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가락-요한복음 14장 25절(처벌 없음)170905b-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요한복음

가락-요한복음 14장 25절(처벌 없음)170905b-이 근호 목사

시작하겠습니다.

첫 번째 첫 시간에 했던 건 됬습니다. 예수님이 왜 떠나야 되는가? 왜 떠나야 되는가? 단절해야 되니까. 단절해야 되요. 단절은 왜 단절해야 되느냐? 인간은 본인이 예수님에 대해서 그리마옵소서 베드로가 하고 싶어서 하는게 아니예요. 인간내부에 인간의 모든 성향과 속성을 악마가 쥐고 있으니까, 뱀의 후손하고 싸워야지 인간하고 싸우는게 아니거든요 여자의 후손이.

예수님이 인간을 앞장세운 그 배후의 악마와 싸우기 때문에 악마와의 결별을 선언하는 겁니다. 그냥 해버리면 헤어짐이 되는데 악마로 하여금 예수님 자신을 치게 만들어요. 그래서 예수님 제자 가운데 사탄을 집어 넣고 선택했고 사탄이 바로 가롯유다고, 가롯유다한테 시켰고 예수님이 ‘니 할 일 해야지’ 하니까 슬그머니 가가지고 자기 할 일 해가지고. 악마마저 예수님 자신의 십자가 완성에 피조물로서 충분하게 활용을 해 주시는 겁니다.

이제 베드로가 ‘내 목숨 바치겠습니다.’ 하니까 ‘너 지금 악마가 쥐고있어. 니 힘으로 안되. 내가 너를 위해서 기도하기 때문에 악마가 너마저 납치하지 못하고 결국은 구원되도록 내가 널 위해서 기도했기 때문에 그런거야. 악마한테는 너는 베드로야 너가 아무리 뛰어나도 악마를 못 이겨. 내가 기도하니까 내 기도 때문에 너는 악마에서 벗어나서 나에게 구원되는 거야.’ 이것은 누가복음에 잘 나와있어요. 모든 게.

어쨌든간에 주님께서 떠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 한 것 있죠. 왜 예수님이 가셨다가 십자가 지고 가셨다가 예수님 오시면 되잖아요. 오셔가지고 ‘얘들아 반갑지?’ ‘네! 기다렸어요.’ ‘그래 같이 일 시작하자.’ 이러면 되는데 왜 성령이, 성령을 보내셔야 되느냐 이말이죠.

왜 성령을 보내셔야 되느냐? 그 이유가 이렇습니다. 성령을 보내셔야 하는 이유가 개인구원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개인구원이라는 것이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개인구원이. 예전처럼 예수님이 와버리면 12명 제자들 가운데에 예수님이 계셔버리죠. 그러면 각자 각자가 예수님에 대해서 구원을 기대하게 되고 자기 구원을 노리게 될게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떠나게 되어 버리면 떠나게 되버리면 뭐가 없어지느냐 하면, 개인주체가 소멸되어버려요 개인주체가. 요한복음 6장에세 세례요한이 말하기를 성령이 그냥 온다고 했어요? 세례준다고 했습니까? 예수님께서 장차 사람들에게 성령세례를 주죠. 세례라는 용어를 썼잖아요. 그 용어가 뭐냐하면은 로마서 6장 한번 봅시다.

로마서 6장 누가 한번 읽어보세요. 제가 읽을께요.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죄에 대해서 죽었다고 죽음이라고 이야기 했지요. 죽게되면 개인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죽었다는 죽은 입장에서는 이 개인이라는 것이 성립이 안되요. 전부다 죽음 속에 소멸되어버렸으니까, 사라져 버렸으니까.

그러고 난 뒤에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받은 우리는, 여기 이제 세례가 나와요. 세례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더불어 세례받았기 때문에 그러므로 그의 죽으심에 합하여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그렇게 되어있죠?

세례라는 것이 세례요한이 세례를 줄 때 세례라는 형식으로 줘요. 세례라는 형식으로. 세례라는 것은 뭐냐? 연합된것입니다. 연합이 되어버리면, 연합이 되면 오야붕이가 따로 있고 밑에 너나 나나 오야붕이가 될수 없는 입장이예요. 세례가 되면.

하나가 다른 모든 사람들을 이미 운명을 장악하는 이미 벌써 소유해서 장악한 그런 관계예요 연합이. 일종의 권력관계인데. 제가 그 주일 낮에 그런 이야기 했습니다만 왜 성경에서는 예수님 오셔서 귀신들 쫓아 내면서 바리새인은, 바리새인은 마귀라고 하면서 왜 바리새인의 마귀는 왜 안 쫓아 냈죠? 그런 질문을 던졌잖아요. 질문 시간에.

그 답변은 어떻게 답변했냐하면은 권력관계라고 답변했단 말이죠. 뭐냐하면 자체를 쳐가게 되면 기어이 마귀의 오야붕이가 모습을 드러내겠어요? 안드러내겠어요? 드러내겠지요. 그러면 여자의 후손은 누구하고 싸운다? 마귀하고 싸우지요.

마귀하고 속한 그 잔챙이들 귀신들 쳐 나가면 아무리 악마가 숨어있을려고 해도 더 이상 숨어 있지 못하고 본색을 드러내지 않겠습니까? 본색을 드러내지요. 그 관계를 저는 권력관계라고 한겁니다. 주종관계. 인간의 주인은 악마다 이말이죠.

악마가 주인이고, 인간은 관계되어 있잖아요. 인간은 죽기를 무서워해서 종노릇하게 되있잖아요. 히브리서 2장 15절에 되어있어요. 그렇다면 이것도 마찬가지라 이 말이죠. 예수님이 그 구절을 그대로 사용한다면 예수님 한분이 은혜가 왕노릇하게되면 예수님께 속한 사람은 그 분 때문에 전부 다 같은 생명을 누릴수가 있어요. 혜택을 입을 수 가 있습니다.

원래 아담이 아담의 처지가 악마한테 매인 처지라면, 그 악마의 자리를 주님께서 두 번째 아담이 오셔가지고 죄의 왕노릇을 뭘로? 의의 왕노릇으로 바꿔버리면 그 의의 효과가 거기 함께 속해있던 그 사람들에게 그대로 다 주어지는 거예요. 그 권력관계를 여기서 뭐라고 하냐하면은 연합이라 하고 그것을 다른말로 하면은 세례라고 하는 거예요 세례.

