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안양20171013a약1장12절(천국의 조건)-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야고보서

안양20171013a약1장12절(천국의 조건)-이 근호 목사

시작하겠습니다. 야고보서1장12절인데요, 오늘 본문은 정말 어렵습니다. 정말 어려워서 저도 엄두가 나지 않는데요. 일단 읽어볼게요.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이리 되어있지요.

시험 안하고 구원할 수 있잖아요. 우리가 아는 것은 예수님께서 시험을 받으시고 이겼잖아요. 그러면 예수님만 시험 받으면 되지 우리까지 시험받을 이유 없지 않습니까? 그런 생각을 다 해보셨겠지요. 우리는 원래 죄인이잖아요.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이길 수 없지요? 답변해 보세요. 그렇지요. 그러면 시험을 한 사람만 합격하면 그만이라 이 말이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했습니다.

그러면 다 이루었다. 하는 것은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지면 우리는 어떻게 됩니까? 다 이룬 게 되잖아요. 뭐가 더 필요합니까? 그런데 여기에 보면 시험 속에 그러니까 시험이라 하는 것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테스트고 하나는 유혹 템테이션인데요. 어쨌거나 두 개다 이게 결합이 되어있어요.

자, 어려우니까 결론부터 말씀부터 드리는 게 좋을 거 같아요. 뭐냐 하면 개인구원에 있어서는 방금 이야기한 예수 십자가 지시고 다 이루었기 때문에 성령 주셔가지고 선물로 줘서 우리가 그냥 구원받아버리면 우리는 시험이고 유혹이고 필요 없습니다. 그냥 구원돼요.

그런데 여러분들 제가 방금 이야기한 그대로 이해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이 다 이루셨고 우리에게 그냥 성령을 주게 되면 그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 받는 거, 그런 식으로 알고 계십니까? 이런 식으로 알고 있으면 시험이란 말이 들어갈 여지가 없다 이 말입니다.

주님께서 시험을 다 통과 했는데 우리가 또 왜 시험을 받아야 돼요? 우리가 알아서 시험이기면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구원받는 게 아니고 내가 시험을 이기기 때문에 구원을 받는 셈이 되잖아요. 그건 복음이 아니지요.

그렇다면 이 야고보서의 이야기가 우리한테 설득이 안 된다 이 말이지요. 왜 우리한테 하나님께서 시험을 이렇게 하느냐, 어려움을 주시는가 시험이니까. 여기서 해답부터 먼저 말씀드린다고 했으니까 뭐냐 하면 이걸 생각해야 돼요.

개인구원이 아니고 전체구원이에요. 개인구원 같으면 개인 같으면 나만 달랑 구원 받으면 그만이에요. 나만. 개인구원은 무슨 론이냐, 이걸 가지고 구원론이라 하는 겁니다. 구원론. 예수님이 일하시고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이 개인을 구원하려고 일하셨다고 한다면 개인적인 시험이나 유혹이나 그런 것은 필요치 않습니다. 아까 그 논리에 의하면. 하나님이 오신 것이 구원시키려고 온 게 아니에요.

전체구원이 되어버리면 전체구원에서 나온 게 구원론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는 이런 분이다.” 가 나와요. 전체구원에 있어서. 개인 구원 같으면 십자가 다 이루었고, 나 믿음 없었는데 주께서 믿음 선물 줘가지고 나만 달랑 거둬들여서 헤헤거리면서 천국 달랑 가면 끝이에요.

그런데 전체구원 보게 되면 구원이 나오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가 나와요. 예수 그리스도가 이루는 나라가 나와요. 같은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룬 나라가 나와요. 하나의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아버지가 한 달 만에 출장 와가지고 맛있는 만두를 사왔다 합시다. 철없는 애들이 야~ 만두다! 하고 먹었습니다. 먹고 맛있고 배불러서 들어가 잤습니다. 아버지하고 아무 대화도 없이.

그럼 아버지가 기분 좋겠습니까? 섭섭하시겠습니까? 만두에 미쳐가지고 만두만 먹고 제 방에 갔다 말이죠. 그거 개인구원이지요. 그런데 아버지가 원하는 것은 아버지 어디 다녀오셨어요? 아버지, 만두 어디서 사왔어요? 아버지, 만두 사온 이유 뭡니까? 우리를 그만큼 사랑한다는 뜻이지요? 아버지가 우리를 그만큼 그리워했다는 뜻이지요? 뭔가 만두 말고 물질적 만두 말고 다른 것을 알리기 위해서 만두를 사왔는데 애들은 만두 먹고 각자 방으로 다 들어갔다 말이죠. 아버지 혼자 남고. 출장 가나 안가나 멀쩡하니 된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만큼 중요하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너희를 사랑한다. 지금 이 이야기하려고 구원이란 만두를 사왔는데 땅에 있는 인간들은 자기밖에 몰라요. 자기 죽어서 좋은 나라에 가는 그것만 생각해가지고 전부다 가버렸다 말이죠.

그러니까 개인구원이 이렇게 비성경적이에요. 개인구원이. 그런데 어느 교회치고 구원론부터 시작하지 않는 교회가 어디 있어요? 구원론에서 시작해서 구원론으로 끝나버려요. 이렇게 하시면 구원받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순종도 해야 돼요. 그래야 구원받습니다. 구원을 미끼로 상품을 걸어가지고 계속 뽑아내고 뽑아내고 계속 하는 거예요. 그러면 주기 싫어도 이왕 시작한 구원을 마무리 짓기 위해서 계속 내는 겁니다. 마치 변액보험처럼.

처음 조건하고 다른 조건이 계속 나오는 거예요. 다른 조건이. 보험료 또 인상했습니다. 안 그러면 무효입니다. 지금 탈퇴하면 손해 많습니다. 해가지고 계속 그 보험에 억매이도록 하는 것처럼 교회가 인간들이 구원 욕심낸다는 것을 알고 거기를 공략해가지고 개인구원으로 다 이야기를 해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구원이야기하면 사람들이 솔깃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하게 되면 흐흠~ 시큰둥해요. 자, 그러면 문제가 제가 이렇게 단출하게 정답을 말씀드렸는데 여기서 더 나아가야 돼요. 정답에서 끝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개인구원을 위한 게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드러내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고 제가 방금 말씀드렸는데. 이런 논리가 나오기 위해서는 더 중요한 것이 아주 많이 남아있어요.

