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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170901a 울산강의-레위기 11장 : 고유한 양식자유게시판레위기

20170901a 울산강의-레위기 11장 : 고유한 양식(강의:이근호 목사) 레위기 11장 하겠습니다. 레위기 11장 이전에는 제사에 관해서 줄곧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율법으로. 제사법에 대해서 알려줍니다. 제사법의 핵심은 죽음입니다. 그냥 죽음이 아니고 대신해서 대표한 죽음이거든요. 대표했던 제물이 죽는다는 말은 그 제물에 참여하는 인간은 산 자가 아니고 하나님 보시기에 매일 드리는 제사를 통해서 매일같이 확인이 돼요. 그렇다면 남은 문제는 뭐냐 하면, 왜 우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죽음에 넘겨야 되는 이유가 뭐냐 이 말이죠. 그냥 죽이면 되지 왜 또 오늘은 살게 하시느냐는 말이죠. 죽음에 넘겨놓고 그 다음에 살게 하시고. 순서가 살아있는 내가 어떻게 사느냐 문제가 아니고 사고를 바꿔야 돼요. 죽어 마땅한 데 왜 자꾸 살려내시지? 이런 발상으로 바꿔져야 됩니다. 내가 중심이고 제사가 있는 게 아니고 제사 드리는 장소가 유일하게 하나님과 만나는 출발점이어야 하는 겁니다. 사는 울산바닥이, 내가 있는 이곳이 출발해서 갔다가 오는 게 아니고 주님이 계신 곳이 출발점이 되어 주님은 자기 출발점으로 모든 것의 의미를 되돌아오게 하기 위해서 살려놓고 있는 겁니다. 어린 소녀가 서커스에서 공굴리기 하는 것 있지요. 공은 올려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아슬아슬하게 다시 올라가지요. 쟁반 돌리기도 마찬가지고. 왜 쟁반은 돌아가고 공은 왜 계속 움직이고 살아있어야 되는가? 서커스 하는 솜씨 보려고 하는 거잖아요. 왜 우리는 울산바닥에 올라갔다 하면서 계속 돌아가는 겁니까? 주님의 솜씨, 특히 주님의 제사의 효과, 제사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솜씨를 보여주기 위해서 우리를 굴리는 겁니다. 공 굴리듯이 계속 살려두는 거예요. 이러한 이야기는 제가 결론적으로 단적으로 이야기했지만 사실은 이스라엘 역사 내내 이 원칙이 가동되는 겁니다. 다시 말씀 드리겠습니다. 중심을 낭부터 출발하면 이것은 기독교란 종교가 돼버립니다. 내가 요령 부려서 천당까지 살려는 것은 살고자하는 욕구란 말이죠. 이것이 문제가 뭐냐 하면, 나는 무조건 천국 가야 돼, 라는 말도 안 되는 계시를 본인이 스스로 창작해서 만들어낸 겁니다. 천국은 무조건 내 세상이다. 여기서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하는 거예요. 좀 허전하면 천국은 나와 내 가족이 사는 세상, 그것도 허전하면 나와 내 가족과 동창생까지는 가는 나라, 이렇게 계속해서 확장하는 거죠. 이스라엘이 그것 때문에 멸망한 거죠. 이스라엘은 무조건 구원받는다는 것. 아브라함 자손이니까 구원받는다고요? 아니에요. 마태복음 8장에서 아브라함 본 자손들은 천국에서 쫓겨나서 이를 갊이 있고 거기에 예수 믿는 백부장 같은 이방인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잖아요. 잘났다는 바리새인들은 다 탈락이고 못난 강도는 오늘밤에 낙원에 가고. 바꿔치기한 것은 출발점 바꿔치기에요. 도대체 나는 살아야 되겠다고 하지 말고, 네가 누구냐 말이죠. 몰라. 네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왜 살아야 되는데. 나라는 것은 홀로 나가 되면 나가 아니에요. 마귀가 그렇게 몰아넣고 나란 주님과 관련된 나가 될 때 비로소 의미가 있는데 주님과 관련될 때는 나부터 출발하면 안 되고 예수님부터 출발해야 돼요. 하나님부터 출발하는 것 아닙니다. 예수님부터 출발해야 돼요. 왜냐하면 사람들은 하나님을 몰라요. 진짜 하나님은 예수님이 오셔야 아는 겁니다. 