세례라는 것은 뭐냐하면은 대표적인 분이 있고, 다른 사람은 그 대표적인 분의 운명, 그 운명이 밑에 있는 연결된 모든 사람의 운명으로 전달되는 관계. 같이 일치되는 관계가 세례관계예요.

그래서 세례는 개인관계가 아니고 연합관계예요. 단체관계 단체. 관광도 단체로 하잖아요. 패키지. 단체로 하죠. 고린도전서 10장 한번 봅시다. 우리 장로님은 이것 아는데 2개월 걸렸다고 하는데, 2개월 후에도 알았는지 안 알았는지 확인해봐야하는데, 6개월 걸렸어요? 개인구원 없다는 것.

여기에 그 고린도전서 10장에 보게되면 1절에, 10장 1절에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말을 이중부정을 쓰게 되면요 중요하다는 뜻이거든요.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절에 보면 누구한테 속했다? 모세한테 속했지요?

속했다는 말씀들으면 다른쪽은 그냥 일방적으로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입장이고, 그 앞장선 사람이 대표 이름이 되는 거예요. 모세한테 속했는데 그게 뭐라구요? 그게 바로 세례다. 세례라고 나와있지요? 모세한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뭐 받고? 세례받고.

홍해에서 세례받고 구름기둥과 불기둥 속에서 세례받고, 주님은 누구하고 이야기 하고? 백성하고 이야기 안하고 누구하고 이야기 하고? 모세를 대표자, 대표개인.

이것이 제가 지난 주일 썼던 용어인데요. 대표개인. 개인인데 어떤 개인이다? 대표적 자질을 가지고 있는 개인이예요. 이 개인이 이름이 있잖아요. 이 이름이 이 대표이름이 구원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대표가 있다는 말은 우리는 어디에 속했다? 종속된거예요 종속. 종속되있다는 것은 주님의 이름에 종속되기 때문에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일은 누구의 이름으로 일어난다? 주의 이름으로 일어나는 거예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막 산다는 성립이 안됩니다. 개인적으로 막 산다 성립이 안되고 주님의 기능으로 결국은 막 사는 식이 될 수밖에 없어요.

왜그러냐하면은 우리한테 우리 개인의 어떤 행위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해 줘버리면 우리는 성경말씀대로 살려고 애쓸거예요. 애쓰면 애쓸수록 뭐가 돋보입니까? 내 개인적인 존재와 이름이 거기에 결부되어서 돋보이게 될거예요.

교수님이 질문하면 그렇게 답하세요. 만약에 내가 무엇을 해야됩니까? 하게되면 만약 에베소서 5장같은 경우에 우리는 새 사람 되었으니까 어둠의 자녀가 아니고 빛의 자녀이니까 네가 용서받은 것 같이 남을 용서하라는 대목 나오잖아요. 에베소서 5장에 나오죠.

그러면 용서할 때 용서하는 그 주체가 누가 됩니까? 용서하는 주체가 내가 되어버리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냐 하면 만약에 용서를 한 3년 7개월동안 했습니다. 3년 7개월 했는데, 그 다음날 용서가 안되버렸어요. 그러면 앞에 3년 7개월 했던 용서의 주체도 나이고, 그 다음날 용서를 못한 주체는 누구입니까? 나지요.

그럼 3년 6개월 용서해도 그 다음날 용서 못해버리면 그 다음날 그 시점으로 봤을때는 온전히 그말씀을 지킨자가 되요? 못지킨자가 되요? 못지킨자가 되지요. 왜? 행위의 주체가 계속 나를 끌고 가기 때문에.

그러면 용서 못했을때에 주님께서 뭐라고 합니까? ‘야~ 너 막살았구나.’ 이렇게 되지요. 그렇게 될거 아닙니까? 하필 용서 못한 날 오셔가지고, 막 산다 했잖아요. 그럼 우린 뭐라고 해요? 여기서 나온게 뭐냐? 필히 선악체제가 나와, 선악의식이 나와요. 악마한테 물려받은 그 사고 방식이 나옵니다.

‘지금 한번 용서를 안했을 뿐이지, 3년 7개월 동안 나는 용서를 했습니다. 주님 우리 양으로 계산합시다. 양으로, 측정합시다. 선한행동을 많이 했는지, 악한 행동을 많이 했는지 우리 양적으로 비교해서 저울달아 봅시다.’ 이렇게 되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야고보서에 보면은 모든 율법을 지키더라도 하나를 어기면 어떻게 되요? 다 어긴게 된다는 말이 성립될려면 개인이 개인의 공간을 가지면 안되요. 그 개인이 어떤 특수한 공간에 소속이 될 때만 그 말이 의미가 되요. 의미가 되요.

예를 들어서 13층에 법칙이 뭐냐. 절대로 방구뀌지 말라는 것이 있다고 합시다. 참았어요. 무려 10시간 근무하면서 9시간 59분을 참았는데 퇴근이 그만 너무 좋아가지고 그만 긴장이 풀려가지고 방구뀌었어요. 그 다음부터 퇴사해야되요. 사표내야되요.

왜그러냐하면 너 개인적으로는 참은일이 되지만 이 공간 전체의 의미, 니가 소속된 공간 전체의 의미는 일체 용납이 안되요. 따라서 천국은 일체의 범죄나 일체의 죄를 지으면 그건 천국에 못들어 옵니다. 아무리 대다수 착하게 살아도 하나의 오점만 있어도 천국은 들어가지 못합니다.

이러한 법칙을 가지고 신명기 28장 요즘에 오후설교 때 하고 있죠. 신명기 28장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어요. 이 말씀을 지키는 자는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고 이렇게 되어 있지요.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가 되지 아니하죠.

그런데 곧 몇 구절 안가서 이렇게 되어 있어요. 니가 이 말씀을 안 지켜버리면 니가 꼬리가 될지언정 머리가 되지 아니해요. 그러면 지켰다가 안지켰다가 지켰다가 안지켰다가 이 사람 어지러워요. 머리됐다 꼬리됐다. 팽팽돌아~ 헬리콥터입니까? 맨날 뒤집어야되. 맨날 뒤집어야되요. 머리됐다 꼬리됐다 너 내려와, 꼬리해. 꼬리되면 너 올라와, 머리해. 이러면 안되잖아요.