이거 중요하기 때문에 제가 빨간 걸로 적겠어요. 일단 여러분에게 물어보겠습니다. ➀번 내가 살아있다. ➁번 예수님이 살아있다. 어느 게 맞습니까? 성경에서는 예수님이 살아있어요. 그런데 성경만 덮어버리면 누가 살아 있느냐 하면 개가 살아있고 인간들이 살아있어요.

그러면 인간들의 모든 고민은 예수님이 안 살아있을까 싶어서 고민하고 걱정합니까? 아이고, 예수님이 살아서 일해야 되는데..., 이것 때문에 고민합니까? 아니면 내가 더 풍요하게 행복하게 무탈하게 아무 걱정 없이 주여 살려주옵소서. 자기 사는데 급급해 가지고 고민거리잖아요. 자기 사는데.

⓵번을 포기 못하고 보니 ⓵번에 뭐가 붙느냐 하면 ⓵번 바탕에다가 성경을 이렇게 거기다가 연결시켜버려요. 이걸 누가 아느냐, 살아계신 예수님이 알고 하나님이 알아요. 이걸 잘못된 연결을 뭐라고 하는가 하면 이걸 시험이라고 합니다. 시험.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시험하지 않는다 했거든요.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했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이 말을 안 믿어요. 왜? “하나님, 예수를 믿는데 왜 이렇게 유혹거리가 많고 이렇게 시련이 많습니까?” 유혹거리 + 시련 = 시험이라고 봅시다. 유혹거리 + 시련이 시험인데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이런 시험을 우리한테 안 해줬다 이 말이거든요.

그러니 제가 강의 처음에 할 때 말이 맞지요. 예수님 다 이루시고 우리에게 그냥 주셨다는 말이 맞지요.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유혹 + 시련 이야기를 우리한테 아무도 안한다고 이야기하면서 왜 이걸 거론하느냐 이 말입니다. 점점 어려워집니까?

아무도 하나님은 인간에게 시험을 안 한다 했잖아요. 이거 봤지요? 안하면 아예 말도 안 끄집어내야지 괜히 안한다 해놓고 말을 끄집어내서 뒤숭 생숭하게 만들어버렸다 이 말이지요. 그게 우리 개인 목적이 아니고 예수님이 어떤 분이냐를 드러내기 위해서 했지요.

그래서 내가 뭘 알면 구원받습니까? 하는 그런 안목으로 하시면 그건 오히려 없다는 시험에 스스로 거기에 맨발로 기어들어가는 꼴이 돼요. 시험이 오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알아서 시험거리 속에 어푸 어푸 바보 등신같이 지금 끼어들고 있는 거예요. 시험에. 아휴~ 이게 얼마나 중요한 이야기입니까.

예수님은 분명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지은 자들아, 다 벗으라 했잖아요. 그런데 우리 당사자가 우리 짐을 벗을 생각을 안 해요.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하겠다는 거예요. 사람이 자기 인생 자기가 알아서 할 때 제일 보람도 느끼는 거거든요. 내가 해결했다는 것.

이왕 어려운 거 할 수 없다. 쉽게 해도 어려운 거 어렵게 해 봅시다. 자, 물어봅니다. 조선시대 사람들이 조선시대 끝날 부분에 1919년에 삼일운동 있었고 그 전에 1908년에 한일합방이 있었지요. 그때부터 조선 사람은 일본사람보다 계급이 낮은 식민지가 돼요. 그러면 우리가 그 시대에 태어났다 칩시다. 그러면 둘 중에 하나밖에 없어요. 죽던지 아니면 일본 사람에게 복종하던지 둘 중에 하나에요. 복종 안하면 죽어야 돼요. 살고 싶으면 복종해야 돼요. 이걸 선택이라고 합니까? 아니면 이걸 운명이라고 합니까?

이건 선택이 아니지요. 이건 우리보고 선택한다는 자체가 말이 안 되지요. 길에서 강도가 돈을 내놓을래? 목숨을 내놓을래? 할 때 우리보고 지금 선택하라는 거예요? 그냥 돈 내놔! 라는 뜻이잖아요. 돈 내놔! 가만히 있어보세요. 내가 한 번 고민해보고. 이거 아니잖아요.

지금 인간이 우리를 너무 몰라요. 우리는 우리 인생을 평소에 내가 선택해서 애를 어디를 보낼까? 의대를 보낼까? 법대를 보낼까? 자꾸 선택하는 버릇이 있어요. 산부인과에 가서 여보 딸 낳으면 좋겠다. 아들 낳을까? 이번에 딸 낳으면 다음에는 아들 낳아야지. 우리는 모든 인생을 내 선택과 선택의 중첩이에요. 선택을 이렇게 연결시켜서 오늘날 내가 이만큼이라도 내가 살아왔다고 자부하고 싶어요. 우리는.

그러니까 내 인생은 내가 관리하는데 그 버릇을 가지고 예수 믿는 것도 내가 알아서 부처대신 예수를 선택해서 그러니까 부처대신 예수를 선택했다는 말은 예수 믿기로 작정했다는 말은 평소에 하던 행세대로 또 선택을 한 거예요. 내 의지로 선택해서 그것들이 모아서 내 인생을 점점 더 향상되고 나중에 팔자 펴는 쪽으로 그리고 미래가 보장되는 쪽으로 나는 인생 성공했다는 말을 내가 외치고 싶은 겁니다.

