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가락-요한복음 15장 5절(열매는 순교다)171010b-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요한복음

가락-요한복음 15장 5절(열매는 순교다)171010b-이 근호 목사

자 두 번째 시간 합시다. 두 번째 시간 보게되면 여기에 가지만 있는게 아니고 가지 끝에 뭐가 있느냐 하면은요. 5절에 보면 너희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는다고, 과실을 많이 맺는거예요.

그러면 이 본문을 딱 보면서 이천년 교회 역사 가운데 모든 교회가 무엇에 주목하느냐 하면 과실 맺는데 충성을 다합니다. 왜그러냐 하면 이유가 있어요. 뭐냐하면 예수 믿는게 아니고 내가 과실이다를 믿을려고 그런 믿음을 줄려고 그랬어요.

예수를 믿는게 아니고 나는 아까 이야기 했잖아요. 나는 나에게 붙이면 안된다고 했죠? 그런데 기어이 인간은 자기를 나를 포기를 못해요. 자기가 제일 중요하니까. 나는 열매다 이렇게 나와요. 나는 열매다.

교회와서 뭘 노리냐하면은 나는 주님의 괄호열고 나는 주님의 열매다 라고 확인되고 확인해주는 교회가고 싶은거예요. 확인해주고. ‘나는 열매되기 싫어요.’ 그래서 가는 사람 없고,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고 열매 맺는다고 하니까 여기 뒤에 열매 맺이 않으면 다 짤리거든요. 열매맺지 않으면 불에 사른다고 하니까 불에 사른다는 말은 어디간다는 말입니까?

불 있는데가 어디죠? 불이 기다리는 곳에. 예 용광로가 지옥이잖아요. 성경을 딱 보니까 아! 성경은 우리를 천국 보내기 위한 책인데, 딱이거든요. 지옥에 안 가면 되거든요. 그러면 지옥에 안가는 방법은 뭐만 하면된다? 열매되면 되거든요 열매.

그 열매가 되면 열매는 무슨 개념이냐 하면은, 가지는 그냥 관계 개념이라고 가지라 하는 것은요, 몸통하고 몸통에서 삐져나오잖아요. 이것이 연결개념. 몸통에서 연결개념이지만 열매는 무슨개념이냐하면 양적개념이예요.

열매, 작은 열매 이왕이면 풍성한 열매. 그러면 교회 목회할 때 목사가 교인들에게 ‘여러분들은 이론상은 예수를 믿는데 내가 이 교회 목회 담임하고 보니까 여러분들은 도대체 얼마나 게을러빠졌는지 당최 열매가 없네요. 열매가. 여러분은요.’

그러면 그 이야기 할 때 목사님 그런 주장 할수 있습니까? 하는데 하필 그 설교 본문이 뭐냐하면은 열매 없는 사람은 불에 태운다 하니까 그 가지를 모아다가 야~ 이 교회 나오길 잘했다. 만약에 다른 교회갔으면 예수 믿으면 구원받는다 이렇게 할텐데, 하나님께서 은혜로 이 교회로 보내줬으니까 세상에 내가 가지되는 것으로 끝나는게 아니고 열매까지 챙겨야 지옥에 안가고 천국간다. 야 이 교회 안나왔으면 큰일날뻔 한거예요.

열매는 무슨 개념이겠어요? 양적개념이죠. 비교가 된다니까 양적개념이라고 하는 것은 작은 열매와 큰 열매가 비교가 되는 거예요. 어떤 교인이 왔는데 자기가 교회나오고 난 뒤에 집안식구 다섯명인데 다섯명 다 나왔으면 그 집안은 큰 포도송이가 되는 겁니다. 다섯명 몽땅 교회나오면.

그런데 어떤 아주머니가 교회 나오는데 달랑 5년되도 혼자, 십년후에도 혼자 나왔다면 문제는 자신은 구원을 받는데 구원을 받는다고 우기지만, 구원을 받는지 안받는지 교회 다른 집사들 목사부터 장로해가지고 의심의 눈치를 보는거예요.

믿는다고 뭐 기도하기는 하는데 요한복음 15장에 의하면 당최 뭐가 없다? 열매가 없네요 열매가. 전도의 열매가 없네. 그런데 열매라는 것은 앞에 붙는게 많아요. 전도열매는 열매가 아니예요.

성화의 열매, 착함의 열매, 돈 열매, 봉사 열매, 목사 섬기는 열매, 목사 차 바꾸는 전담 열매, 사택 좋게하는 열매, 열매는 뭐 붙이기 나름이예요. 허드렛일하는 열매, 주차요원 열매, 대통령 소망교회처럼 대통령 이명박 나오는 대통령 열매, 그 더 나아가면 많은 판사들과 의사들이 많이 배출해가지고 이 사회의 요소요소에 빛과 소금하는 열매들.

그 뭐 목사가 설교할 재료가 무궁무진한거예요. 우리교회 출신의 어떤 대법원장이 있는데 그 사람은 왜 대법원장이 됬는가? 여러분들 그런 열매 부럽습니까?! 세상에 그 판사는 판사시절부터 얼마나 겸손한지 세상에 대법원 판사될 사람이 제일먼저 11시 예배이지만 11시에 오지않고 9시 반에 와서 친히 주차 완장차고 낮아진 주님의 본을 보이면서 주차를 했습니다.

여려분 지금 주차요원 2명 필요합니다. 두명 필요한데 여러분 나중에 병원장 되고 대법원장 판사될려면 지금부터 열매 맺으시기 바랍니다. 하면 서로 막 손들고 난리났어요. 그리고 교회 그랜드피아노가 고장난지 벌써 몇일됬는데 그랜드피아노 열매가 없습니다. 지금.

이번에 바자회하는데 바자회 열매, 어려운 노인들 밥 해줘야 하는데 밥해줄 열매, 자원봉사 열매, 갑자기 열매들이 뭐. 요새 어떤교회는 동성애 살리는 동성애 열매까지. 동성애 열매, 동성애를 사랑하자. 퀴어축제 벌려주고 열매. 우리는 새로운 교회이기 때문에 끝까지 포용하는 열매. 그리고 요새 또 유행하는게 뭐냐하면 탈북자 열매, 이민자 열매, 파키스탄 열매, 인도네시아 열매, 베트남 열매, 돈 내라 이야기예요. 결국 이것을 할려고 하면 뭐가 필요하죠? 돈 필요하잖아요.

