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부산강의[80여명의신학자들]38 - 미셸푸코(재정리)2자유게시판-

20161213b 부산강의 : [80여명의 신학자들]38 - 미셸 푸코

강의, 이근호 목사 정리, 한윤범 목사

광인, 돈키호테 !!

18세기에 들어와서 예방차원에서 새로운 법이 주어지는데, 그것을 '규율' 이라고 했지요. 규율은 미리 인간을 조작하고 조정하는 것인데. 그렇게 조정하는 방법이 뭐냐 하면, 법과 의학을 결합시킨다는 겁니다. 광인은 미친 사람인데, 그런데 옛날에는 새로운 것을 말하는 사람을 광인이라고 했다는 말이죠. 그래서 광인에 대해선 그냥 방치를 했다는 겁니다.

아주 유명한 광인이 있는데, 그게 세르반테스가 지은 소설 '돈키호테' 라는 겁니다. 세계 최초의 근대 소설로서 평가를 받는 뛰어난 작품인데, 이 돈키호테는 풍차한테 마구 덤벼들고 하지요. 또한 조수는 왜 그렇습니까? 그 이름이 '산초 판사' 라고, 서로 죽이 잘 맞는다는 말이죠.

중세 때 신의 계시는 우연적이고 우발적인데, 그것은 인간의 한계를 인정한다는 의미겠죠. 즉 "우리는 이것밖에 모르는데, 하나님의 특별한 성령의 은사가 주어지면, 그 성령을 받은 사람을 통해서 주님의 감추어진 비밀을 알려주는 것에 대해서 기다리겠습니다" 라고 하는 아주 겸손한 태도였다는 겁니다.

그러나 근세에 들어오면 그게 없어요. 모든 것을 규율화를 시켜서 내재화가 되면, 광인은 감금시켜야 한다는 겁니다. 이 강금은 중세 수도원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는데 말이죠. 그렇게 되면 이제는 정신과 의사가 법적인 권한을 가지고서,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처벌을 받을 자에게 필요한 감금조치를 내린다는 겁니다.

"이 정신병 환자는 3년을 여기에 있어야 됩니다" 라고, 혹은 "이 환자는 지금 당장에 강제로 입원을 시켜야 됩니다" 라는 식으로 말이죠. 그리고 이러한 감금이 감옥, 병영, 학교 등으로 확대가 되는데, 공장으로도 확대가 되고 말이죠. 이렇게 되면서 권력이 내재화가 되고 보편화가 된다는 겁니다.

배분의 기술, 활동의 통제 !!

그 순서가 첫째는, '배분의 기술' 입니다. 이것은 각자 각자에 폐쇄된 공간을 부여합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결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대신에 어디로 갑니까? 고시원 등으로, 자진해서 폐쇄된 공간을 찾아가는데, 스스로 말이죠. 그 폐쇄된 공간에서 스마트폰을 하고 인터넷을 하는데, 자기만의 새로운 폐쇄된 공간을 마련하는 겁니다. 이것이 얼마나 자발적이고 자율적입니까?

자율적인 권력이 주체화가 되는 세계, 이것이 바로 푸코가 말한 "나는 악마를 보았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악마가 다른 게 아닌데, 옛날에는 죄진 사람들을 가둔 것을, 이제는 자기가 알아서 결정해놓고, "이것을 내가 결정했다" 라는 조그마한 어떤 자부심을 갖게 하는 겁니다. "나는 알아서 취직을 하지 않았어" 라는 식으로 비겁한 변명들을 늘어놓는다는 말이죠.

그런데 이게 배분의 기술로 끝나는 게 아니고, 두 번째로는, '활동의 통제' 라는 겁니다. 활동을 통제하게 될 때, 여기게 동원되는 것이 바로 '시간표' 라는 겁니다. 학교, 병영, 병원, 감옥, 공장과 곳에는 시간표가 동원되겠죠. "학원은 몇 시까지 갔다와야해" 라고 하면서, 철저하게 통제하게 되면 규격화가 된다는 말이죠.

첫째와 두 번째의 차이점은, 배분의 기술은 곤충채집을 하는 것처럼 밀폐된 공간에 집어넣어서 격리시키는 겁니다. 물론 요즘은 자발적으로 감금되기를 원하지만, 그게 얼마나 내재화가 돼있으면 스스로 감금이 되겠어요? 남과 이야기하는 것도 싫고, 누가 찾아오는 것도 귀찮다는 말이죠.

시간표, 출근도장 !!

활동의 통제, 그러니까 이것은 학교, 군대, 감옥, 공장, 그 어떤 곳이라도 예외가 없이 전부 동일하게 되가는 겁니다. 옛날에 수도원은 자발적으로 했는데, 모든 것이 규율화가 돼있습니다. 사회계약서도 필요가 없이 전부가 다 알아서 스스로 시간표를 따라서 하기 때문에, 나중에는 시간표가 없으면 하루 일을 하지 않은 것만 같다는 말이죠.

왜 공장이나 회사에 출근하면 출근도장을 찍지요? 그런데 이게 70년대나 80년대만 해도 굉장히 인격모독이라고 여겼는데, 누구로부터 감시를 받는 느낌이 들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보편화가 되었는데, 당연히 그래야 된다는 말이죠. 여기에 거부하는 사람들이 없다는 겁니다.

오히려 공무원들은 수당을 더 받으려고 퇴근하고 난 뒤에 다시 사무실로 가서,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출근도장을 찍어서 수당을 더 챙기려고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미셸 푸코는 이 정도가 되면 '몸' 이라고 하지를 않는데, '기계' 라고 하죠. 이 기계는 들뢰즈 철학에서 나온 용어인데 말이죠.

