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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18 대구강의] 전도서속의 그리스도 26 - 주의 기능강의-

[18 대구강의] '전도서'속의 그리스도 26 - 주의 기능

18,01,01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죽음의 힘 !!

오늘은 교재 71페이지부터 하겠습니다. 우리가 지금 '죽음의 힘'에 대해서 계속해서 하고 있는데, 이것을 분명하게 해주어야, "사망에서 생명으로 간다" 라는 말이 무엇인지 이해가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사람은 이 죽음에 대해서 그야말로 전혀 맥을 추지 못한다는 말이죠.

그래서 사람은 조그만 행동을 해도, "이게 나에게 이익이 되는가? 그렇지 않은가?" 라고 하는데, 그게 다른 기준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가? 되지 않은가?" 라는 겁니다. 그 정도로 우리는 인간은 죽음에 의해서 휘둘리게 되는데, 그러니 인간은 혼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 둘러 쌓여서 살아간다는 겁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이 죽음을 힘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세력으로 보는데, 물론 힘이나 세력이나 비슷한 말일 수도 있지만, 힘은 에너지로 있는 것이고, 세력이란 것은 뒤에서 누군가가 계속해서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어떤 인물, 즉 존재자가 있다는 말이죠. 그것을 로마서 5장에서는 죄에서 사망의 힘이 나온다고 하는데, 그 죄를 인격화시킨 것이 곧 사탄이라는 겁니다.

(롬 5: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그래서 창세기 3장에 나오는 뱀 이야기와 여자 이야기가, 이게 현실과 너무 멀어져서 그래서 이것을 현실의 바닥으로 도배를 한다고 할까요? 아무튼 그렇다는 겁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까, 창세기 3장에 여자와 뱀이 나오는데, 둘 다 인격체인데, 그래서 서로 이야기를 한다는 말이죠.

뱀이 여자를 보고 말을 하는데, 뱀이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이 참으로 낯설지요? 그러니까 뱀 속에는 누가 있다는 겁니다. 바로 이런 저수지에서 물이 흐르면 역사가 되는데, 이 역사는 눈에 보이는 인간들끼리 설치는 것인데, 그래서 이런 것을 그만 잊어버린다는 겁니다. 숨어있는 인격체의 활동의 여파로 역사가 이루어진다고 하는, 그 관계성이 그만 희미해지고 만다는 것이죠.

그것을 저는 '그물망' 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설명하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이게 '필드', 즉 '장(場)' 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어떤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게 텅텅 비어있는 영역이 아니라 촘촘하게 힘이 작용하고 있다는 겁니다. 힘이 말이죠.

그래서 방금 이야기한 것처럼 이 힘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 쪽에서 이 힘을 이야기할 때는 모든 것을 에너지로 설명을 해버리는데, 그 에너지가 뭉쳐진 것을 물질이라고 하고 말이죠. 즉 "E=mc²" 인데, 이게 바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라는 겁니다.

힘과 에너지 !!

풀이하면 "에너지라는 것은 질량의 광속에 제곱을 한 것이다" 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을 아인슈타인이 밝혀내었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에너지의 바닥, 혹은 에너지의 출렁거림인데, 그러니 사람의 몸이 아프면 의사들은 무엇만 해주면 됩니까? 인체 속에 있는 에너지를 균형이 있게 맞추어주면 되는데, 그게 바로 건강한 것이란 말이죠.

그래서 죽는다는 것은 에너지가 빠져나간 것이고, 반면에 그 에너지가 모아지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E=mc²", 즉 물질이 흩어지면 에너지가 되는데, 그러니 에너지가 다시 응축이 되면 물질이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빠져나간 에너지를 다시 모으면 건강해진다는 말이죠.

동양의학도 역시나 그러한데, 흩어진 기를 마디마디마다 다시 모으면, 그것을 '단(丹)' 이라고 하는데, 그러면 건강해진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음식을 먹으면 기가 모아진다" 라고 하는데, 낭비가 없어진다는 말이죠. 그렇게 기를 모으려고 하면 인체의 기능이 원활하게 움직여야 하는데, 그러니 결국에는 운동을 해야한다는 겁니다. 즉 "살을 빼라" 라는 것이죠.

그렇게 모든 것을 에너지로 설명을 하는데, 그런데 점점 더 세월이 갈수록 이 에너지가 줄어든다는 겁니다. 그래서 물리학에서 고민이 무엇인고 하니, 에너지를 모아야 사는 것인데, 젊었을 때면 노력만 하면 모아졌는데, 그런데 점점 더 나이가 들어가니 인체가 가지고 있는 장치, 그것을 세포라고 하는데, 이 세포에서 그만 에너지를 모으는 기능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라는 겁니다.

