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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썰매 171219강의요한복음

가락-요한복음 15장 25절(썰매)171219a-이 근호 목사

자 시작합시다. 요한복음 15장 25절, ‘그러나 이제 저희 율법에 기록된 바 저희가 연고없이 나를 미워하였다.’ 연고없이라고 하는 것은 무조건 이유없이, 이유없이 나를 미워했다. 이유없이 나를 미워했으면 어떤 상황이냐 하면은 미움 자체가 원인없이 미움이 결과로서 미움이 등장한 상태를 말하죠.

그런데 그 미움이 어디서 나왔느냐 하면은 율법에 기록한데로죠. 그러면 25절이 이 말씀은 말씀안에 어떤 내용이 반드시 일어나도록 되어있었냐 하면은 율법안에 말씀이 미움을 발생시키는 힘이 이미 말씀안에 담겨있다 이렇게 보면되요.

이 세상 자체가 그냥 세상이 출연된 것 아니다 이말이예요. 그냥 출연되고 난 뒤 일이 벌어진게 아니고 이 세상을 밑에서부터 외부 그 뒤에서부터 밀어올리는 힘이 있는데, 그 힘이 무슨 힘이냐 하면은 미움이라는 내용의 힘이 이 세상을 출연시키는 원인이다 이렇게 보면 되요.

이 세상. 요새 건물도 있고 사람도 있고 뭐 하늘과 땅과 별도 막 있잖아요. 이 자연세계가 그냥 생긴 것이 아니고 미움에 의해서 조성될때만 이 자연세계는 있어야 될 이유가 발생되는 겁니다. 있어야될 이유가.

미움이 없이는 이 세상은 있을 이유가 없는 거예요. 미움에 의해서 만들어 낸거예요 이게. 이걸 신약에 보면 뭐냐 하면은 인간은 태어나서 죄 짓는다가 아니라 인간은 죄로 태어난거예요. 죄로.

인간 자체가 태어 날 때부터 죄가 밀어 올려서 죄 덩어리로서 태어났는데 모양은 사람모양이다 이말입니다. 이 죄나 이 미움이나 같이 보면 되요. 죄라고 하는 것은 예수그리스도를 미워할때만 죄가 되는겁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뭐라고 하냐 하면은 주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지요. 주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심판을 하는데 달랑 두가지예요. 사랑이냐? 아니면 미움이냐? 이것으로 결정되는 겁니다.

사랑받게 되게 되면 사랑받고 미움 받게 되면 미움 받는다. 지금 제가 말장난 하는 것 같지만 나름 상당히 의미 있습니다. 더 말장난을 하게되면 말장난 아니지만 사랑이 사랑이 되고 미움이 미움이 되는 거예요.

이게 여러분 보기에 말장난 이지만 왜 이게 말장난이 아니고 진지한 이야기냐 하면은 사랑, 미움은 창세전에 이미 숨어 있잖아요. 숨어 있으니까 사랑이 사랑으로 등장하고 미움이 미움으로 등장해야 이게 정상인데, 숨어 있다 보니까 막상 등장하는 것은 뭐냐 하면은 해와 달과 별과 그리고 맨드라미 채송화 뭐 그런거란 말이죠.

자연세계 + 인간이다 이말이죠. 그러니까 뭐가 안보이는 거예요? 숨어있는 사랑과 미움 이 자체가 안보이는 겁니다. 안보이니까 이 자연세계는 스스로 있는 자가 되어 버렸어요. 스스로. 이유도 모르고 원인도 모르고 ‘어? 태어났네? 잘 살아보세.’ 이게 끝이예요.

언젠가 제가 설교 할 때 그런 이야기 했어요. 인간이라 하는 것은 잘 먹고 잘 살는 것 그것 외에는 다른 일 없다고. 잘 먹거 잘 사는게 끝인거예요. 인간 세계에서는. 잘 먹고 잘살면 행복하고, 행복하면 그게 족하다는 겁니다. 뭐 다른 의미 찾지 말라는 거예요. 인간세계에서.