예수님 아버지가 바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 오기 전에는 아무도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바 없었어요. 아무도 몰랐어요. 그러니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잖아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이 오지 아니하면 절대로 하나님을 몰라요. 그리고 성령이 오게 되면 특징이 뭐냐? 예수님에 대해서만 이야기해요. 요한복음 15장 마지막에 나옵니다. 앞으로 보혜사가 올 텐데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겁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가 몰랐던 예수님에 대한 정보 하나 획득하는 게 아니에요. 그동안 나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한 죄가 되는구나. 이제는 이 자리 버리고 주님 자리에서 하는 거예요. 레위기 1장부터 10장까지는 제사,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11장부터는 어린양이 제물로 죽어야 되는 그 이유에 대해서 왜 우리 대신한다는 제물이 당당하게 주님 앞에 양을 제물로 바치면서 예쁜 짓하면서 귀여운 목소리로 예쁜 양이라고 드리면 되는데 왜 우리를 대신하는 양이 하나님 앞에서 죽어야 되느냐 말이죠. 그것은 죄가 전가 되어서 그래요. 그렇다면 그 양이 죽을만한 죄는 어디서 만들어지고 어디서 계속 생산되는지 우리가 알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죄로 말미암아 죽었다는 말을 하려면 그 죄가 뭔지 알아야 된단 말이죠. 그 죄를 우리가 발굴하면 된다고 하지만 그건 아니에요. 이미 우리 죄를 해결해놓고 해결한 그 능력으로 그 죄를 찾아내는 식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겁니다. 본인이 알아서 이건 죄고, 이건 죄 아니고 결정하는 게 아니에요. 저녁에 노을 질 때 그림자가 길어지지요. 우리가 그림자에게 오라고 한다고 옵니까? 아니지요. 우리가 말릴 새도 없이 해가 뉘엿뉘엿 지면 그림자는 어느새 길게 뻗잖아요. 이미 주님의 죽음이 확정되고, 죄 용서가 화정된 되고 난 뒤에 그 용서가 된 사람에게 죽어야 될 죄가 그림자처럼 이스라엘 전체를 덮치는 겁니다. 덮치는 방식이 레위기 11장 식으로 덮치는 거예요. 아까 강의 전에 레위기 11장 좀 보시라 했지요. 보니 여러분이 이해가 쉽지요. 왜냐하면 먹으란 것은 먹고, 먹지 말란 것은 안 먹으면 율법 지킨 것처럼 느껴지지 않습니까? 참 쉽지요. 문제는 유대인들도 쉽게 그렇게 지켰어요. 제가 강의 처음부터 다시 할 필요는 없겠지만 요약하면, 이미 죽음으로 출발점을 삼았다면 나머지는 어떤 것이 죄인지 알려주는 거예요. 죄를 알려주기 위해서 레위기 11장에 와서 먹을 것은 먹고, 먹지 말 것은 안 먹으면 그게 바로 죄가 되는 거예요. 참 쉽지요. 시키는 대로 함으로써 비로소 그동안 몰랐던 죄가 나오는 겁니다. 먹지 말라 해서 안 먹었고, 먹으라 해서 먹었는데 왜 죕니까, 라고 따지잖아요. 드디어 걸려나온다. 따진다. 그래, 바로 그걸 기다린 거예요. 왜 그러냐 하면 하나님께서 먹으란 것은 먹고 먹지 말란 것은 안 먹었을 때 이미 그런 사고방식은 출발점이 벌써 자기 쪽으로 이동했잖아요. “난 최선 다했습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말씀에 순종했어요. 나, 어때요?” 출발점이 갑자기 자기 쪽으로 와버렸어요. 주님으로 출발하라고 분명히 언급했는데 주님으로 한 출발점이 되려면 말씀을 못 지키는 자로써 말씀을 봐야 돼요. 그런데 말씀을 지킬 수 있는 사람으로 말씀을 보는 순간 이미 그 사람은 출발점 자체가 터무니없는 다른 곳을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겁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걸 의도했어요. 