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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171201a 울산강의-레위기 16장 : 대 속죄일자유게시판레위기

20171201a 울산강의-레위기 16장 : 대 속죄일(강의:이근호 목사) 오늘은 레위기 16장. “아론의 두 아들이 여호와 앞에 나아가다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니라” 죽음이 없는 하나님의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죽여서 인간과 상대합니다. 산 인간은 하나님께서 상대하지 않습니다. 살아있는 인간은 지 잘난 체해서 못 써요. 그런 인간은 소용없고 살아있는 인간으로 그 인간을 자기 방식으로 자기를 죽이면 안 돼요. 그건 자살이 되니까 자살한 인간도 안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죽이는 방법까지 제시합니다. 그 방법은 신약에선 십자가 방식으로 죽이고 구약에선 제사방식으로 죽입니다. 십자가 방식으로 죽인다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자기를 부인하고 그 다음에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인간으로선 상당히 난처한 입장에 속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십자가란 죽음의 형태잖아요. 죽음의 형태를 산 사람이 살아있는 본인을 죽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간다는 말은, 나는 지금 살아있어서 십자가 지지만 실은 곧 죽을 자입니다, 라는 것을 표시하는 거예요. 십자가 질 때 주의할 것은 십자가 지게 되면 언젠가 살아날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겠지요. 그건 터무니없는 생각이에요. 왜냐하면 앞에 “자기를 부인하고”라고 돼있거든요. 마태복음 16장 24절에 나오는 말씀이죠. 자기를 부인+자기 십자가 짊, 또 한 가지 더 있는 데 그것은 조금 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자기 십자가 진다는 것은, 나는 살아있지만 실은 곧 죽어야 됨을 의미하고, 자기를 부인한다는 말은, 내가 내 십자가 지게 되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좋은 미래를 허락하실 거란 생각은 하지 말란 말이죠.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십자가 지고 난 뒤의 상황에 자기가 계속 살아있기 때문에 이건 꼼수에 해당됩니다. 십자가 질 테니까 뭘 주시렵니까? 이건 자기를 부인한 게 아니잖아요. 제물이 된다는 말은 일임하는 것이지 자기 이득을 따로 챙기는 것은 제물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건 제물이 아니고 거래지요. 상거래입니다. 상인들 거래하는 것처럼 “이것 줄 테니까 뭘 주시렵니까?” 하는 것은 거래에서는 흥정이 여기에 동원되기 마련이지요. “하나님, 이걸 줄 테니까 뭘 주시렵니까?” 이렇게 나온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자기를 부정하고, 이게 안 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꾸 하나님을 상대로 거래하고 흥정하고 하는 겁니다. “내 목숨 바칠 테니까 주님, 뭘 주시렵니까? 천국 주시렵니까, 영생 주시렵니까?” 이러면 귀싸대기 좀 맞고 지옥 가서 이를 갈며 통곡하고 있을 거예요. 그런 식으로 하나님은 안 합니다.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자기를 부인한 입장이기 때문에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내가 결정한 게 아니고 하나님의 일방적인 피조물에 대한 요구고 요청이 됩니다. 