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대구강의] 전도서속의 그리스도 14 - 하늘의 로봇팔
[17 대구강의] '전도서'속의 그리스도 14 - 하늘의 로봇팔
07,07,03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오늘은 교재 49페이지부터 시작을 하겠습니다.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전도서도 그렇지만 성경전체가 하나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 하나님이 애초부터 없다고 했을 때, 그러면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무슨 불편한 것이 있고, 또한 아쉬운 것이 있느냐는 말이죠.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있으면 좋아 !!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없이 잘 살아가고 있는데, "왜 하나님이 없는 거야?" 라고 하면서 애를 태우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있습니다" 라고 하면, 평소에 살아가는 것에다가 "아하, 하나님이 있구나" 라고 하는 정부를 하나 더 추가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죠. 그러니 삶이 달라진다든지 하는 것은 전혀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 그렇게 보태는 식으로 해서 하나님을 믿겠다고 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그런 자들은 나름 기대하는 것이 있다는 말이죠.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자기가 굳이 믿지 않아도 되는 하나님을 믿어주었으니까, 하나님 쪽에서 그렇게 해서 믿는 사람에는 뭔가 주는 것이 있어야, 그것이 공평하다고 생각을 한다는 겁니다.
이것을 여기 교재 49페이지에서는 '사랑' 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즉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지만, 그런데 자기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이죠. 그렇게 해서 자기에게 추가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여긴다는 것이죠.
** 이것이 대립이 되는 것이 마귀로부터 온 잘못된 하나님관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아들에게 '사랑' 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도 당연히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제가 강의를 시작하면서, "우리는 하나님이 없어도 살아가는데는 지장이 없다" 라고 했는데, 그러면 이 하나님의 사랑도 무엇이라는 겁니까? 물론 있으면 좋겠지만 없어도 그다지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그렇게 여기면서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것이 여기 교재에도 나오듯이 마귀로부터 온 잘못된 하나님관이라는 말이죠.
악마를 믿습니까?
그러면 질문을 "하나님을 믿습니까?" 라고 하지 말고, "마귀를, 악마를 믿습니까?" 라고 해야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나오는 대답이 오히려 정답에 가깝다는 말이죠. 하나님은 있으나마한 것이지만, 만약에 악마가 있다고 하면, 이것은 평소에 인간이 하는 일에 방해가 된다는 겁니다. 왜 여름에 모기가 많으면 가만히 있을 사람은 없는데, 모기약을 뿌리든지 아니면 모기장을 치든지 한다는 말이죠.
이것을 보면 이 세상 자체는 하나님을 위해서, 혹은 악마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평소에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겁니다. 거기에 하나님을 믿으면, 추가적으로 괜찮은 것을 하나 더 받고 말이죠. 왜 음식점에 가면 서비스로 주는 것이 있지요? 주지 않아도 되는데, 주면 좋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이죠.
그런데 "이 식당에 깡패가 있습니다" 라고 하면 그만 분위기가 달라지는데, 그때부터는 조심하게 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있으면 좋지만, 자기가 하는 일에 방해를 하지 않는다는 말이죠. 그런데 악마는 그게 아니라, 자기가 하는 모든 일에 방해가 되고, 그리고 자기를 망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있다" 라는 것 대신에 "악마가 있다" 라고 하면, 그렇게 악마가 있을 때 그냥 곱게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나쁜 짓을 한다는 말이죠. 그러면 악마가 무슨 짓을 합니까? 사람들은 악마가 죄를 짓는다고 하는데, 즉 악마를 멀리 하면 죄를 짓지 않고 가까이 하면 죄를 짓는다는 겁니다. 그러면 죄를 지으면 왜 나쁩니까? 죄를 지으면 나중에 벌을 받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죠.
다시 말해서, "하나님 대신에 악마가 있다. 그 악마가 모이는 곳은 지옥이다. 그 악마가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을 하는고 하니, 죄를 짓는 일을 하는데, 그래서 당신이 어떤 죄라는 생각을, 짓을 짓고 싶다든지 하는, 그런 죄의식이 있다면, 그것은 악마가 당신을 건드렸기 때문인데, 그렇게 당신에게 벌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 악마가 관여했다" 라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은 바짝 신경을 쓰게 되데, 왜냐하면 자기가 하는 일에 지장이 생기기 때문에 말이죠. 그런데 악마가 아니라 만약에 하나님이 오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은 없어도 그만이라는 것인데, 그것은 일종의 서비스 차원이라는 겁니다.
