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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자존적과 의존적 171017강의요한복음

가락-요한복음 15장 9절(자존적과 의존적)171017a-이 근호 목사

자, 시작합니다. 요한복음 15장, 요한 복음 15장에 보면 7절에, 15장 7절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그렇게 되있죠.

여기서 과실이라 하는 것은 뭐 다 아시다시피 이것은 사람을 두고 이야기 하는 겁니다. 제주도 감귤 이야기 하지 않죠. 사람 두고 이야기 하는데, 그러면 보통 이 사람들은 독자적입니다. 독자적.

혼자서 시작해서 혼자로 죽을 때 까지 혼자 생각, 혼자 이야기하고 있죠.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여기 과실 또는 사람은 어떤 성격을 갖고 있냐 하면은 의존적입니다. 의존적.

의존적이라는 말을 이렇게 오해하시면 안됩니다. 의지한다로 이것은 잘못된 의지한다는것은 아닙니다. 구약에 보면 니가 애굽의 말을 의지하지말고 여호와 도움을 구하라 할 때 그것은 구약적 용어이고, 신약에서는 뭐냐하면 의지하는 것이 아니고 의존적이예요.

의존적과 의지하다의 특징은 어떤 큰 차이가 있는데요. 의존적이라하는 것은 뭐냐하면은 어떤 원천이 있고 원천에서, 예 보험하는 사람은 압니다. 파생, 파생상품 있죠? 파생상품. 파생된거예요.

본래에서 나오는 것은 의존적이예요. 이것은 의지하나 안하나 계속해서 의존적.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나 주님 의지할래와 관계없이 나 이제부터 주님께 순종할래와 전혀 상관없이 이제부터 주님 말씀대로 살래 자기 결심 전혀 없이 어떤 순간에도 의존적이예요.

그런데 의지라 하는 것은 일단 본인이 독자적입니다. 본인이 자기가 독립적이예요. 독립적이고 아쉬울 때 하나님 찾고 어려울 때 주님 찾고 괴로울 때 기도하고 하나님께서 도와줌 을 믿고 하나님께서 도와줌을 믿고 늘 기대는 것 아니고 필요로 할 때 마다 필요할 때 마다 돈 구하면서 하나님께 쪼로록 쫓아 가는 것, 이것 의지거든요.

자, 둘 중에 신약에 와서 둘 중에 어느 사람이 의지하는 쪽이 열매겠습니까? 의존적이 열매겠어요? 의존적 열매이죠. 의존적이 열매인데 이 의존적인 사람은 뭐를 안하냐하면 이것을 안해요. 이 밑에 의지하지를 않습니다. 이게 이제 어렵죠.

사람이 뭔가 의지한다는 말은 지금 누구를 위해서 의지한다는 말입니까? 자기 구원받기 위해서 의지하잖아요. 구원은 이미 그 자체가 의존적이 아니고 자존적이고, 자존적이 적당하네요. 스스로 자존적이예요.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예요.

아쉬울 때 교회가서 기도하고 아쉬울 때 하나님 찾겠다는 거예요. 그거 열매아닙니다. 그래서 이건 오늘 제가 강의 하면서 이걸 이렇게 할께요. 이 인간과 이 의존적 인간과 이쪽 인간을 달리보겠습니다.

그러면 천국은 다른인간 또는 다른인간형이 갑니다. 현재 모든 인간은 아담의 후손으로서 의존적이 아니고 독립적이예요. 이건 누구한테 이런 성질을 물려받았냐하면은 바로 사탄이 예수님께 대들 때 대든 이유가 있어요. 반항하는 이유가 선악을 아니까 나도 하나님 대우해 달라는 겁니다. 창세기 3장에 의해서.

선악을 아니까 대우해 달라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쪽에서는 ‘선악을 안다는 니가 선악을 아는 그 결과가 뭐냐? 니가 선악을 알기 때문에 너는 하나님처럼 될수 없어. 너는 저주 받아야되.’ 라는 것이 창세전에 이미 내린 추방명령이였습니다. 사단에게. 그것 때문에 전쟁했거든요.