이게 왜그러냐하면요 그 이유를 설명할께요. 말씀이라는하는 것은 이 인간을 전체를 하나의 세대로 보고 이렇게 묶어놨어요. 말씀을. 이 묶어 놓은 세대라고 묶어놓은 여기에 말씀을 줬기 때문에, 말씀 자체에 뭐가 없느냐 하면은 시간이 없어요. 시간이라는 순서절차가 없다 이 말이죠.

그런데 인간은 이 죄 속에서 시간성을 갖고 있어요. 과거, 현재, 미래가 있기 때문에 과거 착한일 했으니까 현재 좀 나쁜짓해도 더하기 빼기 하면은 남는 장사 아니냐?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냥 말씀은 과거에 아무리 착했더라도 지금 악하면 이쪽 바깥에 인간 이 세대 바깥에 다른 세대에서 오기 때문에 이 세대는 완벽한 세대거든요. 완벽함 앞에서 이것은 미흡하게 되어가지고 이것은 용서가 안되요.

문제는 인간에게 시간의식이 있어가지고, 어제 많이 했잖아요. 어제. 점심때 라면 먹었으니까 저녁때 밥 먹어도 괜찮다 이말이죠. 왜? 짬뽕밥 먹었잖아요. 시간이 흐르니까. 시간이 흐르니까 인간은 자기의 동질성을 과거까지 포함해서 자신의 동질성을 규정하는 거예요.

자기안에 기억이 있어가지고 나는 어제는 이랬고, 지금은 이러니까 다 합쳐서 이게 나라고 동질성을 시간요소 가지고 동질성을 인간이라는 자기 자신을 규정을 해버려요. ‘나 무시하지마 나 옛날에 잘 나갔어.’ 옛날에 잘 나갔겠지. 옛날에. 옛날에 잘나갔잖아요.

경찰이 뭐 과속위반해가지고 ‘예 실례합니다. 면허증 봅시다. 과속, 신호위반 하셨습니다.’ ‘나 청와대있어.’ 청와대 있는게 아니라 지금 거리에 나와있는데. ‘나 청와대 있어.’ ‘아니 아저씨 여기 청와대 아니고 거리라니까요. 거리예요.’

‘너 뭐하는 사람이야? 너 어느 소속이야?’ ‘지금 단속중인데요. 지금 당신같은 사람 단속하고 있잖아요. 단속. 신호위반한 사람.’ 현재를 봐야지 현재를. 영원한 현재예요 영원한 현재. 딱 현재를 본다고 현재를. 현재 니가 예수안에 있는지? 현재 니가 예수밖에 있는지? 그것만 봐요.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예요. 그리스도의 영이 있으면 무조건 거기는 처벌없음! 처벌이 없어요. 세상에 면죄부도 그런 면죄부가 없다니까요. 돈주고 안샀는데 어느날 받은 면죄부. 영원히 처벌이 없어요.

이것을 누가 시기하겠어요? 악마가 시기하니까 악마의 앞잡이들이 악마의 조직원들이 교회에서 이것을 시기해서 계속 그러는 거예요. 어떤 처벌이 없다해보세요. 헌금도 안할거고, 그럼 하늘나라 누가확장해? 이럴거 아니예요. 하늘나라 확장해서 뭐할건데? 하늘나라 확장한다는 것은 뭐라고 했습니까? 강의한거 기억나야되는데.. 하늘나라 확장하는게 뭐라고요? 융의 소망이죠 소망.

아까 인간은 열심히 일하고 뭘 꿈꾼다? 보상을, 소망을 꿈꾸지요. 그런 사람한테는 그런 설교가 쏙쏙 들어오죠. 오늘 은혜받았다고. 왜? 다시말해 내 희망을 더 키웠다는 겁니다. ‘그래 내가 좌절하면 안되지.’ 이땅에서 좌절하지 말고. 좌절안한사람 다 지옥가 있습니다. 이 땅에서 좌절안하고 산 사람 다 지옥가 있어요.

우리는 뭐냐하면 좌절하고 말고가 없다니까요. 진작에 떠나야 될 자리를 주께서 허락이 안떨어져 제대를 못하고 있을 뿐이예요. 남들은 군복입고 있는데 우리는 개구리복 입고, 예비군복입고 지금 군대생활하고 있는거예요.

사람이 달라요. 그리스도의 영이 있으면 누구하도고 비교하지 마세요. 비교대상이 안됩니다. 인간자체가 달라요. 앞으로 심리조사 그런거 하지 마세요. 심리조사 백날해도 ‘아 성령이 있네요.’ 성령이 있다는 것은 심리조사에 안나옵니다. ‘뭐 이런게 다있어!’ 이렇게 되지. 성령 안 나와요.

사람은 자꾸 우리 같은 사람이 잖아 라고 굉장히 주위에서 강박관념으로 강요하고 있어요. ‘니 예수 뭐 목수의 아들이야.’ 예수님에게도 얼마나 육으로 설명,해석했습니까.

그래서 제가 주일 낮에 설교하면서 제일 초반에 이런이야기 했죠. 인간은 세상을 용기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해석으로 산다 했어요 해석으로. 용기로 사는 것이 아니고 세상을 어떻게 해석하는냐 해석으로 산다고 했죠. 이해로. 세상보는 이해로 산다고 했잖아요.

다시 이야기 할께요. 성령이 오신 이유는 막 살기 위해서 왔는데, 내가 막 사는 것이 아니고 저쪽 저 하늘의 주님쪽에서 우리로 하여금 막 살게 만들어요. 왜? 막 살지 않는다는 말은 내가 나한테 나를 위해서 어떤 원칙을 정하고 나는 지켰다! 안지켰다. 오늘은 착했다! 안착했다.

기준을 누가 정합니까? 내가 내 개인구원에 염두해 두는 한, 나는 기준을 누가 만들어요? 내가 만들어요. 그런데 그 기준이 어디서 나오느냐? 어디서 나오겠습니까? 선악에서 나오는 거예요. 이정도 착했으니까 나쁜짓해도 괜찮겠지. 이런식으로 기준을 내가 정한다니까요.

기준을 내가 정해버리면 이 기준이 날마다 변하는 것도 문제지만, 문제는 자기가 정한 기준이 두가지 문제점이 있어요. 기준을 내가 정해버리면 첫째 부작용이 뭐냐하면, 휴유증이 뭐냐하면 자기 의가 여전하다는 거예요. 여전히 남아있어요.