그런 것을 일부러 노리고 말씀을 주신 겁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물어봅시다. 당신은 왜 먹을 것은 먹고, 먹지 말라는 것은 안 먹었느냐? 그걸 해야 우리가 살지요. 말씀대로 해야 살고 만약에 말씀을 위반하면 하나님께 저주받아 죽는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살고 죽는 의미가 서로 달라져 버렸어요. 주님께서 제사 위치에서는 제사로 용서받은 자는 살고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 숨을 쉬어도 죽은 자다, 라고 의미가 따로 있는 반면에 이스라엘 백성 쪽은 이것 먹으면 복 받으니까 복 받은 나는 살고 안 그러면 죽는다. 자기중심에 죽고 살고의 개념을 따로 설정해놓은 겁니다. 의미가 서로 대치되고 따로 노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오죽했으면 이런 이야기를 했을까요? 자기를 미워하는 자는 살고 자기 목숨을 잃어버린 자는 얻으리라 했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은 이걸 어떻게 이해하느냐 하면, 내 목숨을 잃으면 내 목숨을 찾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 거예요. 여러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돈 놓고 돈 먹기란 말이죠. 푼 돈 넣고 몫 돈 챙겼다는 거잖아요. 내 돈 내놓고 부셔진 내 돈 얻겠다는 거죠. 주님은 그런 뜻이 아니고 네 목숨 내놓으면 네 안에 주님의 생명이 살리라. 내가 사는 게 아니고 나는 한 번 죽으면 영 죽은 거예요. 내가 다시 살 생각은 마세요. 꼼수 쓰지 마세요. 내 목숨 버리면 살 것이다. 그것은 누구 사고방식이냐? 그건 기껏 베드로가 했던 게임이에요. 주님 제 목숨 내놓으니까 내 목숨 살리겠지요? 그런 것 없어요. 네 목숨 내놓는 순간 내 목숨이란 자체가 날아가 버려요. 다시 미련 가지면 안 돼요. 죄 덩어리인데 뭘 아쉬워합니까? 우리 인생이 빈 접시라면, 빈 접시를 내놓으면 주님께서 맛있는 뷔페 음식 담아줄 줄 알고 있어요. 주님은 아예 깨버립니다. 그릇 자체가 상실되고 없어요. 주님과 장난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주님과 노닥거릴 생각하고 있어요. 주님과 밀당합니까? 주님을 몰라도 너무 몰라요. 주님은 십자가 졌어요. 그리고 우리 보고 자기 십자가 지고 따라 오너라 말이죠.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레위기 11장 말씀을 하나님께서 들이댐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얼마나 주님 생각보다도 내가 사는 것이 우선이라는 속마음이 이 말씀으로 인하여 완전히 노출되고 들통 나고 발각돼버려요. 말씀 때문에 발각된다면 말씀 주기 전에도 모든 정신, 사고방식이 나만 살면 된다는 사고방식으로 똘똘 뭉쳐있다는 것이 소급해서 파악이 되는 겁니다. 어떻게 하면 나는 주님 덕분에 사느냐고 하지 말라 했지요. 왜 주님은 계속 살려주십니까, 그 이야기하라 했지요. 그 이유가 뭐냐 하면, 내가 어떻게 요령껏 사는 것이 출발점이 되면 안 되고 주님이 십자가 지고 주님께서 희생제물 되신 그 내력, 그 이유를 알리기 위해서 계속 살려주는 거예요. 제가 어떤 예를 들었던가요? 15분밖에 안 지났는데. 서커스 소녀가 공굴리기, 쟁반 돌리는 예를 들었잖아요. 쟁반 예뻐서 돌린 줄 알아요? 공 떨어지면 공 사오면 되지. 솜씨를 보여주기 위해서. 너 같은 인간 진작 죽어야 되지만 주님이 십자가 죽었던 것, 주님의 희생에 담긴 의미가 뭔지 계속 드러내기 위해서 우리는 계속 소녀의 발 위에서 놀고 있는 공처럼 다뤄지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레위기 1장부터 10장까지는 제사이야기고 11장부터는 그 죄가 어디에 붙어 있어서 계속해서 죄가 나오는지 정찰, 수색, 탐색하는 거예요. 