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첫열매 171208강의야고보서

안양20171208a약1장18절(첫 열매)-이 근호 목사

야고보서 1장 17절,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가장 좋은 것은 위에서부터 온다. 그 이야기를 전에 했고, 그 위가 어디냐,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온다. 그럼 빛들이 위에서부터 오는 것하고 아래에서 올라오는 것하고의 차이점은 뭐냐, 변함이 없다. 지난 시간에 언급을 했죠. 팽이를 한 번 보세요. 팽이가 제자리에서 뱅뱅 돌죠. 근데 제자리거든요. 여러분 팽이 다 아시죠? 팽이가 뱅뱅 도는데 제자리다 이 말이죠. 팽이가 멀리가고 그러지 않습니다.

가봤자 맨 그 자리인데, 우리네 인생이, 모습이 팽이의 겉면이라고 생각을 해봅시다. 우리는 늘 변해요. 하루하루 변합니다. 팽이의 이쪽저쪽 동서남북을 구경하고 가지만, 성도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세상이 많은 변화를 겪더라도, 이 팽이 자체가 주님의 몸이라면, 역시 전처럼 꾸준히 변하는데, 중심은 그대로죠.

이걸 달리 이야기하면, 한번 생각해보세요. 우리는 변하는데, 변하지 않기 때문에 그걸 중심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오산입니다. 변하지 않는 것을 중심으로 봐버리면 이렇게 팽이처럼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이 아니고, 변하는 내가 따로 있고 변하지 않는 주님이 있어가지고 “나 저거 주님이라고 믿을래. 주님이 주신 것이라고 믿을래.” 이렇게 되면 양쪽 다 변하지 않잖아요.

그런데 성경에서 뭐라고 하느냐 하면 우리는 변하면서 변하지 않는 것을 발견해야지, 나도 안 변하고 주님도 안 변했다면 이거는 이 세상일이지 주의 일이 아닙니다. 제가 무슨 말씀을 드리느냐 하면 세상이 핑핑 도는 변화를 통해서 변하지 않는 것이 뭔지를 비로소 찾아야 된다 이 말이죠. 그런데 평생 나는 안 변해, 안 변해, 라고 한다면, 안 변한 내가 안 변한 주님이라고 하게 되면, 이거는 가짜일 가능성이 굉장히 농후합니다. 이거는 우상이 됩니다. 우상.

우상의 특징은 내 기분 내키는 대로 믿는 신이 우상이잖아요. 내 기분대로 되는 신. 기분 좋으면 믿고 안 믿으면 그만. 이게 우상이잖아요. 그럼 우상이 아닌 신은 뭐냐 하면 주님은 한결 같은데, 오늘 말씀 그대로인데, 그 주님이 한결 같다는 것을 주님 쪽에서 알리기 위해서 누구를 팽팽 돌리느냐 하면 우리 자신들로 하여금 동탄이고 어디고 온 천지를 다 돌아다니게 한다 이 말이죠. 안산이고 어디고.

그러면 뭐가 떨어져나가겠습니까? 내가 믿는 우상이 떨어져나가겠어요? 안 떨어져나가겠어요? 나를 위해 믿는 우상들이 다 떨어져나가겠죠. “나 저거 믿을래. 이거 믿을래.” 하는 것들이 다 떨어져나간다 이 말이죠. 그래서 팽이라는 비유도 완전치는 않지만, 이 비유보다 전 이게 더 마음에 들어요. 뭐냐 하면 ‘땅에 떨어진 핫도그’

저는 밤에 잘 때도 설교를 늘 생각하거든요. 하면서, ‘땅에 떨어진 핫도그’를 지금 몇 주째 생각을 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이 비유가 너무 맘에 들어서 그래요. 땅에 떨어진 핫도그가 어떤 거냐 하면, 땅에 핫도그가 탁 떨어졌잖아요. 애들은 핫도그 먹고 싶어서 그거 안 버립니다. 주워서 핫도그에 묻은 흙을 털어내죠. 그럼 흙 털어내면 뭐가 남겠어요? 핫도그만 남죠.

