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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가락-요한복음 15장 25절(미움)171205b-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요한복음

가락-요한복음 15장 25절(미움)171205b-이 근호 목사
예, 지난 시간 끝에 이야기 한 것처럼 하나님이 그냥 하나님 일하면 되는데, 왜 하나님이 인간을 사용하시느냐 인간에게 당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일이 완성이 안되요. 참 이상하지요. 하나님이 뭐가 부족해서.
하나님이 뭐가 부족해서 인간에게 당해야 하나님의 일이 완성이 되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당했다 하는 것은 우리 생각이고, 사실은 인간은 들러리입니다. 인간이 빠져버리면 창세기 3장에 보면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 나오지요.
여자의 후손 자체가 사실은 인간이 아니고 하나님이시죠. 여자의 후손. 그리고 뱀의 후손은 뱀새끼가 아니고 누구냐 사탄입니다. 둘다 인간이 아니예요. 인간 영역이 아니예요. 영적영역이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일은 인간하고 상대하는 것이 아니고, 마치 인간한테 당한 것처럼 보이지만 인간하고 상대한게 아니고 영적인 존재끼리 결정한거예요. 영적인 존재끼리. 그래서 그림을 그리면 이렇습니다.
예수님이 계시면 예수님께서는 한쪽은 아버지하고 한쪽은 사단하고 두 개의 관계하고 사단은 미움, 아버지에 대해서는 사랑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사랑과 미움 사랑과 미움이 뭐냐하면은 사랑은 사랑이나 미움의 특징이 뭐냐하면은 뭘 행하거나 써먹을 용도가 아닙니다.
사람은 뭘 이렇게 행동을 하게되면 행동에 대한 보상 결과를 따로 챙겨야 되잖아요. 그렇죠? 열심히 하게되면 칭찬이 있지만 사랑은 그것으로 종결되요. 사랑은 그것으로 마무리 되요 사랑은. 사랑했으니까 더 달라는게 없어요. 사랑 그 자체가 끝이예요.
사랑했으면 줄 것 다 준거예요. 실제로 여러분들이 누굴 사랑할때는 사랑하면서 다른 꿍꿍이를 노리던가요? 사랑하니까 이 가방 사주세요. 사랑하니까 뭐 해주세요. 이런게 있던가요? 그런게 있으면 그건 사랑 아니예요.
그냥 사랑하니까 그냥 사랑하는거예요 그냥. 그리고 미워할 때 이유가 있습니까? 미움의 이유가 있어요? 그것은 미워하고 난뒤에 적절한 구실을 자기가 미워한 것이 누가 뭐라고 할까 싶어서 적절한 구실있잖아요. 빌미 거리를 그 다음부터는 억지로 찾는겁니다. 탤런트 누구 닮아가지고 되게 밉네.
그냥 미운건데 미운것에는 이유가 없어요. 왜냐 종결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본질은 사랑과 미움입니다. 한쪽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고. 이것이 아버지하고 한통속 되어서 그걸로 모든 것이 마감이 되요 마감. 끝이라니까요.
그래서 지금 세상이 너를 미워하고 나 때문에 미워한다는 말은 니가 앞으로 어떤 행동하느냐 그런 것 묻지 않고 이미 너를 나처럼 세상에서 미움받은 그 자체로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는 뜻이예요 이게.
왜냐하면 미움받는다는 속성이 나쁜짓을 해서 미움받는게 아니고 주님께서 의도해서 나처럼 미움받도록 내가 그렇게 조작해 냈기 때문에 그래요. 내가 그렇게 만들어 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오늘 지금까지 강의 한 것을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제자는 만드는 것이다. 만들어진다. 제자는 만들어 지는 거예요. 성도는 만들어지는 겁니다. 이걸 제가 대구 강의에서 축복의 생산성이라고 이야기 했는데, 축복은 우리가 받는게 아니고 축복 자체가 계속해서 생산되고 있어요.
이것은 반대편에 뭐가 있느냐 하면은 저주를 저주답게 하기 위해서 저주는 가만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저주 받을거리를 계속해서 만들어 내는 겁니다. 나쁜 짓해서 저주 받습니까? 그런 겁니까? 오늘 본문에 의하면 나쁜 짓해서 저주 받는게 아니예요.
저주 받기 위해서 주께서 죄를 만들어 낸 대상이 바로 그게 저주입니다. 말 잘들어야 되요. 내가 오지 않았으면 죄가 있다? 없다? 없지요. 그러면 예수님 오니까 뭐가 발생되었어요? 죄가 생겼지요. 그것이 주님이 할 일이예요. 왜? 죄가 생겨야 저주가 생기기 때문에.
인간하고 상대하지 않습니다. 이런 못땐놈 내가 저주하리라 이러지 않습니다. 주님하고 상대하지 않아요. 주님은 뭐하고 상대하냐 하면 한쪽은 아버지 사랑이고, 한쪽은 사탄과의 미움이고.
악마의 미움 악마에 대한 미움, 예수님의 사랑, 이것을 이 사실을 구체화 시키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사탄에 속한 미워하는 사람을 생산하도록 사탄으로 하여금 니 사람 만들도록 그렇게 활동하게 하는거예요.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아버지 눈 밖에 예수님 눈 밖에 나면 지옥 가셔줘야 됩니다. 나 이런 이야기 할 때 너무 신나. 너무 좋아. 너무 기뻐요 저는. ‘저 사람은 복음 복음 안다고 하다가 벌써 몇 년 전부터 교회 안나오고 어쩌지 어쩌지?’ 라고 생각했다가,
주께서 못나오게 복음을 못듣게 하는 거예요. 왜? 지옥 갈 사람 주께서 친히 만드시기 때문에 마귀를 통해서 마귀를 부추겨서 주께서 친히 만들게 하는 거예요. 지금 이 작업을 저주하는 작업이 사탄이 하지만 사탄은 누구 지시 받아요? 바로 하나님 지시에 따라서 예수그리스도의 허락하에 사탄은 활동하는 겁니다. 왜? 사탄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의 일에 하자가 없어요. 완벽해요. 완벽합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1장에 보면 그리스도는 모든일에 No가 아니고 아니요가 아니고 예 가 된다는 거예요. 모든 것이 패스가 되고 모든 것이 성공 성공 성공이 되는 거예요.
