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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자기 증명 171208강의디도서

서울의존강의20171208a 디도서3장9절(자기 증명)-이 근호 목사

디도서 3장 9절입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

이 디도서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도바울이 편지를 할 때에 그들로 하여금 그레데 교회를 믿게 하기 위함이겠어요? 아니면 예수님을 믿도록 하는 겁니까? 이 편지를 보낸 목적이 교회가 있으니까 교회 믿으라고 하는 거예요? 아니면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하는 겁니까? 교회 믿어서 구원받는 거예요? 아니면 그리스도를 믿어서 구원받는 거예요? 예수그리스도죠.

그런데 이 사도바울이 편지를 할 때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는 이 지상에 계시지 않죠. 예수님 당시에는 열 두 제자가 주변에 포진되어 있었는데, 예수님과 더불어서 함께 활동을 했죠. 그때에 사람들이 “제자들이 활동하네.”라고 이렇게 이야기를 하겠습니까? 아니면 “예수님과 제자들이 활동하네.”라고 이렇게 이야기를 하겠습니까? 반드시 예수님을 언급 했겠죠. 예수님과 그 제자들이 저렇게 활동한다고.

그러면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제자들이 중요한 게 아니고, 누가 중요하냐면 예수님이 중요한 거예요. 그게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이에요. 그렇다면 그 제자들이 옆에 있는 이유는 뭐냐, 제자 본인들도 알아요. 자기들이 중요한 게 아니고 예수님이 중요하기 때문에 자신들은 예수님을 증거 하는 겁니다. 예수님이 메시아다. 다윗의 자손이다. 우리의 구세주다. 세례요한에 의하면 예수님은 이 세상을 심판하시는 분이시다.

세례요한이 이 세상을 심판주로, 심판이 왔다는 것을 언급할 때는 이 세상이 심판받아 합당하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하죠. 이 세상이. 이 세상이 심판받아 마땅하다는 그 사실에 대해서 세례요한은 그 기준을 잘 몰랐어요. 그냥 세례요한이 아는 수준 내에 알곡은 거둬서 창고에 들어가고 쭉정이는 불에 태운다. 이렇게 했는데, 무엇이 알곡이 되는 기준이고 무엇이 가라지가 되는 기준인지, 그 기준에 대해서는 세례요한도 뚜렷하게 이야기를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앞으로 예수님이 하실 일이 많기 때문에.

세례요한 같은 경우에는 그냥 상식선에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이렇게 이야기를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이 자기의 기준을 정한 데에 있어서 “심판 날이 가까이 왔으니까 여러분이 각자 생각하는 그 상식선에서 자기 죄를 고백하고 심판주의 처분을 기다립시다.” 이렇게 생각을 했는데, 세례요한이 깜짝 놀랐어요.

심판받아야 될 사람들을 물에서 세례를 주는데 거기에 예수님이 합류가 된 거예요. 합류가 되니까, 자기 기준선에서는 이거는 생기지 말아야 될 일이 생기게 된 겁니다. “예수님이 죄인이 되다니!” 그 물속에 들어간다는 것은 죄인들만 들어가는 자리인데, 예수님이 죄인이 된다고 한다면 세례요한의 입장에서는 도리어 예수님에게 물을 수밖에 없어요. “예수님은 이럴 필요가 없는데 왜 이렇게 하십니까?”

세례요한이 제시하는 것은 예수님을 심판주로 보는 거죠. 심판주. 심판주를 선도해서 가져오는 거고요. 그럼 심판주 앞에서 세례요한이 제시하는 것은 회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회개하라. 회개. 세례요한이 회개하라는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죄가 있다. 이걸 물세례를 통해서 정화하자. 지금 이 정도까지는 아는 겁니다. 그럼 물세례로 정화 받으면 심판주 앞에서는 죄가 없어지니까 심판주 되시는 예수님께 구원을 받을 것이다.

이러한 스케줄을 세례요한은 생각을 했는데, 놀라운 것은 이 물세례에 누가 관여를 했습니까? 예수님이 여기에 들어와 버린 거예요. 들어와 버리니까 세례요한이 생각했던 그 심판의 기준에 대해서 모순이 생긴 겁니다. 난감한 거예요. 왜냐하면 회개할 필요도 없는 예수님이 들어왔으니까.

