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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잃어버린 자 171013강의디도서

서울의존강의20171013a 디도서3장5절(잃어버린 자)-이 근호 목사

디도서 3장 5절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그렇게 되어 있죠. 성경 하나하나를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에 대해서 대응하면서 이 지침을, 이럴 때는 이렇게 하고 또 이럴 때는 이렇게 하라고 주시면 되는데, 구약 말고 특히 신약 같은 경우에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에 대해서 어떤 지침을 내리는 것이 아니고, 일괄적으로 행함으로 묶어버려요. 행함.

이것은 인간의 행동 하나하나에 대해서, 그 의도와 목적에 대해서 내가 다 지켜보고 있다는 겁니다. 장사를 하던 농사를 짓든 간에, 뭐 집에서 잠을 자든 간에 그 행동 하나하나에 대해서 주님께서 그것을 관찰하는 기준이 있는 거예요. 그 기준은 우리가 행동을 할 때에 자신의 의도가 거기에 묻힌다는 겁니다.

그것을 여기 5절에서, 인간이 행동을 하면서 앞에 어떤 단서를 붙이느냐 하면, “이것은 의로운 행동이다.”라고 단서를 붙여요. 인간의 행동 하나하나에. 라디오나 텔레비전에 보면 배선들이 많잖아요. 복잡한 배선들이 있어요. 그 선들이 같은 선이 없어요. 그 필요한 선들이 그만큼 많은 겁니다. 옛날 구식 라디오에 선들이 굉장히 많잖아요. 모든 전자기기 부품이나 배선이.

그런 배선들이 굉장히 복잡한데, 그 배선들이 얽히고설켜서 텔레비전 앞 브라운관에 화면이 나오거든요. 그러면 그 배선들이 그냥 깔려있는 배선들이 아니고 목적과 의미가 있다 이 말이죠. 텔레비전 브라운관에 화면이 나오도록 하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배선 하나가 끊어져버리면 화면이 안 나오잖아요. 소리도 안 들리고.

주님께서는 인간의 하나하나의 행동을 배선으로 보는 겁니다. 배선. 행동 하나하나에 대해서. 텔레비전 뒤에 보면 선들을 구분하기위해서 색깔이 아주 예쁘죠. 빨간색으로 해놓고, 노란색으로 해놓고, 초록색으로 해놓고, 파란색, 흰색, 검은색으로 해놓았는데, 만약에 그 배선들 사이에서 노란색 배선이 빨간색 배선을 보고 내가 더 예쁘다고 한다면, 배선과 배선 사이에서 서로 경쟁하고 싸우면, 그거는 배선을 설치한 원래 자기목적에 위배되죠.

색깔 자랑하라고, 배선 자랑하라고, 배선끼리 서로 붙여놓은 것이 아니라 이 말이죠. 인간끼리 서로 붙여놓고 내가 잘났네, 네가 잘났네 하는 것은, 그것은 인간이 있을 이유가 안 되죠. 인간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데, 텔레비전 배선이 화면을 나오게 하는 것처럼 결국은 인간의 모든 행동은 무엇과 관련되어 있느냐 하면,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의롭게 되기’와 관련되어 있다는 겁니다.

이것은 인간들이 그렇게 의도적으로 한 것이 아니고, 본인이 의도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모든 인간은 의롭게 되기를 추구하게 되어 있어요. 모든 행동이 의롭게 되기를 추구한다 이 말이죠. 농사를 짓는 농사꾼이 대추나무를 심어도, 그게 그냥 심는 것이 아니에요. 대추나무를 심자가 아니라, 이것을 심는 행위는 이유가 있고 그 이유는 배선을 따라 쭉 가보게 되면, ‘역시 나는 더 오래 살아야 돼. 왜? 나는 의로우니까.’라는 이것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봐요. 성경에서는.

