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28강(민낯) ,마태복음 90강(예수님의 종말) 170725
대전-28강 사무엘상 8장 5절(민낯)20170725-이 근호 목사
5절, 그에게 이르되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열방과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
지난 시간에 사무엘상 8장에 보면 사무엘의 아들들이 별 기대를 못 줬죠. 사무엘 같으면 하나님의 선지자인데, 선지자 같으면 성령 받은 사람, 그 당시에는 성신 받은 사람이거든요. 아버지는 성신 받았는데 아들들은 이상하게 율법도 잘 안 지키죠. 이것은 성령, 성신은 대대로 혈통으로 전달이 안 됩니다. 재산은 자식한테 물려줘도 성신, 성령까지는 물려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령과 성신, 이런 하나님 쪽은 소유성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가진 것이 아니에요. 이렇게 아버지가 성신 받더라도, 성령 받더라도 자식은 아무 상관이 없는 겁니다. 이쪽에 아버지가 성령 받았다, 같은 식구니까 알아서 자식도 뭔가 좋은 효과가 있어서 성령 받겠지, 라는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그런 것이 있다고 기대를 하면 안 돼요.
여기서 또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자연인과 성령인을 구분할 수 있는데, 성령인이라는 개념은 처음 들어보죠? 제가 만들었어요. 구약은 자연인에서 성령인으로 나아가는 겁니다. 자연인은 현재 신체가 있는 그대로 계속 전달이 돼요. 이걸 아담 안에서 아버지가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이 자식을 낳고...그러니까 자식을 생산해낼 수 있는 재료가 이미 우리의 맘속에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러시안 인형처럼, 인형 안에 인형이 들어있고, 또 그 인형 안에 인형이 들어있죠.
로마서 5장에서 아담 안에 아담의 자식이 들어있고, 자식의 자식이 또 들어있고...이렇게 돼있어요. 하나님 보시기에는 아무리 인구가 많고 인종이 많아도 전체를 아담 안으로 봅니다. 아담 안에 들어있다. 이렇게 보는 겁니다. 이렇게 아담 안에 들어있으면 도토리 키 재기 라는 말처럼, 너 잘났다 나 잘났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모든 조상이 한 조상에게서 주어졌기 때문에 의미가 없습니다. 이 자연인을 고린도후서 15장49절에서는 뭐라고 하느냐 하면 흙에 속했다고 합니다. 흙에 속한 형상을 입었다. 흙에 속했다.
아담 자체가 이름이 흙이에요. 흙이 되어야 될 운명을 지녔습니다. 그러면 논리적으로 아담이 흙이 될 수밖에 없다면, 아담 안에 들어 있는 우리도 뭐가 돼야 됩니까? 마땅히 흙이 될 수밖에 없어요. 우리 자신에게 다른 것을 너무 많이 기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루하루 늙어간다는 것은 점점 더 흙에 접근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지금 우리가 늙어죽는 것, 지금 하나님이 보시기에 일이 제대로 되는 겁니다.
뭐 문제 있다고 생각하시면 안 돼요. “뭔가 이건 아니야, 이건 아니야.”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피부가 건조해진다, 머리카락이 빠져서 훤하다, 정상입니다. 이렇게 뭐 처발라봤자 소용이 없어요. 그냥 가야 될 길을 가야 됩니다. 일종의 자연현상이기 때문에, 자연인은 자연현상이기 때문에, 여기 언덕 위에 구슬을 놓는다고 합시다. 구슬을 놓고, 외부적인 어떤 조건을 걸지 아니하면 이 구슬은 자연적으로 굴러서 바닥에 떨어지게 되어 있죠.
우리는 언덕 위에 놓여 있는, 브레이크 없는 하나의 구슬 같습니다. 중력의 위치에너지를 따라서, 중력 따라 쭉 이렇게 언덕 아래에 처박히게 되어 있어요. 그게 자연인이에요. 그래서 전도서에서는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다고 했어요. 헛됨으로 처박혀라! 그 욕망을 좇아! 성경을 보면서, 성경을 대하는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오해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어떤 말씀을 주게 되면, 그 말씀을 지켜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근본적으로 자기 자신을 모르는 겁니다. 말씀을 주게 되면 그 말씀이 일치되도록 주께서 우리를 밀어내고 있다고 봐야 돼요.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나를 규정하는 주의 말씀에 일치되도록, 우리가 그렇게 거기에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이 자연인을 흙이라고 했죠. 흙이라고 하는 것을 다른 구절에서는 육이라고 하는 거예요. 육.
