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상태 171113
20171113a 부산강의 : [시편]5(2편)-자연 상태
(강의:이근호 목사)
시편 2편 5절부터 보면,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저희를 놀래어 이르시기를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4절부터 6절까지 보게 되면 왕 세우는 계기가 하나님께서 비웃으시고, 분노하시고, 진노하시는 결과로 시온에 왕을 세운 것으로 돼있습니다. 그러면 시온에 나타나신 왕은 사람들이 요청한 것이 아니죠. 하나님의 의지에 의해서 왕이 세워졌다면 여기서 시온 산에 오신 왕에 대한 믿음, 사랑은 애초에 인간에겐 없지요. 인간 쪽에서 제시된 게 아니거든요.
만약에 아프리카 어느 주민들이 생전에 카스텔라를 구경한 적도 없고, 카스텔라란 용어도 들어본 적도 없고, 맛 본 적도 없는 사람이 선교사에게 카스텔라 먹고 싶다는 말이 성립될까요? 안 되지요. 제가 하는 말은, 하나님이 내신 메시아를 믿는다는 것이 인간에겐 있을 수 없단 말이죠. 하나님 쪽에선 메시아만 보내고 인간은 믿고 하는 그런 관계는 애초부터 성립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 의하면 메시아를 보내고 예루살렘 시온에 왕을 보내는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일방적 조치지 인간이 요청한 게 아닙니다. 요청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 인간을 뭐라고 하느냐 하면, 자연 상태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자연 상태란 방금 이야기했듯이 메시아,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전혀 없는 상태,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 그게 자연 상태에요.
자연 상태는 자연스러워요. 이렇게 이야기하는 의미가 뭐냐 하면, 믿는다는 것이 이상해요. 왜냐하면 사람들이 자연 상태에서 믿는다는 것은 본인이 사전에 알고 있는 것을 믿는다고 이야기해요. 한국에서 카스텔라를 많이 먹어본 사람이면 이미 맛을 보고 카스텔라가 뭔지 아는 사람에게만 그걸 믿는다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믿는다는 것은 내가 알고 있는, 이것을 어려운 말로 “나의 범주”지요. 나의 삶의 범주에서 이미 익숙해진 것은 다시 그리워하고 찾을 때 믿는다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부부가 결혼했는데 남편을 엉뚱한 짓을 한다. 그럴 때 아내가 하는 말이, “여보, 나는 당신을 믿어.” 할 때는 이미 부부라는 걸 전제로 믿는다는 게 돼요. 이 세상에서 통용되는 믿는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의 범주가 확장되는 겁니다.
정리해봅시다. 믿음이란 내가 알고 있는 범주의 확장, 또는 확대가 되겠지요. 그러면 교회에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만나서도 아니에요. 알아서도 아니고. 지금 내가 살아가는 데 죽어서는 어떻게 될까, 그런 생각을 하거든요. 그 이유는, 내가 여기 있기 때문에 다른 말로 여기 존재한다. 여기 있지만 죽어서도 어느 나라에 또 있고 싶다는 나의 있음을 전제로 해서 거기서 나의 범주가 확장된 겁니다.
확장된 것에 필요한 것을 상상력이라 합니다. 상상력은 칸트가 실천이성비판에서 굉장히 강조한 거예요. 인간은 창의성이 있는데 그 창의성은 어디서 나오는가? 상상력에서 나온다. 그래서 아이들 교육시킬 때 학교에서 시키는 대로만 하지 말고 네 창의성을 발휘하라고 하지요. 창의성이란 네 상상력을 극대화시켜봐라, 키워봐라. 남과 똑같이 하면 남을 앞설 수 없잖아요. 상상력이 발휘될 때 앞설 수 있는 겁니다.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그만큼 상상력이 뛰어난 거죠. 칸트는 말하기를 그 상상력이 인류의 문명을 발전시켰다고 보는 겁니다. 현재 인공지능, 산업의 기술발달이 어디서 나왔겠어요? 다 상상력에서 나왔습니다.
일단 일반 공장에서, 회사에서 훈련시키는 게 있어요. 품질관리지요. 품질관리란 현장에서 일하면서 어떻게 하면 단가를 내릴 수 있을까, 어떻게 능률을 높일까, 어떻게 공정을 줄여서 절약할 수 있는가? 그런 것에 성과를 내면 인센티브를 지급하겠습니다, 하는 거예요. 만약에 롯데마트에 아줌마가 입사했는데 하는 일이 불합리하다 하면 건의하는 거예요. 이렇게 하지 말고 장소를 이렇게 배치하게 되면 훨씬 더 편리합니다. 그게 품질관리에요. 회사에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주지요.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니까. 그게 상상력이란 말이죠. 그게 인류의 발전을 시켜온 겁니다. 미사일, 달나라까지.
따라서 인간에게 하나님이 그렇게 아쉽지 않아요. 인간에 필요한 것은 뭐냐 하면, 보다 나의 범주가 하늘까지 닿는 것, 이게 바벨탑 심보지요. 우리 이름이 하늘까지 닿는 거예요. 하나님을 이 땅에 오라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의 상상 속에 그런 건 없어요. 인간의 상상력에 신이 인간을 찾아오는 건 없어요. 인간의 상상력은 한계는 거기 계셔요. 우리가 알아서 가겠습니다. 갈 때 어떻게 간다고 합니까? 물론 집사님은 욕 얻어먹었다고 하지만 착하게 살았다는 거죠. 착함은 우리 안에 내장돼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에. 악해서는 지옥 가고 선하면 천국 간다. 그런 논리입니다.
패션디자인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다 알거에요. 미술계통도 마찬가지고. 색감을 볼 때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 색깔에서 보라에 가깝고, 빨강에 가까운 색 스펙트럼을 설정하지요. 그래서 이쪽이 선이고 이쪽이 악이라면 나는 어디쯤 가고 있을까, 스펙트럼을 생각하는 겁니다. 이게 선악구조를 갖고 있는 인간의 공통점이에요. 당신은 선에 가깝다. 나는 악에 가깝다. 악에 가깝다면 사업하다 잘 안 돼서 사기 쳐서 물건을 팔아먹었는데 미안하다. 그럴 때 어떻게 하느냐 하면, 교회에 헌금해서 선으로 잡아당겨야 되는 거예요.
이쯤 되면 강의를 새로 시작해야 되겠지요. 음성 듣고 동영상 보는 사람들은 싫지 않을 거예요. 왜냐하면 기초부터 어렵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