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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부산강의[80여명의신학자들]38 - 미셸푸코(재정리)1자유게시판-

20161213a 부산강의 : [80여명의 신학자들]38 - 미셸 푸코

강의, 이근호 목사 정리, 한윤범 목사

미셸 푸코와 성소수자 !!

미셸 푸코는 1926년에 태어나서 1984년에 죽었는데, 58세에 패혈증으로 말이죠. 비록 60도 살지 못했지만 참 열심히 살았어요. 이 사람이 한 주장들이 현대인들이 굉장히 잘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특히 동성애 부분에서 말이죠. 동성애에서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인권이거든요. 스스로 자기 권리를 마음껏 발휘하는, 그런 토대 위의 인권, 즉 "내가 남성을 좋아하든 여성을 좋아하든,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 권리다" 라는 겁니다.

동성애 주장의 모토는, "인간은 아름다움을 추구하게 돼있고, 그게 남성이든 여성이든 관계없이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순수한 사랑이다" 라는 겁니다. 국가나 사회인습에 간섭을 받을 필요가 없는 것이고,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말이죠. 그런 동성애자들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러면 왜 그동안 가만있었느냐 하면, 국가적으로 남성과 여성을 따로 구분해서 통념상, 사회전통상 "남성은 남성다워야 되고 여성은 여성다워야 된다" 라는 것이 지배하고 있던 세상에서, 드디어 푸코에 의해서 그럴 필요 없음을 알게 되었다는 말이죠. 미셸 푸코의 사상이 환영받는 이유를 알겠지요?

그것을 '성소수자' 라고 하는데, 그런 성소수자가 권세와 권리를 주장하게 되는 겁니다. 이러한 미셸 푸코의 사상이 있었기에, 오늘날 성소자들이 기를 펴면서 시위도 하고, 그래서 이제는 국가정책에도 자기들의 의사를 반영하는 겁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남자와 여자의 샤워실을 구분하는 것을 초등학교부터 없앴다는 말이죠.

남성이 남성답다는 것은, 그것은 나중에 여성으로서의 인권을 남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박해할 가능성이 많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차별을 없애면 동등한 인격을 가진 자로서의 이상적인 사회가 펼쳐진다고 하는데, 거기에도 미셸 푸코의 사상이 다 녹아있다는 말이죠.

시대적 단절성 !!

왜 오늘날 사람들이 미셸 푸코의 사상을 좋아하느냐 하면, 이것 때문인데, 그게 '시대적 단절성' 이라는 겁니다. 이 말은 "기성세대를 따라갈 필요가 없다" 라는 것인데, 그 시대는 그 시대고, 이 시대는 이 시대라는 말이죠. 전통은 연속성을 가져야지 전통인데, 푸코의 사상을 접하는 순간 "우리 세대의 인생은 우리가 알아서 꾸려나가면 되지, 모범답안이 있는 게 아니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어르신, 어떻게 하면 됩니까?" 라고 물을 필요가 없어요. 우리가 하는 대로 살면 그것이 우리 시대가 되니까 말이죠. 더 나아가서 우리 시대에 가지고 있는 가치관을 어린 세대에 강요할 이유도,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그런 것들이 미셸 푸코의 사상에서 나왔다고 한다는 말이죠.

창조적 질서와 권력생산 !!

푸코의 사상은 그런 사상이 아닌데, 푸코의 많은 책들 가운데서 자신들이 무질서하게 살아도 된다는 것을 옹호해주는, 사실 '무질서' 라는 말 자체가 성립이 안 되는데 말이죠. 무질서는 항상 질서가 있는 것을 전제로 할 때 무질서가 부정적 의미로서 있게 된다는 겁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질서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면 무질서는 없고 이것만 있는데, 즉 창조적 질서만 있다는 겁니다. 이것을 미셸 푸코는 '권력생산' 이라고 했는데, 즉 "그 시대에 필요한 질서는 그 시대 사람이 만들면 된다" 라는 겁니다. 그게 권력이라는 말이죠.

그런데 하필 요즘에 와서 인기가 있는고 하니, 사실상 여기에 대해서 푸코는 책임이 없어요. 왜냐하면 옛날부터 그래왔거든요. 그러면 옛날 사람들은 왜 그것을 몰랐는고 하니, 같은 인간인데 정신을 바짝 차려서 요즘 사람처럼 자유분방하게 살지 못했는지, "양반이 어디에 있고, 상놈이 어디에 있냐?" 라고 하면서 말이죠. 조선시대나 고려시대의 사람들은 왜 그렇게 못했느냐는 겁니다.