주님이 우리를 주웠습니다. 주워보니까 우리가 핫도그에 붙어있는 흙덩어리 같은 것. 버려야 될 것이 있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주님의 사람이라고 하면서 세상에 대해서 너무 집착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 주님께서 주님의 주님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합니까? 탁탁 털어버리는 거죠. 가락교회 갔을 때에 어떤 목사님이 그런 좋은 비유를 이야기 했어요.

뭐라고 했느냐 하면 내가 ‘땅에 떨어진 핫도그’, 또는 ‘물에 젖은 개 마냥’ 같다고 했어요. 개가 물에 젖으면 어떻게 합니까? 막 흔들죠. 그럼 물방울이 다 떨어져나가겠죠. 그럼 뭐만 남겠어요? 개 몸체만 남겠죠. 우리가 주님과 함께 있으면 그 다음부터 우리가 고요하지를 않아요. 왜? 이 땅이 정착지가 아니고 천국가야 하니까. 천국은 주님만 섬겨야 하잖아요.

그런데 이 땅에서는 주님 섬긴다는 말은 하면서도 우리는 주님 섬기는 데는 관심도 없고, 내가 나를 섬기기에 바빠요. 물에 젖은 개 마냥, 그땐 주님께서 원치 않는 것을 흔들어버리면 원심력에 의해서 다 바깥으로 떨어져나갑니다. 물에 젖은 개도 괜찮지만 저는 땅에 떨어진 핫도그가 더 마음에 들어요. 핫도그를 먹고 싶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땅에 있는 것들, 묻어있는 것들을 떨어내게 되면, 나의 나 된 것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주님의 의도에 의해서 살아온 것이지, 내 의도는 다 떨어져 나갈 헛된 의도일 뿐이라는 것을, 떨어져나가면서 감사하게 되는 겁니다. 떨어져나가면서. 떨어져나간다고 집나가고 그런 것이 아니고, 현재 주어져 있는 모든 것이 내 것이라고 우기고 살아온 내 인생인데, 그 생각이 마음대로 떨어져나가고, 이 모든 것이 주의 것으로만, 주님의 것이라는 것만 새삼스럽게 느끼게 만드는 식으로 하나님께서 어떻게 한다? 일을 벌이시는 거예요. 그것도 부지런히 일을 벌이시는 거예요.

그래서 누가 옆에서 “당신 어떻게 삽니까? 왜 삽니까? 무엇 때문에 삽니까?”라고 의미를 물으면, 우리는 뭐라고 하느냐 하면, “주님의 은혜로 삽니다.” “목적은 뭐에요?” “주님을 증거 하기 위해서.” 성경에 있는 내용과 얼추 맞아떨어지죠. 우리가 전에 했던 히브리서 11장을 하면서 믿음의 선진들은 어떻게 살았습니까? 물에 젖은 개 마냥(처럼)살았죠.

주님이 오라고 하지 않고 주님이 찾아와가지고 흐트러트리니까, 그들이 예상 못한 일들이, 특히 오늘 같은 일들이 자꾸 발생되는 겁니다. 예상 못할 일들이. 어찌할꼬? 절망적일 때, 모세 같은 경우에는 공주의 아들 되는 세상영광보다도 그리스도와 함께 뭐하기를 즐거워했다고 했습니까? 고난 받기를 즐거워했으니, 이는 하늘에서 뭘 줌이라? 하늘의 상을 바라봄이라.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히브리서 다음 야고보서를 하고 있는데, 야고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늘 자기 자신을 안정되고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고집을 부리기 때문에, 그 고집 때문에 오늘 본문 1장 17절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내가 아니고 하늘의 것이 변하지 않는다는 이 사실을 우리가 자꾸 놓치는 겁니다.

그러면 한 번 물어봅시다. 나를 믿어야 해요? 주님의 일하심을 믿어야 돼요? 어느 것을 믿어야 돼요? 주님의 일하심을 믿어야 되겠죠. 그럼 내가 믿는 것과 주님의 일하심을 믿는 것이, 이것이 딱딱 이렇게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고, 사실은 내 인생 자체가 주님의 일하심인데, 우리는 내 인생을 내 인생 역사라고 꽉 붙들고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이 번역을 다시 해야 해요. 하루하루 살아온 것이 주님의 쓰신 역사가 내 몸에 다 새겨져 있다고 이렇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지난날이 그랬듯이 앞으로도 주님이 하루하루 쓰신 일기장이지, 내가 써나갈 일기장은 아닌 거예요.

