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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170901b 울산강의-레위기 11장 : 고유한 양식자유게시판레위기

20170901b 울산강의-레위기 11장 : 고유한 양식(강의:이근호 목사) 두 번째 시간 시작하겠습니다. 기본이 뭐냐 하면, 고기를 먹는 게 정상이 아니란 이야기에요. 원래 창조에서는 고기를 못 먹게 돼있단 말이죠. 그래서 제사에 들어가는 양이나 염소나 이건 고기를 먹는 게 아니에요. 풀 먹었는데 소가 살고 양이 사는 거예요. 산다는 것은 식물성과 관련될 때 그들은 살았단 말이죠. 그런데 창세기 9장에서는 동물성이 들어왔다는 것은 이 세상에 이미 붕괴될 요소가 삽입돼 들어온 거예요. 그러면 식물성이냐, 동물성이냐는 대립구조를 이스라엘 백성이 먹을 때마다 그 대립성을 통해서 무엇이 본유적이고 무엇이 근본적인가? 창세 때 인간이 타락하기 전에 무엇이 근본인가를 다른 민족에겐 이야기 안 해줘요. 이스라엘에겐 그걸 베이스로 깔아버렸다니까요. 그 뒤에 소가 풀을 그냥 먹으면 돼요. 범죄 한 이후엔 풀을 그냥 먹으면 안 되고 소 자체에서 장차 이 세상을 멸망하고 그 가운데서 영생이 만들어진다는 모든 정보를 소의 외형과 내면의 작업을 통해서, 살기 위해서 먹는 작업 속에 정보가 삽입돼있어야 돼요. 외형적인 것은 굽이 갈라진 거예요. 분리되는 겁니다. 나눠진 거예요. 그게 이스라엘의 운명이고 숙명입니다. 되새김한다는 것은 이 세상에 고유한 것을 다시 확인시키는 겁니다. 먹겠다고 꿀꺽 삼키는 것이 아니고 위에서 다시 가는 거예요. 다시 고유성을 보여주는 겁니다. 원래 소, 양, 염소, 사슴, 노루는 굽이 다 갈라지고 되새김 되는데 되새김은 되는데 굽이 안 갈라진 게 약대(낙타), 사반(오소리, 토끼 종류)은 못 먹어요. 이것은 굽은 갈라졌지만 못 먹는 게 돼지입니다. 한방에서는 돼지가 버릴 게 없다는데 지금 이걸 먹고 살자는 게 아니고 이 세상이 살만한 곳이 못 되고 분리되고 떠나야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먹는 음식물 속에 그 정보가 포함돼있어요. 이걸 먹고 살자가 아니라 주의 뜻을 알자가 되는 거예요. 이스라엘이 왜 우리 민족은 다른 민족과 달라야 되고 이 세상을 훌쩍 떠나야 되는지, 뭔가 이질적인 민족으로 애굽에서 분리되었느냐 말이죠.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애굽에서 같이 있으면서 히브리인들은 특별대우해서 잘 먹이고 잘 입히고 해서 잘 살게 만들 수 있어요. 기어이 떼어낸다고요. 그 떼어내는 원리가 어린양의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면 이 세상이 문제가 있다는 거예요. 문제가 있으니까 죽음의 없이는 삶이 없는 게 돼버려요. 이 세상이 정상이라면 사는 데로 살고 계속 살면 돼요. 그런데 이 세상이 정상이 아니기 때문에 “아이고, 그 사람이 죽었네.” 했는데 죽었다는 그쪽이 오히려 영생이고 살고자 한 쪽은 지옥 가고. 뭔가 굉장히 수상해. 울산바닥이나 대구바닥이 믿을 게 못 돼요. 오히려 울산 자체가 우리를 지옥으로 보내는 이미 지옥 구덩이가 돼있어요. 거기서 우리는 뭘 파악해야 되는가? 본류적인 것,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할 때의 고유성. 처음에 이런 식으로 울산을 만들진 않았을 거 아니냐. 그 순수한 고유성을 되새김으로 보여주는 겁니다. 되새김을 강조하고 처음부터 굽이 갈라졌지만 굽이 갈라짐을 강조해서 그걸 모델로 삼아서 그 뒤에 나오는 모든 하늘에 있는 것 중에 못 먹는 것, 물, 강에 있는 것 중에 못 먹는 것, 땅에 기는 것 중에 못 먹는 것들이 계속 나오는 겁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못 먹는 것에 강세, 강조점이 있어요. 살겠다고 이것저것 먹지 말란 말이죠. 못 먹는 것을 지정했다는 말은 너희들만큼은 이 세상에 못 먹을 고기가 그렇게 많은지 이스라엘은 관심 있게 봐야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먹을 것과 못 먹을 것을 주신 이유가 이미 율법을 통해서 따로 제시한 거예요. 