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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선한 일 171110강의디도서

서울의존강의20171110a 디도서3장8절(선한 일)-이 근호 목사

디도서 3장 8절입니다.

“이 말이 미쁘도다 원컨대 네가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 이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니라”

“미쁘도다”는 말은 믿음직스럽다, 확고하다, 뭐 그런 뜻이죠. “원컨대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는 말은 확고하니까 주저하지 말고 자신만만하게 하라, 이 말이죠. “이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는 구별돼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구별되어야 되는데, 사도가 디도에게 보내는 이 디도서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구주예수를 보내시고,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시는 것이 사람들이 원하고 고대했던 것이 아니죠.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살면서 선이 없어서 그렇게 안달부리고 애타고 가슴치고 통곡하고 애걸복통하고, 뭐 그러지는 않죠. 사람들이 자살할 때 뭐 선이 없어서 자살합니까? 뭐가 없어서 자살해요? 돈이 없어서 자살하죠. 힘이 없어서 자살하고 그리고 외로워서 하고. 이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시고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다는 이 하나님의 일은 끝까지 인간들이 원하는 것은 제공하지 않습니다. 인간들이 원하는 것은.

그게 왜 그러냐 하면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이 그야말로 새롭게 하심이거든요. 새롭게 하심이라고 하는 것은 있는데다가 추가해서 숟가락 하나 더 얹는 식이 아니에요. 새롭게 하심이란 세상을 보는, 또는 세상을 사는 모든 관점 자체가 획기적으로 완전히 다른 겁니다. 누가 봤으면 “저 인간 미쳤나? 왜 저러지?”라고 할 정도로.

자,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들을 정상인으로 봅니다. 정상인. 정상인으로 보는데, 자기를 정상인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의 삶의 철학이랄까? 세상 보는 태도, 살아가는 이유, 그리고 그들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그 의도, 뭔가 노리는 것이 있고 얻고자 하는 것이 있죠.

그건 바로 자기 자신을 절대화하는 것입니다. 절대화라고 하는 것은 견줄만한 대상자가 안 보일 때까지를 말합니다. 예선 본선 준결승 결승, 끝까지 남을 때 제 일인자가 되는 겁니다. 일인자라고 하는 것은 자기 말고 다른 견줄 대상이 없는 것. 어떤 분야든 간에 최고가 되는 거예요. 최고라고 하는 것은 절대적 자존 자가 되는 겁니다. 이것은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서, 특히 종교분야에서 이러한 본성을 인간들이 접지를 않아요. 이걸 포기하지 않습니다.

만약에 어느 교회에서 목사가 교인에게 전도 열 명 했다고 칭찬을 하게 되면, 아홉 명 한 사람은 어떻습니까? 두 명만 전도하면 자기가 최고가 되죠. 어떤 교인이 새벽기도를 일 년 동안 다섯 번만 빠지고 다 나왔다고 칭찬하게 되면, 그러면 몇 번만 빠지면 일등을 할 수가 있습니까? 네 번만 빠지면 되죠. 어떤 교인이 교회에 봉사하는데 일주일에 세 번 나와서 봉사한다면 자기는 몇 번 나오면 돼요? 네 번 나오면 되죠. 세 번 나와서는 영 성이 안 차요. 기분이 나빠서 안 돼요.

사람은 목표가 있는데 그 목표는 최고의 자리에요. 견줄 대상이 없는 최고의 자리까지 이르는 겁니다. 그래서 노벨상이 그렇게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사는 거예요. 최고의 자리니까. 재벌이 그렇게 사람들에게 선망의 대상이고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도달해야 될 목표, 회사를 자기 회사로 만들어야 될 그 목표가 되는 겁니다.

그 드라마에서 자기가 재벌총수가 되는 것과 킬러영화에서 사람들을 자기가 다 쏴 죽이는 것하고 차이점이 다를까요? 같을까요? 똑같죠. 그리고 대통령 선거 어떻습니까? 대통령이 두 명입니까? 단 한 명이죠. 최고의 하나로 목표가 있는 이상 사람은 어떤 역경과 수모도 감내 해내가면서 기어이 사는 이유와 목적을 자기는 확고히 가졌다고 생각을 하는 겁니다.

이 세상에서 절대자라고 하는 것은, 견줄 대상이 없다고 했으니까 이걸 다른 말로 하면 경쟁자가 없다는 겁니다. 경쟁자. 그럼 경쟁자라고 하는 것은 결국 힘과 힘의 마주침이죠. 힘과 힘의 마주침이에요. 싸움이죠. 오랜만에 학교 동창생들 만나보세요. 힘과 힘의 마주침입니다.

