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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171006b 울산강의-레위기 12장 : 절연자유게시판레위기

20171006b 울산강의-레위기 12장 : 절연(강의:이근호 목사) 두 번째 시간 시작합니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닮아있는가? 같은 인간이니까 원숭이와는 다르겠지요. 코끼리와도 다르고. 남자와 여자를 왜 하나님께서는 단일성으로 똑같은 성, 젠더로 창조하지 않고 왜 남성, 여성으로 구분시켜놨는지 생각해봐야 돼요.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기능을 보여주기 위해서 남성과 여성이 필히 구분돼야 됩니다. 예수님은 한분이죠. 그 하나라는 것이 하나에서 줄곧 하나로 가는 게 아니고 하나에서 둘이 되었다가 다시 합쳐지는 가운데서 그리스도에 내재돼있는 본질이 바깥으로 방출이 되는 겁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그냥 승천한 게 아니고 예수님이 오셔서 죽었다가 승천하셨다. 이 죽음 속에서 비로소 하나님의 모든 비밀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방출이 되고 계시로 드러나게 돼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오실 때 그냥 오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약속대로 오시거든요. 그 약속은 감사하게도 창세기 3장 15절에 보면,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의 싸움이란 거죠. 이 말은 후손과 후손끼리의 싸움이에요. 여자와 뱀의 싸움이 아니고 후손까지 계속 지연되는 겁니다. 계속 밀리는 거예요. 후손에 와서 싸우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남자의 후손이 아니고 여자의 후손이라고요. 원래 아담이 먼저 있고 순서상 아담이 먼저고 여자가 나오잖아요. 그러면 여자가 나오면서 졸지에 아담은 날아가고 아담은 여자가 있음으로 남자가 되는 겁니다. 아담이란 1이잖아요. 그런데 새로운 아담이 되려면 1이 2가 되었다가 다시 1로 가는 가운데 아담이 품고 있던 하나님의 약속이 역사화 되어 역사란 이름으로 바깥으로 펼쳐지는 겁니다. 그걸 저는 포개져 있다, 또는 중첩돼있다고 하는 겁니다. 아담이 나왔을 때 사람이네, 했는데 뒤에서 여자가 튀어나온다면 앞에 있는 게 사람이 아니고 남자구나. 그럼 사람은 뭐냐? 남자만 사람이 아니고 남자와 여자가 하나가 될 때 사람이 되는 겁니다. 남자의 기능과 여자의 기능이 제대로 다 수행될 때 비로소 창조된 본래 인간으로서 뜻이 구현된다는 겁니다. 물론 남자 뒤에 있는 게 아니고 남자 속에 있었지요. 갈빗대로.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남자를 흙으로 만들었어요. 죽는 거죠. 그리고 여자의 이름을 생명이라 했습니다. 남자에서 여자가 나왔는데 순서를 반대로 하면 여자를 통해서 남자를 드러내는데 이 남자는 이미 정해진 남자에요. 이 남자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아담의 시절은 끝났어요. 아담은 살아있을 때만 아담이에요. 그 뒤에 아담 없습니다. 우리는 하늘나라 가면 천사와 같아요. 그리도 흙의 형상을 입지 않습니다. 누구의 형상을 입느냐? 하늘에 속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 부활의 형상을 입습니다. 제가 일부러 기분 좋으라고 하는 소리가 아니고 약속된 기업, 하나님의 말씀대로 약속된 기업이에요. 하나님이 약속대로 안 하고 부도나면 어떻게 하느냐? 그걸 보여주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망하게 했잖아요. 봐, 약속대로 망했잖아. 하나님이 율법 줬고 율법대로 이스라엘이 망했잖아요. 이스라엘이 망한 것도 증거가 되지만 더 확실한 증거는, 예수 그리스도가 죽었다가 3일 만에 다시 살아난 것, 사도 바울은 그게 복음이에요. 