그러니까 이건 양식을 먹는 게 아니고 결국은 제시한 말씀을 털어먹어야 돼요. 식후 30분후에. 약을 먹듯이 율법을. 식사시간이 아니고 율법 먹는 시간이에요. 율법을 따져서 먹는 시간이 되고 말았어요. 그러면 양식은 나를 살리는 게 아니라 율법대로 먹는 이스라엘은 세상을 향하여 율법적 기능을 해야 돼요. 어떤 기능? 소처럼. 염소처럼. 굽이 갈라지고 되새김하는 것, 다시 말해서 고유한 것, 타락하기 이전의 고유한 그것을 제시하는 유일한 민족으로 살아야 되지요. 그게 분리돼야 되기 때문에 거룩한 민족이라 하는 겁니다. 분리란 거룩이거든요. 거룩이란 혼자 잘났다는 게 아니고 어떤 기능이 발산돼야 돼요. 주께서 이 세상을 다루는 원리가 발산되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하나님과 함께 있는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음식 먹는 것이 식사시간이라고 달려들어서 먹자는 게 아니라 주님이 하시는 일을 지금 이스라엘을 통해서 발산하고 있는 거예요. 이런 문장으로 이야기할 수 있어요. 주님은 자연을 통해서 자신을 증거한다. 맞지요. 소, 염소, 돼지, 수중의 지느러미, 비늘 없는 것은 가증하니라. 이것 먹으면 가증하니라, 이스라엘 중에 끊어지리라. 먹지 마라에 강조점이 있다니까.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먹지 말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식사시간을 가진다는 말이 무슨 의미냐 하면, 자기 민족의 독특함은 다른 이방민족은 살기 위해서 양식을 먹지만 이스라엘이 이미 구원받았음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왔음은 굉장히 특이하다는 사실을 외부에 알리는 거예요. 어떤 점에서 특이하냐 하면, 단순히 사는 걸 목적으로 살지 않는 점에서 특이해요.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멸망시킬 정보를 미리 입수한 나라가 이스라엘 되는 겁니다. 멸망시킬 그 정당성, 당위성을. 그런데 이스라엘 내에 주님이 자연을 통해서 한다. 이것이 이스라엘 내부에 어떻게 전달되느냐 하면, 자연이 주님을 통해서 스스로 증거한다. 이런 식으로 도출돼버려요. 주님은 자연을 통해서 주님 자신을 증거한다는 게 정답인데 막상 이 말씀을 주게 되면 자연이 주님을 이용해서 주님을 빙자해서 스스로 존재할만하다고 증거하는 식으로 변질돼버려요. 그럼 이 자연 안에 인간이 들어있지요. 제가 왜 말씀을 드리느냐 하면 소는 먹어도 되고 민물고기, 비늘과 지느러미 있는 건 먹어도 됩니다. 금붕어라든지 또는 갈치도 있잖아요. 갈치가 스스로 나는 살만해서 산다는 생각을 갖겠지요. 왜? 하나님 보시기에 이스라엘 백성이 먹어도 되는 고상한 것으로 비추게 되게 되면 만약에 갈치에 두뇌가 있다면 그런 생각을 하겠지요. 그게 바로 이스라엘의 과오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말씀을 주니까 자기만큼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살만한 민족이 된다는 식으로 스스로 자기 합리화에 들어간 거예요. 그러면 그것을 사전에 차단하고 방비해야 되는데 이스라엘은 그러질 못했지요. 시키는 대로 했으니까 복 받겠지, 라고 안일하게 생각한 겁니다. 예수님 오시고 난 뒤에 성도가 되면 우리가 살만해서 사는 게 아니고 주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니까 살았지. 우리 쪽에서 살려달라고 요구할 권리나 자격이 없었다는 것이 신약성경에 보면 나와요. 백부장 같은 경우에. 가라하면 가겠나이다. 지옥 보내면 지옥 가고 천국 보내면 천국 가겠다는 말을 그렇게 한 거예요. 그러니까 백부장에서 백부장이 튀어나오는 게 아니고 주님이 일방적으로 백부장을 구원했다는 주님의 일방적인 은혜가 백 프로 나오는 거예요. 세리나 창기가 구원받는 것이 세리란 창기란 직업이 좋아서가 아닙니다. 세리와 창기는 감히 고개도 못 들었거든요. 이 세상에 나 같은 인간이 천당 가면 천지개벽입니다, 라고 생각했단 말이죠. 그 천지개벽을 주께서 일으킵니다. 