그래서 마귀와 속성 마음가짐을 그대로 물려받은 우리 모든 인간들은 선악을 안다는 그 조건 때문에 아담도 그 좋은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야되는 겁니다. 선악을 알았기 때문에.

선악을 안다는 것이 그냥 지식이 아니고 독자적인 것, 여기 독보적이고 자존적인, 자존적으로 선악을 하나님처럼 닮아서 하나님처럼 되어가지고 그래서 우리는 선악을 아는 순간 하나님처럼 행세하는 성품이 있어요. 이걸 가지고 자존적이라고 하지요. 자존적.

나는 나 스스로 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래서 따지고 보면 모든 인간들이 뭐 교회가 가나 안가나 모든 인간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심지어 어린아이까지 22개월 된 그 갓난아이까지 자존적이예요.

우리집에 자존적인 애 하나 있습니다. 굉장히 자존적이예요. 모든 움직임이 가르쳐주지도 않는데 자존적입니다. 그러면 제가 자존적이라는 어려운 말 쓰면 목사님 자존적 아닌 사람이 누구입니까? 하겠지요? 그게 신약에 나옵니다. 백부장.
이거는 중대장임에도 불구하고 이 바보도 아니고 왜 자기가 결정 못내리고 그냥 가라하면 가고 오라하면 오나이다. 자, 자존적입니까? 의존적입니까? 의존적이잖아요. 까라면 까겠습니다. 그거거든요. 까라면 까겠습니다.

또 있어요. 제자들이 말하기를 예수님 하늘나라에서 누가 높습니까? 이렇게 하니까 예수님께서 어린아이 하나 딱 데려옵니다. 어린아이는 자존적이 아니고 그리고 의지하지도 않아요. 어린아이가 어릴 때 뭐 부모 그런거 없어요.

그냥 어린아이 자체가 파생상품 이예요. 파생물 이예요 파생물. 아버지 엄마 있음에 저절로 나온게 뭐냐? 어린아이 거든요. 그래서 이거는 의존적이란 말이죠. 그래서 하늘나라는 너희가 어린아이같이 되지 않으면 다른말로 니가 의존적이 되지 아니하면 아무도 천국에 못 간다.

그리고 백부장 한테는 이 만한 믿음을 본 적이 없다. 하늘나라는 본 자손들은 다 쫓겨나가고 이 백부장이 천국을 차지할 것이다. 이런 구절에 근거해서 저는 이야기 합니다. 천국에 가는 사람은 우리가 아는 인간이 아닌 전혀 다른 인간이여야 한다는거예요. 다른인간.

이게 다른인간 되기가 말이 쉽지요. 벌써 인간 됬는데 무슨 또 다른 다른 인간이 됩니까. 벌써 인간됬는데. 여기서 뭐 스티커 붙여서 꾸밀까요? 뭐 코스프레 해가지고 이렇게 코스프레 해서 일본 아가씨들 인형처럼 이렇게 꾸미면 그러면 천국 넣어줍니까?

그것은 껍데기에 불과한데요, 형식에 불과한데 종교란게 뭡니까? 형식아닙니까. 속에는 자존적이면서도 겉으로는 주여!주여 라고 하면 그게 무슨 소용있어? 주여, 주여. 그게 무슨 소용 있어요? 그러면 이 의존적의 모델이 있어야하는데 모델 뭐 어린아이, 또는 백부장 이야기 했단말이예요.

그러나 그것이 최종모델이 아니예요. 백부장을 백부장 되게하고 어린아이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부모밑에 의존적이 되는 그 모델이 되는 것은 뭐냐하면 아버지 앞에서 가장 자존적인 사람이 누구였던가요? 아버지 앞에서. 아니아니 아버지 앞에서 가장 의존적인 분이 누구였던가요? 바로 예수님이죠.