고장난 벽시계 !!

그것을 사람들은 세월탓이라고 하는데, 왜 나훈아가 불렀던 유명한 노래가 있지요? '고장난 벽시계' 라고, 그게 무슨 말인고 하니, 벽시계는 고장이 나서 멈춰있는데 세월은 고장도 나지 않고 흘러간다는 겁니다. 그렇게 전부가 다들 시간탓을 하고 있다는 것이죠.

여기서 더 나가면, 에너지가 뭉쳐진 것이 인체인데, 이 인체는 부모의 생식에 의해서 만들어지는데 말이죠. 이 인체가 응축이 되어있는데, 그런데 시간이 흘러가면 그 기능이 약화된다는 겁니다. 즉 에너지가 흩어지는데, 그것을 성경에서는 뭐라고 하는고 하니, 아담은 흙으로 분해가 된다는 말이죠.

종말에는 시간도 스톱 !!

그렇게 인간은 흙인데, 그런데 흙으로 분해가 될 때 우리 인간은 무엇을 탓합니까? 세월을 탓하는데, 그런데 성경은 그게 세월을 탓할 문제가 아니라 무엇이라고 합니까? 그것을 '죄의 힘' 이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탓하지 말라는 것이죠.

그러니 시간이 문제가 아니고, 종말이 되면 시간이 멈추어지게 되는데, 그러니 그야말로 고장난 벽시계라는 겁니다. 종말에는 시간이 없는데, 흘러가지 않는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죄가 의로 바뀌어지기 때문에, 그래서 세월이 흘러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겁니다.

그게 교재 71페이지에 나오는데, 살펴보겠습니다.

** 요한계시록을 봐도 '주 안에서 자는 자는 행복하다' 라고 합니다. 그냥 '주 안'입니다. 여기서 '주'는 언약을 완성을 분을 의미한다는 겁니다.

(계 14: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주 안'에서 죽는 자는 복이 있다 !!

마태복음 5장에 보면 팔복이 나오는데, 심령이 가나한 자, 온유한 자 등등, 그렇게 나온다는 겁니다. 그것을 합치면 "주 안에서 죽는 자는 복이 있다" 라고, 그렇게 최종정리가 된다는 말이죠. 그렇다면 살고자 하는 자에게는 복이 있다는 겁니까? 없다는 겁니까? 그런 경우에는 결코 복이 오지 않는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흙이 되어야하는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에 말이죠.

그래서 어제 낮 시간에 뭐라고 했는고 하니, "내가 무엇을 해야합니까?" 라고 묻지 말고, "내가 지금 어느 자리에 있습니까?" 라고 하는, 그게 중요하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라고 하는 것은, 그 배후에 무엇이 있는고 하니, 자기가 죽지 않고 살려고 하는 욕망이 작렬하고 있다는 말이죠.

그러니 자기가 살려고 하는 입장에서 아무리 성경을 보고 교회에 다녀도, 그것은 계속해서 죄를 키우겠다고 하는 것과 똑같다는 겁니다. 산다는 것은 죽음 안에서 사는 것인데, 그러니 그렇게 살면 살아갈수록 점점 더 원망거리만 늘어난다는 말이죠. 그게 지옥을 유발시키는 것인데, 자기가 살고자 하는 것이 바로 자기의 모든 형편을 지옥을 만든다는 겁니다.

이번에 광주에서 아파트에 불이 나서 삼남매가 그만 불에 타죽고 말았는데, 엄마가 3일 전에 이혼을 했고, 그 날에는 술을 마치고 담뱃불을 끈다는 것이 그만 잘못 처리해서 불이 났다고 하는데 말이죠. 그러면 이혼을 했으면 했지 술은 왜 마시느냐는 겁니다. 그런데 저녁에 술집에 가보면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한 두 명이 아닌데, 우리가 평소에 얼마든지 접할 수 있는 일들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도 운동을 하다가보니, 산에 가서는 빌고 오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아니 산에 가서 왜 비느냐는 겁니다. 도대체 비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기가 있는 자리가 무엇인지, 그것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 빕니까? 그게 아니고 자리는 모르고 그냥 자기가 살려고 빕니까? 그러니 산에서 비는 것이나 빨간 벽돌건물에서 비는 것이나 전혀 차이가 없다는 말이죠.

그러면 무엇이 중요한고 하니, 그것은 자기가 있는 자리인데, 그것은 성경말씀을 보면 된다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주 안에서 죽은 자는 복되다" 라는 것인데, 그러한 자만이 복이 있다는 겁니다. 주 안에 있으면 사나 죽으나 천국인데, 반면 주 바깥으로 나가면 그 어디든 그게 지옥이라는 말이죠. 그러니 그냥 '주 안' 이라는 겁니다.