다 성공 작품아닙니까? 보세요. 성공 아닙니까? 저는 그렇게 보이는데. 아이고 목사님 추운데 나왔어요. 추운데 나온게 아니고 추운데 애써서 나온게 아니고 주께서 복음을 생산하기 위해서 나오게 하신 거예요. 예수님께서 발걸음을 인도하신거예요.
‘그 사람하고 오는데 자기는 복음안듣겠다고 무슨 말인지 못알아 듣고 삐져서 나갔습니다.’ 그 사람 탓하지 마세요. 주께서 그 사람을 미워하기로 작정했기 때문에 그렇게 복음 못듣게 하는 겁니다. 아무리 본인이 천국 가고 싶어 했어도 못 알아 듣게 하시는 거예요.
이런 마지막 결론을 이야기하는 이 연사는 기분 좋아요. 정말 사람이 이야기 할 때 끝 대목까지 다 이야기 하게 되면 속이 다 후련합니다. 이것은 다음시간에 합시다 이러면 찝찝해. 내일 죽을지 오늘 밤 죽을지 모르는데 다음주까지 갈거 뭐 있어요. 미리 결론 이야기 합니다.
나쁜짓해서 지옥 가는게 아니고 저주 받을 구실을 계속 주께서 그런 상황으로 몰아 세우는 거예요. 몰아세우니까 미운 짓을 사탄에 속한 자들은 본인도 이유도 몰라요. 본인의 심성을 능가한 힘에 의해서 누구를 미워하느냐 복음을 굉장히 미워할 수밖에 없어요.
이런 지옥가는 인간들의 특징이 뭐냐하면 자기가 예수 사랑한데요. 남들이 들으면 다 속아 넘어가. 남들은 다 속아 넘어가요. 예수 사랑하면서 지옥가고 있다니까. 문제는 예수 사랑하는데 누가 사랑한다고 했어요? 누가? 누가 사랑한다? 내가. 이게 문제 아닙니까.
끝까지 자기를 포기못하는거.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 져야 되는데, 성령이 와야 이게 되지 성령이 안왔는데 성령이 안오니까 내가 안 깨지는 거예요. 아까 했지요 내재적 한계. 어떻게 한다고요? 내재적 한계 어떻게 한다고요?
너머의 모르는 것을 안으로 들어와서 최선을 향하여 주관적으로 따라 붙이는 겁니다. 왜냐? 선은 신쪽이기 때문에. 선은 신이고 악은 악마이니까 악을 버리고 선한쪽으로 계속 내재적으로 주관적으로 하는거예요.
주관적으로 하니까 날마다 아주 신경 바짝 세워서 선택해요. 결정을. 결정 또 결정. 오늘 제목을 이것으로 할까요? 결정 또 결정. 결정 또 결정 하니까 또 노래 생각나네. 한잔 또 한잔 마셔도 취하는건 마찬가지. 하도 술 많이 취해버리면 그 다음에 한잔 들어가나 두잔 들어가나 취하는건 마찬가지.
계속 선택 또 선택 계속 또 결정 그 결정. 결정해 놓고 어떻게 한다? 돌아본다. 뭘 어떻게 돌아봅니까? 내가 잘했나 못했나? 거기에 잘했나 못했나 누가 결정합니까? 내가 끼어들지요. 내가 끼어드니까 내가 나를 부인할 수가 없지요. 나를 계속 지켜내야 되지요.
왜? 내가 나를 살리기 때문에. 이 지옥 간 사람들. 내가 날 살려야지 이 세상에 누가 날 살리겠어요? 내가 잘해야 내가 사는 거예요. 내가 선하면 선한 나라에 가고 악하면 어떤 나라간다? 악한 나라 간다. 그게 바로 뭐냐하면 주님이 나타나기 전부터 자기들을 안다고 여기는 그런 그게 화근이 되는 겁니다.
다시 봅시다. 22절 내가 와서 그들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라면 그 다음에 뭡니까? 뭐가 없었으려니와? 뭐가? 죄가 없었으려니와. 이말은 너희들이 스스로 이건 죄다 이건 선이다 라고 판단한 그 판단은 전부 다 없애버리는 겁니다.
지금 우리 신자라 하지만 우리끼리 이야기할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목사님하고 우리끼리 길에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누가 잘났다 내가 잘났다 하고 있는데 갑자기 여기에 비행기가 제트 비행기가 훈련하느라 휘잉~~하고 지나가게 되면 뭐가 묻힙니까? 예? 소리가 다 묻히지요.
우리끼리 열심히 토론하는 그것이 그 소리가 비행기 소리에 다 묻혀버리죠?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인간이 70, 80평생 살면서 이야기한 것, 설교한 것, 강의 한 것, 십자가 피 앞에서 뭐가 됩니까? 그게 무슨 소용 있어요 그게. 다 묻히지요.
설교 또 설교를 해도 마찬가지예요. 마찬가지 라니까요. 니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았느냐 그 옥경이한테 묻듯이 묻지를 않아요. 비행기 한번 싹~ 지나가면 전부 다 벙어리 되요. 어?!!어!!음!!?음?? 비행기 소리에 아무것도 안들려요.
이게 사랑입니다. 왜? 사랑은 마지막이기 때문에. 주께서 십자가로 사랑 피 앞에 두게 되면 우리가 이땅에서 선교를 몇 명했니 뭐 개처교회 몇군데 했니 헌금 십일조 했니 안했니 뭐 교도소 몇 번 들락거렸니 이런 것은 비행기 소리에 묻혀가지고 피 앞에 묻혀가지고 그것은 있으나 마나 한거예요. 그게 아무 의미 없다니까요.
