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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운명 (마 24장 1-2 절) 대전- 92강자유게시판마태복음

운명 (마 24장 1-2 절) 대전- 92강

이근호

2017년 9월 26일 본문말씀: 마태복음 24:1-2

(마 24: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마 24:2)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마태복음 24장 할 차례입니다. 두 번 째 시간에는 운명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하는데 오이디프스 왕의 이야기를 보면 운명을 미리 알아서 운명대로 갔던 사람이 나와요. 안 좋은 운명이지요. 자기 아버지를 죽이고 엄마하고 결혼한다는 그리스의 신화에 그는 운명을 태어나기 전에 아버지가 미리 알았어요. 마약 복용한 무당들에게 신탁을 받아서 옛날에 이방 신들의 여 사제들은 할 말 없으면 마약을 해요. 마치 연예인이나 가수들이 작곡 안 떠올 때는 마약하고 하는 것처럼 창의라는 핑계로, 무당들도 창의성으로 하거든요. 창의적으로 해줘야 권위가 유지되지 한 소리 또 하고 한 소리 또 하면 미천 다 떨어진 줄 알면 돈이 안 들어오잖아요.

(참고)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테베의 왕으로 신탁에 따라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되며 신탁으로 인해 태어나자마자 친부모에게 버림받고 훗날 오이디푸스는 괴물 스핑크스(Sphinx)의 수수께끼를 풀어내 테베의 영웅이 되었으나 신탁이 예언한 비극적인 운명을 피하지 못하고 스스로 장님이 되는 고통을 겪었다

목사의 스트레스는 다른 게 아니에요. 무당 짓을 해야 하는 데 새로운 게 안 나오니 그게 제일 스트레스인거에요. 거기에 비하면 대학 교수들은 편해요. 신학생이 들어와도 무한 오토로 반복하면 되지만 목사들은 교인들이 설교 시간에 다 졸고 있지만 10년전 것을 다시 하면 “아! 그게 전에 했는데요!” 내용도 잘 모르면서 했었다는 것은 귀신 같이 잘 알아요. 어쨌든 무녀들은 창의성으로 새로운 것을 주면 예상 못한 새로움에 사람들이 기가 죽어서 무당의 권위를 신적 권위로 인정해줘 버려요. 그랬을 때 그 무당의 (영업적) 수명은 더 길어지겠지요.

옛날이나 지금이나 인간들은 신을 위대하게 생각하고 인간은 신 앞에서 연약한 존재로써 무한한 힘을 지닌 하나님을 알고 지낸다는 것으로 어떤 이득을 얻으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위대한 힘을 솔솔 뽑아낼 수 있는 연결 고리 같은 것을 인간 쪽에서 연결고리를 기대하고 있으니까 무당이란 것도 직업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어요. 모든 종교가 다 무당 아닙니까! 옛날 우리나라 자체가 우랄 알타이족의 무당 계통이에요. 모든 민족은 처음에 무당부터 시작하는 거에요. 단군이 뭐냐 하면 무당이라는 뜻이에요. 태초에 무당이 계셨으니 그 이름은 단군이라는 거지요. 무당의 자손들이에요. 샤머니즘의 자손들이에요. 우리가.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찝찝한 것은 찝찝하거든요. 과학 발달로 인해 걱정 근심도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아요. 공포란 것은 대상이 없어요. 공포는 먼저 오고 대상은 알아서 찾아야 되요. 왜 이리 갑자기 무섭지? 왜 무섭지? 심지어 어린 애도 마찬가지에요. 부엌에 애가 가잖아요? 불을 딱 끄면 후딱 밝은 곳으로 뛰어 오지요. 여고 괴담 같은 거의 특징이 뭐냐하면 사건이 어디서 납니까? 어두움에서 일어나는 것이거든요. 어두움이 왜 무서워요? 질문하는 참 제가 그렇지요? 어두우니까 무섭지! 라고 하거든요. 낮에는 그곳이 안 무서워요. 해가 지면 같은 자리라도 어두워요.