그러면 베트남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베트남의 현지의 실무자가 가야되잖아요. 실무자 누가 가느냐? 목사 자기가 가요. 목사 자기가 가면 뭐가 필요해요? 차비, 체류비 필요하죠. 돈 내놓으란 이야기입니다.

내가 가서 필리핀 선교하기 위해서 필리핀 여기 있는 사람들하고 필리핀 여기 시집온 사람들 통해서 필리핀 친정 집 전부 다 친정집 전도하기 위해서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이 쪽에 도와주고 취직하게 도와주고 그 여파로 기독교 좋다 도와줄려고 하면 내가 당장 내가 가가지고 베트남에 가서 해야된다. 한번 휙 돌아보고 2박 3일 저 어디 베트남에 놀러가는데 있잖아요. 놀다오고 하는거예요.

도대체 이 열매라는게 뭐냐라는 겁니다. 사람들이 아마추어들이 이 교인들이 이것을 보니까 열매를 붙이니까 진짜 우리 목사님은 진짜 성경대로 하는 목사인줄 알고 있어요. 정답, 정답을 말씀드릴께요. 열매란 순교입니다. 열매란 순교예요.

왜그러냐하면 열매란, 개체 + 속성이기 때문에 개체 + 속성 이것이 바로 열매입니다. 열매란 고유한 속성이 없어요. 열매란.

열매가 붙어야될 몸통에 속성을 개체가 개별자가 보여줄 때 그것을 열매라고 해요. 열매가 다 달라요. 왜? 개체가 다 달라요. 살아온 환경 다르고, 개성 다르고, 남자 여자 다 다르고, 학력 다르고, 형편 다르고 다 달라요. 누가 모델이 없어요.

난 저 사람처럼 될래 저렇게 하면 안되. 모델은 열매의 모델은 없어요. 왜? 죽음 자체에 모델이 없기 때문에. 순교라는 말을 여러분 오해하지 마세요. 성경에서 고난이란 말을 사람들이 제일 많이 오해하는데, 고난한다고 하니까 뭐 찡그리고 막 이런걸 고난이라고 하는데, 찡그리고 울부짖는 이런 것이 고난이 아니고, 희희낙락 즐기는 것도 고난이예요.

고난이라는 말은 뭐냐하면은 고생하고 다른 말이예요. 고생은 아까 이야기 했잖아요. 나의 원칙있잖아요. 내가 되고 싶은데 그것이 안되가지고 내 뜻대로 안되는 것을 고생이라고 하고, 고난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되고 싶어서 하는 고난은 없어요. 내가 피폐하고 내가 싫어하는 것은 고생이지 고난이 아닙니다.

고난은 예수님의 고난의 연장선에서 예수님의 고난이 그대로 주어지는 것이 바로 고난이예요. 예수님의 고난. 예수님의 고난이니까 이것은 집을 팔고 뭐 교회에 갖다 바치고 그것과 관계없어요. 좋은 집, 넓은 집 그대로 살면서도 그리스도의 기능을 발휘하면 그것이 고난입니다. 그리스도의 기능.

자, 그리스도의 기능이 뭐냐에 중요하겠죠. 고난이라는 것은 개체안에 개별자인데 개체안에 뭐가 들어왔다? 뭐가 활동한다? 예수님의 속성이 발휘되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속성에 있어서 그 속성은 같은데 형태가 달라요.

예수님이 하늘에 있을때는 영광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영광받았던 예수님도 이 땅에 들어왔다 하면 이게 뭐냐, 고난이 되어버려요. 그것이 어디나오냐 하면 빌립보서 2장에 나옵니다. 하나님의 동등됨을 취하지 아니하시고 그 영화를 버리시고 이 땅에 죽기까지 복종했는데 그 모양새가 종의 모습이예요 종의 모습. 허드레한 모습이다 이말이죠.

누가복음 잠깐 한번 보겠습니다. 누가복음 보고 마태복음 11장 보겠습니다. 뭐 진도 빨리나간다고 예 누가복음 1장 끝에 보겠습니다. 누가복음 1장에, 1장 51절에 예수님의 속성이 이 땅에 기능으로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속성이 예수님의 본질이 기능으로 나타났다 이말이죠. 본질 속성 같다고 칩시다.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공 손으로 보내셨도다 이렇게 되어있죠.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하는 기능은 뭐냐하면 전복, 거꾸로 뒤집는 것 뒤집기예요 뒤집기. 이 뒤집기 하는데 예수님이 친히 함께하는 자가 비천한 자고 함께하는 자가 가난한 자예요. 그래서 이게 어려운거예요.

자 삭개오가 가난합니까? 부자입니까? 제가 질문 할테니 답변해주세요. 삭개오가 가난한 자예요? 부자예요? 부자이지요. 그런데 구원받았습니까? 구원 안 받았습니까? 구원 받았지요. 삭개오 집에 주님이 들어가는 순간 삭개오는 가난한 자의 속성이 그 집안에 있습니다. 그것을 구원이 이르렀다. 너의 집에 구원이 이른거예요. 주님의 속성이 이른거예요.

그러니까 삭개오가 하고 난 뒤에 가난하게 된 것이 아니고, 돈에 대해서 초연하게 되어버렸어요. 혹시 내가 늑탈한게 있으면 4배나 갚겠나이다. 4배나 갚는 법은 없어요. 법을 넘어서요. 법을 넘기면 뭐가 나오냐면 사랑이 나오거든요. 법을 넘으면 사랑이 나와요.

그러면 이것은 야~ 4배나 갚았으니까 구원받는다 이렇게 하지말고 안 갚아도 되요. 나는 이 돈보다 주님이 더 소중한 것을 느꼈을 때, 이미 그 사람은 이 세상에서 주님과 같이 가는 사람이예요. 비천한 자고 가난한 자가 되는 겁니다.

비천해서 구원받는거 아니고, 가난해서 구원받는 것 아니예요. 가난한 사람이 얼마나 부자를 사모한다고요. ‘내가 언젠가 두고 볼 거야 내 부자되고 만다.’ 마음 씀씀이가 부자되고자 한다면 이미 마음의 부자예요. 가난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함께 할 때 주님과 하나님 앞에서 주님과 같은 평을 받는거예요. 주님이 가난하면 가난하게 되는 거예요. 마태복음 11장 아까 우리 집사님이 이야기 했지요. 마태복음 11장 한번 봅시다.