단절돼있었는데 단절을 연결로 바꾸신 것은 주님이에요. 뭔가 노림수라든지 기대하지 않았는데 구원이 된 거예요. 입사 불합격이라고 해서 다른 데 알아보고 있는데 합격통지서, 내일까지 출근하라는 것과 똑같은 거예요. 떨어진 줄로 알았는데 돌아왔으니까 그 사람은 회사에 충성하겠지요. 탕자가 자기를 아들로 인정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버지가 먼저 아들로 인정하니까 그 아들이 그 집에 들어가서 자기 잘난 척하겠습니까?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 제대로 알겠지요. 아버지란 그냥 주시는 분이구나. 내가 아들 값을 해서 아들로 취급하는 게 아니란 것을 안단 말이지요. 양이 백 마리 있었는데 99마리 양을 두고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섰어요. 그런데 99마리 양에는 뭐가 없느냐 하면, 당연하게 목자인 줄 알고 있다니까. 잃어버린 적이 없기 때문에. 목자는 전혀 99마리로 기뻐하지 않아요. 기뻐하는 경우는 한 마리밖에 없어요. 잃어버렸는데 목자가 자진해서 되찾아왔다는 목자 고유의 그 기능이 계속 담겨있는 그 양이 99마리 양과 바꾸지도 않아. 그보다 더 소중하단 말이죠. 동전이 굴러서 잃어버렸어요. 아가씨가 밤새도록 찾다 결국 찾았어요. 10원짜리 동전 하나 찾고선 얼마나 기뻤는지 친구들 모아 잔치를 벌였는데 잔치비용이 264500원 나왔어요. 10원 찾고선 264500원 날렸다니까요. 그래도 아깝지 않아요. 왜? 잃었다가 얻었기 때문에. 잃었다가 얻은 게 없으면 성도 아니에요. 성도 아닌 거예요. 따라서 성경에서 주장하는 것은 먹으란 게 중요한 게 아니고 먹지 말라는 것에 주목해야 돼요. 먹지 말라는 짐승들이나 새나 물고기가 자기가 오징어 되고 싶어서 오징어 됩니까? 오징어는 대머리 같아서 비늘이 없어요. 지느러미도 없고. 그래서 이스라엘은 오징어, 문어 종류 먹으면 안 돼요. 물에 사는 것 중에서 비늘과 지느러미 없는 게 뭐냐? 뱀장어, 꼼장어, 장어, 미꾸라지, 갑각류(게, 새우), 따개비, 가재류, 연체동물, 조개 등은 먹으면 안 돼요. 이 소리 들으면 연체동물이 얼마나 속상하고 기분 나쁘겠습니까? 본인이 지옥 가려고 연체동물 된 게 아니잖아요. 주께서 그렇게 만들었잖아요. 만들어놓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먹지 말라하니까 자기는 먹히고 싶은데 못 먹게 하는 거예요. 물에 비늘과 지느러미가 왜 있어야 됩니까? 물이란 환경의 고유성을 외형적으로 표시한 거예요. 땅에 사는 자는 풀을 먹어야 된다. 풀을 먹기 때문에 갈아야 되거든요. 되새김하고 굽이 갈라져야 된다. 이 요소를 소화기관의 내면적인 것을 끄집어내어서 주님께서 이스라엘은 기존과 분리돼야 되고 세상 어느 민족도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창조의 고유성을 유일하게 담아낸 정보가 있는 민족인 것을 알리는 거예요. 문제는 이스라엘이 시키는 대로 하면서 죄를 짓고 있는 겁니다. 주님을 증거하기 위해서 하지 말라 했는데 그들은 자기가 함으로써 구원받아야 마땅하다는 자기 출발점으로 되돌아감이 문제란 말이죠. 이 말은 쉽게 말해서 이런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돼지고기를 안 먹으면 구원되고 먹으면 지옥 갑니까? 아니지요. 그러면 유대인이 돼지고기 먹으면 지옥 갑니까? 아니지요. 지옥, 천국 가는 것은 신약시대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가 없으면 저주고 함께 있으면 영생이죠. 그러면 기준은 돼지고기가 기준이 아니고 되새김도 기준이 아니고 주 예수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주님에 대해서 사랑하느냐 그것이죠. 맞지요. 그러면 주님께서 그동안 레위기 11장은 왜 거론했습니까? 자연물은 주님이 자기를 증거하기 위해서 레위기 11장을 주셨잖아요. 이 말은 주님이 주님 되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이용한 거예요. 이해되시죠. 그런데 이스라엘은 나라의 본 자손들은 쫓겨나서 지옥 간다 말이죠.