죄가 어디서 생산되지? 주님의 희생으로 출발하지 않고 어디서 자기 살고자 부터 출발하는지 정찰에 나서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생각해야 돼요. 왜 주님께서는 제사부터 드리고 용서한다고 선언하시고 구체적으로 생활 법을 주시느냐?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 율법도 따라 나왔어요. 이스라엘만 달랑 나온 게 아닙니다. 율법도 따라 나왔는데 율법의 핵심이 어린양의 피를 바르면 너희가 살리라. 그게 공식이거든요. 예수님도 그랬잖아요. 세례요한이 말하기를,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다. 자꾸 네 잘한 것 말고, 네 헌신한 것 말고, 네가 착실하게 산 것 말고 보란 말이죠. 뭘?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을 보란 말이죠. 출발점은 자신의 행함으로 삼지 말고. 그 다음부터 문제는 죄는 사람이 지었는데 왜 어린양이 피를 흘려야 되느냐 말이죠. 우린 생각엔 이런 아이디어도 나올 수 있단 말이죠. 집에서 양을 예쁘게 순수하게 잘 키웠어요. 그런데 죽음의 사자가 찾아왔어요. 그러면 죽음의 사자 앞에서 양을 잡아서 맛있는 양 수프를 드리면서 정성을 받으소서, 하는 식도 괜찮은 방식 아니겠습니까? 우리 입장에서는 납득이 되지요. 평소에 하나님께서 정성을 드린 사람은 천국 가고, 하나님을 개무시 한 사람은 지옥 가는 그런 판정이라면 훨씬 더 우리가 이해가 쉬운데 무조건 양을 잡아라. 무조건이에요. 대학교수니 그런 것 따지지 말고, 장로, 집사 따지지 말고 애든 어른이든 양을 잡아라. 피를 내라. 나는 평생 여자 하나 밝히지 않고, 돈도 사랑하지 않고 오직 주님만 사랑했습니다.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왜 자꾸 내 앞에서 쓸데없는 소리하냐 말이죠. 나는 세상 유혹에 빠지지 않고 신사임당 같은 자애로운 어머니, 착실하게 모범적인 순수한 어머니, 희생한 어머니, 아빠로서 가족에 헌신한 아빠, 행여나 죄에 굴레에 빠질까 노심초사하면서 기도하면서 주님이여, 우리 가정과 저를 마귀의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형상 본받기 위해서 열심히 저는 기도했습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양이나 잡아. 말이 통해야지. 객소리 필요 없어. 양 잡아 피 내면 끝이에요. 남들 해외여행, 크루스 여행하는데 나는 주일 지키려고, “주여, 마귀의 시험 이기게 하옵소서. 돈 팔백만원 포기하고 주일에 교회 참석했습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착하고 충성된 종아, 이럴 줄 알았지요. 그러나마나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맨날 아침마다 들여다보는 네 낯짝을 들여다보느냐 말이죠. 주님의 피 흘린 얼굴은 안 보고. 주님의 피가 우리 얼굴에 묻혀야 돼요. 우리는 피 묻은 얼굴로 나타나야 된다니까요. 여러분 아시겠지요. 신앙생활이 뭔지 아시겠습니까? 마귀의 시험은 딴 게 아니에요. 자기 괜찮은 순수한 얼굴 바라보게 만드는 게 마귀의 시험입니다. 마귀는 이미 결정 난 걸 알기 때문에. 십자가 피로 말미암아 옆에 강도도 그날 밤에 천국 가는 걸 알기 때문에. 기어이 그 입을 막으려고 해요. 마귀는 모든 수단을 통해서라도 선교, 헌금, 봉사, 절차 행위를 끄집어내서라도 십자가 피로 마감됐다는 사실을 애써 감추려고 합니다. 제가 대전에 화요일에 가는데 모퉁이에 이순신 국밥이란 식당이 있어요. 간판에 이 국밥의 맛을 저에게 알리지 말라고 돼있어요. 상당히 재미있게 돼있는데 장사가 되는지 안 되는지는 먹어봐야 알겠지만. 마귀가 우리를 출발점으로 삼아요. 우리 행위를. 개인구원이죠. 개인구원에 몰입하게 만들어요. 그래서 자기가 자기한테 미치게 만들어요. 부인하는 자기를 잊지 않기 위해서 계속 잘 가고 있는 자기 점검에 나서요. 