죽음도 복음이고, 살아남도 복음이고. 앞에 대표적으로 십자가로 나타나고 뒤에 부활은 숨어있고. 십자가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에게 부활은 없어요. 뒤에 숨어있는 부활을 알기 위해선 반드시 십자가로 가야 돼요. 십자가란 우리 자신의 구원을 거기서 포기하는 겁니다. 내 구원에 대해서 내가 포기하는 거예요. 나에 대해서 포기하는 거예요. 내가 잘 되기 위한 하나님을 포기하는 겁니다. 포기하는 방식은 뭐냐? 나는 주 앞에 구원받을 수 없는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거예요. 성전 앞에 있던 세리처럼.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세리가 이렇게 하면 의인될 것이라는 꼼수를 사전에 생각한 적이 있습니까? 없지요. 그냥 일방적이에요. 본인이 예상 못했습니다. 예상 못했다는 말은, 나라는 것이 존재하고 존재한 내가 기대하고 예상한 노선이 있을 것 아닙니까? 어떤 노선의 끝에도 지금 내 구원은 없는 거예요. 자기 노선에 구원은 없는 거예요. 주님께서 일방적으로 용서한 것은 자기가 예상한 노선 말고 다른 노선이 접합해서 그런 거예요. 접촉해서 그런 거예요. 이렇게 하면 내 끝은 잘 될 것이다. 그런 건 없어요.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아줌마가 이렇게 하면 구원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간음했습니까? 아니지요. 예수님이 오셔서 자길 고소하는 사람들에게 돌로 치라고 호통할 때 그 아줌마가 신난다고 했습니까? “나는 죽었구나.”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 했는데 죄 없다는 인간들도 죄 들통 날 판에 현장에서 잡힌 자기는 죄 없다 할 수 없잖아요. 그럼 죄 있는 여자 맞지요. 죄의 결과가 뭡니까? 지옥이잖아요. 거기서 자기의 모든 기대는 멈춰야 되는 거예요. 내 삶의 마지막은 지옥. 여기서 멈춰야 돼요. 거기서 다른 계산을 하면 안 됩니다. 그걸로 끝나야 돼요. 그 다음에 그 여자가 죄 용서받는 것은 주의 일방적 조치에요. 왜냐하면 그 여자를 구원함이 아니고 그 여자 속에 새로운 아담, 마지막 아담,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기능을 삽입시킨 겁니다. 붕어빵 만들 때 밀가루 반죽 넣고 앙꼬 넣잖아요. 그리고 돌리고 뒤집고 하듯이 주님께서는 자기가 만든 피조물이기 때문에 자기 의를 집어넣고 안 넣고는 예수님의 일방적 권한이에요. 이런 이야기는 세상과의 절연입니다. 완전히 끊어졌어요. 말을 해도 못 알아들어요.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인간들의 왜 말을 못 알아듣느냐 하면, 자기의 미래는 자기가 개시하기에 달렸어요. 자기가 원인 제공함에 따라서 결과가 온다는 과학적 합리적 인식이 오늘날 사람들을 만들었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악마가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광채를 기어이 가려버립니다. 네가 인간이니까 네가 알아서 해라. 자꾸 격려하고 독려하고 우리를 부추긴 거예요. 하면 된다! I can do it. 할 수 있다는 식으로 긍정적 사고방식을 집어넣고. 엎어지거든 일어서라. 일어설 수 있어. 하면 돼! 누가 위로해주지? 여러분. 많은 분들이 박수칠 거야. 할 수 있어. 간음한 여인에게 제자들이나 바리새인들이 할 수 있어. 용서받을 수 있다고 이야기하겠어요? 본인이 그렇게 생각하겠습니까? 본인은 그런 것 기대조차 안 했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안다는 것은 더 남아있는 감사거리가 없어요. 복음에 대해서 알았으면, 뭔가 더 기대해서 그것 되면 하는 감사거리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가 복음에 대한 감사입니다. 십자가 복음, 일방적으로 구원하신 그것만 해도 집구석 박살나도 박수칠 마음에 준비가 돼있어요. 