발생과정의 조직화, 등질화 !!

세 번째는 '발생과정의 조직화' 라는 것인데, 이것은 나중에 시험을 쳐요. 시험을 친다는 것은 서열을 매긴다는 것보다 더 깊은 의미가 있는데, 그게 '등질화' 라는 겁니다. 동일한 질로, 모든 인간은 질적으로 동일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시험을 친다는 것은 그 사람에 맞는 시험문제가 따로 있다는 것이 아니고, 같은 시험문제인데 몇 개 더 맞추느냐는 것이잖아요. 그렇지요?

다시 말해서, "동일한 문제에 대해서 네가 얼마나 맞추느냐?" 라는 겁니다. 한 사람은 10개를 맞췄고, 다른 사람은 5개를 맞췄다고 하면, 그 두 사람의 차이는 질이 아니라 양의 차이인데, 그래서 똑같은 질을 요구받고 있는 사회에서 주체로 행세하지 않으면, 그 사람을 주체로 보지 않는다는 겁니다.

기계와 부품, 진리가 아닌 지식 !!

그러니 사회는 인간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기계가 필요하다는 말이죠. 기계란 부품인데, 부품은 갈아 끼우기가 매우 용이하다는 겁니다. 그러니 일을 제대로 잘하지를 못하면 빨리 잘라버리고, 그 자리에 적합한 다른 사람을 신속하게 집어넣어야 한다는 말이죠.

예를 들어서, 철도공사가 파업을 한다면, 월급을 많이 받는 자들을 이런 기회를 이용해서 빼내버리고, 신참들을 아르바이트나 계약직으로 채용해서 시간표에 따라서 해내면. 오히려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회사가 돌아가면 되는데, 그러니 그게 진리가 아니고 지식이라는 말이죠.

힘들의 합성, 연대 !!

네 번째가 '힘들의 합성' 인데, 이것을 '연대' 라고 하는데 말이죠. 물론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서 필요한 것을 자기가 하기는 하지만, 그런데 이제는 그런 일뿐만이 아니고 자기가 하지 못하는 일까지도 서로 힘을 합쳐서 해야한다는 겁니다. 혼자가 아닌, 서로가 힘을 합쳐서 말이죠.

예를 들어서,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드는 전문가가 따로 있고, 판매하는 전문가가 따로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어떤 작업을 통해서 만들어진 소프트웨어를 판매해야 한다면, 그것은 판매하는 전문가가 하면 된다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서로 짝을 이룰 때, 이게 기계와 기계끼리 부품을 조립하는 식으로 한다는 것인데, 즉 '힘들의 연대' 라는 말이죠.

그러므로 여기에 인간은 없는데, 인간은 그냥 힘의 덩어리라는 말이죠. 할 수 있는 재주의 덩어리일 뿐이라는 겁니다. 이런 힘들의 연대로 이 사회가 되는데, 그리고 권력자는 그 어디에도 없다는 말이죠. 전부가 보편적으로, 눈이 오면 온 사방에 펴지듯이 그렇게 퍼져있다는 겁니다.

옛날에는 권력이 위에서 온다고 했는데, 그러니 지금은 오는 것이 아니고 퍼져있다는 말이죠. 그래서 새로 출생한 아이는 기존에 퍼져있는 힘의 권력, 지식의 연대성에 부합되도록 새롭게 양육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어떤 순서로 말이죠? "빨리 네 방에 가서 공부해" 라고, 그러니 벌써 감금이죠. "이게 어디서 벌써 나와? 컴퓨터 게임을 하는지 볼 거야" 라고,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청교도의 가정교육과 산업역군 !!

미셸 푸코는 이것을 어떻게 분석했는고 하니, 이렇게 가정에서 키우기 때문에 가정에서 성교육부터 해서 철저하게 시켜야 한다고 하는데, 성에 대해서 함부로 남발하면 안 된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가정에서 산업역군, 산업예비군을 만들어야 하는데, 따라서 그것에 필요한 인재를 키워내기 위해서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구와 같은 것은 자제돼야 한다는 겁니다.

가정교육이 심화된 것, 그것이 19세기 영국문의 철저한 청교도 문화라는 말이죠. 우리는 청교도 문화라고 하면, 영국은 기독교 문화가 되어서 사람이 사는 것처럼, 그런 윤리도덕이 있었다고 낭만적으로 생각했는데 말이죠. 그런데 미셸 푸코는 그렇게 보지 않고, 그 시대에 맞는 산업역군을 옛날에는 국가에서 담당했는데, 그런데 이제는 가정에서 담당해야 된다는 겁니다.

거기에서 나온 것이 바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라는 것인데, 그런데 이런 정신분석은 사실상 미셸 푸코의 권력체계에 의하면, 하나의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즉 아버지의 말을 듣고 어머니와 라이벌 관계에 가지 않으면, 아직 인간은 독립할 수 있는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말이죠.

프로이트에 의하면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는데,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내가 있는데 왜 하나가 하나되지 않는가?" 라는 것인데, 쉽게 말해서 "남자와 여자가 있어야만 내가 태어나는 이유가 무엇인가?" 라는 겁니다. 과거의 생물학에서는, "그것이 자연스런 이치가 아니냐?" 라고 했는데 말이죠.