다른인간형 딴게 아니고 예수그리스도부터 새로 시작하자는 겁니다. 기존의 아담으로 시작하는 것 그것, 그걸 뭐로 바꾸냐하면 예수님부터 시작하는 인간으로 완전히 이걸 바꿔치기하는 작업에 있어서 예수님께서는 거기에 필요한 모든 능력은 우리는 성도는 의존적이기 때문에 포도나무로부터 모든 능력이 거기서 제공이 되는 겁니다.
그게 아까 읽었던 말씀이예요.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그 다음에 뭐라고 합니까? 너희안에 뭐가 거하고? 너희안에 뭐가 거한다고 했습니까? 예수님 말씀이죠.

그 말씀은 창세전에 아버지와 아들만 아는 그 내용입니다. 그 내용이 너희한테 주입이 되게 되면 주입이 되면 우리는 튜브예요. 튜브에 주의 말씀이 바람처럼 들어오게 되면 우리는 천국에 가는 다른사람이 되어버리는 겁니다. 다른사람이.

자, 오늘 여러분 한번 배우시기 바랍니다. 이 인간이 가는게 아니고, 이 인간이 천국가는게 아니고 완전히 사람이 달라져요. 다른데 그 다른 인간은 세상에서 모델 찾지 마시고 어떤 훌륭한 목사 찾지 마시고 예수그리스도가 유일한 궁극적 모델이예요. 예수님이 모델.

그런데 지금 예수님은 눈에 보입니까? 안보입니까? 안보이지요. 예수님 봤습니까? 안보이죠. 그럼 안보이면 닮으라하면 코스프레 할려면 보여야 코스프레 하는데 안보이잖아요.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아요?

예수님께서 나를 보고 형식으로 본 따 할 것이 아니고 내말이 내 말이 너희에게 거하면, 니가 바로 자존적 존재에서 뭐가된다? 의존적 존재가 다른인간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내가 주의 말씀이 내 안에 있습니까 없습니까를 어떻게 판정 내립니까? 이건 방금 이야기 했잖아요. 자존적 인간에서 뭐로 바뀌면?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라는 의존적 인간으로 바뀌었으면 누가 물어도 그 사람속에, 그 사람속에 예수님의 말씀이 주도권을 쥐고 그 사람안에 들어온겁니다.

풍선이 쭈글쭈글하다. 풍선이 쭈글쭈글하다. 그럼 뭐가 빠진거예요? 바람 빠진 거예요. 그럼 풍선에다가 바람을 넣으면 탱탱하지요. 그런다고 풍선색깔이 노란색깔이 파란색깔로 변하고 그런거 없지요?

동일한 노란색깔인데 쭈글쭈글하다가 그 노랑이 주의 말씀 들어가면 탱탱하지요? 예? 탱탱하고 쌩쌩하잖아요. 그런데 그 풍선이 통통통통 튄다면 그것은 풍선 색깔 때문에 튀는 겁니까? 그안에 들어있는 말씀 때문에 튀는 거예요? 말씀 때문에 튀지요.

그래서 사람은 떡으로 사는 게 아니고, 하나님 말씀으로 사는 거예요. 떡을 많이 먹으면 통통 튑니까? 배불러 가지고 푹 퍼지지요. 다이어트 많이하고 헬스 많이 다니면 통통 튀긴 튀는데 그거 몇 분 안가거든요.

이렇게 이렇게 통통 하긴 하는데 나중에 헥헥 거린다니까요. 몸매 뽑는다고 라인댄스 같은 그런거 있잖아요. 팝송 틀어놓고 막 같이하고 하게되면 하는데, 나중에 집에가 가지고 헥헥. 집에 가가지고 순대 먹고 족발먹고 다 그런다고요.