지금 그 이야기 하고 있는 거예요. 오늘 강의 제목 비행기다. 예수님이 그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너희들끼리 이건 죄고 이건 악이다고 어디서 무식한 것이 뭘 아는체 한다고 내가 안 나타 나니까 서로 잘났데. 이거는 이러면 안되고 이러면 나쁘지 이건 옳은 짓이고 예수님 오니까 전부 다 그것은 잘잘못 다 떠나서 전부 다 뭐가 되느냐? 죄가 있어야 된다.
예수님이 이 땅에 죄를 확대 시키러 왔습니다. 율법이 더한 곳에 죄가 더해지고 죄가 더한곳에 은혜가 넘치느니라. 로마서 3장과 5장 이야기 아닙니까. 제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그러면 목사님 우리는 어떻게 살면 됩니까? 그냥 사세요 그냥.
왜 그냥 살라고하냐 하면은 성도 같으면 그냥 살지를 않고 계속 생성해줘요. 오늘은 골프쳐라. 골프치는 생성된 골프. 그랬다가 잘못되가지고 홀인원. 쳤는데 쑥 들어가버렸다. 그것은 누가 그렇게 하신거예요? 주께서 더하게 하신거예요.
수능 못쳤다. 누가 그렇게 하신겁니까? 주께서 하신거예요. 왜? 공부 좀 할려고 하면 친구가 불러내고 누가 친구 불러냈어요? 주께서 불러 낸 거예요. 공부 좀 할려고 하면 재미있는거 하고, 재미있는거 하면 잠 오고 누가 잠 오게 하신거예요? 주께서 하신 거예요. 모든 만물이 주께서 하신겁니다.
그러니까 만약에 못했는데 천당간다 천국간다 그러면 누구의 공로 되겠습니까? 주님의 공로이지요. 그러니까 낮은자가 배나 사랑하는 겁니다. 지금 누구를 이야기 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못난자가 배나 사랑해요.
죄가 있는 곳에 더욱 더 은혜가 넘치는 겁니다. 왜 은혜가 없습니까? 왜 감사가 없습니까? 왜 감사가 없습니까? 자기가 죄인인 것을 자기가 못 느끼기 때문에 잘났기 때문에 감사가 있을수가 없어요.
제자들 입장에서 미움받죠. 그 미움을 이기는 방법이 뭐냐? 뭐 1번 예수의 이름으로 무장하라. 2번 말씀으로 무장하라. 3번 무시로 무시로 기도해서 4번 복음의 감투를 입고 되도 않는 소리예요.
다 뭐냐 자기를 낮추게 되면 무서운게 없습니다. 자기가 바보이고 쪼다인데 무엇을 무서워 해요. 자기가 잘났으니까 그 명예와 위신과 체면깍일까 싶어서 자기 쪽에서 벌벌 떨고 있는 거예요. 아예 바닥에 엎드려버려 버리면 바닥에 엎드려 버리면 그 누구도 이길수 있어요.
옛날에 그 레슬링 하는 일본의 이노끼하고 타이슨인가 알리하고 하나는 레슬링하는 사람하고 권투하는 사람하고 세계적인 시합을 주선해서 했어요. 알리가 세계 최고 챔피언이고 이노끼하고 알리하고 했는데, 우리 보는 사람은 이야 맹렬하게 하겠다 하면서 이렇게 봤지요.
실제로는 이노끼가 누워 있었어요. 누워서 오면 목 조를려고. 그런데 알리는 레슬링 선수가 아니거든요. 허공에 주먹질 누워있는데 그래서 알리가 하는 말이 창녀도 아니고 왜 누워있느냐 이랬어요. 왜 시합을 하면서 왜 누워있느냐 이말이죠. 서서 해야지.
그러니까 결과는 무승부. 돈 만 챙겼어요. 자기가 완전히 나는 바닥이라고 생각하면 이 세상에 무서운게 없습니다. 왜? 바닥은 폭이 없기 때문에 위신과 체면과 명예가 없고 자기의 과거사가 내어 놓을게 없어요.
납작한데 동전같이 납작한데 무슨 과거사가 있어요. 카스테라처럼 부풀은게 아니고 납작한데 핥아 먹을래도 먹을게 있어야지. 인생사가 이렇게 늘 이렇게 발굴하듯이 납작하게 지내게 되면 남한테 자랑할게 없으니까 체면도 위신도 쌓일곳이 없지요.
그러니까 바로 막달라 마리아가 그렇게 칭찬 받은거예요. 막달라 마리아가 칭찬받는 동시에 누구한테 미움 받습니까? 막달라 마리아가 누구한테 미움 받습니까? 그 당시에? 예수님을 초청한 바리새인한테 아주 대 놓고 욕 얻어 먹었어요.
인격 모독도 그런 인격모독이 없어요. 예수님이 선지자이면서 자기를 대접한 저 여자가 어떤류의 여자인 것을 지금 동네방네 지금 동네 사람들 다 알고 있는데 예수님 본인만 모른다고.
옛날에는 죄를 지으면요 죄가 신체에 육체에 묻어가지고 함께 받으시는 몸이 안된다고 본거예요. 옛날에는 몸이 제물이기 때문에 제물을 드릴때는 깨끗한 제물을 받치는 것이 바리새인들의 그게 하나의 목적이였거든요.
그런데 죄를 짓게 되면 부정한 몸이 되어 가지고 성전에 들어 올수 없기 때문에 성전에는 백정들이나 여자들이나 이방인들은 못 들어오게 한거예요. 그 죄인들 창기들 세리들 못들어오게한 이유가 몸 자체가 죄로 죄로 범벅이 되어 있으니까 못들어 온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을 대접한 그 여자가 예수님 앞에 대접을 하니까 바리새인들이 욕을 했지요. 그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저의 식으로 한다면 ‘너는 전만 보고 후는 안보냐?’ 이렇게 한 거예요. 전은 뭡니까? 전은 죄 많은 여자, 후는 뭡니까? 용서 받은 여자.