그러면 나의 의가 남아 있다는 말은 나의 의가 살아있다 이야기 했거든요. 그럼 나는 내 의가 남아있는 한 나는 안 죽고 살아야 될 이유가 있어요. 나는 살고 싶어요. 왜? 난 잘났으니까.

만약에 내가 이렇게 잘났는데 졸음운전하는 사람이 와가지고 나를 죽여버리면 내가 생각해도 내가 얼마나 아까워요. ‘아 나는 복음도 전해야되고 많은 사람들 건질수 있는 그만한 의로움이 있는데, 그만한 자질을 내가 소유하고 있는데, 지금 이 나이에 내가 책도 몇 권 썼는데 죽어버리면... 아까워 죽겠네.’

이렇게 되어 버리면 세리가 뭐라고 했어요? 이미 우리는 내가 나의 대표자가 아니잖아요. 그냥 내가 살아버리면 내가 누구한테 투자하겠어요? 나에게 투자할거다. 뭘 키우기 위해서? 내가 살아야될 정당성, 내가 살아야 될 이유, 나는 아직 죽지 않아야 될 그만한 합리화, 이거 하는 데 매진할거 아니겠습니까? 이게 하나의 휴유증이예요.

지금 기준을 내가 세워버리면 내가 세워버리면,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하나님 보시기에 정당하기 위해서 내가 얼마나 조심히 살고 있으며 얼마나 자기 절제를 잘하며, 이렇게 내가 빛과 소금의 빛과 소금을 하니까 ‘주님 저 죽이면 안되요. 지금 아까워서 저 죽으면 안되요. 저 계속 살려줘야되요.’ 라는 생각을 갖겠느냐 이말이죠.

그럼 뭐가 날라가 버리느냐하면은 세례, 연합이 날라가 버려요. ‘아이고, 너 똑똑하네. 너 알아서 해라. 너 알아서 마귀한테 이기고 해라.’ 우리가 이런 사고 방식은 놀랍게도 12제자가 예수님 십자가 전에 12제자가 했던 모든 발언있죠? 그게 우리 모습을 그대로 다 보여줍니다.

자 예수님과 함께 있으니까 우리는 남하고 다를거고, 어떤 특별의식 있거든요. 아주 자긍심있고 그러니까 우리는 예수님 빽 믿고 열심히 귀신 쫓아 내고 뭐 해보자! 귀신도 쫓아 나가죠. 나가니까 70명의 제자들한테 자랑해서 ‘주님, 주님!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쫓아냈습니다. 이만하면 쓸만하죠.’

이렇게 나오니까 주님 하시는 말씀이 ‘귀신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좋아하지 말고 니 이름이 하늘나라 생명책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라.’ 이말이죠. 생명책이 여러 권 입니까? 한권입니까? 달랑 한권이예요. 한권에 이름이 끼어든거예요. 우리는 그 이름에 하나의 일부로써 소속된거예요.

개인적으로 내가 더 있어야 될 이유, 그것은 주님한테 맡길 문제이지 우리가 결정할 문제 아니예요. 오늘 가다가 내려가다가 엘리베이터에 다같이 몰살할수도 있고 내일 아침에 성경공부하다 다 죽었다. 이렇게 막 신문에 그 저 마씨 자살한것처럼 말이죠. 죽었다 나온것처럼 누구 죽었다. 여러분 이름 안나올거고 이근호 죽었다 나올거예요. 신문까지는 안나오지만.

결국 막 살더니 막 죽었구나. 맞아요. 막 험담이 귀에 들리는 것 같아 메아리들려온다니까.나 이름으로 질문하는 사람이 막 살면 안되잖아요. 하는말은 아직도 내가 어떻게 내 운명은 내 손에 달렸습니다를 전제로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연합도 없지요. 성령세례를 안 받았으니까 연합도 없지요, 세례도 없지요. 그러니까 뭐냐하면 기준을 누가 정해요? 그때그때 마다 기준을 정하는데, 자기 의.

두번째는 기준을 자기가 정하니까 기준을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만 세워요. 뭐든지. 기준은 자기 잘난체 하기 때문에. ‘나는 용서해도 나는 7번 용서하면 용서 많이 한거다.’ 하고 베드로가 자기 마음대로 기준을 세워요. 자기 마음대로.

자기 기준을 그냥 갖고 있으면 되는데 괜히 아는체 착한체 하고 ‘7번이나 용서하면 됩니까? 그것도 같은 사람이 같은 죄를 저한테 했을 때’ 주님께서 70 X 7 해가지고 490번 용서하라 했잖아요.

다음에 490번 기어이 하고 오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490 X 70 = 34,300번 엄청나게 많이해야해. 왜 용서를 왜 니가 하냐말이예요 용서를. 우리가 용서를 할 주체가 됩니까? 안됩니까? 우리는 주체가 없어요.

우리는 종속되었기 때문에 누구누구의 종이지 이세상 한걸음 한걸음~ 한걸음 한걸음 사는 것이지요. 내 뜻대로 사는게 아니예요. 우리 주님께서 걷게 하셔서 사는 거예요. 햇빛과 공기와 모든게.

지난 5월달 6월달 비 안와서 그 난리를 치고 뭐 청주댐 바짝 말랐고 드디어 저 소양감 댐도 이제는 완전 문닫을 판이라고 전력 끝나고 뭐 이래했잖아요. 지금 8월말에 소양감 댐 물이 넘쳐나서 했다구요. 왜? 농사잘되라고. 아니요 아니요. 왜 하나님이 우리하고 의논하겠어요. 예수그리스도의 뜻에 따라서 복음 전하라고 이 세상의 모든 햇빛과 공기와 뭐 수소폭탄 핵 실험, 전부 다 복음을 위해서 그렇게 복음을 위해서.

복음은 뭐냐? 복음은 싸움이예요. 무슨 싸움?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의 전쟁 터의 싸움을 보여주기 위해서 한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이 세상에 존재 할 의미가 비로소 주님의 종으로써 발생된거예요.

내가 내 규칙 만들지 않은 입장에서는 막 살으라 이 말입니다. 내가 내 규칙을 요런 나쁜 짓 했기 때문에 요런 벌을 받을거야라는 규칙을 만들 권한도 없고, 그런 자격도 없어요. 그러면 권한도 없고 자격도 없고 없다라면 뭐해야됩니까? 뭘 해야되겠어요? 기준없이 행동했을 때 나오는 결과가 뭐예요?