완전히 늪에 빠져도 수심 156미터 늪에 빠졌어요. 못 기어 나옵니다. 어떠한 교훈과 어떠한 성경구절 들이대도 못 빠져나옵니다. 이미 습관화되고 그것이 자기에게 숙명처럼 되어 이것 안 하고 저것 안 하면 지옥 가는 줄 알고 있어요. 귀신에 옴팍 씌웠어요. 볼 것도 없으면서 맨날 자기 점검하고 있어요. 이스라엘이 나올 때 이미 어린양의 피로 나왔습니다. 문제는 왜 피냐 말이죠. 이 간격, 거리가 있겠지요. 이걸 누가 매우냐 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제시하면서 그 간격이 메워지는 겁니다. 퍼즐의 마지막은 신약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로 다 메워져요. 마태복음 5장에 이런 말씀 있거든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다 이뤄져야 한다. 그러면서 율법에 나오지 않는 율법을 예수님 본인 입으로 계속해서 추가시켜요. 그 말은 뭐냐 하면, 인간들이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얼추 지켰다고 보거든요. 구약 때 모세가 준 것은 자기 보기에도 이 정도면 지켰다고 본 겁니다. 자기는 볶음밥 하려고 김치, 햄 볶고 해서 아침준비 끝 했는데 주님이 오셔서 모든 율법을 이루기까지 율법은 일점일획이라고 다 이뤄야 한다면서 카레를 볶음밥에 부어버린 거예요. 바리새인들은 자기가 먹기만 하면 영생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후에 갑자기 볶음밥이 카레가 된 거예요. 카레 밥은 예상도 못한 겁니다. 예상도 못한 율법을 주면서 하는 말이, 네가 간음을 안 했어? 네가 마음속으로 음란하면 간음죄야. 살인 안 했다고? 형제한테 욕하면 살인죄야. 네가 호리라도 다 지키지 않으면 지옥에서 못 나온다. 맹세하지 마라. 네 오른손이 범죄하면 잘라버려요.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가라. 겉옷을 달라하면 속옷까지 줘라. 그 더러운 속옷을 누가 입겠습니까. 심지어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이만큼 지켰다고 한숨 쉬고 천당 가기만 기다리는데 주님이란 분이 오셔서 덮어버리니까 비판하지 말라니까 어떻게 비판 안 할 수 있어요? 못 지키는 거예요. 그래놓고 네가 지켰느냐? 이렇게 나오는 거예요. 그렇게 훌륭한 신사임당한테 물어보세요. 남을 비판한 적이 없는지, 형제 욕한 적 없는지, 무엇을 입을까 먹을까 염려한 적 없는지. 그런 것은 이방인들이 구하는 건데. 신사임당은 눈만 뜨면 무엇을 입을까 먹을까 염려한 사람이에요. 지옥 가요. 그래서 지옥 갔어요. 잘 갔어요. 지옥 가보면 신사임당 만나면 악수하세요. 오만 원짜리 반갑습니다. 이미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부터 이스라엘을 유지하는 원칙과 애굽을 유지하는 원칙이 달라요. 애굽은 본인들이 살면 행복한 거예요. 본인들 생존이 목적입니다.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인기 얻고 세상 부귀영화 얻으면 더 바람은 죄가 됨이라. 그걸로 족한 사람들이에요. 그리고 거기에 누가 물들었느냐 하면, 무려 사백 년 동안 살았던 히브리인들도 물들었어요. 사람 산다는 것은 고생 없이 편하게 자기 신체 건강하고 먹을 것 챙기고 적당하게 놀러 다니고 인생 뭐 있어? 그게 인생이지 뭐 있어요. 죽을 때 되면 죽고. 그게 다인 줄 알았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애굽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게 인생인 줄 알았어요. 남들 다 그렇게 살아가니까. 울산바닥 사람들 다 그렇게 살아가니까 그게 인생인 줄 알았지요. 모세와 아론이 와서 하는 말이, 여호와 하나님이 보냈다는 거예요. 그리고 말하기를 여기서 나가자는 거예요. 그러면 이건 뭘 뜻하느냐? 분리됨이에요. 분리됨을 거룩이라 합니다. 