미장원에서 머리 홀랑 깎여도, 대머리 됐는데 박수치면서 나오는 겁니다. 인생은 그냥 박수만 치면 돼요. 그걸 범사에 감사하라는 건데 우리가 평소에 주 앞에 감사하지 못하고 박수치지 못하는 것은 주님 주신 것이 좋은 게 아니고 자기가 은근히 기대했던 자기 노선을 고수하기 때문에 그래요. 내가 원인이 되어 기도한대로 응답됐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제가 대구강의에서 그런 이야기했습니다. 기도는 호흡이 아니라 자살이라고. 그 내용을 위해서 목숨 걸어야 돼요. 이것 들어주면 제 목숨 가져가도 상관없어요. 그게 바로 기도에요. 기도 내용에 대해서 자기 목숨마저 내버릴 정도가 돼야 돼요. 자살입니다. 호흡이 아니고 살고자 하는 게 아니고 죽으려고 환장해야 그게 기도에요. 날마다 기도한다는 것은 날마다 자살한다는 거예요. 그만 살래. 이 땅에 그만 살래. 울산에 매연도 많은데 그만 살래. 도대체 이런 것도 모르고 믿음에 대해서 이야기하니까 그동안 누구한테 뭘 들었는지 모르겠어. 뭘 듣고 믿음도 없으면서 살려고 용기를 내는지, 누가 그렇게 헛바람 줬는지. 헛바람 소용없습니다. 여자의 후손을 통해서 싸움을 겁니다. 여자의 후손은 반드시 적이 있습니다. 뱀의 후손이에요. 원수가 없는 이상 구원은 없습니다. 전쟁 없는 구원은 없어요. 그 전쟁에 대해서 우리가 나설 전쟁은 아니에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전쟁은 아닙니다. 주께서 홀로 하실 전쟁이에요. 그 전쟁의 결과가 우리에게 이런 말씀을 주는 거예요. 그러면 오늘 본문을 통해서 정말 머리가 비상한 사람은, 이 본문을 놓고 벌인 전쟁에서 누가 이겼는지 질문해야 돼요. 그런데 레위기 12장에 아무리 봐도 전쟁 이야기 안 나오잖아요. 뭘 하라는 것만 나오지요. 하라 했으니까 하면 되지, 뭐. 그래서 이스라엘이 망한 겁니다. 말씀은 인간이 하는 게 아니에요. 인간은 이미 끊어진 상태기 때문에 끊어진 상태에 언약이란 깔때기가 꽂히면 깔때기 속에 레위기 12장 말씀을 친히 이루기 위해서 죄 있는 이 세상까지 아버지로부터 끊어진 이 세상, 죄로 말미암아 모든 게 절연된 상태에 자진해서 쑥 들어오신 분이 계셔요. 레위기 12장이 그분의 이야기에요. 예수 그리스도 그분과 성경을 연결시켜야 해석이 돼요. 예수님이 여자도 아닌데 언제 해산한 적이 있습니까? 그렇게 생각 되겠지요. 어떻게 연결됐는지 제가 알려드리겠습니다. 누가복음 2장 22~24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셔서 팔 일만에 할례 행하는 그 대목입니다. “모세의 법대로 결례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비둘기 한 쌍이나 혹 어린 반구 둘로 제사하려 함이라” 누구냐 하면 마리아와 요셉이 이렇게 하고자 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레위기 12장 8절에 보면, “그 여인의 힘이 어린 양에 미치지 못하거든 산비둘기 둘이나 집비둘기 새끼 둘을 가져다가 하나는 번제물로, 하나는 속죄 제물로 삼을 것이요” 이것은 그 여인이 가난한 거예요. 예수님 가정은 되게 가난한 겁니다. 여기 집비둘기, 산비둘기밖에 못 드린 것은 가난한 거죠. 예수님이 태어날 때부터 레위기 12장의 말이 여기에 딱 들어붙어요. 연결됩니다. 누가복음 2장 23절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 이게 핵심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모든 남자는 태어나게 되면 하나님의 율법에 준해서 실행했을 때 하나님의 거룩한 자가 돼요. 이건 출애굽기 13장 1절에 보면 나옵니다. 참 복잡해지지요. 예수 그리스도로 연결되는데 그렇게 쉽게 연결되지 않아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어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 중에 사람이나 짐승이나 무론하고 초태생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 이것은 내 것이라고 했어요. 사람은 다 주의 것 아닙니까?