이 성경해석을 방금했던 누가복음 1장 해석을 감리교나 기장에서나 장로 통합쪽에서 어떻게 해석하는 줄 알아요? 해방신학을 이야기 합니다. 예수님 오신 것은 가난한 자를 위해서이기 때문에 우리는 촛불집회 나가야 한다. 그놈의 촛불집회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예요. 그들에게는.

예, 마태복음 11장 봅시다. 11장 8절에 보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되어있죠.

이 말씀은 뭐냐하면 그들이 세례요한 만나기 위해서 어디를 떠나서 어디로 갔습니까? 살던곳을 떠나서 어디로 갔지요? 그들이. 여기에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로 갔느냐 했지요. 그럼 그들이 자기 살던 곳은 아니죠. 살던 곳을 떠났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내가 사는 곳에 있다는 말은 나 사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 없다고 여겼던 그들이 그것을 과감하게 버리고 어디로 갔단 말입니까? 아무것도 없는 벌판, 광야에 갔거든요. 그 광야에 가면 내가 살던 것 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고 치고 그 곳에 갔잖아요. 그 곳에 누가 있었느냐?

바로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느냐? 바로 선지자 보러 나갔지요. 그러면 선지자가 뭐냐? 선지자가 부드러운 옷이라는 것은 왕궁에 있거든요. 그것은 기존의 너희들 사는 세계의 오야붕이다 이말이죠. 그러니까 인간이 사는 세계는 반드시 최고의 자리가 있어요.

현재 우리나라에서 삼성이 최고의 자리에 있잖아요. 삼성. 현대 삼성. 최고잖아요. 그래서 모든 인간은 어떤 인간이나 ‘엄마 취직했어. 현대에.’ 그러면 굉장히 자랑거리이고 촌에 가면 플래카드 붙여있어요. 어떤 촌에 가면요, 촌에 돌아다니다 보면 삼성입사 했다고 막 붙여 있다고요. 삼성 현대 재벌이 우리나라 중심이예요.

그런데 그것을 버리고 광야에 갔다는 말은 그것보다 삼성, 현대, 돈 보다 더 중요한게 있다고 치고 갔잖아요. 그러면 거기에 광야에 뭐가 있드냐 이말이예요? 뭐가 그리 대단한게 있드냐 이말이죠. 거기 보니까 선지자가 있더래요. 그럼 선지자가 있다는 말은 선지자가 전하는 그 모체가 되는 주체자가 있겠죠. 그분이 누구입니까? 예수그리스도 잖아요. 이게 고난이예요.

고난이라고 하는 것은 꼭 광야를 요새 광야 어디있어요. 다 개발하면 마찬가지인데. 자기가 좋은 집에 그냥 머물러 살더라도 이곳이 내가 사는 곳을 뭐로 본다? 광야로 보는 거예요. 뭐 광야치고는 고급 나가는 물건이 많겠지만 골프채 여러개 있고 좋겠지만, 광야도 다 달라요. 어떤 사람은 냉장고도 없는 광야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냉장고 10대 있는 광야도 있어요. 어쨌든 간에 광야예요 광야.

광야에서는 뭐가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 소중하냐가 중요합니다.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 잃으면 그게 무슨 소용있어요. 장사 잘됐다. 창고에 돈 쟁여놨다. 내 영혼아~ 스스로 자기를 격려하는 거예요. 자기가 자기한테 아부한다고 이야기 했는데 인간은 늘 자기한테 아부해요. 아부를 해요. 자기한테.

그런데 그날 밤에 오후 2시 46분에 주께서 니 영혼 출몰해서 니 영혼 데려가면 저 창고에 있는 은행 통장에 있는 저 돈은 누구 것이 되겠는냐. 니가 무엇을 바라보며 사느냐 이말입니다. 니가 무엇을 목표로 해서 사느냐. 사는 이유가 어디있느냐 라고 묻는 겁니다. 주님께서.

제대로 살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제발 오해하지 마세요. 똑바로 살아라, 착하게 살아라, 이 이야기가 아니고 니 방향을 어디다 방향과 어떤 분과 니가 끈으로 연결되어 있느냐 그것을 묻는 겁니다. 그 끈이 중요하지 내가 착하다 현재 나는 나쁜짓 안했다 그게 중요한게 아니예요. 나 나쁜 짓 많이 죽었다 그게 중요한게 아닙니다.

그게 자기 자신의 또 하나의 자기 의가 되버려요. 아까 그 누가복음 1장과 마태복음 11장을 이렇게 해보게되면 주님의 고난이라고 하는 것은 뭐냐하면 유난떨면서 재산 받치는게 아니고 주님과 함께 있다는 것은 주님만 있으면 된다는 식으로 살아가는 선지자가 복장이 뭐냐하면은 복장이 내일을 보장 받을 수 없는 복장이예요.

그냥 하루 먹고 하루 사는 메뚜기 석청 먹고 살잖아요. 그런데에 선지자가 왜 삽니까? 메뚜기가 맛있어가지고? 메뚜기 많이 먹으면 질릴텐데 꿀이 건강식품 이여서 오래사는 겁니까? 그 선지자가 왜 살아요? 선지자는 본인 때문에 본인이 사는게 아니라니까요.

아까 1번 2번 3번 봤지요? 그것은 나 때문에 내가 살잖아요. 내 맘에 안들면 번개탄 피워 놓고 죽으면 되니까. 자살이라는 말은 뭐냐? 평소에 누구 때문에 살았다? 나는 나 때문에 나한테 기대 걸고 살았다가 그 기대가 좌절되니까 관철이 안되니까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게 낫지 이래서 자살하잖아요.

자살한 사람 중에 제일 유명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노무현 대통령 아닙니까? 국민 대통령. 그 집에 끼니를 못 이었어요? 먹을 양식이 없습니까? 집사님 노무현 대통령 집에 양식이 없어서 죽었습니까? 평소에 예수 안 믿으니 모르죠. 평소에 예수 안 믿는다는 말은 평소에 누굴 보고 산다? 나는 누구 보고 산다? 나 때문에 사는 거예요. 나 때문에 괴로운 거예요.

그러면 괴로움 없애려면 뭘 제거하면 됩니까? 나만 죽으면, 괴로움의 원천이 나니까 나만 없으면 배짱 편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지옥이 있는데. 지옥있는지 어떻게 알아요? 천국의 주인공이 이 땅에 왔으니까 알죠.