회개해서 심판에서 면제를 받으라고 했으면 예수님은 안 들어오고 그냥 심판주 자리에 앉아있고 인간들이 회개해야 하고, 이렇게 돼야 모든 것이 제대로, 정상적으로 이 구원스케줄이 가동된다고 생각하는데, 심판주가 죄인 속에 합류를 해버리면 결국 이거는 뭐냐 하면 심판에서 구원이 되려면, 천국가려면 무슨 내용이 포함되어 있느냐 하면은 심판주께서 죄인 되어야 했다는 내용이 제대로 납득이 되면서, 이것까지 심판의 기준으로 들어가 있어야 되는 것을 세례요한의 입장에서는 하나의 부담으로 느끼는 겁니다.

시험을 치는데, 25페이지까지만 시험을 친다고 했는데 25페이지가 아니고 마지막 교과서 끝까지에서 시험문제를 낸다고 하면, 25페이지까지만 나온다고 했던 반장의 전달사항은 반장 자신에게 부담을 느끼게 하는 거예요. 50페이지에서 문제가 나온다고 하면 자기는 거짓말을 한 셈이 되니까.

그래서 세례요한이 예수님에게 물은 겁니다. “오실 분이 당신 맞습니까? 내가 아는 기준하고는 이거는 전혀 맞지를 않습니다.” 예수님이 죄인이 됐다는 말은, 이 말은 세례요한 측에서 제시하는 그 어떤 기준도 결국은 구원이 될 수 있는 기준은 안 된다는 겁니다. 미흡하다는 거죠. 제일 중요한 것이 빠졌다는 겁니다. 어떤 기준을 받아들여야 구원받느냐 하는 겁니다. “예수님이 죄인 됐대.”라는 그 기준까지 받아들인 자만 구원이 됩니다. 예수님이 죄인 되었다는 것.

그러면 예수님이 죄인 되었다는 그 기준을 받아들이려면 무엇까지 알아야 하느냐 하면, 왜 심판주가 심판받는 자리에까지 합류를 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되죠. 그렇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죄인 되었다는 사실을 알려면 그 내력을 알아야 하죠. 그 내력을. 그냥 죄인 되었다고 문장 외우면 구원받는 겁니까? 그건 아니잖아요. 진정성 있게 그 내용이 자기 안에 자리 잡아야 되지 않습니까? 자리 잡아야 되죠.

예수님이 심판주인데, 심판주라고 하는 것은 엄해야 되고, 단호해야 되고, 흠도 티도 없는 완벽한, 거룩하고 의로우신 분이에요. 그래서 심판할 수 있잖아요. 죄도 없고 거룩하고 의로우신 분인데, 왜 죄 속에 자기자리를 잡느냐 이 말이죠. 왜 죄 속을 자신의 자리라고 잡아버리느냐 이 말이죠. 그 취지에 대해서 모른다는 말은 곧 예수님에 대해서, 구원의 스케줄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다는 말과 같은 말이 되는 겁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그건 당연히 그 당시 유대사회가 갖고 있는 잘못된 선입감을 뒤집어놓는 겁니다. 모래시계의 한쪽이 다 됐으면 밑을 위로 뒤집어놓는 거죠. 그래서 제가 제시하는 것은 모래시계처럼 밑을 위로 뒤집어놓는 것도 되지만, 더 노골적으로 말해서 겉은 속으로, 속은 겉으로 이렇게 바꾸어주는 겁니다. 속옷을 겉에 입은 사람이 누구죠? 슈퍼맨이죠. 슈퍼맨처럼 되는 거예요. 슈퍼맨처럼.

