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락-요한복음 15장 25절(썰매)171219b-이 근호 목사
가락-요한복음 15장 25절(썰매)171219b-이 근호 목사
자, 두 번째 시간 합시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처음부터 아브라함 오지 말고 예수님 오시고, 모세 오지말고 예수님 오시고, 노아 오지 말고 예수님 바로 오면 안되겠어요? 그런 생각 안해봤습니까?
그렇게 긴긴 텀 두지 말고 뜸들이지 말고 아담 타락했다 바로 예수님 오셔가지고 십자가 달려가지고 구원하시면 어떻습니까? 간편하잖아요. 그렇지요?
왜 이스라엘 해가지고 이슬람 망하고 왜 예수님 오실 때 그렇게 아주 긴 역사 이스라엘 역사 끝나고 난 뒤에 이스라엘 역사가 또 유대나라가 되고 유대나라가 또 그렇게 마귀의 짐승의 나라가 되가지고 그렇게 할 때 왜 예수님 오셔야 되느냐?
이게 두 번째 시간에서는 그걸 생각해봐야되요. 국가는 짐승의 긴 그림자다. 이게 다니엘에 나옵니다. 다니엘에 느부갓네살 왕이 동상을 금신상을 만드는데 금신상이 안에 모든 역사의 시작과 끝이 다 들어있어요. 끝까지 바벨론이예요. 큰 성 바벨론. 끝까지.
국가는 짐승의 긴 그림자다 라는 말은 이 우상이 다니엘이 보니까 이게 첫째 짐승, 둘째 짐승, 셋째 짐승, 넷째 짐승이다 이말입니다. 첫째 둘째 셋째 넷째 다 없애 버리면 뭐만 남아요? 이놈도 짐승 저놈도 짐승 모든 국가는 짐승이예요 짐승.
자, 짐승. 국가가 짐승이다. 환상이죠. 좀 어렵습니다. 환상 맞지요? 우리가 아는 짐승은 네발 가진 짐승이잖아요. 그런데 국가가 짐승이다라고 했으니까 나라가 짐승이다 했으니까 민족이 짐승이다라고 했으니까 이것은 현재 자연세계에서 언어와 대비하면서 얻을수 있는 개념은 아니잖아요.
무슨 미국이라는 짐승이 어디있어요? 없잖아요. 짐승이라 하면 뭐 가축이나 소나 개나 멧돼지 이런게 짐승이잖아요. 노루, 고라니 이런게. 그런데 성경은 국가가 짐승이라고 했으니까 이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인간들이 생각하는 현실이 아니고, 그 현실이 아니니까 그걸 환상이라고 보자고요. 환상. 현실에 적절하게 대응되는 단어가 없기 때문에.
환상부터 시작해서 문제는 환상에서 환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환상이 어느새 뭐가 되느냐 하면은 이것이 현실이 되버리는겁니다. 이게 어려운 거예요. 환상이 환상이야기로 끝까지 붕 떠야되는데 그게 아니고 환상이 실제로 이 땅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태어났잖아요.
태어났으면 엄마가 마리아고 아버지는 요셉이고, 이것이 현실이 된겁니다. 베들레헴 아이들이 죽고 하는 그것. 헤롯왕이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 그렇게 설쳐댔고 동방박사가 설쳤고 12제자 뽑았고 현실이잖아요.
환상이 현실이 된다는 말은 현실에서 환상쪽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있느냐?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현실은 백년 나와봐야 북한 미사일처럼 가다가 톡톡톡 떨어져요. 현실은 현실에서 이해하고 해석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현실을 구성하는 이 단어, 말, 언어, 개념은 환상을 충족하게 담을수 가 없어요. 현실을 생각하는 그 언어를 뭐 헬라어 히브리어라고 봅시다. 원어라고 하잖아요. 원어분석 해봐야 현실적인 자기 주체, 자기 존재만 다시 되비쳐 나올뿐입니다.
여러분 거울앞에 서게 되면 누가 비칩니까? 자기 모습이 비치죠? 그런데 성경앞에 서면은 거울 앞에 서서 자기 모습 비추듯이 사람들이 성경을 보면서 거울용으로 내가 오늘 뭘 해야되고 자기 모습을 되비친다고 생각하는데, 이게 착각입니다. 잘못입니다.
성경에는 놀랍게도 내 모습이 안보입니다. 성경에서 누구 모습 나오느냐? 성경에서는 예수님만 나와야되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같아요. 거울에 비췄는데 거울에 내가 비춰야될 거울이 다른 사람이 와서 나를 비출 때 우리는 기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 나는 없고 예수님만 있다면 그러면 나는 뭡니까?’ 예수 안에 있는 존재거든요. 예수안에서 그냥 있는 존재 아니고 예수 안에 나는 살아 있다고 우기지만 사실은 죽은체로 예수 안에 있는 존재가 되요. 죽은자로 규정되는 조건하에 예수안에 있는거예요.
그래서 나는 날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고, 나는 그리스도가 사는데 성경을 안보고 세상을 보게되면 세상 사람들은 내가 살아 있다고 그 사람들은 그렇게 보는 거예요. 세상의 거울은 자기 모습만 되비치기 때문에. 너도 인간이고 나도 인간이라고 보는 겁니다.
이 말이 약간 어렵지만 쉬운 말로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본디오빌라도 앞에 재판 받기 위해 섰을 때 본디오빌라도 앞에서 그 분이 하나님으로 보입니까? 그냥 유대시민으로 보입니까? 어떻게 보입니까? 예수님이. 유대시민 중에 한 사람이죠. 현실의 눈에는 현실만 보인다니까요.