동창회에 나오면 꼭 못난 것들이 자랑하는 것이 뭐냐 하면 “나는 소주 일곱 병 먹는다.”라고 하는 것이에요. 다른 동창생들은 차 자랑하는데, 이번에 차 바꿨다고 자랑하는데, 자기는 자랑할 것이 없으니까 소주 일곱 병 먹는다는 것. 소주회사 홍보하러 나왔나? 그걸 왜 자랑해요? 기어코 자랑하려고 하는 오기가 그런 오기가 있는 겁니다. 자, 그럼 한 번 물읍시다. 동창회에서 소주 일곱 병 먹는다고 자랑하는 것하고 목사들 모임에서, 우리교회는 교인 오천 명 모인다고 자랑하는 것 하고 같아요? 안 같아요? 똑같죠. 똑같아요.

성경에서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이라고 하셨는데, 중생이라는 뜻 자체가 새롭다는 뜻이고 성령의 새롭게 하심도 새로운 거죠. 새롭다 하는 것은, 어느 자리에서 새롭냐 하면 인간들이 웅성거리는 이 세상에서 그 인간들과 다른 새로운 사람의 등장을 말하죠. 그럼 오늘 본문에서 선을 행한다고 할 때에 이미 선은 선으로 그냥 나타난 것이 아니고 반드시 악과 짝을 이뤄요.

그러면 악이 뭐냐는 이미 여기서 결정이 났죠. 악이 뭡니까? 중생도 없고 새롭지 않는 그 모든 것이 악이 되겠죠. 그렇죠. 사모님, 옆집 가게 아줌마가 선입니까? 악입니까? 중생이 안 됐죠? 새롭게 성령의 거듭남이 없죠? 그러면 그거는 어두움이고 악이고 그런 겁니다.

그런데 중생, 거듭났다고 자부하고 성령으로 새롭게 되었다고 자부하면서도 단골 많은 그 옆집아줌마가 부럽다면, 그러면 어딜 봐서 새로운 겁니까? 그렇게 되면 어딜 봐서 새로워요? 어떤 목사가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했다, 그런데 신학교 동기 모임에 가니까 동기는 오천 명 목회를 하고 있다, 아, 부럽다! 그게 부러운 겁니까? 도대체 어딜 봐서 거듭났어요? 거듭난 티가 안 나는데? 오천 명이 그렇게 부러워요? 김중배의 다이아몬드가 그렇게 부럽더냐?

새롭게 되었으면 새롭게 된, 이거는 남이 봐도 도저히 인간 힘으로 달성 할 수 없는 다른 게 있어야 돼요. 그게 뭐냐 하면 오늘 본문 8절에 보게 되면 “선한 일을 힘쓰게 함이라” 선한 일을 유일하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된 사람들이에요. 그러면 이 성령 받은 사람의 선한 일과 예수님이 이 땅에서 하신 선한 일과 다를까요? 같을까요? 같죠.

같다는 말은 성령 받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 선한 일은 이미 예수님의 재가를 받은 거예요. 예수님이 보시기에 선한 일을 여기서 말하는 선한 일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선한 사람으로 취급받았습니까? 악한 사람으로 취급받았습니까? 아니면 중성입니까? 몇 번 입니까? 중성도 아니고 중립도 아니고 선한자도 아니고, 악한자이기 때문에 십자가에 돌아가셨잖아요.

그러니까 십자가 사건 안에 뭐가 강력하게 작용한다는 말입니까? 이 세상의 모든 악한 힘이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죠. 작용해서 예수님을 떠밀었다고 보시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성령이 올 때는 성령 안에 뭐가 들어 있느냐 하면 십자가의 성질이 들어있거든요. 그러면 십자가의 능력으로 새롭게 되었다는 말은 그 사람 속에 뭐가 들어 있느냐 하면 세상 사람들이 그 사람을 예수님처럼 떠밀 수밖에 없는 그 요소가 그 사람 속에 가득 들어있다 이 말입니다. 그 아비의 그 자식이라고.

예수님을 미워했던 세상이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을 안 미워할까요? 미워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여기서 말하는 선한 일이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을 근거로 해서해야 돼요. 지금까지 강의한 것을 다시 한 번 정리를 하게 되면 선한 일이라는 것은 뭐냐 하면 “사람들이 미워해서 죽인 그 분이 진정 선한 분이었다. 의인이었다.”라는 것을 증거 하는 그것만이 선한 일이에요.

지난 시간에 강의했던 디도서 3장 5절에도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주님의 선행에다가 우리의 선행까지 보태면 더 하나님께 영광이 될 텐데, 왜 우리의 의로운 행위는 차버리느냐 이 말이죠. 배격하는 이유가 뭡니까? 참 그게 상당히 따지기 힘든 일이에요.