푸코는 그 이유에 대해서 밝히는데, 왜 "역사가 흐른다" 라고 하잖아?. 역사란 그 시대에 권력을 장악한 사람이 임의로 자기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새로운 사상체계를 정돈한 겁니다. 자기의 권력을 옹호하기 위해서 말이죠. 군주면 군주, 왕이면 왕, 그렇게 모든 것을 새롭게, 이것을 '재생산' 이라고 하는데, 다시 만든 것이죠. 즉 꾸몄다는 겁니다. 조작된 것이란 말이죠.

역사가 아닌 '계보' !!

역사란 그 시대에 단절이 돼있었는데, 그런데 단절되면, 즉 전통성이 없으면 왕의 자리가 오래 가지를 못합니다. 그러면 무엇을 우깁니까? 왜 "우리 민족은 유구한 역사를 가졌다" 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미셸 푸코는 역사를 지워버리고, 계보로 바꾸는 겁니다. 계보학은 니체에서 나온 말인데 말이죠.

계보학과 역사의 차이는 뭐냐 하면, 인간이 그 시대를 살면서 가지고 있는 자신의 몸, 자신의 신체가 자연스럽게 발산하는 분출하는 욕망이 있다는 겁니다. 인간은 그 시대마다 진리처럼, 그런데 푸코는 이것을 진리라 하지 않고 '지식' 이라고 하는데 말이죠. 그러면 지식을 어떻게 그 당시 권력에서 만들어내느냐는 겁니다.

진리가 아닌 '지식' !!

그 시대의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필요한 민중들에게 분배해준, 그 모든 진리체계를 푸코는 지식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에피스테메' 라고, 영어로는 '패러다임' 인데 말이죠. 패러다임은 그 시대에 필요한 인식의 틀이죠. 패러다임은 토마스 쿤이 이야기한 것이고, 푸코는 에피스테메라고 하는 겁니다.

그렇게 역사가 아니고 계보학이라고 하면, 시간의식은 소용이 없지요. 물론 시간의식이 없다는 말은 할 수가 없지만, 왜냐하면 인간은 시간의식이 있으니까 말이죠. 그런데 이것이 별로 소용이 없는데, 그러면 즉흥적으로 살아가면 된다는 겁니다.

밥 딜런과 미셸 푸코 !!

올해 노벨 문학상을 받은 사람이 팝 가수인 '밥 딜런' 인데, 그의 주장이 바로 그것입니다. 역사라는 것이 수상하다는 것인데, 역사를 자꾸만 가르치는 배후에 누군가가 있다는 말이죠. 그러면 누가 있겠어요? 미국과 같은 경우에는 미국의 정치사가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밥 딜런이 제일 먼저 반대한 것이 베트남 전쟁인데, 전쟁을 반대하면서 나름대로 이슈가 무엇인고 하니, 그는 히피로서 누구로부터 간섭받지 않고 정주하지 않는, 한 곳에 거주하지 않는 삶, 그것은 뭐냐 하면, 대지를 떠도는 삶이라는 겁니다. 그것은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이고, 반발이란 말이죠.

그러니 진리를 갖추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그때마다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새롭게 생긴다는 겁니다. 그래서 '바람한테 물으라' 라는 유명한 노래가 있잖아요? 그런 사상을 담고 있는데, 그러니 이런 것조차도 밥 딜런과 미셸 푸코가 관련성이 있다는 겁니다.

현대인들이 이런 미셸 푸코에 대해서 옹호하고 그의 사상에 동조한다고 했는데, 그러나 푸코는 그런 이야기를 하려고 자기의 사상을 펼친 것이 아닙니다. 미셸 푸코는 무엇을 이야기하느냐 하면, "나는 악마를 보았다" 라고 하는데, 상당히 절망적이라는 겁니다. 옛날에는 권력을 왕이 소지하고 있었는데, 따라서 반항하고 싶은 대상이 있어요. 삐치면 욕할 수 있는 대상이 있었다는 것이죠.

이성은 미쳤다 !!

그래서 미셸 푸코는 이성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이성은 미쳤다" 라고 말이죠. 이성이라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판단력'이죠. 규격화, 합리적인 것, 이런 것들이 전부 이성이란 겁니다. 정돈된 것, 지저분하지 않은 것, 깔끔한 것, 계획적인 것, 그렇게 규격화된 것이란 말이죠.

그런 것을 이성적으로 원칙을 만들고, 그 원칙대로 밀어붙여서, 그 원칙이 원인이 되어서 예상한 것에 합당한 결과물들을 시간이 흐르면서 내놓게 되면, 그것을 진보, 혹은 발달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이성에서 나온 제일 중요한 것이 데이터인데, 모든 인간을 데이터화를 시키면 된다는 말이죠.

그 시발점을 미셸 푸코는 '형벌의 계보학'을 통해서 증명해냅니다. 옛날에는 죄를 지을 경우에만 벌을 내렸어요. 여기서 옛날이란 말은, 중세를 지나서 르네상스에서 1789년 파리혁명까지를 고전주의 시대라고 하는데, 19세기는 근대이고, 그리고 20세기는 현대로 본다는 말이죠.