잘 먹고 잘 살면 끝나는 거죠. 그런데 사랑과 미움이라것은 원초적인 사랑과 미움은 없어요. 인간끼리 살다보면 이제 나를 미워하면 왜 날 미워하냐? 날 좋아하면 좋아하는구나 그래서 자기들끼리 좋아서 결혼도 하고 이러는데 문제는 여기에 누가 왔느냐하면 요한복음 15장 24절이 뜨는 거예요.

23절에 보면 나를 미워하는 자는 아버지를 미워한다. 미움부터 등장하지요. 미움 등장합니다. 미움입니다. 자, 미움을 집어 넣는 방법은 뭐냐 하면은 내가 아무도 못한 일을 너희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너희가 죄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너희가 나와 내 아버지를 보았고 미워하였도다.

22절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와서 너희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다 되어 있지요? 예수님 이야기 딱 등장하니까 내가 키가 얼마고, 몸무게가 얼마고, 재산이 얼마인지 그 자체가 의미가 없어지는 거예요.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행복하냐? 불행하냐? 그 자체도 의미가 없어요. 왜냐하면 그것 때문에 우리가 이 세상에 출몰한 것, 출연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출연한 것이 아니다 이 말이죠. 이 세상은 왜 있어야 되고 의미가 뭐냐 하는 것은 누가 와야 비로소 다 들어난다? 예수님이 와야 다 들어나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누가 보냈습니까? 알아서 혼자서 왔어요? 누가 보낸 분이 계시잖아요. 누가 보냈습니까? 바로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의 아버지가 보내 버린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사람들이 요청해서 온 것이 아니고, 언젠가는 결국 와서 최종 정리정돈을 결국은 해야되는데 그때가 곧 예수님 이 때이니이다.

이미 이제 마지막 때예요. 종말이라고 하죠 종말. 끝, 종말이란 말이예요. 모든 것은 종말로 향하여 달렸고 종말이라하는 것은 역사의 끝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이 세상이 의미와 이 세상이 왜 있느냐 하는 그 원초적인 그 근거가 찾아들 때, 이 세상은 그 의미가 밝혀지게 되면 사랑쪽이냐? 미움쪽이냐? 로 이게 갈라지기 때문에 그것으로 모든 것은 끝납니다.

다시 말해서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서 태어났느냐? 아니면 하나의 미움을 나타내기 위해서 태어났느냐? 이걸 이야기 하는 겁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미움이라고 이야기를 함으로서 예수님은 미움이라는 그 이야기 하면서 그 미움 속에서 뭘 끄집어냈느냐 하면은 사랑을 끄집어 내요.

이게 뭐냐 하면은 처음에는 사랑이 없고 이 세상에서는 미움밖에 없는데, 미움이라는 것을 통해서 미움을 다른말로 하면 배격이예요. 또는 배척. 배척되는 과정을 통해서 숨겨져 있는 사랑을 드러내십니다.

그래서 부부가 전에도 이야기 했지만 부부가 같이 있을때는 사랑을 못 느끼는데 그냥 일상인데, 서로 갈라서고 그리고 서로 배격하고 헤어질 때 우리 서로 사랑했는데 그런 노래 있는거 같아요.

이제 우리 헤어지네요 라는 노래있잖아요. 백지영이가 부른 노래. 같은 하늘 다른 곳에 있더라고 뭐 있잖아요. 우리 서로 사랑했는데 이제 헤어지네요. 헤어지면서 미워하면서 사랑이라는 것은 우리쪽에서 실시하는 사랑은 이게 사랑이 아니였음을. 이것도 노래 가사 같다만.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였음을 김광석 노래. 사랑은 그냥 있으면 모르고 이렇게 미움속에서 생기지요. 그러면 미움밖에 없을때는 사랑이 없지요. 그래서 사랑은 뭐냐 하면은 사랑은 없는 것이다. 사랑은 없는 거예요. 사랑은 없는 겁니다.