그러면 누가 갈라디아서 5장을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5장 18절부터 21절까지.
18절,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19절,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절,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21절,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방금 제가 이야기했습니다. 성경에서 어떤 말씀을 줄 때는 이거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설교를 성경대로 이야기를 해도 저쪽에서 왜곡되게 반응을 나타내니 어떻게 더 뭘 설명할 수가 없어요. 여기에 보면 우리는 육이거든요. 육 아닌 사람이 없어요. 그냥 육이에요. 육은 여기에 나오는 말씀대로 시기가 이미 들어있는 사람이에요.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이게 육 안에 그냥 내장되어 있는 겁니다. 이걸 그대로 드러내면 되죠. “아, 나 이거 안 지킬래.” 안 지킬래, 라고 하지 마세요. 안에 들어있는 것을 바깥으로 발산하도록, 내 몸이 아니고 주의 몸이니까, 주님께서 이 몸을 가지고, 주께서 소개한 이런 내용들을 가지고 평생토록, 수시로 그렇게 툭툭 튀어나오도록 그렇게 하시는 것을 믿으시면 되는 거예요. 그걸 믿으시면 되는 거예요. “아, 이거 나쁜 거구나?” 원래부터 나빠요. 나쁘다, 좋다, 라는 것을 스스로 평가할 권리를 사전에 협의하지 않았어요. 사전에.
그리고 오히려 그 뒤에 나오는 성령의 열매가 있잖아요. 오히려 이게 이상한 거예요. 이게 원래 나오면 안 되는 겁니다. 나오면 안 되는데,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이런 것이 나왔다는 것은, “아, 내 몸을 다른 분이 외부에서 다루고 있구나. 원래 내가 안 되는 것을 되게 하시고 있구나.”라고 보시면 돼요.
주께서는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 왔거든요. 죄인을 부르러 왔는데, 예수 믿음이나 주님 사랑이 나오거든, 이것은 이미 우리 선을 넘어섰어요. 내가 나를 다룰 수 있는 그런 권한에서 우리는 이미 손을 떼고 있는 겁니다. 주께서 장악해서 이런 것이 나오도록 인도한다면, 이미 안 죽어 봐도 이미 천국 사람이에요. 그것은 무슨 인이다? 성령인이다. 성령인은 자연인을 바탕으로 해서 그 위에 성령인으로 덧칠하는 거예요.
이걸 달리 이야기하면 자연인은, 성령을 안 받은 사람은 그냥 자연인 그대로에요. 성령을 받게 되면 자연인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배를 받는 재료가 돼요. 지배를 받는 재료가 되고, 성령께서는 지배하는 분, 우리는 지배받는 대상, 이게 한 세트가 되어서 성령인을 구성하는 겁니다. 성령인이 돼버리면, 사랑과 희락이 나오고, 뭐 어떤 일에 대해서 감사가 나오면, “이거는 나한테 안 맞는 사항인데?”라고 오히려 의아해해야 돼요. 의아해해야 되고, “아! 내가 생각하는 나라는 인간이란 게 그 이상이구나!”
그래서 그것을 우리가 소유하자가 아니라, 우리는 소유가 안 되고, 오히려 날마다 반대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소유해서 하는 것을 못하게 하는 거죠. 그래서 자연인의 속성에 대해서 내내 설명하는 것이 구약이고, 신약이 되게 되면 성령으로 성령인이 됩니다. 근데 구약 안에서 신약의 성도의 면면을 약간씩은 보여주는 사람이 있는데, 그게 성신 받은 사람이에요. 성신 받은 사람.