그런데 그 자연스런 이치가 인간의 이성이 발달하면서, 인간 이성이 자기 존재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 의미를 투여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언표 수준에서 담론 수준이 되는데, 그러한 담론 수준이 조직화가 되면서 이 존재에서 주체가 나오고, 그 주체의 모임이 현 사회를 구성한다는 겁니다. 우리가 이러한 조직을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던 내부에 이미 조직이 장착돼있는데, 즉 알아서 긴다는 말이죠.

권력의 내재화와 자본주의 !!

그렇게 권력이 내재화되어서 돌아가는데, 미셸 푸코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아요. 더 나갑니다. 지금 이야기는 권력과 인민들의 이야기인데, 백성들 속에 내재돼있는 권력, 특히 18세기와 19세기에 들어와서, 이 세상이 이성적으로 규격화가 되지 아니하면, 규격화는 자본주의의 발달인데 말이죠.

그렇게 규격화가 되지 아니하면, 이것을 광인으로 보았다는 말이죠. 즉 "미친놈은 따로!" 라는 것인데, 이것은 처벌하는 것이 아니고, 치료대상이라는 겁니다. 치료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노동을 한다든지 말이죠. "네가 이 사회가 요구하는 규격화가 되려면, 너는 노동을 해야 돼. 놀면서 밥 먹을 생각은 하지마. 그래야 이 사회에 합당해" 라고, 그렇게 치료를 빌미로 해서 처벌을 한다는 겁니다.

남자들이 군대를 왜 싫어합니까? 군대는 독자적인 자아상을 인정해주지 않아요. 그러면 자기가 그만 날아가 버리는데, 자기가 공들여서 영어학원에 다니고 무엇을 하는 것은, 자기가 잘되기 위해서 하는 것이란 말이죠. 그동안 자기가 잘 되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노동을 하고 계획을 세웠는데, 그런데 '나' 라는 것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맨 날 있던 곳이 집인데, "엄마와 나", 그런 관계라는 겁니다.

그래서 미셸 푸코가 말하기를, "언어라는 것은 지시대상도 아니고, 지시되는 관계까지 표시한다" 라고 했는데, 아주 어려운 표현인데 말이죠. 아무튼 이 관계, 아까 이야기한 '시녀들'에서 보이지 않는 관계인데 말이죠. 그러니 이 미셸 푸코가 얼마나 예리한지를 한 번 보세요.

물을 좀 주세요 !!

예를 들어서, "물을 좀 주세요" 라고 하면 물을 주면 되잖아요. 그런데 그냥 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물을 달라는 것은, "내가 먹던 그 물을, 사랑하는 사람이 공들인 물을 주세요" 라는 것인데, 그러니 물을 먹고 싶은 게 아니고, 물이 오기까지 긴긴 계보학적 과정을 묻고 싶은 겁니다. 목이 마른 게 아니고, "목이 마른 내가 말라" 라는 것인데, 그때 그 물을 볼 때마다 엄마가 보고 싶다는 말이죠.

남녀가 사귀면서 아무런 카페나 가지 않는데, 푸른 의자가 있는 처음 만났던 카페에 가려고 한다는 겁니다. 거기에 가면 바이러스가 적고, 그런 겁니까?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인간은 자기와 관련되었던 얽혔던 것을 끊어버리면, 그러면 외로워서 자살을 합니다. 사람이 밥을 먹지 못해서 자살하는 것이 아니고, 외로워서 자살을 한다는 말이죠. 밥은 여기 급식소에 가면 공짜로 준다는 겁니다.

그러면 왜 외롭습니까? 얽히고 설킨 관계가 많아서 그래요. 혼자 태어나서 혼자 살았으면 외롭지가 않는데, 그런데 그동안 많은 사람들과 정을 주고 정을 받았거든요. 1인 2역, 즉 "그는 나를 주시하고, 그 주시에 맞추어서 나는 나를 변경시켰고 변형시켜 왔다" 라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이 요구하는 '나' 라는 것이 되었는데, 그런데 '나'에게 지시하고 명령하던 '그'가 죽었다면 어떻게 됩니까? "나는 살아갈 수 없어" 라는 겁니다. 세포는 단백질과 지방과 탄수화물만 있으면 사는데, 그런데 살 수 없다는 말이죠. 그래서 자살하기 직전에도 밥을 먹는데, 참 희한하다는 말이죠.

그래서 철학자들이 볼 때 과학은 바보인데,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과학과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뭔가 덮어쓴 귀신과 같은데, 미셸 푸코는 이것을 '권력' 이라고 하는데 말이죠. '자아' 라고 하면서 형성된 얽히고 설킨 권력에 완전히 놀아난다는 겁니다.

정치, 그리고 끼어든 경제 !!

이제 마지막으로 중요한 게 남았어요. 그렇게 권력이 내재화가 되어서 알아서 기었는데, 그런데 20세기에 와서 드디어 경제가 끼어 들었어요. 경제는 정치와 라이벌인데, 이전에는 정치 밑에 경제가 있었는데, 정치는 권력게임이거든요. 정치란 자기 주체의 대리행위인데, 즉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대신 보여주는 것이죠. 주체의 열망이나 소망을 대신해서 보여주는 것을 정치가 해주어야 한다는 겁니다.

아까 눈이 내렸지요? 그렇게 눈이 내리는 것이 바로 실재인데, 이 실재는 인간들끼리 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실재로 사는 게 아닌데, 추상으로, 즉 관념으로 산다는 말이죠. 그래서 이것을 통합할 수 있는 것을 정치라는 것이 반영해줄 때, 인간은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얻는다는 겁니다.

고향에는 왜 가는가?