옆에서 말합니다. ‘당신은 왜 그렇게 활기가 넙칩니까?’ ‘주의 말씀이 나로 그렇게 만듭니다. 주의 말씀이. 주의 말씀이.’ 그러면 ‘당신이 한 것은 뭐 있어요?’ ‘나는 의존적이예요. 제가 한거 없어요. 저는 풍선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고무로 만든 풍선 껍데기에 불과하고 주께서 성령으로 계속 말씀을 주니 말씀이 나를 통통 튀게 합니다. 가라하면 가고 오라하면 오나이다.’

이번에 주일 낮에 그런이야기 했거든요.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의 주제가 뭐냐하면은 선과악은 아버지와 아들이 새로 정한다. 그거였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새로 정한다. 이번 낮에 주제가 하도 많아가지고 모르겠습니다. 장황한거예요.

아버지와 아들이 모든 선악을 새로 정한거예요. 그러니까 바리새인 보기에 예수님 하는 모든 꼴이 그들 보기에 뭐가 됩니까? 전부 다 죄가 되는 거예요. 그들 눈에. 왜? 주님이 새로 정했으니까. 맞지를 않는 거예요.

그들이 금식할 때 예수님께서는 술 드시고 계시고. 그러니 다른사람 보기에 저건 율법의 위반자예요. 그러면 율법의 위반자의 끝은 뭐냐하면 바로 나무에 달려 저주받는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나무에 달려 저주 받으니까 사람들은 옳다쿠나 역시 우리 결정은 옳았어.

왜? 신명기 말씀대로 저 가짜 메시아가 자꾸 진짜라고 하다가 결국 희한하게도 하나님께서 나무에 죽게했으니까 진짜 우리가 진짜 우리가, 진짜 주님께서 율법대로 사는 사람을 율법을 지킬려는 인간들이 가짜라고 이야기해서 그래서 틀어진 것이 무슨 사건입니까? 십자가 사건이죠.

그러면 십자가 사건이 말씀의 완성으로 우리안에 탱탱하게 들어와 버리면 우리는 그 꼴 예수님 꼴 그 꼴 나는 거예요. 우리는 뭘 해도 돌아서면 다 하나님의 의인데 저 인간들은 전부 다 윤리 도덕 보면서 저것도 죄고 저것도 죄고 전부 죄라는 거예요.

우리는 너무 심히 억울해. 너무 억울한 거예요. 주께서 가라해서 갔는데 이것은 이래서 어긋나고 이것은 교회법에 어긋나고 이것은 인간 양심법에 어긋나고 전부 이렇게 들이대면서 하는거예요. 그렇게 한다 이 말이죠.

그래서 여기서 한번 정리해 봅시다. 살짝 제가 약간 겁이나는 것은 이제부터 복잡하거든요. 아까 우리 어떤 분이 이야기 했듯이 이 이야기부터 한번 해 볼께요. 소외라는 말이 있어요. 소외라는 말이 있는데 좀 유식한 사람치고 뭐 이 이야기를 막 해요.

자, 소외라는 말이 무슨 뜻이냐 제가 설명해드릴께요. 소외라는 것은 원래 있던 집단에서 강제로 밀려서 그 원래있던 그 집단에 들어오지 못하는 것을 가지고 소외라고 이야기 합니다. 소외. 강제로 배척당한 것을 소외라고 합니다.

쉬운예를 들면 알수 있어요. 나는 아버지로서 소외당했다. 느낌아시죠? 느낌 확 들어오죠? 아버지로 소외됬다. 내가 원래 있는 자리는 이 가정의 가장의 자리인데, 나 빼놓고 모든 식구가 나를 무시해가지고 그것도 밀어서 난 아버지 값도 못하고 뭐 잘못한게 있어? 아버지 값도 못하고 이렇게 했을 때 그걸 아버지로서 소외 당했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이제 소외라는 의미를 아시겠지요? 이게 뭐냐하면은 여기 예수님께서 내 말이 너희안에 거한다는 말은요. 초반에 굉장히 중요한 말 나왔어요. 초반에. 이거 하고 맘대로 주무셔도 괜찮아요. 제일 중요한 거니까.

