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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세마포 귀신 180112강의야고보서

안양20180112a약1장23절(세마포 귀신)-이 근호 목사

야고보서1장해봅시다. 야고보서1장은 사람들이 이 대목은 너무 어려워가지고 무슨 말인지 그냥 넘어가는 경우에 해당되는 구절이에요. 야고보서1장23절부터 하는데 22절 보겠습니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23절에 보면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여기까지는 사람들이 성급하게 아~ 쉽다. 이리 나와요. 그런데 쉽다 하는 사람이 뭐가 벽에 탁 부딪치냐 하면 25절입니다.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 이 율법 앞에다가 뭘 붙여놨어요? 자유하게 하는 율법.

이 말은 뭐냐 하면 “여러분, 율법 아시지요? 알았으니까 이젠 마음껏 자유롭지요?” 라고 지금 묻고 있는 인상을 주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상식은 법을 알게 되면 자유로워요? 속박됩니까? 속박되지요. 여기서 이제 벽에 부딪히는 거예요. 앞부분의 해석부터 상식에 의한 해석은 다시 수정을 요구하게 되는 겁니다. 세상에 이렇게 좋은 일이 라는 느낌이 오지 아니하면 25절을 통과하지 못하지요. 듣고 행하는 것이 이렇게 기분 좋을 수가! 라고 되지 아니하면 율법 앞에 자유라는 말에 대해서 거부감을 유발하게 되는 겁니다.

만약에 자유 하는 율법을 모르고 난 뒤에 앞에서 “도를 행하는 자가 아니고 듣기만 하게 되면 자기는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딱 하게 되면 이건 뭐가 되는가 하면 요거 됩니다. 숙제됩니다. 숙제.

숙제. 참 짜증나요. 공부 끝나고 난 뒤에 마음껏 공차고 싶은데 집에 가서 놀고 싶은데 숙제가 올무 돼가지고 끝까지 따라오잖아요. 숙제를 해줘야 그 다음부터는 자율시간 되잖아요. 오늘 강의 너무 어려운데. 자유라는 것이 자유를 주는 요건이 있어요. 뭐냐 하면 어떤 부담도 없을 경우를 우리는 자유라고 이야기합니다. 자유 또는 다른 말로 하면 자율.

사실은 자유라고 하는 것은 너무 허황된 개념 같아서 딱 와 닿는 개념은 자유보다도 자율입니다. 자유 한다고 그냥 멍청하니 앉아있지는 않잖아요. 나는 3시부터 4시까지 뭐하고 5시부터 뭐해야지. 뭐해야지. 요게 자기가 세운 자기 규칙이지요. 자기 삶의 시나리오가 자기를 짜는 겁니다. 그런데 자기가 짜놓은 거기에 대해서 속박이란 말을 사람들은 못 느낍니다. 신나지요. 그러면 인간이 생각하는 자유라 하는 것은 숙제를 딱 마치고, 숙제라 하는 것은 본인이 내는 게 아니지요. 남이, 타인이 내는 겁니다.

타인이 숙제를 냈고 그 해달라 하는 대로 해주고 이제는 간섭하지 마세요. 이제부터는 내 생활입니다. 내 생활 도립했으니까 할 도리 했으니까 더 이상 추궁하지 말고 벌준다 이런 협박하지 마세요. 내 자유입니다. 이렇게 된다 이 말이죠.

그러면 여러분, 머리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세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지 말고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리라.” 되어있는데 말씀을 그냥 듣기만하고 행하지 아니했다. 또는 행했다. 라고 생각하는 자체가 ‘아이~ 참 빨리 해줘버리고 이제는 더 이상 내가 스스로 내 인생 꾸려가는 그런 생활을 해야지.’가 밑바탕에 깔려가지고 이 22절, 23절 말씀은 그냥 해주는 셈이 되어버리지요.

율법의 도를 행한 걸 자유라고 봅니까? 아니면 그거 빨리 숙제를 끝내버리고 뒷부분이 자유입니까? 이걸 제가 묻는 거예요.