고전주의 시대에 나온 것이, 곤충채집을 할 때 어떻게 합니까? 곤충을 잡아서 분류를 하잖아요. 처음으로 데카르트 이후에 이성이 발달하게 되면서 모든 것을 분류하게 됩니다. 즉 데이터를 정하게 돼요. 분류를 할 때 인간의 이성이 동원되는데 말이죠.

그렇다면 한 번 생각해보세요. 인간이 어떤 대상을 볼 때 정리정돈을 한다는 것은, 인간 안에 감정이 앞서는 겁니까? 이성이 앞서는 겁니까? 자기 안에 정리정돈을 한 것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자기가 원하는 바대로 가지런히 정돈하고 싶다는 말이죠.

그렇게 정리정돈을 하면서 나온 것이, 프랑스에선 문법이 체계화가 됩니다. 문법이 체계화된다는 것은 언어가 체계화되는 거예요. 이렇게 언어가 체계화된다는 것은, 나중에 태어난 아이들은 이 기성세대의 언어의 문법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언어체계를 갖추게 되면, 계속 계보가 아니고 역사가 되어버리고, 그래서 순종과 복종이 계속 이어집니다. 순종과 복종이 인간의 몸에 각인이 되고, 그리고 이 몸은 습속, 또는 습관화가 돼버리죠. 그렇게 습관화가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고 하니, 다음 세대에 전해야 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진리체계가 돼버린다는 말이죠.

농경시대에서는 여자가 시집을 오게 되면,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당연히 부르는데, 서로 같이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농경시대라는 말은, 서로가 힘을 합치지 아니하면 그 넓은 토지에 농사를 지을 수가 없다는 말이죠. 그래서 농경시대는 가부장 제도라는 겁니다.

그런데 요즘은 산업시대이기 때문에 어떻게 됩니까? "이번 명절에는, 그만 수출에 클레임이 걸려서 힘들겠습니다" 라고, 산업시대는 다양화가 되어서 부모와 합체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죠. 그러나 농경시대는 토지의 생산물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는데, 그러니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겁니다.

자본주의는, '돈 놓고 돈 먹기' !!

그런데 십자가 운동이 벌어지면서, 베네치아, 그리고 이태리 남부 나폴리는 무역항으로 발달을 했어요. 무역이 발달하게 되면 토지에서 나온 생산물로 사는 것이 아니고, 무역은 시간차, 즉 시간을 따져서 이윤을 채택하는 겁니다. 이윤이 축적되면, 그게 단순히 돈이 되는 게 아니고 자본이 된다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금융 자본주의가 되게 되면, 옛날에는 노동해서 얻는 생산물이 나오는데, 그런데 이제는 시간에 따라서 돈 놓고 돈 먹기가 되겠지요. 그러니 있는 돈을 빌려주는 것이 자본주의가 아닙니다. 돈이 있어서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것은 옛날부터 있었다는 말이죠.

그러면 자본주의라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돈이 없어도 다른 사람의 돈을 빌려와서 필요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고, 거기에 대한 이윤을 붙여서 돈의 가치를 늘이는, 그것이 바로 자본주의라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돈 놓고 돈 먹기" 라는 말이죠.

이성적인 계산력 !!

이런 자본주의가 형성되기 시작하면서, 전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성적인 '계산력' 인데, 그게 굉장히 각광을 받게 된다는 겁니다. 토지에서 나온 것으로 생산을 얻던 것이, 이제는 이성적인 머리를 쓰는 자가 권력을 가지게 되는, 그게 입헌 민주주의의 시작인데 말이죠.

그렇게 해서 국회 중심, 상공인 중심으로 되면서, 이제는 토지와 관계가 없이 이성적인 계산에 의해서 부를 획득하고 생산물을 획득한 사람들이 권력층에 합류가 됩니다. 거기서 나온 문화가 바로크 문화이고, 로코코 문화라는 말이죠. 귀족들의 누리던 모든 스타일에 합류하게 된다는 겁니다.

여기서 기본적으로 재산이 문제니까, 재산이 많아서 협상하지 않으면, 15세기에서 17세기에는 계속해서 유럽에서 전쟁이 일어나는데, 전쟁은 용병을 모을 수 있는 돈이 없으면 할 수 없어요. 돈이 있어야 영토확장에 나설 수 있는데, 그리고 영토확장을 하게 되면 다시 백성들이 생기겠죠. 그래서 백성들이 하나가 되기 위해서 새로운 분류체계가 들어가는데, 그게 바로 17세기라는 말이죠.

17세기와 18세기는 단절이 !!