애굽과 이스라엘을 분리시키는 근원적인 원리를 고수하겠다는 내용이 레위기 11장 음식에 대한 조항에 기본적으로 깔려있어요. 애굽 사람들은 음식을 먹는데 왜 먹습니까?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비타민, 무기물을 왜 먹습니까? 죽으려고 먹습니까? 살려고 먹지요. 그게 애굽이라니까요. 살 이유도 모르면서 무조건 살고 보자는 식이에요. 그런데 이스라엘은 살려고 양식을 먹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우리는 이미 죽었습니다. 이걸 확인하는 식으로 양식을 먹어야 돼요. 자기 목숨을 잃는 절차 중에 하나가 양식 먹는 것이 포함돼있어요. 하루 세 끼 먹는 것은 이래서 나는 서서히 죽어가는구나. 확인하는 차원에서 양식을 먹어야 된단 말이죠. 이걸 아시고 식사기도 제대로 해야 돼요. 이 귀한 양식 주셔서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하지 말고, 주여, 귀한 양식 주셔서 내가 죽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또 먹이시니까 주께서 무슨 이유 때문에 살려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주님으로 출발되는 식으로 해야 돼요. 그런데 식사기도가 너무 길어지니까 복잡하게 하지 말고 고맙습니다, 하고 그냥 먹으면 됩니다. 이유야 먹어보면 알아요. 먹고 배탈 나면 내가 배탈 나는 게 마땅하구나, 라고 아시게 됩니다. 애굽과 이스라엘을 철저히 달라야 됩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원래 없는 나라에요. 이게 특이한 나라입니다. 인간들이 예상 못한, 기대하지 못한 나라에요. 뭔가 하나님 자신의 속성을 담아내기 위해서 특수하게 만든 나라에요. 그래서 이스라엘 나라는 하나님 자기 속성만 가득하게 담긴 겁니다. 그 속성이 이 세상을 멸망시키겠다는 겁니다. 멸망이 없으면 주님이 그 안에서 주님으로 잉태하지 않아요. 주님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마술사가 검은 천을 부스럭거려야 그 안에서 비둘기 나오잖아요. 처음에는 비둘기가 안에 있는지 몰라요. 그런데 부스럭거리면서 콧기름 묻히면 여기 있습니다, 하고 비둘기 내놓잖아요. 마찬가지로 이 세상이 인간들만의 세상인 줄 알았는데 주께서 부스럭거리면서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이라는, 죽고 난 뒤에 부활의 능력이 이 세상의 죄 속에서 그게 나온 거예요. 쓰레기에서 장미꽃 피듯이 생명이 나온 거예요. 육신으로 오셔야 될 이유가 거기 있어요. 그럼 그 원리가 뭐냐? 창세기 1장 30절에 보면,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식물로 주노라” 여기에 모든 사람과 짐승에게 양식이 뭐냐? 모든 풀을 음식물로 주니 그대로 되니라. 음식물이 식물이에요. 식물인데 창세기 9장 2절에 보면 뭐라고 돼있냐 하면,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더니 이들은 너희 손에 붙이웠음이라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지라 채소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전에는 채소만 줬는데 지금은 동물성 양식을 제공한다고 돼있어요. 그럼 이건 주님께서 인간을 살리고자 주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식으로 이 땅을 방문하는가? 그 당시 노아를 살려내면서 그 정보를 예수님에 관한 정보를 심어놓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의 의미를 담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노아 홍수 이후에 노아와 남은 자를 이 땅에 새롭게 번성시킨 겁니다. 