오늘 성경대로 하게 되면 율법의 도를 행하는 그 자체가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렸던 나의 유일한 즐거운 시간. 자유 시간. 이렇게 생각을 하지요? 라고 지금 우리보고 묻고 있는 거예요. 우리는 지금 이상해. 율법을 듣고 행하는 것이 어떻게 우리에게 그게 아! 막 기분 너무 좋아! 우리 외손녀 맨날 아이 좋아~, 아이 좋아~ 하는데. 아이~ 좋아! 하고 있어요.

그러면 어떻게 율법을 행하는 것이, 나 듣는 건 짜증 나. 듣기만 하면 짜증 나. 행하는 거 아이 좋아~~ 이거 어떻게 가능하냐 말이죠. 뺀질이처럼 “예, 예, 알았습니다.” 하고 내 빼고. 나 혼자 살면서 이게 즐겁지요. 이게 어떻게 가능해요?

그러니 이 성경 말씀이 현실하고 안 맞는 것처럼 그렇게 느껴지게 될 겁니다. 그런데 사실은 말입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에요. 어디서 뚫리느냐 하면 25절에서 뚫립니다.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 자유 하는 율법 앞에 사이에 뭐가 포함돼 있습니까? 자유하게 하는 그 앞에 뭐가 있지요? 온전이지요. 온전한 율법이지요.

여기서 우리가 기존에 율법에 대해서 숙제관념으로 다가온 것은 크나 큰 이건 우리의 실수고 착각이고 무책한 겁니다. 율법을 우리의 속박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면 야고보서에서 이야기하는 하나님이 이야기한 율법정신과는 너무나 달라요. 온전 이라는 말을 이 건물로 봅시다. 10층 건물이 있다 합시다. 10층 건물을 어떤 사람이 사려고 갔는데 한 3층보고 난 뒤에 온전히 내가 전부 다 알았습니다. 이러지는 안을 거 아니에요. 4층 아니지요. 5층 아니지요. 그러면 뭐냐, 10층이라면 10층을 보고 난 뒤에 그 사람은 건물에서 온전한 것을 다 봤지요. 그렇지요?

그러면 온전한 율법이라 하는 것은 율법 속에서 우리는 뭘 알 수 있느냐 하면 미진한 것이 남아있게 되면 이건 뭘 붙이면 안 되느냐 하면 온전한 말을 붙이면 안돼요. 율법을 볼 때 온전치 못한 쪽으로 율법을 보게 되면 이건 율법의 속박을 받고 자유하고 관계가 없습니다. 이건 율법의 지적을 받아요.

옛날에 고등학교 때 보면 지각생 있잖아요. 늦게 오긴 왔고 들어오라 하니까 얻어맞을 것 같고. 야~ 들어 와 들어 와! 하잖아요. 매 맞더라도 들어오라 하잖아요. 율법을 인간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면 율법 속에 들어오면 되는데 율법이 법이니까 율법 속에 안 들어오고 밍기적 밍기적 거리는 거예요. 밍기적 거린다. 머뭇거린다. 머뭇거리면서 머뭇거린다는 말은 뭐냐 하면 자기 자유 시간을 지금도 계속 쥐고 있는 거예요. 내 즐거움을 포기를 못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후딱 숙제 해치우고 빨리 내 자율적으로 자꾸 내빼려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율법에서는 들어와! 들어와! 빨리 들어오라는 거예요. 이리 되어버리면 아무리 숙제를 해도 이게 온전치 못합니다. 이게 어디에 나오느냐 하면 2장10절에 보면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율법은 우리로 완벽한 자유인데 어떤 짓거리를 해도 자유가 돼요. 지난 수요일날 그런 이야기했잖아요. 저주를 통과 못하고 심판을 통과 못하면 그것도 성도냐? 했지요. 수요일날 끝부분에 그런 이야기했어요.

적어도 성도라면 무슨 저주, 동탄 저주, 어떤 저주라도 이미 그건 다 아이고~ 잘 통과했다! 터널을 통과하고 난 뒤에 뒤돌아보는 거예요. 아! 고생되게 했다. 법 지키려고 고생 되게 했다. 지금은 자유에요. 그리고 자율이고. 저거 지킨다고 그거 지켜서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고 별짓을 다했어요. 별짓을. 하나를 어기면 다 어긴 거니까. 이미 율법을 통과하고 난 뒤에는 무슨 세계냐 하면 이게 원천의 세계입니다. 원천.