미셸 푸코는 17세기 이념과 18세기 이념에서 단절이 일어났다고 보거든요.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은 상당히 중요한 사건인데, 그 이전에 단절을 이해하려면, 17세기 때 인간들이 이성적으로 몸을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살펴보라는 겁니다. 그것은 토지를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고 몸에 지식이 입력되는데, 즉 이성적 지식이 몸에 입력된다는 말이죠.

토지 때는 그냥 자연스럽게 살아가면 되는데, 미셸 푸코의 책 중에서 '성의 역사' 라는 것이 있어요. 옛날에는 성에 대해서, 그리스 로마시대에는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너무 과도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다 용납되는데, 동성애도 괜찮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이 근대에 들어와서는 어떻게 되는고 하니, 이러한 성에 대해서 강력한 제재가 가해집니다. 함부로 성에 대해서 남발하는 것을 국가적으로 차단시켜버린다는 겁니다.

나는 악마를 보았다 !!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요즘 사람들에게는 조금은 이상하게 들리지 싶은데 말이죠. 성이라는 것을 지저분하고 더럽고 추잡한 것이라고 여기는데, 그게 바로 우리가 '인습화'가 되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이것을 두고 푸코는 "나는 악마를 보았다" 라고 하는데 말이죠.

악마가 바깥에 있으면 공격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것을 전술, 혹은 전략이라고 하는데 말이죠. 미셸 푸코가 말하기를, 권력의 전략이 뭐냐 하면, 바깥에 있는 공격하는 권력을 우리 안에 내재화를 시키는데, 즉 자율화를 시켜버린다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알아서 긴다는 말이죠. 자기가 알아서 스스로 뭐라고 합니까? "이러면 나빠. 이러면 좋아" 라고, 그렇게 권력에서 나온 지식을 장착해버린다는 겁니다. (자기 검열?)

담론의 공간(DISCOURSE) !!

유명한 철학자들이 용어를 자꾸 만들어내기 때문에 용어를 설명하는데 시간이 많이 가는데, 어차피 우리는 그들의 용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어요. 'DISCOURSE' 라고 해서, 이것을 '담론의 공간' 이라고 합니다. 담론의 공간이란 은연중에 무슨 뜻을 갖고 있냐 하면, 조직화가 되어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이것을 '언표' 라고 하는데, 이 언표라는 단어도 상당히 낯선 단어인데, 물론 담론은 요즘에 들어서는 조금 사용하기는 하는데 말이죠. 담론이란 말과 대화란 말은 서로 달라요. 만들어진 토양이 다른데, 담론은 미셸 푸코가 처음으로 이야기했다는 겁니다.

담론과 대화 !!

이 담론이라는 것은, "개개인은 평등한데 새롭게 모여서, 새로운 지식체계를 창조해볼까?" 라고 하는, 이게 담론의 공간이죠. 그러면 담론의 공간 이전의 언표의 공간은 어떤 뉘앙스가 있냐 하면, 언표와 담론을 연결시키면, "네가 임시적으로 만든 지식으로 언표 수준에 있는 나를 함부로 질책하지 말라" 라는 '자유 인권성'이 강렬하다는 겁니다.

이것이 대화와 다른 점인데, 대화라는 것은 "네가 익히 알고 있는 것을 우리가 지혜를 모아보자" 라는 것인데, 그러면 대화가, 즉 소통이 되지만, 담론이란 "네가 무슨 지식이 있든지 간에 너는 물을 권리가 없다" 라는 것을 강요합니다. 그러니 타인의 시선에서 그만 사라지는 겁니다.

존재와 주체, 그리고 고백 !!

미셸 푸코는 이 언표 수준을 '존재' 라고 하는데, 존재에서 담론 수준으로 보면 여기서 무엇이 나오는고 하니, 그 유명한 푸코의 '주체'가 나와요. 언표의 존재의 차원과 주체의 차원이 달라요. 무질서한 존재의 차원에서 담론의 차원의 주체가 조직화가 되는데, 여기서 고백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이것을 하나하나 설명하자면 시간이 많이 가지는데, 그래도 한 번 해봅시다. 이 고백은 옛날에 수도원에서 자기들끼리 그 유폐된 그물망에서 했던 것인데, 그때 누구한데 고백했겠어요? 수도사는 수도원장에게, 그리고 수도원장은 신에게 각자 고백을 했다는 겁니다. 유폐된 그물망에서 말이죠.

미셸 푸코에 의하면 고백은 이런 뜻인데, "언표의 주체와 언표 행위의 주체가 다르다" 라는 겁니다. 언표의 주체는, 예를 들자면, "나는 밥을 먹는다" 라는 것과, 이것은 언표의 주체인데, 그런데 "밥을 먹는 그 자가 나다" 라고 할 때는, 똑같은 내용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나' 라고 고백하면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 내뱉는다는 겁니다. 이것은 타인을 호출하는 것이란 말이죠.