부처가 많은건 그것은 지옥도 아니예요. 천국에서 안왔기 때문에. 하늘에서 오신 분이 예수님 밖에 없기 때문에 예수님이 알려주니까 그동안 몰랐던 땅에 사람들이 몰랐던 하늘의 비밀을 미래의 비밀을 이제 알게 된겁니다.

야~ 그렇다면 하늘의 비밀대로 살아야지. 너나 나나 똑같은 바보 등신같으면 니 말 듣고 살면 누구만 조집니까? 나만 바보 병신 되는 거죠. 물론 그래서 예수 믿는 것은 가짜예요. 결국은 또 나 구원중심이니까.

그런데 그런 욕심 마저도 성령이 와서버리면 니가 구원 믿고 싶습니다 하기 전에 이미 창세전부터 그런 말 나오도록 주께서 이미 스케줄이 그렇게 짜여져 있어요. 계획이. 때가 되매 믿게 된거예요. 때가 되매.

자 다시 오늘 본문 돌아가 봅시다. 아까 제가 마태복음 누가 복음 언급한 것은 그 영광스럽던 주님도 이 땅에만 딱 왔다 하게되면 이것이 변변치 않은 고난 받는 사람된다니까요. 제가 왜 그 이야기를 하느냐하면은 교회의 헌금 열매, 전도 열매 했다 해가지고 이 땅에서 때부자 되고 재벌되고 의사되고 판사되고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주차요원 한다고 대법원 판사되는것 아니라이말이죠.

포항공대 어느 교수가 있었는데 얼마나 주님의 복음을 자기는 복음이라고 하는데 하여튼 주님의 복음을 외쳤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전화가 왔어요. ‘너 중소기업 장관 안해볼래?’ 라고 대통령한테 전화가 왔다고 칩시다. 얼마나 기분 좋았겠습니까?

그런데 창조론에 걸려가지고 자기가 자진해서 후보사면 했잖아요. 자기 신상 다 털리고 가만히 있었으면 자기가 얼마나 괜찮은 인간이예요. 교수이고 이렇게 되는데, 세상에 그 후보감 될려고 세상에 신앙까지 포기했잖아요. 그놈의 권력이 뭔지.

나는 창조론을 주장하고 싶지 않습니다. 수십년동안 태어나서 40대니까 40중반까지 오직 창조론 성경대로 믿는다 그렇게 하다가도 그놈의 장관자리가 뭔지 그놈의 장관자리가 뭔지, 거기서 그만 딴 소리가 튀어나오네요.

그럼 그동안 그 사람이 고생한 것은 고난입니까? 고생이였습니까? 고생이죠. 고생은 나 잘되기 위해서 하는 것이 고생이고. 그래서 예수천당가기 위해서 받는 것은 고생이고, 주님속성 때문에 고생 안해도 고난되고. 확실하지요? 이제는 두 개 분명히 해야됩니다.

어떤 목사는요, 진짜 복음만 전한다고 소문난 목사예요. 이름도 교회이름도 서머나 교회예요. 그 미국에서 유명한 목사 한국에서 유명한 목사가 하도 유명하니까 원래 또 기독교 방송국은 장사가 되야되잖아요. 광고부터 해야되고.

한번 청취자를 확보하게 되면 한번 당골하게 되면 계속 그걸 듣게 되게 되면 시청률이 높아지만 이게 또 광고, 운영을 그렇게 하거든요. 유명하니까 뽑아가지고 하니까 딱 뽑아놓니까 복음은 쏙 들어가버리고 자기 간증을 이야기 하는 거예요. 그 귀한 기회를 세상에.

그렇게 복음만 외치고 없음을 이야기하고 없음을 이야기 해야하는데, 아 그 얼마나 좋은 찬스 예요 생중계하는데. 이렇게 자리 다 마련해 줬음에도 불구하고 그만 딴 소리 나와버렸어요.

목사님 당신한테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러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기회가 안와요. 기회가 올 리가 없지요. 물론 제대로 모르고 옛날에 극동방송에서 기회를 준 적이 있어요. 옛날 초창기에 뭣도 모르고. 그것도 생중계로. PD가 좌천됬다는 후담이 있었습니다. 나 했던 PD가.

기독교 방송 극동방송이거든요. 극동방송 기독교 방송은 돈이 됩니다 돈. 예수를 앞장세워서 돈 버는 곳이예요. 돈이 안되면 그 증인은 그리스도 증인될지는 모르지만 그 극동방송의 증인 될 필요는 없어요. 월급 줄 가치 조차 없어요. 고난을 받는거예요 할수 없이. 고난은 자진해서 받는게 아닙니다. 주께서 가라하는 그 현장이 순교지가 되고 고난지가 되는 겁니다.

고난받는다고 저 선교사 저 아프리카 그런데 가지 마세요. 가만이 집구석 앉아 있어도 고난 받아요. 주께서 가라하면 가고 오라하면 오는 것이지 나 이렇게 하면 천당가겠지 이렇게 고생했으니까 주께서 봐주겠지 그런거 없습니다.

구원은 주님의 공로로 구원받지. 내가 선교한다고 고생한다고 구원 받는 것 아닙니다. 뉴저지에서 고생 좀 했지만 그것가지고 구원 받는거 아니거든요.

자 한번 정리해 봅시다. 자, 열매란 개체 + 속성입니다. 속성은 개체속성 아닙니다. 속성은 누구 속성이겠습니까? 포도나무의 속성이죠. 포도나무의 속성이 개체가 되어버리면 포도나무는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형식으로 예수님의 몸은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왜? 개체가 있으니까. 그래서 마태복음 25장에 보게되면 이렇게 되어있어요. 이 소자한테 한 것이 곧 나한테 한 것이다. 이 소자한테 한 것이 이 작은 자 한테 한 것이 나한테 한 것이다. 천국간 사람이 말하기를 제가 언제 주님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었습니까? 니가 너희 형제한테 한 것, 너희한테 한 것이 곧 나한테 한 것이다.

이 말씀을 만약에 기성교회에서 이야기 해버리면 이것은 단합대회예요. ‘아~ 우리교회는 전부 다 머리만 커가지고 뭐 안다 하는데 말씀 들으면 뭐합니까? 실천을 안하는데. 열매가 없잖아요. 여러분들 서로 섬기고 서로 봉사하라 이렇게 하는데 왜 서로서로 안합니까? 이 시간부터 자 노래하나 부르고 서로 악수 하고 인사합시다.’ 사랑하는 주님앞에~~ 노래한번 부르고 서로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인사하려니 남자거든 쑥스러워 여자끼리 악수.