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결론에 도달하느냐 하면, 이스라엘이 하나님 말씀을 지키면 복 받는 민족이 된다는 죄를 짓게 해서 그들을 멸망시킴으로 주의 주되심을 드러나게 하신 거예요. 주님께서 교회에 말씀을 주십니다. 그러면 지옥 가는 사람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 말씀을 지킴으로 영광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모조리 지옥 갑니다. 그런데 그게 주님이에요. 그런데 주신 말씀을 보고, “주여, 이 문제는 우리가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나는 태생이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어떤 말씀 하나라도 지킬 수 없습니다. 고개도 못 들고 죄인입니다. 하는 세리는 주님으로부터 합격통지서, 현장에서 수시모집에 합격한 거예요. 여러분, 살아있을 때 구원 못 받으면 죽어서도 구원 못 받아요. 살아있을 때 자신이 죄인 중에 괴수인 것을 인정 못하면 죽어서 지옥 갑니다. 말씀을 왜 봐야 되고 왜 들어야 됩니까? 말씀은 보면 볼수록 내가 지키고 싶은 생각이 들기 때문에 그래요. 이 말씀은 내가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이 본인의 저항을 뚫고 나와요. 속에 있는 비복음적인 나의 본성이 뚫고 나와요.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에. 그래서 기어이 우리는 우리를 죄인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제가 지난 수요일에도 이야기했습니다만 주님은 우리를 죄인이라고 분명히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꾸 그래도 일말의 양심 있는 의인이겠지, 라고 실제적인 모든 행동은 거기서 나와요. 그래도 내가 착하니까 이 정도 행동하지. 그 무슨 되도 않은 자신감인지. 자꾸 착하다는 거예요. 착하니까 교회 갔잖아. 주께서 가게 하신 게 아니고 착하니까 간다는 거예요. 왜 그러냐 하면, 남과 비교하니까 그래요. 애굽과 애굽을 비교하면 구원됩니까? 똑같은 사람인데. 전부 다 갇혀 있는 상황인데 누굴 컨닝해요. 똑같이 빵점인데. 전부 다 빵점짜리만 모였는데 컨닝해봐야 빵점이죠. 주님을 볼 생각 안 하고 같은 인간을 본다고요. 같은 빵점이면서도 빵점 아니라고 우기는 사람이 있어요. 목사들. 여러분 이렇게 사는 게 옳습니다. 왜 사람들이 교회에서 관심사가 개인구원에 있습니까? 아직도 자기한테 미련 있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아직도 자기한테 가능성을 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인간은 가능성 없어요. 가능성 없는 인간이 예수의 피의 능력 때문에 구원받은 거예요. 구원받았기 때문에 비로소 내가 가능성이 아예 없었다는 것을 계속해서 확인하면 되는 거예요. 만약에 여러분이 스데반 집사처럼 돌에 맞았다 칩시다. 돌에 맞을 때 한두 대는 견딥니다. 그러나 계속 날아오면 못 견뎌요. 그럼 원망을 누구한테 하겠어요? 주여, 제가 무슨 잘못했는데 이런 형벌을 주십니까? 주께서 뭐라고 하겠어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그 말씀이 로마서 3장 10절에 있다는 걸 아는데요. 그 말씀 믿는 내가 뭐가 잘못됐습니까? 그 말씀은 네가 믿어도 죄인인 것을 알도록 위해서 준 거예요. 믿음으로써 죄인 됐다는 티내라고 그 말씀 준 거란 말이죠. 여러분 말씀 지키세요. 그래서 죄인 됩시다. 말씀을 지킴으로 죄인 되는 거예요. 아직 몰랐습니까? 그렇게 언질을 줬건만. 그렇게 힌트를 줬건만. 여기에 물에 사는 짐승들 중에서 비늘과 지느러미가 없다는 조건을 건 것은 물이란 환경이 본유적이고 고유한 거예요. 고유함을 주께서는 계속 유지하려고 한 겁니다. 이스라엘아 너희들의 하나님의 고유한 민족이라면 이러한 고유성을 지키지 않는 것은 먹지 말라는 겁니다. 땅에 있는 소나 양은 풀을 먹는 거예요. 