그럴 때 만약에 어떤 어려움이 오고 시련이 오고 유혹이 온다면 시련, 유혹 둘 다 있는 예가 뭐냐 하면 마태복음 13장에 보면 씨 뿌리는 비유가 나옵니다. 씨 뿌리는 비유를 보면 씨를 뿌릴 쌔 마귀가 듣고 씨앗을 먹어버렸지요. 마귀가. 두 번째는 뭐냐, 씨를 뿌리는데 돌짝 밭에 떨어졌어요. 이건 시련입니다. 세 번째 씨앗이 돌짝 밭은 통과했는데 가시덤불에 올 때는 예수님이 풀이하기를 그건 유혹이에요. 세상 돈과 세상사람 되고 싶어 하는 세상 사람과 어울리고 싶어 하는 유혹 때문에 복음의 열매를 맺지 못한다. 그게 하늘나라 천국이야기거든요.

그러면 예수님의 마태복음13장 씨 뿌리는 비유는 다른 말로 하게 되면 무슨 뜻이냐 하게 되면 현재 니 형편, 니가 평소에 어떤 생각으로 현실을 구성하고 있는가를 씨 뿌리는 비유로 우리에게 알려준 겁니다. 그리고 거기서 빠져나와야 돼요. 그런데 못 빠져 나와요.

왜냐하면 우리가 이 세상에 살다보니까 세상 자체가 우리의 목적이기 때문에 그 목적에 부합되도록 우리는 거기에 맞추어서 나라는 인간을 행동을 내가 조절해 왔습니다. 나는 옳은 걸 선택하겠어! 저런 걸 선택하겠어! 그런데 그 선택 자체가 사실은 선택이 아니고 이 세상을 속이고 있는 악마에 의해서 우리가 밀어붙이는 거예요. 몰아세워진 형편입니다. 죽거나 아니면 복종하거나. 죽을 인간 누가 있어요? 복종하지.

그러니까 살고 싶어 하는 그 마음가짐 안에는 뭐가 들어 있느냐 하면 평소에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선택해서 하겠다는 그것이 점점 더 그 사람으로 하여금 갈수록 내가 살아있다는 더 혹독하게 이 세상과 더불어 체험하게 만들어요.

그러면 내가 살아있음이 강렬하면 뭐가 살아있음이 희미해집니까? 처음부터 예수님이 살아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내가 너무 살아있으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살아있다는 것이 들 느껴져요. 제가 지금 그 이야기하고 싶은 거예요. 개하고 친하지요. 그런데 몸이 아파보세요. 개 아픈 거 생각 안 들지요. 그 순간이 뭐냐 하면 평소에 말은 안 해도 내가 살아있는 것이 나의 거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다는 뜻이에요. 전부를.

그런데 우리는 그걸 정상이라고 보지 성경에서는 야고보서는 그걸 정상이라고 보지를 않고 시험에 푹 빠졌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제 이해되십니까? 이 글이. 하나님은 시험을 안 하는데 우리가 지금 어떤 형편인가 하면 이미 우리는 아예 시험을 불러. 요청해. 시련과 유혹을 아예 우리는 그것과 더불어서 투쟁하면서 살아가는 그 방식 외에는 다른 방식을 알지를 못해요. 우리가 인생 살면서.

내 인생 내가 알아서 살겠는데 세상은 와 나를 안 도와주노? 신이시여, 뭐하십니까? 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십니까? 라고 불평불만 하는 이유가 세상이 만들어낸 작품 중에 하나가 우리가 되고 말았어요. 세상이 만들어낸 작품이에요.

우리는 세상이 전부 내 중심이라고 생각하지만, 세상의 통합적인 전체를 볼 때는 우리는 내가 나한테는 중요하지만, 어느 날 내가 죽어도 누군데? 누구 죽었어? 아는 사람 같으면 부주 얼마하고 난 뒤에 6개월도 안 되어서 다 잊어버립니다. 다 잊어버려요. 화초가 있을 땐 좋지요. 그런데 나중에 2년 동안 출장 갔다 와서 화초 하나 없어버리면 그다지 화초 없다는 게 아쉽거나 하지 않지요.

물어봅시다. 여러분에게. 여러분이 뭐가 가장 아쉽습니까? 그냥 뭐가 가장 소중해요? 여러분 자신에게. 1번 자식. 2번 개. 3번 친구. 4번 나. 어느 게 가장 소중합니까? 나는 나 때문에 살아요. 그런데 그 나는 나 때문에 내가 지옥가요. 왜냐하면 나 때문에 사는 사람을 천국에서는 안 받아줍니다. 참~ 이런 소리하려고 내가 평생 살아왔습니다.

사람들이 천국이야기해도 자꾸 건성으로 듣는데요, 건성으로 듣지 마세요. 평소의 우리의 삶은 나를 위해 살고, 주께서 받아주는 천국은 나를 위해 사는 것은 아예 안 받고. 그 중간에 낀 목회자 입장에서 저보고 어쩌란 말이에요? 도대체. 아니 내가 마땅히 해야 될 일이 뭡니까? 사람 편에 설까요? 아니면 천국 편에 설까요? 뭘 원하는데요?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을 위해서 열심히 살았습니까? 잘 했습니다. 지금 설교단에서 강의하면서 그 소리할까요? 여러분들은 오직 최종적으로 여러분들을 위해서 삽니다. 그런데 죄송합니다마는 안 받아줍니다. 이 이야기하라고 제가 지금 복음 전하잖아요. 이 이야기하라고. 그래가지고 교인 다 떠나고 아무도 없어도 할 수 없지 뭐.

제가 마땅히 할 거. 눈치 보지 말고 무엇 때문에 내가 여기 존재하는가. 성령께서 주신 거 마땅히. 그건 세상이야기하고 사람 좋아라 하는 게 아닙니다. 천국 이야기하라고 복음 이야기하라고 선거예요. 그래서 제가 한 번 적어왔습니다.

자, 천국 문 앞에 섰습니다. 천국 문 앞에 서다. 소설이라 생각하지 말고 실제라고 봅시다. 천사가 말합니다. ①번 천국까지 왔는데 신앙생활 한 50년 했는데 권사 되고, 장로 되고, 목사 되고, 신학교수 되고 했는데 천사가 하는 말이, “조건이 안 맞네요.” 이리 나오더란 말입니다. 마트에 물건 살 때 또는 뭔가 미끼 상품 쓸 때 줄을 섰는데 딱 내 앞에서 두 사람 앞에서 물건 다 나갔습니다. 실컷 한 시간 섰는데 내 뒤는 많은데 그 앞에 하는 말이 “끝났습니다.” 또는 “조건이 안 맞네요.” 이럴 경우에 줄을 잘못 선 거예요. 줄을 서도 소용없는 인생을 살아온 겁니다. 줄 서도, 교회가도 소용 없는 것.