그러면 단합대회 된거예요. 아까도 이야기 했지만 너희가 알아볼려면 설교하는 것도 이 강의 하는것도 죄고 설교하는 것도 죄입니다. 설교 듣는 것도 죄고, 예배 참석하는 것도 죄고. 그런데 왜 참석하느냐? 주께서 참석하라고 하니까 하는 것입니다. 그럼 헌금은 왜 하느냐? 헌금하라고 해서 하는 것이고.

죄인을 주님의 고난에 동참시키기 위해서 헌금하고 예배 참석하고, 항상 죄인을 죄인이지만 주께서 계속 죄인을 가지고 예수님 자신을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하게 위해서 했습니다. 그게바로 열매라는 거예요 열매.

그러면 자 여기서부터 이 말 들으면 여러분 굉장히 쉬울거예요. 아 참 쉽다. 그런데 실제로 이게 안 쉬워요. 방금 이야기가 안 쉽습니다. 하나의 예를 들게요. 한석봉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엄마가 한석봉에게 이야기하기를 ‘석봉아 니가 글을 쓸때는 자세 똑바로 하고 앉아서 정성들여서 글을 써야 글씨가 하나하나 힘이 있고 살아있는데 깨끗한 글씨가 되고 남한테 감동을 주는 글씨가 된다 알겠지?’ ‘예, 어머니 똑바로 쓰겠습니다.’ 하고 썻을거 아닙니까.

물론 뭐 떡 써는 것도 있지만. 제가 지어낸 겁니다. 자, 그렇게 한석봉이가 글을 쓰고 있는데 엄마가 막 의자를 방석을 빼고 막 때리고 머리 쥐어뜯고 흔들고 이럽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이냐하면은 분명히 똑바로 쓰라고 해놓고 엄마가 한석봉이 보기에 방해를 놓는 거예요.

자, 이유가 뭘까요? 이 말도 안되는 예화에 제가 지어낸 예화이지만 이유가 뭘까요? 자 엄마 입에서 나온 것을 한번 적어볼께요. 글씨를 쓸 때는 똑바로 쓴다. 이 말을 기존 교회로 하면은 성도라면 바른 열매, 바른 그리스도의 열매를 맺어야한다 이렇게 이야기 하겠죠? 예?

그래서 어떤 복음을 안 성도가 그 교회에서 바른 그리스도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런데 목사가 용서가 안되. 이유가 뭔지 알아요? 목사가 보는 바르다 라는 개념과 복음을 아는 성령받은 성도의 바르다라는 개념이 같을 리가 없어요.

목사의 바르다는 것은 어떤 결과가 교회를 부흥시켜야 되는거예요. 좋은 교회라고 소문이 나야되요. 그래서 때로 모여들어야. 그것이 목사가 생각하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이예요.

이 앞에 있는 땅 주차장 만들어야 기적이예요. 그리고 교인 가운데서 판사 나오고 의사 많이 나와야 기적이예요. 목사가 많이 나와야 기적이예요. 한석봉이가 생각하는 반듯하게 쓰는 이것은 안되요. 엄마가 생각하는 기준은 따로 있어요.

한석봉아 그렇게 앉으면 안되고 이렇게 앉아야지! 엄마 그렇게 안되요. 내가 시키는대로 하라고! 이렇게 앉아야지. 머리 이렇게 똑바로 이렇게 하고. 한석봉은 지금 나 혼자 잘 쓸려고 하는데 글씨도 쓸 줄 모르는 엄마가, 엄마가 되도 않는 기준가지고 막 들이대는 겁니다.

그리니까 여러분들은 이론상 주께 고난받고 열매가 뭐라고 했습니까? 뭐 더하기 뭐? 개체에다가 주님의 속성 부여한다. 잘도 알고 있어요. 있는데 막상 현실에 딱 들어서면 자신감 뚝 떨어지는 거예요. 간섭쟁이가 왜 그리 많은지.

그러면 그것은 전도가 아니라는 거예요. 전도할려면 고신측 아까 했죠. 고신측 아까 어떻게 한다고 했습니까? 고신측에 아까 누가 와서 이야기 했지요. 집 사준다. 목사가 사도행전 2장에 한것처럼 목사가 교인들부터 집사주고 한다 했지요. 그것도 초창기에 요즘엔 장사안되서 못하지만. 그렇게하겠지요.

그러면 그것이 옳다는게 성경에 어디나옵니까? 없어요. 성경에 없다고요. 성경에 사도바울이 나는 죄인중에 괴수라고 성도라 이야기 해잖아요. 그러면 나는 죄인중에 괴수다 라고 하면 다 성도입니까? 아니지요.

속성 +개체 잖아요. 개체가 내어 놓는 판단기준은 같은 것이 없어요. 다르다는 정도가 아닙니다. 달라도 너무 달라요. 다 달라요 다 달라요. 로마서 14장을 봅시다. 로마서 14장 12절, 13절 누가 한번 읽어봅시다. 집사님이 한번 읽어볼까요? 로마서 14장 12절 13절.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할것을 주의하라.

예, 거기 10절에 보면 어찌하여 형제를 판단하느냐 이렇게 나온다고요. 이건 뭐냐하면은 정말 여러분들이 양보 했으면 내가 목사라면 내가 집사라면 저런 짓은 안한다. 저것은 더러운 짓이다. 라는 평가에 휘둘릴 필요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예? 휘둘릴 필요 있어요? 없어요?

그런데 만약에 휘둘린다면 그 사람 신자 아닙니다. 남 눈치보고 살아가는 사람이예요. ‘나 신자 맞아? 니가 판단해죠.’ 이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예요. 그래서 직고, 직고. 직구 말고 해외에서 상품사는 거 말고 직고! 직접 고하는 거예요. 기도내용은 직접 고하는 겁니다. 남한테 형가 받는게 기도내용이 아니예요.

아까 교회가 뭐냐하면 그리스도의 피로 샀다고 했지요. 감독자가 하는 일은 뭐냐하면 바로 그들의 어떤 장소에서 어떤 환경에서 어디서 무얼하며 어떻게 살았는지 옥경이처럼 어떻게 뭐 했는지 상관없이 마지막에 뭐로 나와야되요? 십자가가 나와야 되요.