풀만 먹어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는 고유성을 이 짐승들이 보여주는 겁니다. 풀 먹으니까 되새김하거든요. 풀을 먹는 것이 고유함이에요. 그런데 하늘 나는 짐승은 대부분 안 돼요. 맹금류는 먹을 수 없다. 매, 솔개, 독수리 먹지 말라. 올빼미, 당아새(펠리컨), 까마귀 이들은 어둡고 한적한 곳에 살아요. 불결하고 더러운 것을 먹고 사는 새, 뱀, 벌레 먹고 사는 새는 다 안 되거든요. 이름도 생소한 것들이 많이 나오거든요. 어응이란 것은 바다독수리의 일종이고요, 부리 밑에 털이 많은 게 어응이에요. 다호마스는 나이트호크라 해서 시체, 돌까지 삼키고요. 그 다음에 나오는 게 노자, 가마우지라 하는데 새부리가 길며 발가락 사이가 물갈퀴가 있고 물고기를 잡아먹고 헤엄도 치며 다이빙도 잘하는 새. 당아는 펠리컨인데 황폐한 곳이나 광야에 사는 새. 올응은 독수리의 일종이고, 대승은 오딧새라 하고 댕기물떼새인데 벌레나 곤충을 찾아 늪지에 돌아다니면서 몸에 냄새가 심하게 나고 사람의 똥이나 더러운 곳에 둥지를 트는 게 대승이란 짐승이에요. 이게 기본적으로 새가 동물성을 먹고 살아요. 동물성이니까 잔인하게 되지요. 시체, 더러운 곳, 음침하고 음산한 분위기. 강조점이 무엇을 먹으라에 있지 않고 무엇을 먹지 말라는 데 있다 했지요. 이런 것들이 고유한 천지창조 처음에 깨끗한 고유성에서 멀어졌다는 겁니다. 창세기 3장 18절을 누가 읽어보세요.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아담이 범죄 하기 전까지는 엉겅퀴와 가시덩굴이 없었어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엉겅퀴와 가시덩굴이란 자연을 왜 줬습니까? 주님이 자연을 통해서 주님 되심을 드러내기 위해서죠. 그러면 엉겅퀴와 가시덩굴은 어떤 역할을 해야 돼요? 주님께서 화냈다, 저주한다, 원래 고유한 뜻이 아니라는 차원에서 가시와 엉겅퀴를 줘서 인간들로 하여금 수월하게 이 땅에서 이건 내 세상이라고 여기에 죽치고 있자고 못하게 만든 겁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하나님이 계신데 왜 이 세상에 사기꾼들이 많고 도둑놈, 강도가 많으냐고 하는데 네가 그래. 사람은 자기가 생존하게 되면 자기 하나 때문에 여러 사람이 피해본다는 생각을 안 하고 있어요. 집에 화장실이 하나밖에 없는데 아들 하나고 딸이 일곱이고 아빠는 택시운전하고 엄마는 집에서 막내 딸 키우고 있다면 아침에 얼마나 바쁘겠어요. 서로 불편을 느끼죠. 그런데 왜 불편을 느끼면 안 됩니까? 자기 혼자 편해야 되거든요. 왜 나 혼자는 편해야 되고 남들은 불편해도 괜찮은 겁니까? 그게 바로 태어나지 말았어야 될 인간이에요. 이 땅에서 죽어도 마땅할 인간인 거예요. 죽어도 마땅한 인간이 왜 태어났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서 죽어 마땅한 인간이 태어난 거예요. 우리도 죽어 마땅한 인간이에요. 주님의 뜻이기 때문에 지옥 가도 우리는 곱게 가야 돼요. 그런데 그렇게 고백했던 세리가 어디 갔습니까? 주님과 함께 천국 갔지요. 그런 생각을 이미 범죄 한 인간이 고유적으로 할 수 없는 거예요. 이것은 성령을 받지 아니하면 처음에 만든 고유성에서 벌써 멀어졌다는 자아의식이 없어요. 성령을 받아야 알아요. 성령은 십자가를 앞장세우기 때문에 십자가 앞에서 예수님마저 버림받는다면 우리는 말할 것도 없이 버림받아 저주받아 합당하다는 것이 십자가 볼 때마다 늘 그것이 생각나게 돼있어요. 교회 목사가 전해야 될 소식이 뭡니까? 딱 십자가밖에 없어요. 십자가만 자랑하도록 딴소리하면 안 돼요. 어떤 설교라도 마지막 십자가만 나와야 될 이유가 뭐냐? 그게 바로 성령 받은 사람만 나올 수 있는 기적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기적을 생각할 때 기도할 때 은근히 뭘 기다립니까? 행운을 기대하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어요. 그 행운이 기적적 행운을 기대하는데 주님께서 이미 통보했습니다. 이 세상에 필요한 기적은 하나밖에 없다. 요나의 기적, 요나의 행운밖에 없어요. 요나는 자기가 갇혀있다는 걸 알았어요. 이 인식만 주께서 주십니다. 성령을 통해서. 구하라 주실 것이요. 