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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실화 170908강의야고보서

안양20170908a약1장2절(실화)-이 근호 목사

야고보서1장입니다. 야고보서의 내용을 보게 되면 신약 적이라고 보기에는, 이게 신약 안에 있는 구약을 신약적으로 해석을 했다. 이리 보시면 되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율법으로 표현된 복음 또는 율법으로 표현된 예수님 이야기가 야고보서에요.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 율법과 예수님이 어떤 관련성이 있는가, 그걸 보여주는 겁니다.

보통 관련성은 어디서 회수가 되느냐 하면, 없어지느냐 하면,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해서 율법은 끝났지요. 율법은 끝났는데, 이런 것이 참 재미있어요. 십자가 안에서 이미 율법은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정죄함이 없나니. 정죄함이 없다는 말을 다른 강의에서는 처벌 없음. 가락강의에서 ‘처벌 없음’이라고 했거든요. 처벌 없음. 일체 처벌이 없어요. 있습니까? 믿어요? 안 믿는 거 아닙니까? 일체 처벌이 없습니다.

아~ 고생은 있어요. 고생은 처벌이 아니고 예수님의 공생애 길을 가다보면 받는 거고, 그게 처벌이 아니고 오히려 ‘아~ 주님이 요 길로 가셨구나! 아~ 요쪽으로 가셨네!’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 주님 가신 길을 가게 하는 거예요. 그게 무슨 처벌입니까? 그게 구원이지요. 복이지요.

보통은 율법에 관해서는 십자가 안에서는 처벌이 없는 동시에 율법도 이미 완성이 되고 말았습니다. 완성이 되었는데 야고보서 같은 경우에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면 그 완성되었음을 십자가라는 고 영적 범위 안에 있는 그것을 현실화시키는 겁니다. 실제화 시켜요. 말로 설명하면 이해가 좀 안되겠지요.

자, 예수님이 십자가 지셨잖아요. 십자가 안에서는 정죄함이 없고 율법은 완전히 완성을 이루었습니다. 율법이 원래 노리는 게 있었는데 율법이 완성이 되었어요. 그럼 율법이 노리는 게 없어요. 율법은 예수님과 상대하고 우리하고는 상대를 안 하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가 하나의 현실이 된다면 십자가 안에 있는 내용이 고스란히 요렇게 빠져나와서 요렇게 펑퍼짐하게 부추 전처럼 퍼져있겠지요. 밀가루 반죽해서 후라이팬 위에 해놓으면 퍼지잖아요. 십자가안의 내용이, 내장이 훅 현실에 퍼졌다 보시면 되는 겁니다. 이게 야고보서에요. 야고보서입니다.

그래서 십자가 바깥에 있는 사람은 요 십자가 안에 있는 율법의 완성을 보게 되면 이해를 못합니다. 왜냐하면 요 안에 같은 현실로 되어있지만 현실에 살면서 이해를 못해요. 율법에 하나를 어기면 다 어기는 것이라는 말을 이해를 못하는 거예요. 이해를 못해요. 하나를 어기면 다 어긴다는 것을 이해를 못합니다.

量(량) 또는 양이라는 뜻이거든요. 부피를 갖고 있는 양. 그런 양이란 한자인데, 세상 사람에서는 뭘로 보느냐 하면 이 세상을 균형을 맞출 때 선과 악 중에서 자기 선이 양이 많으면 자기가 죽어도 좋은데 갈 줄로 알아요. 모든 걸 양적으로 측정하는 겁니다. 그런데 십자가는 뭘로 하느냐 하면 이것은 질로, 성질로 측정 되거든요. 성질로. 이건 성질이고 저건 양이고.

양은 무엇이 전제되어야 하느냐 하면, 반드시 양이 될 때는 나라는 것이 있어야 돼요. 나라는 것이. 내가. 내 안에 선한 양이 많으냐, 악한 양이 많으냐, 나라는 것을 전제로 하는데. 제가 강의 처음에 할 때 뭐라고 했습니까? 뭘 빠져 나온 것이다? 십자가 앞에서는 양으로 측정하는 것이 아니고.