유폐적 그물망에 갇힌 인간 !!

그래서 '주체' 라는 것은, 유폐된 그물망에서 호명을 당할 때 자기가 미처 몰랐던 주체가 생산된다는 겁니다. 백수일 때는 몰라요. 그러나 회사에 취직이 되면, 그 다음부터 권력의 그물망에서 신입사원이 되죠. 새로운 주체를 부여받는데, 그런데 거기서 잘리면 그 주체는 그만 날아가 버린다는 겁니다.

그러니 주체는 무엇을 염두에 두고 이해가 되느냐 하면, 자아는 아니라는 말이죠. 자아는 홀로 있을 때지만, 주체는 사회적으로 나왔을 때 유폐적 그물망이거든요. 그래서 푸코는 "나는 악마를 보았다" 라고 했는데, 즉 "이성적인 악마의 그물에서 벗어난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라고 하는, 그런 의미라는 겁니다.

그러니 미셸 푸코는 상당히 암울한 세상을 이야기했다고 할 수 있는데, 쉽게 말해서 "이 인간아, 그만 이렇게 되었어?" 라고 하는 것인데, 그 똑똑한 인간의 이성이 보편화가 되니까, 인간은 자기 이성의 전략과 전술에, 그렇게 스스로 늪에 빠져서 해결책이 전혀 없어지고 말았다는 겁니다.

해결책이 없어요 !!

미셸 푸코는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데, 해결책이 없어요. 이것은 지난 시간에 한 들뢰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달아나는 것밖에 없어요. 그런데 문제는 달아나 봐야, 1차원적으로 옆에서 옆으로 순환되어서 달아날 뿐이지, 달아날 다른 장소는 아무도 제시해준 적이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미셸 푸코의 사상을 제대로 모르고, 푸코가 동성애를 옹호하고 하니까, "미셸 푸코의 시대가 돌아왔다" 라고 한다는 말이죠. 미셸 푸코는 들뢰즈의 영향을 받아서 "앞으로 들뢰즈의 시대가 올 것이다" 라고 했는데, 사실은 니체나 하이데거나 서로가 다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겁니다.

아무튼 언표란 무질서한 것인데, 그게 조직화가 되고 담론이 되면, 여기에 인간의 이성이 주어졌고, 그러면 인간이 그동안은 토지 중심으로 살다가, 이제는 무슨 몸이라고 했지요? 몸은 무역을 하니까, 배를 타고 왔다갔다하니까, 이제는 땅에 매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아까 농경시대 이야기를 했는데, 이제는 그때처럼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 장소에 사는 것이 아니고, 이제는 왔다갔다하니까 새로운 권력을 생산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제 결혼을 해도 집에서 멀리 떨어진 촌에 있는 엄마 말을 들을 이유가 없는데, 새로운 가치관, 새로운 지식으로, 두 사람이 이성적으로 권력체가 만났으면, 몸에 각인이 된 권력에서 질서를 만들어낸다는 겁니다.

이제는 예방조치에 !!

제가 17세기와 18세기가 다르다고 했는데, 지금까지는 서론이고 이제는 본론에 들어갑니다. 17세기는 군주의 몸인데, 몸이라고 같은 몸이 아닙니다. '다미앵' 이란 사람이 군주한테 대들다 참수를 당하는 대목이 푸코의 '감시와 처벌' 이란 책에 나오는데 말이죠. 죄를 지었을 경우에는 형벌을 받는데, 18세기부터는 죄를 지을까봐 이성적으로 예방조치에 들어가요. 그게 이성적으로 효율적이라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차가 박았을 때는 벌금을 물고 교도소에 몇 달을 가있어야 하는데, 그런데 국가에서 과속하기 이전에 예방조치로 '시속 60' 이라는 표지판을 그만 달아버려요. 그러면 70을 달리면 사고가 나지 않더라도 거기에 합당한 벌금을 물게 돼있다는 겁니다. 이게 바로 오늘날이라는 말이죠.

죄를 짓고 형벌을 받는 것이 아니고, 죄를 지을 가능성을 내다보면서 사전에 법을 내재화해서 스스로 알아서 기도록, 그렇게 폐쇄적인 그물망으로 인간 전체를 덮어버리는 겁니다. 옛날에는 눈에 안 띠면 마음대로 해도 됐는데, 이제는 자기 안에 있는 법을 자기가 늘 의식하게 되는데, 알아서 조심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너는 악마야 !!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듣는 사람들이 "그게 정상이잖아요" 라고 하는데, 그래서 미셸 푸코는, "그래서 너희들이 악마다" 라고 하는 거예요. 스스로 악마가 되어간다는 겁니다. 즉 "너희들은 악마가 만든 전략에서 너희 몸은 빠져 나올 수 없다" 라는 것인데, 이미 몸에 각인이 돼있으니까 말이죠.