그래서 빌라도가 예수님께 한 말이 있어요. 내가 너 살려주면 너는 살 것이고 내가 너를 죽이면 죽인다. 나는 너를 살릴수도 있고 죽일수도 있는 권한이 내게 있다 했잖아요. 그때 예수님의 답변은 현실로 답변한게 아닙니다. 환상으로 답변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허락하지 아니하면 너는 그러한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여건도 조성되지 않는다. 그러한 능력, 그런 자격도 없어. 본디오빌라도가 말합니다. 진리가 무엇이냐? 예수님 말 안하죠. 현실에서 말하는 진리, 인간을 위한 진리입니다.
그러나 환상에서 말하는 진리는 진리라고 이야기 할 수 없는 이유가 지금 진리가 인간들 속에 섞여 있잖아요. 자, 그렇다면 교회에서 전도할 때 현실을 이야기 해야되겠습니까? 환상을 이야기 해야 되겠어요? 환상이 담겨 있는 현실을 이야기 해야 되겠죠.
그러면 환상이 담겨 있는 현실이라면 같은 현실을 이야기 하는데 같은 단어를 사용하고 같은 한국말을 사용하고 개념을 사용해도 그 개념이 중첩되어 있죠. 그 개념을 그 단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믿으라고 한 것이 아니고, 성령받지 않은 사람은 제발 믿지 마세요 라고 하면서 던지는 내용이 설교이여야한다 이말이죠. 갈려면 가라 이말입니다. 꼬시지 않을테니까.
다시 설명합니다. 환상에서 짐승이라는 예를 들었지요. 환상에서 환상이 환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실제 역사속에 예수그리스도가 들어와 버리니까 느부갓네살 왕은 다니엘이 자기의 신하잖아요. 자기의 부하 직원 아닙니까.
그런데 다니엘이 알고 있는 것은 자기가 어제밤에 잊어 버렸던 꿈 내용까지 알아버리면 느부갓네살 왕은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인지 분간이 안되는 겁니다. 누가 머리 꼭대기 위해 누가 앉아 있는지 안되지요.
다니엘을 잡아 죽여서 문열고 기도 했다고 해서 모함해서 다른 하여튼 탕평책을 안썼어. 파당 지어가지고 고발해가지고 다니엘이 잡혔잖아요. 그때는 느부갓네살 왕이 아니고 뒤에 왕인데 하여튼 그래서 다니엘이 잡혔잖아요.
사자가 굶어서 물어야 되는데 다니엘을 안 뭅니다. 그러면 이 말은 뭐냐하면 인간들이 알고 있는 단어의 나열, 단어의 나열은 반드시 뭐가 되느냐? 법이 되요. 법이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단어들의 나열로 되어 있어요.
이것 하게 되면 이런 처벌 받습니다. 법이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언어로 표현되게 되어 있고 그 언어에 따라서 처벌을 하게 되어 있고 적용을 하게 되어 있는데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는 자는 반드시 내가 죽인다 사형시킨다라는 인간의 법이 있잖아요.
그 법이 어디에 통합니까? 현실에 통하잖아요. 그런데 현실을 다리오 왕이 동그라미를 칠 때 너무 좁게 쳤어요. 현실을 자기 영역이다. 영역, 자기 구역, 이걸 일본말로 나와바리라고 하는데 자기 구역에 법을 정했는데 여기 누가 들어와 있습니까? 다니엘이 들어 있잖아요.
다니엘이 들어 있어도 다니엘도 자기 법에 획일적으로 여기의 지배를 받는다고 생각하는데 다니엘이 지배받는다는 말은 뭐냐 구체적으로 법이 적용되는 대상이 되야 될텐데, 물어! 물어! 물어! 사자가 물지를 않네요.
또 다니엘 세친구도 마찬가지입니다. 금신상에 절 안하면 불에 태운다. 태웠는데 타지 않는 세포가 있습니까? 세포는 유기물 탄소, 그리고 인 뭐 이렇게 수소 이런구조로 되어 있거든요. 과학적으로. 그들은 과학을 진리라고 하는데.
왜 불에 안타지요? 단백질은 200~300도가 되면 타게 되어 있어요. 탄다는 말은 산소가 개입되고 산소가 결합이 되서 타게된다 이야기 한다 말이죠. 뭐 산소가 차단됬는가? 왜 안타지요?
‘주님! 왜 다니엘 세친구는 왜 불에 안탑니까?’ 물으면 주님이 뭐라고 합니까? ‘왜 꼭 타야되는 이유가 있나? 너희들 주장이 왜 맞다고 생각하지? 너희들 주장이 틀렸다고 생각해본적 없나? 너희들이 서로 통하는 너희들끼리 통하는 그 법이나 진리나 원칙이 전혀 환상의 세계에서는 안통한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있냐.’ 묻는거예요 도리어 다니엘 세친구를 통해서.
그러면 ‘너는 어느 나라 갈 거야 정말?!’ ‘주의 나라 갑니다.’ 주의 나라 갈 것 같으면 평소에 지금껏 내가 살아오면서 내게 적용시켰던 모든 그 법칙과 삶의 원리와 생활 방식을 죄인줄 알아야지요.
이게 지금 천국에 전혀 먹히지도 않는 것을 나는 그것에 휘둘리면서 벌벌 떨고 살았다는 것을 자기가 고백해야지요. 기껏 허수아비 같은 이것에 매달렸고, 이것 때문에 간담이 서늘했고, 이것 때문에 벌벌 떨었고, 두려워 했고, 쫓기고 있고, 무서워 했다는 거예요.
