 역경이라는 말을 집어넣어요. 역경. 고난과 역경. 웃기죠? 누구를 위한 고난과 역경입니까? 누구를 위한? 이번 수련회 바빠서 참석 못했습니까? 뭐 선택을 잘못해서 그랬습니까?

사람들은 걸핏하면 징징대요. 하여튼 슬픈 눈을 다해서 동정심을 유발하려고 해요. 동정심을 유발한다는 것은, 징징대고 어린애처럼 그렇게 한다는 것은 그 전제가 뭡니까? “나는 동정 받을 가치가 있고, 징징대든 뭐하든 간에 당신은 나를 도와줄 의무가 있습니다.”라는 그런 뜻이잖아요. 그렇죠. 그렇게 해서 도움을 받으면 그게 어디에 저장됩니까? 어디에 저장이 돼요? 남의 창고에 저장이 됩니까? 주님의 창고에 저장돼요? 하늘나라에 저장됩니까? 따로 챙긴 내 나라, 내 자리, 내 통장, 내가 확보하려고 하는 정당성, 나는 이만큼 정당하고 나는 살만한 가치가 있고, 나를 건드리면 안 된다는 거기에다가 다 이렇게 모아놓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만나는 사람과의 만남이라는 것은 그냥 신체와 신체의 만남이 아니에요. 그 사람의 신체가 신체답게 되게 된 지난 모든 과거사가 그 신체를 앞장세워서 대동하고 다 만나는 거예요. 이쪽 신체하고 저쪽 신체, 이쪽 과거하고 저쪽 과거하고 만나는 겁니다. 선 볼 때나 상견례 할 때는 물론이고. 회사에서 면접 볼 때도 마찬가지고. 그 누구와 그냥 길에서 우연히 만날 때도 마찬가지고. 제일로 안 만났으면 하는 좋은 경우가 뭐냐 하면 차와 차끼리 부딪치는 겁니다. “뭐야 이거? 운전 똑바로 안 해!”라고 하면서 내릴 때, 안 만났으면 좋을 뻔 했던 거예요.

전에 제가 그런 예를 들었죠. 대구 인구가 250만인데, 어떤 아주머니, 그 어떤 아주머니가 우리 고모죠. 우리 고모가 차를 타고 가는데, 뒤차가 와서 박아버렸어요. 지금 자기 스케줄 있고 바쁜데, 바쁘기도 바쁘고 차 수리비도 나오잖아요. 물론 수리비 보험청구하면 나오지만, 그게 얼마나 짜증이 나는 거예요? 누구야? 하고 내리니까, 자기 오빠, 친오빠였어요. 우리 삼촌이 우리 고모하고 만났어요. 그것도 차사고로. 야, 이거 대단한 확률이죠. 그렇게 만나도 그 사람의 가정환경, 학력, 평소의 생활태도, 스타일 다 나옵니다. 말하다보면 다 나와요. 다시 말해서 “나는 이런 식으로 살아가는 것을 고집하겠다.” 저쪽도 “나는 내 식대로 살아가는 것을 포기할 마음이 없다.” “이렇게 할까?” “안 돼!” “그럼 이렇게 할까?” “오케이!” 이렇게 되죠. 근데 둘 다 자기 의를 포기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자기 의를 포기 안 했죠.

제가 강의 처음부터 다시 하겠습니다. 빌레몬서는 성경이죠. 성경은 무엇을 증거 합니까? 천국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천국을 이야기할 때는 그 속에서 천국의 원리를 우리가 알아내야 하죠. 근데 그 천국의 원리를 설명하는데, 천국은 이런 것이다, 라고 이렇게 설명하는 것이 아니고, 누구와 누구의 만남이에요. 여기 사도바울과 누구와의 만남이냐 하면 빌레몬과의 만남이에요. 그 두 사람의 만남 가운데서 사도바울은, 물론 성령 받았으니까 어느 쪽에 속하는 겁니까? 천국에 속하죠. 빌레몬도 하나님의 은혜니까 천국 쪽에 속하죠. 그럼 둘이 만나서 대화를 하면서 결론이 좋게 나겠어요? 틀어지겠습니까? 둘 다 천국에 속했으니까. 좋게 나겠죠. 오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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