십자가 안에 들어있는 것이냐, 아니면 십자가 안에 들어있지 않은 걸로 측정해요? 않은 걸로 측정한다고요. 그러면 나는 뭐가 되느냐 하면 중요해요. 나는 항상 내 가치는 내 양으로 측정 돼요.

나는 나쁜 짓한 것 보다 착한 일한 게 많고 교회 빠진 날보다 참석한 날이 많고 이런 쪽으로 항상 내가 먼저 선점이 되어있으면 나는 양으로 측정해서 나쁜 것과 옳은 것과 죄악 됨과 의로움과 어느 것이 많으냐를 늘 측정하는 것은 이미 누가 있다? 내가 여기 포기하지 않고 여기 있다는 뜻이에요. 상당히 우리 자신이 우리한테 굉장히 위험한 존재에요. 우리 자신이 우리한테 굉장히 위험해요.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는 예수 그리스도가 율법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한테 물을 때는 “니 예수 그리스도의 완성된 것이 있느냐?” 고 묻는 거예요. 어떤 질의, 예수님의 성질이 있느냐를 물어요. 그러면 우리는 양으로 대답하면 안돼요. “율법을 100개중에서 99개를 지켰습니다.” 이렇게 대답하면 안 된다고요. “그러면 하나는 못 지켰느냐?” “하나는 못 지켰지만 99개는 지켰잖아요.” 이렇게 양적으로 대답해버리면 야고보서에 의하면 하나를 어기면 모든 것을 다 어긴 게 되어버려요.

다이아마트 창고가 있는데 그 창고에 다이아마트100개가 있는데 한 개에 불이 붙었어요. 까짓 거 한 개 에 불이 붙었는데. 이러면 안 되지요. 어떻게 됩니까? 나중에 창고가 폭발하겠지요. 십자가라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두고 이야기하기 때문에 니 몸 가지고 그리스도 몸으로 들어올 수 있는 그러한 방법이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없어요. 이게 없다 말이죠.

없는데, 세상 사람들 보기에는 자기가 착하니까 착한 것 중에서 십자가까지 믿어서 현재 나의 착함의 양에다가 십자가까지 추가해버리면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나는 아직도 쓸 만한 존재가 된다. 라는 인식을 안 믿는 사람들은 계속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어떻게 하느냐 하면 이걸 쫓아내는 거죠. 이걸 추방을 하는 겁니다. 야고보서를 통해서. 그런 식으로 믿으려면 그건 믿음도 아니다. 이런 식으로 계속 추방을 하는 겁니다. 로마서 같으면 십자가로 이야기하겠는데 야고보서에서는 십자가 앞에 현실화된 널 부러진 십자가의 법을 가지고 이쪽의 불신자를 추방을 하는 겁니다.

추방을 하게 되면 남는 게 뭐냐 하면 여기 야고보서1장 1절에 흩어져있는 열 두 지파라고 되어있지요. 이건 지난 시간에 진짜 정말 상세하게 이야기해 드렸습니다. 흩어진 열 두 지파 할 때 그 열 두 지파라 하는 것은 시간과 공간과 상관없이 야곱이 이스라엘 될 때 애들이 12명이었어요. 야곱이 이스라엘 되면서 머리 부분이 바뀌니까 그 자식들은 바뀐 분의 혜택으로 혜택을 입게 되어있어요.

육으로 난 자식이 열 두 명인데 아버지가 육에서 영으로 바뀌었잖아요.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뀌면 그 안에 야곱언약에 준해서 그 야곱에게 태어난 열 두 아들에게 하나님의 복이 그대로 전수가 되는 겁니다. 전달이 되게 되어있어요.

이삭의 복은 누구한테 전해집니까? 에서가 아니고 야곱이지요. 아브라함의 복은 누구한테 전해집니까? 이스마엘이 아니고 이삭이지요. 그러면 야곱의 복은 누구한테? 열두 명에게 몽땅 다. 요셉은 그걸 위해서 희생했고. 열두 명 몽땅 다 해당되는 겁니다.