성령을 주시는데 주게 되면 우리는 여기에 갇혀있다. 갇혀있지만 갇혀있는 곳에 더러운 곳까지 독수리 맹금류 속에, 그리고 따개비 연합체에, 게, 새우, 미꾸라지, 뱀장어, 올빼미. 당아새, 까마귀, 다호마스, 어웅, 노자, 대승, 박쥐. 기본적으로 우리는 남들처럼 땅이 전부인 줄 알고 여기서 행복하면 단 줄 알았잖아요. 그래서 마지막에 땅에 기는 것은 전부 부정하다. 그러면 땅에 있는 것이 다 부정하다면 앞에 있는 것을 해석하는 것은 쉬워져요. 땅에서 들썩거리는 것은 먹어도 돼요. 들썩거리는 것이 뭐냐? 곤충 가운데서 날개+발4개 외에 두 개의 뛰는 다리를 따로 갖고 있는 것은 먹을 수 있다. 메뚜기, 베짱이, 귀뚜라미, 팟종이 종류는 먹을 수 있어요. 기본 베이스가 땅에 있는 것들은 모조리 다 못 먹는다. 족제비, 쥐. 도마뱀, 합개(도마뱀류), 육지 악어, 수궁(왕 도마뱀), 사막 도마뱀, 칠면석척(카멜레온), 땅에 기는 것은 일체 못 먹어요. 이게 해석의 기본입니다. 땅에 기는 것은 자기 힘으로 못 벗어납니다. 대자연? 땅 중심이죠. 그러나 이스라엘한테는 땅 중심에서 땅을 보는 게 아니고 하늘에서 땅을 볼 때 어떻게 보는지 유일하게 아는 민족이어야 한다, 너희 이스라엘아. 음식 먹으면서 전체적인 하나님의 안목을 그들의 음식 속에 섞여 놓는 거예요. 산다는 것은 음식을 먹고 사는 게 아닙니다. 말씀을 먹고 사는 거예요. 신명기 8장에 보면 내가 너희에게 만나를 준 것은. 그 만나가 어디서 왔습니까? 하늘에서 온 거예요. 하늘에서 온 게 그들을 살린다는 거예요. 이 말을 요한복음 6장에 비추어보면 하늘에서 오신 분이 땅에 있는 사람을 살립니다. 이 말은 땅에 있는 자는 결코 땅에 있는 사람을 살릴 수 없습니다. 똑같은 인간인데 뭘 살려요? 사도 바울이 십자가 졌다. 그럼 사도 바울이 살릴 수 있습니까? 백날 져도 살릴 수 없어요. 십자가 진 사람이 예수님뿐입니까? 옆에 강도도 졌고. <스팔타커스>란 영화에 보면 노예들이 반란 일으켜서 수천 명이 로마에서 십자가에 달려거든요. 그 사람들이 구세주입니까? 아니지요. 십자가에 죽었다고 구세주 아니에요. 하늘에 속한 사람, 똑같은 아담에 속한 사람 말고 두 번째 아담 그분이 십자가에 죽어야 돼요. 그 말은 땅에 있는 자는 하나님을 모른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면서도 그렇게 여호와 하나님, 예수 찾고 있거든요. 결국 그것은 뭘 의미하느냐 하면, 출발점을 은근히 노리는 게 있어요. 사적 구원, 개인구원으로 살아보자는 식으로 성경을 보기 때문에 결국은 복음을 전해도 그 사람들은 복음에 대해서 거부하는 겁니다. 요한복음 7장 27절에 보면, “그러나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아노라” 유대인들이 예예수를 안다는 거예요. 그의 아버지가 목수고 이름이 요셉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36절에 보면 이렇게 돼있어요.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자, 방금 읽었던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한꺼번에 해석 다 됩니다. 정답이 뭐냐? 하늘에서 오신 분이 자기 백성 데려가기. 이겁니다. 이 땅에서 자기 나름대로 노력하는 것은 말짱 무용지물이란 말입니다. 인간이 예수 믿는 것도 소용없는 짓이에요. 제 말 잘 들어야 돼요. 하늘에서 오신 분이 일방적으로 집어서 데려가는 식이라니까요. 주님을 내가 알아 모셔서 가는 게 아니고 주님께서 집어서 데려간다니까요. 수직적으로 오신 분이 수평적으로 같이 있으니까 인간들이 예수님을 무시한 거예요. 저 예수를 알아. 고향이 베들레헴이고 그 아버지가 목수란다. 우리가 알기론 그리스도는 알지 못한다고 했는데 우리가 아니까 분명히 저 사람은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요한복음 7장 38절에서 그렇게 이야기한 거예요. 그러니까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내가 가는 곳에 너희들 못 와, 라고 바리새인들에게 이야기한 겁니다. 결국 진짜 정말 예수를 믿으신다면 우리가 갈 수 없는 곳에 가요. 