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대구강의] 전도서속의 그리스도 24 - 들러리
[17 대구강의] '전도서'속의 그리스도 24 - 들러리
07,12,04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죽음의 장(場) !!
오늘은 교재 68페이지부터 하겠습니다. 우리 인간은 어떤 힘이 작용하는 영역 속에 놓여있는데, 물론 자기가 느끼기에는 혼자 있는 것 같지만 말이죠. 그런데 그게 아니라 어떤 영역 속에, 그것을 장(場), 혹은 필드라고 할 수가 있는데, 그러니 어떤 세력이 있다는 것이죠. 그것을 성경에서는 '죽음의 세력' 이라고 하는데, 즉 '죽음의 장' 이라는 것이죠. 그 영역에 휩싸여서 인간은 죽어가고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것을 학교에서는 가르쳐주지 않는데, 인간들은 그런 죽음의 장은 생각하지 않고, 인간들과 인간들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만들어진 힘만을 가지고, 그것을 그들은 '사회', 혹은 '사회의 힘' 이라고 한다는 말이죠. 국가의 힘, 군대의 힘, 학교의 힘, 은행의 힘, 회사의 힘, 가족의 힘, 그런 것들이 여기에 포함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어떤 가족이든 어떤 지장이든 어떤 모임이든 간에, 그것보다 포괄적으로 먼저 있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그게 '죽음의 장' 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인간은 젊었을 때의 활기차고 건강한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죽음의 장으로부터 침투를 당하게 된다는 말이죠. 즉 공격을 받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늙어가고 있는데, 결국은 죽는다는 말이죠.
흙으로 돌아가라 !!
그렇다면 이 죽음의 장을 성경에서는 어떻게 표현을 하는고 하니, "흙으로 돌아가라" 라고 하는 명령에 준해서 이 죽음의 세력이 작용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교회에 와서 성경말씀을 안다고 하는 것은 무엇인고 하니, 자기가 남에게 어떤 힘을 발휘했는지, 그것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어떤 영역에서 태어났는가?" 라는 것을 더불어서 이해를 해주어야, 비로소 성경말씀을 제대로 깨달은 것이 된다는 말이죠.
그렇다면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이 죽음의 필드에서 어떻게 되셨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이 오셔도 마찬가지인데, 예수님의 마지막도 역시나 죽음으로 끝나고 말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죽음은 숨이 멈추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죽음은 저주를 받은 죽음이란 말이죠.
그것이 갈라디아서 3장 10절에 나오는데, 그런데 "예수님이 나무에 달려서 저주를 받았다" 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님의 죽음은 그냥 죽음이 아닌 저주를 받은 죽음이란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말씀을 보지 않고 우리의 상식적인 수준에서 생각하면 어떻게 됩니까?
(갈 3: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우리가 돌아가신 할머니나 할아버지의 죽음을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게 됩니까? 늙어서 죽는다고 여기는데, 그렇지요? 그런데 똑같은 이 세상에 왔다가 죽으신 예수님은 어떻습니까? 저주를 받아서 죽었는데, 죄 값으로 말이죠. 그러면 과연 어느 것이 맞느냐는 것이죠.
우리 인간이 하나님에게 저주를 받아서 죄 값으로 죽는 것이 맞는지, 그것이 아니라면 늙어서, 혹은 쇠퇴해서 생물학적으로 죽는 것이 맞는지, 과연 어느 쪽이냐는 겁니다. 학교에서는 두 번째를 가르치는데, 즉 사람은 늙어서 죽는다는 것이죠. 그것이 과학을 하는 사람들의 입장이기도 하고 말이죠.
우리 인간은 동물이나 식물처럼 에너지가 다해서, 이 세상은 에너지인데 말이죠. 그렇게 에너지가 흩어지면서, 에너지의 혼란도가 증가해서 죽는다는 겁니다. 엔트로피가 말이죠. 즉 에너지가 해체되는 것은 죽음이라고 하고, 응집되는 것을 생명이라고 하는데, 과학계에서는 그렇게 설명한다는 말이죠.
'자연스러움'을 분석하는 과학 !!
과학의 입장에서는 "세포가 모인 것이 생명이고, 세포가 흩어진 것은 죽음이다" 라고 하는데, 그러면 그들에게 "왜 흩어집니까?" 라고 물으면, 그들의 대답은 "그것은 우리도 몰라" 라고 한다는 겁니다. 물론 그들은 '모른다' 라고 하지를 않고, '자연스럽다' 라고 하는데, 그 '자연스러움'을 분석하는 것이 과학의 임무라는 말이죠.
하지만 아무리 분석해도 어떻습니까? 그 자연스러움 속에 더욱 더 작은 자연스러움이 있고, 그것을 분석하면 또 더 작은 자연스러움이 나온다는 것이죠. 그래서 그 자연스러움을 극단까지 분석하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어떻게 됩니까? 그것을 전자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또 더욱 더 작은 자연스러움이 들어있다는 겁니다.
죽음의 장, 그리고 이기주의 !!
그러니 해답이 없는데, 그것은 바로 이 죽음의 장을 곁들여서 설명을 하지 않으니, 여기에서 인간은 어떤 사고방식으로 계속해서 살아가는고 하니, 그게 바로 '이기주의적 사고방식' 이라는 겁니다. 우리 인간은 그런 식으로 계속해서 살아간다는 말이죠. 그러니 죽음의 장에서 우리 인간이 견디는 방법은 '이기주의' 라는 겁니다.
그러면 이 이기주의는 어디서 나옵니까? 먼저 이 사회라는 것이 어떻게 해서 모여지는지를 알아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죽음의 힘이 모아줄 때, 그러면 사회가 된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사회에서 추방이 되면 죽음의 힘을 강렬히 느끼기 때문에 말이죠. 그렇게 해서 사회 안에 들어있는 것을 '살아남은 자' 라고 한다는 겁니다. 이와 반대로 추방된 것은 '도태된 자' 라고, 즉 구조조정을 당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자식이 5명 있는데, 막내가 제일 말썽을 피운다고 하면 아버지가 뭐라고 합니까? 다른 자식들은 공부도 잘 하고 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