그러니까 오늘 본문에 성신 받은 사람이 누구라고 했습니까? 사무엘이죠. 사무엘이 죽어요. 사무엘이 죽고 난 뒤에 그 자식들은, 성령은 소유가 안 되니까, 자기 집안의 소유가 안 되니까, 인간이 성령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니까, 지배받는 자가 지배하는 자를 소유할 수는 없습니다. 인도받는 자가 인도하는 자를 이리오라고, 저리가라고 할 수 없어요. 그거는 주객이 전도되니까. 말이 마차를 끄는 거잖아요. 마차가 말보고 이리가라, 저리가라고 할 수 없고, 말이 끄는 대로 갈 수밖에 없듯이. 인도자가 우리를 인도해야 돼요.
이유가 뭐냐 하면, 우리에게는 뭐가 없느냐 하면 천국이 없습니다. 있어도 어디로 가야되는지를 몰라요. 그래서 천국에서 오신 분이 우리를 안내하고 이끄셔야 돼요. 그 분이 누구냐, 여러분이 다 아시는 그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천국에서 온 것을 어떻게 아느냐, 죽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는 것은 어느 예언이냐 하면 요나의 예언이라고 했습니다.
요나의 기적인데,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며칠 간 있었느냐 하면, 3일 동안 있었어요.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3일 동안 있을 때에, 그건 누가 봐도, 외부의 어떤 사람이 봐도 요나는 물에 빠져서 죽었습니다. 이거는 과학수사대를 백날 동원 해봐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다. 그걸로 이미 사망이에요. 그렇잖아요? 인간이 오징어나 고등어는 먹을 수 있어요. 그러나 고등어가 인간을 먹을 때, 그런 고등어는 없지만, 큰 고래가 인간을 먹었다면 그거는 위장에서 소화가 되어서 죽은 겁니다.
모든 인간으로부터 요나는 죽은 자가 돼요. 모든 인간으로부터. 그래서 모든 인간은 예수를 믿을 수가 없는 겁니다. 알아서 믿을 수가 없는 거예요. 알아서 믿을 수가 없기 때문에 인간은 허전하잖아요. 허전하기 때문에 인간은 가짜예수, 가짜삼위일체를 교회에 만들어놓고, 그걸 우상이라고 하는데, 예수라는 우상, 삼위일체라는 우상을 해놓고 거기다가 자기 소원들을 비는 겁니다.
그래서 진짜 하나님과 가짜 하나님의 특징은 뭐냐 하면, 예상이 되는 것, 그건 백퍼센트 가짜입니다. “이렇게 기도하면 이렇게 이루어지죠?” 이런 것. “방언하면 구원받은 사람 맞죠?” 이런 것. 내가 뭔가 기이한 행동을 하게 되면 그것으로 천국 간다고 생각하는 것, 그것은 본인이 그렇게 되고 싶은 거예요. 본인이. 그러나 진짜 하나님은 항상 예상 밖으로 내 인생의 옆구리를 차고 들어와요.
우리는 소유로서 자기 주체를 정립하려고 하는데, 그 소유된 내용 속에 없는 내용이 와서 우리를 찢어버리죠. 이걸 뭐로 비유 하느냐 하면 우리하고 연관되지 않은 것이 낯설게 들어왔을 때, “우리는 망했다. 이게 웬일이야? 이러면 나는 못 살지!”라고 했는데, 그것이 나에 대해서 새삼스럽게 갱신, 갱신이라고 하는 것은 알지 못하는데서 미리 터지고 보니까, “아니, 이럴 수도 있었어!”라고 새롭게 갱신되는 자아는 우리가 망했다는 그러한 사태를 통해서, 그게 근거가 되어서 갱신되는 겁니다. “오늘 재수 없어!”라는 일이 벌어졌을 때, 재수 없는 일이 있기 전에 내가 알던 ‘나’, 그 ‘나’가 아닌 ‘나’로 전환시키는 계기로, 주께서는 사태를 일으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무엘을 믿었어요. 그 사무엘이 얼마나 자녀교육을 잘 시켰겠는가? 그들이 짐작했고, 예상했고, 기대한 겁니다. 이미 그들은 사무엘을 그들의 머릿속에 소유한 거예요. “사무엘이 이 정도 되었으니까 자식들도 이 정도 돼야 돼.”라는 기대.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실망케 했죠. 틀어지게 만들어버렸죠. 틀어지게 만든 그 순간, 이스라엘은 그들이 알던 이스라엘이 아니죠.