그게 왜냐? 주님을 몰랐으니까 그렇지요. 주님을 몰랐으니까 주님의 환상의 세계를 몰랐으니까 모르고 눈에 보이는 그게 전부인줄 알았지요. 그게 전부인줄 알았던 거예요.
지금 제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뭐냐 하면은 왜 예수님께서 다니엘, 왜 아브라함때 안오고 왜 모세때 안오고 왜 다 이스라엘 망하고 난뒤에 와야되는가. 현실은 현실속에 환상을 집어 넣는데 그냥 환상이 현실을 그냥 넘어가는게 아닙니다.
환상이 현실속에 들어 갈때는 반드시 죄가 숙성되야되요. 창세기 14장 15장에 나오지요. 4대만에 애굽에서 나와서 4대만에 다시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될 이유가 죄가 숙성되야 공격대상이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면 죄가 숙성된다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은 모든 인간은 예외없이 다 죄인이였다가 최종 판정이 나야되요. 모든 인간은. 그런데 모든인간이 판정될려면 그러면 한 인구가 한 500만되어도 모두 할 수 있는데 왜 그렇게 됬느냐?
죄의 폭이 하나님을 죽일정도 까지 되는 죄의 폭을 형성해야 됩니다. 이제부터 어려워요. 정신 바짝 차려야 됩니다. 왜 아브라함때 예수님 오시지 않았는가. 죄가 숙성되야 된다. 숙성되는게 뭐냐? 죄의 깊이가 더 깊어야 된다. 그러면 아브라함때 죄를 끝까지 깊이 만들어 놓고 예수님 오시면 되지 않느냐.
그것은 아까 이야기 했던 영의 구조와 육의 구조와 이것이 동일해야 되기 때문에 그래요. 이게 진짜 어려운 겁니다. 자, 동일하다는 말은 무슨 뜻이냐. 이게 오늘 26절, 27절 말씀과 관련되어 있어요.
더 어렵게 하기 전에 결론부터 먼저 말씀 드리면, 성령이 오셔서 할 일은 사탄, 악령이 벌려놓은 모든 것이 다 노출될 때 성령이 보혜사가 그 때 오게 되어 있습니다. 사탄의 그 깊이 사탄의 그 깊은 은밀한 것까지 다 공개될 때 성령이 와야되요.
그러면 그 공개되는 그 방식을 지금부터 제가 될수 있는 대로 쉽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제 현실로 한번 돌아와 보겠습니다. 환상은 약간 접어두고 현실로 돌아와 봅시다.
20대에 대학4년생 또는 대학 졸업생 또는 대학을 졸업했다 칩시다. 그럴 때 그 대학생 젊은 대학생이 사회에 대해서 뭐라고 요구하겠습니까? 이 사회보고 젊은 사람이 나에게 뭔가 나에게 일을 좀 맡겨달라는 거예요. 이 사회가.
일을 잘하고 못하고 일단 맡겨줘놓고 일할수 있는 기회를 줘서 일 못하면 그 때 못하고 잘하고 이러면 되는데 아예 처음부터 일을 안맡겨주게 되면 기회조차 날라가겠죠. 그래서 젊은 사람들은 예수고 하나님이고 그게 중요한것이 아니고 누가 나를 호명해줬으면 좋겠어. 누가 나보고 오라하는데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오라하는데 가서 가게되면 직접 일을 해볼게 아니겠습니까. 해보게 되면 뭘 아느냐? 내가 누군지를 알아요. 내가 이 일이 적성에 맞는지 내가 이 일은 적성에는 맞는데 과연 오너가 요구하는데로 내가 그걸 전부 소화시킬수 있는 사람인지, 이 모든 것이 결국 뭐냐하면은 내가 누군가? 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내가 누구인가? 내가 누구인가? 사탄이 누구인가? 예수님이 누구인가? 이거 아니예요. 뭐냐 내가 누구인가예요. 그래서 한 27살 되가지고 여기 세미원에 입사했다 칩시다. 입사 했다 이말이죠.
입사해서 영업직 한 6개월 했는데 실적 없다. 그때는 조용히 종용해버리죠. 나갔다 할 때 여기서 6개월 다니고 다른 회사 취직하게 되면 결국 계속 이 사람은 끝까지 뭘 보느냐 하면은 내가 누군가에 대해서 지연시키는 거예요. 다시 또 미루게 된거죠.
그래서 다른회사 가서 15년 일했다. 15년을 일했는데 차장에서 부장 승진되었다. 그것이 자기 일까요? ‘아 지겹다. 다른 큰 회사가 스카웃 안해가나?’ 또 뭘 원하냐? 호명하기를 원하는 거예요. 어디에서? 이 사회가.
그러니까 제 말은 뭐냐하면 인간은 사회안에서 자기의 자리를 정하는 것으로 그게 곧 ‘나’ 라고 확정짓고 싶은겁니다. 인간은. 그리고 이런 생각은 모든 인간은 다 갖고 있어요. 모든 인간이 다 갖고 있다고요.
만약에 교인이 한 500명 되는 목사인데 지금 500명에서 막 600명 될려고 하는데 스카웃 들어 왔어요. 교인수가 15명인데 오실렵니까? 월급은 10분의 1밖에 안되는데 오실렵니까? 하게되면 목사는 진짜 순수한 마음으로 또 뭐 고생하겠지 하겠지만 누가 가만있지 아니하냐 하면 사모. 사모님도 아니야 사모.