자, 18절, 오늘 본문의 핵심 부분에 들어왔습니다. 오늘 본문 18절이 제일 이게 난해하고 중요합니다.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여기 ‘첫 열매’ 이거 설명하는 것이 오늘 강의 핵심이 되겠습니다. 열매라고 했을 때 농사짓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되고요. 농사짓는 사람에게 기분 좋은 것은 열매, 특히 첫 열매 맺힐 때, ‘야! 농사 되겠다. 이번 농사 괜찮다.’라는 기쁨을 안겨다 줍니다.

그러면 아까 우리가 배운 것을 생각해봅시다. 이스라엘은 누구나라입니까? 자, 이스라엘나라입니까? 하나님나라입니까? 이스라엘은? 그 이스라엘 주인이 누구에요? 이스라엘이에요? 하나님이에요? 하나님이죠. 왜냐하면 동행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원래 왕이 필요치 않습니다. 제사장이 중심이죠. 왕 같은 제사장. 그 제사장을 누가 임명합니까? 하나님께서 제사장을 임명하죠. 근데 임명 자리가 어디냐 하면 성소입니다. 성소 또는 성전.

이스라엘은 성소가 있는데 성소에는 사람이 없어요. 지성소에는 사람이 없거든요. 그러면 아무도 없느냐? 아니에요. 그 지성소 자리에 누가 계시느냐 하면, 사람이 있으면 사람 이름이 있는 곳인데, 성소의 핵심이 되는 지성소에는 사람이름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 이름이 들어가느냐 하면 하나님의 이름이 들어갑니다. 그 이름을 ‘임재’라고 합니다. 임재.

그러면 성소 바깥 진이 한 10킬로, 11킬로가 되는데요. 텐트 치면 그렇게 돼요.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 광야 때, 인원수가 많으니까, 계산해보니까 그만큼 텐트 진영이 넓어요. 그러면 거기에는 누구 이름이 있어요? 텐트마다? 지금 포항지진 때문에 집이 무너진 사람들은 텐트생활 하고 있잖아요. 텐트마다 누구 이름이 들어가겠어요? 사람이름이 들어가겠죠.

지성소에는 누구 이름이 들어갑니까? 하나님 이름. 하나님의 이름이 보입니까? 안 보입니까? 안 보이죠. 계셔도 안 보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어디에 있느냐 하면, 지성소에 가면 언약궤가 있는데, 언약궤 위에 천사가 마주보고 있어요. 마주보는 그 자리가 하나님의 이름이 계시는 거예요. 그냥 들어가면 죽습니다. 안 보이지만 계시는 거예요.

그래서 그걸 가지고 이름이 계시다. 원래 이 이름이 어디 이름이냐 하면 시내산 꼭대기에 있는 이름이었고 모세만 만났는데, 모세가 내려오면서 뭘 들고 왔습니까? 하나님의 언약을 들고 왔죠. 그 하늘에 있는 언약을 땅에 모셔놓은 것이 언약궤거든요. 언약이 내려오면서 언약의 실천자, 언약의 실천자가 누구냐 하면 이게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의 이름이 하는 거예요. 하나님도 아니에요. 하나님의 이름이 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아니고 하나님의 이름이 하시는 거예요.

왜, 하나님의 이름이냐, 하나님의 이름이 뭐냐 하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라고 할 때는 반드시 인간과 하나님의 택한 백성과 관련지어서 하나님의 이름이라고 하는 거예요. 왜 그런가 하면 이름이라고 하는 것은 그냥 존재로만 이름이 붙여지는 것이 아니고, 그분이 하시는 활동을 통해서 이름이, 내용이 드러나게 되어 있어요. 활동을 통해서.