이 문장이 굉장이 어려운 단어예요. 없으면 사랑이라는 말을 하지 말아야되요. 아예 처음부터 없는건데 사랑은 없는것이라 해서 없는 것 속에서 없었는데 그 없다고 여기는 곳에서 사랑을 이끌어 내는 그 솜씨, 그 능력.

그 능력은 이 땅에서 사랑과 미움 양쪽을 다 갖고 계시는 분이 이 땅에 출몰했을 때, 이 땅에 방문했을 때, 들어오셨을 때 미움받으면서 사랑을 끄집어 내는 겁니다. 미움 받으면서 사랑을 끄집어 내는 이유는 사랑에서 사랑을 끄집어 내 버리면 이것은 왜 사랑이 아니냐 하면은 내 존재에 이유가 미움 없이 그냥 내 존재 이유가 와버리면 주님의 사랑이 일방적이 아니라 나도 조금이나마 나도 주님을 사랑했습니다 이렇게 되어버려요.

그러나 그것은 인간에게는 해당안되는게 인간은 피조물이거든요. 피조물은 감히 창조자에 회의에 의견 개진를 못합니다. 창조자 끼리 의논을 할 때 그 결과물로 피조되야 되기 때문에 만들어 져야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견 할때는 인간은 없는 존재가 되야되요.

없는 존재가 되면서 거기에 사랑이 옴팍 담겨야 되지, 있지도 않은 인간이 ‘저도 사랑했는데요!’ 손들고 나오면은 이것은 사랑에 대한 모독이고 사랑에 대한 훼손이죠. 제가 주일 낮에 탕자 이야기 하지 않았습니까. 탕자가 집을 떠나서 집 떠나 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되면 이것은 탕자의 의미가 아니라 했습니다.

플러스 알파가 반드시 있어야 되는데 그 알파가 뭐냐 하면은 자기 집에 들어오는게 아니고 아버지의 마음 속까지 들어가야 이게 탕자예요. 아버지의 마음 속. 아버지의 마음 속이 예수님과 하나님 마음속이거든요.

그러면 들어오려면 탕자가 자기 것 가지고 들어왔습니까? 아니면 어떻게 들어왔습니까? 나는 아들이라는 칭함을 받기에 합당치 아니하다. 나는 배격당해도 마땅하고 배척 당해도 마땅합니다 라는 마음을 가질 때 100% 하나님의 그 인간 없을 때 만들어진 그 사랑이 옴팍 다 여기에 담기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은 그 앞에 전철이 뭐냐 반드시 예수그리스도를 미워하고 미워한다는 것은 밀어내는 것을 말합니다. 배척하는 것. ‘예수님 필요 없어요. 나 예수님 안 믿을 거예요. 내가 예수 믿으면 손에 장을 지진다.’ 뭐 그런 경우 같은 거예요.

실제로 ‘나는 예수를 안 믿는다. 나는 배격한다. 예수님을 배격한다. 미원한다.’ 그런 노골적으로 예수님을 그렇게 노골적으로 할수 있지만, 예수님을 미워하고 배격하고 배척하는 방법은 뭐냐하면 이거예요. 자기일에 관심있는 것. 자기 일에 관심있는 겁니다.

사람이 자기 일에 우선적으로 관심있어 버리면 그 다음의 일들은 전부 다 이거는 그다지 중요치 않는 관심 둬도 그만이고 안둬도 그만이고 나랑 상관없는 일이 되어 버려요. 사람이.

예수님께서 무슨 일을 하셨다. 뭐 예수님이 어떤 일을 했다 해도 예수를 우리가 ‘예.’ 고개 끄덕이면서 인정해주께요 라고는 할수 있지만 자기 일은 완전히 접어버리고 저게 중요해! 라고 예수님 일에 풍덩 뛰어드는 그 정도가 아니면 예수님에 일에 관심 있다고 말할수 없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이야기 할 때, 자기 일 따로 있고 ‘성경 보자.’ 이렇게 해가지고는 성경이 이해가 안되요. 내 일이 있고 그 내 일이 나를 살리고 있는데, 구태여 성경봐가지고 주님 살려주세요 할 필요 없잖아요. 이거 성경 안봐도 따박따박 월급 나오는데 뭐하러 성경 보겠어요.