그러면 어떤 사람들이 구원을 받느냐 하면 소경과 절름발이 병든 자가 구원을 받죠. 왜냐하면 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속사정이 바깥에 드러났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모든 인간이 예수님 보기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잖아요. 죄인이잖아요. 죄인 같으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죄인의 표시를 보여주겠습니까? 아니면 소경된 자, 절름발이, 병든 자가 죄인의 표시를 보여주겠습니까? 어느 쪽이겠습니까? 병든 자, 가난한 자, 소경된 자, 이런 자들이 소위 죄인이기에 받는 징벌을 지금 한껏 받았다는 사실을 드러내 보이겠죠.

바로 그들과 같이 하시는 주님, 그들을 깨끗케 하시는 주님의 취지가 무엇과 일관성이 있느냐 하면 죄인들, 자기가 죄를 알고, 나는 이런 죄를 가지고 있으니까 주여, 이런 죄를 메시야로서 용서해주셔서 그 용서받은 그 상태로 구원해달라고 하면서 요단강 속에 빠진 사람, 물속에 들어간 사람, 그 들어간 사람과 예수님이 합류한 취지와 같은 취지라 이 말이죠. 같은 취지.

그러니까 예수님은 죄인 속에 들어오고 싶은 거예요. 예수님이 죄인 속에 들어온다는 말은 죄인이 새삼스럽게 자기 구원을 위해서 할 게 있겠어요? 없겠어요? 없죠. 없다 이 말입니다. 어느 집에서 피자가게에 피자를 배달시키는데, 승윤301호에 피자 열판, 꿈같은 이야기지만 피자 열판을 배달해달라고 했다 이 말이죠.

가게 주인이 신나게 피자 열판을 가지고 자전거를 타든지 오토바이를 타든지 해서 열판을 가지고 출발을 하려고 하는데, 이 추운 날 피자집까지 전화를 했던 사람이 가가지고 자기한테 달라고 하면 좀 이상하겠죠. 그럼 가게 주인이 “추운 날에 왜 왔는데요? 우리가 알아서 가는데...”라고 하겠죠. “손수 이렇게 오면 좀 깎아줄까 싶어서 왔습니다.”라고 하면 말이 안 되죠. 깎는 것 없이 그냥 제 값 받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쪽에서 하나님에게 나아간다고 해서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방법은 뭐냐 하면 죄 있는 자리에서 우리 죄를 그대로 노출시키는 거죠. 그러면 예수님께서 소경된 자, 절름발이, 병든 자를 낫게 하신다는 그 말에는 뭐가 들어 있느냐 하면, 지금껏 까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준 것은 죄를 더욱더 죄 되게 하시는 거예요. 죄를 더욱 죄 되게.

그럼 여기서 우리가 한 번 생각해봅시다. 같은 범죄를 해도 어떤 사람은 소경되었다, 또 어떤 사람은 눈 벌겋게 뜨고 신나게 당구치고 있고 놀고 있고 골프치고 있다, 그러면 어느 쪽이 더 유리하겠습니까? 그렇게 죄를 지었는데도 불구하고 멀쩡하게 살게 되면 사람들이 그렇게 된 본인이 ‘아이고 나는 죄인이야.’라고 이렇게 하겠어요? 아니면 ‘하나님 보시기에 역시 나는 건강하게 살만한 충분한 자격과 권리가 있어’라고 그렇게 생각을 하겠어요? 후자를 생각하겠죠. 왜? 나는 아무 탈이 없으니까.

무슨 일을 해도 안 되고, 밥도 못 먹고, 빌빌 거리면, 이거는 분명히 전생에 무슨 죄가 있다든지, 남은 모르고 하나님만 아시는 죄가 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징벌을 받는 것이라고 누구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벌 받는다는 것은 그 원인이 오직 죄가 있을 경우에만, 신에게 나쁜 짓을 했을 경우에만 벌이 있고. 그 벌이라고 하는 것이 결국 인간이 힘들게 사는 것만 벌이라고 보잖아요.

근데 어떤 사람은 아주 여유만만하고 집도 몇 채 있고 현찰도 많고 죽을 때까지 다 못 쓰고 애도 공부도 잘하고 가족들끼리 하하 호호 웃고, 늘 이렇게 평화롭고 아주 인자하고 인격 있게 산다. 근데 그 집안을 보고 “이 집안 아주 죄도 많이 지었어. 이거 봐. 이번에 애가 사법고시 수석 된 거 봐. 얼마나 죄를 많이 지었으면. 아이고, 이 집이 얼마나 죄를 많이 지었으면 작년 순수익이 26억이었다던가? 아이고, 참 죄 많이 지었구나.”라고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렇게 생각하겠어요? 생각 못하죠. 생각 못한다 이 말이죠.