'주(主)' 란 무엇인가?

그래서 오늘 강의할 제목은 무엇인고 하니, "주란 무엇인가?" 라는 것인데, 도대체 그 안의 평수가 얼마나 되기에 모두 다 수용할 수 있느냐는 말이죠. 그것을 이야기하기 이전에 다시 설명을 하겠는데, 우리 인간은 살아가면서 변화를 일으키는데, 힘에 의해서 변화가 일어난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힘이라는 것은, 세상으로 보면 그게 물리적인 에너지이지만, 성경에서는 그 힘이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의 다툼에서 나온다고 한다는 말이죠.

인간이 뱀에게 속아넘어가서 그때부터 주어지는 힘은 무슨 힘인고 하니, 죽음의 힘인데, 그러니 사람이 태어나서 그냥 죽는 것이 아니라, 로마서 5장에 의하면 죄의 힘이 있다고 했고, 그 죄의 힘이 인격에서 나오는데, 그게 바로 사탄, 즉 악마라는 겁니다. 그렇게 사탄의 힘이 눌리도록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자에게는 그것이 왜 해당되지 않는고 하니, 이 세상은 남자에게 소속이 되어있는데, 여기서 여자는 남자에게 소속이 되지 않는 여자를 의미한다는 말이죠. 보통 여자는 남자에게 소속이 되어서 같이 늙어 가는데, 그런데 남자에게 소속이 되지 않는 여자, 그래서 이 여자의 이름이 다른데, 그래서 그 이름이 '생명' 이라는 겁니다.

남자는 흙, 여자는 생명 !!

그래서 남자는 흙, 여자는 생명,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심수봉은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라고 했지만, 성경은 그게 아니고, 남자는 흙, 여자는 생명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 여자는 남자에게 소속이 되지 않는 생명이기에, 그래서 남자가 죽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탈출이 가능한 것이 여자라는 겁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예수님을 낳았던 마리아인데, 그래서 마리아는 남자에게 종속되기 이전에 무엇을 낳았는고 하니, 아기를 낳았다는 겁니다. 그리고 오늘날 성도는 예수님의 여자인데, 즉 예수님의 신부라는 겁니다. 그래서 혼인잔치를 할 때 기존의 남편과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영원한 결혼식을 올린다는 말이죠.

그러니 기존의 남편과는 임시방편이고 예수님과 영원한 결혼예식을 올리게 되는데, 이게 로마서 7장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한 여자가 남편이 죽고 난 다음에 영이 되신 새로운 남편에게 시집을 간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시집을 갔다는 것은, 기존의 남편과의 관계는 이미 죽음의 관계라는 의미라는 말이죠.

(롬 7:2)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났느니라

그러면 이혼을 해야합니까? 그럴 필요도 없는데, 왜냐하면 이미 죽은 자이니 이혼을 하고 말고 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그리고 남편과 아내가 둘 다 예수님 안에서 죽었다고 하면, 그러면 둘 다 신부가 되는데, 즉 같은 신부의 입장에 놓인다는 것이죠.

그림자 사랑 !!

어제 오전시간에 그런 설교를 했는데,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그림자라고 말이죠. 그런 그림자끼리는 서로 연락을 취하고 사랑을 한다는 겁니다. 그게 바로 성도의 교제라는 말이죠. 그러니 둘 다 실체를 주장하면 안 되는데, 자기가 잘났다고 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런 자기 의가 있으면 교제가 그만 깨지고 만다는 것이죠.

그래서 "니는 하루에 기도를 몇 시간을 하노? 한 번 이야기해봐라. 나는 하루에 2시간을 한다" 라는 식으로 나오면, 그런 것은 전혀 교제가 안 된다는 겁니다. 물론 "니는 얼마나 못났노? 나는 이렇게 이렇게 못났다" 라고 하면, 그것은 교제가 되고 말이죠.

그러니 성도의 교제라고 하는 것은, 필히 성령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렇다면 '성령 안' 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아버지의 영을 받았던 예수님과 아버지와의 관계를, 그것을 이 세상에서 성도끼리 재현하고 반복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있으면서 제자들을 야단을 치고 도와주기도 했지만, 그들을 저주하거나 심판하지는 않았다는 말이죠. 끝까지 사랑하시는데, 그것은 결국 제자들이 자기와 같이 될 것이라고 예수님이 예상을 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예수님을 제자들을 보고 "나는 섬김을 받으려고 온 것이 아니라 섬기려고 왔다" 라고 하셨고, 그리고 제자들을 자기 친구라고 하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들을 사랑한 것처럼, 너희들도 내가 떠나고 나면 서로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마지막 계명이다" 라고 하셨다는 말이죠.

성도의 연락(宴樂) !!