아브람을 아브라함 되게 하시는 거예요. 요새 그 이야기,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을 수요설교에서 하고 있습니다. 들어보셨어요? 거기에 쭉 보면 이름이 자기 언약을 이 땅에 어떻게 실현하는가, 그게 잘 들어보면 나오죠. 그러니까 하나님의 이름이 있다고 해서 존재론을 덜렁 생각하면 안 되고, 쉽게 말해서 팔 걷어붙이고 본격적으로 일하시는 거예요. “야야! 며느리야! 나와라 차라리 내가 설거지 할게.”라고 하는 것처럼. 김장할 때, “어머니 김장 어떻게 해요?” “내가 할게. 내가.” 그때, 김장의 하나님이에요. 설거지의 하나님. 김장의 하나님.

그렇다면 하나님이 일하시면 어떤 결과물이 나오겠죠. 실적이 나오겠죠. 그게 야고보서 1장 18절에 나오는 첫 열매가 되는 겁니다. 이해되시죠. 그 첫 열매는 광야에서 첫 열매가 맺히지 않습니다. 그 첫 열매 맺히는 장소가 있어요. 보통 세상 사람들이 있는 곳을 땅이라고 해요. 땅. 그런데 하나님의 이름에 의해서 첫 열매를 맺는 그 땅을 무슨 땅이라고 하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약속의 땅.

약속의 땅이라고 하니까, 제가 생각나는 옛날드라마가 있어요. 김진홍 목사가 일했던 것을 kbs에서 드라마로 보여줬거든요. 서울에서 빈민들 모아가지고 어디 경기도 동두천에 가서 두레마을을 만들었잖아요. 그 제목이 뭐냐 하면 약속의 땅이에요. 약속의 땅이라고 하는 것은 쫓겨남을 전제로 하고 있죠. 쫓겨남.

그러니까 성도는 이 땅에서 쫓겨나는 거예요. 우리가 사는 모든 이 세상에서 쫓겨나서 따로 사는 겁니다. 이 따로 사는 걸 감사해야 돼요. 우리가. 따로 사는 것을 감사해야 되지, 그 뭐 지남철처럼, 쥐 잡는 찐드기(끈끈이)처럼, “아이고 여기 떠나면 나 못산다. 이 동네 떠나면 못산다.” 찐드기에 붙은 것처럼, 파리 찐드기처럼, 요새는 모기찐드기도 있답니다. 그런 것이 붙어가지고 못 떼어가지고 “우짜노! 우짜노! 나는 더는 못산다.” 뭐 이런 것 있잖아요.

내용이 어려워서 쉽게 갑니다만, 이런 이야기도 있어요. 옛날 드라마에 보면 나오는데, 시집간 딸이 엉뚱한 짓을 했을 때, 친정엄마가 그 소식을 듣고 와서 등짝을 주먹으로 때리면서, “내가 이렇게 하라고 니 안 키웠다.”라고 울면서 하는 그 장면이 있죠. “우에 니가 그런 짓을 하노?” 하면서 등짝스매싱, 때리는 것 있죠. 그게 이별의 순간이죠. 그러면 딸이 뭐라고 하느냐 하면 “엄마 인생 따로 있고 내 인생 따로 있어요.”라고 하죠. 이렇게 드라마가 진행되죠. “야야! 안 된다.”

약속의 땅에 갈 때, 그냥 조용히 못가요. 조용히 조심스레 못가고 이 세상에서 알던 사람이 등짝을 쳐야 해요. 니가 이렇게 빠질 줄 몰랐다는 거예요. “이런 데 빠질 줄 몰랐다. 우리 같이 그냥 조용히 평범하게 살면 안 되나?” 이런 질문요. 그런데 약속의 땅의 첫 열매가 우리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고, 지금 제 이야기 들으면 어디서부터 시작했습니까? 이 땅에 같은 이름을 갖고 있는, 이 세상에 하나님도 인간 같은 이름을 갖고 뛰어들었거든요. 그 분의 솜씨가 바로 뭐냐 하면, 그 분의 솜씨가 첫 열매에요. 그 분의 솜씨가.