왜냐하면 사도바울에 의하면 다른 복음이 없기 때문에 그래요. 부활이 복음이 아닙니다. 십자가가 복음이예요. 부활나오면 안되요. 부활은 소유의 유혹거리예요. 부활의 새생명이 내가 갖고 싶은 유혹거리가 되는데 십자가는 소유대상이 안됩니다. 십자가는 죽임이기 때문에.

죽음으로 끝나면 자기가 자살행위인데 어떻게 그걸 소유하겠어요. 폭탄 껴안고 죽을래? 하면 어떻게 내것이 되겠습니까? 이미 폭탄 터지고 난 뒤에 내것이라는 것은 다 찟어지고 난 상태인데. 십자가 폭탄이지 않습니까? 폭탄이지요. 제가 지난 낮 설교에 끝에 부분에 이렇게 했어요. 성도는 폭탄을 짊어지고 사는 사람이라 했지요. 폭탄. 그것도 원격조종으로.

뭐 IS? 여성대원 같애. 폭탄을 감고 다니는거예요. 십자가를 한다는 것은 사도바울은 십자가 안에서 내가 죽었다고 했어요. 나는 십자가에서 세상보기에 죽었고 세상은 나한테 죽었다. 죽었다만 보이지? 하지만 나는 살았어. 너희들이 죽은거야. 내가 살면 너희는 죽, 너희들이 살았으면 나는 죽은것이고.

세상이 살아있으면 예수님은 죽은 자이고요. 예수님이 살아있다는 말은 세상은 불심판 받기위해서 죽어있는 거예요. 죽고 살아있음이 서로 있는 위치에 따라서 서로 대립되는 개념으로 서로 마주치고 있는것입니다.

우리가 싸울까요? 싸울필요 없어요. 고난 받으면 되요. 고생말고. 고생말고 고난받으면 되요. 너는 무슨 돈이 많아서 골프치느냐? 나 골프쳐~ 주께서 치라해서 쳐 왜?! 돈없으면 치지 말고. 그런 당당함이 있어야 될게 아닙니까.

왜 내가 니 기준에 왜 맞추는데?! 너는 너 개체 따로이고, 나는 나 개체 따로인거예요. 속성은 동일해요. 속성에 뭐 나온다? 주님 십자가 앞에서 나는 죄인이다. 나 죄인들하고 이거 하라고 했고 너는 그런 식으로 죄인들하고 하라고 한거예요.

참 이런 이야기가 저는 참 편하게 이야기 하는데, 듣는 사람들은 이야기 듣고 얼마나 속상하겠어요. 얼마나 속상하겠습니까? 뭐 당신이 집 없는 서러움을 알아? 당신은 아내가 살아있으니 아내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홀아비 신세를 알아? 되도 않는 자기의 뭐 너는 세월호에 아이 빠져봤어? 이런거 있잖아요.

그것이 아까 이야기한 1번 2번 3번입니다. 너는 힘 빠져봤어? 니 뜻이 관철 안되본 적이 있어? 이렇게 되는 거예요. 사람을 동정하지 마세요. 그걸 지난 시간에 했지요. 지난 주일 낮 설교에 남한테 미안해하지 말라고 했어요. 저의 깨달음입니다.

복음을 아는 사람은 누구한테도 미안해 하지 마세요. 주님한테도 미안해 하지 마세요. 미안해 한다는 말은 그것 빼놓고 다른 것은 잘났다가 되는데 인간은 잘난게 없기 때문에 미안합니다 한다고 해서 잘난인간으로 달리 봐주는거 아니예요.

미안하다 소리해도 못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이 못난놈~’ 있잖아요. 남한테 미안해 하지 말고 사세요. 부모 엄마가 됬으면 자식한테 미안해하지 마세요. 괜히 뭐 감정 이입해가지고 자식이 말 들을까 싶어서 ‘나는 너 때문에 못산다. 너 공부 못해서 엄마 죽을께.’ 이렇게 연기하지 마세요. 죽지도 않으면서.

그러면서 놀러갈거 다 스페인 놀러가고 그러면서. 자기 오페라 볼거 오페라 다 보고. 그럼 뭘 미안해? 주께서 꽂아 놓은 개체인데 왜 남들한테 미안해요? 얼마나 우리가 얽혀있어요. 얽혀 있는 이 대목은 이것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화분과 화초의 차이.

화분은 이거거든요. 이거 화분이잖아요. 화초는 여기에 꽂혀있지요. 처음에는 화분에다가 화초 흙덩어리에 꽂습니다. 처음에 있을때는 잘 뽑혀요. 처음에 이거 꽂아놓은지 한 5분있어도 다시 분리하면 분리되지요. 만약에 한 3년 있었다. 분리해 보세요. 분리됩니까?

이놈의 화초가 화분에 미련이 있어가지고 이거 뭐 문어발처럼 딱 붙어 있어요. 얽히고 설키고. 얽히고 설킨. 그러면 엄마가 맨날 한다는 소리가 우리 엄마 말고요. 엄마가 한다는 소리가 ‘내가 너만 아니면 니 아버지랑 벌써 헤어졌다.’ 너만 아니면 니 아버지랑 벌써 헤어졌다는 거예요. 너 결혼식 때 손잡고 갈 사람이 필요해가지고 니 아버지랑 안 헤어졌다는 겁니다.

아 참 남탓할거 없어요. 본인이 지금 화분에 완전히 잡혀있는겁니다. 그런데 주께서 우리를 구원할 때 어떻게 구원하느냐 하면은 오늘 제목을 이걸로 한번 정해볼까요? 한 자 쏙! 또는 한자 무. 무시 뽑히듯이 무 뽑듯이 쏙~ 하게 되면은 뭐가 나오겠어요.

정이라는 것, 인연이라는 것, 얽히고 설킨 모든 관계되는 것, 미련, 아쉬운 것, 회한, 후회스러운 것, 아까 이야기한 미안스러운 것, 또는 나한테 억울한 것, 이런 것 화분에 다 그냥 두고 썩은 몸만 달랑 쑥 무 뽑듯이 뽑아서 데려갑니다.

탕자입니다. 잃어버린 말썽꾸러기예요. 우리는 양 같아서 어디로 갈 줄도 몰라 제 갈길로 갔거늘 주께서는 일부러 찾아와가지고 피 묻은 손으로 찾아와가지고 무 뽑듯이 쏙 가져가면서 미련 뚝! 정도 뚝! 모든 얽히고 설킨 사랑이니 미움이니 그거 다 뚝!