사모가 ‘미쳤나 이거. 지금 첫째 미국에 유학 보내가지고 월 200만원 들어가고, 둘째가 지금 호주에서 뮤지컬한다고 해가지고 한달에 200 들어가는데 당신 거기 가가지고 한달 월급 다 주게되면 어떻게 살라고. 적어도 1000명에서 부른다면 월급이 오를거니까 이제는 딸 시집갈 때 집한채 사야되는데 계산되는데 당신 미쳤어!’ 이렇게 된단 말이예요.
‘당신 가오가 있지. 당신 위신과 체면이 있는데 어딜 가!’ 이렇게 된다 말이죠. 그게 뭐냐하면은 내가 누구냐가 이미 어느 선에서 이미 정해져 있어요. 정해져 있는데 그 남자 입장에서는 목사 입장에서는 누가 오라하게 되면 또 다시 그 본인 자리가 흔들릴 수밖에 없지요.
결국은 이겁니다. 사회가 호명하는 이것을 가지고 주체가 되는 거예요. 알튀세르라는 철학자가 이걸 이야기 한겁니다. 마르크스 주의의 사회학자 알튀세르가. 이데올로기라는 것은 뭐냐하면은 우리말로 하면 이념인데 앞에 붙지요. 허위이념.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이념을 이데올로기라 하고 그 이데올로기에서 호명을 해주기를 모든 개인이 호명을 받게 되면 그 인간은 철저하게 이미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그것이 인간으로서는 안정적인 자리확보라고 그렇게 굳게 믿고 또 믿게 되는 거예요.
그거하고 성령하고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이렇게 되겠지요. 이 말은 개인은 없다 이말입니다. 개인은 없어요. 개인은 내가 되고 싶어서 허락해준 사회가 아니예요. 누가 불러줘야되요. 누가 불러줘야 된다고.
젊은 사람들이 시험친다고 아무나 시험보러 오는게 아닙니다. 저기 시골에 농사짓는데 원서내세요. 아무도 원서 안냅니다. 농사짓는데 왜 원서를 내요. 소 똥 치우는데 왜 원서를 냅니까. 삼성그룹에는 원서 내지요. 소 똥 치우는데 왜 원서를 내요. 거기에.
새우잡이에 원서 내는거 봤습니까? 새우잡이에. 그것은 납치되서 하는 거예요. 납치되서 가서 하는 거예요. 납치되서 가보면 미얀마 2명에다가 캄보디아 3명, 네팔 5명하고 같이 일해요. 일하는데 힘드는데 균형이 안 잡혀가지고 일은커녕 서 있지도 못해요. 힘들어가지고.
바닷물에 흔들려 가지고. 바닥이 안전해야 못을 박든지 하지 이게 흔들리는데 미칠지경인데 멀미나는데 뭐 일을해요. 그러니까 새우잡이가 힘든거예요.
그러니까 이 말은 뭐냐하면 인간은 이 사회를 벗어날 의사도 없고, 이 사회가 만약에 별자리라면 나는 어느 별 어느 별로 붙박이처럼 팍 박혀 가지고 평생을 나는 안정성 있게 인생을 끝내느냐 그것으로.
별이란 그 별자리 바깥에 있는 표면적으로 풍선에 안쪽있죠. 풍선에 안쪽에 별 자리 하나씩 차지하고 있으면서 어떤 사람 참 부럽다. 내가 저 자리 잘 할수 있는데 이런 쪽으로 인생 그 생각들이 뭘 이루느냐 그게 바로 사회를 이루는 겁니다. 호명으로 사회를 이룬다.
그러면 이거하고 성령하고 무슨 관계있느냐 하면은 성령은 주님의 환상세계를 마련합니다. 구조가 똑같아요. 아까 구조, 육의 구조 말씀드렸습니다. 육의 구조에서 내가 얼마 버느냐, 내가 얼마나 신체가 건강하냐, 취미가 뭐냐, 내가 얼마나 이쁘냐,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뭐가 중요하냐 하면 이 이데올로기 사회에서 내가 있는 자리, 그 자리는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고 누가 어떻게 했다? 호명했지요.
너 간호사관학교 갈래? 간호사관학교에서 시험치고 합격하면 그게 호명이예요. 간호사관학교에서 불러주는 겁니다. 들어가기 힘들어요. 그렇죠? 힘들죠. 굉장히 공부 잘해야 되요. 나라에서 공짜로 밥 먹여 주는데 공부 얼마나 잘해야 되요.
세무대학 그리고 철도 대학. 지금은 아니지만 옛날 철도대학은 일류 였습니다. 굉장히 사관학교 비슷해가지고 나오게 되면 중간급 철도회사 중간급 간부로 들어가 가지고 그들이 전부 다 부장 다 해버리잖아요.
지금은 경찰대학. 딱 나오면 경위라. 자기 아버지 8년한거랑 똑같애. 8년이 뭡니까 16년한거랑 똑같나디까 경위가. 그게 바로 이 사회가 말하는 자리예요. 자리, 호명. 거기에서 뭐가 생긴다? 이 호명을 뭐라고 했습니까? 주체예요. 이게 바로 무슨세계? 바로 육의 세계.
이걸 아까 뭐라고 했습니까? 현실인거예요. 현실. 그러니까 다니엘에서 다니엘과 세친구는 어디 남들보기에 어디 취직한겁니까? 느부갓네살에 그 국가체제에 취직이 된거예요. 느부갓네살은 자기 국가 자기 나라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다니엘은 그걸 뭐라고 합니까? 짐승이라고 해요 짐승.
이게 너희들 보기에는 현실로 보이지? 우리 보기에는 환상으로 보면 짐승의 세계에요. 짐승의 세계. 교회도 마찬가지예요. 짐승이예요. 왜? 체제가 인간의 호명하는 체제와 똑같기 때문에.