예를 들어서, 집안에 아버지가 80이 넘어서 아무 일도 하는 게 없어요. 그런데 왠지 아버지가 계시고 어머니가 계시면 고향에 가고 싶어요. 그런데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돌아가시면 고향에 가고 싶습니까? 그러면 형제고 친척이고 다 끝났다는 겁니다. 차가 밀리지 않아도 가지 않는다는 말이죠.

제사가 왜 있습니까? 제사는 상징적인 안정감을 제공하는데, 제삿밥을 먹고 싶어서 가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왠지 자기 원천을 다시 경험한다는 것, 그것을 접촉한다는 것, 그렇게 옛날 이야기를 하면서 심리적인 안정감을 제공받고 싶어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기본적인 추상적인 단일화, 다음 시간에는 알랭 바디우를 하겠습니다. 알랭 바디우는 이것을 '일자(一者)' 라고 했는데, 일종의 신이죠. 추상적인 돌출에 의해서 구상된, 즉 상상해서 생긴단 말이죠. 아무튼 정치란 대리행위인데, 그래서 정치가 흔들리면 대중들이 흔들리는 겁니다.

그동안 이것을 옳다고 했는데, 그런데 미셸 푸코는 여기에 무엇을 집어넣느냐 하면, 경제가 차고 들어왔어요. 정치 위에 경제가 있어서, 정치는 추상적이지만 경제는 실재라는 겁니다. "이번에 대통령이 바뀌고 내 수입이 얼마나 늘어났는가?" 라고 하는, 이것이 실재적이라는 말이죠.

신자유주의 경제 !!

그렇다면 정치는 경제에 밀리게 되었는데, 여기서 나온 경제논리가 신자유주의입니다. '로직' 이라는 미국 하버드대학 교수가 주장한 것이죠. 모든 관세장벽을 다 철폐해버리고 전 세계를 단일시장으로 만들어버리자는 겁니다. 그것에 도움을 준 것이 인터넷이고 말이죠.

지금 미셸 푸코는 오늘날의 현재까지도 내다보고 있는데, 전체를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하면, 그렇게 모든 장벽을 없애버리게 되는데, 그러면 국가와 국가는 경제적 칸막이가 아니고 정치적인 칸막이죠.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나라가 가난한데 미쳤다고 그 나라에 눌러 앉아서 사느냐는 겁니다.

특히 부모들은 자식을 생각할 때, 이런 나라를 자식한테 보여주기 싫다는 말이죠. 그러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캐나다, 뉴질랜드, 미국, 호주와 같이 잘사는 나라로 가겠죠. 그렇게 해서 자식들을 빼돌리는 겁니다. 그렇게 해놓고는, "거기가 좋거든 오지 마라. 올 필요가 없어" 라고 한다는 말이죠.

왜 그렇습니까? 경제는 실재적이고 정치는 추상적인데, 이상적인 큰 바위의 얼굴과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느낄 텐데 말이죠. 그런데 이놈이 되던 저년이 되던, 맨 날 싸울 것 같으면, 그것을 쳐다보면서 행복을 느낄 이유가 전혀 없어요. 그저 자기 수입만 늘면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푸코는 뭐라고 하는고 하니, 현대국가에서는 경제적으로 이익이 얼마가 되는지, 모든 이성이 그쪽으로 예민하게 작용한다고 한다는 말이죠.

정치가 아닌, 시민사회의 등장 !!

그렇게 되면 정치가 아닌 시민사회의 등장이죠. 이런 변화에 대해서 미셸 푸코는, 옛날에는 '폴리스' 라는 말이 정치적인 전반을 가리켰는데, 그런데 19세기와 20세기에 들어오면 제한적이고 국소적으로 쓰인다고 하는데, 그래서 지금은 그 폴리스를 경찰에게만 쓴다는 겁니다.

이렇게 단어가 바뀐다는 말은, 정치권력에 대한 관심의 성격이 바뀐다는 겁니다. 무엇 때문에 말이죠? 신자유주의의 경제논리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신자유주의적 경제논리가 되게 되면, 여기서는 어떤 문제가 생기느냐 하면, 이전에는 자기 몸이 있고, 그 몸에서 경제적인 이익을 얻었다는 것이죠. 과거에는 그랬다는 말이죠.

돈버는 것이 가장 즐거워요 !!

그런데 이게 시민사회가 되면 바뀌어요. 이익을 위해서는 몸이 좀 희생을 하더라도, 자기가 소원하는 그런 이익만 있다면 충분하다는 겁니다. 그러니 벌써 우리의 질이 정치적인 권력의 질이 아니고, 경제적인 아이템으로 그 성질이 바뀌고 있다는 말이죠.

그래서 재벌한테 "밥을 먹고 살아가는 것이 충분한데, 왜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하십니까?" 라고 하면, "돈을 벌기 위해서 일합니다" 라고 하낟는 겁니다. 그러면 "돈을 벌면 무엇을 합니까?" 라고 하면, "돈을 버는 행위만큼 즐거운 일은 없습니다" 라고 하는데, 그게 부자들의 특징이라는 말이죠.

성의 역사 !!

그러면 가정주부는 어떻습니까? 보통은 가정에 충실한 것인데, 아까 했던 '성의 역사'에서 빠진 것이 있어요. 18세기와 19세기로 넘어오면서 남자와 여자의 역할이 구분됩니다. 남자는 바람을 피워도 되지만 여자는 가정에 충실함으로써, 그 시대는 가정주부의 가치를 높여준다는 겁니다.

