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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167강-신 31장 19 – 23절(상상과 실제)180107-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신명기

167강-신 31장 19 – 23절(상상과 실제)180107-이 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은 신명기 31장 19 – 23절입니다. 구약성경 312페이지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르쳐 그들의 입으로 부르게 하여 이 노래로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인 후에 그들이 먹어 배부르고 살찌면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나를 멸시하여 내 언약을 어기리니, 그들이 수많은 재앙과 환난을 당할 때에 그들의 자손이 부르기를 잊지 아니한 이 노래가 그들 앞에 증인처럼 되리라 나는 내가 맹세한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이기 전 오늘 나는 그들이 상상하는 바를 아노라, 그러므로 모세가 그 날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르쳤더라, 여호와께서 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인도하여 내가 그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이 말씀, 언약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들이 얼마나 제멋대로이냐는 것을 다 밝혀내기 위해서 주신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오늘 본문에서 들은 바와 같이 21절 끝에 보면 “나는 그들이 상상하는 바를 아노라”라고 나온 것처럼 인간이 어떻게 처신하고 행동하는 지를 이미 알거든요. 아는 것 속에 뭐가 들어 있냐하면 20절에 보면 “그들이 다른 신들을 섬기며 나를 멸시하여 내 언약을 어길 수밖에 없는 자들에게 너희는 이 노래를 들려주어라”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 이 신명기 말씀은 인간들이 열심히 말씀을 지켜서 좋은 결과를 나타내라고 주신 말씀이 아니고, 백날 지켜보려고 나름대로 열심히 애쓰지만 결국 너희들은 다른 신을 섬길 수밖에 없는 그런 본성, 그런 속성들을 이미 너희들이 함유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겁니다. 안 된다는 겁니다. 되지를 않아요.

특히 이 노래를 만들라는 말은 노래라는 것은 2가지 특징이 있어요. 하나는 뭐냐 하면 노래는 혼자 부르는 게 아닙니다. 집단이 부르죠. 노래는 집단성으로 부르게 함으로 말미암아 너나 나나 똑같은 종자라는 거를 나타냅니다. 노래를 부르면서 하나로 집결 되었다는 말은 우리끼리는 너 잘났고 나 잘났고 하는 것이 차이가 나지만 주님 보시기에는 그 차이는 의미 없다는 겁니다. 차이 없다. 같은 노래를 부를 때 똑같은 처지에 놓여 있음을 하나님께서는 일방적으로 뒤집어씌운 거예요. 지붕 씌우듯이. 다 똑같다는 겁니다. 너희들이 비교해 보는 것은 의미 없다는 겁니다.

또 하나는 노래를 하게 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반복적인 상황이 유발 된다는 겁니다. 노래가사는 하나지만 그 노래 가사에 맞는, 그 노래 가사를 증명해 주는 상황들은 계속해서 자자손손 이스라엘 내에 반복해서 주어지는 겁니다.

예를 들어 십자가 노래라면, 신명기 노래에서 십자가가 사건으로 완료가 되게 되면 십자가는 노래의 기능을 하게 되어 있어요. 십자가 앞에서 어느 인가도 ‘너 잘났다, 나 잘났다’ 하는 게 의미 없고 그 다음에 십자가는 그 십자가만을 드러내기 위해서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의도적으로 그 십자가를 드러내는 쪽으로 주님께서 정리 정돈을 인위적으로 그렇게 하나님 뜻대로 만들어 가는 거예요.

‘역시 십자가뿐이구나’라는 쪽으로 하나님께서 몰아세우는 겁니다. 기준을 네가 정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사람이 개인적으로 살게 되면 내 기준하고 너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내 기준에 맞춰서 열심히 살게 되면 마치 자기가 훌륭하게 산 것처럼 오해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기준 자체를 박살내버리면 출제 위원이 내가 될 수 없어요. ‘내 인생 이렇게 잘 살았습니다.’ 하면서 문제를 본인이 내요. 본인이 내니까 정답은 본인이 알고 있고 본인이 알고 있으니까 채점해 보면 자기는 얼추 굉장히 순순하게 살아 온 것처럼 그렇게 착각에 빠집니다. 이거는 주님의 노래가 아니에요. 본인 노래예요. 본인 노래를 유행가라 하잖아요. 모든 게 본인 노래입니다. 자기노래.