그러니 이 말은 오늘날 우리에게 뭐냐 하면 “저, 착해요. 저 잘났어요. 열심히 했어요.” 라는 말을 하지 말라 이 말이죠. 그거 해 봐야 양적이 돼요. “니 누구 믿지?” “지금 누구 믿지?” “누구 믿기는? 나는 나를 믿어요.” 이러면 그건 야고보에서 추방되는 겁니다. 요건 가짜. 이렇게 추방되는 겁니다.

사람이 평생을 살면서 외롭고, 의지하고, 기대고 싶고, 이 3가지가 인간의 늙어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그 바닥에 깔려있어요. 의지하고 싶고, 의지한다는 말이 기대고 싶은 것. 어린 애들이 특히 이런 게 많지요. 그래서 남자나 여자나 나이 되게 되면 뭘 못 견디느냐 하면 외로운 걸 못 견뎌요. 외로운 걸. 개나 키우던지 다른 걸 키우던지. 자식이 없으면 고양이 세 마리 키우던지. 제주도에 민박집 하던지 이런 거.

그 다음에 남자고 여자고 간에 자꾸 누굴 의지하려해요. 부모는 자식 의지하고 자식은 부모 의지하면서 이용할 것 이용해 먹고. 자꾸 의지해요. 남편은 아내 의지하고 아내는 남편 의지하고. 그리고 비슷한 말인데 기대는 것. 힘들 때 무조건 자기 힘든 것을 의지하고 기대가 좀 차이가 나는데.

기댄다는 것은 뭐냐 하면 3가지 다 비슷한 이야기입니다마는, 내 옆에 있을 때 당신이 이렇게 든든하게 있어주면 좋겠다. 하는 그건 의지 쪽에 강하고 기댄다는 말은 뭐냐 하면 화나잖아요. 스트레스 푸는 용으로 내 말을 경청해 둬. 경청이라 하는 것은 대인관계의 기본은 경청입니다.

자기 말만 하면 대인관계 안돼요. 상대방에게 바톤을 넘겨줘야 돼요. 당신이 나 부를 때 뭔가 할 말이 있었잖아. 내가 들어줄게. 말할 필요 없어요. 들어줄게 하고 죽 이야기하거든요. 이것을 가지고 뭐라고 하느냐 하면 어려운 말인데, 전혀 엉뚱한 단어지만 이게 ‘질서’입니다.

질서는 뭐로 구성되느냐 하면 언어로 돼요. 언어. 문자와 음성을 언어라고 하거든요. 언어로 질서를 만들어요. 그러면 이 대자연은 말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대자연이 갑자기 해가 나한테 이야기하고 이런 게 있어요? 없어요? 코스모스가 나한테 이야기 안하지요. 프란체스카는 이야기했다고 하는데. 새들이 짹짹 거리면서 하다가 얼마나 외로웠으면 감정이입했겠어요.

자연은 질서가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연 질서가 있고 인위적 질서, 인공질서가 있는데, 인공질서는 반드시 뭐로 구성되어 있느냐 하면 언어와 언어로 되어있어요. 언어로. 말을 못하는 벙어리라도 수화를 해야 돼요. 부부의 위기는 말문을 닫을 때. 말문을 닫을 때 이건 이미 위기가 온 거예요. 둘이 차타고 가면서 아무 말도 안하는 거예요. “니 와 한 시간 동안 말을 안 하나?” “하기 싫어서. 왜?” “그래도 말 해야지.” “꼭 해야 되나?” 이건 끝나는 거예요. 끝난 거예요. 언어를 통해서 질서가 유지되는 겁니다.

자, 그런데 이게 반칙이라는 거예요. 하나님 보시기에. 왜냐하면 인간끼리 왜 말을 하느냐 이 말입니다. 인간끼리. 뭐 말하라고 혀를 만들어주셨고 구강구조를 만들어 놓고 왜 말을 하느냐? 하나님 뜻은 이거에요. 야고보서에 나오지만, 야고보서에 혀 중요한 거 나오지요. 혀 조심하라고. 내가 준 언어 사용하느냐, 아니면 너희끼리 쓰는 언어 사용하느냐, 이 말입니다.

