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대구강의] 전도서속의 그리스도 18 - 단지
[17 대구강의] '전도서'속의 그리스도 18 - 단지
07,09,04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오늘은 교재 56페이지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성경공부를 해서 성경구절 하나를 더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성경전체가 어떻게 하나의 줄로 연결이 되는지, 그것이 정리가 되면 마음이 자유로워진다는 겁니다. 그게 아니라 뭔가 미진한 것이 있으면 마음이 찜찜하고 말이죠.
자유로운가? 찜찜한가?
성경의 몇몇 구절은 자기의 말을 옹호해주는데, 그런데 옹호해주지 않는 구절이 나오면 답답해진다는 겁니다. "내가 너무 일방적 생각을 가지고 성경을 보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면, 어떤 행동을 할 때도 역시 찜찜하다는 겁니다. 자기는 성경대로 한다고 하는데, 그런데 이 성경구절에 의하면 그게 아닌 것이 되니까, 살아가는 것이 당당하지를 못하고 주춤거리게 된다는 말이죠.
진리의 말씀에 올인을 할 수 있어야 마음이 편한데, 그것이 아니라면 평생동안 자기 인생을 자기가 관리해야한다는 겁니다. 그게 자유로워 보일지 몰라도 사실은 불안 불안하다는 말이죠. 자기도 아는데, 자기는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죠. 그런데 믿을 사람은 자기밖에 없으니, 임시방편으로서 자기만 믿는다는 겁니다.
그러면 만약에 자기가 그동안 잘못 살아왔다고 한다면 어떻게 할 겁니까? 하나님 앞에서 제 아무리 "최선을 다해서 살았습니다" 라고 해도, 그것이 과연 통할까요?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말이죠. 심지어 북한의 김정은도 최선을 다한다는 겁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최선을 다해서 살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느냐는 말이죠.
양심, 그 악마성 !!
성경은 말씀을 잘 모르겠고, 그래서 무엇을 믿는고 하니, 자기 양심을 믿는 사람이 있는데, 즉 "양심에 비추어서 나는 진실했다" 라는 겁니다. 진실은 진리가 아닌데, 그러니 양심대로 살았다는 것이 구원의 토대가 될 수 없는데, 오히려 성경은 그게 악마적인지를 지적하고 있다는 말이죠.
사람들이 양심대로 살았다는 것에 대해서 왜 그렇게 자부심을 느끼는고 하니, 자기의 그런 살아가는 것과 다른 사람들과 비교한다는 겁니다. 남들과 비교하게 되면,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면 비양심적인 것이 되는데, 자기는 쓰레기 봉투에 다 넣어서 버린다는 말이죠. 그러니 양심적인데, 살아가는 보람이 마구 생긴다는 겁니다.
자기는 살아가면서 그동안 그게 착한지 악한지 제대로 모르고 있었는데, 그런데 이 세상에서 남들과 비교를 해보니까 나름 자기는 착한 부류에 속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거기에 대해서 상당한 자부심이 생긴다는 말이죠. 그 얼마나 뿌듯한지 모른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러한 마음으로 성경을 보게 되면 어떻게 되는고 하니,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에게 그만 걸리고 만다는 겁니다. 양심이 아닌 상식적인 입장에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주동한 사람들이 누구인고 하니, 그들이 바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라는 말이죠.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
어제 낮에 한 설교가 상당히 어려웠는데, 예수님께서 귀신 잔챙이들은 잘 쫓아내는데, 그런데 귀신의 오야봉에게는 그만 당해서 십자가에서 맥없이 죽어버리느냐는 겁니다. 그 오야봉에게도 "마귀야 물러가라!" 라고 해서 쫓아내야 하는데, 그런 왕 마귀에게는 왜 그렇게 하지 않느냐는 말이죠.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인고 하니, 죽으려고 오셨다는 겁니다. 그것이 요한복음 10장에 나오는데, 예수님께서 자기 목숨을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라고 하신다는 말이죠. 누군가가 죽여서 죽는 것이 아니고 말이죠.
(요 10:17)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요 10: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설교시간에 할 수가 없는데, 교인들은 평소에 자기의 직업을 가지고 있다보니 제대로 성경을 볼 여유가 없고, 그래서 교회에 와서 목사가 하는 이야기만 듣다가 보니까, "예수님은 이 땅에 죽으려고 오셨습니다" 라고 하면, "아니 그런 내용이 성경에 다 있었습니까? 금시초문입니다" 라고 나온다는 겁니다.