그럼 누가 불리 하느냐 하면 슈퍼맨 아닌 사람들이 불리한 거예요. 계속 자기 속에 죄를 자기가 인생을 행복하게 살고 평안한 그것을 가지고 꾹꾹 누르는 겁니다. 무슨 시루떡처럼. 찐빵이라고 하면 찐빵 안에 팥은 쪼끔 들어있고 밀가루 층이 10센티, 앙꼬 층은 0.2센티, 이렇게 되게 되면 그게 찐빵입니까? 밀가루덩어리죠. 그렇잖아요. 그러니까 인간은 의 덩어리에요. 의 덩어리.

물론 완벽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어요. 참 인간 부족하지, 특히 교회가면 부족한 사람들이 왜 그리 많은지. “부족합니다. 할렐루야!” 왜 그리 많은지 몰라. 그러나 자체적으로 반성하는 기재, 메커니즘이 가동된다는 말은 죄 지어봐야 반성이 곧장 따라붙기 때문에, 죄 지은 것도 자체적인 반성 때문에 이미 반성한 걸로 되어서 이게 죄가 아니고 하나님 앞에 의로움으로 계속 누적이 되겠죠. 자체적으로 처리하는 거예요. 자체적으로. 자체적으로 처리가 되는 거예요.

아무리 죄를 지어도 자체적으로 죄가 의롭게 되는 그런 장치가 자기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러면 생각날 때마다 반성하면 되니까. 그 일을 잘 했던 자들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입니다. 지금 제가 이야기하는 것이 뭐냐 하면 이거에요.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과 제자들과 함께 있었던 그때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함께 있어서 어느 누구도 예수님모임, 예수님집단이라고 생각했었다 이 말이죠.

그런데 지금 여기 디도서는 예수님이 하늘나라에 가시고 디도서에 나오는 그레데교인들이 있잖아요. 거기에 사도들이 이 편지를 보내잖아요. 그럴 때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예수님이 함께 있었을 때의 그 예수님의 취지나 뜻이, 이렇게 예수님이 떠나고 난 뒤에 아무 하자가 없이 누수가 되지 않고, 복음의 내용이, 진리의 내용이 그대로 전달되고 있다고 어떻게 보장을 할 수가 있느냐, 라는 취지로 제가 말씀드리는 겁니다.

예수님 떠나고 난 뒤에 그 제자들이 뭘 알겠느냐는 이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를 믿고 싶지 어떤 그레데교회를 믿고 싶지는 않잖아요. 계속해서 예수님 믿고 싶은 거예요. 그러면 예수님 떠나고 난 뒤에 사람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겁니다. 그러면 제자들이 예수님하고 함께 있을 때, 예수님이 평소에 사람들과 싸웠던 그 대목들이 있잖아요. 싸웠던 대목.

그 싸웠던 대목들 중 제가 일부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죄를 바깥에 드러내는 그런 작업을 주님께서는 계속하시는 거죠. 그 근거를 뭐라고 했느냐 하면 제가 예수님이 세례요한이 물세례를 주는, 죄인들의 죄를 씻으라고 있는, 죄인들 정화하라고 있는 그 물에 예수님이 풍덩 뛰어들었다는 사실. 예수님은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심판을 하시는 분이 아니고, “피고들 이리와! 내가 재판한다.” 이렇게 하시는 것이 아니고, 그 심판하시는 분이 죄인이 되신 거예요.

심판하시는 분이 죄인이 되니까, 죄인을 심판하려면 누구도 같이 덤으로 심판을 해야 됩니까? 예수님도 같은 죄인이니까, 예수님을 죄인으로, 같은 기준으로 같이 심판을 해줘야 된다 이 말입니다. 그러면 구원자를 누구 손에 죽인다? 사람 손에 의해서 죽여 버리면 결국 구원자를 죽였다는 말은, 오실 메시야를 죽였다는 말은 더 이상 구원자를 통해서 구원되는 그 마지막 기회마저 휑하니 날라 가버리는 거죠.

