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선 상의 존재 170911
20170911a 부산강의 : [시편]3(2편)-경계선상의 존재
(강의:이근호 목사)
오늘은 시편 2편하겠습니다. 시편 2편을 사도행전에 보면 사도들이 굉장히 인용을 많이 했어요. 왜 시편 2편을 사도행전에서 베드로와 사도 바울이 그렇게 인용을 많이 했느냐? 그것은 시편 2편이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고 부활하신, 모든 걸 완성하신 거죠. 완성하신 내용이 시편 2편에서 집약적으로 요약돼있다고 보고, 그리고 시편은 그 당시 유대사회에선 어릴 때부터 교육으로 달달 외웠다고 보면 됩니다. 그리고 유대교회에서 어떤 집회를 한든지 축제를 벌인다든지 행사를 벌일 때는 특히 시편 1,2편, 시편 전체가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가 이 시편에서 우주의 중심이 나와요. 그 우주의 중심을 성전이라고 합니다. 성전은 그 당시 지구상에서 유대인 자신의 나라에 독점적으로 성전이 있는 겁니다. 성전 중심으로 세상은 제대로 돌아가고 있다고 봤는데 이게 유대사회에요. 스데반 집사는 이 성전을 뭐로 교체하느냐 하면, 성전은 실물적이에요. 건물이 있지 않습니까?
이런 게 성령 받은 스데반 집사 같은 분이나 성령 받은 사도들이 하는 말이 굉장히 도발적이에요. 성전이란 실물이 있고 이 실물은 시편에서 다윗이 지어서 분명히 성전이 있으면 그 다음에 눈에 보이는 성전이 있기 때문에 누가 뭐래도 유대사회에 등록하게 되면 나중에 천국 간다는 것은 확실하거든요.
그런데 스데반 집사 같은 경우엔 성전을 무의미로 돌려요. 이걸 의미 없음으로 돌리고 의미 있는 것을 성전 자리에 집어넣는 데 그것이 실물이 아닙니다. 망자입니다. 망자란 죽은 자죠. 죽은 자를 성전 자리에 집어넣는단 말이죠. 환장할 겁니다. 산 자들에 대해서 서로 의지하고 기대하는 것이 이 세상 사회잖아요. 사회가 구성되려면 눈에 보이는 것들과 협력체제가 돼야 돼요. 협동해야 되는데 성전중심으로 유대사회가 모여서 이 성전은 대대로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예언한 것이 다윗을 통해서 실현된 것이 성전입니다.
따라서 성전이 있는 이상 분명하게 명확하게 우리 유대교만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유일한 종교라고 자부심을 가질 수 있어요. 어린애든 어른이든지 간에. 그런데 이걸 무의미한 것으로 돌리고 죽은 망자를 집어넣으면 어떡하란 말입니까? 평소에 눈에 보이는 걸 신봉한 자에게 눈에 보이는 것을 부정해버리면 눈에 보이는 것으로 믿음의 내용으로 채웠던 사람들은 졸지에 헛 믿었나, 가짜였어, 헛수고였어, 뭐지?
그래서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이, 제가 사도들이라 했지만 그 앞에 붙는 게 있어요. ‘성령 받은’ 사도들이라고 분명히 해야 됩니다. 베드로 사도에게 아나니아와 삽비라 헌금을 속이고 반만 낸 사람들 있죠. 베드로가 이런 말했어요. 너는 나를 속인 게 아니라고 이야기해요. 아나니아와 삽비라야, 너는 나를 속인 게 아니고 성령을 속였단 말이죠. 그 다음에 나오는 말이 중요해요. 성령을 속이는 것은 네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사단이 역사해야 성령을 속인 게 돼요. 사단의 힘을 빌려야 성령을 속인 게 돼요. 사단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그저 인간이 인간을 속인 것밖에 안 돼요.
이 말은 성령이란 보이지 않는 그것이 보이지 않는 것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보이지 않는 것 때문에 일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보이지 않는 분이 성령으로 일하는데 과연 그런가, 안 그런가는 성령 안에서 사탄이 짝을 맞추어 등장해줘야 세상은 무의미한 조직이 아니라 의미 있는 체제로 바뀐다는 것이 사도의 성경해석입니다. 이것은 해석이 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