그 말은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다는 말은 내 힘으로 못 간다는 뜻이에요. 내 힘으로 못 간다는 말은, 주께서 우리를 멱살 쥐고 끌고 가신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냥 끌고 가는 게 아니고 죄인 되게 하셔서 끌고 가시는 거예요. 그냥 죄인이 아니고 주께서 말씀을 주셔서 나는 이 말씀을 지킬 수 있다고 까불게 만들고 자신이 죄인인 것을 놓치고 순간적으로 또 자기가 잘난 사람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그 죄를 유발하면서 데려가시는 거예요. 그 말은 막 살라는 거예요. 막 사는 논리 나오는 게 이렇게 길어요. 이상구 박사(안식교 교인)는 레위기 11장으로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 하나님께서 인간 좋으라고 주신 말씀이기 때문에 시키는 대로 안 하면 건강에 해롭다고 해서 돼지고기 파동이 일어났어요. 정육점 망했습니다. 수십 년 전 이야기인데.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모르면서 성경을 보고 있는 거예요. 하나님은 좋은 분이니까 이 땅에서 건강하라고 이 말씀 주셨다고 돼지고기는 해롭다고 먹지 말라 했다고 생각한 거예요. 족제비고 합개고 왕 도마뱀이고 사막 도마뱀이고 칠면석천, 카멜레온이에요. 그냥 땅에서 행복하면 소원성취 한 것으로 여기면서 교회 나오는 사람들이에요. 레위기 11장 봅시다. 주께서 이런 말씀을 주시면서, 아까 오징어 이야기마저 합시다. 오징어는 되게 억울해. 자기는 오징어 돼버려서 부정한 게 됐단 말이죠. 하지만 오징어가 섭섭해 할 필요 없어요. 왜냐하면 오징어 됨으로써 주님이 드러나면 되잖아요. 오징어 하지 말고 붕어 될래, 이러지 말고. 남의 인생을 모델로 삼지 마세요. 저 사람처럼 돼야 천당 간다는 게 없어요. 주어진 포지션, 그 위상은 주께서 가장 적합해서 심어놓은 거예요. 누구한테 적합하다? 우리한테 적합한 게 아니에요. 예수님 증거하기에 적합한 거예요. 가난한 자는 가난해야 되고 부자는 부자 해야 돼요. 부자를 너무 부러워하지 말고. 그렇다고 가난한 자를 부러워하지 마세요. 자기 팔자대로 가는 겁니다. 긍휼의 그릇은 긍휼의 그릇, 자비의 그릇은 자비의 그릇. 그런데 여기에 23절 봅시다. “오직 날개가 있고 기어 다니는 곤충은 다 너희에게 가증하니라” 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공중, 하늘이라는 것에 고유성에 부합되도록 만들었는데 날개가 있어서 날지 못하는 것은 어떻게 됩니까? 하늘이라는 고유성을 못 보여주지요. 그러니까 못 먹는 거예요. 이런 건 먹지 말아야 돼요. 못 날지만 팔짝 뛰는 것 있지요. 메뚜기 같은 것. 그것은 땅에서부터 도약을 의미하는데 그게 바로 지상에서 천국으로 자기 백성을 데려가는 것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그러니까 이걸 보면서 자연이란 것은 누구 좋으라고 있는 거냐 하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함이 아니에요. 이걸 제가 지금까지 수천 번 이야기해도 결국 사람들이 복음, 복음 하다가 이것 때문에 돌아가요. 사람들이 복음이 듣다가 돌아간 이유가 딱 두 가지에요. 막 살라는 말 이해 못하고, 개인구원 없다는 여기에 이해 못해서 돌아갑니다. 마지막 부딪힐 돌에 부딪혔어요. 여기에 부딪힌다는 말은, 결국 그 사람은 출발점을 자기 좋으라고 예수 믿은 거예요. 그건 가짜입니다. 다른 예수에요. 다른 복음, 다른 성령이에요. 모든 사람이 다 그렇지 않느냐? 맞아요. 모든 사람이 다 그런데 성령 받은 사람이 있다니까요. 성령 받은 사람을 왜 빼먹습니까? 스데반 집사가 돌을 맞았을 때 원망했습니까? 아니지요. 이미 자기는 죽은 자거든요. 성령에 충만해서 설교했어요. 성령에 충만하다는 말은, 이 설교해서 천당 가야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단 말이죠. 왜? 이미 나는 잃어버렸고 나를 주께서 사용하시는 것은 주님이 할 바지 내가 거기서 콩 내라, 팥 내라 할 입장이 못 되는 겁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하면, “목사님, 그럼 기도할 필요 없네요.” 