또 디도서 2장 14절에도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 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구원하지 않고 불법에서 구속하지 않으면 왜 선한 일이 안 되느냐 이 말이죠. 왜 인간이 좋은 말로 하면 선한 일이 안 되느냐 이 말입니다.

좋은 명령과 좋은 교훈과 좋은 지시에 고분고분 순종하면 그게 왜 선한 일이 아니냐 이 말이죠. 그게 왜 불법이 되느냐 이 말입니다. 희한하죠. 디도서 3장 5절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우리는 의롭다고 주장하지만 이거는 주님보시기에 이것이 불법이 되는 겁니다. 의롭지 않은 행동, 악한 행동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오늘 우리가 따져야 할 것이 굉장히 많아요. 왜 우리가 하는 일이 불법이고 악한 일일 수밖에 없는가? 그것부터 따지지 아니하면 우리는 여기 흐름을 전혀 파악을 못하게 됩니다. 자칫하게 되면 이런 게 돼요. 나는 선하다, 라는 것을 자랑하게 돼버려요. 내가 선하다. 내가 선하다는 것은 거듭나지 않고 중생의 씻음이 없는 사람의 전매특허처럼 내쏟는 것이 바로 그거거든요.

아까 경쟁이라는 말을 했죠. 견줄 대상이 없는 것. 인간이 교회에서도 선함과 착함의 경쟁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분명히 있죠. “내가 선하다.” “아니야 내가 선해.” “내가 의로워!” “아니야 내가 의로워!” 그렇게 경쟁이 됐다는 자체가 둘 다 다 가짜라는 뜻이에요. 둘 다가 다 가짜에요.

만약에 그 중에 한 사람이 진짜 성령으로 거듭났으면 뭐라고 이야기하느냐 하면 이렇게 이야기하겠어요. “니가 내세우는 행위가 그렇게 의로우면 나는 반대로 갈게. 나는 불법이고 악하다. 됐냐?” 그렇게 나온다니까. 그렇게. “예. 나 개입니다.” 세리처럼 감히 고개도 못 들고 죄인이라고 그렇게 나오는 거예요.

나는 의롭다는 그걸 유지하는 것이 힘듭니까? 나는 죄인 맞습니다, 라고 하는 그게 힘듭니까? 어느 게 힘들겠어요? 나는 이래서 잘났다, 라고 하는 것이 힘들겠어요? 나는 뭘 해도 못났다, 라는 것이 힘들겠어요? 어느 쪽이 그걸 유지하는 것이 힘들겠습니까? 나 잘났다고 하는 것은 덜 힘들죠. 왜냐면 평소에 하는 행세가 그거거든요. 근데 그거하고 반대로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강의를 다시하게 되면 사람이 행동할 때 다 노림수가 있고 목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목적은 뭐라고 했던가요? 그 목적은 견줄 대상자가 안 보일 때까지 자기를 절대화 하는 거예요. 자기 절대화. 낚시 노는 데 가면 낚시고수 따로 있고 바둑 두는 데 가면 바둑고수 따로 있고 등산하는 데 가면 등산고수 따로 있고 물리학상식이야기하면 그 바닥에 고수가 따로 있고 교회사 공부하러 가면 교회사 도사가 따로 있고 성경봉독 했다고 자랑하면 성경 다 외운다는 동네가 따로 있고.

그들이 왜 그렇게 열심히 하느냐 하면 그게 사는 목적, 자기 절대화가 되는 밑천이 되기 때문에 그래요. “목사님. 나는 절대화되기 싫어요. 나는 그런 목적 없습니다. 일방적으로 모든 것을 보편화시키지 마세요.”라고 한다면 저는 이렇게 묻고 싶어요. 그럼 왜 사는데? 꼴찌 되려고 살아요? “꼴찌는 아니고 3등 하려고요.” 4등 앞에 3등은 절대자에요. “나는 한 25등요.” 26등 앞에 25등은 절대자에요. 딴 사람보다 못하고 24등한테 밀리지만 나는 너하고 비교해서 낫다는 이게 있단 말이죠. 나는 너보다 낫다는 자체가 나를 책망하지 말라는 뜻이에요. 왜? 너보다 나으니까.