그래서 인간 자체가 어디에 쫓기고 있다? 어두움에 쫒기고 있는 거에요. 과학이 발달한다고 해서 어둠에 안 쫒길 수 없어요. 그러니까 인간은 빛을 찾는 거에요. 밝은 곳을 찾는데 문제는 공간적으론 밝지만 미래는 안 밝잖아요.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고 모레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말이죠. 특히 로또나 복권이나 주식이나 펀드를 했을 때는 내년에 브라질 펀드나 자기가 해 놓고는 이윤이 남을지 아님 지 아니면 폭삭 망할지 걱정돼서 맨 날 증권사에 전화하고 그런 말이죠. 겁나서, 그렇다면 공간적으로 빛을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기 때문에 뭘 하냐하면 미래도 빛처럼 희망적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 되지요.

그럴 때에 미래의 빛을 누가 담당하느냐 하면 바로 운명이 담당하는 거에요. 점치는 것 대신 교회에 가는 거에요. 그 두려움을 안고 그런데 점치는 것은 돈만 받아먹고 (맞을)확률이 안 좋으니까 재주 없을 때마다 점을 봐야 하니까 요새는 5만 원 정도라고 하니까, 언제 이렇게 올랐는지 옛날엔 5천 원 정도 할 때가 있었는데 손님이 그만큼 안 되니까 생활되게 하려고 그만큼을 받는데 이건 일시적으로 5만원씩 받으니까 실효성이 그다지 없는 것 같고 가봐야 반말이나 듣고 젊은 무당에게“ 그러면 안돼! 굿 한번 해야 돼!” 반말해야 권위가 있는 것처럼 하니 그런 반말 듣기보다는 차라리 포괄적으로 이야기 해주는 게 좋은데 그게 교회입니다.

성경이야기 하지요. 성경을 왜 이야기하냐하면 미래를 미리 당겨서 알게 되면 마음이 두려움이 다소 해소되지 않겠냐는 말이에요. 작은 무덤 피한다고 큰 무덤 만난 거에요. 아무리 멀쩡한 사과도 썩은 상자에 들어가면 다 썩는 다는 말이 있어요. 실제로 실험 해봐도 그렇고 멀쩡한 사과도 상자가 썩으면 그 사과도 얼마 안가 썩는 겁니다. 인간은 자기가 멀쩡하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교회라는 상자에 들어가면 다 썩어 버려요. 운명과 미래. 큰 무덤 만들어 놓고 너의 불안과 운명 미래 사이에 어떤 원칙이 있고 법칙이 있다는 겁니다. 그 법칙이 무슨 법칙이냐하면 행함의 법칙이에요.

네가 앞으로 잘 되려고 하다면 동 바치고 시간 받치라는 겁니다. 그러면 네 운명도 피고 네가 십일조나 헌금 아끼려고 안하면 네 운명은 쪽 난다는 겁니다. 이 말이 뭐냐하면 결국 강단에서 하는 말이 네가 교회에 왔다는 것은 “무섭지? 무섭지? 내 말 안 틀리지? 무섭지? 뭔가 무서운 게 있지? 잘 생각해봐! 무서운 게 있을꺼야! 난 대학 교수이고 박사 학위 따고 똑똑하다는 소리 하지 말고 그래도 무서운 게 있지?”네, 무섭습니다. 우리 과에 신입생들 안 들어와서 내 자리가 보장 안 되고 보조금 안 들어 올까봐 무섭습니다. 나는 양장점 하는데 재고 많이 남을 까봐 무섭습니다. 전부 따지고 들면 안 무서운 게 없어요.

자식을 키워도 성적 내려가면 무섭습니다. 특목고에 들어가야 하는데 너무 세서 안 될까봐 무섭습니다. 이사를 가야 하는데 집값이 너무 올라서 무섭습니다. 전부 강대상에서 “무섭지?”한 마디 하니까 교인들이 알아서 내재적인 법이 가동이 되는 거에요. “아하! 내게 이런 무서움이 있구나! 우리 목사님 도사다! 나의 무서움을 어떻게 알았는지!” 본인이 도사면서 스스로 해석을 하는 거에요. 주님의 운명은 너희가 모른다는 겁니다. 그런데 인간은 자꾸 알고 싶어 하지요? 여러분! 운명을 알게 되면 그 자체가 해석에 이미 오류가 벌어지는 거에요. 오류가 시작 된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운명을 알 권한과 자격이 없어요.

사람이 운명을 생각할 때 놀랍게도 우주의 운명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 운명을 걱정해요. 아까도 이야기 했지만 나의 운명이라는 아예 자체가 없어요. 왜냐하면 나라는 말은 개인이 사용 할 수 있는 자격도 안 됩니다. 나도 예수님의 운명에 끼어들지 않고 대적하고 반대하고 적으로 작용하는 운명들 밖에 없어요. 주님의 운명에 시기하고 질투해서 거기에 대해 마귀가 시키는 대로 “그럼 내 운명은요?”대드는 식으로 쏘아대는 거지요. 마치 남자의 생식 기능에서 정자가 난자 안으로 서로 들어가려고 가는 것처럼 보시면 되요.