다시 하겠습니다. 레위기 16장 이야기는 1절에 보면, 아론의 두 아들이 여호와 앞에 나가다 죽었어요.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나갔는데 죽었다. 하나님이 죽일 때 왼 펀치, 오른 펀치로 때려죽인 게 아니고 향로 불로 태워 죽였지요. 향로 불은 하나님의 성전, 회막의 일부에 해당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회막에 대해서 겁 없이 덤벼들다 죽었다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 진영 안에 하나님께 제사 드릴 장소가 있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죽이는 용도지요. 그냥 들어가면 죽는단 말이죠. 그 말은 하나님과 인간이 만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겁니다. 그러면 내가 나를 죽이는 자살하듯이 죽이면 안 되느냐? 그건 안 돼요. 죽일 때 하나님 방식으로 죽여야 돼요. 우리가 알아서 자살하고 하면 안 됩니다. 그 방식이 2절에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형 아론에게 이르라 성소의 장 안 법궤 위 속죄소 앞에 무시로 들어오지 말아서 사망을 면하라” 무시로, 그러니까 아무 때나 네 멋대로 들어와서 사망하지 않도록 하라. 이 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기 백성에게 준 게 뭐냐 하면, 까불다가 죽는다는 그 토대를, 그 증거물을 주신 거예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게. 하나님을 대표해서 인간에게 주신 선물이 뭐냐 하면, 너희들 있는 자체가 죽은 것임을 알려주는 것을 선물로 준 거예요. 잘 이해가 안 되시면 제가 예를 들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도둑질하다가 현장에서 걸렸습니다. 재수 없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 “도둑질해야 됩니까, 안 해야 됩니까? 도둑질하면 나쁜 짓이지요? 그러면 도둑질 안 하면 나쁜 짓은 아니고 착한 짓이지요?”라고 하나님 앞에 물을 때 하나님께서 뭐라고 답변하시겠느냐는 것이 제 질문입니다. 흔히 하는 답변은 도둑질은 나쁘고 도둑질 하지 않는 건 착한 일이라고 답변한다면 그 사람은 아직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에요. 왜냐하면 이미 죽은 자에게 도둑질했다, 안 했다는 것이 의미 없기 때문에 그래요. 하나님은 우리를 죽은 자로 보는 데 우리는 일단 살았다고 치고 나쁜 짓은 안 해야지, 라고 나오는 거예요. 하나님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얼마나 근본적으로 잘못됐는지를 레위기 16장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네가 하나님 보고 싶으냐?” “보고 싶습니다.” “하나님 만난 때 어떻게 볼래?” “예쁘게 입고 가겠습니다.” 예쁘게 입는 게 문제가 아니고 하나님 앞에 나서면 다 죽어요. 이것은 가만있어도 죽은 존재란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을 죽은 존재로 처리하는 이유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자기 식대로 새롭게 만들기 위함입니다. 인간은 수리하는 게 아니에요. 고칠 것 고치는 게 아닙니다. 죽이고 새로 만들어요. 죽이고 새로 만드는 방식이 레위기 16장에서 나오지요. 제사에서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정리해봅시다. 제사란 인간 존재를 부정하는 것. 흔히 사람들이 예배드린다 하지요. 예배는 신약에 있는 겁니다. 신약 속에 구약의 제사가 포함돼있어야 돼요. 제사 없는 예배는 쇼입니다. 