여러분, 내가 아는 내가 돼버리면, 그거는 천국 가는 속도가 스톱이 되었다고 봐야 합니다. 멈춰진 거예요. 인도함이 없이, 뭐 여기가 좋사오니! 이래 돼버려요. 변화산에 예수님과 베드로 야고보 요한, 이 세 명의 제자가 이 올라갔는데, 저쪽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거기에 엘리야도 나오고 모세도 나왔어요. 이미 과거의 인물인데, 시간을 초월해서 한 공통의 공간이 되고 말았어요. “여기가 어디지?” “여기가 도대체 무슨 동네지?” “뭐 이런 동네가 다 있어요?”
산 사람끼리 모인 동네가 아니고, 이미 죽었다고 알려진 그 분들이 합세된 자리라면, 도대체 예상 밖의 동네가 생긴 겁니다. 예상 밖의 공간이 생겼을 때에, 베드로가 깜짝 놀랐습니다. 그 공간을, 자기가 살고 있으니까, 자기 앞에 나타나 있으니까, 그 공간을 인간의 그 버릇대로 소유화시키려고 시도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맨션 세 채 드리겠습니다. 펜션 세 채 드리겠습니다.”라고 한 거예요.
자, 이게 뭐냐 하면 제가 집을 세 채를 지어드리게 되면, 그 집에 한 사람씩, 예수님 엘리야 모세가 살게 되면, 그 공간은 베드로가 익히 아는 공간의 연속이 돼버려요. 동질화가 돼버린다고요. 이것은 뭘 의미하느냐 하면 천국도 이미 내가 익히 알고 있는 그 동네라고 생각해서, 거기에 맞는 우리의 본성이 유감없이 발휘가 돼요. 천국 이야기만 하면 본인이 거기에 합류할 생각만 합니다.
그러나 흙은 못 들어가거든요. 흙이 죽어서 영이 되어야 되는데, 흙이 죽어야 영이 되는데, 예수님은 ‘사흘 만에’라는 텀term이, 기간이 있었잖아요. 사흘이라는 텀이. 그게 있어야 되는데, 만약에 주님께서 와서 죽어버리면, ‘나는 그곳에 들어가야지.’라는 생각도 죽어야 될 대상에, 리스트에, 항목에 포함이 된다니까요. ‘나는 그 쪽 세계에 들어가야지.’ 평균 기온이 18도 내지 20도 되고 습도는 40퍼센트, 정말 살기 좋은 쾌적한 환경. 사람들이 천국을 생각할 때 제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쾌적한 환경이에요. 그 다음에 자기가 싫어하는 타입의 사람은 없어야 돼요. 자기에게 사기 치는 사람은 없어야 되고, 애 먹이는 남편이 없어야 되고.....,
그때는 시집 새로 가도 괜찮아요. “이제는 내가 알만큼 아니까 남자는 내가 골라야지. 철없던 20대 하룻밤의 사랑으로 무작정 결정내지 않겠어. 그것도 한 두 명이 아니고 여러 명 알아보고 고를 거야. 그리고 자식도 내가 원하는 자식을 내 자식해가지고, 아이큐150정도 되고 인물 예쁘고 말 잘 듣는 자식으로 내가 할 거야.” 바로 그런 꿈을 꾼다면, 여러분들이 웃었지만, 사실은 교회 와서 하는 기도내용이 그런 것들이에요. “마음에 안 드니까 이걸 개선할 수 있도록 주께서 내 뜻대로 좀 도와주세요. 돈? 십일조 드렸잖아요?” 다시 말해서 인간이 뭔가 행동을 취할 때는 공짜가 없어요. 인간은 거저 주는 것이 없어요. 반드시 노림수가 있어요. 손해 보는 장사는 안 하겠다는 거예요.
목사를 섬긴다? 거저 섬기는 법은 없어요. 목사 섬길 때, 주께서 카메라로 좀 찍어달라는 거예요. 섬기는 폼 같은 것. 트럼프하고 같이 사진 찍을 때, 그냥 찍는 것이 아니에요. 트럼프하고 사진 찍은 것을 자기 가게에다가 확대해서 붙여놓잖아요. 붙여놓는 이유가 뭡니까? 내가 트럼프하고 이런 사이라는 겁니다. 장사한테 도움이 되는 거죠. 자기한테 이익이 되는 겁니다. 그래야 교회가 장사가 돼요.