천국에는 용서 받은 여자만 원하지 죄 없는 여자를 원하지 않습니다. 죄 없는 사람을 원하지 않아요. 죄 있었었는데 누가 와서 건드려 준 사람. 탕자가 구원받고 맏이는 구원 못 받아요. 우리가 증거 할 것은 나 구원 받았다가 아닙니다. 누가 와서 나를 건드려 준거예요.
주일날 설교 했잖아요. 잠자는 자여 일어나라. 그것을 경상도 말로 깨봐라 하는 거예요. 깨봐라. 이해할 사람 부산 사람밖에 없지요? 깨우는 거예요. 깨봐라. 이게 뭐냐. 흔들어 깨우는 것 강렬하게 밀어서 흔들어 깨우는 거예요. 그러면 본인이 저항할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저항할수 없어요.
깨고 보니까 자기는 무슨 자였다? 죽은 자 였구나. 아 주께서 손대기 전에는 나는 살았다 하짐나 실은 죽은 자였구나. 죽은자를 주님의 요소가 첨가되면서 산자가 된겁니다. 그러니까 산자는 살았는데 더 행위로 보태야 되겠어요? 그걸로 완결이겠습니까? 완결이죠.
그 완결을 아까 뭐라고 했어요? 두자로 뭐라고 했습니까? 완결된 것을 사랑이예요 사랑. 사랑은 사랑한 그것으로 끝나는 거예요. 사랑에 뭘 보태 버리면 이건 사랑을 모독하는 겁니다.
사랑하니까 너에게 가방 사줄게 이것은 그 사랑을 모독하는 겁니다. 상당히 남자한테는 유리한 이야기죠. 그럼 입만 살아서 사랑하면 되겠네. 물론 그러면 안되겠습니다만은 어쨌든 간에 그 뒤에다가 어떤 것을 추가해도 처음에 준 사랑에 흠집 나서는 안되요.
그래서 요한계시록 2장에 보면 에베소 교회한테 뭐라고 이야기 했지요? 주님이 뭐라고 책망했습니까? 뭘 버렸다? 첫사랑. 니가 첫사랑을 버렸다. 이 말은 첫사랑을 유지하고 있느냐를 묻고 있는거예요. 첫사랑 플러서 행함이 아니고 큰 사랑으로 전개되는게 아니고 그 첫 사랑.
첫사랑은 잠자는 자를 깨웠기 때문에 100% 순수한 누구의 사랑만? 예수의 피 사랑, 예수님의 마지막 사랑 그 사랑. 사랑 그 원수같은 그 미운 놈 그런거 아니고 그 최종적인 사랑 그것이 처음이고 그게 마지막이예요.
자, 이제 묻습니다. 여러분 거기까지 알았다 치고 그 다음에 자, 그 사랑이 과연 나한테 있느냐? 없느냐를 어떻게 판정하지요? 첫째 시간 잘 들은 사람은 압니다. 그 사랑이 나한테 있다 없다를 내가 어떻게 판정을 할 수 있느냐.
참 듣기는 좋은데 그 사랑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 사랑이 나한테 있을 경우에 일어나는 현상은 무었이냐? 그것은 바로 그 사랑이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사랑이 아니고 주님께서 나를 사랑한 그 사랑이죠.
그렇다면 주님은 그 사랑의 주님은 주님 주변에서 뭘 받았습니까? 미움을 받았지요. 주님이 받은 미움을 내가 받으면 그게 주님의 사랑받을 사랑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에 보면 나쁜짓을 해서 핍박받지 말고 오직 복음 때문에 핍박을 받으라.
그러면 맨날 착한 일만 하느냐? 그게 아니고 복음 때문에 핍박받으라 할 때 이 복음이 뭐냐하면 그게 베드로전서 4장에 나옵니다. 주의 영의 인도함을 받는 그것이 복음적으로 사는 거예요. 주께서 하라 해서 한 일. 고맙고 감사해요. 그런데 고맙고 감사한 것 때문에 하게 되면 그 주변에 뭐가 몰린다? 미워하는 미워하는 세력들이 우리를 미워하기 시작한거죠. 우리를.
참 우리란 말을 했으면 좋겠어요 정말. 이 말은 여러분이 사랑받았으면 좋겠다는 이 말과 같은 말이예요. 이 사람이 미워하는 이유가 뭐냐? 물어보세요. ‘너 왜 자꾸 미워하는 이유가 뭐냐?’
그쪽에서 뭐라고 하냐하면 다른 것은 니가 미울게 없는데, 그 십자가 피 이야기는 안할수 없나? 그래 나도 십자가 믿어 하지만 성경에 십자가만 있는게 아니야 성경에 하지 하지마라 말씀이 있으니까. 십자가 플러스 그 다음에 뭡니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구원. 이게 옳지 않느냐 하는거예요.
그 사람은 무심코 이 공식 내세웠지요. 무심코 무심코 내세웠는데 이게 바로 유대인 공식이예요. 기적으로 구원받고 행함으로 영광 돌린다. 이게 바로 예수님을 죽였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 그들의 서기관들의 공식이예요. 놀랍게도. 그들은 믿음으로 구원받아요 놀랍게도.
그들은 행함으로 구원받는다 하지요. 그들이 행함이라고 하는 것은 이 믿음의 주체가 누구입니까? 주님이 안왔으니까 믿음의 주체가 누구예요? 본인이 누굴 믿는다? 기적적인 하나님을 믿는거예요. 그래서 유대인들은 뭐냐하면 구약 성경을 달달 외우는 겁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뭐가 나오냐 하면 무슨 이야기가 나옵니까? 옛날 조상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한테 뭘 주었다? 기적을 베풀었지요. 그래서 유대인들은 뭘 원한다? 기적을 원하고 헬라인들은 지식을 원하지만 유대인들은 헬라인을 개 같이 여겼습니다.