이 세상의 모든 창조는 오직 예수님의 운명을 위해서 만들어 졌고 그 분을 위해서 존재해야 되요. 처음부터 그랬고 그것에 대한 원칙은 마귀가 아닌 마귀 할아버지가 와도 취소되거나 변경된 적이 없습니다. 이미자가 불렀던 여자의 일생의 가사 대로 처참한 여자의 일생을 산다고 할지라도 그것마저 주님 보시기에는 선한 거에요. 그러면 당사자는 화가 나겠지만 왜 내 팔자는 힘든 인생을 살아야 됩니까? 라고 주님 앞에 이야기 하게 되면 그 관심사부터 따지십니다. “너 지금 관심이 어디에 가 있냐?”힘들기 짝이 없는 내 인생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럼 네 팔자에 문제 있다는 것이 누구와 비교해서 그러냐?”대부분의 사람들과 비교해 보니까 더러운 팔자인거 같습니다. “고~뢔? 그런 너 내 팔자와 비교해 볼래? 같은 지상에서 살았던 내 팔자와 네 팔자와도 비교해 볼래? 어느 팔자가 더 나은지 한번 비교해 볼래? 아니면 욥의 팔자와 비교해 볼래? 아니면 스데반 팔자와 비교해 볼래? 아님 12제자와 비교해 볼래? 결혼도 못해본 사도 바울과 비교해 볼래?”결혼 해놓고 징징거리지 말고 사도 바울이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결혼은 왜 하지?”이렇게 나와요.

우린 결혼해서 속상하다고 하지만 사도 바울이 그런 걸 왜 했어? 하면 팔자 하면 펴 보려 했습니다. “누구 팔자? 네 팔자가 어디 있다고!”우리에겐 팔자가 없어요. 팔자 앞에 나를 붙일 수가 없습니다. 운명 앞에 붙일 수 없는 나를 거기다 붙이는 거에요. 그러니까 큰 무당에게 다 속아 넘어가고 돈 갖다 바치고 그러고 같이 더불어 지옥가고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왜냐하면 나중에 아는 자하고 알아 가는 자와 차이나기 때문에 그래요. 예수님은 주가 주되기 위해 그래서 주님은 알파요 오메가입니다. 처음과 끝을 다 알고 계세요. 이것을 지난번에 묵시라고 했지요. 모든 것이 묵시로 재편성되고 재구성되는 겁니다.

주님은 현실을 뒤집어 구성하려 하시는데 우리는 고집이 세서 나 위주의 현실을 꼬옥 쥐고 있는 거에요. 더러운 손으로 내 인생, 내 운명, 내 팔자를 꼭 꼭 쥐고 있는 거에요. 얘들에게 돈을 천 원짜리나 만 원짜리나 오 만원 짜리를 주면 네 다섯 살짜리 얘들에게 주면 꼬옥 쥐고 흙장난 하고 나면 돈이 어떻게 됩니까? 시커멓게 묻지요. 원래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예수님 겁니다. 예수님 자기 것이에요. 예수님이 주체이고 목적이 되는 알파요 오메가의 구조거든요.

예수님을 위해 줬건만 내게 주어진 것을 마치 어린애가 돈 꼬옥 쥐듯이 스쿠르지 구두쇠 같은 사람들처럼 써보지도 못할 돈을 궤짝에 넣어 놨다가 박정희 대통령 때 화폐 개혁을 해버렸어요. 휴지 조각 되어 버렸어요. 돈이 돌아가 되는데 집집마다 안 쓰니까 장롱 속에 있던 돈 다 휴지 만들게 화폐 개혁을 해버렸어요. 그래야 은행에 돈 들고 와서 돈이 도니까. 인간은 자기의 체면과 명예와 관련된 것은 꽉 쥐고 이것에 흠짓나면 자살하고 좀 잘되면 자기가 잘나서 그런 줄 알고 헤헤 거리며 자만 떨고 교만하고 으시 데고 그렇게 살아요. 그러니까 모든 것을 미리 아시는 끝을 아시는 주님께서 어떻게 하셔야 됩니까? 전부 무너뜨려야 되겠지요.