그런데 주님의 세계는 주님의 호명만 있으면 되요. 주님이 호명해주는 거예요. 누가 하느냐 하면은 주님이 찾아오는 거예요. 우리는 취직할려고 내가 설치지만 주님은 뭘 하느냐 하면은 죄를 의로 바꾼 사람을 주께서는 찾아오셔서 죄를 의로 바꾸는 작업을 하는 겁니다.
이 자리가 죄인의 자리를 뭐로 바꾼다? 주님의 자리, 의인의 자리로 바꾸는데 있어서 주님께서는 호명해주셔가지고 죄인을 의인으로 바꾸면서 거기서 십자가만을 자랑하고자 하는거예요.
자, 그렇다면 짐승의 자리가 어떤 자리냐? 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 그때 예수님 바로 보내지 않느냐? 온 세계 전체가 국가가 하나의 국가, 단일 국가, 곧 바벨론으로 될 때까지 죄를 숙성시킨겁니다.
‘마귀야 너 할 일 다 해야지. 너 할 일 다해. 온 나라를 온 세계를 사탄의 짐승의 단일국가로 만드는데 성공해야지. 그렇게 해야지.’ 하고 딱 전체를 단일국가로 만들어 버렸어요. 만들어 버리니까 거기에 있는 구성원 인간들은 아무 생각 안합니다.
그저 취직해야지. 취직해서 돈 벌어서 모아가지고 주택부금 넣어가지고 그래도 전세에다가 좀 보태가지고 아버지한테 돈 보태가지고 아파트라도 이렇게 전세라도 해야 그 다음에 이제 여자를 데려와도 여자를 데려와서 살지 이렇게 되지 돈도 없는게 여자 데려와서 뭐 할라고. 돈도 없는게. 여자 돈버는거 그거 넘봐가지고 할라고.
하여튼 세상은 내 자리 확보. 그 내 자리 확보가 어느 자리 확보? 짐승의 나라에 내 자리 확보하는 거예요. 짐승의 나라에 내 자리 확보. 어떤분이 질문을 했어요. 사회가 신과 영혼에게 어떤 힘을 실어준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라는 질문이 왔어요. 내가 보기에 약간 뜬금없는 질문인데 설명을 했지요.
신은 인간의 이상적인 세계예요. 그리고 내 영혼은 신이 살려준다는 이 이데올로기 이념을 사회가 보장해준다는 쪽에서 사회는 돌아가고 있다. 이 말은 국가라는 것은 신의 이름으로 당신들의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 국가가 주어집니다 라고 하면서 국가는 나름대로의 자기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 이것이 바로 이념입니다 라고 이야기 한거예요.
그렇게 답변했는데, 현재 지금 이 속에 있는 인간들에게는 예수님의 나라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나한테 자리를 확보해주신 고마우신 대한민국이 중요합니다. 대한민국이. 여러분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의로 바꾸는게 기쁩니까? 아니면 일본은 4:1로 이긴게 기쁩니까?
37년만에 석점차로 세골차로 이긴게 기뻐요? 월드컵 4강 간것이 좋습니까? 예수님께서 오늘도 내 죄를 의로 바꾸는게 기쁩니까? 아니 4강보다도 지금 내가 과장인데 부장으로 승진된 것이 기쁩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좋아요? 어느쪽이 좋아요?
‘승진된것도 좋지만, 아니야 이건 정답이 아니야 주님의 십자가.’ ‘그러면 쫓겨나도 좋습니까?’ 하는데 ‘구조조정 당하면 애들 식구 5명인데 지금도 이 추운날 비오는 날, 눈 오는 날 쫓겨나면 좋습니까?’ ‘그것은 안되요!’ 그거는 안되요가 뭐냐하면 나는 짐승의 나라가 좋아라고 하는거랑 똑같아요.
나는 짐승의 나라가 좋아. 때려죽여도 짐승의 나라! 짐승의 나라가 최고야! 짐승의 나라가 최고인거예요. 짐승의 나라가. 그것을 그게 뭐냐? 주께서 그렇게 뭐하느냐 숙성시키는 겁니다. 어느 누구도 자진해서 짐승의 나라에서 벗어날 생각도 없고 벗어날 마음도 없어요 우리는.
예수고 하나님이고 간에 누구 와서 너 우리 회사 와서 일좀 할래? 월금 한 300줄게. 젊은이들에게는 그 소리가 기쁜 소식이예요. 사자성어로 기쁜소식, 두자로 복음이예요. 이게 악령과 사탄과 함께 있습니다. 사탄의 구조, 악마의 구조입니다. 이 구조를 똑같이 닮았어요.
뭐냐하면은 성령께서 그 구조를 하는겁니다. 성령의 세계에서 이 전체를 뭘로 보느냐? 죄로 봐요. 죄로 보면서 죄를 사탄을 이용하는 겁니다. 사탄을 누가 일하게 하시고 누가 보냈습니까? 사탄을. 주님이 보내잖아요. 주님이 보냈어요.
교회를 누가 만듭니까? 주님이 만들어요. 교회를 만들어 놓고 그 교회에서 나를 인정해 주는 것이 좋아요? 내가 교회보다 복음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까? 교회 다닌다면 아이고 집사님 칭찬해주고 사랑해주고 추앙해주고 이렇게 할 때,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하는 그게 막 실감하잖아요 현실은.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뭐하느냐 하면은 우리로 하여금 현실에 푹 젖어 있는 우리를 뭐로 바꾸느냐? 뭐로 바꾸겠어요? 현실적 존재를 환상적 존재로 바꾸는데 누가 하신다? 성령이 하시는데 어떻게 하는가. 이 현실적 존재를 무조건 무조건 이것을 죄로 규정하면서 환상적 존재로 바꿔줍니다.