주님의 노래라 하는 것은 노래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그 노래가 그 새로운 시대상을 유발시키는 요인이 되는 겁니다. 노래가 먼저 있고 그 상황은 노래에 맞추어서 뒤따라 벌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을 보게 되면 이미 그들이 망한다는 것은 확정된 사실입니다. 빠져나갈 생각을 못해요.

이제는 망할 때 망하더라도 어떻게 망하느냐 하는 그 관계를 통해서 그들이 구원받을 사람은 구원받고 구원받지 못할 사람은 구원받지 못하는 겁니다. 철저히 수동성이죠. 제가 옛날에 광주가면서 대구에서 광주 가는 도로를 88 고속도로라고 했는데 그때는 가는 차선 하나, 오는 차선 하나 2차선이었습니다. 지금은 4차선이지만.

2차선에서 4차선으로 공사를 하면서 구간 구간마다 공사가 일어납니다. 그럴 때 제가 천국 가는 거 하고 너무 흡사해가지고 굉장히 마음에 와 닿았어요. 아무리 개인적으로 시간이 촉박하고 빨리 약속시간 맞춰야한다 할지라도 가다보면 거기 일하시는 분이 딱 막고 서서 “차 몇 대 보낼까? 3대? 오케이~ 3대 보낼게~” 이건 사적으로 어떤 사정이 있는가는 전혀 고려되지 않고 보낼 사람만 보내고 그 다음은 “아저씨, 가면 안돼요~”하면서 멈추게 합니다.

그게 뭐냐 하면, 천국 가는 방법은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성경말씀을 못 지키고 다른 신을 섬기잖아요. 그러면 안가면 되는 거예요. 천국 가는 방법은 천국 안 가면 되고 지옥 가는 방법은 그냥 살면 돼요. 그러면 지옥 갑니다.

그렇게 되면 사적으로 개인 사정에 의해서 ‘나는 꼭 천국 가야 되는데’ 하는 그 모든 것에 대해서 주님께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나는 네가 생각하고 상상하는 걸 다 알고 있거든. 그건 네 사적인 개인 생각이고 나는 집단을 본다. 개인 사정 완전히 무시하면서 나는 움직인다.” 이렇게 무시하면서 움직이거든요. 사실 이게 성경해석에서 핵심 되는 부분입니다.

집단을 무시하고 개인에게 집중하는 거, 오늘 본문 23절에 보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인도하여 내가 그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이것은요 모세 전에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직접 이야기 하거든요. 여호수아에게 이야기 하기 전에 똑같은 멘트를 누구에게 했냐 하면 모세에게 했어요.

모세와 여호수아 있을 때 두 사람 앞에서 한 게 아니고, 모세에게 단독적으로 했고 모세가 약속의 땅에 못들어 가는 것을 확정 짓고 난 뒤에, 그 다음에 또 한 사람 여호수아에게 또 이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여호수아 끝나면 또 한 사람에게 이야기 하겠죠.

여호수아 끝나게 되면 나오는 것은 바로 사사들 거치다가 나중에 사무엘 등장합니다. 사무엘 등장하다가 나중에 누구에게 하느냐하면 다윗에게 등장하지요. 사무엘 특징 노래 부르기, 사사들의 특징 노래 부르기, 다윗의 특징 작사 작곡 보컬까지 혼자서 다 해버려요. 다윗은.