우리 동네에 성당이 있는데, 성당 앞에 무슨 사진이 있느냐 하면 교황하고 우리나라 명동성당 추기경하고 찍었던 사진을 붙여놨어요. 뭐라고 되어 있느냐 하면 “우리 교황님은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 만약에 한경직 목사가 대전에 어떤 교회를 다녀갔다고 하면 사진 떡하니 붙여놓죠. “여러분들이 그렇게 좋아하시는 교회가 여기에 있으니까 안심 푹 놓고 오시면, 천국을 안심 푹 놓고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어디로 보내는지 몰라요.
이게 뭐냐 하면 천국마저 내 소유화 시키려고 하는 겁니다. 이미 성령 받은 사람은 천국을 내가 소유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천국이 이미 나를 소유했다는 거예요. 발을 뺄 수가 없어요. 그래서 “날마다 예수를 믿지 마시기 바랍니다.”라는 말을 왜 하느냐 하면, “이근호 목사가 진짜 예수 믿지 말라고 해서 난 안 믿을래.” 이러면, 정말 나의 이 한 마디에 예수 안 믿었을 것 같으면 진작 안 믿은 사람이었습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지만, 처음부터 자기가 발을 담갔기 때문에 빼는 것도 자기 선택에 의해서 발을 뺄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가짜가 없죠. 믿지 말라고 해도, “니가 뭔데 믿지 말라고 해!”라고 해야죠. 이거는 내가 믿어서가 아니라 주께서 믿게 하셨기에, 어떤 인간이 방해를 놓는다고 해도 믿음의 관계가 끊어지지 않습니다. 로마서 8장 35절에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나, 어떠한 권세도 주의 사랑에서 끊어지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아가씨가 교회 다닐 때 신랑감을 고르는 조건이 글쎄요, 예수 믿는 사람이 조건이라고, 그걸 자꾸 거론하는데, 그거는 어떤 의미에서 얼마나 믿음이 없었으면 남편 믿음에 기대려고 하는 그러한 시도일 수가 있어요. 자기의 행복을 결혼이라는 것에서 찾으려고 하는 것도 그만큼 불행할까봐 겁내고 있다는 겁니다. 불행할까봐 겁낸다는 말은, 벌받을까봐 겁낸다는 것은, 결국은 믿는 구석이 없다는 뜻이에요.
아무것도 안 믿기 때문에, 건전한 것, 믿을만한 것은 다 주워 모아라. 믿는 남편에다가, 믿는 가정에다가, 시아버지가 장로면 얼마나 며느리를 위해서 새벽마다 악바리처럼 기도를 해주겠습니까? 그 기도빨 효과 좀 얻어먹자는 식으로. 지는 기도하기 싫고, 기도 열심히 하는 엄마의 기도 힘입어, 찬송가에도 나오잖아요. “어머니기도 못 잊어” 자꾸 이렇게 기대는 건데, 그러한 자연인들의 모습을 구약을 통해서 낱낱이 다 보여줍니다.
오늘 강의 제목은 ‘민낯’입니다. 강의제목을 적어놔야 해요. 잊어버리니까. 민낯이라고 했다가 나중에 민소매로 바뀌면 안 되는데....., 민낯입니다. 다시 한 번 강의를 처음부터 해봅시다. 구약은 자연인입니다. 자연인은 뭘 하느냐 하면 뭐든지 괜찮은 것을 소유하려고 해요. 자연인은 어떤 식으로 자기를 구축하는가 하면, 소유하려고 하는 거예요.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도 사무엘을 소유하려고 했습니다. 자식들은 자기들 마음에 영 소유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그래서 어떻게 했느냐 하면 사무엘의 자식들이 안 좋으니까 아예 자식까지 자동적으로 소유 대상이 되면 어떻겠는가? 자식까지 소유해서 우리를 지배해 달라. 그게 무슨 제도냐 하면 왕王 제도입니다. 왕 제도는 세습이 가능해요. 인간들이 왕을 달라고 했을 때에 어떤 모델을 보고 왕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 모델이 뭐냐 하면 그 주변의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