패키지 쇼에요. 나이트클럽에서 쇼하는 것과 똑같은 거예요. 구경거리죠. 이벤트죠. 아무것도 아니에요. 1부 쇼하기, 2부 교제하기, 친목다지기. 그게 오늘날 교회에서 하는 짓거리 아닙니까. 목사 설교 쇼 구경하고 파이프오르간 찬양대 쇼 구경하는 거예요. 제사란 인간 존재를 부정하는 겁니다. 성가대로 부정하고 목사, 신부, 교인들 다 부정하고. 다 죽은 거예요. 죽었는데 어떻게 예배가 되는가? 죽은 자를 그 가운데 주의 영이 함께 하심으로써 죽은 자를 살리는 실제적으로 발휘되면 예배가 되는 데 이 예배를 성령의 예배라 합니다. 성령과 진정으로 하는 예배에요. 그런데 예배에는 성령만 있으면 돼요. 의자, 마이크, 앰프, 피아노, 전혀 필요치 않습니다. 난방기구, 에어컨, 카메라, 형광등 전혀 필요치 않아요. 길바닥에 나앉아도 괜찮아요. 집회신고 안 해도 됩니다. 가정이나 병원이나 상관없습니다. 예배를 모든 인간을 죽이기 때문에 하나밖에 없어요. 안에 제사가 들어있고 제사의 완성이 성령의 예배거든요. 인간 존재를 부정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예배 없습니다. 추도예배 없습니다. 그리고 칠순예배 없습니다. 오전예배 없고 오후예배 없고 수요예배 없습니다. 인간이 종교적인 오락하기 위해서 이런 것들을 만들어낸 거예요. 교회가 영업아이템으로 만들어낸 겁니다. 돈을 끌어 모으려니 이런 것들이 있어야 되지요. 추도예배, 병원에 가서 예배드리고, 이런 것들 없습니다. 성경에 예배는 하나밖에 없어요. 두세 사람이라도 너희가 내 이름을 부르면 내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그게 예배에요. 그 주의 이름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대제사장 이름입니다. 대제사장에 기름 부었기 때문에. 기름부음이 그리스도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이 오늘날 교회가 너나 할 것 없이 오락단체로 교회를 만들어놓고 거기서 예배란 식으로 인간들의 종교적 욕구, 자기 하는 일에 기도하면 복 받고 죽어서 천당 간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사기에 무슨 죽은 놈이, 자기를 부인하기 바쁜 사람이 언제 죽어서 천당 가는 것, 그건 자기 소원 아니잖아요. 자기는 끽 소리 말고 죽어지내야지 죽고 난 뒤에 천당을 보내든 지옥을 보내든 본인이 관여할 바가 아니에요. 진정 자기를 부인했다면. 고개 수그려, 하면 계속 수그리고 있어야 될 텐데 고개를 왜 드느냐 말이죠. 얼마나 수그리면 천당 보내 줄 거냐? 얼마나 겸손하면, 회개하면 천당 보내 줄 거냐? 어떻게 내가 예수를 믿으면 구원할 거냐? 이런 것은 자기를 부인이 안 된 상태에서 예수 믿는 것이기 때문에 그 예수는 가짜 예수에요. 회개하면 천당 보내준다, 예수 믿으면 천당 보내준다, 십자가 피 믿으면 천당 보내준다. 이 모든 기본은 자기를 부인하고, 여기에 근거해서 이야기돼야 돼요. 예배당 세우면 천당 보내준다, 선교사로 가면 천당 보내준다. 그런 이야기를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자기를 개선하겠다는 식으로 성경에 나오는 용어들을 스티커 붙이듯이 덕지덕지 더럽게 얼굴에다 면상에다 옷에다 훈장 달듯이 성경구절 달달 외우고 붙인 거예요. 여호와증인처럼, 신천지처럼. 안에는 지가 주도권을 쥐고 있고. 제사란 존재부정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느냐 하면, 성경책이 펼쳐져 있으면 사람들이 성경을 파악해서 자기 이득을, 영생에 대한 이득이든지 구원에 대한 천당 간다든지 자기 가족이 잘 풀린다든지 어떤 이득을 노리고 이런 뜻이라고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 모든 인간들이 이런 식으로 고집을 부리는데 성경 자체에서 인간을 뭐라고 하느냐 하면, 묵묵 대답이 없어요. 아는 사람이 없어요. 성경 백독하면 뭐 되겠나? 성경 천 독하고 똑같은 짓이 종이학 천 번 접는 것과 똑같은 거예요. 