두가지만 이야기 할께요. 고맙습니다. 따라해보세요. 고맙습니다. 그 다음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거 신호위반 걸렸잖아요. 고맙습니다. 벌금 7만원 나왔잖아요. 감사합니다.

정말 주님께서 저를 막 살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떤 일을 해놓고 그것이 주의 일을 했는지 아니면, 나의 욕구, 욕망인지 아는 것은 마지막에 해 놓고 눈물나도록 고마워야 해요. ‘어흑 감사합니다 주님. 나 같으면 이런 짓 안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나 같으면 이런 짓 안하지요. 왜? 자기 의가 있고 체면이 있으니까 하지만 고맙습니다. 내가 할 수 없는 그 일을 하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육에서 영으로 넘어서야해요. 육에서 영으로 넘어서야해요. 그거 안 넘어서면 거짓말쟁이입니다. 거짓말이예요. 주께서 성령 세례 달라고 해서 주는 겁니까? 준 사람이 있어요. 있는데 준 사람의 특징이 뭐냐하면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남편 잔소리 해가지고 후라이팬 가지고 패가지고 여기 중상 얻어맞은 것처럼 머리 다 깨져도 때려놓고 ‘주여 때릴 수 있는 용기 주셔서 감사합니다. 때릴 수 있는 은혜 주셔서 고맙습니다.’ ‘에이 니 맘대로 살았잖아.’ 경찰이 ‘수고하십니다.’ ‘잡혀가게 해주신 것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세상에 모든 권세는 경찰이든 모든 권세는 누가 쥐고 있습니까? 주님이 쥐고 있어요. 경찰을 그냥 준게 아니예요. 로마서에 나오죠. 권세잡은 칼을 그냥 준게 아니고, 상 준다고 그냥 준게 아니예요. 다 주님께서 사자로서 칠 것 치고 때릴 것 치되 니가 사는 것은 니 맘대로 사는 것이 아니고 주님의 마음대로 살게 한거예요. 그걸 가지고 통째로 은혜라 합니다 은혜. 그것을 은혜라 해요 은혜.

은혜는 어떤 원리냐? 요나의 기적이 뚜렷하게 보이는 방향으로 나오면 은혜예요. 요나의 기적이. 그런데 내가 사적으로 개인이 개인을 집중하게 만드는 개인의 가치와 의미를 집중하게 만드는 은혜라면 그것은 마귀가 준겁니다.

마귀는 무조건 십자가에 그것을 무효화 시키는데 마귀는 전력을 사력을 다해요 사력을. 이걸 영을 육으로 바꾸는 거예요. 해석을. 이 세상에는 마귀도 없다. 예수도 없다. 오직 인간의 지혜만 있고 인간의 용기만 있을 뿐이지 일체 그 딴 미신 같은 건 생각하지 마라. 이것이 과학적 진리야. 마귀는 지금도 그 이야기 하고 있어요. 지금도.

제가 주일날 설교할 때 네가지 이야기 했잖아요. 마귀가 작용하는 네가지. 예술과 종교와 과학과 정치계죠. 정치라 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얻은 에너지와 그 소득을 균등하게 이성있게 나누는 것을 정치 몫이 해야되고, 과학은 뭐 과학은 다 알죠? 이 세상에는 에너지의 법칙과 중력의 법칙, 운동의 법칙에 있어 모든 것이 다 짜여져있다 하는 그것.

인간의 세포부터 우주의 흐름까지 다 짜여진 방정식에 의해서 움직인다라는 그것 주장한 것. 인간의 모든 생각하는 것은 이 대뇌피질에 전해질 물질, 신경질이 물질이 된 것이지 이것은 뭐 하나님이 있는게 아니다 뭐 이런 것들 다.

예술은 뭡니까? 예술은 언어가 너무 이성적이니까 미치겠다 그래서 감정의 쏟아지는 창의력을 발휘하는 것이 예술이예요. 일체 해석도 하지 말고 그냥 느낀대로 보고 느낀대로 기뻐하는 것 그게 예술이예요.

과학이 점점 뭘로 바뀌느냐? 예술로 바뀌어요 예술로. 그리고 또 종교는 뭡니까? 종교는 뭐냐 이웃사랑하게 되면 이상적 나라된다. 너무 과학적으로 돈 하면 안되고 서로 사랑하게 되면 그게 이상적인 공동체가 된다. 이게 종교잖아요.

이 네가지가 뭐냐하면은 악마가 현 시대에 악마가 나온 하나의 다리? 악마의 사지. 인간이 태어나서 공부해서 하는 모든 직업 보세요. 직업의 일상보세요. 다 거기에 다 소속되어 있어요. 전부 다.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기 전에는 우리는 거기 푹 빠져있어야 되요. 그래야 주님이 말씀이 육신이 된거 같이 푹 빠져있어야 되요. 그래야 우리가 그 속에서 마음껏 막 사는 식으로 주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막장이 되죠. 전파하는 막장이 되는 거예요. 전파하는 마지막 첨단의 모니터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성도의 삶이라 하는 것은 제가 대구강의 때 했어요. 뭐 쓰는 것이냐하면 이 땅에 보고서 쓰는 겁니다. 보고서. 나는 어느 동네에서 태어나가지고 이렇게 살다가 이런 경험을 당했습니다. 보고서 쓰는 것. 세상은 과연 주님 가신데로 이 맨날 보고하는 거예요.

이 보고서 하기 때문에 주께서 만나는 사람 억지로 헤어질 필요 없고, 하여튼 하루하루 매일 주님앞에 보고서 쓰는데 그 보고서가 요한계시록에 나옵니다. 뭐라고 되어있냐하면 보고서가 고자질.

향로가 성도의 권한에 향로에 그 보고서가 다 그 리포트가 다 담겨요. 그럼 그 향로를 받아가지고 붓죠. 그런데 성도가 그렇게 한게 아니고 성도안에 계시는 주님이 성도로 하여금 그러한 상황속에 하나의 사건으로 하도록 막 살도록 그렇게 유도한겁니다.