그래서 히브리서에서 “한 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가 되고”(히6장4절). 그리고 계속 히브리서 12장에 보면 나오잖아요. 이미 주신 그 피라는 것을 외면한 자는 더는 더 기회가 없다는 거예요. 더는 기회가 없는 거예요. 예수님 피를 줬다는 것은 결정적 기준을 준 거예요. 하나님의 심판의 결정적 기준을 준 거예요.

예수님께서 우리 죄인 속에 들어옴으로 말미암아 주님께서는 인간들을 바라볼 때에 니 속에 의인 몇 퍼센트 있고 죄인 몇 퍼센트 있고를 묻는 것이 아니고, 몇 퍼센트를 일체 따지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백퍼센트 니는 죄인이야!” 그걸 선언하시는 취지에서 주께서 죄인 되셨잖아요. 주님께서 물세례에 뛰어들지 않으면, “보자~보자~ 착한 사람 있는가 보자~ 내가 심판 할게.” 이래 될 텐데. 만약에 착한 사람이 아무도 없고, 천국 갈 사람은 있어야 되겠고, 그럼 방법은 뭐에요?

심판주가 구원받을 사람을 심판주 손에서 새롭게 생산해내야 되죠. 그 생산하는 자리가 어디입니까?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기 때문에 결국 자기 백성을 어디서 건져야 돼요? 의인들 이리오라고 해서 건지는 것이 아니고, 의인은 없으니까 죄인 속에서 예수님께서 자체적으로 죄인을 의인되게 하는 그 작업을 하셔서, 그래서 의인된 자만을 골라가는 방법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어요.

마태복음 8장 한 번 봅시다. 2절에, “한 문둥병자가 나아와 절하고 가로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이래 되어 있죠. 문둥병자입니다. 문둥병은 저주받은 것이죠. 다시 묻습니다. 문둥병만 저주받았습니까? 문둥병 안 걸린 우리도 저주받았습니까? 어떻습니까? 둘 다 저주받았죠. 근데 멀쩡한 사람이 “예수님 저 구원해주세요.”라고 하면서 올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죠. 멀쩡한데 왜 와요? 멀쩡한데? 자기가 멀쩡하다고 생각하는데 왜 옵니까?

근데 문둥병자는 예수님께 와서 “주께서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라고 했죠. 그러면 주님께서 이 사람을 낫게 한 거예요? 아니면 이 사람의 죄를 예수님이 같이 한 거예요? 어느 쪽입니까? 예수님께서 문둥병자가 되신 거예요? 안 그러면 예수님은 멀쩡한 채 이 사람만 그냥 건지신 거예요? 어떻게 된 겁니까? 예수님이 그냥 건지신 거예요? 예수님이 같이 문둥병자가 되신 거예요? 어떻게 된 겁니까?

같이 문둥병자가 됐죠. 그 증거가 뭐냐 하면 4절에,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의 명한 예물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 하라”라고 하셨죠. 그래서 하나의 문둥병자를 얻기 위해서는 예수님 자신이 그 문둥병자와 같이 되는 겁니다. 문둥병자는 구원받을 수 없어요. 자, 문둥병자를 시커멓게 그려봅시다. 그리고 예수님은 멀쩡합니다. 죄가 없으시니까.

근데 예수님께서 죄인 되셨다고 했죠. 문둥병자는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 어떤 근거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요. 왜냐하면 자기는 죄 때문에 문둥병자가 됐기 때문에. 문둥병자는 죄에 대한 저주가 합당해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같이 문둥병자가 돼버립니다. 같이 문둥병자가 된다는 것이 뭐냐 하면 예수님이 제물이 돼요. 예수님=제물

예수님이 제물이 되어서 문둥병자하고 합세하는 겁니다. 합세해서 이 제물이 완성이 되게 되면, 그 제물은 어떤 제물이냐 하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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