이겁니다. 하나님께서 천국에 가는 인간을 새로운 인간을 만들 때 하나님께서 소외작업을 하세요. 소외작업을. 창세전에 아버지 아들하고 되어있는 야곱이죠. 아버지와 아들이 사랑하기로 한 그 인간 아니면 내가 너를 소외시킨다는 겁니다. 소외라는 말은 또 이야기 할께요.

강제로 밀어내는거예요. 이것은 우리의 일반적인 전도개념과는 다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교회 전도면 ‘와주세요~’ 하고 구걸을 하잖아요 구걸. ‘와주세요~’ 그냥 봉투 돈 주고 맛있는 거 이렇게 주면서 그저 와주세요 하잖아요.

성경은 그렇게 하지 않아요. 소외시킨다고요. ‘너 같은 인간 안 넣어죠.’ 라고 그걸 소외라고 했지요? 오늘 제목은 소외입니다. 해봐야 후보감이지만. ‘너같은 인간은 절대로 천국에 안 넣어줘!’ 밀어내는 거예요. ‘너는 아니야.’

이걸 아까 동영상 할 때는 제가 뭐라고 했던가요? 은혜의 순환이라고 했지요. 순환인데 사실은 은혜의 순회 ‘맞는가 보자. 안 맞다. 딴 데 맞는가 보자. 안 맞다.’ 이렇게.
은혜가 와가지고 은혜에 합당한 사람을 찾는 작업을 하고 있는겁니다. 영생주기로 작정한 자가 아니면 전부 다 하나님 쪽에서 소외시킵니다. 그러면 뭐 어렵습니까? 쉬운데요. 그게 쉬운게 아니고 왜 어려운가 하면은 세상에서는요 천국 갈 사람을 세상에서 소외시키기 때문에 그래요.

소외가 두 가지기 때문에 어려운거예요. 한 쪽은 밀자는 밀고 땡길자를 땡기는 작업을 하고 하나님쪽에서 예수님 쪽에서. 그런데 놀랍게도 세상에서도 땡길자는 땡기고 그러니까 지옥갈 사람이죠. 세상에서도 땡길자는 땡기고 ‘너 같은 인간은 죽어 마땅해.’ 예수님처럼 예수님한테 했던 것처럼 밀자는 밀어주는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 보시기에 마귀세상 이것이 주님의 전도의 협조자가 되는 겁니다. 천국에 가야 될 창세전에 예정된 사람은 세상이 가만두지 않고 이거 왕따 시킵니다. ‘이 세상 니 자리 아니잖아. 나는 너 하고 안놀아. 너 저기가서 놀아.’ 라고 강제로 밀어주니 이 얼마나 감사할 일입니까.

악귀가 이야기했죠. 나는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안다고요. 악마가 얼마나 고마워요. 보세요. 사도바울로 하여금 구원 못 받게 하는게 ‘너는 이 바닥에서 놀 사람 아니야.’ 라고 이미 악막 알아준다고요. 악마가.

그런데 그 중간에 끼어있는 우리 입장에서는 구태여 구원받고자 안해도 저쪽에서 땡기고 이쪽에서 밀고 자동이예요 자동. 그런데 그 소외라는 말 정의를 내리면서 강제로 그 다음에 뭐라합니까? 강제로 그 다음에 뭐라고 했어요? 강제로 뭐한다? 밀어내죠. 소외 밀어내죠. 밀어낸다는 말을 다른 말로 뭐라하면 힘이예요 힘. 힘이죠.

따라서 구원된 사람의 특징은 뭐냐하면은 세상이 나를 떠미는 힘과 주님이 나를 땡기는 그힘, 그 힘을 느끼는 사람이 성도입니다. 본인이 구원 받으려고 힘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힘을 애써가지고 주여! 하고 기도하고 철야하는게 이 힘이 아니고 막 살아도 막 살아도 세상 편에서 안 넣어줘요. 안 넣어줘요.