제가 그 저 오후에 그런이야기 했는데 보통 그 저 교회의 반석은 베드로라 했잖아요. 그래서 천주교에서는 베드로의 죽음이 있으니까 자기가 교회의 진짜 교회라고 주장하고, 개신교는 뭐라합니까? 베드로의 시체가 아니고 베드로의 신앙고백위에 교회세웠다 뭐 그리 했잖아요.

그래서 제가 뭐라고 했던가요? 교회는 베드로가 아니고, 베드로 안에 누가 있느냐하면 예수님이 계십니다. 성령이 계십니다. 그것이 교회의 반석이예요. 교회의 머리는 바로 베드로 속에 있는 주님이라니까요.

쉬워요? 안쉬워요? 너무 쉽지요? 그런데 이 쉬운걸 왜 이천년동안 아무도 이야기 안합니까? 베드로 신앙고백이 아니라구요. 안에 계신 예수님이라고. 왜 아무도 이야기 안해요? 그것은 교회가 될려면 눈에 보이는 사람들에게 호소를 해야 돈이 나오거든요.

보이지 않는 예수님 이야기 해버리면 ‘목사님 저의 가치는 어떻게 됩니까?’ 자기 가치, 자기 의미 달라고 개인 구원 의미 달라고 나서기 때문에 아니 목사가 모르면서도 이야기, 모르고 본인도 모르고 알아도 이야기를 할수가 없지요. 알면 이야기 하겠다. 목사가 모르네.

목사가 모르지요. 그걸. 교회의 반석이 바로 예수님이예요. 반석위에 지은 집은 무너지지 않아요. 교회라는 것이 돈으로 모았기 때문에 나중에 모든 물질은 양자입자로 다 분리 되듯이 흩어지잖아요. 분산되듯이.

교회라는 것도 벽돌 하나도 돈이예요. 돈 없는 교회 결국 분산됩니다. 교회 깨어지고 뒷처리는 돈으로 계산하면 되요. 당회장 목사 얼마 가져가고 우리 얼마 가져가고 끝! 끝나버려요. 처음부터 돈으로 뭉쳐진 단체이기 때문에 돈으로 깨어지게 되있어요.

오늘 뭐 뉴스 보니까 성락교회 전도사가 그 월급 받아 보니까 58만원 받았다는 거예요. 그런데 당회장 목사는 5400만원 받는다는 겁니다. 거의 100배라는 거예요. 월급이 5400만원이예요. 놀라지 마세요. 미국쪽에서는 1억 받습니다.

지금 그 전도사가 그게 할 소리 입니까? 나중에 자기가 5400만원 받으면 어쩌려고. 그 양극화 이야기가 아까 이야기한 네 가지. 마귀의 네가지 중에 하나 뭐냐하면 정치에 해당되는 거예요. 정치. 소득, 균등, 배분 이런 것 관리하는 게 정치예요.

그들은 그것을 진리라고 봐요 진리. 진리는 이것 뿐이라는 거예요. 마귀도 그랬지만 그렇게 이야기 한거예요. 뭐라고 했습니까? 이제 배운대로 합시다. 58만원 들어왔습니다. 들어왔을 때 뭐라고 하면 된다고 했죠?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사표내겠습니다. 이러면 되겠죠.

그럼 그거 주는데 왜 있어요? 본인이 사표를 낼 마음이 없는 거예요 본인이. 그 막 살면 된다니까요 막 살면. 반드시 막 사는 경우 막 사는 것이 자기 뜻이 아니고 자기의 욕구 욕망이 아니고 뒤에 주의 뜻이거든 뒤에 뭐가 나온다구요? 이건 조작하면 안되고 반드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참 잘 배웠습니다. 이런 경험 안 했으면 큰일날 뻔 했습니다. 라는 이야기가 감사의 마음. 범사에 감사한 마음이 나온단 말예요. 감사한 마음이.

그렇지 않으면요 자기가 기준을 만들기 때문에 일을 저질러 놓고 ‘큰일 났다 감당이 안된다. 어쩌지 내가 이런 짓을 하다니 아이고 이거 알면 들키면 나 안되 안되 끝났어 끝났어. 나 자살할거야.’ 뭐 이래.

자기 구원 안 받은거 표시 다 내고 있어요. 어떤 상황이든 그 상황은 주님이 주신 상황이고 그 상황속에서 니가 나한테 소속되어 있고 예속 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게 하는 겁니다.

누가 교회에 왔다가 갔다면서요. 갔다 왔죠? 주께서 오게 하시고 가게 하시는 거예요. 좀 있다 또 올 꺼예요. 또 오게 하시면 또 올꺼예요. 뭐든지 억지로 한다는 것은 자기 기준이 벌써 수립됬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에 억지로 하는게 문제가 아니라 자기 기준이 따로 만들어 졌다는게 문제예요.

그래서 인간은 주께서는 육을 남겨두니까 우리는 평생 계속 선악에 의해서 선과 악의 균형맞주면서 죽을 때 까지 기준을 계속 만들도록 유도하십니다. 마귀를 통해서.

만들어 놓고 후회하게 해 놓고, 성령이 있는 사람은 바보같이 또 사소한 일에 목숨걸었고, 심각하지도 않는 일에 내 생명걸었고 내 위신 걸었구나. 이게 나의 개인구원이 없는데 또 내가 이런 식으로 나는 구원 받았습니까? 안 받았습니까? 또 묻고 있어요. 하도 물어요. 한 천번은 물어야해.

얼마나 믿음이 없으면 묻고 또 묻고, 돌아서도 또 묻고. 주께서 그렇게 유도하셔요. 유도하셔서 정말 성령이 있다는 것을 자꾸 우리는 까먹어 버리고 주님이 성령이 있다는 것도 까먹지만 주님이 성령을 보냈다는 거예요.

성령을 누가 보내지요? 예수님이 보내지요. 그리고 예수님이 보내면서 뭐라고하냐하면 그가 오게되면 내 하는 일 16장 나오고 다 나오지만요. 요한복음 15장 봅시다. 15장에 26절에 보면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누굴 증언하지요? 예수님을 증거하죠. 예수님을 증거한다는 말은 성령이 성령을 증거한다는 말입니까? 아니죠.

자 성령이 오면서 성령이 본인을 증거하지 않는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이게 중요한데 그게 무슨 뜻일까요? 누구를 이렇게 내가 앉아 있는데 목사님 오게 되면 나는 목사님 상대하고, 장로님 오면 장로님 상대하고 이렇게 되지요. 이 말은 나는 계속 유지되고 있지요? 나는 계속 유지되고 있지요.