너의 행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오직 주님의 십자가 피로 우리를 쑥 뽑아 냅니다. 피 묻은 손으로. 그리고 구원해주고 다시 그 화분에다가 꽂아버리면 이제는 자유를 느낍니다.

‘아~ 내가 이런 것 때문에 이런 자식 때문에 내가 주님보다 자식을 더 사랑했었구나.’ 하고 마치 다 그 동네를 떠나고 난 뒤에 이미 성공 크게 출세 해가지고 자가용 벤츠타고 와가지고 다시한번 자기 옛날 골목을 한번 여유만만하게 자랑스러워하며 돌 듯이, 내가 여기서 코 찔찔 흘리면서 놀던 여기 그것도 차에서 내리지 않고 창문 삑 내려가지고 찔찔 거리며 놀던 것. ‘아이고 오랜만이야 친구야~’ 내리지도 않고 손만 이렇게 흔들면서 동창생 만나면서.

소위 여유, 가진자의 여유라고 하지요. 구원받은 자의 여유 좀 누리시면 안됩니까? 이렇게 누리라고 주신 십자가 피인데 그 귀한 취지를 우리가 왜 그것을 외면해버립니까?

그것도 모르고 그저 자식들 칠성신에게 비는걸 가지고 교회와서 그놈의 자식들 잘되라고 빌고, 그놈의 자식한테 얽혀있고, 뭐 자기의 체면과 위신과 명예에 얽히고 설켜가지고 주여 이번일 들통나면 나는 완전히 꼴아박습니다. 주여 어떻게 되고 어떻게 되고 나는 개망신 당합니다. 주여 그저 비는것도 옛날에는 이렇게 빌었잖아요. 이렇게 빌면 미신이고 이렇게 빌면 기독교입니까?

그저 사업잘되게 해주시고, 우리 큰 아들 사업 잘되게 해주시고, 승진되게 해주시고, 그저 막내딸 35인데 시집가게 해주시고, 우리 큰 딸은 이혼했는데 재혼하게 해주시고, 돈 많은 남자하고 만나가지고. 맨날 그 놈의 화분에서 언제 뽑힐건데 화분에서. 고난받으라고 준 열매가 고난 안받고 고생만 마음고생만 많이 하고 있어요.

예수님이 고난의 원천입니다. 고난의 원천 예수님이거든요. 순교도 예수님이 원천입니다. 예수님 어떠셨습니까? 예수님께서 어떻게 살았습니까? 정말 구애받지 않고 살았지요. 전혀 구애 받지 않았어요.

자 그러면 이제 마지막으로 이제 긴긴 시간 수고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 한테 답변 형식으로 제가 한번 물어볼께요. 제가 답변을 해볼께요. 예수를 믿으면 + 그 다음에 어떤 생활해야됩니까? 라는 질문.

예수를 믿으면, 방금한 거 다 우리는 열매가 순교다 다 했다. 그것 다 믿는다 칩시다 믿는다 치고 강의 내용 다 믿는다 칩시다.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생활해야 됩니까? 라는 질문을 할 때 여기서 이 질문에 답변에 대해서 가로막는 그 펜스가 있어요. 그 펜스 어디서 나오냐 하면은 우리의 옛 사람 아까 1번 2번 3번 거기서 나와요.

‘예수믿으니까 바른 생활 해야되겠지.’ 라는 것이 하나의 펜스, 막아버려요. 그 막아버리는게 뭐냐하면은 내가 육으로 알던 그것이 주께서 하신 일에다가 첨가, 막 뿌리는 거 있잖아요. 막 뿌리는 거. MSG 이걸 막 뿌리는 거예요.

백종원 셰프가 깨끗하게 해놨는데 거기다가 후추 막 치는 거예요. 주님의 피 에다가 내가 옛날 알았던 그 경건생활에다가 이게 막 섞으면 안되는 것을 섞어버립니다. 그러면 예수믿는 삶은 어떤 삶이냐 하면은 예수님이 지시하는 삶이거든요.

예수 믿는다하고 혼자 따로 두지를 않아요. 너희를 고아같이 두지 않는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고아시절이 그리워. 내 맘대로 하던 고아시절이 그렇게 그리워요. 누구한테 간섭받는게 싫어요. 결정을 해도 내가 결정을 해왔고 줄 곧, 관리를 내 관리를 내가 해왔어. 그런데 내 관리를 내가 할 때 반드시 의식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남들은 나를 어떻게 보겠느냐가 그것이 하나의 내 삶의 기준이 되어서, 남들이 나를 좋아하는 쪽으로 내가 움직여야지 라는 옛 생활을 하나의 인공감미료가 되어가지고 주님의 피 에다가 쳐버리니까 주님의 증인되야 될 사람이 누구의 증인이 되느냐 하면은 ‘나 예수 믿고 이제 바른생활 한다.’ 자기 자랑거리 자기가 자기 자랑하는 그런 생활이 되어버렸어요.

참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오늘 본문이 의하면 짤려버립니다. 그런 열매를 주께서 인정한 적이 없어요 그런 열매를. 더 보태야 열매되는 그런걸 한 적이 없습니다. 주께서는 ‘이런 무슨 불순물이 끼었네.’ 하고는 그걸 잘라버리죠.

그래서 이 본문은 무엇을 설명하는냐 하면은 자른다는 것이 핵심이 되요. 잘라버린다. 잘라버린다는 말은 처음에 한 말과 다르잖아요. 처음에는 뭐라고 했습니까?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고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열매를 맺지 않는다 이렇게 할 때는 마치 자동적으로 주께서 열매 맺는걸로 했는데 자동적으로 열매 맺으면 뒤에 뭐가 빠져야되요?

자를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왜? 100% 주의 일방적 솜씨라면 그것을 잘라 버리면 예수님이 자기 손목 자르게 되니까 이것은 앞뒤가 안맞는 이야기가 되버린다고요. 그렇지요? 내게 속하지 아니하면 열매맺지 않는다고 해 놓고, 열매맺지 않으면 자른다는 말은 그런 말은 쓸데 없는 말 필요도 없는 말을 왜 첨가 했을까 하는 겁니다.

그것은 뭐냐? 이세상에서 예수님 도용하고, 가지 도용하고, 우리교회 만큼은 주님을 그렇게 우기면서 결국은 잘려나갈 위인들이 한 둘이 아니라 이말입니다. 한 둘이 아니다. 성령인정하고 복음인정해도 열매가 주님이 원하는 그 열매가 아니고, 이상한 열매를 맺는 것은 가차없이 다 잘라버려요.