계속 노래로 노래로 새로운 미래를 던집니다. 미래를 던지지만 그 던져진 미래에 그 던져진 노래 속에 있는 사람의 느껴지는 것이 뭐냐 하면 내가 인생을 아무리 살아도 그 모든 것은 하나의 과거사에 불과 하다는 겁니다. 이걸 어렵게 이야기해서 개인 속에 전체 인생이 응축 되어 있다고 합니다. 하나의 개인 속에.

더 쉽게 말하면, 쉬운지 어려운지는 모르겠지만, 오늘이 1월 7일이고 내일이 1월 8일이잖아요. 1월 7일에 미진한 것을 1월 8일에 하는 게 아닙니다. 1월 7일에 미진한 게 없어요. 오늘 죽이면 죽어야 됩니다. 오늘 하루 동안에 내가 앞으로 남아 있는 인생과 살아 온 인생이 모든 것이 하루 안에 응축이 되어 있어요.

어떤 식으로 응축이 되어 있느냐 하면 “너는 네가 대장되어서 살았지? 너는 너의 개인적 사정에 몰두 했지?” 그게 바로 “하나님 나는 네가 상상하는 것을 아노라” 이게 되는 거예요. 그럴 때 마다 노래 불러라. 십자가를 노래 불러라. 내가 상상한 것이 현실이냐, 아니면 노래 속에 있는 그것이 진짜 이 세상을 펼치는 현실이냐를 네가 보라는 겁니다.

주님께서는 네가 오래 살아서 얼마나 큰일을 하는 것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단 하루를 살더라도, 하루를 살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언약 안에 응축된 그분, 모세면 모세, 여호수아면 여호수아, 지금은 예수님, 그분이 지금 너에게 무엇을 상상하고 있고 그 앞에서 너는 모든 것이 들통 났음을 그런 관계 속에 있음을 네가 표현하고 증거 하는 하루가 되어야 해요.

‘내일 뭐가 될지 그거는 우리가 상상하지 마라’가 아닙니다. 분명히 “상상하지 마라”도 법에 어긋나요. 말씀에 어긋납니다. 상상. 원 없이 상상하세요. 저는 상상 대장입니다. 저는 수시로 상상합니다. 늘 상상해요. 그리고 늘 상상만 하면 안 되겠지요. 거기에 주께서 상상대로 안 되게 해주신다는 것이 주님께 감사할 일임을 압니다.

왜냐 하면 상상하는 것은 내 이름으로 상상하고 우리의 구원은 내 이름으로 구원하는 게 아니고 이미 함축된 한 분의 이름, 주의 이름으로 1월 7일도 구원 받고, 1월 8일 날 혹시 허락하신다면 내일도 구원 될 거예요. 대전에서도 구원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냥 가능성이에요. 그냥 가능성. 이게 집약되는 겁니다.

자, 그 다음에 우리가 생각해야 될 것은 내가 상상한 것을 어떻게 하나님이 틀어지게 하시는 지 그 틀어지게 하시는 방법을 제가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무탈하게 살고자 하는 것이 하늘의 경고입니다.

이제 뭐 운이 좀 괜찮다고요? 아니에요. 아무 탈 없는 것이, 사람이 탈이 없으면 이 세상을 진공 상태로 오해하게 됩니다. 나는 혼자 바쁘고 세상은 조용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여러분이 우주선 타고 달과 지구 사이에 진공 상태에 가게 되면 거기서 옛날에는 허리에 끈을 하고 우주 유영을 하잖아요. 우주를 유영할 때 ‘사람이 우주를 헤엄친다.’ 이렇게 해석하잖아요.

그런데 아인슈타인 이후의 물리학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보이지 않는 공간을 작용하는 힘이 그 사람의 팔 다리를 움직이게 한다고 해석하는 겁니다. 이걸 상대성 원리라고 해요. 상대성 원리는 물질보다 보이지 않는 상대적인 힘이 더 우선인데 그게 안 보여서 문제예요. 보이는 것은 그 힘에 의해서 내가 움직이는 겁니다.