그런데 목사님 오셨는데 내가 죽여버렸어. 죽였는데 그 다음에 성령이 오시길래 다른분이 온줄 알고 보니까 죽은 목사님의 이름으로 왔다면 나는 결국 뭐가 들통납니까? 내 죄가 틀통나겠죠. 내 죄 때문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러면 우리는 내 죄 때문에 돌아가신분이 성령님이예요? 예수님이예요? 예수님이죠. 그래서 성령님은 성령님이 오신 이유는 성령받으라고 환대하고 환영한게 아니고 예수님 앞에서 너는 어떤 인간이였가는를 늘 되새기기위해서 성령을 주시는 겁니다.

예수님하고 우리 관계 끝나지 않았다는 거예요. 지속되는 것을 고맙게 여기라 이말입니다. 너는 이런 죄를 짓게 되어있고, 이미 이것은 처벌없음으로 하늘나라에서 이미 처벌없음으로 땅땅땅 이미 끝난상황이란 말입니다.

그런 십자가에 대해서 고맙고 감사하게 되죠. 만약에 우리가 예수님오셔가지고 성령을 성령이 오게되서 우리는 성령이 오게되서 내가 감사해 버리면 감사한 주체가 계속해서 내가 죄인이 아니고, 성령까지 환대할 정도로 나는 대견하고 착한 사람이 되어 버려요.

다음에는 또 누구를 보내시렵니까? 이만희 보내시렵니까? 이민희 보내면 또 환영하고...계속해서 자기가 착한 사람으로 남을 거잖아요. 그런데 누가 오면 착한사람 뚝 끝나는 겁니까? 예수님만 오게되면 우리는 뚝 끝나는 거예요. 착한사람이 아닌거예요.

그러면 우리의 주어진 형편이나 이 사정에 대해서 불평 할까요? 안할까요? 이것도 저한테는 고맙고 감사합니다. 이런 인생을 이렇게 빌빌 꼬이게 하신 주님께 감사합니다. 이렇게 더럽게 꼬이게 해가지고 하는 일 쫄딱 망하게 하신 주님께 감사합나이다. 온동네 웃음거리되서 감사합나이다. 할말이 없죠.

막 살라고 이야기 함으로서 과연 당신은 막 사는 주체, 아직도 당신이 주체입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신자 아니요 라고 이야기 하기 위해서 막 살아라고 말 할 수밖에 없어요.

이렇게 사시오 하면 나는 계속 개인구원과 내가 아직도 내 단독적으로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 이게 자꾸 이것이 유지가 되고 연속이 되니까 그 사람은 신자도 아니면서 일방적으로 외부에서 신자라고 자꾸 거짓말하는 셈이 되니까

막 사세요 라고 함으로서 막 살 때 내가 주체가 아니고 주님이 나로 하여금 이 땅에 주님 따라서 살게 하셨다는 주체자 이동이 있었는가를 확인 할 수 가 있어요.

내가 주일날 그런 얘기 했거든 나를 잃어버리고 나를 얻는게 아니라고. 그것은 불교입니다. 나를 잃어서 나를 얻는게 아니예요. 그것은 꼼수예요 꼼수. 나를 잃고 나를 계속 잃어주고 그 속에서 누가 산다? 그리스도를 얻는 것, 그리스도가 찾아오는 것이죠.

그리스도가 자기의 터전이 되고, 자기의 자리가 되는 거예요. 우리는 장소 빌려준겁니다. 장소 빌려줬는데 돈 한 푼 안받고. 예수의 피만 받고, 우리는 장소만 제공했을 뿐이예요.

그 다음에 요한복음 14장 계속해서 봅시다. 이제 다시오시는 그 이유를 알겠지요. 다시 오실 때 같이 오시지 않는 이유는 여전히 옛날처럼 예수님과 함께 있는 방식인데, 전에는 니가 잘난체 했고, 지금은 니가 예수님과 끊어진 죄인으로서 죄인이지만 성령께서 이미 용서한 입장에서 주께서 함께 계시는 거예요.

주께서 함께 계시는 방법은 이미 처벌없음의 공간을 마련하시는 겁니다. 왜냐 처소 담당이 누구 담당이냐하면 14장에 성령담당이거든요. 성령이 처소를 성령자체가 처소를 담당하기 때문에 성령님 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처소니까 포지션이니까 그 앞에서 나 개인이라 하는 것은 주님앞에 종속된것이고, 속해 있는 것이지 단독으로 단독으로의 의미나 가치라하는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베드로가 고넬료 만나기 전에 자기는 복음 안다고 여겼는데, 막상 주님께서 보자기 위에서 못 먹는 것을 내려왔지요. 그때 베드로가 ‘저 저거 안먹습니다. 주님 저 테스트해도 저 이겨냅니다.’ 하고 자기 기준이 있었죠. 율법에 위반된 것은 안먹는다. 왜? 레위기 11장에 보면 돼지고기 먹지 말고, 뭐먹지말고가 많이 나왔잖아요. 울산강의에서 했습니다.

목사님 녹취했었으니까 강의가 좀 길다 싶으면 녹취 읽어보시면 되요. 이거 보면 먹지마 나왔단말이예요. 그걸 뻔히 아는 입장에서 뻔히 안다 이말이예요. 주님이 우리가 현재 어떤 기준을 세웠는지 뻔히 알아요. 알고 그 기준에 위반되는 이야기를 해주면서 먹어라 못먹습니다. 먹어라. 못 먹습니다. 세 번이나, 먹어라. 못먹습니다. 하고 가버렸어요.

자 아까 이야기했습니다. 기적이 뭐라고요? 무엇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기적이라고요? 요나의 표적. 십자가가 드러나는 것이 주의 기적이고, 십자가 앞에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할 거밖에 없어요. 근데 그 십자가 아는데 십자가 십자가 이러면 십자가 아는겁니까?

그냥 막 사세요. 막 살면 자동적으로 우리에게 뭐가 나온다? 내가 잘난척하는, 내가 이 정도 된다는 것을 옹호해줄 어떤 기준같은 것이 등장하겠죠. 기준. 내가 정한 기준. 그런데 내 기준인데 주어진 그 상황은 그 기준을 위반해야되요. 난처한 상황이 찾아옵니다.