그러면 인간들끼리 언어가 뭐냐 하면 야고보서4장에 보면 나오는데 세상과 짝하는 거예요. 세상과 짝하는 여자들에게 저주를 퍼붓거든요. 이 야고보서가. 이제 야고보서 주제가 어느 정도 윤곽 갑니까. 뭐냐 하면 십자가가 현실화 될 때에 분명히 내가 너희에게 하늘이 담긴 언어를 줬건마는 너희들 이 세상에서는 하늘이 준 언어는 이건 완전히 차단되어 있고 너희가 너희끼리 통하는 언어를 사용해서 어떤 질서체제를 갖추고 있으니, 질서체제는 어떻게 갖춘다고요?

외로워서, 기대고 싶어서, 의지하고 싶어서 말을 하는 겁니다. 외롭고 의지하고. 나이 한 80후반 되어가지고 있을 때 왜 혼자 못 사느냐 하면 노인정 가서 자꾸 말해야 돼요. 안 그러면 힘들어서 못 살아요. 자꾸 말을 해서. 지금 며느리 직장 생활하는데 자주 전화 걸고 “잘 있는가 전화해봤다.” 끊자 해놓고 잠깐만 해놓고 30분 이야기해버리고.

특히 며느리가 직장 고만두고 집에 있다. 이건 밥이지요. 계속 불러대는 거예요. 일이 있으면 그거 핑계대고 다 불러내요. 2층이 물세를 안 주는데 어떻게 하면 되느냐. 아휴, 내가 이야기했잖아요. 니가 와서 한 번 통장 봐라. 오라 이 말이에요. 통장 보는데 5초만 보면 됩니다. 와가지고 나랑 같이 놀자는 거예요.

십자가의 원수를 가지고 세상이라고 합니다. 야고보 4장4절에는.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그런데 이건 어디까지나 누구 입장이에요? 십자가 안에 있는 하나님 입장이고. 십자가 모르는 세상의 입장에서는 누구하고 살아야 돼요? 아니 세상 사람하고 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야고보서는 세상하고 이렇게 너무 친하게 지내면 1장에 나오는 흩어진 열 두 지파 의미가 사라진다는 겁니다. 열 두 지파 이스라엘을 어떻게 만들어놨는데, 그 열 두 지파 이스라엘이 이 세상 이방나라 속에 있었다는 그 취지가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유지를 시키려 하는 거예요. 유지를.

유지시키는 방법이 뭐냐 하면 “열두 지파들아! 너희는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그런 언어를 사용하라.” 이 말입니다. 야고보가.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 야고보서가 이게 미쳤나? 무슨 이야기인지 못 알아듣는 거예요. 마치 십자가의 그 질, 그 성질이 세상 사람한테는 십자가 의미를 모르는 것처럼 심지어 교회도 몰라요.

이쯤해서 다시 확인 들어갑니다.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산다고요? 나라는 것이 구축되어 있으면 어떻게 산다고요? 내 안에 뭘 따진다? 양을 따지지요. 무슨 양? 나는 착한 양이 많으냐, 나쁜 짓이 많으냐, 보고 착은 것이 많으면 흐뭇하고 안심인 거예요. 안전빵이라. 착한데다가 예수까지 믿으니 얼마나 착해요. 하지만 그게 뭐가 모자랐습니까? 이미 나라는 것을 존재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했지요. 나라는 것을.

나라는 것을 유지하게 되면 나는 양적으로 선과 악이 양분되어 있다니까요. 양분됐다는 말은 이쪽에 어떤 양이 있고 저쪽에 양이 있어가지고 차려놓은 양들을 비교하게 되어 있다 이 말이죠.

그러나 십자가에 있는 열 두 지파는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모든 율법을 지켰다. 대단하잖아요. 그러나 하나를 어겼다. 양으로 어느 쪽이 많아요? 의가 많고 죄가 적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전혀 십자가 안의 원리 원칙과 안 맞는 다른 성질에 속한 인간이 되는 겁니다.