‘목사님은 우리교회에서 필요 없습니다. 우리교회에서. 제발 비나이다 나가주세요.’ ‘아휴 봉사하겠습니다.’ ‘아닙니다. 사양하겠습니다.’ ‘아이고 집사님은 우리교회에서 나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마치 옛날 세상사람들이 예수님을 떠미는 것처럼 똑같은 힘이 작용하는 것 성령의 힘이죠.

똑같은 힘 또는 성령의 힘 또는 말씀의 힘. 그게 작용합니다. ‘아니 이리보나 저리보나 아무리 봐도 당신은 이 바닥 사람이 아닙니다.’ 라고 악마가 이 악귀가 귀신이 그걸 도사도 아니고 완전 도사예요. 그걸 눈치챈다니까요.

이건 뭐 주님께서 허락하신 마귀로 하여금 그렇게 하게 하시니까 우리는 뭐 할게 없네요. 힘의 그물망이니까. 힘의 촘촘한 힘의 그물망에서 거미줄 망에서 그 벌레는 출렁이는 그 거미줄에 의해서 조금씩 위치가 바뀌면서 거미 입속으로 조금씩 조금씩 줄이 거미줄이 쳐 놓은 거미줄에 탄성에 의해서 조금씩 조금씩 어느새 거미 입속에 들어가는 겁니다.

세상에 십자가 지고 싶은 사람 누가 있습니까? 그러나 주님께서 깔아놓은 주님께서 허락하신 마귀와 성령의 도움으로서 이게 출렁이다 보니까 조금씩 조금씩 십자가 입속으로 십자가 입속으로 자기 부인하는 부인안하고 싶어도 부인해야되는 경우가 자꾸 발생되면서 어느새 이 만큼 끌려오고 어느새 이 만큼 끌려오는 겁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겁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어떤 때는 천국 안갈라고 고집 부리다가 환란과 핍박 곤고 막 찾아 와가지고 ‘화딱지나네요 주님 뭐합니까!! 나에게 이렇게 합니까!!!’ 그러면 그러니까 지금 환란은 장차 영광과 족히 비교될수 없잖아요. 로마서 8장 18절 말씀이거든요.

‘족히 비교될수 없구나. 아하 내가 깜빡깜빡 잊었구나.’ 하면서 보니까 어느새 이 만큼 십자가가 더 크게 보이는 왔고, 크게 왔다고 또 까불다가 또 벌써 세상이 또 십자가 보다 더 크게 보이고. 또 세상이 또 돈만 확 빼먹고 또 밀어내네. 교회 한 30년 다니니까 30년 다니고 계산해보니까 십일조 복리로 계산해보니까 한 5~6천만원 날라갔거든요.

세상교회 돈은 다 빼먹고 나가라 하는거예요. 돈 다 빼먹고 나가라고. 주님의 기적이라는 것은요 주님의 기적은 예수님이 겪었던 환란을 기적이라고 해요. 세상에서 강제로 뜯어내는 그것을 가지고 은혜라고 하고 그것을 기적이라고 합니다.

그 스카치 테이프 뜯어낼 때 파스 이거 털 난 허벅지하고 뜯어낼 때 아이고 생각만해도~~막 털 뽑히잖아요. 지난시간에 했잖아요. 화분하고 화초이야기 했죠. 정이 들어가지고. 이 세상에 정이 팍 들어가지고 그걸 뗄려하니까 온 피부가 떼이듯이 떼기 싫잖아요. 두두두둑 두두두둑. 떼니까 털도 같이 뽑히고.

그래도 그 힘이 내 힘이 아니고 주님의 힘으로 기어이 우리로 하여금 주의 말씀이 들어갔기 때문에 말씀대로 가게합니다. 처나 자식을 사랑하지 않도록 해주시고,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지 않도록 해주시고 그건 내가 지키는게 아니예요.
그의 나라와 의를 사모하도록 만드시고 범사에 감사하도록 해주시고 다른사람은 말합니다. ‘요즘 좀 보니까 당신 좀 경건해졌네.’ 아니요 경건한게 아니고 주께서 그렇게 이끄신거예요. 주께서 강제로.