옛날에는 '성(性)' 이라는 것은 자연스럽게 허용이 됐어요. 그런데 르네상스 이후에 군주의 몸, 신하의 몸, 백성의 몸이 따로 있게 되었어요. 그러면 군주가 자기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지식을 준다고 했지요. 그 지식이 뭐냐 하면, "나는 첩을 두어도 너희는 안 된다" 라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고려시대이고 조선시대이라는 말이죠. 그러니 몸이라고 해서 같은 몸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것을 거역하면 어떻게 되느냐 하면, 거역할 때는 몸에 직접 처형을 가합니다. 그래서 다미앵은 공개처형을 당했어요. 그것도 빨리 죽으면 안 되니까 질질 끌고 했는데, 때리는 사람이 다 지치고 말이죠. 조선시대나 중국도 그랬지만, 말로 사지를 찧는다든지 해서 사람들에게 몸이라도 다른 몸이 있다고, 그렇게 군주가 자기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런 식으로 몸에 형벌을 가했다는 겁니다.

민주주의는 숫자노름 !!

1789년의 프랑스 혁명으로 인해서 왕이 쫓겨나는데, 그리고는 인권이 나옵니다. 평등, 자유, 박애라는 미국의 독립운동의 이슈를 프랑스 혁명이 그대로 받아서, 그래서 이 3가지를 모토로 해서, 이미 자본주의 시대로 접어들었으니까, 모든 인류는 평등하고 모든 인권은 신으로부터 나와서 어느 누구라도 누구를 지배할 수 없다는 겁니다. 민주주의가 뭐냐 하면,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그러니 진리는 뭐냐 하면, 숫자로 하자는 겁니다.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모토는 우리가 알다시피 '다수결' 인데, 이게 제일 중요하다는 말이죠. 하지만 마태복음 7장의 말씀과는 전혀 다르죠. 성경은 많은 사람이 찾는 것은 멸망의 길이라고 하는데, 그러나 민주주의는 그게 전혀 아니죠. 오히려 다수가 진리 쪽이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러면 그게 무슨 뜻일까요? 인간이 사는 세계는 인간의 이성으로 결정하는 것이지, 외부의 그 어떤 것도 여기에 관여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래서 미국의 헌법이나 한국의 헌법에서 무엇이라고 합니까? 그 사람의 인종, 민족, 종교, 양심에 비춰서 그 어떤 차별도 둘 수 없다고 한다는 겁니다. 동성애 부부라고 해서 부부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권한을, 그것을 헌법 자체가 일절 관여하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다는 말이죠.

사회계약설, 인권, 다 빈말이야 !!

존 로크는 이것을 '천부인권설' 이라고 했는데, 즉 "인권은 하늘에서 주었다" 라는 겁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인간을 다른 인간이 건드리지 못한다" 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여기에 대해서 "법은 어디에 있는가?" 라고 하면, 그것은 계약을 하면 된다는 말이죠. 그것이 바로 존 로크가 주장한 '사회계약설' 이라는 겁니다.

여기서 미셸 푸코는 묻는데, "사회계약설은 누구를 상대로 했느냐?" 라고 말이죠. 물론 '사람 대 사람' 이라고 하겠지만, 언제 수천만명이 거기에 사인을 다 했느냐는 것인데, 사람들이 그렇게 한 적이 없다는 겁니다. 아니 주민등록을 만들 때 누가 우리 중에서 계약한 사람이 있어요? 우리는 그런 적이 없는데, 그러니 사회계약설은 빈말이라는 말이죠.

그래서 전략이고, 전술 !!

그러면 뭐냐 하면, 그것이 규율인데, 계약은 누구와 했는고 하니, 한 사람은 없어요. 규율을 복종할지 말지, 그것은 자기가 결정해야지 누가 결정한 적이 없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규율은 내재화됐기 때문에 말이죠.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고 권력이 규율로 내재화한 것을 두고, 미셸 푸코는 전략, 또는 전술이라고 하는 겁니다. 이게 푸코의 뛰어난 점인데 말이죠.

분명히 각자의 인권을 존중한다는 것은 각자 이성을 존중한다는 것이거든요. 자신의 주장을 존중해준다는 뜻이란 말이죠. 그래서 계약대로 했다는 것은, 그것은 어디까지나 결과에 대한 핑계에 불과한데, 도대체 그런 계약을, 그런 규율을 옹호하고 복종하고자 하는 결정을 언제 했느냐는 말이죠.