질서에는 자연의 질서가 있고 인간의 질서가 있다고 했지요. 자, 그럼 인간의 질서에 있는 이쪽에서는 언어가 활발하게 오고갑니다. 언어가. 무슨 이야기인지 그렇게 이야기가 많아요. 남자들이 여자들 이야기하는 거 보면 남자들이 옆에서 보면 어떤 한심스러울 때가 있어요. 줄여서 3분만 하면 되는 이야기를 3시간 동안 이야기하고 있다고요. 결론은 아무것도 아닌데.

그런데 이쪽 자연의 언어는 어떻게 언어가 있습니까? 아니면 침묵입니까? 침묵이지요. 요게 중요한 거예요. 가끔은 우리가 침묵해야 된다는 사실이에요. 가끔은. 가끔은 노가리 푸는 것을 중지를 할 때가 있어요. 이건 어디서 이걸 인위적으로 억지로라도 이걸 훈련하느냐 하면, 천주교에서 많이 해요. 피정. 정을 피하는 겁니다. 세상사는 정을 피하는 겁니다. 이 세상사는 정을. 억지로라도 병이나 보고 주둥이라도 다물라고. 말 좀 하지 말라고.

왜냐하면 이게 참 인간이라는 게 이래요. 인간에게 언어를 한다는 것은 아까 친국하고 커피숍에서 한 두 시간동안 노가리를 풀었잖아요. 언어로 말했잖아요. 집에 와서도 한 시간 동안 전화로 한다고요. 집에 잘 들어 갔나 해가지고 한 시간동안 마저 한다고요. 만약에 전화도 안하고 카페에서 안 만났다면 인간은 가만히 있느냐, 인간은 누굴 상대로 계속 이야기를 해요.

그게 왜냐 하면 외롭고 의지하고 기대고 싶기 때문에 인간은. 외롭고 의지하고 기대요. “그럼 목사님, 인간은 왜 외롭고 기대고 싶고 의지하고 싶습니까?” 인간은 개별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래요. 개별자가 아니고 아담 안에 속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인간은 두 사람이 아니고 세 사람이 아니에요. 하나에요. 그래서 어떤 종족에 보면 부정관사가 없습니다. 부정관사가 없다는 말은 어떠한 물건이라든지, 물건, 숟가락이든지, ‘어떠한’ 이게 없어요. 어떤 종족에는 이게 없는 거예요. 이게 뭐냐 하면 개별자를 인정하지 않아요. 개인 개인을 인정하지 않아요. 그럼 개인 개인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은 뭐냐 하면 하나를 통합체로 보는 거예요. 통합체. 하나의 통합체.

우리는 전화 걸고 맛있는 거 서로 나눠주고 떡 나눠줄 때 우리는 친구라고 보잖아요. 그런데 어떤 종족은 태어나면서 이미 자동적으로 한 가족이 되고 하나의 친구에요. 인구 숫자는 얼마 안 많겠지만. 남이라는 게 성립 안 된다니까요. 그냥 우리에요. 우리. 태어나면서부터 우리에요. 그러니 남의 집이 없어요. 저쪽 집에 불라면 내 집에 불난 거예요. 마치 50년 전에 촌에 골짜기에 살 때, 이쪽 마을 이쪽 마을 따로 있잖아요. 보통 성씨가 하나지요. 이 성씨에서는 고모, 삼촌 따로 없고 전부 다 한 식구잖아요. 한 식구. 그런 종족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제가 지금.

그래서 부정관사가 없다는 말은 특정한 따로 떨어진 게 없고 전부다 한 공동체가 된 거예요. 한 공동체. 그런데 요새 공동체라는 것은 “우리가 노력하세!” “우리가 개인이지만 모아서 한 공동체하세!” 라고 공동체를 추구하는 식으로 공동체지만 이런 가족은 추구해서 얻는 공동체가 아니고 태어나면서 이미 공동체에요. 태어나면서.