그러니 성경에는 자기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거북스러워하는 구절이 더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죠. 목사가 "여러분이 열심히 하지 않으면 그만 중도탈락입니다. 열심히 하세요" 라고 하면, 겁을 집어먹고 "예, 시키는 대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라고 하는데, 하지만 요한복음 10장에 보면 전혀 그렇게 되어있지 않다는 말이죠.
양은 자기 갈 길을 가는데, 그런데 목자가 자기 양을 안다는 겁니다. 그래서 목사가 양을 부르는데, 그냥 부르는 것이 아니라 권세로 부른다는 말이죠. 권세로 그렇게 모가지를 잡으면, 그 어떤 세력도 목자로부터 양을 빼앗지 못한다는 겁니다.
(요 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요 10: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평소에 목사들이 "여러분이 목사가 시키는 대로 열심히 하지 않으면 그만 중도탈락입니다" 라고 공갈을 쳐서 그동안 벌벌 떨었는데, "구원이 확정된 것이 아니구나. 내가 농땡이를 치면 그만 탈락이구나" 라고 여겼는데, 그런데 여기 요한복음 10장에 의하면 뭐라고 합니까? "아무도 주님의 손에서 빼앗을 수가 없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여기에 소형 녹음기가 있는데, 이것을 꽉 쥐듯이 주님께서 꽉 쥐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귀신들이 천 마리가 와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 그것이 눈에 보이는 목사들인데 말이죠. 그러면 주님이 자기를 쥐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구원을 빼앗아간다는 사기꾼들의 말에 속아서 그들이 시키는 대로 하면서 그들을 따라 간다는 겁니다. 겁이 나서 말이죠.
물론 그렇게 가더라도 주님이 꽉 쥐고 있으니 상관이 없는데, 그것은 나중에 안다는 겁니다. 돈이라는 돈은 교회에 몽땅 다 털리고 난 다음에 말이죠. 장로도 되지를 못하고 그 교회에서 쫓겨난 다음에 "아하, 구원은 그렇게 해서 되는 것이 아니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겁니다.
졸음운전을 해도 !!
어제 낮에 설교를 하면서, 고속도로에서 졸음운전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는데, 여러분이나 저도 그런 경험이 다들 있다는 말이죠. 그러면 우리는 왜 그런 교통사고가 나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졸음운전을 잘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주님이 사고가 나지 않는 타이밍을 주셨기에 그렇다는 겁니다.
이것을 인생에 비유하면 다음과 같은데, 자기가 돈을 좀 모았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열심히 노력해서 모았다고 여기는데, 하지만 그렇지가 않다는 겁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사람이 있는데, 사업도 타이밍이라는 말이죠. 아무리 자기가 좋은 아이디어로 사업을 구상해서 열심히 해도, IMF 사태와 같은 일이 벌어지면, 자기가 하던 일은 그냥 날아가고 만다는 겁니다.
그러니 그게 아니라 주님이 돈을 벌게 해주셨다는 말이죠. 이것이 잠언서에 나오는 말씀인데, 아무리 말씀을 좀 보시라고 해도 보지 않으니 모르는데 말이죠. 그저 교회에 와서 자기가 기도하고 헌금한 대로 복을 받기 원하니까, 마귀들이 목사들을 앞장 세워서 돈을 다 털어 간다는 겁니다.
성경말씀에 보면 그 어느 것 하나라도 주님의 것이 아닌 것이 없다고 하는데, 그러니 우리가 이만큼 살아온 것도 역시 주님의 은혜인데, 우리가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전혀 아니라는 말이죠. 이 세상은 결코 우리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지를 않는다는 겁니다.
이 세상은 '감추어진 것' 중심으로 !!
그렇다면 이 세상이 돌아가는 이유가 과연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주님의 복음 때문에 돌아간다는 말이죠. 그래서 에베소서 1장 10절에 보면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라고 한다는 겁니다.
(엡 1: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복음으로 돌아간다" 라는 것이 너무나 상투적이라서 달리 표현하면, 그것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복음 때문에 돌아가기는 가는데, "이 세상은 감추어진 것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라는 겁니다. "이 세상은 복음으로 돌아간다" 라고 하면, 사람들은 이 복음이라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 눈에 보이는 것으로 바꾸려고 하는데, 개신교나 천주교에서는 그것을 '교회' 라고 하는데 말이죠.