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주님이 내 것이라 하는 것은 이방인은 안 되고 이스라엘 중에서 그것도 여자는 안 되고 남자, 남자 중에서도 난 지 팔일 만에 율법대로 시행될 때. 계속 율법의 조건들이 들어붙지요. 남자, 여자부터 다시 시작해야 적절할 것 같습니다. 처음에 사실은 아담이 먼저 있었고 그 다음에 여자가 태어나자마다 아담은 남자가 되죠. 둘이 분리가 됩니다. 선악과 때문에 분리되지만. 주님께서는 전쟁하는 하나님이죠. 전쟁을 할 때 사탄이 남자를 유혹했습니까, 여자를 유혹했습니까? 여자를 유혹한 거예요. 사탄에 가장 근접한 자리에 있는 자는 남자가 아니고 여자가 되는 겁니다. 뱀이 먼저 여자를 유혹했던 그 상황을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 반복시켜버려요. 여자가 가깝다는 말은 여자 쪽이 남자보다 죄의 접근성이 강렬하죠. 왜? 사탄이 남자보다 여자를 먼저 유혹했으니까. 남자는 사탄을 만난 적도 없어요. 여자가 유혹 당하고 여자가 남자를 유혹해서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말미암아 선악과나무에서 일어났던 그 사건을 마지막 천국 올 때까지 선악과 사건을 역사 속에 굴려버려요. 선악과는 없어졌지만 선악과 통해서 발생된 사건은 마지막 생명나무, 천국 갈 때까지 계속 반복해서 굴러가는 거예요. 눈 덩이처럼. 점점 더 선악과로 유발된 죄의 양은 늘어나고 짙어지는 겁니다. 산비탈에 눈을 굴려보세요. 처음엔 작지만 어떻게 됩니까? 눈이 추가되듯이 죄가 추가된단 말이죠. 마지막 극단적인 죄가 십자가에서 죽일 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과 서기관들을 너희 아비는 사탄이라. 사탄에 가장 근접한 모양새와 본질을 보여주는 자는 인류에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과 서기관들인 거예요. 가장 사탄을 보고 싶다. 그럼 바리새인과 사두개인과 서기관을 보면 돼요. 나머지 사람들은 먼발치에 있는 사탄의 졸개에 불과하고. 가장 사탄적인 것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과 서기관들입니다. 여러분이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보면서 그런 의문은 없던가요? 예수님께서 가는 곳마다 귀신을 쫓아내잖아요. 그렇게 귀신을 쫓아내면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속의 마귀는 왜 안 쫓아냅니까? 잔챙이는 쉬운데 오야봉이라 버거워서 그렇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점점 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쪽에 다가서야 사탄이 마지막 노리는 게 무엇인지 거사가 시행돼야 되는 겁니다. 악마가 노리는 것은 메시아를 죽이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쓸모없다고 없애버리는 겁니다. 사탄이라 하니까 무당, 절의 중들 생각하는데 자꾸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것도 사탄의 종들이지만 멀찍이 있는 거고 진짜 사탄의 종은 교회에 있어요.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전부터 심판이 시작된다고 베드로전서에 나와 있거든요. 이 모든 말씀을 지켜라. 그러면 복 받을 것이다. 그게 사탄의 이야기 아닙니까. 선하면 어디 가고? 천국 가고. 악하면 지옥 가고. 그게 사탄이잖아요. 주님은 선과 악을 안다는 자체가 이미 사탄이에요. 사탄에게 매여 있기 때문에 악하면 찝찝하고 선하면 기분 좋고. 그게 사탄이 집어넣은 본성이에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기도 좀 했더니만 갑자기가 돈이 몇 천만 원 들어왔다. 착한 일 한 모양이다. 교회에 봉사 외에는 착한 일 한 게 없는데. 봉사한 걸 주께서 봐주셨구나. 그러면 사람이 기분 좋습니까, 뭐 찝찝한 게 있어요? 