여기에 대해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왜 그러느냐 하면 교회니까 줄 서서 들어가면 천국에 골인되는 줄 알고 있었어요. 교회에서 사기를 쳤거든요. 천국 조건을 이야기 안했던 거예요. 천국 조건을 이야기하지 않고 뭐라고 했느냐 하면 교회에서 뭐라고 하느냐 하면, “여러분은 살아있습니다.” 두 번째 “더 살고 싶습니까?” 세 번째 “여러분이 열심히 무엇, 무엇 하시면 천국 갑니다.” 이렇게 한 거예요.

이 세 개 중에서 천국의 조건 하나도 없어요. 여러분들이 살고 싶어서 교회 왔음을 교회에서 뭐하느냐 하면 박수를 쳐주는 거예요. 이게 박수 칠 일이 아닌데, 절에 안 가고 교회 왔다는 자기 선택이잖아요. 인간이.

나는 절에 안 가고 교회에 왔다. 그 자기 선택에 대해서 교회에서 박수를 쳐버린다 말이죠. 박수를 쳐버리면 인간이 어떻게 되느냐 하면 인간은 내가 선택을 올바르게 한 나의 선택이 나를 살린다는 원칙을 그냥 붙잡고 살아가는 셈이 되어버려요.

여러분, 절에 안 가고 교회 와서 구원 받았습니까? 아니면 예수님께서 여러분들을 택하여 세워서 구원받았습니까? 아~ 이거 너무 이론적이지만 하여튼 여러분에게 물어봅니다. 성경에 뭘로 되어있어요? 수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오직 나는 너희만 알아서 택했나니. 분명히 먼저 택했지요.

요새 수요일에 한 이야기가 뭡니까? 야곱과 에서가 태어나기 전에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다 선택했잖아요. 주님이 택했잖아요. 주님이 택한 순간 나의 선택은 거기서 빵! 하고 이게 사라져버려야 된다 이 말이죠. 설사 내가 의대 안가고 법대 간 그 선택도 전에는 이 복음을 몰랐을 때는 내 선택인 줄 알았는데 복음을 알고부터는 이게 내 선택이 아니고 주께서 그렇게 몰아넣었다는 사실을 소급해서 주의 선택으로 이게 전환시켜야 돼요.

그러니 천국의 조건이 뭐냐 하면 내가 살아있는 것이 아니고 내가 살아서 어디 갈까? 법대 갈까? 우리하고 관계없는 이야기지만. 어디 갈까? 법대 갈까? 이 말은 현재 기본이 뭐냐, 내가 살아있으니까 살아있는 내가 어디 갈까? 복음을 알고부터는 내가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누가 살아있었어요?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있었어요. 아무도 이야기해 준 사람 없지요. 교회에서 건성으로 했어요. “주님은 살아 계십니다. 교회 안에.” 건성으로 이야기했지 실제로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군화발로 밟아주는 사람이 있음을 아무도 이야기한 사람이 없어요. ‘아~ 주님도 살아있고, 나도 살아있고, 그러니까 나는 주님 앞에 순종하면서 열심히 하게 되면 천국 문 앞에 가면 골인하겠지.’ 이렇게 너무 쉽게, 안일하게 생각한 거예요.

지금 소리가 웅~~하고 지금 시끄럽잖아요. 주님 살아계시는 겁니다. 우리가 선택했습니까? 이거. 우리 공부하는데 와가지고 하수구 청소해 달라고 전화 걸었어요? 아니지요. 세상은 나의 선택이 많아요? 나의 선택이 아닌 게 많아요? 나의 선택은 코앞에 있는 거 있잖아요. 물마실까 말까? 기껏 이 정도. 이거 물 마신다고 북한의 김정은 핵 포기 하겠습니까? 안하지요.

사람의 선택이라 하는 것이 기껏 자기의 작은 행복, 고정도 수준밖에 안돼요. 그래서 전쟁이라 하는 것은 사람을 비참하게도 만들지만, 인간의 본색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유명한 그 노벨문학상이라든지 모든 작가들의 중요한 작품들 가운데 톨스토이 같은 전쟁과 평화, 전쟁이야기 나와요. 도스토예프스키도 마찬가지고. 전쟁은 소위 까불락, 까불락, 하는 모든 게 나는 좋은 집, 니는 가난한 집하다가 갑자기 북한에서 수소폭탄 서울에 터트려버리면 백만명 죽어버려요. 그러면 좋은 집이고 뭐고 없어요.

며칠 전에 미국 캘리포니아에 산불 났거든요. 수천 채가 탔습니다. 그런데 그런 집들이 학고방 집이 아니에요. 한 결 같이 돈 벌어가지고 산 속에 조용하게 살려고 소위 젊을 때 잘나가는 사람이 자식들 장가 시집 다 보내고 돈 다 몰아넣어가지고 지은 집들이에요. 멋들어진 집들이에요. 그런데 불이라는 전쟁이 나타나니까 그게 초가집인지 저택인지 그 불앞에서는 의미가 없는 거예요. 의미가.

다니엘 세친구가 불 속에 들어갔을 때, 들어가기 전에는 니는 왕이고 나는 그냥 신하지만 막상 불 속에 들어가니까 불에서 살아남은 자와 그렇지 못한 자 두 부류로 나눠버립니다.

자, 강의 한 번 여기서 결론 내려 봅시다. 인간은 선택이 가능하다? 선택이 가능하지 않다? 인간은 선택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뭐라고 하느냐 성경에서는 딱 둘로 이야기해요. 이방인이냐? 이스라엘이냐? 딱 둘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는 어디에 속합니까? 이스라엘에 속합니까? 이방인에 속합니까? 이스라엘이 아니고 이방인이죠. 이방인 되었다는 게 우리의 선택이었습니까? 나는 날 때부터 이스라엘 할 래. 이런 천재 없지요. 그렇다면 이방인이란 그 이름을 누가 붙인 겁니까? 우리가 붙인 겁니까? 주님이 붙여줬지요. 주님이 붙였으니까 뭐냐 하면 이름을, 명칭을, 개념을, 붙여준 분이 살아있는 거고요. 우리는 그 분이 붙여준 그 명칭 안에서만 살아있는 거예요.