그렇다면 여기서 내리는 결론은 뭐냐? 자르는 그 작업이 열매맺게 하는 주님의 그 작업속에 이미 거기에 같이 포함되어 있어요. 다시 말해서 잘라냄으로서 도드라지게 하는 작업으로 열매가 주어진다 이 말이예요. 자르는 작업을 통해서.

그러면 그 작업이 우리에게 왔을 때 어떻게 합니까? 우리도 육이 있으니까 죽을 때 까지 육이 있으니까 맨날 우리가 생각하는 열매는 엉터리 열매예요. 그런데 고맙게도 성령께서 날마다 죽이고 그리스도만 드러나게 하셔버려요. 자르는 작업을 우리 안에도 고맙게 해주시니까 우리는 뭐냐? 주님이 일하시는 작업장으로서의 하나의 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나 한번 열매이니까 완벽해.’ 이거 가짜입니다. ‘나 날마다 주님한테 당해.’ 이거 진짜입니다. 날마다 성령께서 이끌어 주시고 작용하지 아니하시면 우리 힘으로 구원을 유지한다는 것은 잘못입니다.

베드로가 자기 목숨 내어놓지요. 보통 장한 기부가 아니지요. 주께서는 너 지금 무슨 짓 하고있냐. 지금 전혀 내 말 못 알아 듣는 거예요. 우리 목숨 바치지 마세요. 절대로 목숨 바치지 마시고 순교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제목은 열매인데, 순교 목숨 안바치고 순교하는 방법은 핫도그 사먹는 것, 먹고 재미난 영화 보시고, 놀러 다닐거 다니시고 그러면서 누가 하셨다? 주께서 하게 하셨다. 그래서 공식이 있어요. 나 이 영화 안볼라고 했는데 보게 하셨다. 나 이거 안할려고 했는데 가게 하셨다. 나 미국 안갈려고 했는데 가게 하셨다.

항상 주체를 주님쪽에 둬야되요. 주께서 굉장히 기뻐하시고 대견하게 보십니다. 왜냐하면 열매는 개체 + 속성이기 때문에. 나를 죽이는 것, 골프 치면서 나를 죽이는 것, 주께서 하게 하셨다. 이것이 순교라는겁니다. 내가 죽는 것이 순교입니다. 아 오늘 제목 헛갈린다. 순교로 할까 열매로 할까.

나를 죽이는 게 나를 내가 죽이는 것이 아니고, 주께서 나를 죽여서 남들 눈에 남들 눈, 그 귀 신경쓰지 말고 배짱 편하게 살아라. 그것을 막국수에서 나온 막 살아라. 막 살아라는 비밀이 풀렸네요.

배짱 편하게 살고 남 눈치 보지 말고 살고 이건 뭐냐? 주님께서 나를 이렇게 했다면 주님 것입니다. 라고 고백하고 사는 것. 이것이 그 열매고 그 열매는 주께서 그렇게 사셨기 때문에 순교당한 것처럼 하루하루가 순교의 삶입니다. 그것이 성도란 이름의 열매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내가 열매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주께서 그렇게 하셨잖아요.’ 라고 주님한테 늘 되묻는 자세가 되게 하옵소서. ‘주께서 오늘도 이렇게 살게 하셨잖아요.’ 물을 수 있는 믿음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193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16,342 자유게시판 안양20171013a약1장12절(천국의 조건)-이 근호 목사 야고보서 최고관리자 17-10-18
16,341 강의 자존적과 의존적 171017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7-10-18
16,340 강의 유튜브 강의 (206강, 207강), 은혜의 순환, 비밀 171017 히브리서 최고관리자 17-10-18
16,339 자유게시판 광주 강의(2017. 9. 22) 2강 - 최고관리자 17-10-17
16,338 강의 존재에서 사건으로 171016 시편 최고관리자 17-10-16
16,337 자유게시판 155강-신 29장 10 - 13절(언약 앞에 집결 )171015-이 근호 목사 신명기 최고관리자 17-10-15
16,336 자유게시판 259강-고후 12장 11-13절(과거 바꾸기)1701015-이 근호 목사 고린도후서 최고관리자 17-10-15
16,335 묻고답하기 사도의 사랑 - 최고관리자 17-10-15
16,334 자유게시판 205강-YouTube강의(남과 여)171010-이 근호 목사 창세기 최고관리자 17-10-14
16,333 자유게시판 204강-YouTube강의(소유와 존재)171010-이 근호 목사 갈라디아서 최고관리자 17-10-14
16,332 강의 잃어버린 자 171013 디도서 최고관리자 17-10-14
16,331 강의 천국의 조건 171013 야고보서 최고관리자 17-10-14
16,330 강의 [17 대구강의] 전도서속의 그리스도 20 - 죽음 - 최고관리자 17-10-13
16,329 자유게시판 운명 (마 24장 1-2 절) 대전- 92강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17-10-13
열람 ➜ 자유게시판 가락-요한복음 15장 5절(열매는 순교다)171010b-이 근호 목사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7-10-12
16,327 자유게시판 가락-요한복음 15장 5절(열매는 순교다)171010a-이 근호 목사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7-10-12
16,326 자유게시판 권력 구조 (삼상 8장 10-18 절) 대전- 30강 사무엘상 최고관리자 17-10-12
16,325 자유게시판 109강-창 27장41절-45절(저주의 분노)171011-이 근호 목사 창세기 최고관리자 17-10-12
16,324 강의 유튜브( 204강, 205강) 소유와 존재, 남과 여 171010 갈라디아서 최고관리자 17-10-11
16,323 강의 열매는 순교다 171010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7-10-11
16,322 자유게시판 20171006b 울산강의-레위기 12장 : 절연 레위기 최고관리자 17-10-10
16,321 자유게시판 20171006a 울산강의-레위기 12장 : 절연 레위기 최고관리자 17-10-10
16,320 자유게시판 광주 강의(2017. 9. 22) 1강 마가복음 최고관리자 17-10-09
16,319 자유게시판 258강-고후 12장 7-9절(사단의 가시)1701008-이 근호 목사 고린도후서 최고관리자 17-10-09
16,318 자유게시판 154강-신 29장 1 - 4절(하나님의 이중 작업 )171008-이 근호 목사 신명기 최고관리자 17-10-09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