예를 들면 이런겁니다. 전도사가 돼서 ‘이번달 하고 그만둔다. 내가 도저히 못하겠다. 내가 지금 월급 80만원 받는데 진짜 150만원 안올라가면 사표내버릴거다. 더러워서, 그리안해도 내가 180만원 다른데서도 번다.’ 하고 맘 딱 먹고 있는데 목사님 딱 문 똑똑 두드리면서 ‘전도사님 이야기 좀 합시다.’ ‘그래 주의 뜻이구나 그래 나가자.’ 사표가지고. 전도사님 많이 힘들었지요? 150만원 드릴께요. 당회 눈치봤는데 사실은 내가 우겨서 150만원 내놓을 때.

저 목사를 미워해야 되는데 갑자기 이뻐보이는 거예요. 사표 낼려고 다 썼는데 낼 수가 없네. ‘목사님 잠깐만 기도하겠습니다.’ 기도하는데 먹어라 150만원 먹어라. 안됩니다. 난 나가야 됩니다. 먹으라니까. 안됩니다. 먹어라. 아... 먹자! 주는 것 먹자. 다음에 가야되겠다. 친구 오라 하는데 안가고 일단 챙기고 보자. 요런거

주님에 의해서 뭐가 깨졌습니까? 나 용감하게 사표냄으로써 사표 내는 순간 나는 뭐가되요? 나는 죄인되요? 의인되요? 아니 멋있는 사람된다니까.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이런 범죄를 안지다니 역시 나는 목사다워. 얼마나 멋있어. 자기가 너무 멋있는 거예요. 그 순간 개인구원 됩니다. 개인구원.

주여 저 죽이면 안됩니다. 지금 저 잡아가면 안됩니다. 나 이정도로 착하고 모든 유혹을 이긴 괜찮은 목사이니까 저를 통해서 하늘나라 확장시켜 주시고, 온갖 아까 상상은 뭘한다? 내가 가는 그 낙원을 결핍하는 것을 채워주는 거예요. 내 욕망을.

그런데 주님께서는 완전히 부끄럽게 만들어버려요. 부끄럽게 만들든 뭐 150만 챙겨주면 뭐 괜찮지. 그러고 난 뒤에 사흘후에 이야기 끝난게 아니예요. 사흘후에 ‘전도사 미안하게 됬네. 내가 150만원 밀었는데 장로가 그 제일 헌금하는 장로가 버텨가지고 150은 안되고 올해는 일단 20만원 추가해서 100만원. 봐주게.’

이러면 150만원 받을 때 어떤 생각 들었냐면 ‘그렇지 하나님 또 내가 어느정도 대단한 신앙인줄 주께서 알아서 복 주시는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두시간도 안가요. 아니 사흘도 안가요.

또 내 기준을 획가닥 바꾸게 해가지고 그때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고맙습니다. 다시한번 십자가 앞에서 내가 얼마나 나의 잘남을 항상 나 잘남을 내세우는거 외에는 할 줄 모르는 이 십자가를 이 십자가가 나의 구원의 창이라는 사실을 성령께서 일부러 보내셔서 십자가만 알도록 해주신 은혜를 우리는 감사 할 수 밖에 없죠.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 가시고 성령 보내시고 개인 공간을 가진 우리를 집단 공간, 그리스도 안에 있게 했다는 것을 날다마 확인시켜 주시니 감사합니다. 성령께서 오직 주님의 십자가만 증거하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195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16,292 묻고답하기 약한 사도 고린도후서 최고관리자 17-09-17
16,291 묻고답하기 # wmm선교단 선교사의 글 입니다. - 최고관리자 17-09-16
16,290 자유게시판 도덕적 영웅 (마 23장 37-39 절) 대전- 91강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17-09-15
16,289 자유게시판 안양20170908b약1장2절(실화)-이 근호 목사 - 최고관리자 17-09-15
16,288 자유게시판 서울의존강의20170908b 디도서3장5절(죽음저편에서)-이 근호 목사 디도서 최고관리자 17-09-14
16,287 자유게시판 105강-창 26장34절-27장4절(이삭의 축복권)170913-이 근호 목사 창세기 최고관리자 17-09-14
16,286 묻고답하기 바벨론 강가에서 - 이미아 성도님의 글 - 최고관리자 17-09-13
16,285 자유게시판 20170911b 부산강의 : [시편]3(2편)-경계선상의 존재 시편 최고관리자 17-09-13
16,284 자유게시판 20170911a 부산강의 : [시편]3(2편)-경계선상의 존재 시편 최고관리자 17-09-13
16,283 자유게시판 안양20170908a약1장2절(실화)-이 근호 목사 야고보서 최고관리자 17-09-12
16,282 강의 경계선 상의 존재 170911 시편 최고관리자 17-09-11
16,281 자유게시판 254강-고후 11장 16-21절(사도에 대한 오해)170910-이 근호 목사 고린도후서 최고관리자 17-09-11
16,280 자유게시판 강요당하는 선택 (삼상 8장 4-8 절) 대전- 29강 사무엘상 최고관리자 17-09-11
16,279 자유게시판 150강-신 28장 36-44절(인생의 실상)170910-이 근호 목사 신명기 최고관리자 17-09-10
16,278 묻고답하기 사도됨의 증거들 고린도후서 최고관리자 17-09-10
16,277 강의 죽음 저편에서 170908 - 최고관리자 17-09-09
16,276 강의 실화 170908 야고보서 최고관리자 17-09-09
16,275 묻고답하기 삼위일체에 대한 어떤 분의 질문 - 최고관리자 17-09-07
16,274 자유게시판 104강-창 26장 26—33절(이삭과 브엘세바)170906-이 근호 목사 창세기 최고관리자 17-09-07
16,273 자유게시판 201강-YouTube강의(복수와 공격)1700905-이 근호 목사 - 최고관리자 17-09-07
16,272 자유게시판 200강-YouTube강의(세례)1700905-이 근호 목사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7-09-07
열람 ➜ 자유게시판 가락-요한복음 14장 25절(처벌 없음)170905b-이 근호 목사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7-09-07
16,270 자유게시판 가락-요한복음 14장 25절(처벌 없음)170905a-이 근호 목사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7-09-07
16,269 강의 처벌 없음 170905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7-09-06
16,268 강의 유튜브(200강, 201강) 세례 , 복수와 공격 170905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7-09-06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