그냥 무너뜨리지말고 장롱 속에 있는 옛날 돈 끄집어내듯 네가 꼭꼭 쥐고 있는 것 바깥으로 다 끄집어내라고 말씀을 주신 거에요. 제자들에게서 어떻게 끄집어내시는지 보면 제자들이 성전을 봅니다. 자~ 성전 참 멋지게 지어져 있습니다라고 할 때 이미 제자들의 마음 속 마다 공통적으로 하나의 통일 된 마음이 있어요. 뭐냐하면 우리도 언젠가는 저런 멋진 건물인 성전이 우리의 소유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들지요. 개척 교회에 다닌다든지 월세 내고 있는 교회에 있는 사람들이복음은 그만 들었으면 됐고~ 하나님 뜻대로 복음 전했기 때문에 주께서 팍팍 후원해 주시면 복음 있는 교회니까

주님이 동업자로서 키워 주시고 이제 월세 시절은 청산하고 우리도 그럴듯한 스테인드글라스 색색의 유리창으로 되어 있는 예배당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나 그런 식으로 이야기 한 거에요. 제자들이. 이건 사실은 복음을 좋아한 게 아니고 내면 속에 복음을 가지고 정작 나의 욕망, 아까 말한 모방 욕망, 어디서 했냐 하면 다른 큰 교회들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모방해서 그것이 자기의 쾌감과 쾌락을 주는 거에요. 왜 좋으냐고 묻지 마세요. 그냥 딱 보니 좋은데 무슨 이유가 있어요. 총각들이 어떤 여자가 자기 마음에 예쁘다 싶으면 자기 사회적 레벨이나 출신도 생각지 않고 무조건 스토커처럼 자기 여자로 만들겠다고 하잖아요.

여러분들도 한두 번 경험 다 있지요. 젊을 때. 그것이 자기 속의 숨어있는 욕망이 구체화되고 가시화 된 거에요. 그래 저건 내 타입이야! 그 여자가 안 나타났으면 나에게 어떤 욕망들이 진열 돼 있는지 본인이 몰라요. 내가 나를 몰라요. 딱 지나갈 때 내 타입이라고 할 때 그런 타입의 여자를 좋아하는 욕망이 처음부터 내 안에 나도 모르게 들어 있고 잠복되어 있었구나! 아는 겁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던지는 것은 끄집어내라는 거에요. 제자들에게 다 끄집어내라는 거에요. 끄집어내게 하고 작살내 버리는 겁니다. 사람 안에 들어 있는 자기도 모르는 욕망으로 인해 뭐가 생기냐 하면 비전, 꿈이 만들어져요.

희망, 목적이 만들어져요. 이것이 가시화 됐으면 좋겠다는 거에요. 기도도 그렇게 하게 되고 욕망이 현실화 될 때 욕망이 어디서 왔냐 하면 기존에 것에서 왔지요. 그러니까 기존에 있던 타인의 욕망을 모방해서 내 욕망으로 가시화되기를 원한다면 이건 갇혀 있다는 뜻이에요. 눈에 보이는 세계에 갇혀 있는 겁니다. 갇혀 있는 주인공은 누구냐 하면 본인의 쾌락이니까 본인이 주인공이 돼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구원, 구출 끄집어내야 하거든요. 끄집어내야 하는데 이 설명이 좀 어려운데 실감 있게 설명하면 저는 애기를 안 낳아봤습니다만은 애기와 함께 나오는 것을 양수라 하잖아요.

인간이 어디에 담겨 있냐 하면 태어나기 전에는 양수 안에 있지요. 날 때 양수도 나오고 애기도 나오잖아요. 인간은 양수 없이 살 수 없는 거에요. 인간은 욕망의 양수 없이 살 수 없는 거에요. 매일 살아가는 용기와 힘들고 어렵지만 버티는 힘이 뭐냐하면 내 꿈을 이루기 위해서 네 꿈을 펼쳐라~ 율동 하면서 가스펠 송이나 세상 가요나 똑 같아요. 네 꿈을 펼쳐라! 에서는 다를 바가 없습니다. 주를 찬양 합니다 두 팔 벌려 올리면서 하는 것이 결국 노리는 건 뭡니까? 주님의 위대하심의 위대함이 나의 양수를 더욱 더 윤택하게 하옵소서! 그것 외에는 없어요. 거기에 대해 주님은 다 쏟아 내는 거에요.