이미 자기 관심사가 성경을 지금 가리고 있는겁니다. 예수님께서 하는 일에 대해서 완전히 희미하나마 별로 이렇게 거기에다가 안중에 별로 없어요. 눈 돌리고 있는거예요. 그래서 성령께서는 어떻게 하느냐.

성령께서는 그냥 말 그대로 하면 보혜사인데 성령께서는 사실은 보혜사는 우리를 정죄하는 우리를 치는 거예요. 이것은 대구 강의에서 제가 이야기 했는데, 영의 구조와 육의 구조가 어떤 분이 중요한 이야기 했어요. 똑같다. 영의 구조와 육의 구조가 똑같다. 구조가 똑같다.

다만 뭐가 다르겠어요? 주인공이 다르지요. 이미 내가 나의 일에 내가 주인공인데, 내가 주인공 입장에서 예수님을 모신다? 그것은 모실수가 없어요. 내가 주인공인데 무슨 모십니까? 그러면 이야기를 다시 해봅시다.

예수님이 주인공이다. 그러면 자기 일이 망가지든 완전히 부러지든 병들어 죽든 이렇게 해도 ‘그것과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이렇게 나와 줄 때, 온통 정신이 정말 예수님한테 관심있구나 하는 것을 알수가 있는 겁니다.

물론 인간의 힘으로는 안되고요 성령께서 그렇게 하게 하시는데 그 대표적인 사람중에 한 사람이 바로 사도바울 입니다. 사도바울은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수 있다 했어요.

그런데 막상 그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고린도전서 4장엔가 나오는 것 있죠. 딱 이 세글자예요. 만물에 쓰레기로 취급을 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래도 사도바울은 이걸 가지고 뭐라고 하냐 하면은 ‘나 상받았다.’ 쓰레기 됬는데, ‘나 상 받았다. 세상에 천사도 부러워하는 신분이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을 언급할때는 사도바울 개인이 얼마나 열심히 했느냐? 얼마나 자기관리를 했느냐를 보면 안되고 어디를 봐야되느냐 하면은 자리. 사도바울을 떠받치는 자리 있잖아요. 그 자리가 어떤 자리냐를 주목 해야되지 사도바울처럼 해야지 이러면 안됩니다.

사도바울은 그 인생은 그 인생이고 나는 내 인생이예요. 같은 자리이여야해요. 같은 자리. 그럼 같은자리라고 말하면 너무 추상적이고 어렵잖아요. 그걸 살짝 바꾸겠습니다. 썰매. 그것도 아주 각도가 예리한 썰매.

여기 썰매를 타고 사도바울 탔다. 그런데 이 썰매에 브레이크가 없어요. 그럼 썰매는 눈 덮인 썰매가 내려올때는 어떻게 됩니까? 그냥 거침없이 하이킥이죠. 거침없이 내려오죠. 이게 바로 사도바울이예요.

뭐 로마가도 어딜가도 거침없이 여기 어떤 사람이 말리잖아요. 나도 성령 받았는데 당신이 예루살렘에 가게 되면 3차 전도여행 마치고 가는 길에 당신 예루살렘 가면 반드시 체포됩니다. 사도바울은 체포 된다는 말 들어도 stop 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이건 브레이크가 없으니까. 사도바울은 그냥 미끄러져 가는 거예요. 그냥 미끄러져 내려가는 거예요 본인이 본인의 운명을 말릴수가 없는 겁니다. 본인에 대해서.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실린데로 다 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런데 이 썰매가 사도바울만 타는게 아니고 사도바울을 대적하는 사람들도 썰매를 타는데 이 썰매는 뭐냐 하면은 지옥으로 내려가는데 거침 없어요. 오늘 제목은 거침없음. 거침없이 어떻게 복음이 아닌곳으로 내달리는지, 이것은 예수님이 어디 미혹 돼서 그런게 아니고 본인의 자리, 본인의 썰매가 본인도 어쩔수가 없어요.

