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강-YouTube강의(시내산)171107-이 근호 목사
208강-YouTube강의(시내산)171107-이 근호 목사 이번 강의는 제 208강, 제목은 ‘시내산’입니다. 이 세상에 사람들 많죠. 각 지역마다 사람들이 많은데, 특히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시내 산을 통해서 하나님이 자신의 뜻을 나타냈다는 것은 그런 역사를 갖고 있는 이스라엘뿐만 아니고 오늘날 많은 사람들한테도 상당히 기이한 거예요. 왜냐하면 사람들이 평소에 늘 궁금한 것이 뭐냐 하면, 신자라도 궁금한 것이 뭐냐 하면 하나님이 살아있으면 좀 보여 달라는 거예요. 그게 믿는 사람들에게 안 믿는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공격을 하고, 그리고 믿는 사람들 본인도 늘 믿음이 지속되는 것이 아니잖아요. 어떤 때는 ‘내가 안 믿는 것이 아닌가? 내가 하나님이 없는데 있다고 지어내놓고 그냥 믿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들죠. 그럴 때 그걸 확인할 길이 없다는 겁니다. 물론 신약에서 사도바울은 말하기를 십자가를 보라, 십자가가 눈앞에 보이거늘, 이렇게 말했지만 십자가가 눈앞에 안 보이죠. 그리고 요한일서에 보면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하나님이 일한다는 것은 성령을 통해서 안다고 요한일서에 나와 있다고요. 그런데 문제는 성령조차도 눈에 안 보인다는 겁니다. 주께서 너를 사랑했다는데, 이 사랑이라는 것은 인간세상에서 너무 많아요. 그 사랑, 사랑, 사랑, 사랑하지만 그 사랑 중에 어느 사랑이 진짜 사랑이고 그렇고 그런 사랑 중에 일부라면, 그 사랑이라는 것도 인간의 욕구의 한 방편으로, 그런 양태로써, 인간의 욕심의 한 결과물로써 지어냈다고 이야기할 수 있잖아요. 워낙 인간은 사랑을 원하니까. 신에게 사랑해달라고 했다가 신께서 일방적으로 자기를 사랑했다고 자기주장을 얼마든지 펼칠 수 있다 이 말이죠. 그래서 근본적으로 우리가 생각해야 될 것은, 뭔가 하나님이 나타나고 하나님이 살아있다면 살아있다는 인간들처럼 눈에 보일 것이고, 그러면 믿음이 더 정돈되고 확신되겠다, 라는 그런 생각을 지울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개인적으로 나타난 것은 출애굽기에서 이스라엘 나라가 생기고 난 뒤에 개인적으로 모세에게 자주 나타났습니다. 근데 모세에게 나타나도 소용이 없는 게, 그건 모세 개인적인 체험이잖아요. 다른 사람들의 체험은 아니다 이 말이죠. 모세는 참 좋겠다. 하나님을 만나서 혼나든지, 겁나든지 간에 하여튼 나타났으니까. 모세야 하나님을 자기가 직접 봤기 때문에 구원받는다 치고,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아니고 모세 말을 듣고 따라야 되는데, 모세야 어디까지나 같은 인간이지 않습니까? 인간이거든요. 근데 인간이 인간을 믿는다는 것은 인간에게는 없습니다. 그냥 이용하고 일시적으로 평가하고 잠시 참조해볼까, 하는 그뿐이지 누굴 전적으로 믿습니까?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말처럼. 근데 이 점을 알아야 돼요.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그렇게 자주 나타난 모세조차도 나타난 그 하나님을 안 믿었다는 사실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믿음을 요구한 적이 없어요. 하나님께서는 그냥, 믿음을 요구한다는 것은 모세 쪽에서 하나님께 뭔가 보이라는 뜻인데, 출애굽기에 보면 하나님 쪽에서 계속해서 모세에게 나타나잖아요. 물론 모세가 뭔가 하나님께 기대고 의지하고 기도한 적도 있습니다마는, 우리가 알다시피 모세는 약속의 땅에 못 들어갔습니다. 못 들어간 이유는 믿음이 없어 못 들어갔죠. 그것도 전적으로. 그래도 90퍼센트는 믿었잖아요? 하는데, 믿음에 90퍼센트, 95퍼센트, 99퍼센트가 의미가 없어요. 그게 왜 그러냐 하면 믿음은 쪼갤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믿음을 이렇게 쪼갠다든지, 압축한다든지, 그런 성질이 아니에요. 우리가 누구하고 사귈 때, 전에 많이 사귀었으니까 이제는 좀 쉬자, 라고 할 수가 있죠. 그럴 때 그 소리를 듣고 상대방이 전에 많이 친하게 지냈으니까 좀 쉬어도 된다는 생각보다도 오히려 어떤 생각이 듭니까? ‘아, 너는 사랑이 식었구나. 믿음이 식었구나.’ 이렇게 되죠. 