따라서 우리는 조건부로 살아있어요. 만약에 우리가 이방인, 이스라엘 이런 기준 자체를 나는 개무시하고 나는 모른다하면 그 인간은 죽은 인간이에요. 그래서 언약 안에 있으면 살고, 언약 밖에 있는 사람은 죽은 인간이에요. 주님이 살아있으면 그냥 살아있는 게 아니잖아요.

물어봅시다. 자, 주님이 살아있다. 그러면 그냥 하늘에서 팔짱끼고 살아있습니까? 아니면 지상에서 부지런히 활동하면서 살아있습니까? 활동하면서 살아있지요. 오늘 오전에 활동한 거 이야기해보세요. 여러분 가정에서 주님이 오전에 활동한 거. 없지요. 왜? 본인들이 활동했기 때문에. 본인들이 운전하고 왔잖아요. 모든 생각을 본인만 살아있다고 아침부터 눈떠서 시작해가지고 꿈속까지 내가 살아있어요. 주님은 언제 살아있는데?

다만 내 선택이 깨졌을 때, 내 뜻대로 안 될 때, 고민 고민해도 해결 안 될 때, 그리고 우리가 묻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누구보고 물었는데? 그냥 물었어요. 왜 이렇습니까? 내 인생 이 모양 이 꼴입니까? 주여, 내 뜻대로 내 인생 이렇게 원대로 안 해주십니까? 물을 때, 다른 인간들은 “니 지금 누구보고 묻는 거야?” “니는 몰라도 돼” “나 주님보고 묻는 거야.” “니가 살아있어. 바보야! 주님 없어. 안보이잖아. 주님 안 살아있어.” “아니야, 니는 몰라. 주님 살아있어.”

사도바울이 사도되기 전에 예수 믿는 사람 잡아갔지요. 주님 찾아왔을 때 무슨 얘기 했습니까? 다른 사람은 우레가 울었는데, 사도바울은 뭐라고 했습니까? “주여, 누구십니까?” 지금 누구보고 이야기한 거예요? 생전 처음이에요. 사울 그 사람한테는. 사울 그 사람한테는 물어볼 사람 없어요. 헛소리 할 사람이 아닙니다. 똑똑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최초로 why me lord? 주여, 왜 저에게? 주여, 누구십니까? 이게 바로 순간의 사도바울은 자기가 죄인인 것을 알고 그 순간이 모든 게 OK가 된 거예요. 예스가 된 거예요. 모든 것을 다 알아버린 거예요. 그동안 자기가 살아있어요. 자기가. 자기가 살아있어서 성경연구하고 율법연구하고 하나님 섬기고 하나님 어떻게 순종하면 기뻐하시겠습니까? 영광 돌리고 찬송하고 난리도 아니었지요.

그런데 그 모든 것이 내가 살아있는 것을 이걸 시발점으로 한 게 이게 천국 조건에 안 맞는 거예요. 천국은 뭐냐 하면 내가 살아있으면 안되고 누가 살아있다? 주님이 계속 살아있고 주님이 동행할 때만 거기에 들어갈 수 있는 조건. 이게 천국입니다.

이걸 다른 말로 하면 내가 주인공이 아니고 누가 주인공이다? 예수님이 내 안에 살아있는 사람, 그 조건이 죽기 전에 미리 앞당겨서 성령을 통해서 그 조건이 형성되면 우리는 오늘 오후 언제 죽어도 이 공사 끝나고 죽어도 우리는 걱정 하나도 할 게 없어요. 그 마리아 마르다 오빠가 죽었잖아요. 천국 갔지요. 나흘만에 도로 돌아왔지만. 예수님이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이건 빈 말이 아니에요. 이건 믿으라는 말이 아니고 내가 그 오빠를 믿게 한 거예요.

그러면 오빠는 죽어도 살아있어요. 왜? 예수님이 그 앞에 살아있으니까? 지금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까? 우리는 지금 오빠 죽은 걸 쳐다보면 안돼요. 마리아 마르다가 오빠 죽은 거 때문에 예수님을 원망했는데. 니 왜 눈을, 오빠 지금 어디 갔어? 이러지 말고, 지금 자기와 함께 있는 분이 누구에요? 예수님이죠.

예수님이 살아있으면 오빠는 그냥 예수님 안에서 살아있는 거예요. 믿음이라 하는 것은 내 개인구원을 위함이 아니고 예수님이 누구신가가 돋보이기 위해서 믿음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이 살아있으면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라 했잖아요. 예수님 살아있으면 되는 거예요.

그럼 우리의 하루 하루 삶의 목적이 뭡니까? 내가 살아있다는 걸 남한테 과시하기 위함입니까? 아니면 예수님 살아있음을 증거하기 위함입니까? 성령 받은 사람은 예수님이 살아있다는 걸 증거하기 위해 있는 거예요.

하나의 예를 들면, 이 집에 개가 있거든요. 이 집에 개가 있고 옆집에 개가 있다고 칩시다. 이 개가 밖에 나가 오래간만에 옆집 개 친구를 만났다 칩시다. 둘이 무슨 대화를 나누겠습니까? 꼬리 흔들면서. “야, 니 요새 많이 예뻐졌다.” 하겠어요? 아니면 주인이야기 하겠어요? 동화에 그런 게 있어요. “니 주인이 요새 발로 차지? 술 먹고 들어와서.” “그래, 나 가출 하려고 한다. 가출할 데도 없다.” 주인 이야기하잖아요. 주인이야기.