여기서 말을 잘 들어야 하는데, 여자는 바람을 피우면 안 되는데, 왜냐하면 여자는 욕구를 자제할 수 없는 자연 친화적이기 때문에, 그래서 주체를 못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남자는 자연을 다스릴 수 있는 역량이 있다는 말이죠. 남자는 바람을 피워도 적당하게 서너 명 정도, 능력이 되면 더 할 수도 있는데, 하지만 여자는 단 한 명이라도 빠지기 때문에 절대로 바람을 피워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여자 쪽에서는 손해라고 여기겠지요. 그런데 그 시대의 권력의 지식이 무엇인고 하면, 살림을 잘 하는 여자에게 바람을 피우는 남자보다도 더 위대한 명예를 줘버렸다는 겁니다. "자식 교육을 잘 시키고 한 남편을 잘 섬기니, 당신이 최고야!" 라고 하면서 말이죠.

그런 여자를 아주 덕스러운 여자라고 해서, 바람을 피움으로 말미암아 남성의 에너지를 마음껏 발산하던 남자라도, 정숙하고 살림만 사는 여자 앞에서 그 명예에 그만 기가 죽을 정도로, 그만큼 정숙한 여자를 옹호했던 사회이고, 그런 시대라는 겁니다. 그래서 성의 질서가 그나마 유지가 됐다는 말이죠.

그러니 결국 가정이 단단해야 된다는 거예요. 권력의 4가지를 위해서 그에 필요한 인재를, 즉 여자가 자식을 단단히 잡아줘야 국가발전과 정치발전과 진보에 필요한 인재들이 나온다는 겁니다. 그것 때문에 가정에서 교육을 심하게 시켰는데, 거기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도 나오고, 그게 오늘날 현대인의 자의식이 된다고 이야기했다는 것이죠. 미셸 푸코가 말이죠.

점점 더 미쳐가요 !!

그런데 지금은 경제논리가 치고 들어오는데, 이 경제논리는 그야말로 미셸 푸코가 보기에는, 미친 것 중에서 더 미쳤다는 겁니다. 사람은 경제가 없었을 때는 가정 행복, 즉 자기 행복이 가장 우선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제 돈의 세계, 자본의 세계에서는, 돈에 끌려 다니는 그 자체가 아니면 결코 행복하지가 않다는 말이죠.

20대나 30대 초반이 남자들이 새로운 차에 로망이 있는데, 어느 정도면 만족합니까? 그런데 만족이란 것이 있을 수 없는 것이, 정치라면 어느 정도 만족이 되는데, 경제는 새로운 이익을 계속해서 창출한다는 겁니다. 옛날 경제는 필요한 것을 생산하고 소비하면 그만인데, 그런데 지금은 소비욕구를 만들어놓고 거기에 맞추어서 생산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 광고를 해서 없는 소비도 만드는데, 그렇게 해서 그들로 하여금 새 차를 내놓으라고 요구하게 만든다는 겁니다. 경쟁적으로 말이죠. 이것은 고정된 이익이 아니고, 움직이는 이익, 계속해서 변화하는 이익인데, 그리고 그러한 변화에 동승하지 아니하면, 한 순간도 우리는 새로운 자극적인 쾌감을, 희열과 행복을 얻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장소가 주체를 생산한다 !!

제가 늘 드는 예지만, 촌에서는 동네의 순이가 예뻤다는 말이죠. 교회에서 낡은 오르간을 치는 순이가 제일 예뻤고, 그래서 동네 총각들도 그녀와 결혼하고 싶어 안달이 났잖아요. 갑돌이와 갑순이 노래의 내용이 그것인데, 그런데 서울의 압구정에 취직을 해서 살다가 명절에 촌에 와서 순이를 바라보니까, 순이는 여자도 아니라는 말이죠(ㅋㅋ).

그래서 "내가 미쳤지. 내가 저런 여자를 좋아했을까? 참 내가 우물 안의 개구리였구나" 라고 하는데, 이게 무엇입니까? 그 동네에 있을 때는 자기에게 내재된 권력체제, 그게 전부였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만 장소가 바뀌니까, 똑같은 눈을 가졌는데 주위 환경이 바뀌었다는 말이죠.

이게 뭐냐 하면, "장소가 주체를 생산한다" 라는 겁니다. 다른 말로 장소가 주체, 또는 권력을 생산한다는 겁니다. 정치라면 "너의 나라, 나의 나라" 라는 것이 있지만, 지금은 칸막이 없어졌어요. 장소가 뭐냐 하면, 돈이 흐르는 장소인데, 자본의 시장이라는 말이죠.

그래서 직장인들은 월급을 더 주는 회사로 스카우트가 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는데, 돈을 더 준다고 하면 대번에 직장을 옮겨버려요. 장소 자체가 머물지 않는데, 장소가 주체를 만드니까 말이죠. 그리고 주체도 고정적이 아니라는 겁니다. "당신만 있으면 족해" 라고, 신혼 때는 다 그렇게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이죠.

아니, 당신에게 이런 면이 !!

제가 얼마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제가 주례를 하면 이렇게 한다고 했는데 말이죠. "상대방을 사랑하면 안 되고, 상대방 속에 있는 새로운 면을 사랑해야 됩니다" 라고 말이죠. 너무 노골적으로 이야기해서 미안한데(ㅋㅋ), 날마다 새로운 면이 나올 때만 계속해서 사랑하고 싶은데, 또 기대가 되니까 말이죠. 그래서 "아니 당신에게 이런 면이 있었어? 놀라워라" 라고 해주면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3년 전이나 5년 전의 모습 그대로면 지겨워요. 지겨우면 재미가 없는데, 재미가 없으면 자기 욕구를 만족시킬 수가 없다는 겁니다. 자기 욕구는 경제적인 흐르는 주체이기 때문에, 그래서 계속해서 새로운 유머와 아이템을 개발해야 되고, 계속 웃겨야만 된다는 말이죠. 그렇게 새로운 면모를 계속 보일 때 상대방은, "우리 부부는 왜 이렇게 행복한지 모르겠어?" 라고 나온다는 겁니다(ㅋㅋ).