왜? 헬라인들은 자기 머리를 의지한거예요. 계속 사색, 철학적인 것을 끄집어 내서 신은 없다 하지요. 유대인들은 그런거 없어요. 옛날에 홍해를 갈라지게 했고 여리고 성을 무너뜨렸고, 에스더 보면 죽으면 죽으리라 했던 에스더 보면 그렇게 하만이 그렇게 할 때 기적적으로 하나님께서 그 때 참 아하스에로 왕이요 잠이 안왔으니 천만다행이예요.
잠이 안와가지고 책 보는데 전화번호부나 그런거 봤으면 큰일날 뻔 했습니다. 하필 지나간 실록을 왕 실록 보다가 이렇게 나한테 잘해준 사람 어떻게 하지? 그렇게 해서 산거예요. 그렇다면 그 일을 누가 배후에서 누가 다 계획 잡은겁니까? 하나님이 한거죠.
에스더 나올 때 유대인들이 기독교가 뭐 헬라인이 뭐라해도 우리는 오직 뭘 믿는다? 줄 곧 아브라함의 자손을 지금껏 기적과 기적으로 역사를 통해서 이끌어 오신 그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앞으로 이스라엘을 팔레스타인 땅에 메시아가 와가지고 메시아는 반드시 인간으로 와요. 유대교에 보면.
메시아가 와가지고 하나님이 아닙니다. 인간이 와가지고 중보자 대제사장이 와가지고 성전을 회복하게 되면 구약에 스가랴 말씀대로 회복하게 되면 우리는 진짜로 영원히 이 세상을 통치하는 다윗나라 된다. 따라서 예루살렘을 포기 하겠어요? 안하겠어요?
핵폭탄 터트려도 예루살렘은 성전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하지요.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이 지금 예루살렘에다가 미국 대사관 옮길려고 하지요. 그것을 세상 사람들이 알고 있으니까 안된다! 하고 반대 나서고.
그리고 미국 대사관이 만약에 예루살렘에 있다고 한다면 그걸 아주 기쁘게 날고 기뻐할 자들이 누구냐하면 바로 666 외치는 사람들. 7년 환란 전환란 후환란 그거 좋아하는 사람들은 좋아해요.
왜? 이제는 서서히 자기 교리에 딱딱 맞아 떨어지게 역사가 움직이니까 이제는 뭐만 받으면 되요? 돈 만 걷으면 되는 거예요. 이제는 벙커 만들고 생수 만들고 라면 신라면 사면 되거든요. 핵폭탄 터지고 할테니까. 그 때 벙커 들어가서 오래살려고 그렇게 오래 살고 싶어서 환장을 했어요.
주머니에 돈만 들어오면 되는 거예요. 결국에 모든 교회는 돈이니까. 거봐 내 말 맞잖아. 용하잖아. 돈내놓으라 이 말이죠. 우리교회 등록해야 구원 받는다. 그러니까 교인들은 아까 이야기 했잖아요. 자기 존재 구원에 환장했고 예수고 뭐고 없어요. 자기가 제일 중요해요.
목사는 그들의 고객에 만족하기 위해서 자기가 역사적으로 이끌어진 역사와 같은 역사의 패턴대로 움직인다는 것을 증명하면 되는거예요. 증명. 둘다 뭘 이야기 하냐 하면은 둘다 뭘 믿습니까? 역사를 믿는거예요 역사를.
자기 개인사 교회사 교단사. 역사를 믿는 거예요. 성경은 이론이다 실체는 뭐다? 역사다. 역사 분석해서 믿자. 분석하는 사람이 누군데? 본인이 분석하잖아요. 그러면 아까 이야기한 외재적 한계에 도달되지요.
당신 그 역사 분석하는데 자료 몇 개 했습니까? 156000개 했습니다. 그러면 그거 다입니다. 그거 다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의 모든 자료가 그것뿐입니까? 아니요. 그럼 당신 무식한 사람입니다. 지평을 못 넘어봤으니까. 외재적 한계에 자기 한계에서 끝나버리지요. 자기한계에.
이유는 뭐냐하면은 그냥 해보자는 겁니다 해보자. 미진하지만 그냥 열심히 해보자는 겁니다. 아까 내재적 한계에서 열심히 방향은 맞으니까 열심히 순종하고 믿어보자는 거예요. 그런데 문제는 그게 사랑이냐 이 말이죠.
다시 한번 묻습니다. 여러분 사랑이 오게 되면 끝이 예요? 끝 아니예요? 끝이죠. 첫 사랑이면 그게 끝이예요. 사랑 말고 더 이상 뭐가 있어요? 아들은 아버지를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자기 백성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아버지안에 우리가 우리안에 예수님이 예수님안에 우리가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사랑만 있어요? 이 세상에는? 사랑만 있는게 아니고 또 뭐도 있어요? 미움이 있잖아요. 미움도 그것도 끝이예요.
왜 가롯유다가 제자이면서도 왜 성령을 안 주십니까? 주님 마음대로죠. 주님 마음대로입니다. 그게 내가 원하는 자는 건진다 이 말입니다. 내가 원하는 자는. 가롯유다는 주께서 원하지 않았어요.
원하지 않는데 제자 세운 것은 원하지 않음 안에 뭐가 들어가기 위해서? 사탄이 이렇게 들어가 있다는 것을 성령이 들어간 제자와 대조해서 보여주기 위해서 하는 겁니다. 예수님의 12제자 가운데 한쪽은 사탄이 들어있고 한쪽은 성령 들어 있지요.