그럼 마음가짐이 어떻겠어요? 전혀 불안하지 않지요. 이런 나라가 전 세계에 아직도 이런 나라가 있어요. 그 나라 이름이 세계 현재 220나라 중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가 1등한 나라에요. 돈이 많냐, 지질이 가난한 나라입니다. 인구가 많냐, 그렇지가 않아요. 무기가 발달했어? 아니에요. 그 나라가 무슨 나라인가, 부탄이에요. 부탄.

당연히 종교는 하나에요. 불교. 티벳 불교. 부탄나라. 소득은 그냥 양치고, 염소치고, 히말라야 산기슭에 할 게 뭐가 있다고요. 그러면 곡식은? 곡식은 그냥 일년치 곡식도 안 나와요. 마을 단체로 곡식을 경작하는데 니땅 내 땅도 없어요. 그냥 막 하는데 해봐야 히말라야 산맥에 돈이 있어 비료를 사겠어요? 그저 일년치 고정도. 잉여 농산물이 안 나와요. 시장에 내다팔게 없고 먹는 거예요.

그런데 무지 무지 행복해요. 왜 행복하냐, 행복의 기준이 뭐냐 하면 내게 있을 때는 불행합니다. 뭐든지. 이건 수십억 천억 있어도 소용없어요. 내게 있으면 무조건 불행해요. 내게 있으면. 그렇지 않습니까? 내게 있으면 타인이 있지요. 내가 있기 때문에 뭐가 있어요? 타인이 생겨요. 자동적으로 생겨요. 그러면 거기서 긴장관계 있어요. 긴장관계. 내걸 뺏으려고 관여하는가, 내가 공격하지 않는가, 나는 수비자세가 되면서 바짝 온 몸이 긴장이 되겠지요.

방아쇠를 당겨야 될지, 얼싸 안아야 될지, 대상으로 구분해야 되니까. 아비멜렉처럼. 자기가 있는 동네에 낯선 인물이 왔으니까 이건 경계대상이 되는 겁니다. 밀쳐야 되고. 우물 파면 우물 덮어버리고. 우리는 고생해도 이렇게 안 되는데 니는 언제 100배나 양이 많고 소가 많고. 긴장상태에 돌아가는 거죠.

부탄 같은 데는 뭐냐 하면 니거 내거 없으니까 비교대상이 없으니까 행복한 거예요. 그 중에 누가 독특하게 잘 살게 되면 졸지에 가만히 있어도 가난한 자가 되는데 에부리바디 다 가난해요. 아니 가난이 없어요. 다 그렇고 그런 거예요. 어떤 할머니가 돌아가셨잖아요. 돌아가시면 그 돌아가신 날이 뭐냐, 또 다시 공동체가 하나 됨을 확인해야 되는 축제의 순간이에요. 축제의 순간.

오늘 또 여러분의 실력을 높입시다. 축제란 뭐냐, 존재의 변신이에요. 존재의 변신인데 존재의 변신은 뭐냐 하면, 창조성 발휘인데, 이걸 뭐라고 하는가 하면 재창조성. 축제라 하는 것은 현재 존재를 변신하는데 그게 재창조를 계속 거듭 거듭 창조하는 거예요.

그러면 어떤 마을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러면 그 날을 죽음이지요. 죽음을 뭐로 보느냐 하면 재창조의 원료로 사용하는 겁니다. 신이 또는 부처가 할머니를 제거한다는 것은 할머니 죽음을 뭐로 보느냐, 속죄 제물로 보는 거예요.그 나라나 그 공동체가 세상 돌아가는 것을 현재 자기 존재를 긍정하는데 얼마나 잘 활용합니까.

할머니가 죽는데 그냥 죽는 것이 아니고 우리 마을을 위해서 평소에 부처님께 또는 신에게 기도를 열심히 한 그분이 죽는다는 말은 의인으로서 희생한 걸로 봐요. 그러면 의인의 희생은 이게 다 살아남은 자에게 속죄의 효과를 제공한다는 겁니다. 속죄의 효과.

일종의 구약에 있는 맏물에 해당돼요. 맏물. 맏이. 장자. 장자가 죽음으로서 다른 사람이 사는 겁니다. 요점을 좀 더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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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