시작을 지금 하나님부터 시작했다고 언급을 했어요. 시작을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했다면 첫 열매가 무엇입니까? 라는 그 질문을 우리가 할 수가 없어요. 제가 말을 너무 어렵게 한 것을 여러분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사람이 이 세상을 삽니다. 제가 지난 낮 설교에 이야기했죠. 사람이 사는 것, 밥 먹고 잘 사는 것 외에는 무슨 계획이 있습니까? 라고 했거든요. 진짜 우러나오는 말을 했어요. 사람은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기어이 모든 고민은 잘 먹고 잘 사는 거예요. 결국은 하나님은 뒷전인데, 뒷전이라도 보통 뒷전이 아니에요.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밀립니다. 잘 먹고 잘 사는 거예요.

그런데 거기에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의 충만하심, 교제하심이 그게 뭐 우리한테 위로가 되고 힘이 되겠어요? 그래서 설교를 처음 시작할 때 대목 펴놓고 그 이야기했잖아요. 도대체 사도바울이 이런 말을 하는데 이게 우리한테 무슨 위로가 되느냐 이 말이죠. 그래서 제가 이야기했잖아요. 사도바울은 못 알아듣는 이야기하고 본인은 사라졌다고요. 주일 낮 설교에서 했거든요. 그럴 때 제가 이용이 부른 노래가사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헤어지는 정도가 아니고 찢어졌죠.

갑자기 우리가 말씀을 조금도 신경 안 쓰게 되면, 결국 말씀은 에프킬라처럼 뿌릴 때 뿐이고 그 다음 돌아서면 다시 윙~하고 세상 모기가 들끓게 되어 있어요. 이런 시간이 참 귀하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여기서 분명히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것은,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먹고 살기 위해서 질문을 우리 쪽에서 던집니다. 이게 벌써 오류에요. 오류가 난 거예요. 질문을 우리 쪽에서 던진다는 말은 자기의 아쉬운 것을 도와달라고 신에게 요청한 거예요.

그러면 이 신은 뭐냐 하면, 시내산에서 내려온 그 신이 아니에요. 이 신을 뭐라고 하느냐 하면 출애굽기 32장에서는 이 신을 바로 우상이라고 합니다. 다른 신이에요. 다른 신. 우리는 걸핏하면 다른 신을 믿고 있는 자아를 발견합니다. 아쉬울 때. 어려울 때. 왜 그러냐 하면 우리는 질문하고 신은 답변한다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매치가 되고 연결되는 신은 백퍼센트 우상입니다.

이게 출애굽기 32장에서 뭐라고 되어 있느냐 하면 이렇게 되어 있어요. 8절을 누가 한 번 읽어보세요.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됐습니다. 우상의 특징이 뭐죠? 자기를 위해서죠. 자기이름을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언약의 하나님은 언약을 위해서 이스라엘이 있는 거예요. 순서를 잘 알아야 돼요. 순서를.

내가 필요해서, 밥 먹고 사는 것, 잘 먹고 잘 사는 것, 그게 우리에게 전부기 때문에 나한테 필요한 신을 찾다보니까 그 신에게 아무리 간곡하게 기도하고 무시로 기도하고 철야한다 할지라도, 그건 뭐냐 내가 필요한 신이기 때문에 나를 위한 신이 돼버려요. 이게 바로 우상이 되는 겁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모세 따로, 산 밑에 백성 따로 한 줄 압니까? 이 세상에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할 때, 그 하나님 외에 신이 어떠한 입장으로 인간에게 다가오는지를, 뭐 다른 신을 알아야 섬기든 안 섬기든 할 게 아니겠습니까?

그 다른 신이 뭐냐, 본인이 필요해서 호출할 때 나타나는 신이 다른 신이에요. 내가 필요해서. 내가 아쉬울 때, 내가 어려울 때, 내가 힘들 때, 내가 곤란할 때, 이 네 가지 형용사 앞에 누가 있습니까? 누가? 내가. 누가 아쉬워요? 내가. 내가 힘들고 내가 괴롭고 내가 불행하고 내가 슬플 때 찾는 신. 우상입니다. 참 가만히 보니까 결국 내 인생은, 아무리 이론상 주의 인생이라고 해도 가만히 보니까 내 인생은 나의 것이에요.