그러면 지금은 새로운 면이 없어도 왜 좋으냐 하면, 신혼 때는 아직까지 구석구석을 더듬어서 수색을 다 하지 않았는데, 상대방의 영토를 다 조사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것이 끝나고 나면, "내가 아는 것 말고 다른 것을 내놔라"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러면 먼저 결혼한 친구들이, "혼자 사는 게 낫다" 라고 하는 이야기가 실감이 난다는 겁니다.

그러니 신혼 때는 수색한다고 바빠서 절대로 그런 소리가 나오지 않아요. 그런데 점점 더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됩니까? 새로운 면을 기대했는데, 하지만 이제는 유머를 한다고 해도 옛날의 아재 개그밖에 없고, 전혀 새로운 것이 나오지 않으니까, 그야말로 완전히 시시해져버리고 만다는 겁니다.

여러분, 집에 있는 가구를 왜 바꿉니까? 물론 낡아서 그럴 수도 있지만, 그런 집은 거의 없고 대부분이 가구를 바꾸면 집안 분위기가 쇄신되기에 바꾼다는 겁니다. 그 바람에 얼마 동안은 나름 신선하게 보내는데, 물론 한 달 뒤에 카드 청구서를 받아보는 순간부터 다 사라지고 말지만 말이죠.

근성이 아닌, 19세기에 형성된 '권력의 지식' !!

남자들이 왜 자꾸만 바람을 피우려고 들썩거리느냐 하면, 그것은 바로 새로운 것을 찾고자 하는, 그게 남자의 근성이라 하는데, 사실은 근성이 아니고 19세기에 형성된 권력의 지식이라는 겁니다. 역사가 아니고 계보인데, 그리고 남자는 그것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는데, 내재화가 되어있기 때문에 말이죠.

우리 모임이 무엇입니까? 미셸 푸코 연구회입니까? 복음을 전하는 장소입니까? 미셸 푸코는 알아요. "나는 악마를 보았다" 라고, 인간은 모두가 갇혀있다는 겁니다. 백날 뛰어봐야 벗어나지를 못한다는 말이죠. 돈을 싫어하는 사람 누가 있어요? 그러면 1억으로 만족해할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이것이 서로 같은 말인데, "돈을 싫어할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라는 것과, "1억으로 만족하다고 할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라는 것이 같다는 겁니다. 1억을 종자돈으로 해서 1억 5천을, 그러면 1억 5천에 만족할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도 역시 없어요. 2억, 3억, 10억, 그러다가 조 단위까지도 계속해서 올라간다는 말이죠.

조희팔이 10만원, 20만원을 모으려고 사기를 쳤습니까? 어떤 영화에 보니까 조 단위가 아니면 푼돈이라고 하는데, 조 단위가 아니라면 사기가 아니라는 겁니다. 최순실이 몇 조를 가지고 있다는 소문도 있는데, 그런데 "최순실이 박근혜랑 해서 세상에 오백만원이나 횡령했대" 라고 하면, 그러면 사람들이 데모를 하지 않겠지요. 물론 옛날이면 깜짝 놀라겠지만, 이제는 눈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겁니다.

갇혀있는 권력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그러면 "갇혀있는 권력을 어떻게 해결할 것입니까?" 라고 한다면, 이제는 복음으로 대비를 해야한다는 것이죠. 철학강의를 하면서 항상 마지막에는 복음과 대비해서, 이 세상에서 인간들이 스스로 철학으로, 또는 과학으로 해결할 수 없었다는 것을 말씀드렸는데 말이죠.

이제 복음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인간 자체가 성경에 보면 오염이 되었다고 하는데, 오염은 더럽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길에 휴지가 있는데, 그래서 자기가 주웠다는 말이죠. 처음에 도로포장공사를 할 때는 휴지가 없었는데, 그런데 한 두 시간만 지나면 휴지나 담배꽁초가 떨어져 있지요. 그러면 휴지와 담배꽁초를 주우면 처음 상태로 되돌아가겠죠. 깨끗한데, 그 뒤에 오염이 되었으니, 그 오염된 것만 제거하면 깨끗해진다는 겁니다.

그런데 인간은 돌아갈 원천이 없어요. 오리지날한, 원 상태가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 해결방법은 뭐냐 하면, 그게 창세기 3장에 나오지요. 하나님이 보시기에 오염된 것을, 거기에 그만 인간들이 가림막을 칩니다. 그것이 바로 무화나무 앞으로 치마를 해서 입는 것인데, 그러면 "나는 깨끗하지롱. 나는 건전하지롱!" 라고, 그렇게 나온다는 겁니다.

가림막을 제거하면 되요 !!