자 그러면 그 다음 문제지요. 그러면 이렇게 제가 열매라 하는 것은 다시 한번 정리하자면 하늘나라에 가는 전혀 다른 사람 전혀 다른. 지금 이 인간 말고 전혀 다른 인간. 그 다른 인간을 뭐라고 하느냐. 의존적 인간.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될 것은 의존적 인간만 되면 되겠네 이렇게 끝나면 안되요. 왜냐하면 우리의 출발선이 뭐냐하면 자존적 인간이거든요. 자존적 인간이기 때문에 ‘주여 의존적 인간되게 하옵소서.’ 이렇게 하게되면 이건 의존이 아니고 의지가 된다니까요.

나 좋아라고 주앞에 의지하는 하나의 꼼수로 쓰는게되요. 가만히 있으면서 감사하면 되는데 괜히 설친만큼 설친만큼 사람은 또 보상하게 되어있어요. 보상을 원하는 자체가 의존적이 아니고 뭐다? 또 독립적이고 자존적이예요.

‘나 이만큼 기도했으니까 이만큼 얻었다.’ 또 이렇게 된다고요. 그래서 제가 이야기하는 것은 뭐냐하면은 이 자존적 인간 스스로 나는 의존이 아니고 스스로 나는 이렇게 살아간다 하고 제가 이렇게 축약해서 말했지만 실제로 우리의 삶에 있어서 자존적 인간형이 어떤 식으로 이 세상을 운영하고 펼치고 있는가 거기에 대해서 우리가 분명하게 알아야되요.

분명히 알아야 우리가 왜 자기 힘으로 자존적에서 의존적으로 바꿀 수 없는가를 우리가 실감하게 되요. 그걸 실감해서 뭐할건데? 그걸 실감하게 되게되면 그 다음 9절 10절 11절이 비로서 이제 이해가 됩니다.

이걸 알아야 그 다음에 나오는 계명이 무슨 계명입니까? 사랑이라고 되어있지요. 여러분 사랑은 계명이 아닙니다. 계명이라고 하는 것은, 계명이라고 하는 것은 그 행위 주체자가 있는 것이 계명이거든요.

그 법이 있다는 것은 법이 있다는 것은 법만 달랑있다는 것이 아니고 이 법을 지켜야 될 당사자가 있을 때 이게 계명이다 법이거든요. 그런데 사랑은 사랑은 완제품이예요.

새삼스럽게 만들어 가는게 아니고 그냥 받아챙기면 되는 겁니다. 사랑은 이루는게 아니고 받아챙기면 되는거예요. 어떤 남자가 나를 사랑한다 받아 챙기면 되요. ‘사랑하니까 나는 이 만큼 해줘야지.’ 이거는 받아챙기는 것이 아니고 거래고 흥정입니다.

그것은 남자의 사랑을 모독하는 거예요. 뭐 받아봐야 뭐...그런 사랑 받아봤습니까? 거저 주시는 사랑. 처음 결혼 하실 때 그렇게 사랑했습니까? 그저 뭘 해도 좋다 내가 다 해 줄게. 말씀만 보는게 아니고.

사랑은 계명이 아니예요. 누리면 되는 거예요. 뭐와 같으냐? 마치 풀장과 같아요 풀장과. 풀장에 빠져가지고 거기서 뭐 착한일 합니까? 그게 아니고 풀에 물이 있잖아요. 허우적 거리면서 허우적아니고 신나죠.

어푸어후 하면서 맘껏 헤엄 그 사랑이라는 헤엄을 치면 되는겁니다. 말해도 지금 뭐 전부 다 실감을 못하고 있는 느낌인데. 주님께서 사랑이라는 계명은 누리라는 겁니다. 내가 준 사랑안에서 누리라는 그걸 즐기라 이말입니다.