모든 성경은 인간의 행동이 얼마나 다양하고 서로 복잡하고 다르다 할지라도 동일한 질, 동일한 성질로 딱 규정을 해버립니다. 니가 하는 모든 행동은 의롭게 되기와 관련되어 있다. 인간의 모든 행동은. 자, 그러면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우리를 구원하시되, 라고 할 때는, 이 말을 그대로 보게 되면 인간의 모든 행동은 뭘 하기 위해서 라고 했습니까? 스스로 의롭게 되기죠. 근데 여기서 구원이니까, 구원이라는 말을 다른 말로 하면 구출, 또는 탈출이겠죠.

그러면 예수님께서 자기백성을 건질 때에 예수님의 행위, 예수님의 목적은 뭐로부터의 구출입니까? 내가 의롭게 되지 않기 쪽으로의 구출이 되는 겁니다. 인간의 모든 행동은 의롭게 되기에 있는데, 거기서 구원이라는 말은 내 행함으로 의롭게 되지 않는 쪽으로 건지는 거예요. 그러면 이것은 뭐냐 하면, 인간이 의롭게 된다는 것은, 의로운 행동만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고 했죠. 인간의 모든 행동은 복잡한 배선처럼, 전자제품의 뒤쪽처럼 모든 행동이 하나로 의롭게 되기로 모아지잖아요.

그러면 여기서부터 구출이니까, 행함으로 의롭게 되지 않기니까, 인간의 모든 행동과 구원의 관계는 뭐냐 하면 바로 ‘파괴’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바로 인간파괴에요. 자기 의, 자기 파괴입니다. 사랑하는 주님께서 자기백성에게 찾아올 때에 일을 어떻게 하는가, 자기 의를 파괴하는 거예요. 우리자신을 파괴시키는 겁니다.

근데 사람들은 하나님이 살아계신다고 하죠. 살아계신다면 그냥 살아계시는 겁니까? 무슨 일을 하면서 살아계십니까? 일하시면서 살아계시죠. 그러면 그 일이 뭐냐 이 말이죠. “하나님이 살아계십니다.” “그래서? 살아계신데 어떻게 살아계십니까?” “그건 몰라요.” 이러면 안 되죠. 아니, 살아계신 분이 활동 안 하고 가만히 살아계신 분이 있습니까? 그런 분은 없죠. 어떤 분이 살아계신다고 하면서 가만히 있으면 그게 살아있는 거예요? 그건 시체지, 살아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어떤 분이 살아계신다는 말은, 분주하게 지금 활동하고 계시다는 것이잖아요. 그럼 무슨 활동을 하느냐는 말이죠. “주님은 살아있다.” “그래서?” “활동하십니다.” “그래 뭘 하는데?” “구원하십니다.” “구원이라고 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이야기 해야죠. 그래, 주님은 뭘 하는데?” “우리를 파괴하십니다.” “그렇지!” 이게 살아있는 거예요. 이게. 그게 살아있는 거예요. 우리를 파괴하는 거예요.

우리가 행동할 때, 내가 의롭게 한다는 것은 의도적이 아니고,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인간의 행동은 의도가 아니에요. 그냥 행동하게 되면 그게 모아져서 자기가 의로운 쪽으로 이게 묶어진다 이 말입니다. 한 묶음, 두 묶음, 배추 묶듯이 묶어지는 거예요. “나는 이런 행동을 했으니까 나는 아직 죽으면 안 돼요. 더 살아남아야 되고, 나는 남보란 듯이 내 자아를 드러내야 됩니다. 그러니 나를 붙잡고 교도소에 넣으면 안 돼요. 나를 구속시키면 안 됩니다.”

“박근혜 당신을 증거인멸과 도주우려가 있어서 구속하겠습니다.” 당신이 어떻게 행동을 한 의도가 있는데, 그 의도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한 모든 행동은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행동하기 위해서 구속에서 풀어달라고 하겠어요? 아니면 “나는 죄가 없다”라고 하기 위해서 구속에서 풀어달라고 하겠어요? 죄가 없다고 하는 거죠.