미셸 푸코는 바로 그 점을 파헤치는데, 그래서 이것을 '주체의 분열' 이라고 해요. 권력이라는 악마가 이 세상을 그렇게 만들었고, 그 안에 주체는 분열이 되었는데, 어떻게 분열이 되느냐 하면, 1인 2역이라는 겁니다. 자기가 자기를 보고, 그리고 남을 감시하는,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1인 2역을 하게끔 규율이 내재화가 되어서, 즉 자발적으로 "이게 옳다. 이게 맞다" 라는 식으로 말이죠.

그래서 거기에 맞춤 인간이 되는데, 그런데 이런 악마적인 전술을 덮어버리기 위해서, 이것을 뭐라고 했는고 하면, '인권' 이라고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푸코는 "인간의 이성은 미쳤다" 라고 했는데, 그렇게 미쳤는데,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정상이라고 본다는 말이죠.

권력에 갇혀있는 인간, 방법이 없어 !!

그러면 여기에 대해서 여러분은, "그것을 자꾸만 미쳤다고 하면서 부정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라고 묻고 싶지요. 인권옹호가 미쳤다고 한다면, 그래서 다른 방법을 제시하라고 하면, 하지만 다른 방법은 없어요. 왜 없는고 하면, 인간은 권력에 갇혀있기 때문에 말이죠. 이게 바로 미셸 푸코의 사상이라는 겁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비겁한지 몰라요. 새로운 것에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으면서, 그것을 마치 새로운 것으로 여기도록 자기한테 계속 최면을 건다는 겁니다. "신혼이니 행복하지요?" 라고 하는데, 행복한 것을 누구한테 점검을 받고, 행복하냐고 누구한테 물어본 적이 있어요? 없는데, 그런데 자율적으로, 내부적으로 '행복하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것은 미셸 푸코에 의하면, "행복해야 된다는 것을 나에게 강요하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행복하다" 라고 하면서 우긴다는 말이죠. "신혼은 행복해야 돼. 이렇게 행복해도 돼? 이 행복이 끊어질까 걱정이 되지?" 라는 식으로, 똑똑한 이성이 자기를 합리화시키는 겁니다. 이성은 합리화인데, 무조건 말이죠. 그 다음부터는 "이 행복이 깨어질까?" 라고 하면서 똑똑한 이성이 또 생각을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행복하면서도 항상 불안한데, 그래서 무엇이라고 합니까? "여보, 오래 가자. 죽을 때까지 같이 가자" 라고 하는데, 누가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내부적으로 그렇게 한다는 겁니다. 이성 속에는 시간 의식이 있는데, 그래서 언제까지 갈지 계산하고 있다는 말이죠.

감시를 하고, 감시를 받고 !!

계속 나가봅시다. 아직도 초반인데, 아무튼 주체가 되게 되면 이렇게 됩니다. 결국 자기가 남을 감시하고, 자기가 남한테 감시를 받는 사람이 되고, 각자가 다 배우인데, 이것이 '바로 주체' 라는 겁니다. 인간은 몸이 있으면, 인간은 자아가 있는 것이지, 주체는 없다는 말이죠.

자기가 타인의 시선을 응시하는 순간, 우리가 주체로 살아간다는 것은 권력에 잠식되어 살아간다는 것이고, 우리는 권력이 요구하는 대로 담론의 공간에서 회자되는, 그 지식체계에 편승해줘야, 그래야 우리는 오늘날 인간으로서 대우를 받고, 남들이 인정해준다고 하는, 그것이 습속화가 되고 습관화가 되어서 살아간다는 겁니다. 그게 미셸 푸코의 주장이라는 말이죠.

제러미 벤담의 '파놉티콘' !!

이런 주체의 분석에 있어서 '제러미 벤담' 이란 분이 있어요. 공리주의의 시초인데, 그의 주장이 뭐냐 하면, '파놉티콘' 이라고, '일망조망방식' 인데, 이것은 감옥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중앙에 이렇게 감시하는 탑이 있고, 그 주변에 일층, 이층, 삼층, 사층으로, 이렇게 죄수를 가두는 곳이 있다는 말이죠.

여기에 통제하는 곳에서는 한 사람이 여러 사람들을 모두 다 바라볼 수가 있는데, 그런데 저쪽에서는 이쪽이 보이지 않도록 하는 겁니다. 이러한 일망감시방식이 근대적인 방식인데, 이러한 권력이 우리 이성 속에 내재화가 돼있다는 말이죠.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거나 할 때는 어떤 프로그램이 제일 재미가 있냐 하면, 그게 예능프로인데, 같은 예능프로라도 일반인이 나오면 재미가 없어요. 연예인들이 나와야 하는데, 가수들의 일상적인 이야기, 정치 이야기, 그러니 우리가 보는 이상 무엇을 감시한다는 겁니까?