정성과 열성으로 악발리처럼 빌면 뭐가 되도 되겠지. 여러분, 종이학 천 번 접으면 학이 됩니까? 999번 종이학과 마지막 1000번 사이에 무슨 놀라운 기적이 벌어져요? 천 번을 접어야만 학이 되는 사연을?? 천 번 하는데 종이 작다고 크게 해서. <황금빛 내 인생>에 보니까 종이 탓을, 누가 어느 지방에서 새로운 법이 들어왔는지. 성경에서 인간을 보는 게 따로 있어요. 이건 안 보고 왜 자꾸 고집을 부리냐고, 고집을. 신의 체계다, 지키면 무슨 이득이 있겠지? 성경 앞장세운 하나님 뜻은 뭡니까? 반드시 십자가를 경유하게 돼있어요. 십자가는 뭐냐? 죽음, 매다는 것 아닙니다. 아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를 앞장세웠기 때문에 성경을 보겠다는 자들은 죄인이 되는 거예요. 이걸 다시 대입시키면, 죄인들이 자기 죄를 얼마나 잘 발휘하는지 성경을 통해서 예수 믿고 천당 가겠다는 그런 고집과 욕심과 이익을 생각하는 자체가 바로 죄가 돼요. 교회 십일조 하고 봉사해서 천당 가겠다고, 하나님 앞에 예쁨, 귀염 받겠다는 자체가 죄에요. 이런 것을 하나님이 준 적이 없어요. 그런 이야기를 성경 전체에서 한 적이 없습니다. 장사가 안 됩니다. 얘가 아픕니다. 이번 수시 또 안 되고 수능도 안 되니 재수할까요? 이런 이야길 궁시랑 거리면 교회에 나온다고요. 그건 네가 나한테 요구하는 것이고. 그런데 그렇게 요구하는 너는 뭐야? 저, 인간입니다. 인간 같은 소리하고 있네. 성경에 인간은 없어요. 성경에서 인간은 한 사람밖에 없어요. 예수님 외에는 인간이 없습니다. 나머지는 전부 죄인이에요. 처음부터 선악과 따먹고 죽으라고 만든 거예요. 고장 나라고. 실패하라고 인생 살게 하신 거예요. 실패하면서 성경 왜 줬느냐? 도대체 어디서 문제가 되어 실패하는가? 그것 알라고 성경 주신 거예요. 이러니까 지옥 가도 할 말 없네. 그것 알라고 성경 주신 거예요.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네가 사탄의 역사를 따라서 건방을 떠는데 마치 하나님 보시에 인간도 아닌데 지들끼리 인간이라고 우기는데 근본으로 돌아가는 게 뭐냐 하면, 십자가로 돌아가는 거예요. “아버지여,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 모든 인간은 주님 앞에 완벽한 의인이 없고 완벽한 거룩이 아니기 때문에 전부 다 벌 받아야 마땅하고, 그리고 벌 받았다는 공로로 천당 가는 것 아니에요. 죄인이 벌 받았으면 당연한 거지 벌 받았으니까 그 다음에 천당 보내주세요. 그것도 자기 부인이 안 되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겁니다. 제사란 무엇인가? 인간 자체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이 제사에요. 그렇다면 그 다음 문제, 이렇게 인간을 부정하고 지옥 못 보내서 하나님이 환장했다면, 그런 인간을 왜 만들어놨느냐 말이죠. 이게 욥기에서 욥이 하나님 앞에 한 질문입니다. 이렇게 고생시킬 것 미쳤다고 만들었습니까, 왜 만들었습니까? 하나님이 놀이거리가 없어서 자기 피조물의 괴로움 보고 그게 그렇게 재미있고 즐겁습니까, 꼭 그래야만 됩니까? 그런 정말 말도 안 되는 엽기적인 하나님이라고 정도로 욥은 앙탈을 부립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걸 생각해야 돼요. 과거 사건은 인간이 변개할 수 없습니다. 변경시킬 수 없고 개입할 수도 없어요. 우리가 태어난 이게 과거 사건이죠. 왜 나는 남자가 아닌 여자로 태어났습니까? 그 과거 사건에 우리가 개입할 수 있습니까? 없지요. 지금 우리가 공부하는 레위기 16장은 하나에 과거 사건이에요. 인간이 요청한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여, 인간을 구원하려면 제사제도 있어야 되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합의에 의해서 요구한 게 아닙니다. 하나님에 의해 일방적으로 주어진 거예요. 과거 사건이에요. 