그러면 박근혜 전 대통령을 구속시킨 판사는 자기의 행동을 뭐로 봅니까? “이 판사는 이렇게 죄가 많이 있습니다.”라고 해서 구속 결정을 내렸습니까? 아니면 “내 판단은 내가 보기에 이거는 의로운 판단이라고 여겨서 당신을 구속수감합니다.”라고 합니까? 후자죠.

그러니 인간의 모든 복잡한, 75억의 모든 인간이 만나고 흩어지고 만나고 대화하고, 오늘도 술집에서 가서 술 먹고 어떤 대화와 논쟁을 주고받으면서 만남을 유지하더라도, 그 행동 하나하나에는 뭣과 연결이 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더 살아야 될 정도로 아직도 나는 의로운 존재입니다.”라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 그들은 지금도 부지런히 설치고 있는 거예요. 아주머니들은 설거지 하고, 교사는 학생들 가르치고.

흔히 말하죠. “당신은 교사로 왜 일하십니까?” “내가 뭐, 아이들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나는 겸손하게 내 죄를 압니다. 나는 월급 받아서 밥 먹고 살기 위해서 합니다. 다른 것 하면 월급이 이만큼 안 나오니까 뭐 이만한 직업이 없습니다.”라고 해요. 근데 “왜 살아야 합니까?”라고 물으면, “나는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니까 살아야 됩니다.” “그 가치가 뭔데요?” “나는 의롭습니다.” “그러니까 당신은 파괴대상이죠.”

자, 이 이야기를 세상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그러면 이제 교회에 대해서 이야기해봅시다. 자, 사람들이 교회에 왜 옵니까? 못난 놈! 이라는 소리를 들으려고 옵니까? 잘났다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 왔죠. 예배 참석하는 행위, 조용히 앉아있는 행위, 주차요원으로 봉사 활동하는 행위, 끝나고 난 뒤에 점심 먹고 가주는 행위, 오후예배까지 참석해주는 그런 열성.

그 행위 하나하나가 꽃다발처럼 모아져서 이퀄(=)나오는 행위, a+b+c+d...=? 뭐가 나오겠어요? 오늘도 나는 보람 있게 살았다. 그러니까 하나님이여 저 잡아가면 안 돼요. 저 죽이면 안 돼요. 이래 나오겠죠. 저 죽이면 안 돼요. 저 잡아가면 안 돼요. 저 때리면 안 돼요. 다른 말로 하면 강도의 위험과 강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주면 안 돼요. 이래 나오겠죠.

요즘 우리교회에서 고린도후서 설교를 하거든요. 몰랐죠? 사십 에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어떤 사람이라고 했어요. 어떤 사람이에요. 어떤 사람. 그럼 지금 이 사람은 천국가고 있는 중이에요? 아니면 지옥가고 있는 중이에요? 이름도 몰라요. 성도 몰라요. 아무것도 몰라요.

근데 어떤 사람이 이런 경우를 당하고 있어요. 백이면 백, 천이면 천, 사람들에게 다 물어봅니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매를 맞고, 이 사람이 어딜 가도 위험이 그를 공격하고 이 사람을 힘들게 합니다. 자, 이 사람은 천국 갈까요? 지옥 갈까요? 둘 중의 하나 객관식문제입니다. 고린도후서에서 이런 사람은 지옥 간다고 했죠. 근데 그런 사람이 지옥 간다고 했을 때 사도바울은 그 지옥 가는 기준을 자기가 가지고, 이게 바로 천국 가는 기준이라고 한다면 고린도교회 지도자들, 당회장들은 뭡니까? 악마의 전당, 악마의 저주에요. 악마는 이렇게 싸우는 겁니다.