“네가 이런 양수 속에 환상 속에 상상과 착각 속에 있다. 다 끄집어내라!”고 하는 겁니다. 그들은 큰 성전, 큰 예배당 그리고 내가 주인공 되는 이 현실이 남 앞에 부러움을 사고 “아이고 부러워라! 나는 언제 저렇게 되나?”인기를 얻는 그런 것들이 쏟아져 나와 하는데 그것이 구출 작업의 필수 요건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육이라 합니다. 인간이 상상하는 현실관. 제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복음 모르는 사람들이 “그럼 기도하지 말라는 겁니까?”라고 하는데 주님께선 모든 공포와 두려움, 운명이라는 자체가 네가 참고할 만한 것이 갇혀 있는 공간의 내용들 속에서만 참고하다보니까,

운명의 목적과 내용과 두려움과 공포가 미리 운명을 알게 되면 이런 두려움과 공포에서 탈피할 수 있겠냐의 나름대로의 구원관, 나름대로의 탈출관, 나름대로의 천국관, 나름대로의 영생관 그 모든 것들이 결국 악마가 조성한 양수 속에서의 착각이라는 말이죠. 마태복음 17장의 변화산에서 하나님이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것이 있습니다. “제자들아! 딴 생각하지 말고 초막을 지어 드리겠다고 하지 말고 주의 말을 들으라! 너희와 함께 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예수가 네가 꿈꾸고 체험하고 있는 현실 세계 속에서 무사히 너를 뽑아 낼 줄 것이다.”왜냐하면 예수님이 운명의 마지막 키를 가지고 계시거든요.

열쇠를 쥐고 계신 거에요. 이 것을 요한계시록에서는 다윗의 열쇠라고 합니다. 다윗은 죽은 자에요. 그런데 다윗은 포개져 있습니다. 좀 어려운데 다윗의 죽음이 다윗의 운명이 되요. 즐거운 운명입니다. 왜냐하면 포개진 그것이 다윗의 약속이거든요. 다윗의 약속 때문에 그는 죽는데 일반 죽음과는 달리 약속에 준해서 죽는 죽음입니다. 지난 오후 설교 때 용서가 하나님이 주시는 마지막 선물이라고 죽음이에요. 나와 함께 죽는 것이 마지막 선물입니다. 이것을 세례라고 하지요. 어차피 죽는 데 혼자 죽지 말고 같이 죽자! 매일의 삶들은 계획에 차질 없이 잘 진행되고 있어요. 무엇을 하는데? 나를 주와 함께 죽이기 위해 필요한 절차들이에요. 순서들이에요.

우리는 고집이 세서 엄마! 저것 사줘! 하는데 뒤통수 때리시며 “그건 구원 받는데 네게 필요 없는 거야!”필요 없기 때문에 안 주시는 거에요. 주님은 결과를 보고 이야기 하시는데 우리는 결과도 모르는 체 나의 모방 욕망을 근거로 해서 이것 주게요! 이것 하겠습니다. 성경 쓰기 40번 하겠습니다. 새벽 기도 하겠습니다. 그런 식으로 큰 무당에게 얼마나 속아 넘어갔습니까? 무당한테는 5만원만 주면 되지만 큰 무당에게는 십일조까지 내야 하니 그걸 안내면 내 소원 안 들어줄까 싶어서 교인들이 지금도 속고 있잖아요. 이번 오후 설교를 하는데 앞에 계셨던 분이 크게 막 웃었어요. 어느 대목에서 웃었냐 하면

사람들이 하늘나라를 확장한다고 선교비로 돈을 내라고 하는데 하늘나라는 성령 안인데 그 안은 몇 제곱미터라는 게 없어요. 평수가 안 나온다고요. 그런데 돈 받아먹기 위해 자꾸 면적을 이야기해요. 그래서 와 하고 웃었어요. 다른 분들은 예전에 다 해서 들은 이야기일 텐데 새로 오신 분이여서 웃었는지(웃음). 돈이 필요 없다가 아니라 나에게는 필요 없는데 주님에겐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월 850에서 900을 주시면 된다고 하니 그렇게 되면 좋겠지요. 나에겐 필요 없는데 주님에게 필요해서 월 1200-1500을 주시고 펀드 샀는데 25%오르고 땅 사서 던져 놨는데 10배 정도 오르고 아파트에서 보상 받으라고 연락오고 요지라 많이 보상한다고,