성도의 원천입니다. 성도의 원천. 성도의 본향. 출현, 출현이란 말이 적당하네요. 성도가 처음부터 성도로서 뽑혀 나오는 자리. 이게 그냥 율법이 아니고 온전한 율법이에요. 자유케하는 온전한 율법이에요. 율법에 대해서 우리가 너무나 지금 겁을 집어먹고 있었던 거예요. 벌벌벌 떨고 있었어요. 아까 이야기한 야고보서2장10절에 의하면 누구든지 율법을 지키다가 하나를 어기면 모든 법을 어긴 자가 된다. 이런 협박성, 공갈성 앞에서 우리는 내뺄 준비만 하고 있었어요. 못 지키는 걸 뻔히 아니까.

그런데 율법은 곧 들어오라는 거예요. 백날 내빼봐야 율법에서 머뭇거리면서 조금 해내다가 또 자기가 어쩔 줄을 모르는 거예요. 그 저주성과 두려움, 공포 그 하나님의 하신 일을 완전히 개모독하고 있는 거예요. 이게. 자기 딴아 조심스럽게 착실하게, 성실하게 산다 하지만, 그게 지 생각이고 자기 패턴이고 진짜 하나님의 패턴에서 보면 이건 이런 모독이 없어요. 들어오라 하는데 안 들어와. 그것도 자유롭고 온전한 율법이라 하는데. “그냥 열심히 지키겠습니다.” “내가 니 보고 열심히 지키라는 게 아니고 들어오라고!”

왜냐하면 이 원천이 성도라는 것은 니가 말씀 지켜서 성도되는 게 아니에요. 먼저 원래 장소가 있어요. 골방이 있어야 돼요. 만들어지는 장소가 율법 안에서 만들어지는 겁니다. 그러면 그 분의 모델이 누구겠어요? 바로 예수님 아닙니까. 예수님.

지금 야고보가 예수님의 제자, 12제자는 아니지만 그냥 사도라고 할 수 있어요. 사도급이 되지요. 70인 중에 있다고 여러 가지 말이 있지만 어쨌든간에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서 이 성경이 있는 이상 야고보도 성령의 글입니다. 힘들게 하려고 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를. 자꾸 숙제를 주려고 하는 게 아니에요. 쉽게 말해서 너는 지금 머뭇거리면 내가 원하는 그 인간 아니라는 겁니다. 천국 가는, 하늘에 속한 그 인간 아니라는 거예요.

진짜 천국 가는 인간 같으면 출발점을 니 선에서 출발하는 게 아니고 니가 생각하는 니 선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고 율법 속에서 튀어 나와야 되는 거예요. 그것도 그냥 율법이 아니고 자유케하는 온전한 율법 속에서 니가 잉태되어야 돼요. 마치 엄마 자궁처럼 잉태되어서 이거 출현이 되어야 되는 겁니다. 그렇게 될 때 무엇이 달라지는가 하면 율법을 듣는 자가 아니요, 행한다. 할 때 그 행함 개념이 우리가 생각하는 행함 개념하고 완전히 달라요. 아주 역으로 달라요. 정 반대로 달라요.

자, 그럼 요것을 지금부터 설명해 갑니다. 율법에서 출현한다. 그러면 여기까지는 어려운 게 없으니까 쉽다고 생각하고. 율법에는 뭐가 있는가 하면 율법은 중심이다. 어떤 중심이냐. 세상에 중심이다. 세상의 중심지. 이리 보시면 돼요. 오늘날 세상의 사람들 보면 뭐가 없어요? 중심이 없지요. 유행 따라 세파 따라 분위기 따라 막 흔들리잖아요.