내가 착해서 천만 원 들어왔는데 앞으로 만약에 내가 봉사 소홀히 한다든지 교회에 소홀하면 훅 가는 수가 있어요. 그런 불안감, 그런 두려움 들지 않던가요? 감사 한 구석에 감사를 갉아먹는 어두운 그림자. 감사를 해봐야 알지. 다들 본인 알아서 살았습니까? 본인 덕분에 본인이 살았지요. 감사할 것도 없고 열심히 일해서 내 돈으로 살았지. 그렇게 독자적으로 살았어요? 그러면 사탄까지 멀었고 사탄에 저 멀찍이 있는 졸개고. 진짜 사탄의 졸개는 그렇지 않습니다. 더욱 더 경건하고 더욱 더 완벽하게. Perfect! 완전하게. 완전에 더욱 더 완전을 기하고, 철저에 더욱 더 철저를 기하고. 예수님이 하는 말이, 누구든지 바리새인보다 의가 더 낫지 아니하면 천국에 못 갑니다. 이 말은 인류가 아무리 까불어도 인류의 대표자는 바리새인이고 그 대표자가 사탄의 가장 본질을 보여주면서 잡아 죽이잖아요. 거기에 한 몫 한 것이 열두 제자 가운데 가룟 유다. 가룟 유다가 양심에 바쳐서 자살까지 하지요. 스승을 팔아먹었다고. 나라 잃었다고 자결한 사람들이 일제 강점기 되기 전에 얼마나 많이 있었어요. 나라를 지켜야 될 공무원이 나라 못 지키고, 죽자. 민영환이 같은 사람 있지요. 헤이그 밀사로 죽은 사람 있잖아요. 왜 그 사람들은 왜 의인이 아니고 사탄입니까? 갑자기 어려운 문제가 됐는데 정답을 즉각 말씀드리겠습니다. 왜 민족과 국가와 이웃을 사랑 못해서 양심이 가책이 되어 스승을 팔아먹었다는 이유로 목매 자살했는데 왜 그 사람이 의인이 아니냐 하면, 바로 본인의 양심 문제가 되면 온 인류의 원수가 나타나질 않아요. 남자든 여자든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줘야 됩니다. 그게 골로새서 1장 16절에 나와요. 모든 피조물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만들었거든요. 그런데 자기가 처음에 개시가 되면 내 인생은 누구 책임이다? 내 책임이다. 내가 가정을 잘 못 돌보고 내가 돈 못 버니까 우사스럽다, 체면이 손상된다, 부끄러워서 못 살겠다. 이러니 죽는 게 낫지. 이게 죽을 때만 그런 짓 한 게 아니고 평소에 하루하루 일과의 사고방식이 뭐냐 하면,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책임지고 내 관리 하에 산다는 겁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할 때 이 세상에 몇몇 사람한테 하는 이야기가 아니죠. 오늘날 99.99% 모든 사람한테 하는 이야기에요. 교회 들락날락하고 목사를 섬기든 말든 그런 겉모습은 다 버리고 평소에 너는 어떻게 살아가느냐? 주님이 주신 복음의 기쁨 때문에 살아갑니까, 아니면 자기의 계획된 것을 실현할 그날을 보고 싶어서 살아갑니까? 내가 꿈꾸는 게 아까워서라도 지금 안 죽고 버티는 것 아니겠어요? 마저 내 소원이 이뤄지기를 기대하면서. 자살하는 사람은 이래 보아도 저리 보아도 아무리 해도 자기 꿈이 실현될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자살한 거고, 아직까지 자살 안 한 사람들은 그나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보면서 그냥 버티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 자살해서 먼저 죽었을 뿐이고 좀 늦게 죽을 뿐이지 인간은 다 똑같아요. 이미 절연상태, 관계가 끊어진 상태에요. 그런데 인간은 누굴 모델로 삼는가? 옆 사람을 모델로 삼아요. 노벨문학상? 좋겠다. 상금이 수 십 억인데. 우리나라는 뭐 하노? 맨날 고은은 떨어지고. 노벨물리학상을 일본 사람은 그리 타는데 우리나라는 뭐 하나? 날마다 옆 사람과 비교하면서 좀 좋았다가 낙담했다가 절망했다고 촐싹거리고 까불다가 그냥 자기 노선 관리하면서 살아가잖아요. 그런 눈으로 보면 레위기 12장이 전혀 풀리지 않아요. 시키는 대로 하면 되지 뭐. 시켜서 했는데 멸망했다. 주님께서 레위기 12장을 주신 것은, 때가 되매 내 자식 가져가겠다는 거예요. 아들 낳다? 가져가겠다는 거예요. 주의 것으로, 출애굽기 13장 1절의 말씀처럼. 처음 난 것, 초태생은 누구 것이라고요? 주께서 가져가겠다는 겁니다. 주께 바치는 거예요. 주께 바칠 때 그냥 바치면 되는가? 아니요. 뭐가 실려야 되는가? 