인간 대 인간의 관계는 보이지 않는 관계죠. 그게 바로 독감B형 바이러스입니다. 사람들은 혼자 일을 하는데 갑자기 근육통에다가 기침이 나요. 뭐가 있어. 과학의 발달로 해서 그 뭐가 있는 걸 찾았어요. 바이러스라는 독감B형 바이러스라고 합니다. 그거 3만원 주면 병원에서 3분 만에 찾아낸다고 해요.

문제는 그 바이러스를 누가 움직이느냐 인데, 해답이 없네. 해답이 없어요. 제레미 다이아몬드라는 특이한 이름을 가진 학자가 총, 균, 쇠라는 유명한 책을 내면서 밝힌 적인 있어요. 세상의 문명의 발달은 지금까지 인간의 지혜와 노력 여하에서 문명이 발달 되었다고 이야기 했는데 그 사람이 조사를 쭉 해보니까 그게 아니고 기후였습니다. 기후 때문에 문명은 작살 난 거예요. 기후 때문에.

이것은 바로 가뭄 때문에 성경에 계속해서 언급하는 거, 수련회에서 할 거 미리 언급하면 안 되는데, 엘리야 시대 때 3년 반, 엘리사 시대 때 7년 동안 가뭄 들었습니다. 3년 반, 그런데 왜 엘리사는 3년 반이 아닌가. 한번 3년 반 겪었기 때문에 대응책이 있어요. 7년으로 늘렸습니다. 대응책 안 됩니다. 불가합니다. 죽겠다고 난리입니다.

신명기 이후에 여호수아, 사사기 보세요. 언제 그들이 주님께 돌아오느냐 하면 주께 돌아 올 때 “처음에는 이렇게 했지 않습니까?” 하고 돌아오는 것은 돌아오는 게 아니에요. 돌아 올 때는 완전히 거지꼴로 해야 돌아옵니다. 하는 거 다 해 봤어요. 아직도 이렇게 에어 포켓이, 공기가 남아 있으니까, 숨 쉴만 하니까 버티는 겁니다.

버티다가 그 공기마저 날라 갔을 때는 ‘이러다 죽겠네’하다가 ‘죽겠네’를 넘어서 버려야 돼요. ‘죽겠네’가 넘어서 버리면 우리는 혼절 상태가 됩니다. 그걸 아침에 단어를 언급했어요. 잠깐 언급했는데 그걸 두자로 ‘몰락’이라고 합니다. 몰락.

몰락 상태가 어떤 상태냐 하면 항생제에 정신이 희미해지는 상태. 감기 들었고 누가 이야기 해도, 목사 이야기도 귀찮고, 가만있는 상태에서 오락가락 해서 설교를 하는 건지, 찬송을 하는 건지 정신이 혼미한 상태, 꿈속인지 현실인지 구분 안 되는 상태, 주께서 자아의 혼을 빼버리십니다. 그럴 때 사람이 전적으로 피동적이 돼요.

이제는 죽고 사는 것도 내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에요. 죽고 사는 문제도. 그런데 의도적으로 그걸 꾸미면 안돼요. 요건 못된 짓입니다. 꾸민 게 아니고 주께서 그런 순간으로 몰아세우시는 겁니다. 그게 사실은 매일 같이 반복되죠. 그게 뭐냐. 잠드는 순간입니다. 잠잘 때 의미 없이 잠 준 게 아닙니다. 네가 혼수상태 되라고 잠을 준겁니다. 혼수상태 되라고 잠 주는데 잠 안자고 케이블 티비 켜고 새벽 2시까지 영화보고 있고. “제발 그냥 좀 죽어줘!!”