과거 사건은 어디로까지 이어지느냐 하면 미래로 확정지어집니다. 과거 사건에 인간이 개입할 수 없다는 말은, 같은 말로 미래 사건에 인간이 개입할 수 없어요. 왜냐하면 미래를 결정한 그 원리가 이미 과거에 확정됐기 때문에 그 원리를 쭉 빼거든요. 엿가락 처음과 끝이 다 같이 엿이잖아요. 엿 먹어라, 할 때 앞부분만 먹는 게 아니에요. 끝부분도 다 엿이란 말이죠. 엿 먹어보실래요? 과거에 이미 있다는 말은, 과거를 과거되게 하는 원리와 원칙이 있어요. 그 원리와 원칙은 인간이 변경할 수 없고 개입할 수 없다면 미래에 끝까지 과거 원리가 이어져가는 겁니다. 그 원리가 레위기 16장 대 속죄일이란 원리로 우리에게 주어진 거예요. 우리가 변경할 수도 없고 수정할 수도 없고. 이런 제도는 시대에 따라서 능률적으로 아이들한테도 납득되도록 손봅시다. 이게 안 된다니까요. 십자가 사건 지난 후에 사도 바울이 하는 말이, 십자가 사건은 다 부활이고 이미 일이 마무리 되고 끝났는데 갈라디아서 3장 1절에서 십자가가 눈앞에 보이는데 누가 너희를 꾀더냐고 이야기했단 말이요. 십자가가 예루살렘 사건에서 사람들 다 내려왔어요. 로마군병 다 제대했어요. 사건이란 잠시 있다 사라진 게 사건이잖아요. 그런데 끝난 사건인 줄 알았는데 십자가가 눈앞에 보이는데 누가 너희를 꾀더냐고 하는 거예요. 우리가 믿어야 될 신앙이란 놀랍게도 실체가 없어요. 이래서 환장하는 거죠. 교회에선 실체가 없으니까 사람들이 상당히 우왕좌왕하니까 실체를 만들기 위해서 간증집회를 해서 이것 하시면 부자 됩니다. 감사헌금하면 30배 얻습니다. 40일 연속 기도하시고 성경을 다 쓰면 나중에 자녀가 잘 되고 새벽기도 연속으로 안 빠지고 출석하면 뭔가 일이라도 좋습니다. 갓바위도 아닌데 하여튼 그런 식으로 하는 것은 신앙이 실체가 없으니까 믿음도 없다고 여기는 거죠. 실체가 없는 걸 믿어야 믿음인데 실체가 없는 걸 쥐려 하니까 손에 쥐어지는 게 없잖아요. 허황된 걸 믿습니다, 하면 안 되거든요. 그러니까 인간들에게 가짜 믿음을 제공할 수 있는 역사적인 상황, 사건들을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계속해서 제시하고 만들어낸 겁니다. 대표적인 것이 놋뱀, 그리고 기드온이 입었던 에봇 옷. 쉽게 말해서 한경직 목사 기념물 같은 그런 거예요. 계속 인간의 기억 속에 역사적 기념물 만들고, 우리 교회 교육관 짓는데 어떤 장로가 집을 팔고 전셋집으로 돌리고 바쳤더니만 30배 얻었다는 강원도 산골에 내려오는 전설 따라 삼천리에 나오는 이야기들, 교회 당회장실에 가면 역대 당회장 사진을 걸어놓고. 이게 결국 천주교와 똑같아요. 믿을 것 없으면 예배당 역사나 믿어라. 우리 교회 출신 사법고시 합격자가 몇 명이고, 장관이 몇 명 두었고. 강남 출신들인가. 그런 것을 믿음의 내용으로 삼는 거예요. 또는 개인사적으로 스물 살 때 기도해서 암에서 나았고, 사십에 사업이 안 됐는데 기도원에 가서 그 다음부터 사업 잘 돼서 빌딩 세웠고. 그런 것들을 믿음의 결과물로 삼는 겁니다. 왜 그걸 믿음의 결과물로 삼느냐 하면, 믿음의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내가 믿는다는, 내가 나를 꾸준히 믿기 위해서 내가 이렇게 잘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런 복을 줬다는 것으로 자기 자신을 계속 믿기 위해서 그런 겁니다. 그러니까 믿음이란 나를 믿어요. 이게 나에 대한 긍정적 사고방식이 되는 겁니다. 하면 된다는 거예요. 하면 되지요. 대전 강의에서 그런 이야기했습니다만 마태복음 7장 산상설교 끝에 보면 나와요. 넓은 길은 찾는 사람이 많다고 했지요. 멸망으로 가는 길이 넓어요. 찾는 사람이 많지요. 이걸 사자성어로 하면 ‘집단자살’입니다. 집단자살에서 제일 앞에 선 사람이나 뒤에 사람이나 묻는 사람도 없고 이야기해 줄 사람도 없어요. 낭떠러지 불타는 지옥이 보입니다. 진짜 성도 눈에는 지옥이 보이지만 찾는 이가 많아요. 왜 집단자살이 되느냐 하면, 서로의 의견이 동일하기 때문에 그걸 보편성이라 해요. 전부 다 생각들이 같아요. 왜 같으냐? 