지나간 좋은 관계 같은 것은 한 순간이 되게 되면 그건 다 없었던 걸로 무효가 돼버리는 겁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 시내산이라는 것에 주목해서 하나님이 거기에 임재 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전체에게 날마다 말씀하시고 날마다 보여주시고 날마다 책망하시고 뭐 이렇게 해서 끌어가시는 것이 아니고, 시내산을 통해서 어떤 원칙을 제시하시는 거예요. 근데 그 원칙이 뭐냐 하면 이거는 인간의 믿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고, 믿고 안 믿고 관계없이 원칙대로 일을 추진하시겠다는 겁니다. 원칙대로. 법적인 선포라 하는데, 옛날에 우리나라에 서머타임(summer time)제도 라는 것이 있었죠. 지금 유럽은 하고 있습니다만. 서머타임제도를 정할 때 국민한테 물어보고 했습니까? 일방적으로 정했습니까? 여름에는 한 시간을 땡긴다는 것을 일방적으로 했죠. 그 일방적인 하나님의 원칙이 시내산을 통해서 주어지는 겁니다. 인간의 모든 의견을 인정한다가 아니라 인간의 의견은 안 듣겠다는 거예요. 이 시내산의 특징이. 그래서 이렇게 되면 처음부터 제가 한 질문한 자체가 잘못된 질문이에요. 하나님을 보여주시면 하나님을 믿겠습니다, 라는 이 질문이 왜 잘못됐느냐면 이건 어디까지나 인간이 누구를 대상으로 지금 제안을 하는 거잖아요. 하나님을 대상으로 제안을 하는 거죠. 근데 시내산을 통해서 그런 제안 같은 것은 하나님 앞에 통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눈에 보여주면 하나님을 믿겠습니다.”라고 할 때 하나님은 날 믿으라고 너한테 요청한적 없다는 거예요. 이 세상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에게 하나님이 무슨 부탁을 한 적이 없어요. 정말 우리가 믿는다면 그걸 믿어야 돼요. 우리 인간이 존재할 때, 우리가 태어날 때, 우리가 부탁해서 요런 식으로 사람은 이렇게 해주시고, 목소리는 꾀꼬리같이 해주시고, 키는 몇 센티로 해주시고, 그런 컨셉 정해가지고 우리가 하나님께 요구했습니까? 주문제작해달라고 요청한적 있습니까? 그런 것 없죠. 일방적으로 태어난 거예요. 이 모습 그대로. 그걸 한번 생각해보세요. 안 보여주고 일하겠다는데 니가 왜 군말이 많은가? 이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니가 보고 안 보고 내 쪽에서 제시하기 전에 먼저 주님 쪽에서 확 다가온 게 뭐냐, 그건 바로 시내산에서 보여주신, 출애굽기 19장에 보면 바로 불입니다. 이건 출애굽기 3장에서도 모세에게 나타날 때에 하나님께서 떨기나무에 붙은 불 가운데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출애굽기 19장에 보면 시내산 정경이 나와요. 완전히 불덩어리가 나타납니다. 이게 신명기 4장 24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소멸하는 불이다. 나,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다.” “소멸하는” 것을 이렇게 생략해보면 “나는 불이다.” 그러니 가까이 할 수가 없죠. 멀찍이 떨어져야 되겠죠. 그러면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어디서 나온다? 불속에서 나오죠. 그것도 소멸하는 불속에서 나오죠.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세상을 불로써 소멸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자, 여기서 그것을 들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뭐만 알면 돼요? 소멸하는 이유, 원리, 원칙, 법칙, 그것만 알아채면 되죠. 그게 바로 소멸하시는 분이 불속에서 나온 게 십계명이고, 십계명은 열 가지 계명으로 되어 있고, 그 계명을 못 지키는 자에게는 저주가 있을지어다. 그게 모세언약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뜻은 뭐냐 하면 이 세상은 지옥불, 지옥이 될 수밖에 없는, 소돔과 고모라에 유황불이 떨어진 것처럼, 유황불이 떨어지는 그 대지, 그 상황에 이 건물도 놓여있고, 우리 인생은 잠시 몇 십 년 전에 나타났다가 지금 살아가고 있습니다. 말레이시아에 가 봐도 역시 유황불이고, 한국에 있어도 유황불이고. 바로 성도라고 하는 것은 “복음 믿겠습니다.”라고 제시할 것이 아니고, 일방적으로 확 다가오는 원칙 안에서 우리는 못 빠져나간다는 것을, 이걸 감사해야 되겠어요? 아니면 어떻게 받아들이겠습니까? ‘나한테 의논도 안 하고...’라고 이렇게 궁시렁 거려야 되겠어요? 이걸 감격해야 되겠습니까? 감격해야 되죠. 이게 바로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운 성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