그런데 율법을 거울로 본다는 말은 아침에 그냥 안 나오잖아요. 거울을 보잖아요. 그러면 거울이 있다는 말은 지금 내 자신이 어떤가 거울을 보고 한다 말이죠. 거울은 그 사람을 그 앞에 고정시키게 만듭니다. 거울 앞에서 까불락 까불락하면 지가 보면 지가 어지러워. 거울 앞에서는 반듯하게 보지요.

그러면 흔들리는 나를 어디서 딱 잡아야 돼요? 거울 앞에 봐야 되지요. 거울 역할을 한다는 말은 다시 한 번 내 중심을 되비쳐보는 겁니다. 만약에 내 출현, 내 진정한 내 영혼의 고향이 율법 속이라면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십자가라면 우리는 아침에 거울만 볼 게 아니고 어디 앞에서 다시 한 번 옷 몸새를 십자가 앞에서 한 번 봐야 되는 거예요.

그 율법, 그 십자가는 우리로 하여금 자유하게 하고, 열심히 해서 율법을 지켜서 구원 받는 게 아니고, 온전한 율법에서 파생된 것. 확정된 것. 그게 늘어난 것. 거기서 출생한 것. 중심에서 출생하니까 우리는 세상 어디를 가도 중심으로서 살아가고 활동하게 되어있어요. 중심으로.

율법을 지키는 게 아니고 중심을 우리가 속해있는 직장이나 가정이나 어디가도 중심의 중심됨을 세상에 중심 있다. 이미 결론난 중심이 있다는 것을 보이는 일을 하는 것이 상대방에게 부분적 율법 아니고, 온전하고 자유로운 율법을 전파하는 증거 하는 기능자가 되는 겁니다.

어떤 사람이 세상에 나와서 “아휴! 집사님. 나는 이거 지켰는데 이건 못 지켜서 어떻게 합니까?” 막 이렇게 불안해하고 “나는 이거 지켜서 복 받는다 생각했는데 아휴 2시간 뒤에 이런 나쁜 짓을 해가지고 이건 완전 저주 오는 게 아닙니까?” 할 때 “아닙니다.” 라고 자기 자신의 체험담, 자기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드러내면 그게 바로 그 자리에 박혀있는 온전한 율법의 중심적 기능이에요. 야고보가 사도잖아요. 그러면 야고보 본인도 마찬가지고 야고보에서 이야기하는 그 성도도 마찬가지에요. 어디에 가도 니가 중심이 되라는 겁니다. 여기까지는 일단 쉽다고 칩니다.

참, 문제는 이겁니다. 그러한 증인이라 할 때, 우리는 어떠한 생각을 하느냐 하면 세상은 진공이다. 진공이란 텅텅 빈 공간이란 뜻이거든요. 세상은 진공이라 하는데 흔히 우리가 복음 알고 성도라 할지라도 자꾸 이런 생각을 갖고 있어요. 제가 보기에는 안타까워요. 성도한테는요, 성도는 세상이 텅텅 빈 게 아닙니다. 상대자가 있어요. 이 상대자가 누군지는 재수 없으니까 내가 붉게 쓰겠습니다. 이게 사단이에요. 사탄.

이렇게 성도님들하고 이야기해보면 자꾸 뭐를 까먹고 있느냐 하면 “목사님, 제가 이렇게 살면 저 반듯하게 살지요?” 노골적으로 그렇게 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의 반듯하고 성도답게 살려고 이런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고민하고 있고 이렇게 늘 말씀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거기까지만 이야기해요. 나는 지금 누구하고 싸웁니다. 말을 안 해요. 왜냐하면 이건 나무라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누구든지 하게 되면 인간은 근본적으로 지 몸 편한 게 최고입니다. 몸 편한 게 최고에요.