그 생각들이란 게 평소에 이 땅에서 자기를 부인하기는커녕 자기를 긍정하겠다고 설쳐대는 그 몸짓과 사고방식이 추상적인 정신적인 끈을 이뤄요. 그걸 보편성이라 합니다. 정신적인 보편성이거든요. 쉽게 말해서 이야기가 통한다 이 말입니다. 정신적으로 소통이 되는 거예요. 소통이 되니까 집단자살을 하고 있어도 누구 하나 정상이냐고 묻는 사람 없고, 너나 할 것 없이 다 그렇게 가는데 토 다는 사람도 없어요. 왜냐하면 하나하나 개별적으로 자기 잘났다고 모인 거예요. 사람들은 자길 긍정하기 때문에 자기 긍정을 선善이라 합니다. 선한 사람 하나, 둘 모이면 선한 사람 둘 돼요. 그래서 많은 선한 사람이 모였는데 결과는 지옥. 계산이 희한한 계산이에요. 선한 사람들 다 모였는데 모이고 보니까 그게 지옥이에요. 이 선한 사람들이 형성한 정신적이고 추상적인 관념에 의해서 미움을 받아서 추방된 분이 계십니까? 그분이 누구 게요? 예수님. 예수님을 추방시킨 이유가 그들을 정신적으로 예수님께서 괴롭게 했기 때문에 그래요. 예수님께서 정신적으로 그들의 사고방식과 현실관에 대해서 불편하게 만든 거예요. 이미 바리새인과사두개인의 의견에 대중들은 동조했습니다. 한 마음이 된 거예요. We are the world. 우리는 다 한 마음이거든요. 마음이 하나된 거예요. 그걸 토를 달면 밉상 중에 밉상, 상 밉상입니다. 그럼 어떻게 합니까? 불편하게 했을 때는 제거해야지요. 바라바를 살릴까, 예수를 살릴까? 여지없었어요. 살인강도 바라바를 살리세요. 예수는 죽이세요. 그 세대가 지금 울산바닥입니다. 울산바닥에서 예수를 따르고 예수를 믿는다고요? 도대체 우리가 얼마나 자기 자신이 무식하고 자기에 대해서 몰랐으면 예수님 계신 것과 반대 방향으로 가면서 예수 믿는다고 큰소리치는 그러한 객기는 이젠 그만할 때 안 됐습니까? 교회에서 아무도 이야기 안 합니다. 교회 말아먹으려고 이야기하겠어요? 자기 긍정하려고 긍정의 대가 얻기 위해서 교회 온 사람들에게 당신을 부인하라. 어디 겁 없이 함부로 실례되는 소릴. 그건 무례한 거예요. 힘들어 추운데 교회 왔다는 우리는 죽은 자입니다. 이건 상대방에 대한 모독이고 무례함이에요. 그걸 한 번은 들을 수 있어요. 바른 목회하는구나. 진짜 바른 교회다. 그것도 한두 번이지 계속 들어보세요. 한두 번이야 제대로 배웠구나, 하지 계속 해보세요. 사람이 지칩니다. 지친다는 말은 성령 안 받았다는 뜻이에요. 육적으로 바른 복음 받아들이려고 애써봐야 다 헛수고입니다. 언젠가는 육이 바닥나요. 속죄란 말 자체가 죄를 기정사실화시키는 겁니다. 대 속죄일의 취지는 속죄제의 결정판입니다. 대 속죄일은 이렇게 구성돼있습니다. 수송아지와 숫염소, 그리고 보조로 암송아지. 수송아지 한 마리, 숫염소 두 마리로 대 속죄일은 깔끔하게 다 설명이 돼요. 수송아지는 대제사장의 죄를 씻기 위해서 그리고 제단을 씻기 위해서 필요하고 숫염소는 백성들의 죄를 위해서 필요한데 두 마리입니다. 한 마리는 잡고, 다른 한 마리는 아사셀 염소라 해서 멀리 보내는 용도입니다. 이 일을 1년에 7월 10일에 딱 한 번만 합니다. 이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 지금까지 한 걸 정리해봅시다. 제사란 인간의 존재를 부정한 것이다. 그럼 우리가 알아서 자살하면 되지 않느냐 하지만 자살하면 안 됩니다. 왜 자살하면 안 되느냐 하면, 과거의 확정된 사건으로 우리가 죽어야 되기 때문에. 그래야 죽은 채로 하나님이 과거에 확정시킨 원리에 죽은 자로 가담되어서 새로운 피조물로 나오는 겁니다. 그러니 대 속죄일, 속죄제의 결정판이 구원받은 입장에서는 어디서 나오느냐 하면, 누가 당신을 만들었어요? 우리 아빠, 엄마, 이러면 안 돼요. 누가 만들었어요? 대 속죄일이요. 제사제도가 나를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나오는 겁니다. 이걸 다른 말로 하면, 아빠, 엄마는 왜 안 되지요? 그건 육이라서 안 돼요. 그러면 대 속죄제로 만든 인간은 어떤 인간이죠? 그건 영이라서 영의 나라에 가는 겁니다. 아빠, 엄마가 낳은 것은 육이기 때문에. 육으로 난 것은 육이기 때문에 죽어야 됩니다. 그런데 대 속죄일과 말씀으로 인간을 만드는 것은 뭐냐 하면, 언약에 의해서 만들어진 인간, 이렇게 되는 겁니다. 