바케스 물 부었잖아요. 우리 죄 지은 것보다 더 뭐가 많으냐 주님의 의가 왕노릇 잖아요. 그 의를 즐기라 이말입니다. 의를 행하라가 아니라 의를 즐기는 거예요. 의를 내가 행해서 주님은 행했어요. 주님은 의를 행하고 주님이 행했던 의를 우리에게 바케스로 갖다 부어버린겁니다.

우리는 왠 떡이냐 하고 옷 흠뻑 젖으면서 흠뻑 젖으면서 그 상태가 바로 주님 보기에 ‘음, 이게 사랑이야.’ 그게 남편되신 예수님이 아내에게 주는 사랑이예요. 무슨 남편이 사랑하면서 아내에게 요구 사항이 있습니까.

그런 아내와 남편은 그런 혼인잔치는 하늘나라에 아내한테 요구하는 혼인잔치는 하늘나라 혼인잔치 아닙니다. 이미 율법으로 인간은 못 지키는 것을 버려야 하는데 거기에다 또 뭘 더 요구하겠어요.

그래서 이 사랑을 계명이라고 한 것은 뭐냐하면은 이 계명을 완성자가 ‘너희가 아니고 너희와 함께 있는 나다.’ 라는 것을 이야기 하기 위해서 계명이란 말 한겁니다. 무슨말이냐 하면은 사랑이라는 것이 왔을 때 마냥 거저주는 사랑이 아니고 누구하나 수고했다는 거예요.

그럼 누가 수고 했을까요? 예수님 본인이 수고 했잖아요. 공짜라고 해가지고 공짜좋네 이러면 안되요. 공짜로 얻었으면 ‘누가 수고했습니까? 이 사랑계명 누가 했습니까?’ ‘내가 했다.’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하라고 사랑계명을 준거예요.
예수님 고난 덕분에 우리가 사랑을 받은거예요. 누려도 좀 고마운 줄 알고 누리라 이말입니다. 그 쪽에서 고마워 하라는게 계명은 아니예요. 누리기 때문에 고마움이 절로 나오는거죠. 안다고치고 넘어갑시다. 안다고치고 넘어갑시다.

사랑은 그냥 누리는 겁니다. 그걸 설명할려면 사랑은 계명이라고 했거든요. 왜 우리자신에게 사랑이라는 계명을 왜 맡기지 아니했는가. 약간 어렵더라도 그냥 밀고 나가겠습니다.

인간이 자존적이죠. 자존적입니다. 인간은 자존적이면서 자존적이라고 하는 것은 이미 구심점이 누구다? 본인이 구심점, 또는 영어로 센터예요. 센터. 본인이 본부예요. 내가 본부예요. 제가 어제 부산강의 하면서 젤 첫 마디가 뭐냐하면은 부산강의 들은 분 계십니까? 부산강의 첫 얘기가 뭐냐하면은 내가 여기 있는 것을 취소하거나 무효화 시킬수 없다 했죠.

내가 여기 있는 걸 나 없다고 말이 안되잖아요. 내가 여기 있는 것을 취소 못 하듯이 이 시편에 있는 성경 말씀이 이 모든 성경 말씀을 주님께서 취소 안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 세상은 두 개의 취소 안할것이 경쟁하고 있어요.

나는 내가 중요하고 내가 소중하기 때문에 천하가 없어도 나는 포기 못해요. 그런데 거기서 주님 뭐라고 합니까? 니가 뭐라해도 나는 내가 준 이 말씀을 천하 없어도 나는 포기 못한다. 그러니까 말씀이 포기 못할거냐? 아니면 내가 포기 당할거냐? 그 싸움이 이 현실을 이룬다 이말이죠.

그러면 주님도 한 고집하고 우리도 한 고집해요. 왜? 내가 중요하니까. 하지만 결국은 누가 이기게 되있어요? 너 죽여서라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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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193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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