그럼 우리쪽에서 할 것은 뭐다? 아무것도 필요 없어요. 아무것도 필요 없어요. 아무것도 필요 없어요. 너무나 현실적이고 현실적이고 내 욕구와 욕망을 만족하는 이것이 죄라는 것을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은 지금 현실 사람들이 못 따라오는 현실의 사고로서는 도저히 이해 할수도 없고 따라올수도 없는 환상속에 들어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안에 있는 사람이예요.
바르게 산다고요? 바르게 살면 뭐 무슨 바르게 살아도 별 달라질거 없어요. 우리는 죽을 때 까지 이런 현실세계에 집착하고 그것이 우선적이고 그걸 자랑삼아 합니다. 하면서 환상과 함께 있을때는 바로 그렇게 하게 해 놓고 뒤에 소급해서
‘봐라. 내가 손 안대면 또 니가 이 모양 이 꼴 나잖아. 봐라. 니가 자랑한거 봐. 입가에 미소 띠는거 봐. 보너스 받았다 이거지. 좋지? 이게 십자가 보다 이게 훨씬 좋지?’ ‘좋습니다!’ ‘기쁘나?’ ‘기쁩니다!’ ‘죄인인걸 아나?’ ‘압니다!’ ‘아이고 이쁜 것.’
주님께서 현실이 받쳐주지 않으면 환상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왜냐? 환상되시는 분이 현실속에 들어 와 있기 때문에. 따로 노는 것이 아니고 현실 속에서 환상이 움직이거든요. 그래서 위대한 예수 찾지 마시고 우리처럼 같은 현실을 지금 활동하시는 분 누구냐? 성령입니다. 주의 영이예요.
옛날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있던 것처럼 그점을 대구 강의에 했는데 그점을 다시한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상당히 중요하거든요. 사도행전 1장에서 예수님하고 제자들하고 같이 있었잖아요. 같이 있었지요. 사도행전 1장에서 승천하기 전에 있었잖아요.
사람들은 제자들은 이것을 믿음으로 본거예요. 믿음으로. 같이 있으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 구름타고 올라갔어요. 제자들은 멍하고 같이 있어야 되는데 떠나버렸어요. 그러면 제자들이 따라 갈려면 제자들이 손오공처럼 뭘 불러야되요? 빨리 자가용 구름을 불러야되요.
‘주님, 잠깐만! 잠깐만! 같이 갑시다.’ 하고 구름 불러야 되요. 구름 불르면 옵니까? 드라이아이스 올라타면 그게 올라타 집니까? 자기들은 같은 공간적으로 같은 공간에 있으면 눈에 보이는 자기 시선안에 있으면 그것을 믿음으로 보는데, 붕 떳을 때 주님께서 떠났을 때 과연 이게 믿음이 될려면 인간쪽에서 가는 것은 실패예요.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주님쪽에서 와서 성령이 와버리면 같이 떨어져 있어도 뭐가 되요? 믿음관계가 성립되기 때문에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오순절날 뭐가 옵니까? 오순절날 성령이 오잖아요. 오순절날 성령이.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제자들은 마음놓고 신앙생활 잘하고 있는거예요. 주님 안에서 주와함께 정도가 아니예요. 주님안에서 주께서 시키는 대로 마음껏 하는거예요. 왜 그렇게 해야되냐? 그래야 예수 환상적인 존재가 현실쪽에 존재에서 함께 있어줘서 활동한 그 활동이 반복되기 때문에 그래요.
예수님을 볼 때 사람들은 현실로 보잖아요. 그런데 예수님은 하늘에 속한 분 아닙니까? 하늘에 속한 분이거든요. 그것을 성령을 통해서 누가 하게 되느냐. 제자들이 그걸 계속하는 거예요.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성령 받았잖아요. 성령받고 난 뒤 예수님이 하는 일이 성령의 일이고 환성적인 일인데 사람들은 예수님을 저 사람 아버지 누구지? 저 사람 아버지 목수, 저 사람 아버지 이름은 요셉이고 직업은 목수래. 아이고 고향은? 나사렛. 아이고 나사렛에서 무슨 별것이 나오느냐.
이러한 조롱과 무시를 당하는 그 역할을 누가 한다는 말입니까? 제자들이 했고 오늘날 성령받은 오늘날 이 시간에 성령받은 우리들이 그 일을 역할을 하는 겁니다. 분명히 나는 죽고 내 안에 살 것 같으면 우리는 환상적인 존재예요.
존재인데도 불구하고 남들은 우리를 그렇게 보지 않고 ‘지금 누가 겨울에 저렇게 살쪘니?!’ 이런식으로 극히 현실적인 존재로. ‘아이고 감기도 잘 걸리더라.’ 이런거. ‘그렇게 하나님이 좋으면 감기도 안걸려야 할텐데. 맨날 콜록콜록하고 다니면서 성령받은 티가 안나. 맨날 감기 걸려가지고.’ 그 초라한 행색에. 아까 초라하다는 말 했잖아요. 초라한 행색에 누가 믿겠느냐.
이게 현실은요, 현실은요 절대로 현실밖에 못나옵니다. 안나와야 되요. 안나오고 내가 받았던 성령과 동일한 성령이 와줘야 아, 성령안에서의 교제가 되는 겁니다. 그게 사도행전에 나오는 사도신경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사실은 성령도 맞아요. 성령안에서 하나의 한 몸이 되는 겁니다. 사도신경이 틀린말이 아니예요.