그런데 그렇게 서로 사랑하려고 하면, 주님이 하나님이면서도 죄인을 어떻게 섬기는지, 그것을 성령께서 그대로 실행을 시켰고, 그 실행이 제자들 사이에서 그대로 적용이 되면, 그것이 바로 성도와 성도 사이의 서로 연락(宴樂)하는 관계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서 거기서 시간이 없어지게 되는데, 그러니 세월탓을 할 수 없다는 말이죠.

특히 중요한 것은, "내일 잘 할게요. 수능을 치면 열심히 교회에 다닐게요" 라고 하지 말라는 겁니다. 성령 안에서는 시간이 없는데, 묵시의 세계이기에 말이죠. 주님께서는 그때그때 은혜를 주시는 것이지, 두 달치를 미리 주시고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늘 동행을 하시면서 늘 돌보아주시기 때문에, 우리도 주님의 그런 시간에 맞추어서 살아야 한다는 말이죠.

그러니 늘 주시는 은혜에 늘 감사해야지, 미뤄놓았다가 연말에 감사하고, 그런 것은 없다는 겁니다. 고난을 받는 것도 주님과 함께 늘 고난을 받아야지, 고난주간을 정해서 금식을 하고 수제비를 먹고,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말이죠. 고난주일 따로 있고, 부활주일 따로 있고, 감사주일 따로 있고,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늘 주님은 부활해서 계시는데, 그러니 우리는 언제나 주님의 부활혜택을 입고 있다는 말이죠.

푹 자라 !!

그러니 시간은 없는데, 즉 주 안에 있는 자는 시간이 멈춰있기 때문에, 그래서 흔히 말하는 '죽었다' 라는 개념보다도, 요한계시록 14장 13절에서 "주 안에서 잔다" 라고 하는데, 그게 적절하다는 말이죠. 즉 "주 안에서 자는 자는 복되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성도는 아무런 걱정도 하지말고 자면 되는데, 주 안에서 말이죠. 마지막 때가 되면 주님이 깨워주시는데, 그러니 우리는 푹 자면 된다는 겁니다.

그렇게 '자리' 라는 것이 중요한데, 우리는 이미 주 안에서 죽은 자이기 때문에, 자기가 어떻게 행동을 할지, 그런 것에 신경을 쓰면 안 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뭔가 계획을 잡아서 하게 되면 성과를 기대하게 되는데, 그게 바로 시험거리가 된다는 말이죠.

자기가 목표를 잡아놓고 거기에 도달하지를 못하면, "나는 믿음이 없는가?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지 않아서 그런 것인가? 이러면 벌을 받지 않을까?" 라고 하면서, 하나님은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데, 자꾸만 마귀가 이야기한 것에 곁눈질을 한다는 겁니다. "이렇게 하다가 내 인생을 그만 망하는 것이 아닌가?" 라고 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사실 우리는 지금 당장 망해도 할 말이 없는 자들인데, 산다는 것은 더불어 사는 것인데, 그러니까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것이 기적처럼 여겨져야 한다는 겁니다. 주님께서 스톱을 시키면 끝인데, 우리에게는 살아야할 권리와 같은 없다는 말이죠. 물론 성령이 오셔서 이것을 알려주어야 아는 것인데, 그러니 자기가 지금 당장 죽어도 괜찮다는 것, 그게 바로 자기 자신을 제대로 아는 것이란 말이죠.

그럴 때가 과연 언제 올까요? 봄이 되면 올까요? 그것은 딱 한 경우밖에 없는데, 자기가 죄인임을 깨닫는 그 순간인데, 즉 자기가 죄인임을 알고 입을 다무는 그 순간, 하나님의 말씀이 작동해서 자기는 저주를 받는 것이 너무나 합당하다는 것을 실감나게 온 몸으로서 인정하는 그 순간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그동안 자기는 너무 복되게 살았다는 것을, 주님이 주시는 행복 속에서 너무 과하게 살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겁니다. 개뿔도 아무 것도 모르면서, 그야말로 너무 건방을 떨면서 살아왔다는 말이죠. "이것을 주세요. 저것을 주세요" 라고 하면서, 아무 것도 모르면서 그렇게 살아왔다는 겁니다.

주(主) 예수 !!

이제 본격적으로 '주'에 대해서 해보겠는데, 그 주는 바로 예수님이라는 겁니다. 그렇게 예수님이 주라는 것은, 그 안에 모든 말씀의 완성이 들어있는데, 그게 곧 언약의 완성인데 말이죠. 예수님이 주인데, 그래서 예수님을 뭐라고 부릅니까? '주(主) 예수'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6장 31절에 보면 "주 예수를 믿어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라고 하는데, 그 주 안에는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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