그렇게 할 수 있는 권한은 누구한테 있다? 바로 예수님 자기한테 있다 자기한테. 지금 그 예수님이 그 일을 지금도 쉬지않고 계속 해 나가시는 겁니다. 이제 남은시간 더 나가 봅시다.
그렇다면 이 사랑 그리고 그 다음에 미움 이게 예수님한테 최종적이죠. 야곱은 사랑하고 그 다음에 에서는 뭡니까? 미워하고. 참 이게 믿어져야 되는데. 심지어 뭐라고 하냐하면 그들이 아직 태어나기도 전에. 태어나기도 전에 미리 사랑하고 미워했다는 말은 너 태어나서 하는 일이 너의 운명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태어나서 태어나면 존재성이죠. 이 존재가 벌린일이 결코 너의 운명을 다른 운명으로 변경시킬수 없다 이 말입니다. 그러면 여기에 대해서 우리는 무슨 문제가 생기냐 하면은 기원 문제. 기원. 바둑두는 기원말고. 근원 문제예요.
인간이 근원문제에서 두가지 겠죠. 하나는 하나님의 근원 오리진 기원. 그 다음에 두 번째가 뭐냐? 인간의 기원 인간의 근원이죠. 인간의 근원에서 인간들은 늘 생각합니다. 내가 내 존재의 의미는 뭐냐? 나는 왜 사느냐? 나의 가는 목적은 뭐냐? 늘 이렇게 생각하거든요.
특히 연세가 많으면 생각 안할 수가 없지요. 이제 살만큼 살았으니까 떠날 준비를 해야되는데 자신은 죽으면 어디를 갈지 천당갈지 지옥갈지 아니면 불교처럼 다 하나의 기로 다 에너지로 흩어질지. 그냥 엔트로피처럼 질서의 무질서로 과학이 이야기 하는 것처럼 죽음도 없고 사후도 없고 그냥 흩어지는 그것으로 끝나는지 되게 궁금해 하는 거예요.
어쨌든 궁금하다는 말은 무슨뜻이냐 하면 무식하다는 뜻이예요. 모른다는 겁니다. 그러면 더 살면 더 알게 될까요? 마찬가지로 몰라요. 계속 몰라요. 인간의 근원이라고 하는 것은 성립이 안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피조물 독자적으로 자기 기원이라는 것이 없어요. 피조물이란 뭐냐? 창조된자 잖아요. 창조된 존재는 반드시 기원이 될려면 어디로 일임해야 되요? 본인으로 마감하면 안되요. 어디로 가야되요? 하나님 기원으로 가야되겠죠.
하나님 기원이 아까 뭐라고 했습니까? 사랑과 미움이잖아요. 사랑과 미움. 그러면 사랑과 미움이 누구의 기원이다? 하나님의 기원이라면 하나님의 기원이 성경에 나오죠. 아버지의 뜻은 다 누굴 통해서 다 나타납니까? 자기 아들 통해서 나타나죠. 아들 통해서 다 보여 줬잖아요. 아들 통해서 보여줬지요.
그래서 지금 우리가 그 아들의 말씀을 보잖아요. 그러면 예수님이 한 이 이야기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 지상에 나타난 예수님의 그 하신일이 더 이상 하나님에 대해서 궁금해 하지 말자라는 이야기를 제가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이 미움 받았잖아요. 이 세상은 둘이예요. 예수를 미워하는 쪽과 예수님을 미워하지 않는 사람은 없어요. 다 미워해요. 예수님이 미워하는 쪽과 그 다음에 예수님이 사랑하는 쪽 이 둘 밖에 없어요. 없고 나는 어느 쪽입니까? 묻지 마세요. 주께서 알아서 하실거예요.
주께서 알아서 하게 되면 그게 바로 주께서 알아서 하신 그 덩어리가 담겨 있는 껍데기가 우리 자신이예요. 우리 자신의 지퍼를 쫙 열면 안에 뭐가 들어있느냐 하면 주께서 알아서 하신 것이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 이말입니다.
그렇게 살면 되잖아요 그렇게. 예? 오늘은 어떻습니까? 주께서 이렇게 하셨구나 내일을 그렇게 하셨구나 어떻게? 그게 뭔데? 그게 바로 사랑이였다. 그게 사랑이였다. 그런데 이게 미움이였다 라고 하는 성도는 없어요.
왜냐하면은 미워하는 자는 이게 미움이다 하지 않아요. 주께서 나를 미워하는구나 하면 그 사람은 성도예요. 출발점을 주님부터 시작했으니까 성도라니까요. 그런데 미움받는 자는 출발점이 하나님의 기원에서 성령에서 막히기 때문에 기원을 누구한테 합니까? 나로부터 해요.
하나님 내가 어떻게 하면 복받습니까? 하나님 나의 의는 무엇입니까? 어떻게 하면 내가 구원받습니까? 항상 시작을 나로부터 시작해서 그 결과도 나한테 이익되는 쪽으로 이렇게 모아지게 되어 있어요.
한번 정리해봅시다. 하나님은 자기 기원을 자기 근원을 숨기지 않고 이 지상에 나타냈다 했어요. 나타냈는데 누구를 통해서 나타냈습니까? 아버지의 모든 것은 아들의 하는 일로 하나도 빠짐없이 다 보여주었어요.
다 보여주었는데 그 현상을 보니까 주님이 미움을 받아요. 주님이 미움을 받아요. 그걸 봐서 이 세상 어떤것도 자력으로 자기 힘으로 구원받을 자가 있다 없다? 없는 겁니다. 자, 여기 24절 한번 봅시다. 내가 아무도 못한 일을 그들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그들에게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들이 나와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뭐했다? 미워하였도다.
다시 말해서 내가 숨어서 일 안했잖아. 너희들 앞에서 다 들어나도록 일 했잖아. 하나님이 이런분이다 다 보여줄거 다 보여 줬잖아. 하지만 그 결과는 뭐였다? 너희들이 나를 미워했는데 그것이 나를 미워한게 나만 미워한게 아니고 누굴 미워했다?