이 말은 노아 홍수 이후에 새롭게 된 세상에서는 바로 이 세상을 와르르 멸망시킬 요소. 멸망의 요건, 번창하고 복 받을 요소를 저해하고 방해하는 장애요소가 하나님의 말씀에 담겨서 이 땅에 잠복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 이 세상은 시한폭탄입니다. 성도 자체가 시한폭탄이에요. 그 시한폭탄을 두 자로 ‘언약’이라 합니다. 주님이 안고 있던 시한폭탄이 터지니까 그게 십자가 사건이 되는 거예요. 유대인들은 시한폭탄이 없어요. 그냥 모세의 말씀을 순종하고 시키려고 애쓴 거예요. 시한폭탄이 있는 게 아니고 내가 지키면 살겠지, 라고 산 거예요. 지금 주님께선 살리기 위한 목적이 아니고 파괴를 하되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 된 것만은 예수의 나라, 천국에 간다는 것을 파괴하는 작업과 동반해서 이 땅에 실시하는 거예요. 그 작업 중에 하나가 동물성 음식물이 제공되는 겁니다. 이러면 구라치는 것 아니냐고 하는데 구라가 아닙니다. 레위기 11장에 주신 지시를 창세기 1장과 9장에서는 모든 인간에게 이야기했잖아요. 하지만 왜 사람들이 음식, 스테이크를 먹게 됐는지 이방인들은 몰라요. 아브라함 자손, 이스라엘은 알아요. 왜 이스라엘이냐? 이스라엘은 없는 데서 생긴 특수한 나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공굴리기, 또는 쟁반 돌리기에요. 특수하게 만들었어요. 이 특수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특별한 존재와 연관돼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들이거든요. 이스라엘은 집단적인 하나님 아들이에요. 이스라엘 내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이스라엘을 살리고자 함이 아니고 이 세상은 저주받아 마땅한데 어떻게 거기서 영생 얻을 자가 생겨나느냐? 그것을 알려주는 거예요. 그것 때문에 레위기 1장에서 10장까지는 제사를 드린 겁니다. 어떻게 양이 죽었는데 그게 용서가 되느냐 말이죠. 정말 제가 중요한 이야기했어요. 양을 대신 잡았는데 어떻게 우리 죄가 대신 없어집니까? 여러분 그 이유를 따져본 적 없지요. 왜냐하면 믿습니다. 앞뒤도 안 가리고 저건 좋은 거야. 우리 식구 다 믿습니다. 내력도 모르고 내용도 모르고 무조건 믿으면 되는 줄 알고 있어요. 그 믿음은 또 하나의 의로운 행위를 추가한 것밖에 안 돼요. 자기가 믿는 행위를 믿는 거니까 가짜고요. 좋은 것은 나를 살린다. 자꾸 내가 어떻게 하면 사는지 애굽적인 사고방식이 기본으로 돼있는 이상은 성경은 천 독, 만 독해도 소용없어요. 사고방식이 애굽적인 사고방식에서 분리되어 나온 이스라엘 사고방식으로 바뀌어야 됩니다. 왜 모든 인간에게 하지 않고 하필이면 이스라엘에게 했는지 거기에 대한 답변을 우리가 이해하고 있어야 돼요. 11장에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고하여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육지 모든 짐승 중 너희의 먹을 만한 생물은 이러하니 짐승 중 무릇 굽이 갈라져 쪽발이 되고 새김질하는 것은 너희가 먹되 새김질하는 것이나 굽이 갈라진 짐승 중에도 너희가 먹지 못할 것은 이러하니”라고 돼있어요. 여기 짐승으로 된 이유가 뭐냐 하면, 이게 짐승이지만 사실은 땅에 사는 짐승을 이야기해요. 이 짐승이 어떤 짐승이냐 하면, 창세기 1장에 보면 초식동물, 풀을 먹으면서 생명을 유지하는 짐승을 의미하는 겁니다. 고기 안 먹고 풀만 먹는데 어떻게 살 수 있느냐? 그러니까 식물성 양식과 생명이 서로 연관이 된다는 것은 이미 창세기 1장의 그때 이야기잖아요. 레위기 11장에서 주님께서 그걸 베이스로 깔아버린 겁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할 때 네가 이만큼 애를 썼지만 이건 좀 모자라네. 모자란 부분만 용서해줄게. 이렇게 우리를 용서한 게 아니에요. 