그들이 기피하는 것, 자, 인간들이 기피하는 것이 뭘까요? “나는 의가 없습니다. 지금 잡아가도 나는 할 말 없습니다. 지금 때려죽여도 나는 고소하지 않겠습니다.” 이걸까요? 인간들이 원하는 것이? 아니죠. 반대를 원하죠. 나는 안 맞아야 되고, 나는 울지 않아야 되고, 나는 안 아파야 되고, 나는 행복해야 되고, 우리 집안만큼은 아무 문제없이 무탈해야 되고, 범사가 잘 돼야 되고, 내 뜻대로 잘 돼야 되고.

이걸 뭐로 표준삼느냐 하면 하나님이 함께 있으매 표준으로 잡고 싶은 겁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행동할 때, 본인이 의식도 안 했는데 행동해서, 방금 제가 나열한 것 있잖아요. 재수 좋고 행복한 것을, 사람들은 행동하면서 은연중에 그걸 보상으로 지금 기대하고 있는 거예요. 아니, 교회 나온 보람이 뭡니까? 교회 한 주 나오니까 집에 도둑이 들어서 냉장고 가져가고, 두 주째 나오니까 가스레인지 없어지고, 세 주째 나오니까 신발 없어지고, 네 주째 나오니까 애가 아프고.. 지금 천국 가고 있는 중이에요? 지옥 가고 있는 중이에요? 누가 봐도 지옥가고 있죠.

그런데 만약에 그렇게 당한 사람이 스데반집사고, 사도 중에 한 사람이고, 성령 받은 성도가 그렇다면 결국 그 사람 앞에서 우리의 기준과 판단에 뭔가 크나큰 실수가 있다는 것을 알죠. 그래서 이건 뭐냐 하면 그 사람 앞에서 자기 자신을 다시 점검하게 됩니다. 내가 지금 어디가고 있는지, 내가 지금 어디쯤 가고 있는지, 내가 지금 가고 있는 노선이 어딘지, 도대체 지금 나의 정신머리가 어디에 팔려있는지...

인간의 평소의 행동이 얼마나 지 잘난 체하고 있는 행동인지를 우리가 안다면 이 세상의 어떤 모임이 자기를 박살내는 모임보다 더 소중한 모임이 있을까요? 자기를 지근지근 밟아서 니는 개보다 못해! 니는 쓰레기야! 라고 노골적으로 지적질 하는 모임보다 더 소중한 모임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없죠.

문제는 그런 모임이 없다는 거예요. 사람들 더 붙잡아두기 위해서 긍정적 사고를 집어넣는 모임들밖에 없어요. 교회가. “니 같은 인간이 여기가 어디라고? 나가!” 이런 모임 없어요. “오늘도 오셨군요. 감사합니다. 주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다음에 오면 메달 드릴까요?” 평생 표창장 하나 못 받았는데 교회 가서 메달 얻고 이러죠.

세례요한처럼 이런 소리를 못해요. “여기가 어딘데 바리새인 사두개인 서기관 독사의 새끼들이 여기를 와? 여기는 너희들이 올 자리가 아니야. 잘난 너희들이 올 자리가 아니야. 여기는 돌만도 못한 인간들, 돌 같은 인간들이 오는 거야. 아이고, 돌보다 훌륭하신 분은 빠지세요. 안 빠지면 내가 도끼가지고 찍어버릴 테니까.”

오늘날 교회가 더럽게 되는데 있어서 평소에 우리 인간들이 얼마나 거기에 기여하고 정신적으로 보탬이 됐는지 몰라요. 얼마나 복 받았으면 교회가 저렇게 크겠느냐? 이번에 서울강의 광고를 보니까 주차장 없으면 옆에 이웃 교회에 주차하라고 광고해놨죠? 목사님이 광고하셨어요? 자기 교회 안 크니까 남의 교회 크다고 주차장만 이용하고...