나 보내신 아버지를 미워하는 것이다. 라는 장(場), 필드, 영역이 바로 뭐냐하면 수평선 넘어까지 모든 것을 포괄한 현실입니다. 수평선 넘어까지. 우리는 아까 수평선 넘어는 우리의 삶의 한계 때문에 모른다 했지요.
그렇게 모른다 하면 안되요. 이제는 안다 해야되요. 내쪽에서는 물론 모르지요. 하지만 하나님의 기원, 우주의 기원은 내가 파고들어가서 아는게 아니고, 예수님을 통해서 이미 다 보여줬어요.
전도사님 설교할 때 이런쪽으로 이야기 하지요? 사람이 아직은 모르겠고 주일학교 아이들 가르칩니까? ‘얘들아 너희들 아직까지 나도 다 몰라 여기까지는 알아 그러니까 차츰차츰 정보가 있으면 알려줄게.’ 이러면 이게 학원 수강생들 지식이 되고 기술 가르쳐 준다니 이게 믿음이 아니잖아요.
끝장을 봐야지 끝장을. 더 이상 보탤 것도 뺄 것도 없는 최종적인 것을 이야기 해야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개혁주의 신앙은 뭐냐하면은 아직까지 역사가 안 끝났기 때문에 그들은 역사 주의거든요. 아직 다 모르고 우리 알 때 만 알면 혹시 아나? 구원받을지. 혹시 아나?
그게 뭐냐하면 바로 외재적 한계에 의한 내재적 한계의 전입니다. 3년 믿었다 2주 믿었다 10년 믿었다 그 의미 없습니다. 한번을 딱 듣더라도 마감까지 다 알아 버려야죠. 그 과정은 남아 있어요. 그 과정은 어떻게 될지 우리가 모르지만 그 막다른 그 결론은 알아야 될게 아닙니까? 그래야 누구한테 이야기 할 때 확신있게 이야기하지요.
나는 이것 밖에 모르는데 더 알게 있을거야 이렇게 되면요 그건 뭐냐 하면은 그러면 그 다음 고급반은 어디서? 고급반 중급반 그렇게 되어 버려요. 그게 무슨 추가해서 아는게 어디 있어요 믿음이라는게.
자, 그렇다면 이제 마지막으로 아까 다시 한번 물어봅시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랑받은지를 어떻게 아느냐 제가 물었지요. 답변은 뭐라고 제시 했습니까? 예수님이 당하는 미움을 같이 미움 받으면 이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이것은 기적에 속하고 이것은 주님께서 친히 사랑한거다 이말이죠.
마직막으로 그 다음에 마지막 해봅시다. 질문을 한번 해 볼께요. 주님께 사랑 받았는지 어떻게 안다 했습니까? 예수님이 당했던 미움을 우리가 같이 미움 받으면 우리가 예수님 사랑한 성도이고 제자다.
그러면 또 묻습니다. 미움 받는지 안 받는지를 어떻게 알아요? 아예 남 앞에서 나쁜짓은 다 해야되요? 이 미움 받음을 유발해야 됩니까? 의도적으로 조작해야 되요? 연기를 해서? 저한테 그런 질문한 사람 많거든요.
예수 믿으면서 핍박을 받아야 하는데 지금 복음 안지 10년 지났는데 핍박 한번도 안 받았어요 하는 사람 많다니까요. 좀 핍박을 해주면 주여 이때를 위함이다 뭐 이렇게 성경에 나오는 사도의 흉내나 좀 낼텐데, 너무 조용하게 놔두더라 이말입니다 주위에서.
사람좋다 하고 곶감 갖다 주고. 난 핍박받고 순교해가지고 요한계시록 나오는 장면들 있지 않습니까. 목 베임 까지는 안되고 면도칼로 약간은 베이는 그거 그런것좀 하고 싶은데 너무 세상이 나를 놓아줘. 조용하게. 너무 정숙하고 고요해요.
그럼 어떻게 성도 아닙니까? 어떻게 됩니까? 우리는 흔적이고 뭐고 딱지도 안 붙었어요. 피부가 어린아이 피부처럼 매끈매끈해요. 사탄의 가시도 없고. 그러면 성도 아닌게 되잖아요. 이게 뭐냐하면 인식록.
인식이란 말은 뭐냐하면 무엇무엇에 대해서 안다. 이게 인식론입니다. 무엇에 대해서 안다. 내가 주님의 미움이 주님이 준 미움인지 사탄이 준 미움인지 내가 미움 유발해서 성도인 것을 억지로 가장한다고 일방적으로 판단하는 미움인지 거기에 대해서 인식론에서 성경은 딱 이렇게 합니다. 성령.
니가 성령이 오게 되면 뭐를 알게된다? 미움만 알게 되는게 아니예요. 사랑 미움 성경 말씀 전부 다 그 모든걸 알게 되는 겁니다. 그 모든 걸 알게 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느냐 하면은 바로 타인에 대한 남다른 별난 감각이 나와요 감각이. 타인을 다른말로 하면 인간이죠 인간. 인간에 대한 감각이 나옵니다.
그것은 제가 일방적으로 주장한게 아니고 성령 받은 사도바울이 인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느냐를 주욱 면밀히 보게 되면 나타나요. 사도바울은 인간을 어떻게 봤습니까? 딱 둘로 봤죠. 육과 영으로 봤지요.
고린도전서 2장에 나오잖아요. 성령이 있으면 영, 성령이 없으면 육. 인간이라는 개념이 없어요. 사도바울은 인간이 없어요. 그러면 육이라는 것은 뭐가 안 온 상태? 성령이 안 온 상태가 육이고, 성령이 온 상태는 영이되죠.