우리가 출발을 질문부터 하면 안 돼요. 질문은 누가 하는가 하면, 질문을 주님부터 하고 우리는 답변하기 전에 우리 자체가 뭐냐, 주님의 작품이고 답입니다. 이걸 가지고 뭐라고 하느냐 하면 첫 열매라고 해요. 첫 열매. 이게 첫 열매입니다. 첫 열매라고 하면 두 번째 열매, 세 번째 열매가 있겠지만, 성경에서 첫 열매라고 하는 것은 안에 다른 모든 열매는 포함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냥 대표적으로 첫 열매라고 할 수 있어요. 첫 열매.

그러니까 이런 입장에서 구약의 첫 열매의 개념에 대해서 우리가 다시 생각해야 되겠죠. 그래서 구약에서 십일조가 나오는데 십일조는 뭘 드리는가 하면 십분의 일을 드리는 것이 아니고 첫 열매를 드리는 거예요. 첫 열매. 첫 열매, 십분의 일이에요. 첫 새끼, 첫 장, 이게 첫 열매에요. 왜 십분의 일을 드리는가 하면 내가 나 된 것이 내 작품이 아니고, 내가 힘들게 애쓴 것이 ?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189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16,442 자유게시판 서울의존강의20171208a 디도서3장9절(자기 증명)-이 근호 목사 디도서 최고관리자 17-12-14
16,441 자유게시판 20171211b 부산강의 : [시편]6(2편)-아들의 진노 시편 최고관리자 17-12-13
16,440 자유게시판 20171211a 부산강의 : [시편]6(2편)-아들의 진노 시편 최고관리자 17-12-13
16,439 자유게시판 광주 강의(2017. 11. 24) 2강 - 최고관리자 17-12-12
16,438 강의 아들의 진노 171211 시편 최고관리자 17-12-11
16,437 자유게시판 267강-갈 1장 1-3절(사람에게서 난게 아님)1701210-이 근호 목사 갈라디아서 최고관리자 17-12-11
16,436 자유게시판 163강-신 31장 1 – 4절(모세언약의 연결 )171210-이 근호 목사 신명기 최고관리자 17-12-10
16,435 묻고답하기 복음의 요약 갈라디아서 최고관리자 17-12-10
16,434 강의 자기 증명 171208 디도서 최고관리자 17-12-09
열람 ➜ 강의 첫열매 171208 야고보서 최고관리자 17-12-09
16,432 자유게시판 가락-요한복음 15장 25절(미움)171205b-이 근호 목사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7-12-08
16,431 자유게시판 가락-요한복음 15장 25절(미움)171205a-이 근호 목사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7-12-08
16,430 묻고답하기 왜 '피'라고 말을 못하나 - 최고관리자 17-12-08
16,429 자유게시판 20040517 부산강의 (50인의신학자) 3 삼위일체논쟁 로마서 최고관리자 17-12-06
16,428 자유게시판 213강-YouTube강의(여기 저기)171205-이 근호 목사 - 최고관리자 17-12-06
16,427 자유게시판 212강-YouTube강의(오류)171205-이 근호 목사 시편 최고관리자 17-12-06
16,426 자유게시판 광주 강의(2017. 11. 24) 1강 마가복음 최고관리자 17-12-06
16,425 강의 미움 171205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7-12-06
16,424 강의 유튜브 강의 (212강, 213강) 오류, 여기 저기 171205 시편 최고관리자 17-12-06
16,423 자유게시판 20171201b 울산강의-레위기 16장 : 대 속죄일 레위기 최고관리자 17-12-05
16,422 자유게시판 20171201a 울산강의-레위기 16장 : 대 속죄일 레위기 최고관리자 17-12-05
16,421 묻고답하기 복있는(?) 자 누가복음 최고관리자 17-12-05
16,420 자유게시판 266강-고후 13장 11-13절(사랑과 평강)1701203-이 근호 목사 고린도후서 최고관리자 17-12-04
16,419 자유게시판 162강-신 30장 15 – 20절(생명과 사망 )171203-이 근호 목사 신명기 최고관리자 17-12-04
16,418 묻고답하기 사람에게서 난 게 아님 갈라디아서 최고관리자 17-12-03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