수요일도 그런 이야기했지만, 내가 쳐놓은 나만의 공간에 누구 침범하고 나가게 되면 메꾸는데 에너지가 엄청나게, 원상 복귀하는데 힘들어요. 집에 손님 왔잖아요. 가보세요. 방 치우는 에너지는 아무것도 아니고 내가 그 사람이 와가지고 내거 보고 나무라지는 않는가, 흉보지는 않는가, 설거지 안했다고 꼬라지 하고는 하여튼 한 5분, 10분 왔다가도 왔었을 뿐인데 아이구~ 마침 내가 옷을 안 맞는 옷을 입어서..., 온갖 생각을 다해요. 안 해도 될 그 에너지를 소비를 한다니까요. 이게 우리의 일상의 사람살기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고방식하니까 자유란 딴 게 없어요. “제발 내 영역에 쳐들어오지 마!” 이게 자유입니다. 그냥 자율이지요. 제발 내 일에 내가 이렇게 딱 한 일에 대해서 니가 들어오지 마! 왜 들어오면 안 되는가? 나, 불편하니까. 왜 불편하면 안 되는데? 나 편해야 되니까. 왜 편해야 되는데? 묻지 마! 그 다음부터는 묻지 마! 나는 무조건 편해야 돼요. 건강하다. 편하다. 두 개 합치면 행복이거든요. 건강하 게 편한 것. 어디 아픈 데 없이 편한 것. 엄지 척! 최고에요. 최고.

이런 사고방식이 다 잠재되어 있는데, 복음 들었다. 성경 들었다. 이래가지고 복음 성경 잘 알았는데 막상 대화해보면 상대자를 자꾸 누락시켜요. 상대자를. 왜 그런가 생각해보니까 세상을 뭐로 보는가 하면 눈에 너 있고, 나 있고, 중간에 텅텅 비어있으니까 진공상태로 보는 겁니다. 진공상태로.

그러나 야고보서1장할 때 제가 누누이 이야기했습니다. 이 세상 진공 아닙니다. 세상 자체가 텅텅 빈 곳이 아닙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원수가 에너지의 권력장을 이렇게 촘촘히 박아놨습니다. 권력장. 이걸 뭐라고 하는가 하면 이걸 ‘분위기’라고 합니다. 분위기. 그 분위기에서 뭐가 나오느냐 하면 기분이 나오지요. 제가 아까 집사님한테 이야기했지만, 현대인은 사물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고 기분을 소비해요.

바둑 두는 데를 기원이라고 합니다. 기원에 가면 남자들이 소위 허풍 좋아하는 남자들은 만원짜리 내기 바둑을 둬요. 사실은 액수 큰 거거든요. 그런데 그걸 딱 보면서 저는 만원을 보면 뭘 생각하느냐 하면 저게 진라면 몇 봉지가 되거든요. 제가 사고실험을 해봤어요. 만원을 딱 대면 종이가 얇아가지고 잘 안보여요. 진라면 3통을 쌓아놓고 내기해 보세요. 진라면 20개 이상 놓고 지금 바둑 두는 거예요. 도박이 그래서 무서운 거예요.

아줌마들이 그 도박 푼돈 같으면 살림 장롱 완전 새로 갈아치웁니다. 그런데 도박장에는 그걸 몰라요. 돈 귀한 줄 모른다 말이지요. 이게 뭐냐 기분입니다. 기분. 요걸 땄을 때 기분. 그냥 쇼핑을 막 하잖아요. 특히 명절 끝나고 난 뒤에. 에이 씨~ 시어머니 때문에 신경질난다. 백화점가서 막 긁어요. 결국 뭘 소비합니까? 다 입지도 않을 걸, 다 쓰지도 않을 걸 다 산다고요. 기분을 소비해요. 사물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고.

자, 어째서 이러한 현대인이 되는가, 물론 그 배후에는 누가 있겠습니까? 야고보서에 의하면 하나님의 원수가 있어요. 사탄이 있다고요. 우리는 지금 사탄과 상대해야 됩니다. 사탄의 특징은 지금부터 어렵습니다. 이겨내야 돼요. 상당히 어렵습니다. 사물은 물건이지요. 이 세상은 물건과 물건을 교환하면서 필요한 것을 챙기는 거예요. 고기 100마리를 잡았는데 다 먹을 수는 없고요, 2마리는 먹고 나머지98마리는 시장에 내다 팔지요. 거기에 애들 필요한 운동화도 사고 쌀도 사고 밀가루도 사고 하잖아요. 그렇지요?