여러분 가정에 아들을 낳았다 합시다. 강보에 쌓여 있어요. 레위기 12장을 벌거벗은 몸에 미싱으로 박아버려야 돼요. 아기는 그냥 바쳐지는 게 아니고 율법의 가현체로 바쳐지는 겁니다. 레위기 12장으로. 아들 낳았다. 칠일 동안 더럽고 산혈이 깨끗해지려면 33일 있어야 된다. 이런 율법의 내용이 그대로 바쳐져야 돼요. 바쳐지는데 미지의 인물로 바쳐져요. 여자의 후손이에요. 왜 여자라 했습니까? 가장 죄에 근접하고 뱀이 여자를 유혹했잖아요. 이제는 반대로 여자와 뱀이 원수지간이 되게 하는 겁니다. 이렇게 원수지간이 됨으로써 어떤 정신이 이어지느냐 하면, 선악과 따먹었느냐, 라는 것이 계속 이어지는 거죠. 선악과 따먹지 말라는 명령을 통째로 위반한 것이 이 세상이라고 주님께서 계속 추궁할 수 있는 거예요. 추궁한다는 것은 지구를 완전히 불로써 살라도 피조세계는 거기에 대해서 반박하거나 한 말이 없어요. 레위기 12장을 우리가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원대한 우주적 계획이 놀랍게도 우리의 사적인 가정까지 침투했다는 것을 놓치면 안 돼요. 원대한 계획, 하지만 원대한 계획이 어디까지 이어졌느냐? 아들, 딸 낳는 것까지 하나하나 율법으로 침투돼있는 거예요. 집에서 움찔거리면 전부 다 율법과 관련돼있어요. 설거지하는 것도 율법과 관련돼있고. 성경에 설거지할 때는 따뜻한 물로 하라는 그런 구절은 없지만 누가 설거지하게 했으며 설거지하는 이유, 목적. 무엇 때문에 설거지하느냐? 설거지하는 목적을 전에 이야기한 적 없던가요? 설거지하게 하시는 것은 죄를 알기 위해서 하는 겁니다. 뭐든지 인간이 하는 것은 왜 죄일 수밖에 없는지 드러내기 위해서 설거지 시키는 거예요. 왜냐하면 주께선 죄인을 부르러 오셨기 때문에. 이것을 드려버리면 드린 것이 어디와 연관되느냐 하면 아기에 율법이 실렸지요. 빨랫줄 이야기했지요. 첫 번째 기둥은 아담이죠. 마지막 기둥은 예수님. 그 사이에 율법, 말씀이 흐르지요. 그러면 빨랫줄에 있는 모든 빨래들이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줄쳐져 있는 거예요. 빨랫줄 하나에 걸려있는 모든 인간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을 다 이루신 분이 마지막에 세상을 인류역사를 끝장내버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기를 바친다 할 때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완성을 위해서 미리 우리에게 율법과 결합이 되도록 이 땅의 인간들을 만든 거예요. 성도만 아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끼리만 아는 이야기에요. 율법이 더한 곳에 죄가 더하죠. 그래서 제가 그랬잖아요. 자기가 더럽다는 걸 아는 사람만이 절연상태가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된 상태란 말이죠. 율법으로 말미암아 죄인 됐다는 말은, 천국은 죄인이 못 가는 곳이잖아요. 의인이 가는 곳이죠. 우리로 하여금 더욱 더 죄인 되게 하는 것은 이 조치가 어떤 조치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만 유일한 하나님의 의가 됨을, 이게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으니. 예수님의 의됨을 드러내기 위해서 율법적 조치로 마감처리를 하는 거예요. 심지어 아기 낳는 것까지 산부인과까지 찾아와서 아들 낳았나, 딸 낳았나, 이것까지 해서 고맙게도 아들, 딸 세세하게 율법적 처리를 하는 겁니다. 이것까지는 쉬워요. 이제 어려운 것 나옵니다. 오늘 레위기 12장을 한 마디로 말해서 시간+제사=거룩. 시간 요소로 들어가는 것이 남자는 40일, 여자는 80일. 그런데 시간과 제사가 결합이 된다? 이건 인간으로선 불가능한 일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저 같은 경우에 젊을 때 유교 집안이라 제사를 드렸다고요. 보통 밤 12시에 했어요. 그게 점점 빨라져서 10시에도 하고 9시에 하고 때려치우고. 이스라엘과 똑같아요. 제사가 끝나면 제사가 아니지요. 