매력적이지 못한 하나님 !!
그래서 그 하나님 앞에 무엇이 붙는고 하니까, 여기 교재 49페이지에 보면, "하나님은 사랑을 가지고 온다" 라고 하는데, 아니 누가 달라고 했습니까? 물론 사랑을 준다고 하니까 받기는 받겠지만, 하지만 자기가 요구하지도 않는 것을 남이 주게 되면, 그것을 다시 가지고 간다고 해도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는 말이죠.
그러니 결국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고 하니, 인간은 자기가 알아서 산다고 하는 것이 토대가 되어있는 이상은, 그게 기본바탕이 되어있는 이상은 하나님은 별로 매력적이지를 못하다는 겁니다. 반면에 악마의 경우에는 조금 신경이 쓰이고 말이죠. 아무튼 그 정도라는 겁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도 별 수 없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인간이 스스로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언제 압니까? 나이가 70이 지나서 80이 지나고 온 몸이 성치 않으면, 그러면 그때 자기에게 그만 문제가 있다는 것을 느낄까요? "아, 내 인생은 어디로 가고, 그리고 나는 왜 죽는가?" 라고 하면서 말이죠. 인간이 그리 만만치가 않은데, 나이 90이 되어도 살던 행세를 그대로 한다는 겁니다.
인생이 무엇이며, 죽어서는 어디로 가는지, 그런 것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말이죠. 평소에 자기 살 것만 생각하는데, 그러니 나이가 90이 넘었다고 해서 자기 미래에 대해서 걱정을 하고, 그렇게 하지를 않는다는 겁니다. 나이가 90살이 되던 100살이 되면,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평소에 하던 대로, 그냥 평이한 일상이라는 말이죠.
우리가 지금 전도서를 하고 있는데, 그러면 이 전도서에서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악마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닌데, 우리가 공통적으로 다 아는 이야기를 하는데, 즉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전도서는 그렇게 모든 것이 허무하다고 하면서 다가온다는 말이죠.
(전 1:1)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전 1:2)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허무를 느껴라 !!
그러면 이렇게 허무하다고 하는 것은, "허무지 않는 쪽으로 바뀌어라" 라는 겁니까? 아니면 "왜 허무할까?" 라는 것을 깨달으라는 겁니까? 사실은 둘 다 정답이 아닌데, 성경에서 허무하다고 하는 것은, 만약에 이 세상 자체가 허무하지 않고 보람이 있고 즐거운 쪽으로 매진을 하게 되면, 그 순간 어떻게 됩니까? 허무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이죠.
성경은 허무하다고 하는데, 그런데 정작 자기는 전혀 허무하지를 않고 보람찬 하루를 매일같이 살아가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봤지? 내가 이겼지? 내가 하나님을 이기고 교회를 이겼어. 하나님이 나에게 겁을 줘도 나는 겁을 내지 않아. 그러니 내가 하나님보다 더 세지?" 라고 나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런 고집쟁이들이 한 두 명이 아닌데,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소개하기 위해서, 혹은 복음을 알리기 위해서 아무리 쑤셔봐야, 인간 바깥에 하나님에 대해서 외면하는 기류가 강력하게 흐르고 있다는 겁니다. "도에 대해서 궁금합니까? 하나님에 대해서 궁금합니까?" 라고 하면, "전혀 궁금하지 않습니다"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러면 "장래에 대해서는 궁금하지 않습니까?" 라고 하면, "니나 궁금하세요" 라고 한다는 것이죠. "복을 받고 싶지 않습니까?" 라고 하면, "지금 받은 복도 감당하지를 못합니다" 라고 나오고 말이죠. 그러면 "어떻게 살고 싶습니까?" 라고 하면, "내 편안한 대로 살고 싶습니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이것을 '에피쿠로스 학파' 라고 하는데, 그러면 '스토아 학파'도 등장하는데, 이들의 특징이 무엇인고 하니,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가라" 라는 것인데, 인간은 자기가 편한 것이 최고라는 겁니다. 그것을 두고 '감정' 이라고 하는데, 즉 '편한 감정' 이라는 말이죠. 자기 편한 대로 살겠다는 것이죠.