“아니, 내일 계획을 위해서 나는 정신 차려야 됩니다.” “그냥 죽으라니까!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고 그냥 죽어줘” “아니, 아니 되옵나이다. 미리 예상해야 됩니다.” 그놈의 예상 때문에, 그 예상을 오늘 본문에서는 상상이라고 하는데, 주께서 그들로 하여금 숨이 막혀서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다는 그 조차도 의미 없게 되는 지경으로 만들어서 철저하게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그렇게 힘든 것은 걱정하지 마라. 내가 이미 예상한 거야. 너는 네가 실수해서, 법을 어겨서 고난을 받는 게 아니고 너는 법 어기도록 되어 있는 거야. 왜 자신에 대해서 그렇게 몰라. 너는 법어기는 게 주특기야. 무슨 법을 네가 지킨다고.” “잘 했지요? 주님 어떻습니까? 시험을 이겼습니다. 마귀를 이겼습니다.” “그런 되지도 않는 소리 하지마라. 너는 마귀에게 지게 되어 있고 법을 어기게 되어 있어.”

언제 진즉에 자기 모습 찾겠습니까? 패션계에서 사용하는 용어 가운데 이런 게 있습니다. 브랜드라는 게 있거든요. 계속해서 ‘신상’ ‘신상’ 하면서 새로운 옷이 자꾸 나와요. 사람들은 뭘 보냐 하면 신상이 나왔느냐하는 겁니다. 여기 지금 복무동에 문 닫고 난리입니다. 80% 세일. 아직 80%면 그건 폐업도 아니에요. 이제 숨이 막히게 되면 95% 정도 되어야 ‘아, 진짜 폐업하는 구나’합니다.

그렇게 지금 장사 안 돼서 폐업들 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보는 것은 그 제품이에요. 새로운 브랜드가 나왔고, 상품에 뭐가 나오고, 새로운 기능성 상품이 나오고 이리 하는데 그 의류업계에 무슨 단어가 있느냐 하면 ‘봉제’라는 단어가 있어요. 봉제. 천과 천을 이어서 마감질 하고 하는 거요.

봉제의 특징은 브랜드가 없어요. 그냥 봉제공이지 어떤 자기 나름대로의 브랜드가 없어요. 브랜드는 최종 작품의 옷에 붙는 거예요. 뭐를 우리가 주문하느냐 하면 “주님, 저 개인적으로 이런 브랜드 갖고 있습니다.”라고 하지만 그러면 안 된단 말이죠.

봉제 없이 그런 작품이 나옵니까? 상품이 나옵니까? 안 나오잖아요.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이렇게 만들어서 하나의 주의 이 말씀 “그러니까 너는 내 말을 못 지키잖아.”라는 그런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이런 패션업계의 표현을 하자면 ‘봉제’가 되는 겁니다. 주께서 하나의 마감질, 바느질을 하는 거예요.

이 말이 뭐냐, 우리가 하나의 중간 과정이라는 겁니다. 중간 과정. 최종 작품에 대해서는 중간 과정에서 사람들이 자꾸 새로운 상품을 생각하는데, 그게 아까 이야기 했던 매순간 우리는 자꾸 미래를 미리 당겨서 생각하고 ‘미래는 잘 될 것이다’ 하는데 미래 되어 보세요. 미래 그것도 우리의 과거사예요. 주님의 과거사라고요.

갈 길이 멀어서 제가 긴 이야기 안 하겠습니다마는 인생을 살면서 인간들이 놓치는 게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이거 꼭 설명해야 하는 건데, 쉽게 이야기하면, 인간은 고통과 죽음 없이는 세상을 이해할 수 없게 되어 있어요. 고통과 죽음 없이는.

그래서 아까, 운이 좋다고 할 때, 지금 착각하고 있는 거예요. 정말 세상을 보려면 고통과 죽음인데, 고통과 죽음을 제가 보통 이야기 하면, “아, 인간이 고생하다가 죽는 이야기 합니까?”하는데 제가 그 말을 하는 게 아니고 상상원리를 이야기 하는 거예요.