나하고 아무 상관도 없는데 10배 오르고 로또 복권 주었는데 1증 당첨 되고 나는 나와 상관없이 살고 있어요. 왜냐하면 나의 운명이 아니기 때문에 나의 운명에 포함되어 있지 않고 주님의 운명에 포함되어 있거든요. 주님께서 부순다고 하실 때 우리는 박수를 쳐야 되고 고마움의 눈물을 흘려야 돼요. “내가 네 인생 조져 놨다!”하시면 고마워요! 고마워요. 우리 교회 어떤 집사님은 나만 보면 고맙다고 그래요. 고마워요! 목사님! “네 인생 이젠 망했어!”하시면 고마워요! 만사가 주의 모든 말씀은 (우리의)시작을 개무시 해버립니다. 마지막을 (마무리 하시려고) 주님은 끝을 모르는 인간(제자들)하고 돌아다니시는 거에요.

그러니 말이 통할리가 있습니까? 그러면 우리는 내가 잘되야 돼! 내가 잘되야 돼! 하는데 마태복음에도 이런 대목이 나오는데 무화과나무 이야기를 했잖아요. 무화과나무가 아무 원인도 없는데 열매 맺을 때가 아닌데도 (열매 없다고) 주께서 저주를 해버리신 거에요. (우리는) 저주란 나쁜 짓을 해서 온다는데 주님은 그게 아니고 나의 완성을 위해서 저주를 집어넣어야 될 대상들이 있어요. 대게 착한데 지옥가야 돼! 무지무지 점잖고 인간성 좋은데 지옥가야 되요. 왜 주께서 지옥에 집어넣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지옥 같은 세상에서 벗어나는 것이 구원이 아니고

제일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구원이에요. 고생을 벗어난다고 구원이 아닙니다. 이번 주례사에서도 했지요. 결혼이 마감이 아니라 과정이라고, 주님 안으로라야 구원이지 절에 가다가 교회 온다고 해서 구원이 아니에요. 개를 피하다 곰을 만난 격이지. 구원도 아닌데 구원받았다고 하니 이것보다 큰 낭패가 어디에 있어요? 주님의 특징은 내가의 구원은 날아가 버립니다. 주님의 구원이 나를 포함시켜버리니까 주님의 구원이 나를 덮쳐서 구원을 할당 받고 배당받은 거에요. 이 땅에서 역할을 하라고 네 구원말고 너 같이 막돼먹은 더러운 인간 구원 했다는, 주님의 솜씨를 보라고 구원 하셨지 사적인 내 구원 따로 챙기라고 구원한 게 아니란 말이죠.

제자들은 이런 것을 몰라요. 모르다가 결국 예수님 떠나고 나니까 난 이 엉터리 같은 사람 만난 것을 후회합니다. 자기 인생에서 후회하는 거에요. 자기 구원을 포기 못했다는 것은 자기 행함을 포기 못한 거에요. 예를들어 이틀 뒤에 누구와 만난다. 만날 일을 자기가 예상해요. 스스로 그 일을 정산하고 결산하기 바빠요. 내가 저 사람을 만나고 난 뒤에 내가 과연 말할 때 잘 했다 또는 못 했다를 어느 쪽에 설 건지 미리 예상해서 행동 하나하나 말도 조심하려고 해요. 여러분들도 다 그렇게 살지요.

누구와 미팅을 한다든지 동창생을 만난다든지 명절에 가족들을 만났을 때 저 사람은 기성 교회 다니기 때문에 말을 이렇게 해야 되고 복음을 이렇게 전해야 되고 또 복음을 전했다 치고 그 다음에 명절 끝나고 집에 왔을 때 명절 때 있었던 일을 복기해서 회상해 보면 역시 나는 잘했어!라고 미리 생각해 볼 수 있지요. 그것이 자기 의라는 사탄의 꾀임에 빠진 거에요. 결국 자기를 버렸다 했는데 자기 의를 버렸다고 한 나에서 미리 예상을 (운명이죠) 예상해 보니까 결국 남는 게 뭐냐하면 역시 나는 행동 하는 게 바르게 행동해라는 자기 의로 쾌감과 기쁨을 느끼고 그게 아니면 마치 살 희망도 없는 것처럼 내 몸이 발작을 일으키는 거에요.