책망하지 말라는 요소를 품고 있다는 말은, 지금은 25등이지만 보라! 언젠가는 나는 24등, 23등으로 차츰차츰 나아가겠다. 어디까지? 최후의 일인까지. 그런데 2등까지 올라갔는데, 1등 안 돼서 좀 속상했는데, 1등이 갑자기 교통사고로 죽어버렸어요. 그러면 야호! 하고 이젠 신나하겠죠. 모든 인간은 사탄의 정신을 받았기 때문에 내가 신이 되고 싶은 이 마음을 인간이 출생할 때부터 다 갖고 있습니다.

자, 꼭 일등, 이등이 안 되도 이미 그런 잠재성을 다 갖고 있어요. 일등이 안 되도 견줄만한 대상이 안 보일 때까지 계속 시도를 하는데, 시도하는 그 과정 속에서 이미 일등이 안 되도 절대자 행세는 다 하고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이거에요. “날 건드리지 마라!” 이걸 다른 말로 하면 “날 무시하지 마라!” 이걸 다른 말로 하면 “너는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요즘 목욕 값(모욕감)얼맙니까? 팔천 원입니까? 요 앞에 육천 원입니까? “너는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그렇게 되는 겁니다.

부부가 결혼했다. 절대자 두 명 만난 거예요. 그래서 호시탐탐 관찰합니다. “니가 나에게 모욕감을 줬나?” “니는 나에게 안 줬나?” 호시탐탐 이거 노리고 있어요. 만약에 아내가 차를 몰고 갔는데 바쁜 일이 있어가지고 딴 데 정신을 팔다가 신호위반으로 범칙금 오만 원짜리 하나 끊어왔다. 그러면 그건 이미 아내는 범칙금 끊게 된 것을 인정하죠. “내가 바보같이 과속했어.”하고 아내가 인정하는 그것에 남편은 어떻게 대처를 해야 됩니까? “그까짓 것 오만 원 가지고 마음 상하지 마. 내가 열심히 일해서 오만 원 더 벌어줄게. 나는 돈 오만 원이 아까운 게 아니고 오만 원 때문에 마음 상하는, 당신의 마음에 생채기 나는 그게 난 더 아쉽고 아까워. 걱정하지 마. 나라도 그렇게 했을 거야. 바쁜 일 있는데 잘했어.” 잘했군~ 잘했어~♬라는 하춘화 노래 있잖아요.

이렇게 되기를 상대방한테 기대를 하는데, 남편은 그걸 잘됐다 해가지고 “니는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오만 원어치.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차 몰고 다닐 때 당신이 한 두 번이야?”라고 이렇게 나와 버리면, 이거는 상대방이 모르는 상태도 아니고 이미 아는 상태에다가 윽박지르는 것이죠. 왜 윽박지릅니까? 이번 기회를 통해서 갑을관계를 확실히 하자는 겁니다. 그러면 아내 쪽에서 실수 했다고 해서 갑을 관계가 바뀝니까? 일단은 작전상 후퇴를 하죠. ‘그래! 니 어디 한 번 두고 보자!’하고 노리죠.

그러다 카드 값 나오게 되면 살핍니다. “나는 오만 원 했지만 당신은 오십만 원이야.” 이렇게 나온다 이 말이죠. 이거는 뭐 부부가 아니고 원수 간에 전쟁하려고 결혼한 것처럼. 이거는 심지어 부부뿐만 아니고 자식과 부모사이에도 마찬가지에요. “성적 한 번 보자. 성적 꼬락서니하고는! 내가 반드시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라고 하니까 빈둥대며 누워만 있고. 이러다 빌어먹는 거야.” 아들이 하는 말이 “엄마, 나도 안다. 답안지 하나씩 밀려 써가지고 어쩔 수 없었다.”라고 하죠.

인간들이 말을 내뱉거나 행동을 할 때는 이번 기회를 통해서 자기가 절대자가 되는 자기의 속내를 한 걸음 더 성취성에 가깝도록, 한 발짝 더 업그레이드되는 절호의 찬스로 이용하기 마련이에요. 이번 기회를 통해서. 상대방의 약점을 쑤셔놔야 나는 그거보다 덜 약점이 있는 것처럼 올라가죠.

이렇게 되면 이것은 뭐가 되느냐 하면 이거는 불연속성이 아니고 결국은 의와 선함의 연속성을 추구하는 셈이 됩니다. 어디까지? 그 목표는 어디까지입니까? 나는 의로움과 선함에 있어서 남하고 견줄 대상이 없을 정도로 나는 내 나름대로 나는 최고다, 라고 자랑질 할 때까지.

그러니까 이걸 가지고 여러 사람 상대를 하면 이거는 윤리가 되고, 개인적으로 이걸 가지고 양심을 거론하면 도덕이 되는 거예요. 도덕과 양심은 연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디도서 3장 5절에 보세요. 거기를 보면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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