이게 뭐냐 하면 시장경제원리입니다. 이렇게 시장경제원리를 말 안 해도 그냥 이렇게 사는 거예요. 이렇게 산다 말이죠. 한 번 정리해 보면 인간은 옛날에는 농업 했는데 자급자족했다. 자급자족이 끝나고 난 뒤에 노동을 하면서 정착을 하니까 내가 먹는 거 이상으로 많이 나왔어요. 그걸 가지고 남는다 해서 ‘잉여생산물’이라 합니다. 잉여 생산물.

잉여생산물을 다른 데 특화된 그 쪽의 특산물하고 교환하기 위해서 중간에 시장이 말하면서 옛날에는 물건 들고 갔는데 불편하드라 이 말이죠. 그래서 조개로 대처하던지 화폐였습니다. 옛날에는요, 조개 이런 게 귀하고, 하다가 금, 은 이런 것으로 또 화폐가 바뀌어요. 성경에 나오잖아요. 금 몇 달란트 했잖아요. 그러면 이 생산물을 화폐로 바꾸면 화폐 자체적인 어떤 가치를 통해서 시장에 바꾸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여태까지는 내가 노동해서 물건 얻는 것 가지고 다른 노동 한 것 가지고 노동을 맞바꾸는 것과 똑같아요. 돈은 교환 수단일 뿐이에요. 물건이 많은 게 좋지, 돈이 많은 게 안 좋은 세상이었어요. 그때는. 그런데 말입니다. 자본주의라는 게 등장했어요. 자본주의가 등장하면서 뭐냐 하면 미래의 자아를 미리 돈 주고 지금 마련하고 싶은 거예요. 미래의 자아상. 현재에 미래에는 도달하지 않았지만 미리 당겨서 나를 그런 인간으로 만들고 싶은 겁니다.

그게 어디서 나오느냐 하면 유럽에서 배를 타고 저 아시아나 인도 쪽으로 무역하는 사람들이 내가 배타고 저 인도의 면화를 사서 팔게 되면 그 때는 향신료, 설탕, 홍차, 그런 것들을 엄청나게 했거든요. 만약에 풍랑 없이 제 때 온다면 이건 일확 부자 되는 거예요. 한꺼번에 부자가 돼요. 부자가 된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밥을 굶는다는 뜻은 아니고 밥을 많이 먹은 게 부자입니까? 옛날에는 밥을 많이 먹으면 부자였어요. 옷이 많으면 부자였어요. 그게 아니고 장래에 여유 돈을 갖고 있는 게 부자라는 개념이 무역상을 통해서 베네치아부터 시작돼서 그 때부터 새롭게 된 거예요.

그러면 사람이 살다보면 농사짓는 사람이 농사 잘될 때도 있지만, 못 될 때도 있잖아요. 그러면 못 할 때에 일년 뒤에 갚을 테니까 돈 좀 빌려주세요. 지금 내 곡식을 살 수 있는 돈이란 수단을 매개체를 빌려주세요. 하려면 여유 돈 있는 사람에게 찾아가야 되지요. 여기서 뭐가 생기는가 하면 이자가 생긴 겁니다. 이자. 이자이기에 이게 바로 자본주의에요. 이자를 위해서 투자가 있고 요새는 투자가 노동생산성을 재껴버리고 투자를 위한 투자로 모든 인간들이 투기꾼이 됐어요.

살 집을 사는 게 아니에요. 투기 대상으로서의 아파트를 사는 거예요. 그냥 눕고 그냥 밥 먹는 자리를 사는 게 아닙니다. 가만히 있어도 되는데 옆자리에서 얼마 올랐다. 얼마 내렸다가 나의 기분을 나쁘게 만들어요. 그냥 뜨듯한 밥 먹고 살면 되는데 세상에 다른 단지에 2억 올랐데. 우리는 5천 내려갔데. 이게 저주처럼 그게 느껴지는 겁니다.

그게 왜 그러냐 하면 배후에 악마가 절대로 자기 정체를 드러내지 않아요. 악마가 드러내는 것은 뭐냐 하면 이겁니다. 기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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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