얼마나 교묘한 연속된 악마의 지뢰밭입니까? 나는 실수해서는 안 된다는 거에요.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철저하고 완벽해야 된다는 겁니다. 왜? 나니까. 육이 있는 이상 평생 죽을 때까지 이러한 덫이 그림자처럼, 그림자는 내가 존재하기 때문에 안 따라 오잖아요. 이런 덫이 끝까지 따라 옵니다. 에어리언 이라는 (SF)영화가 있거든요. 여기서 보면 분명히 외계 (괴)생물체를 다 없앴는데 어느새 (지구로 돌아오는) 우주선 안에 들어 와 있고 심지어 주인공 여자(시고니 위버 :리플리 역)몸 안에(기생충) 지니고 귀환하는데 그 여배우를 마리아로 보고 외계 생물체를 창조주로 해석해요. 에어리언 시리즈가 계속 되면서.

창조자를 인간이 보고 싶은 거에요. 그것을 왜 보려고 해요? 보고 할 필요 없어요. 이미 왔었잖아요. 그런데 그때는 봤기 때문에 안보이는 거에요. 내가 보면서 판단하기 때문에 인간이 보면서 판단한 그 판단은 절대로 숨겨진 것은 포착 안 되도록 되어 있어요. 인간 자체가 망가졌기 때문에, 마귀로 인해 망가졌기 때문에 창조주를 보고 싶었는데 막상 왔는데도 못 보는 겁니다. 얼마 전 인천 공항에 가서 딸과 손녀를 마중 갔는데 하도 오랬만에 봐서 얼른 못 찾는 거에요. 아빠! 아빠! 부르기에 자세히 보니까 맞고 외손녀는 사진 으로만 본 외손녀는 얼굴이 커요. 실제는 작아요. (사진의) 그 애가 아니더라구요.

저희 어머니가(옛날)노래 부르시면서 진주를 기다리시거든요. 네 번 이나 봤는데도 몰라요. 진주 맞나? 직접 대면 시켜서 진주입니다. 본인이 알고 있던 이미지 하고 실제 이미지하고 대조해 보니까 안 맞아요. 악마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에게 심어준 메시야하고 막상 등장한 메시야는 달라도 너무 달라요. 강도보다 쓸모없어요. 사람이 상상하는 게 문제인 거에요. 왜 그런가 하면 인간은 상상을 하면서 자기 자신을 왜곡되게 구축하는데 이 상상은 어디로부터 왔는가는 타인의 행동에서 재료를 모으다 보니까 나라는 자체가 문제 있는 본인이 누군지도 모르고 자기가 결정하고 판단한 것도 다 엉터리에요.

이것을 거울 상이라고 하는데 거울 이미지가 나에게 같은 나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심지어 자기 자신을 보고도 깜짝 놀라지요. 특히 연세 많은 60이상 된 분들이 자기 사진을 보고 “왠 영감쟁이지?”당신이잖아! 내가 정말 이렇나? 거울 보는 것과 사진 찍은 것과는 달라요. 그래서 사진을 잘 안 찍으려고 해요. 구신 같다고. 왜냐하면 내 이미지는 아직 30대 이미지를 갖고 있어요. 꿈속의 내 모습과 친구나 친척도 전부 30대에요. 가장 절정기일 때, 그렇지만 우린 30대에서 점점 멀어져가요. 그게 아쉬워서 김광석도 자살했는지는 모르지만 점점 내리막으로 가는 데 그게 아쉬우니까 그걸 붙들고 싶은 겁니다.

30대의 절정기였던 운명이 계속 확장되고 이어지고 그렇게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거에요. 세상이 내 마음대로 됩니까? 세상은 절대로 내 마음대로 안돼요. 어떻게 해야 됩니까? 포기하면 되요. 그 포기가 뭐냐? 죽기 위해서 살면 되요. 유명했던 노래 중에 닭고기 아줌마라는 것이 있는데 다 포기 하지마~가 아니고 우리는 인생, 사는 것을 포기해야 되요. 보자~ 오늘도 어떻게 하면 죽을 수 있는가? 죽어야 되요. 죽는 방법 중 하나가 다 줘버려라! 사람의 모든 걱정과 근심이 뺏으려 하니까 생기는 거에요. 못 뺏아 한이 맺혀 본인이 열 불나는 것을 네 자로 스트레스라고 합니다. 고것마저 빼앗아서, 남은 승진 했는데 자긴 못 해서 스트레스 받지요.