사람은 자기를 파괴하는 말씀을 늘 안 들으면요, 자기가 지금 살만해서 살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어요. 숨 좀 쉬고 주일날 교회 가야지, 라고 이렇게 하는데, 숨 쉬지 마세요. 숨 쉴 권한 없어요. 권리 없어요. 미세먼지 걱정한다고요? 미세먼지를 한 다라이로 우리 입에 집어넣어도, 아예 몽골 사막의 모래를 한 가득 입 안에 집어넣어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동안 살려준 거나 감사해야 돼요.

그렇게 잘난 체하는 인간들, 주님이 십자가 진다고하니까 어떻게 되었습니까? 제자들이 뭐고 전부다 다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다 도망 가버렸습니다. 그래놓고 누굴 믿어요? 예수를 믿는다고요? 진짜 믿는 꼴 하고는? 그렇게 도망치려고 예수를 따라다녔습니까? 베드로가 왜 예수님하고 함께 있지 않았습니까? 예수님하고 함께 있으면 누가 파괴됩니까? 예수님 파괴되는 것이 걱정됩니까? 자기 파괴되는 것이 걱정이 돼요? 자기가 잡혀서 완전히 사형되는 그게 걱정이 되잖아요.

그러면 평소에 예수님이 붙잡히기 전에는 그 마음이 그 마음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따라다니면서, 베드로가 왜 따라다녔어요? 자기 안 죽으려고, 자기 파괴 안 당하려고, 한 번 덕을 보겠다는 거예요. 뭐 메시아고 물위를 걷고 병고치고 하니까, 아주 신이 났어요. 신이 났어. 게다가 인기가 좀 많아요. 인기가 굉장히 많다 이 말이죠. 어디가도 오빠! 오빠! 주님! 주님! 하면서 따라다니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어요?

게다가 자기가 주님 근처에 앉았으니까 자기가 굉장히 높은 자리에 앉았다고 착각을 해가지고, 임원진급, 이사진급인 줄 알고 착각을 해가지고, 주님 명에 따라서 귀신 좇아내고 복음 전하니까 귀신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니까 뭐 막 자랑질 하는 거예요. “주님, 주님 말씀대로 하니까 귀신이 하늘에서 떨어지나이다.” 아주 신이 났어. 착각을 아주 단단히 한 거예요.

진짜 예수님이 원하는 예수교, 또는 교회, 전혀 몰라요. 뭐 사람들이 운집하면 그게 교회되는 줄 알고. 어떤 인간도 스스로 파괴당하려고 하는 행동은 없습니다. 성령 받으면 몰라도. 어떤 인간도. 스데반집사님 같은 경우에는 성령 받고 난 뒤에 짱돌 들고 있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할 소리 다했잖아요. “니 죽인다!” “죽여!” 이게 바로 뭐냐 하면, 오늘 성령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 이렇게 뜸을 들이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7장에 보면, 55절에 스데반이 뭣에 충만해서 하늘을 우러러 봤습니까? 성령에 충만했잖아요. 이 본문을 제가 좀 더 설명을 하고 싶네요. 스데반 집사가 성령에 충만했다 이 말이죠. 쉽게 말해서 주님과 함께 있다 이래 보면 돼요. 그렇다면 주님과 함께 있을 경우에는 제가 아까 뭐라고 했습니까? 주님께서 우리에게 뭘 해준다? 구원, 구출, 탈출이죠. 어디서부터 탈출입니까? 어디서부터 탈출이라고 했어요? 자기 의로부터. 자기의.

성령이 임했다는 것은 무엇을 공격한다? 어떤 행동을 하게 될 때는 무엇이 같이 동반된다? 자기의 되잖아요. 내가 어떤 행동을 하게 되면 그 행동이 나의 의로 마일리지 쌓이잖아요. 나의 의로. 그 의가 추구하는 목적이 뭐라고 했습니까? 의가 있으면 있을수록 나는 죽으면 안 돼! 나는 망하면 안 돼! 나는 울면 안 돼! 웃어야 돼! 나는 행복해야 돼! 왜? 이만한 의가 쌓이고 쌓였으니까. 이거는 뭐 배선처럼 깔려있는 우리의 평소의 행동이니까. 이거는 뭐 여러분이 이 말 들으면 아니라고 할 수가 없죠. 그렇죠? 어떤 행동을 할 때는 반드시 보상심리가 있다 이 말이죠.