그래서 "교회를 위하는 것이 곧 복음을 위하는 것이다" 라고 나온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눈에 보이니 말이죠. 여기에 이렇게 강대상이 있고 의자가 있고, 그렇게 보인다는 겁니다. 그래서 교회를 섬기면 그게 복음을 섬기는 것으로, 그렇게 사람들이 원한다는 말이죠. 물론 목사도 원하지만, 사실은 교인들이 더 원한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감추어진 것인데, 그런데 사람들은 이 감추어진 것을 눈에 보이는 것으로 바꾸려고 하다가보니 어떻게 합니까? 그게 출애굽기 32장에 보면 나오는데 말이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라는 이름으로 송아지 형상으로 된 우상을 만들었다는 겁니다.
(출 32:4)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그 고리를 받아 부어서 각도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 하는지라
복음인가? 기적인가?
그러니 이제는 교회 자체를 우상으로, 그렇게 사람들이 요구한 것이 되고 말았는데, 즉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못하겠으니, 보이는 식으로 좀 나타나 달라" 라는 겁니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식으로 나타나게 하면서, 사람들은 여기에 어떤 용어를 붙이는고 하니, 그것이 두 글자인데, 즉 '기적' 이라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교회에 주차장이 없는데 마침 옆에 빈터가 매물로 나와있다는 말이죠.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그 빈터를 교회에서 구입하면 기적이고, 그렇게 않으면 기적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니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으로 바꾸어서, 그것을 기적으로 본다는 말이죠.
그런데 성경을 보면, 이미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이미 이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는 겁니다. 그들이 뭐라고 기도를 합니까? "여호와여,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유일한 민족이오니, 우리에게 기적을 베풀어주옵소서"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말하는 기적은 무엇입니까? 지금 자기들을 압박하고 있는 로마에서 자기 유대민족을 해방시켜줄 사람을 찾는다는 말이죠. 유대인에게 있어서 메시야는 하나님이 아닌 사람인데, 즉 위대한 영웅이 나타나서 자기들을 로마에서 해방시켜주기를 원한다는 겁니다.
주여, 목사님 월급을 제때 드리게 하소서 !!
지지리도 가난한 교회, 목사 월급이 50만원도 제대로 나오지를 않는다는 말이죠. 지금도 그런 교회가 많이 있는데, 그러면 그런 교회의 교인들이 새벽마다 기도하는 내용은 무엇일까요? "최소한의 교회운영이라고 되는 기적을 베풀어주시면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라고 나온다는 겁니다.
성경은 분명히 보이지 않는 복음 때문에 이 세상이 돌아간다고 하는데,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믿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자기 교회가 잘 되면 그것을 기적으로 여기겠다는 겁니다. 자기 교회를 그렇게 해주면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으로, 그렇게 바꾸어서 생각한다는 말이죠.
성경은 구약부터 그렇게 해왔는데, 그러면 우리는 그것을 한 번 추적해보는 겁니다. 도대체 이런 말도 안 되는 발상이 어디서 나왔는지, 그것을 추적해보니, 그것은 바로 우리 인간 안에 시한폭탄이 들어있었다는 겁니다. 마귀가 옹아리를 틀고 있었다는 말이죠.
죄는, 개인적 문제가 아니고 !!
그러니 자기가 문제인데, 그것을 오늘 교재 56페이지에서 로마서 5장으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말이죠. 12절에 보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라고 하는데, 그러니 이 죄는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아담 때문이라는 겁니다.
(롬 5: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사도바울은 평소에 하나님을 잘 섬기는데 있어서 전혀 남에게 지고 싶은 마음이 없었는데, 아마 그도 처음에는 자기가 하나님을 잘 섬기면 재물이 늘어나고 복을 주신다고 여겼지 싶은데 말이죠. 그렇게 자꾸 섬기면 어느 정도로 격상을 하는고 하니,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처럼 되고 만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아무 것도 주지를 않고, 심지어 고난과 핍박이 온다고 해도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하는, 그런 경지에 이르는데 말이죠. 그들의 논리가 지금도 남아있는데, 사도바울이 사도가 되기 이전에 어떤 주장을 했고, 또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어떤 주장을 했습니까? 그들은 유대교에서 나오는 전통적인 경전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는 겁니다.
내가 노력한 만큼 보상을 얻겠다 !!
예수님 당시에 그들이 어떻게 구약성경을 해석했는지, 거기에 관한 책이 서점에도 나와있는데 말이죠. 그것을 보면 인간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적이 없다는 겁니다. 그게 무엇인고 하니, "내가 노력한 만큼 보상을 얻겠다" 라고 하는 것인데, 이 심보는 만고의 진리이지 싶은데 말이죠.
"공부해서 남 주나?" 라는 말이 있듯이, 공부를 해서 남에게 주겠다는 사람은 없는데, 노력을 했으면 당연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