기도를 하기 위해서 기도한 사람은 엉터리죠. 그런데 성령 받은 사람은 사도 바울 같은 사람은 기도할 때 성령에 의해서 기도했는데 기도하지 않으면 못 견디도록 만들었어요. 주께서. 기도 자체가 새로운 계시로 개시된다 이 말이죠. 그러면 사도는 그렇게 사용하고 나는 왜 그렇게 사용하지 않습니까? 그건 사용하시는 오야 마음대로지 본인이 왜 걱정합니까. 자기가 주인도 아니면서. 주님께서 어떤 일을 시킬 때 기도하라고 할 수 있어요. 기다려 봐요. 성질 급하게 하지 말고 기다려 봐. 기도 안 하면 못 견딜 순간이 올 거예요. 하여튼 기존교회는 기도했다고 얼마나 자랑질을 해대는지. 기도 대결을 벌여. 준결승전, 결승전, 패자부활전. 얼마나 왕왕 대는지 제가 수련회 그랬잖아요. 통성 기도할 때 얘가 운다고. 얘가 놀래서 울어버려요. 주여, 삼창하고 기도하려고 하는데 옆에서 먼저 치고 나가면 초반부터 기분 나빠. 이건 뭐 장난도 아니고. 교회 자체가 노는 게 장난이에요. 자기 동조, 기분에 도취되는 즐거움이 있잖아요. 내가 기도를 다 할 줄 알다니. 예측이 되고 기대를 하고 예상을 하는 그것을 달성했다고 하니까 마귀가 있는 곳이라고밖에 달리 설명이 안 돼요. 마귀가 있어서 그렇게 인도한다는 것이 가장 합당한 설명이에요. 아까 마귀는 할 수만 있다면 십자가를 못 듣도록 자신의 잘남에 집중하게 만들어요. 하면 된다. 안 되는 게 어디 있어. 정성을 드려서 하면 다 이뤄져. 간증이 수천 만 개나 돼. 너도 부러우면 그렇게 해봐. 되게 돼있어. 이게 바로 출발점을 계속 자기한테 두려고 하는 마귀의 전략이거든요. 제가 마지막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이겁니다. 24절에, “이런 유는 너희를 부정케 하나니 누구든지 이것들의 주검을 만지면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 이 모든 음식을 가려먹는 것과 죽은 시체와 관련돼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말은 뭐냐? 하나님께서 이 땅에 사람이 원치 않던 동물이 원치 않던 계속해서 시체를 유발시키죠. 태어나는 것도 주의 뜻이지만 죽이는 것도 주님이 죽게 하시는 거예요. 그 과정 속에서 이스라엘 너희도 죽지만 이왕 죽어가면서 하나님의 천지창조의 근거, 본래적인 것, 고유한 것, 그리고 주님이 함께 있음으로 고유하게 있는 자체가 땅에서부터 뛰는 거예요. 벌어지는 거예요. 분리되는 거예요. 갈라지는 거예요. 헤어지는 것이고 나눠지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떤 음식을 먹는다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우연한 일이지만 하나님께선 우연한 일로 보지 않고 필연적인 것으로 바꿉니다. 우연은 우발적이지만 필연적인 것이 덮치면 필연적 앞에서 동시성, 모든 것은 연관돼있고 관련돼있다는 것이 드러나죠. 이 세상 모든 것들은 바로 천지창조하신 주님이 앞으로 하실 멸망과 구원과 연관된 채 오늘도 저 푸른 초원에서는 소들이 양떼가 뛰놀고 있습니다. 풀을 먹으면서. 인간도 그렇게 풀을 먹을 때가 있었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주님 앞에 장애물인지 독소적인 요소인 것을 저희들이 이제는 깨닫게 하옵소서. 주의 일을 훼방한 당사자 속에 우리가 포함된 사실을 깨닫게 해주시고 그렇게 하는 것이 주의 뜻이라면 주께서 그렇게 하심으로써 주님이 우리 자신을 통해서 십자가만 드러나는 그러한 계기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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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196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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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