약속에 의해서 만들어진 겁니다. 내 몸에는 아빠, 엄마의 dna가 반반씩 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인간은 이 몸에 하나님의 언약이 백 프로 있습니다. 그럼 뭐가 언약이냐 하면, 육에서 영으로 전환시키는 제사제도의 완성이 언약이죠. 육에서 영으로 변하는 과정이에요. 우리는 결과물만 날름 따먹으려하는데 결과물만 따먹으면 안 돼요. 그 과정이 우리 속에 있어야 돼요. 쉬운 예를 들면, 우리가 버스요금 내고 버스 타잖아요. 그것보다 더 쉬운 것 합시다. 이발소나 미용실에 가면 돈을 내지요. 그런데 돈만 내는 게 아니고 머리카락도 내지요. 돈 주고 내 것 빼앗기고, 무슨 이런 게 다 있어요? 목욕탕에서 돈 오천 원내고 내 때도 내고. 뭔가 이상하죠. 왜 목욕탕에 돈을 내느냐 하면, 때 많은 내가 때 없는 나로 바꾸는 그 과정에 비용이 들기 때문에 그래요. 미장원에도 돈 내는 이유가 앞은 깎을 순 있어도 뒤는 잘 못 깎거든요. 뒤에도 깎아주는 기술 그리고 비위 맞추는 모든 서비스에 비용이 들어가는 거예요. 미용사가 깎은 걸 내가 깎았다고 하면 안 돼요. 그래서 새로운 피조물의 특징이 뭐냐 하면,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계속 유지돼야 돼요. 나의 나 된 것은 내가 아님이 유지돼야 돼요. 그럼 누가 그렇게 했는데? 그 이야기가 바로 여기서 나오는 거예요. 대제사장. 대제사장이 1년에 단 한 번이에요. 그게 왜 그러냐 하면, 방금 백성들이라 했지요. 7월 10일 대 속죄일의 특징이 개인의 죄를 씻는 게 아니고 집단, 이스라엘 전체의 죄를 씻는 거예요. 이스라엘 전체를 죄를 씻기 위해서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딱 한 번 들어갑니다. 지성소는 성막이 있으면 여기 제단이 있고 텐트를 쳤어요. 들어가면 등대, 조명시설 돼있고 떡 상에 여섯 개씩 두 줄로 있고 향로가 맞은편에 있는데 향기가 퍼지게 돼있어요. 커튼 열고 들어가면, 커튼은 천사의 모습을 하고 있고, 거기에 상이 있는데 아카시아 상자에요. 상자 자체를 언약궤라 하고 상자 뚜껑을 속죄소라 합니다. 거기에 천사가 마주보는 모습으로 조각돼있고, 여기에 들어갈 때 대제사장이 방울을 들고 들어갑니다. 방울소리로 살았는지 죽었는지 확인합니다. 이건 뜰이고 뜰 지나서 회막 속에 성소와 지성소가 있는데 지성소에는 1년에 단 한 번만 들어가요. 단 한 번은 바로 확정된 사건이란 의미에요. 이 사건 하나로 인하여, 들어갈 때는 아무도 회막에 들어올 수 없어요. 모든 백성은 금식하고 자기를 괴롭게 해야 됩니다. 오늘 본문에 다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해서 제사장이 들어갑니다. 나중에 숫염소 잡을 때는 다른 제사장이 도와주지만 여기 들어갈 때는 혼자 들어가고 혼자 일합니다. 백성들을 죽이는 방법은 개개인을 죽이는 것이 아니고 한꺼번에 죽이는 거예요. 지성소에는 심지어 대제사장이라 할지라도 죽어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속죄소에는 사람이 보면 아무것도 없어요. 물체만 있어요. 아까 신앙에는 실체가 없다고 했지요. 실체가 없는데 이름이 있어요. 보통 이 세상에선 물체가 있어야 이름을 짓게 돼 있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은 물체도 실체도 없는 데 이름만 있어요. 그 이름이 속죄소 위에 임재합니다. 여기에 실존해요. 그래서 어떤 사람이 속죄소 들어가서 아무도 없네, 하면 죽어요. 네 눈에 나 있는 것 안 보이나? 안 보입니다. 유령 같아요. 귀신같고 투명인간 같습니다. 분명히 계신 데 안 보입니다. 그리고 이야기합니다. 믿으라. 그분의 존재뿐만 아니고 존재에서 나오는 제사적인 기능을 믿으라. 그러면 이 세상 전체가 제사장이 1년에 한 번 들어가는 것처럼 한 번으로 끝내버려요. 대 속죄일에는 제사장 한 사람이 한 번 사건으로 모든 백성이 집단적으로 용서 받아요. 1년 동안 무슨 짓을 했든지 관계없이 다 용서를 받습니다. 이것을 확대시켜요. 