그러면 오늘 강의에서 복음적 해결은 간단한데, 이 가림막을 제거하면 됩니다. 그렇게 제거하게 되면 우리는 죄인이 되는데, 부끄럽다는 말이죠. 오염이 됐다는 말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인간은 오염된 것, 즉 '비거룩' 이라는 말이죠. 그게 바로 복음의 시작이고, 구원의 시작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주님 앞에서 자기 의, 자기 잘난 체를 제거해버리면 되는데, 물론 우리 인간은 스스로 제거할 능력이 없어요. 그런데 그것을 제거한다고 하는 것이 바로 불교인데, 즉 "나는 욕심이 많다. 이 욕심은 어디에서 나올까?" 라고 한다는 겁니다. 불교는 '오온(五蘊)' 인데, 즉 인간의 자아는 5가지 추상적인 물질체로 돼있다고 본다는 말이죠.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되는고 하니, 자기가 욕심이 있어서 생로병사의 괴로움이 많으니까, 그 욕심만을 끊으면 된다는 겁니다. 이것은 방금 아스팔트에 널린 휴지를 주우면 깨끗해진다고 했던 것과 똑같은 것인데, 이게 동양철학이라는 겁니다. 유교도 역시 그렇고 말이죠.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

하지만 성경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아담의 자손이라고 하면 아담의 자손답게 오염된 모습으로, 사람 앞이 아닌 주님 앞에 그대로 노출을 시키는 겁니다. 그것이 마태복음 9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 왔다" 라고 하신다는 말이죠.

(마 9: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마 9: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그러니 노출을 시키는 분은 목사도 아니고, 집사나 장로도 아니고, 예수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깨끗하게 오십니까? 예수님이 깨끗하게 오셔서 노출시키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우리보다 더 지저분하게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는 모습으로 오신다는 겁니다.

그렇게 피 흘린 모습의 의미가 무엇인고 하면, "예수님은 깨끗하고 우리는 더럽다" 라는 것이 아니라, "네가 더러워봤자 내가 아버지 앞에 저주받을 만큼 더러운가?" 라고 묻는다는 말이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질 때, 그게 바로 저주받은 십자가라는 겁니다. 저주를 받았다는 말은, 아버지로부터 예수님의 죄에 대해서 아버지가 심판했다는 것이죠. 그런데 그 심판의 자리로 우리는 갈 수 없어요. 왜냐하면 우리는 뜯어내 봐야 불교식이니 고작이니 말이죠.

"나는 부족합니다" 라고 하면서 머리를 깎고 절에 가봐야, 수녀원에 가봐야, 기도원에 가봐야, 그렇게 기껏 인간들이 하는 것이 내려놓는 것인데, 그렇게 해봐야 그 내려놓은 것을 보고 자기가 대견해하기 때문에, 인간은 스스로 아무리 자기를 부정하고 부인해도, 그렇게 부인한 그 행위만은 고상하게 보이고 괜찮아 보이고 착해 보이는데, 그래서 문제가 된다는 겁니다.

돈으로도 못 가요. 하나님 나라 ♬

그러니 인간은 전적으로 죄인이 될 수 없어요. 아무리 도를 닦아도, 새벽기도 40일을 해도 안 돼요. 성경을 보고 기도를 해도, 전 재산을 다 바쳐도 안 돼요. 절대로 자기 자신에 대해서 언제나 미화하고 옹호하고 변호하는, 그 무화과 나뭇잎으로 치마를 만들어서 가리는 속성을 우리 인간이 스스로 제거할 수가 없다는 말이죠.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되느냐 하면, 자기가 하나님과 상대하려는 것을 모두 끊어야만 하는데,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하나님께 예쁨을 받고 귀여움을 받을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주여, 나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라고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죠.

그러면 무엇을 하느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십자가에 달린 그 모습에 자기가 합체하면 되는데, 그 합체하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그게 우리 쪽에서 어떻게 한다고 해서 되는 문제가 아니고, 성령이 오게 되면 우리는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날마다 못 박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다지 자기가 잘난 존재가 아니란 것을 깨닫게 된다는 말이죠.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

그러면 여기서 감사가 나오는데, 범사에 감사가 말이죠. 자기가 무조건 죄인인 것을, 가볍게, 기쁨으로, 아주 부담이 없이 그냥 수용하게 되는데, 그러면 거기서 감사가 나온다는 말이죠. 그렇게 감사가 나오면서 겸하여 성령의 열매가 나오는데, 온유와 화평과 자비와 양선과 형제우애가 말이죠. 이게 갈라디아서 5장에 보면, 자기를 십자가 못 박았기 때문에 나오는 현상이라고 한다는 겁니다.

(갈 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갈 5: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그런데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않고 교회에서 도를 닦으면 어떻게 됩니까? 그것은 육의 열매인데, 즉 시기와 질투와 경쟁이라는 겁니다. "저 사람은 몇 시간을 기도했고, 헌금을 얼마나 했고, 나는 일주일에 교회에 한 번 갔는데, 저 사람은 세 번씩 가고" 라고, 그런 식으로 항상 비교가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감사가 나오는 게 아니고, 감사가 나오도록 하는 노력이 나와요. 즉 위선이라는 말이죠. 감사할 이유가 없는데, 감사는 자기가 죄인인 것을 아는 순간 결과적으로 나와야하는 것이지, '감사하기' 라는 것이 돼버리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온유하기, 화평하기, 이런 것은 하지 마세요. 그런 것은 또 하나의 거짓이고 위선이라는 말이죠.

그러면 어떻게 하냐 하면, 고맙게도 마귀가 도와주는데, 마귀가 우리로 하여금 철저하게 이 세상 사람으로 살게 만들어요. "네가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 알지? 네가 그 사람들 생각해서 그런 행동하면 안 돼. 우리 집안이 어떤 집안인데 그 따위 행동을 해? 우리 교회가 어떤 교회인데 그런 비윤리적인 행동을 해? 그러면 교인들이 교회에 나오지 말라고 해" 라고 한다는 겁니다.