그러면 그 다음 문제입니다. 그것이 왔는지 안왔는지 어떻게 판정하느냐?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2장에 보면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영, 그 다음에 행함을 주장하는 사람은 육, 그 다음에 또 나와요. 이게 행함인지 은혜인지 어떻게 아느냐?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십자가를 딱 놓고 십자가에 걸려 넘어지는 것은 전부 다 행함이 되는 거예요.
십일조 했습니다. 이거 십자가에 코 다 깨집니다. 십일조 남이 안했지요? 누가 했습니까? 내가 했지요. 십일조 할려면 반드시 누가를 반드시 장착해야되요. 시작을 나부터 내가 했습니다. 자, 선교 했습니다. 선교 누가 했습니까? 내가 했습니다. 선교는 못가도 선교헌금은 누가 했습니까? 내가 했습니다. 이번에 교회 참석은 내가 했습니다.
반드시 내가 해버리면 내가 하고 그 뒤에 뭐가 들어가냐? 내가 플러스 긍정적인 것, 긍정적인 것이 들어가면 이것은 육이 되는 겁니다. 왜냐하면 은혜가 끼어 들어갈 자리가 없어요. 자, 은혜는 뭐냐하면은 도와주는게 은혜가 아닙니다. 나를 성령이 있기 때문에 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것이 은혜거든요. 성령이 하는 일이 그거예요.
나를 뭘로 봐주느냐? 내가 없어지는게 아니고 나를 뭐로 봐준다? 죄인인데 오늘도 세끼 주셨다. 이게 은혜가 팍팍 나오지요? 내가 죄인인데 춥다고 이 두꺼운 이 좋은 옷을 주셨다. 어떤 분이 중국에서 주셨어요 너무 감사한데 너무 따뜻한데.
내가 죄인인데 내가 주의 종인데가 아닙니다. 내가 죄인인데 이런 것을 주셨다. 그러면 나는 죄인인데 만약에 골프 모임에 갔다. 골프 두사람 치는데 오~~ 김사장 잘치네 죄인인데 주께서 잘치게 했다. 미운털 박히죠. 그러면 나는 뭔데? 나는 잘났다 잘나서 연습 맣이 해서 홀인원 되었다.
한쪽은 뭐가 됩니까? 행위고 한쪽은 죄인되지요. 죄인 같으면 너 지옥 가겠네. 아니야 십자가. 그러니까 반드시 이 세상은 뭐냐? 죄인을 통해서 십자가를 불러내어서 십자가 복음을 전하게 하는 이것이 바로 성령의 영이 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고, 그 영이 인간을 다루고 있는 방식이예요. 그 다음에 조금 더 해보고 마치겠습니다. 아까 많이 했기 때문에.
그러면 죄인의 입장은 뭐냐? 뭐가 없느냐 하면은 죄인은 핑계가 없어요. 변명이 없습니다. 핑계없고 변명이 없습니다. 핑계 없고 변명 없으면 됩니까? 아니요. 핑계 변명 없이 뭐가 나오느냐 하면 감사와 매사에 고마움이 나와요.
하나의 예를 한번 들어 봅니다. 분명히 우리 동네에 대해서 빠삭하게 다 아는데, 여기 신호 위반해도 일년내내 경찰 하나 안왔다. 그런데 어느날 횡단보도에 아무도 없어가지고 밤 11:30에 차 몰고 그냥 앞에 횡단보도 신호 무시하고 차도 없으니까 오는 사람도 없으니까 무시하고 통과했는데 새벽 11시에 실제 있는 이야기가 아니고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11시 반에 잠도 안자고 뭐하는지 경찰이 와서 잡았다. 벌금 5만원 했다. 왜 11시반에 경찰 왜 있습니까? ‘주여! 왜 11시 반에 경찰 왜 있습니까?’ ‘내 은혜다. 왜?!’ 결국 뭐냐하면은 보세요.
내가 그때 참 내가 안잡힐것인데 후회하고 후회를 하게되면, 후회한다는 말은 뭘 챙긴다는 말입니까? 옛날 벌금 안 낸 그 시기가 가장 건전하고 착한 나 다운데 벌금 물어가지고 죄인된 내 모습은 이거는 전혀 나하고 안 어울립니다 라고 일방적으로 우기는 셈이 되지요. 그렇지요?
그게 오늘날 우리 24시간 하는 일이 그 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주께서는 성령이 활동 해야되겠어요? 안해야되겠어요? 가만 놔두면 주의 증인 안됩니다. 가만 놔두면 자기 후회와 변명과 핑계와 체면과 위신 그걸로 가득가득 가져다 계속해서 만들어 내요.
왜? 우리는 육이기 때문에. 그래서 오호라 곤고한 사람이다 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되는 겁니다. 계속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가지고 우리로 하여금 육되게 하셔서 육에서 영으로 바뀌는 그 과정에 첫사랑, 니가 벌금 냈다. 얼마냈어? 5만원냈습니다. 아까워 죽겠습니다. 그래도 나는 너를 사랑한다. 이 사랑 무조건적인 사랑, 일방적으로 사랑하는 그 필연적 사랑, 그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할말을 잊어버리게 만들죠.
그러면 우리는 바로 예수의 증인 되는 겁니다. 그 사랑이 저쪽에서는 나를 벌금물게한 그 경찰은 지금 지옥가고, 사실은 그 사람도 예수믿으면 구원받겠는데 예수 안 믿는다면 그 사람이 하는 일과 상관없이 그 사람은 경찰과 관계없이 미움으로 지옥가고 우리는 과속 걸려도 천국가고. 이론상 이렇습니다. 그런데 끊고 나면 일주일은 한달은 아까워 죽습니다. 생돈 내돈.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께서 하신 일 누가 미워하고 누가 방해했는지를 나타났습니다. 바로 우리가 날마다 벌려 온 주의 일을 얼마나 싫다하고 미워하고 거부했습니까. 하지만 우리가 죄인인 것을 그런식으로 깨닫게 하신 그것이 사랑의 방법인 것을 저희들이 이제는 믿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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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189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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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