문제는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겁니다. 눈에 보이는게 다가 아니예요. 각자 집에 있더라고 성령안에서 이미 한 형제로 움직이는 겁니다. 그래서 26절,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는 제가 강의한 것을 집어 넣으면은,
환상은 반드시 현실을 떠나서 있는 것이 아니고 현실안에서만 뭐가 있다? 환상이 있는 방식을 예수님이 채택했기 때문에 우리도 오늘날 우리를 데려가지 않고 이 세상에 육의 사람들과 같이 살면서 우리는 환상적인 조치가 계속 가해지는 겁니다.
그래서 보지 않고 믿는자가 복된거죠. 그래서 아까 했잖아요. 거울 앞에서 성경 앞에서 현실에 있는 사람들은 성경을 이용할 생각을 하지만, 환상적인 존재는 성경에서 뭘 본다? 나를 보는게 아니고 예수그리스도를 보면서 그리스도안에 자세히 보니까 그 안에 나는 내가 들어 있는게 아니고 죄인의 죄인중에 한 사람으로서 그 성경안에 들어 있는 거예요.
바리새인 있잖아요. 그 바리새인이 나고, 그 못때먹은 가롯유다가 나고. 왜? 우리는 죄인인데 현실적인 존재인데 환상적인 영적존재로 늘 바꿔주니까. 가롯유다가 왜 자살했습니까? 양심에 가책을 느꼈지요. 이 양심에 가책이 됬다는 말은 내 인생은 누가 책임진다? 내 인생은 누가 책임진다? 끝까지 내가 책임지겠다는 거예요.
‘누나 미안해. 힘들었어 그동안’ 샤이니의 종현의 유서가 공개됬잖아요. 샤이니라는게 있어요. 사람들이 나를 기대하고 호명하는 것 그것은 이 사회의 구성원이기 때문에 나는 사회한테 인정받아야 되고 사회한테 사랑받지 않으면 우리는 외로움을 느끼는 겁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뭐냐? 그게 바로 죄의 숙성이예요. 계속 우리 안에서 바리새인이고 가롯유다고 우리안에 계속 숙성되는데, 그게 죄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오직 예수 안에 이미 환상적인 존재만 그걸 알아요.
여러분 다니엘이 메시아가 아닙니다. 다니엘은 그냥 주님께서 사용하시는 분이죠. 그래서 내가 오후예배 때 그걸 뭐라고 했느냐 이렇게 했어요. 그걸 더빙한다고 했잖아요 더빙한다. 더빙할때는 영화 미국영화 영어로 된 영화가 어떻게 되요? 소리가 죽고 음성은 뭘 넣습니까? 성우들이 더빙하잖아요.
활동은 누가하고? 예수님이 활동하고 거기에다가 더빙은 누가하고? 우리를 앞장 세워서 하는 거예요. 그래서 다니엘, 모세, 여호수아 전부 이것은 해설사예요. 해설사. 그래서 심순애가 목소리 이상하게 하잖아요. 화면 따로 나오고.
옛날에 소리 안나오는 무성 영화 옆에서 해설하는 사람 뭐라고 합니까? 변사. 변사 있잖아요 변사. 그래서 다이아몬드가 그렇게 좋단 말이냐 말이냐 말이냐 자기 혼자 하는거죠. 예수님의 활동이 우리안에 함께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예수님의 활동을 증거하는 사람이지 예수님을 증거하라고 우리에게 뭐가 왔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성령이 오는겁니다.
성령 오게되면 바로 내가 죄인이고 죄인을 택하사 의인을 변사하는 해설하는 이 귀한 직분을 우리에게 맡겨 준거예요. 자, 이야기 지금까지 이렇게 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이제 슬슬 세상사람들은 머리 짜내면서 반박할려고 애씁니다. 반박할려고 이 이론에.
여러분 예상되는 반박이 어떤 것이 있겠어요? 예상되는 반박이. 예수님이 그렇게 하고 성령오게되면 우리는 예수님을 증거한다 아무래도 별 반박할게 없지요? 그런데 성령 없는 사람은 되게 기분나빠. 괜히 찝찝해.
분명히 맞는데,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하느냐? 맞는데 그들이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이게 분명히 맞는데 그 다음에 그들이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거기서 뭘 끄집어 내느냐 하면은 이렇게 해요. 나는 뭘하면 됩니까?
자, 1번 성령과 함께 있는 나 두번째 나 독자적으로 있음. 그러면 질문은 어떻게 되요? 나는 무엇을 합니까? 라고 묻게 되면 이것은 바로 현실에서 환상을 좇아 가는 것을 아까 뭐라고 했습니까? 이게 실패로 끝난다고 했지요. 주님 구름타고 올라갔다 이 말이죠.
그러면 그렇다고 할 때 어~~가시면 안되는데 라고 제자들이 했잖아요. 그 버릇이 어디서 나오는 버릇입니까? 그동안 3년동안 따라다닌 버릇이예요.
주님 옆에서 시키면 일하고 눈에 보이는 주님 시키면 일하고 가면 같이 따라가는 그 방식을 그대로 고수하다 보니까 주님과 떨어졌다 하면 대번 하는 소리가 우리는 어떻해?!! 아이고 어찌해? 어찌해? 어떻하지? 이러는 거예요.
나는 어찌해? 이 버릇이 뭐냐하면은 이렇게 눈에 보이는 분이 시키면 해 주는 버릇이죠. 왜 목사의 말을 듣습니까? 이게 믿음이 없어서 그래요. 믿음이 없어서. 목사한테 평소에 어떤식으로 교육 받았습니까? 시키는대로 하면 되는 거예요. 시키는 대로.