그러면 제사 드릴 시간만 거룩하다면 끝나면 거룩이 안 되잖아요. 인간으로선 이게 성립이 안 돼요. 이게 되려면 제사 시간이 한 텀으로 마감되면 안 되고 이 제사가 영원히 지속돼야 돼요. 묵시에요. 시간 정도가 아니고 영원히 계속 돼야 돼요. 따라서 7+33=40, 14+66=80, 사실은 아들이 원형이니까 딸은 곱빼기로 한 거예요. 이게 여자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여자가 깨끗하게 되는데 있어서 시간 소요가 두 배나 될 정도로 하와는 아담보다 더 죄에 근접해 있다는 것을 선악과 따먹은 사건을 반복하다보니까 이리 된 겁니다. 7+33이 우리 보기에는 그냥 40이잖아요. 그런데 우리를 마중하려 온 주님 안에서는 40일이 영원이 표시하는 시간이 되는 거예요. 그럼 영원을 표시하는 시간이 어떤 때는 40이고 어떤 때 천이고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다 영원이지만 어떤 일에 개입한 율법이냐에 따라서 시간이 다 달라요. 창조라면 영원을 천으로 하지 않고 7로 하죠. 그리고 창세기 5장에 아담의 수명이 영원하지 못함을 알려줄 때는 항상 천을 바(bar)로 정해놓고 그 밑으로 무두셀라(969)는 거의 근접했지만 천을 못 넘어요. 그런데 요한계시록에 보면 천년이 묵시세계에요. 그리고 베드로후서에 가면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다고 나오지요. 하지만 창세기 5장에선 천을 못 넘어요. 구백 몇 세, 구백 몇 세, 그렇게 돼요. 그때는 천년이 완전을 의미하는 겁니다. 하지만 여기서 40이란 지상의 숫자로 완전을 표시할 때는 시련과 고난에서 완전할 때는 40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아요. 모세가 광야에서 일부러 40을 맞추어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고요, 예수님께서 금식을 마치는 날이 40일이었습니다. 지상의 고난을 표현할 때 40으로 표현한 겁니다. 42일, 이틀 더 했다고 고생 더한 것 아니에요. 40일 했을 때 영원이란 걸 어떻게 판단하느냐 하면, 누가 40일을 하셨지? 주님이 하셨잖아요. 주님은 하늘에 계신 분인데 이 땅에서 활동하신 분으로 이해해줘야 한단 말입니다. 여자의 후손이 남자기 때문에 남자를 기준으로 40일이고, 여자는 80일이라 했지만 사실은 40일과 똑같은 취지로 보시면 되는 겁니다. 7과 33으로 나눈 것은 7이 지나고 난 뒤에 할례를 행하는 겁니다. 할례는 [은밀한 나라]란 책에 한 챕터로 설명했어요. 할례는 새 자리 마련이란 뜻이에요. 골로새서 2장에서 할례를 행한다는 말은 우리 몸(아담의 몸)은 죽이고 주님의 몸으로 바꿔치기입니다. 할례의 완성이 세례입니다. 할례라는 게 몸과 몸을 바꿔치기하는 거예요. 고추 끝을 떼어내는 게 할례 아니에요. 누가복음 2장 22절에 “모세의 법대로 결례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주께 드리고”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난지 팔일 만에 할례 했다는 것이 21절에 나옵니다. “할례 할 팔 일이 되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니 곧 수태하지 전에 천사의 일컬은 바러라” 천사가 관여합니다. 뭔 뜻이냐 하면, 우리는 성경을 시시하게 보잖아요. 천사는 시시하게 보지 않아요. 울산시민들은 오다보니 울산배 축제한다고 조항조 오고한다는데 울산시민들한테 성경 레위기 12장 관심 있어요? 아무도 없지요. 그러나 천사는 상당히 중요시 여깁니다. 천사는 축제 같은 것 안 가요. 시끄러워서 안 가요. 자칫하면 총 맞는 수가 있어요. 하여튼 우리는 천사 없는 곳만 찾아다녀요. 성령이 없는 곳만 찾아다녀요. 재미있잖아요. 그러나 천국을 재미로 갑니까? 지옥 가면 굉장히 재미있어요. 동기들 다 거기 있어요. 자기 인생 자기가 관리한 사람들 다 가있습니다. 절연된 사람, 끊어진 사람들 다 가있어요. 남들 지옥 가는데 따라가는 셈이 돼요. 많은 사람이 지옥 간다고 해서 저게 진리인지 싶어서 다 따라가고. 결국 찾는 이가 많은 길이 무슨 길일까요? 멸망의 길입니다. 