하물며 들풀도 참새도 주님 이야기하는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우리가 심지어 머리에 띠까지 한 우리가 하루 하루 살아있으면서 누구 이야기해야 되겠어요? 주님 이야기한다고 또 자랑질하지 마세요. 왜냐하면 우리는 마땅히, 오늘 제목을 ‘마땅히’로 할까. 마땅히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 그 마땅함을 놓쳐버린 거예요. 우리가. 마땅함을.

우리는 남하고 기 안 죽으려고 안 밑지려고 24시간 신경 쓰는 게 그거에요. 니 가정 행복하나? 우리 가정도 못지않지. 이런 거. 그저 남한테 경쟁해서 기 안 죽으려는 내 살아있음을 증거하고 그거 하려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참~ 강의하는 저도 부끄럽지만 이 성경보면서요, 성경 볼 쨉도 못 돼요. 정말 성경 보기에는 너무나 더러운 눈들을 갖고 있어요. 우리가. 성경을 듣고 본다는 이 귀가. 말하는 저도 마찬가지고요.

야고보서1장12절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시험을 참는다는 말은 이미 니는 시험에서 관계없다. 승리했다. 이 말이거든요. 그러니까 뭐냐 하면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이미 구원받은 사람에게 시험이 온다는 말은 이런 뜻이에요. 니가 어디서 빠져나왔는줄 아느냐, 그런 뜻입니다.

가락모임을 하면서 마지막에 화분의 화초 기억이 나십니까? 화분의 화초. 자, 화분과 화초가 있어요. 주께서는 요걸 화초를 딱 가져가려고 하는데 그동안 화초가 화분에 너무 정이 들었어요. 뽑으려하는데 이 화분이 세상이거든요. 주님께서는 우리를 세상에서 이 세상 죄로 말미암아 세상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려하는데 그동안 우리의 모든 사고방식과 생각하는 그 모든 의식이 너무 세상하고 딱 들어붙었어요. 잡아당기니까 화분 표면에 온 줄기가 낙지 발판처럼 다 들어붙어서 떨어지지를 않아요.

하지만, 이미 구원된 사람은 그런 아픔을 무릅쓰고 잡아당겨버립니다. 왜? 주께서 세상을 이긴 그 능력으로 우리를 찾아오기 때문에. 세상의 지는 능력으로는 성령이 아닙니다. 성령은 세상을 이긴 능력이 성령이에요. 따라서 성령이 왔다는 말은 우리 힘으로 빠져나온 게 아니고, 우리는 자꾸 세상 속으로 기어들어가요. 이불 속으로 들어간다고요. 안 됩니다~ 저는 햇빛이 무서워요. 해가지고 어두움으로 들어가요.

주께서는 “이게 어디로 들어가?” 그저 당겨버려요. 당길 때 조건이 있어요. 뭐냐 하면 그냥 당기는 것이 아니고 세상 그냥 떠나라는 말이 아니고 주님의 조건으로 잡아당깁니다. 오늘 강의 제일 중요한 부분이에요. 요거 잡아당길 때 천국의 조건으로 잡아당겨요. 그럼 천국의 조건을 아까 뭐라고 했습니까? 내 중심이 아니고 주님 중심이지요.

다른 말로 하면 내가 살아있는 것이 아니고 지금 내 안에 누가 살아있다? 내가 살아있는 것이 아니고 주님이 살아 있는 방식이 내가 살아 숨 쉬는 방식이에요. 내가 선택해서 숨을 쉬는 게 아니에요. 숨 쉴까? 말까? 이게 아니고 주께서 무의식적으로 숨 쉬게 하는 것은 주님의 선택입니다.

주님의 구원하신 그 능력이 잡아당기게 되면 우리가 아플까요? 안 아플까요? 아파도 그냥 아픈 게 아니고 너무 아파요. 너무 아파요. 너무 아프기 때문에 눈물로 지냅니다. 평생을. 늘 울지는 않지만 그냥 생각하면 이유도 모르게 눈물이 뚝! 뚝! 뚝! 떨어질 정도로. 아무리 잘 살고 코미디 남편이 코미디해도 사람이 혼자 있으면 눈물 나요. 특별히 이 가을에.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가을 편지 - 고은 작곡 : 김민기 노래 : 이동원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모든 것을 헤매인 마음
보내드려요
낙엽이 사라진 날
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

아름다워요

그 가을노래 들으면 눈물 나지요. 낙엽 떨어지고. 눈물이 왜 나오느냐, 그게 바로 화분 벽에 붙어있는 아쉬움, 미련, 미련 때문에. 미련이 왜 생기느냐 하면 내가 선택을 너무 많이 했어요. 저 자식에게 지 인문계 간다는 걸 억지로 피아노 시켜가지고 자식 피아노 칠 때마다 연주할 때마다 내가 피아노 시키라고 억지로 했던 그 자기 기억이 또 생각나고. 이게 전부 집착이거든요. 모든 걸 보게 되면.

그리고 특히 집을 또 이사를 갈 때 “아이고, 속이 시원합니다. 이 동네 떠나니까 기분 좋습니다.” 하지만, 그 이삿짐 치우면서 한 번 뒤 돌아 안 봐야 되는데 뒤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애들 초등학교 3학년 때 일기장도 그냥 버려놨고 안방에 낙서한 거, 아이들 키 잰다고 기린 키재기 줄 그어 놓은 거 전부 다 과거의 아픔들이고 눈물 흘렸던 그 시절이잖아요. 이쪽에 가면 남편 술 마시고 등 깨서 흠집도 나고 뭔가 푹 들어간 것은 싸운다고 해가지고 뭘 다리미해서 들어가고. 온 구석, 구석이 내 손 때가 안 묻은 게 없지요. 전부 가.

그리고 자식들 지가 알아서 컸다고 하지만, 자식들 지가 알아서 컸습니까? 지들 나갈 때 차 조심, 뭐 조심, 생각 안할 수가 있어요? 아니 자식 죽었는데 남의 개죽은 거하고 똑같이 생각됩니까? 왜 자식 죽었는데 남은 안 울어도 본인은 왜 웁니까? 평소에 죽어야 우는 게 아니고 살아있을 때도 늘 눈물은 안 났지만, 그만큼 마음이 같거든요.