못 뺏아 환장하는 거에요. 그거 왜 뺏으려 하는데 살고 싶어서! 그래놓고 기도 응답받는다고 하거든요. 진짜 성령의 응답은 줘 버려! 어차피 못 가지고 죽는데 뭘 원하십니까로 살게 되면 존재의 무게가 새털같이 가벼워지겠죠. 수고하고 무거운 짊이 점점 더 사라져가는 봉사를 해도 그냥하고 모든 것을 버리는 작전. 난 이래 죽을래! 주님은 네 운명에서 미련을 두지 말아라! 너의 인생에서 자꾸 쥐려 하지 말고 놓고 원하면 줘버리라는 거지요. 내 것을 주는 게 아니에요. 줘 버리면 주께서 또 주십니다. 퍼내면 또 주십니다. 그냥 왔다 가는 인생. 배달꾼 같은 인생. 주님의 것이 왔다가 간 거에요.

나중엔 늙어 죽으면 우리의 껍데기도 손 털고 가는 겁니다. 흙이 될 때 너무 서러워하지 마세요. 나의 운명이 아니고 주님이 할당해 주신 운명이지 되죠. 주의 종으로 살아야 될 운명입니다. 아침에 눈뜨면 택배 배달 오듯 우리에게 할당 된 것이 주어집니다. 오늘은 손자에게 도시락 싸줘야 되는 내게 할당된 운명이고 남편 아플 때 돌봐야 되는 그것도 할당된 거에요.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지 않으면 남편까지 살렸다는 훌륭한 여인으로 자랑 질하니 남들이 박수 치면서 역시 성령으로 충만하니까 주의 그런 식으로 교회에서 지옥 가도록 악마가 시키는 대로 지옥을 못 보내서 환장했어요. 교회가 교인들 지옥 못 보내서, 자꾸 가져야 축복이라는 거에요.

많이 가져서 지옥 갈 사람을 간증 집회로 모셔다가 수고하고 무거운 짊진 자가 무슨 모델인 것처럼 그게 믿음이 좋아 어떤 댓가인 것처럼 또 그게 부러워서 모방 욕망이 작동을 해서 저 사람은 어떻게 했는가? 물으면 기도했데! 하면“ 나도 기도 해야지!”내부에서 또 발작을 일으키지요. 더 얼마나~ 얼마나 속아 넘어가야 되요? 주님은 깔끔합니다. “좋으냐?”좋습니다. “그래? 내가 알아서 다 부숴줄 께! 어떻게 박수 쳐 줄까? (고개 저으며) 아이고! 아닙니다. 주님이 끄집어내시니까 자기가 끄집어 낸 것에 계속 집착과 미련을유지하고 있는 거에요. 왜냐하면 그것이 나를 형성 했으니까.

“아이고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렇게 창자를 끄집어내고 양수를 끄집어내니까 그것이 나갈 때 내 것이 나간다고 생각되니까 “복수 할꺼야! 감히 내 것을 뺏아 가다니!”이렇게 합니다. 무슨 복수 할 게 있습니까? 뭐 잘했다고 복수를 해요? 복수하는 방법이 보란 듯이 착하게 살면 하나님께서 부도났던 액수 만큼 다 채워준다? 이혼한 여자의 복수는 더 잘난 연하의 남자. 봐라! 그것도 잘 생기고 키도 크고 성격 좋고 부자이고 이런 욕망을 드라마에서 찾는데 감정 이입이 되지요. 푹 빠지게, 주께선 “에라! 죽어라!”차라리 죽어 버려라. 참으로 성도라면 제자들의 어리석음에 우리도 참여 합시다.

왜냐하면 제자들아! 바보같이 왜 그래? 하지 말고 돌아가는 시스템이 주님의 십자가를 이해하게 되기 때문에 우리도 주님께 “저는 착하거든요!” 하지 말고 제자들의 못남에 동승 하세요. 제자들의 수준이 딱 지금의 우리 수준인데 주께서 그들을 그대로 사랑하시잖아요.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미리 예측하면 우리가 성공 할텐데 하는 이 본성은 바로 주님의 십자가를 모독하는 것으로 이것이 우리의 근원적 본성으로 아직도 발견케 함을 감사합니다. 이것이 우리 힘으론 안 되지만 주께서 피로 처리 하신다는 소식을 우리가 남은 여생의 자랑거리로 십자가만 자랑하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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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193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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