말해도 무슨 소용 있겠어요. 예수 그리스도에게 바친 자는 율법이 몸에 문신처럼 박혀 있기 때문에 그 인생은 율법이 장악한 인생이 돼요. 그렇다면 바쳐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힘이 나와요. 예수 그리스도가 이런 분이라는 요소, 요소가 피부 세포 내에서 빠져나와서 보여주게 된다고요. 이것은 전쟁입니다. 주의 성령이 임한 성도는 전쟁터에 주님의 군사로 나올 수밖에 없어요. 왜? 율법의 완성이 복음이잖아요. 복음이 마구 쏟아지는 거예요. 복음이 쏟아진다는 것은 상대할 대상이 있다는 거고 상대할 대상이 누굽니까? 악마의 앞잡이죠. 시간과 제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함으로 말미암아 완성이 되면 완성된 것이 신약의 성도에게 성령을 통해서 그대로 와버립니다. 그러면 성도는 다 이루었어요. 이걸 두 자로 완료가 돼요. 구원에 필요한 더 보탤 행동이나 행함이 없어요. 경건하게 살고 이런 것 없어요. 경건하게 살아라가 내 속에서 바깥으로 튀어나오는 것만 있을 뿐이죠. 이게 경건이라고 튀어나오는 것만 있죠. 네가 무시로 기도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라는 그 말씀이 이제는 이 안에서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되는 거예요. 자아가 그걸 지키는 게 아니고 이미 말씀의 완성도가 살아가면서 튀어나오게 되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튀어나오게 되면 튀어나온 현장에서 우리는 졸지에 죄인 중에 괴수가 되는 겁니다. 왜? 우리 육이 남아있으니까. 주께서 우리 육대로 하지 않으시고 주님의 용서와 복음대로 하시는구나. 죄인을 더욱 더 죄인 되게 하시는 그러한 모습을 남기면서. 주님만 영광만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고린도전서에 보면 약한 자만 택하사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가난한 자를 부한 자를 부끄럽게 하지요. 왜? 전쟁이니까. 그런데 가난한 자가 하는 전쟁입니까? 가난한 자가 가난한 체 가난하다고 합니까? 가난한 자는 상대를 보지 않아요. 주님을 상대합니다. 주여, 제가 참 이렇게 가난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달 수입이 12억밖에 안 되니 너무나 감사합니다. 저는 돈 12억이 중요한 게 아니고 주께서 주신 믿음에 부요하게 하셔서 그까짓 것 12억이 뭐라고 아무것도 아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 12억 손에 쥐어봐야 알지. 그럼 액수 좀 낮춥시다. 주여, 한 달에 백이십 만원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까짓 것 백이십 만원 아무것도 아니고 믿음에 부요한 것을 감사합니다. 이야기 괜히 했다. 벌써 겁내고 있는 모습을 보니 아쉽다. 120으론 안 되는 데요. 350은 돼야 된다고 나오면 곤란한데. 어쨌든 간에 그 말씀을 우리로 지키라는 게 아니고 때를 따라서 우리로 하여금 야고보서 말씀이 난데없이 우리에게 튀어나오게 하실 때 그것이 바로 영원한 주님의 완성이 우리 안에서 우리로 활용하고 있다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하나님 아버지, 주의 말씀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앞에서 죄인 되고 지키라고 준 말씀이 아니고 못 지키는 존재란 것을 날마다 감사하면서 주님만 증거케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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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193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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