그러니까 제 말은 뭐냐 하면 우리 마음 전체가 이 세상에 대한 기대감, 이 세상에 대한 희망 꽉 차있습니다. 성경에 대한 말은 참 쉽게 해. 세상을 미워하라. 이런 거. 성경은 왜 그리 말을 쉽게 하는지. 세상과 짝하는 자는 하나님과 원수 됨이고 하나님께 순복하라. 그렇게 쉽게 이야기하는데.

우리는 막상 성경 보면서 제가 내린 결론은 이겁니다. 인간은 도저히 구원받지 못합니다. 자기 능력으로. 얼켜도 너무 얼켰어요. 얼켜도. 자기는 구원받고 딸은 지옥가고. 그럴 것 같으면 자기는 딸 따라 지옥가고 싶을 정도로 우리는 너무나 화분하고 얼켰어요.

하지만, 주님은 어떤 분입니까? 강한 자잖아요. 이 세상을 이겼습니다. 그 세상을 이겼는데 그 까짓 거 세상의 일부인 우리를 못 이길까요? 요게 어딜 손을? 손 떼지 안 해! 손 떼찌 떼찌 해가지고 강제로 집어던집니다. “그래도 남편은 구원해야지요?” “남편은 니 남편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남편은 손 떼고 니는 따로 나와.” 주께서 가는데 그 조건은 뭐냐 하면 첫째 조건이 안 맞다. 그 다음에 두 번째 조건이 뭡니까? 묻겠지요. 조건이 안 맞다 하니까. 장로 된지 30년 했는데 천국 못 간다 하니까 묻겠지요. “천사님, 조건이 뭡니까?” “자기를 위해 사는 자는 천국에 못 들어간다.” 자기를 위해 사는 거예요.

고린도전서16장22절에 보면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찌어다” 주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뭘 받는다? 저주를 받는다. 성경에 분명히 나옵니다. 성경에 없는 소리 하는 게 아니에요. 자기를 위해 사는 자는 천국에 못가요. 그래서 예수님도 했잖아요. 자기를 부인하라. 자기 십자가 지고 따라오라. 그래야 영생 있다. 예수님께서 농담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대충해! 대충 구원해 줄게. 이게 아니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지지 않으면 안돼요.

심지어 집안 식구가 왠수고 그만큼 얼킨 게 많다는 거예요. 화분에 다른 사람은 안 얼켰지만, 자기 집안 식구는 내 배에서 난 자식이 얼켰지요. 이건 동물의 본능인데요. 지진 났을 때 엄마 몸으로 자식은 살고 엄마는 죽었잖아요. 이건 본능이에요. 뭐 착한 일 하자! 가 아닙니다. 그 육을 무슨 수로 뗍니까? 내가 육인데. 내가 자식 좋아하는데. 자, 보자! 해가지고 가위가지고 자를 수 있습니까? 원수가 니 집안 식구가 원수고. 처나 자식이나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않고. 심지어 그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뭐냐 하면 자기를 미워하라 했으니까 나를 미워할 수 있는 인간 없습니다.

세 번째가 뭐냐 하면 우리는 자기를 버릴 수 없는 존재. 첫 번째는 조건이 안 맞는 거예요. 천국에. 두 번째는 자기를 위해 사는 자는 못 들어갑니다. 문제는 그러면 자기를 위해 안 살면 되는데 문제는 자기를 위해서 안 살겠다고 나설 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다. 지금 4번까지 있는데 3번만 이야기했어요. 이상 끝났어요. 그런데 이상 앞에 뭔가 천국으로 쑥 들어간 사람이 있어요.

분명히 인간은 자기를 위해 살게 돼 있고 그리고 자기가 자기 스스로 못 벗어난다는 게 이게 모든 인간이 다 그런데. 그렇다면 아무도 구원 못 받잖아요. 그런데 어? 천국 문으로 쑥 들어갔거든요. 백부장. 그리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어떻게 가지? 나 같으면 못 가는데? 그래서 여기서 나온 게 뭐냐 하면 바로 ‘동행’이라는 거예요. 동행.

누가 동행합니까? 주께서 동행하지요. 그러면 동행할 때, 누가 주인이고 누가 따라갑니까? 주님이 주인이지요. 그럼 다시 묻습니다. 누가 살아있습니까? 진정 누가 살아있는 거예요? 내 안에서. 우리에서 누가 살아있는 겁니까? 주님이 살아있고 나는 거기서 뒤따라가는 거예요.

아침에 눈만 딱 뜨면 빨리 내 할 일 아침에 할 게 많거든요. 약부터 챙기고 해가지고 운동 갔다 오고 면도부터 해가지고 순서가 열 몇 가지 돼요. 체조부터해서 혈압 약부터 해가지고. 그걸 빨리 해야 돼요. 빨리 안하게 되면 문을 빼꼼히 열고 맘마! 해가지고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그 때부터는 나의 선택은 이제 중지가 되는 거예요. 손을 잡고 이제 갑니다. 기차놀이해야 되고 그거 끝나게 되면 우유 달라하고 하여튼 말은 못하고 으흥, 으흥, 밥 먹고 나면 밖에 나가자 해요. 2Kg빠졌어요. 자, 천국 어떻게 갑니까? 우리의 평소의 행동 버릇은 인생은 내가 사는 거예요. 누구 앞에서 우리는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쟤 키울 때 우리는 고생했고, 내가 옷장사해서 내가 쟤 다 키웠다. 누구나 다 이렇게 해요. 그리고 쟤 학교 갈 때 내가 강력하게 내 선택에 의해서 과를 정했고 다 이야기해요.

그런데 그런 식으로 해가지고 갑자기 죽었다 칩시다. 갑자기. 죽었는데 천국 앞에 가니까 조건이 안 맞네요. “아이고, 더러운 세상 산다고 고생 많았습니다. 지옥!” 끝났어요. 지옥입니다. 늙어서 교회 가야지. 이건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교회 가는 게 지 선택인 줄 알았어요. 평소에 모든 걸 지가 선택하다보니까 늙어서 교회 가는 것도 지가 선택해서, 교회는 가요. 하도 많으니까.