그런데 지금 스데반 집사가 어떤 행동을 합니까? 설교라는 행동을 하죠. 설교라는 행동을 하는데, 만약에 성령이 없이 설교를 한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성령이 없이 설교를 하면, 제가 아까 이론대로 한다면 뭐가 만들어진다? 자기의가 만들어지죠. 자기의가 만들어지면 자기 의는 나를 죽인다? 안 그러면 나를 더 살도록 부추긴다? 자기를 더 살도록 부추기죠. 이렇게 착하고,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죽으면 아깝잖아요. 이게 성령 없는 사람의 특징이다 이 말이죠.

그런데 스데반 집사에게 성령이 임해버렸거든요. 충만하니까 마지막 결국에는 뭐라고 합니까?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제 영혼을 받으소서. 마치 평소에 고대하고 고대했던 최고의 기쁨, 최고의 행복, 최고의 희열이 드디어 저한테 찾아와주게 해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합니다. 이 순간이 오기를 얼마나 고대했는지 모릅니다.” 이래 한 거예요. 이 순간이 오기를!!

지지난주 낮 설교에 그런 이야기를 했지만, 악귀가 말하기를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안다고 했잖아요. 그럼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개무시 당했지만, 사실은 마귀는 누구를 알고 있어요? 사도바울이 어느 편에 속한 것을 압니까? 사도바울이 예수 편에 속한 것을 누가 알아요? 악귀가 완전히 고백을 했죠. 이제 우리가 신자냐, 아니냐를 누구한테 물을 입장이냐면 마귀한테 물어볼 입장이에요. 마귀한테.

사람은 속아 넘어가도 마귀는 우리 자신의 술수를 알아요. 우리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을 알아요. 성령이 임한 사람과 임하지 않은 사람을 마귀가 모를까요? 마귀가 모르겠습니까? 지금 자꾸 성령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오늘 본문 내용이 그래요. 오늘 본문이 성령의 새롭게 하심이에요.

이참에 우리가 영을 분별합시다. 단정 지읍시다. 성령은 이렇다. 성령은 이런 분이다. 어떤 분인데? 나의 의를 파괴하시는 분이다. 나의 의를 파괴하시는 분이에요. 나의 의를 파괴하는 경우는 어떤 경우냐, 내가 나의 행함에 대해서 나의 의미를 부여할 때죠. 그렇죠? 나의 행함, 예배, 헌금, 뭐 전도... 의미를 부여할 때, 그 의미를 부여해서 주어지는 그 행함에 대해서 성령은 가만두지 않고 지근지근 밟아버리죠.

그렇다면 이미 행했다는 사건은 남고, 우리는 그 사건에 대해서 지근지근 밟힌 죄인이라면, 그러면 그 사건, 내가 어떤 행동, 물을 마시는 행동을 하든, 내가 어떤 행동을 하는 그것을 누가 유발하신 거예요? 누가 그렇게 일으킨 겁니까? 누가 일으킨 거예요? 성령이 일으켰잖아요. 성령이 일으켜서 하시는 사건 속에는 두 개의 작업이 있어요.

하나는 뭐냐 하면, 우리의 하는 모든 행함과 자기 의를 파괴시키는 작업. 그리고 그 작업이 곧 주님께서 너를 구원, 구출, 탈출시키는 작업이라는 인식을 그들에게 새겨서, 성도로 하여금 “주여, 어떻게 나에게 이런 좋은 때가 이렇게 찾아올 줄을 저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너무 감사합니다.” 마지막에 감사가 나와요.

자, 성령의 일을 정리해봅시다. 성령은 파괴를 통해서 뭘 유도한다? 감사를 유발한다. 감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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