하나님께서는 확정된 구약 사건으로 전 우주로 확대시키면 대 속죄일에 단 한 번으로 모든 인간은 죽은 것으로 확인되고 그리고 구원될 자는 따로 있음이 확정되는 그 순간이 십자가 사건입니다. 그러면 십자가 사건은 뭘 유발하겠어요? 이 세상에 대한 심판과 관련돼있습니다. 죄를 용서한다는 것은, 바로 자기가 죄인인 것에 대한 드디어 타작작업이 개시되었다는 뜻입니다. 그게 요한계시록 11장 19절에 보면,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성전이 열리고 언약궤가 보이죠. 언약궤가 인간에게 노출되는 시기는 레위기 16장에 의하면 딱 한 순간입니다. 7월 10일 대제사장이 백성을 대표해서 1년에 그날만 언약궤를 볼 수 있습니다. 다른 날은 언약궤를 못 봐요. 옛날에는 국지적으로 사막 한 가운데 있는 작은, 반경 10킬로 되는 그 집단 거주지역만 실시됐던 하나님의 확정된 사건이 온 우주로 최종적으로 확산되어 마감이 되면 결국 하나님이 이 세상을 심판한다는 사건이 이스라엘이란 국지적인 종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온 인류에게 똑같은 식으로 적용되는 그 날이 사실은 예수 십자가 지시던 그 날이었습니다. 해가 어두워지고 죽은 자가 무덤에서 튀어나왔던 깜짝 놀랄 사태가 일어나는 겁니다. 그래서 그 이후의 모든 시간은 과거에 확정된 원칙에 따라서 조금도 변경됨이 없이 꾸준하게 지금껏 계속 이어져 옵니다. 이런 시점에서 레위기 16장을 몰라서 되겠습니까? 성경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내 쪽에서 성경을 이용하려 하지 마세요. 성경이 뭘 이야기하느냐? 성경대로 하신 분이 이 땅에 살해당했어요. 그러면 성경 쪽에서 어떤 뜻을 갖고 있느냐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란 말이죠.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는 걸 봐서 그 안에 성경에 있는 모든 뜻은 다 들어있어요. 그래서 사도 바울이 너희들의 십자가 외에는 알지 않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해석은 이미 나왔어요. 십자가, 피. 내 살과 내 피를 먹지 않으면 영생은 없다. 나왔는데 왜 그 답은 외면하고 성경으로 자기 팔자나 피려고, 이 땅에서 행복하게 살고 건강하게 살아보려고 성경이란 경전을 이용하려면 그런 것은 절에 가서 불경이나 봐요. 불경 펼쳐서 독경이나 하면 돼요. 성경 쓰기나 하고 새벽기도 연속이나 하고 십일조나 거론하고 예배 참석이나 독려하고. 그게 뭐예요? 빈손으로 오지 말고 돈 들고 오라고, 꼭 뒤에 토를 달고. 요새는 빈손으로 와서 점심만 축내는 얌체들이 한둘이 아니라서 교회에서 걱정됐는지. 제사제도는 인간이 요청한 게 아닙니다. 일방적으로 주신 건데 그것은 인간 존재 자체를 부정한 거예요. 어딜 봐서 인간이냐? 인간 아니란 말이죠. 소멸돼야 될 뼈들이에요. 인간 아니에요. 그래서 우리는 늙어가고 있습니다. 아무리 착하고 바르게 살아도 하루가 되면 그만큼 늙었어요. 점점 더 늙어간다~ 점점 더 죽음에 가까이 가고 있습니다. 자살하지 마세요. 가만있어도 죽고 있어요. 괜히 번개탄 사고 나대지 말고. 가만있어도 죽어요. 컨베여시스템에 쓸려서 죽는다니까요. 따라서 우리는 왜 죽이는지 알아야지요. 신이시여, 왜 늙게 하시고 왜 죽이십니까? 레위기 16장을 봐라. 뭐라고 돼 있느냐? 그건 두 번째 시간에 해야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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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189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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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