뭐냐 하면 어떤 사람이 액션영화에 보면 그런 장면 있잖아요. 차에 매달리는데 벌판에서 차에 매달리면 재미있어요. 왜? 그 공기 상태에서 차는 가지, 차 안은 지루한데 밖에서 매달려서 가게 되면 공기 가운데 있어서 굉장히 시원한 바람과 함께 “달려라~ 달려라” 할 겁니다.

그런데 철공서의 빡빡한 날카로운 칼날들이 있는 그 환경에 차 바깥에 매달려 가보세요. 이거는 바깥 환경에 찔리지요. 그러니까 주님께서 우리에게 고통과 죽음을 주는 것은 네가 보기에 네 세상, 네 중심이니까, 너만 생각하고 바깥에는 네 마음대로 할 것 같지만 세상에는 날카로운 가시덤불 같은 것이 꽉 차있는 거예요.

그런데 이러한 현실감을 접촉하면서 이유 없는 아픔과 육은 죽음을 느끼고 고통을 느끼면서 세상은 뭐로 꽉 차있다는 것을 느끼는 거예요. 복음에 반대하는 힘, 주님을 반대하는 그 힘으로 꽉 차 있는데 다른 사람은 고통을 안 느끼는 것은 같은 편이기 때문에 고통을 안 느끼고 성도는 성도이기 때문에 주님가신 그 길을 가게하다 보니까 복음 때문에 우리는 이 성경을 버려두고 주님 버리면 되는데 주께서 못 버리게 함으로써 맞닥뜨리게 해서 예수 믿는 삶이 주님가신 십자가의 길인 것을 깨닫게 하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 말씀을 위해서 주변에 사사기나 여호수아 이후에 계속해서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는 자리에서 성도에게 고통을 주는 그러한 일들을 언약 성취라는 입장에서 지속적으로 발생 시킵니다. 아무 일 없을 때는, 여기 본문 21절에 나오는 것처럼 20절에 보면 “그들이 먹어 배부르고 살찌면” - 몸무게 늘 달아 봐야합니다 - “배부르고 살찌면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나를 멸시한다.” 다른 신을 섬긴다는 말은 내가 따로 내가 골라잡을 신, 신이라는 것은 신과 나 사이에 비어있으니까 진공이니까 내가 고를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순간 갑자기 주변에 있던 서로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사기를 치듯이, 갑자기 나의 사랑하는 가족이 나를 배신하듯이, ‘설마 우리 가족이 나에게 섭섭해 하지 않겠지’라고 여겼는데 “아버지, 그 말 참 섭섭합니다. 나는 이제 아버지 얼굴 두 번 다시 안봅니다.” 이러한 돌발사태 같은 것이 막 일어나고, “너 왜 돌발사태 일으키느냐?”하면 “돌발 사태 아닌데요, 옛날부터 꿍하게 그런 마음 있었는데 왜 자식에게 섭섭해 합니까?” 이런 식으로 그냥 가만히 있다가 당하는 식으로 이러면 이제 무탈이 탈이 되요. 운이 다 한 겁니다.

주께서는 성도를 십자가 바라보고 자기 자신이 잘 되었다는 자기 증거는 하지 않고 주님만, 주님의 말씀만이, 십자가만이 정말 무탈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쪽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할 일은 그 조종을 성령께서 “3대요? 네, 3대”하는 것처럼 갈 것은 가게하고 안 갈 것은 조종하기 때문에 우리가 천국을 내가 나서서 노를 젓는 다든지, 엔진에 가속 페달 밟을 필요 없습니다. 흘러가는 데로 가면서 십자가가 더욱 감사되고 사랑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일어난 모든 것이 재수 없는 일이 아니고 다 필요하고 적절해서 하나님의 십자가를 증거 하는데 다 반드시 일어나야 될 다 필요한 조치인 것을 저희는 항상 바보같이 뒤 늦게 깨닫습니다. 이 세상은 비어 있는 것이 아니고 주님의 복음을 증거 하는 장인 것을 우리가 잊지 말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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