마귀가 그렇게 눈처럼 깔려있는 모든 권세 안에 우리가 잠기도록 만들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아침에 눈만 뜨면 생각나는 것이, "남들이 내 모습을 어떻게 볼 것인가?" 라고, 특히 여자들은 화장할 때의 코스가 24개나 된다고 하잖아요. 물론 혼자 살면 화장이 필요가 없겠지요? 그런데 이 사회에 살려면 남들을 의식하지 않고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 !!

그 모습을 그대로 받는데, 그렇게 받으면서 동시에 그 안에 같이 합세해서 같이 웃고, 같이 떠들고, 같이 동조한 자기 모습을, 그것을 그대로 이 세상에 던지는 겁니다. 그렇게 던지면 그 모습과 동시에 그러한 죄 때문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함께 보게 되면, 이런 지극히 세속적인 생활을 하는 자기 모습 속에서 감사가 나온다는 겁니다. "이런 죄인을 용서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라고 하면서 말이죠.

따라서 도를 닦겠다고 하면서 산 속에 들어가거나 기도원에 들어가거나, 그런 짓을 할 이유가 전혀 없어요.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이 주님께서 죄인이 되라고 주신 환경인데, 그러니 그러한 환경 속에서 평소에 하던 대로 마음껏 자기 성질을 내면서 살면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것과 하나님에 의해서 노출된 자기의 세속적 모습과 죄악된 모습과, 그리고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는 십자가, 즉 유월절 어린양의 피와의 만남 속에서, 지기가 성도라는 사실에 대해서 감사가, 즉 "이런 존재도 구원이 되구나" 라는 것에 대해서 감사가 나온다는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세상적인 인간의 이성의 한계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들은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모든 것을 결론지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우리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시고, 그리고 일부러 십자가 피를 가지고 찾아오신, 용서를 가지고 찾아오신 주님께, 그런 하나님의 크신 사랑 앞에서 영원히 감사토록 해주시고, 그렇게 감사하는 자들의 모임이 천국인 것을 언제나 기억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17,10,10 재정리함 - 녹취 구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192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16,367 강의 [17 대구강의] 전도서속의 그리스도 21 - 경건의 함정 - 최고관리자 17-11-01
16,366 강의 사무엘상 31강(고립된 체계) , 마태복음 93강 (실패의 십자가) 171031 - 최고관리자 17-10-31
16,365 자유게시판 261강-고후 12장 19-21절(사도의 우려)1701029-이 근호 목사 고린도후서 최고관리자 17-10-30
16,364 자유게시판 157강-신 29장 22 – 26절(증거자 이스라엘 )171029-이 근호 목사 신명기 최고관리자 17-10-29
16,363 묻고답하기 용서하지 않으리 - 최고관리자 17-10-29
16,362 묻고답하기 [질문] 성경에서 말하는 '용서'란? - 최고관리자 17-10-28
16,361 자유게시판 111강-창 28장 10-14절(야곱의 사다리)171025-이 근호 목사 창세기 최고관리자 17-10-26
16,360 묻고답하기 [밀양 영화평]-정혁현 목사의 글 - 최고관리자 17-10-25
16,359 자유게시판 260강-고후 12장 14-18절(사도의 사랑)1701022-이 근호 목사 고린도후서 최고관리자 17-10-23
16,358 자유게시판 156강-신 29장 14 – 17절(언약의 효력 )171022-이 근호 목사 신명기 최고관리자 17-10-22
16,357 묻고답하기 사도의 우려 고린도후서 최고관리자 17-10-22
16,356 자유게시판 가락-요한복음 15장 9절(자존적과 의존적)171017b-이 근호 목사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7-10-21
16,355 자유게시판 가락-요한복음 15장 9절(자존적과 의존적)171017a-이 근호 목사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7-10-21
16,354 자유게시판 안양20171013b약1장12절(천국의 조건)-이 근호 목사 - 최고관리자 17-10-20
16,353 강의 2017년 노벨문학상 작품 [남아있는 나날] 평 - 최고관리자 17-10-20
16,352 자유게시판 20171016b 부산강의 : [시편]4(2편)-존재에서 사건으로 시편 최고관리자 17-10-20
16,351 자유게시판 20171016a 부산강의 : [시편]4(2편)-존재에서 사건으로 시편 최고관리자 17-10-20
16,350 자유게시판 110강-창 27장46절-28장9절(아내 찾기)171018-이 근호 목사 창세기 최고관리자 17-10-19
16,349 자유게시판 207강-YouTube강의(비밀)171017-이 근호 목사 - 최고관리자 17-10-19
16,348 자유게시판 206강-YouTube강의(은혜의 순환)171017-이 근호 목사 히브리서 최고관리자 17-10-19
16,347 묻고답하기 데리다를 읽는다. 바울을 생각한다. - 서평을 읽고 - 최고관리자 17-10-19
열람 ➜ 자유게시판 부산강의[80여명의신학자들]38 - 미셸푸코(재정리)2 - 최고관리자 17-10-18
16,345 자유게시판 부산강의[80여명의신학자들]38 - 미셸푸코(재정리)1 - 최고관리자 17-10-18
16,344 자유게시판 서울의존강의20171013b 디도서3장5절(잃어버린 자)-이 근호 목사 디도서 최고관리자 17-10-18
16,343 자유게시판 서울의존강의20171013a 디도서3장5절(잃어버린 자)-이 근호 목사 디도서 최고관리자 17-10-18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