시키는 대로 성경을 하루에 3장 읽고, 십일조 하시고, 1년에 1명은 전도해야지. 자꾸 시키다 보니까 정기적으로 봉사하시고, 교회 10:30부터 나와서 찬양 준비하시고 시키는 대로 하다 보니까 목사 없으면 교회 안되는줄로 알고 있어요. 목사 없으면.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우리 아시는 분한테 장로님인데 그렇게 하지말고 교회 돈내지 말고 돈 모아놨다가 본인이 설교하세요. 그 뭐 되도 않는 목사 돈만 밝히는 목사 왜 따라다니느냐. 이게 왜 내냐 하면은 평소에 버릇이 목사말 잘들으면 누가 복을 준다? 하늘에서 복준다는 이런 신앙이 있어요.
그러면 이것은 예수님 위주입니까? 누구 좋아라고? 나 위주이지요. 그럼 나는 지금 어디 박혀있습니까? 별자리가 어디입니까? 짐승의 나라에 있지요.
짐승의 나라에 있는 이 별자리를 유지하고 싶고, 그걸 견제하고 싶어가지고 그저 나 이 자리만 지켜 준다면 뭐든지 다 바치겠습니다. 충성하겠습니다. 이런 아주 이쁜 입으로 못땐 말을 하는 혼쭐나야될 그러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거예요.
성령 + 나는, 성령은 나를 뭘로 본다? 죄로 규정하거든요. 죄로 규정하면서 이 죄는 벌써 의로 해결이 난 죄가 된다 이 말이죠. 왜? 그게 죄인속에 누가 오기 때문에? 환상의 세계에서 죄인속에 누가 왔다? 모든게 죄 밖에 없는데, 더 나아가서 어떤 누구도 죄에서 스스로 죄 밖으로 벗어날 수 없었는데 분명히 합시다.
어떤 인간도 죄를 벗어날 수 없었는데 오직 바라기는 누가 왔다? 요청하지도 않은 주님의 의가 온거예요. 예수님이 나타났어요. 그러니까 성령받은 예수님이 왔을 경우에는 오직 성령받은 사람만이 예수님이 누구인줄 압니까?
바로 이 죄를 구원하러 온 메시아인걸 알잖아요. 안다면 자기일은 없고 이미 여기에 주께서 이미 나를 호명 했잖아요. 호명 했으면 호명해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내가 원해서 일어난 일이 아니고 누가 시킨 일이다? 우리 주님이 나에게 맡긴 일이 되어버려요.
그러면 맡긴대로 살면 되잖아요. 빵사오면 예수님이 시킨줄 알고 빵 사오면 되고, 남은거 갖고 싶으면 가져 가면 되고. 어느 것 하나 내가 내 인생에 대해서 더 보탤 것 없어요. 그래서 저는 여러분 하던대로 죄 지으시면 됩니다. 여러분 하던대로 잘 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내가 이번 주일날 제가 잠깐 흥분했는지 목소리가 막 간거 같아요. 이렇게 쉬운 것을 죄 지으면 되는 걸 이것도 못하느냐고 막 또 자제를 못해가지고 톤이 올라가 버렸어요. 하면서도 참 자제 안되는것도 문제다 싶었는데, 죄만 지으면 죄 짓는거 잘하잖아요. 이 현실 붙드는거 잘 하잖아요.
말레이시아 갈까 말까 갈까 말까 고민하는 그 죄. 그거 잘한다 말이죠. 그거 뭐 초월했다고 복음 안다고 그거 초월합니까? 이렇게 복음 들어도 집에가면 또 갈까 말까 갈까 말까? 애는 어떻고. 그거 주께서 유발시킨거예요.
우리의 자리가 얼마나 현실적으로 노는 인간인지를. 주님이고 뭐고 현실적으로 내 자리 확보하고 내가 그거 지켜내고 그거 남한테 자랑질하고 이것밖에 할 줄 모르는 그 정도로 너는 탕자 였다는 것을 이렇게 점점 더 죄를 숙성 시켜주는 그 고마움.
강의 이제 그만해야 되겠어요. 얼마나 감사합니까. 얼마나 고마워요. 못 빠져 나옵니다. 우리 현실에서 이 이데올로기에서 못 빠져 나옵니다. 그 가운데서 비로소 우리가 죄를 느끼는 그 현장이 주님께서 전도하는 현장이고, 다른 사람 볼 때에 ‘저게 미쳤나? 자기 죄만 자랑하네.’ 이런식으로 오해케 하는 그럴 때 이미 주께서 딱 이 세상을 두 동강 내는 겁니다.
썰매, 오늘 강의 제목은 썰매로 확정했습니다. 한쪽은 멈출수 없을 정도로 같이 죄 짓는데 한쪽은 천국으로 가는 죄, 이쪽은 지옥가는 죄. 한쪽은 예수님이 함께 환상세계 만들기 위해서 탔고, 이쪽은 성령이 없고 주님이 없고 자기혼자 사탄에 의해서 사탄이 함께 태워서 그냥 꼴아 박는 그 세계. 이 세계를 어떻게 구원 전도 합니까? 그것은 주님소관이지 우리 소관이 아닙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성령이 와서 증거하신다는 그 증거의 역할을 우리가 가로막거나 훼방하지 말게 하옵소서. 우리가 전도하는 것이 아니고, 성령께서 하시고 주께서 하신다는 것을 이제는 받아 들이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