교회가면 뭐합니까? 건물 안에 전부다 가면 자기를 위한 사는 사람들이 수북이 다 모였는데. 자기 교회를 위해서 사는 사람만 수북이 모였어요. 자기 교회를 위해서. 옆 사람하고 시합한다고 바빠요. 지금. 누가 부흥 됐는가 그 경쟁한다고. 도대체 이 예배당도 아무것도 아니고 앉아있는 나도 아무것도 아니고 내 가족도 아무것도 아니고 오직 살아있는 것은 주님만 살아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 큰 넓은 예배당 가운데 몇 명 되겠어요?

왜 그러느냐 하면 그 목사가 “여러분, 교회 불나도 괜찮습니다.” 하는 설교를 해야 돼요. “교회가 주님 살아있음을 막습니다. 왜? 교회는 살아있는 여러분들이 여러분 자랑질하려고 만든 교회이기 때문에 교회에 오면서 여러분들은 복음 앞에 자기를 부인해야 됩니다.” 이렇게 설교를 해야 마땅하지 않아요? 그게 마땅하거든요.

정말 천국을 간 목사라면, 정말 천국을 가게 하는 목사라면, 성령이 임한 목사라면. 여러분 잘 오셨습니다. “여러분 집에 가면 여러분 집구석 있지요. 복 받을 겁니다.” 자꾸 이렇게 해서 내 것을 못 버리게 해요. 내 것을. 내 것을 사수하게 만들어요. 내 것을 지키라고 하는 겁니다. 여러분 자녀 잘 키웠습니다. 여러분의 자녀 고이 키워야 됩니다. 계속 뭔가 지키고, 지키고 하게 되면 이건 뭐냐, 문제는 그렇게 하는 게 재미있는데, 문제는 천국의 조건에 안 맞다는 거예요.

천국은 예수님 중심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앞에서 모든 것은 부인해야 돼요. 죄인들을 모아서 예수님 찬양하도록 했어요. 막사는 인간들 거리에 있는 아무나 데려와서 혼인잔치에 참여시키고 탕자를 데려와서 아버지의 가락지를 끼운 것이 천국이에요.

멀쩡한 인간 말고 뭐 잃어버린 양을 데려와 가지고 잃어버렸다는 그 흔적이 있는 조건하에 천국 넣어줬어요. “나는 버림받아도 마땅합니다.” 라는 조건이 붙어있는 자라는 조건하에 버림받아도 마땅하다는 인식하에 그 사람은 천국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천국 간 사람의 특징이 뭐냐, 저는 죄인 중에 괴수라는 겁니다. 그저 내가 소중한 것이 아니고 누가 소중하다?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소중하다는 것 밖에 없는 것. 그 조건을 드러내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이 세상 자체를 시험 또는 환란이나 또는 시련 또는 위협, 다 같은 말입니다.

유혹의 세상에 우리를 집어넣어 놓고 “니가 그리스도 시험을 견뎌라. 니가 분류되었다. 니가 이제는 영적인 이방인이 아니고 영적인 이스라엘로 흩어진 열 두 지파였다.” 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이 말씀 주신 거예요. 10분 쉽시다.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193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열람 ➜ 자유게시판 안양20171013a약1장12절(천국의 조건)-이 근호 목사 야고보서 최고관리자 17-10-18
16,341 강의 자존적과 의존적 171017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7-10-18
16,340 강의 유튜브 강의 (206강, 207강), 은혜의 순환, 비밀 171017 히브리서 최고관리자 17-10-18
16,339 자유게시판 광주 강의(2017. 9. 22) 2강 - 최고관리자 17-10-17
16,338 강의 존재에서 사건으로 171016 시편 최고관리자 17-10-16
16,337 자유게시판 155강-신 29장 10 - 13절(언약 앞에 집결 )171015-이 근호 목사 신명기 최고관리자 17-10-15
16,336 자유게시판 259강-고후 12장 11-13절(과거 바꾸기)1701015-이 근호 목사 고린도후서 최고관리자 17-10-15
16,335 묻고답하기 사도의 사랑 - 최고관리자 17-10-15
16,334 자유게시판 205강-YouTube강의(남과 여)171010-이 근호 목사 창세기 최고관리자 17-10-14
16,333 자유게시판 204강-YouTube강의(소유와 존재)171010-이 근호 목사 갈라디아서 최고관리자 17-10-14
16,332 강의 잃어버린 자 171013 디도서 최고관리자 17-10-14
16,331 강의 천국의 조건 171013 야고보서 최고관리자 17-10-14
16,330 강의 [17 대구강의] 전도서속의 그리스도 20 - 죽음 - 최고관리자 17-10-13
16,329 자유게시판 운명 (마 24장 1-2 절) 대전- 92강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17-10-13
16,328 자유게시판 가락-요한복음 15장 5절(열매는 순교다)171010b-이 근호 목사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7-10-12
16,327 자유게시판 가락-요한복음 15장 5절(열매는 순교다)171010a-이 근호 목사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7-10-12
16,326 자유게시판 권력 구조 (삼상 8장 10-18 절) 대전- 30강 사무엘상 최고관리자 17-10-12
16,325 자유게시판 109강-창 27장41절-45절(저주의 분노)171011-이 근호 목사 창세기 최고관리자 17-10-12
16,324 강의 유튜브( 204강, 205강) 소유와 존재, 남과 여 171010 갈라디아서 최고관리자 17-10-11
16,323 강의 열매는 순교다 171010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7-10-11
16,322 자유게시판 20171006b 울산강의-레위기 12장 : 절연 레위기 최고관리자 17-10-10
16,321 자유게시판 20171006a 울산강의-레위기 12장 : 절연 레위기 최고관리자 17-10-10
16,320 자유게시판 광주 강의(2017. 9. 22) 1강 마가복음 최고관리자 17-10-09
16,319 자유게시판 258강-고후 12장 7-9절(사단의 가시)1701008-이 근호 목사 고린도후서 최고관리자 17-10-09
16,318 자유게시판 154강-신 29장 1 - 4절(하나님의 이중 작업 )171008-이 근호 목사 신명기 최고관리자 17-10-09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