나름대로 지킨 게 있고 못 지킨 것만 죄라고 해서 그런 식으로 용서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잘했다고 우기는 그것까지 근원적으로 뒤집어버려요. 우리가 잘했다고 자부하는 이유가 뭡니까? 그건 죄가 아니라고 여기죠. 사람이 죄가 아니라고 여길 때는 그게 근본까지 안 내려와서 때문에 그래요. 다윗이 밧세바와 간음하고 난 뒤에 나단 선지자가 왔을 때 뭘 알았습니까? 나는 죄 졌다고 했습니까? 나는 죄인이라고 했습니까? 어느 쪽이에요? 나는 잘할 수 있는데 죄 지었다고 하지 않고 자기 근원을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어요. 자신은 근원적으로 죄인이라는 거예요. 근원적으로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 없는 거예요. 왜 그러냐 하면, 내가 죄를 짓는다는 말은, 죄 안 지은 순간도 있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면서 이건 죄 아닌데, 이건 죄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인간이 죄 지었다는 말은 평소에는 오줌 누는 것은 죄 아닌 것으로 여기는 겁니다. 죄인이 바지 내려놓고. 그러나 죄인이 돼버리면 죄 아닌 게 없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 없어요. 왜? 내가 죄를 짓는 게 아니고 죄가 나를 통해서 나타나기 때문에 내 쪽에서 시작하는 죄는 없는 게 돼요. 참 정말 복음이에요. 내 쪽에서 죄 지은 게 없다는 말은, 내 쪽에서 그 죄에 대해서 책임질 것도 없다는 뜻이에요. 내가 이번에 죄를 지었으니까 헌금을 듬뿍해서 선과 악 균형을 맞춰야지. 이럴 필요 없다니까요. 이번에 나쁜 짓했으니까 맨날 11시 5분에 왔는데 열시 반에 가서 청소해야지. 그럴 필요 없어요. 평소대로 11시 5분에 오세요. 뭐 잘났다고. 사람을 정신병자로 만드는 것은 죄책입니다. 사람을 자살하게 만드는 것도 죄책감이에요. 나 같은 인간은 살 필요도 없어, 라고 하면서 웃으면서 사세요. 왜? 덤이니까. 살 필요도 없는 사니까 얼마나 감사해요. 사업한다고 일 벌였는데 한 벙 터뜨려서 준 재벌 되려고 했다가 왕창 망했다. 빚이 60억 된다. 지리산으로 도망갔다. 아내완 벌써 이혼하고 자식은 다 따라가고 지 혼자 남아 노숙하다 도망갔다. 당당하게 도망가세요. 꿀리지 말고. 왜냐하면 내가 사는 것은 내 뜻이 아니고 주의 뜻이기 때문에. 당당하게 도망가다가 검문에 걸려서 무기징역에 살거든 당당하게 무기징역 사세요. 주여, 왜 잡히게 하십니까, 이러지 칭얼대지 말고. 잡히는 것도 주의 뜻이니까. 당당하게 잡히시고 우사당하시고 봉변당하시고 당당하게 거기서 사형 당하면 사형 당하고. 죽고 난 뒤에 재는 고향 땅에 뿌려 달라. 이런 식으로 당당하게 사형대로 가시기 바랍니다. 그게 죄인 된 도리에요. 마귀가 얼마나 그동안 힘들게 했습니까? 여러분 그동안 얼마나 마귀한테 주눅 들었습니까? 너 그렇게 살다간 우사당한데이. 인간 취급 못 받는다. 그걸 인질, 노예 정도가 아닙니다. 인질로 삼아요. 속아도 된 통으로 걸려 속았어요. 누구나 다. 우리 선에서 죄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고 이미 레위기 1장부터 11장까지 나오는 모든 이야기는 근원적으로 뒤집었다는 거예요. 근원적으로 네가 손댈 수 없는 네 죄책감까지 이미 내가 해결했다는 겁니다. 어떻게? 10분 쉬고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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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196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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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