"천만원 현상금이 걸린 우병우는 어디에 갔을까?" 라고 하면서, 그래서 우병우를 찾고 최순실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이런 일망감시방식이란 것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체제가 남을 훔쳐보고, 또는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주시하는 방식인데, 이게 우리 안에 내재돼있다는 겁니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

이런 내재돼있는 방식이 어디서 나왔는고 하면, 미셸 푸코는 17세기에 '벨라스케스' 라는 화가가 그린 '시녀들' 이라는 그림으로 설명을 해줍니다. 그 그림에 보면, 큰 캔버스의 뒷면이 나와 있고, 화가가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뒤에는 거울이 있는데, 왕과 왕비의 희미한 모습이 있고, 밝게 보이는 곳에는 신하가 있고, 그 앞에는 난쟁이들과 시녀들이 있는 그림이라는 말이죠.

여기서 미셸 푸코가 무엇을 묻느냐 하면, "이 그림을 보는 관람자는 어디 있는가?" 라고 해요. 화가가 그림 안에 들어있음으로 말미암아서, 모델이 왕과 왕비인데 거울에 비춰서 보이고, 왕과 왕비를 그리는 척을 하는데, 그런데 화가는 무엇까지도 수용하느냐 하면, 이 그림을 그리고 난 뒤에 관람객들이 보게 될, 그 사람들까지 의식을 하면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겁니다.

서로가 서로를 보지만 !!

그러니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고 하니, 결국 17세기 이후의 모든 언표는, 모든 담론은 서로가 서로를 보는 겁니다. 서로가 서로를 본다는 말은, 언어가 사물과 일대 일로 대칭이 된다는 것이 아니고, 비가시적 영역까지 포함해서 전부가 공명이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보이지 않는 층까지 서로 서로 소통하고 서로 공명을 하는데, 즉 울리는데, 보이지 않는 곳까지도 충분히 울린다는 말이죠. 그래서 누가 주인공도 아니고, 누가 대상도 아니고, 대상과 주인공이 서로 공명하는 그 사이에 담론이 형성되고 언표가 형성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결국 우리는 갇혀있는 셈이죠. 남들이 말하는 생산된 지식체계로, 담론 바깥에 있는 우리까지 지시하고 요구할 수 있는, 사실은 요구하는 정도가 아니고 당연히 그래야 된다는 식으로 권력체제가 우리 자신의 내부에 이성이라는 이름으로 장착될 때, 우리는 인권적인 존재로서 남한테 인정을 받게 된다는 말이죠. 우리는 지금 그런 시대에 놓여있다는 겁니다.

10분만 쉽시다.

2017,10,09 재정리함 - 녹취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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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놉티콘(Panopticon) - 판옵티콘, 패놉티콘, 팬옵티콘은 영국의 철학자이자 법학자인 제러미 벤담이 제안한 일종의 감옥 건축양식을 말한다. 파놉티콘의 어원은 그리스어로 '모두'를 뜻하는 'pan'과 '본다'를 뜻하는 'opticon'을 합성한 것으로 벤담이 소수의 감시자가 모든 수용자를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감시할 수 있는 형태의 감옥을 제안하면서 이 말을 창안했다. 벤담은 자신의 제안서에서 이 감옥의 본질적인 장점을 한 단어로 표현하기 위해, '진행되는 모든 것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는 '파놉티콘'이라고 부를 것이라고 하였다.

※ 푸코의 파놉티콘 - 벤덤의 개념은 실제 감옥 건축에서 보다 철학적으로 더 고찰의 대상이 되었다. 프랑스 철학자 미셀푸코는 그의 저서 《감시와 처벌》(Surveiller et punir, 1975)에서 벤담의 파놉티콘 개념을 다시 부활시키고 고찰하였다. 푸코에게 있어서 파놉티콘은 벤덤이 상상했던 사설 감옥의 의미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것은 새로운 근대적 감시의 원리를 체화한 건축물이었고, 군중이 한 명의 권력자를 우러러보는 '스펙터클의 사회'에서 한 명의 권력자가 다수를 감시하는 '규율사회'로의 변화를 상징하고 동시에 이런 변화를 추동한 것이었다. 푸코의 파놉티콘은 현재 정보화시대의 '전자감시'와 많이 흡사하다. 1970년대 중반 이후 다양한 감시와 통제의 방법이 컴퓨터 데이터베이스, 폐쇄 카메라, 신용카드와 같은 전자 결재나 인터넷을 통한 소비자 정보의 수집이라는 형태로 널리 사용되었다. 푸코에게 파놉티콘은 근대 '권력'을 아주 잘 설명해주는 장치다. 파놉티콘을 통해 새로운 권력행사 방식을 알 수 있다고 보았다. 파놉티콘에서 고찰한 푸코의 권력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작용'하는 것이며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하는 것으로 보았다. (위키백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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