그러니 만약에 자기 몸이 아프면 그 편안함을 위해서 노력을 하는데, 병원에 간다든지 해서 말이죠. 그것을 두고 "인간은 감정 덩어리다" 라고 하는데,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인간은 따져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냥 느낀 대로 산다" 라는 겁니다. 필링, 쉽게 말해서 '욱' 하는 성질대로 산다는 겁니다.
인간은, 감정 덩어리 !!
제가 왜 이렇게 믿지 않는 자들의 이야기를 하는고 하니, 그것은 믿는 자들도 역시나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그렇다는 말이죠. 그러니 믿지 않는 자들을 구원하겠다고 하는 것, 그것 자체가 바로 하나님의 일에 대한 도전이라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내가 예수님을 알았다. 그런데 가족 중에서 믿지 않는 자가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하든 그 사람을 교회로 데리고 가서 예수님을 믿게 해서 천국에 보내는 것이 주님의 사랑이 아니겠는가?" 라고 한다면, 그것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주의 일을 방해하는 중이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남을 설득하거나 납득을 시킬 위치에 있지 아니한데, 그러니 구원은 전임자가 따로 있다는 말이죠. 그분이 누구인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그분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이 구원하신다는 겁니다. 교회가 구원하는 것이 아니고, 목사가 구원하는 것이 아니고, 사도바울이 구원하는 것이 아니고, 구원은 예수님이 하신다는 말이죠.
제가 지금까지 10여분동안 이야기한 것을 다시 정리하면, 그것을 성경을 통해서 살펴보도록 하겠는데, 마태복음 11장 6절을 보겠습니다.
(마 11:6)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실족하지 아니는 자 !!
여기에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라고 되어있는데, 이 성경구절은 여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창세기 1장 1절부터 요한계시록 22장 21절까지, 모든 성경말씀에 다 깔려있다고 보시면 된다는 겁니다.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전도서도 그렇고 마태복음도 역시 그러한데, "이미 예수님의 사람이 된 자들만이 알아듣는, 즉 복이 있는 자들만 알아듣는, 그런 복의 전달과정으로서 성경말씀을 너희에게 준다" 라고, 우리는 그렇게 이해하면 된다는 말이죠.
실족과 복 !!
거기에 비해서 우리의 욕심은 무엇인고 하니, "내가 교회에 다녀서 구원을 받는 것처럼, 남들도 구원을 받았으면 참으로 좋겠다" 라는 것인데, 하지만 그런 생각은 하지 말라는 겁니다. 남들을 걱정하지 말라고 "니나 잘하세요" 라는 것인데, 왜냐하면 구원의 전임자는 예수님이니, 우리가 전도를 한다든지 해서 남들을 구원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이나 자질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죠.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우리 자신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저에게 "성도란 어떤 자들입니까?" 라고 물으신다면, 저는 이렇게 답변할 수밖에 없는데, 성도는 실족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실족을 딛고 복의 대상으로 등장한 자들이 바로 성도라는 말이죠.
그렇다면 "성도는 예수님을 믿는 자입니다" 라고 간단하게 이야기를 해버리면 되는데, 그런데 이렇게 길어진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마태복음 11장 6절에 의해서 "우리 인간은 실족할 수밖에 없다" 라고 다시 정리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인간은 실족할 수밖에 없어 !!
왜냐하면 우리는 자기 편한 대로만 살아가기에 말이죠. 하나님도 귀찮고 예수님도 귀찮고 부처님도 귀찮다는 것이죠. 즉 "천당에 가든 지옥에 가든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알아서 할 문제니, 제발 나를 그냥 그대로 내버려두세요" 라는 겁니다. 그러니 건드리지 않고 그냥 두면 된다는 말이죠.
전도를 한다는 것도 짜증나는 일인데, 왜냐하면 우리는 감정에 둘러싸여져 있기 때문에, 그게 옳다고 해서 받아들이는 존재가 아니란 겁니다. 자기 감정에 의해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아가는, 그야말로 마치 아메바와도 같은 존재라는 말이죠.
이 아메바가 어떠한고 하니, 건드리면 움직이지만 가만히 두면 자기가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