아무리 그 교회에 나와서 복음 듣게 하고 싶어도 발을 못 빼게 만들어요. 그 썰매가 그렇게 속도감이 있으니까 속력감이 있으니까. 거침없이 내려가요 거침없이. 꼭 교회 나올려고 하면 ‘월급 올려줄게.’ 뭐 좀 할려고 하면 ‘너 하나 더 맡을래?’ ‘그래도 나갑니다!’ 이번에 ‘설교 한번 할래?’ 이런식으로.

‘잘 하면 1년만 하면 청년들 20명 줄게.’ ‘처음 나와서 월급 없을 때는 교회에서 월 100만원 보조해줄게.’ 계속해서 하는데 보조를 받아서 머무는게 아니고, 이 썰매가 자기 자신을 단도리 하도록 자꾸 붙잡는게 있어요. 안놔줘요 마귀가. 마귀가 앞에서 쭉 당기고.

그러니까 이 세상은 두 종류 밖에 없어요. 성령이 잡아 당기는 건지 사탄이 악한 영이 잡아당기는 건지 둘중에 하나지 중간 지역은 없습니다. 그래서 전도는 전도는요 사람이 해가지고는 단 한명도 전도 못해요.

보내심을 받은 아까 처음에 강의할 때, 이 자연세계 출연이 무엇의 결과라고 했습니까? 두가지였었죠. 사랑과 미움이죠. 사랑과 미움이 이 자연세계를 이렇게 솟구쳐 오르게 하는거예요.

자연세계가 있고 죄가 생긴게 아니고, 죄를 위하여 자연세계와 죄를 위하여 인간이 만들어 진거예요. 인간은 죄로 태어난거예요. 그 점을 여러분들이 죄로 태어났다는 그 점을 제가 오늘 강의 하면서 여러번 계속 강조할겁니다.

왜냐하면은 우리가 거듭 태어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알기 위해서는 이게 필요한겁니다. 니고데모가 거듭 태어나는 것을 오해해서 내가 거듭 태어나는 것을 생각한거예요. 이 말은 엄마가 자기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예수님은 너의 엄마가 만드는게 아니고 엄마라는 말을 예수님이 바꿔줬어요. 육이 태어나게 한거예요. 육에서 낳다고 본거예요. 육에서 낳다. 육이 너를 밀어낸거예요. 생물에 보면 히드라 하는게 있지요? 이 히드라라 하는 것은 무성 생식이 되가지고 뭐 하나 뚝 떨어지면 아메바 비슷하게 뚝 떨어지면 또 새끼인지 어미인지 구분안되고 또 생기죠. 암세포 비슷하게.

또 뚝뚝뚝 떨어지죠. 그냥 그걸 생식이라 하지않고 그냥 분활 되는 겁니다. 분열 또는 분활. 둘이 쪼개지는 것이 아니고 원래 있던 데서 또 하나의 뭐가 새롭게 발생되는 것이죠.

인간이 태어나는 것은 인간이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은 육이 태어났다고 보는 거예요. 왜 예수님께서 우리 인간보고 인간이 태어났다고 하지 않고 육이 태어났다고 하느냐 하면은 예수님이 영이고, 영으로 다시 육이 태어난 구조와 영이 태어난 구조가 동일하기 때문에 그래요.

육이 분활 되듯이 영도 분활 되어서 영적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 가운데서 방금 제가 인간 태어나면 인간이 인간 태어난다는 것은 없지요. 주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임신 안됩니다. 안되요. 이 세상에 태어난게 혹불 나오듯이 태어나요. 혹불. 혹이 나오듯이 혹이 돋아나듯이 여드름 나오듯이 그냥 솟구쳐 올라오는거예요. 자꾸.

내부에 열에 의해서 여드름이 나오잖아요. 내부의 열과 먼지 공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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