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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170711a 부산강의 : [시편]2(1편)-율법의 등받이자유게시판시편

20170711a 부산강의 : [시편]2(1편)-율법의 등받이(강의:이근호 목사) 우리가 몇 년 동안 철학과 복음 이야기를 하다가 지난달부터 시편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철학은 어렵고 성경은 쉽다고 생각하는 데 저는 반대에요. 시편을 보면 성경은 인간의 철학과는 비교 안 될 정도로 굉장히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이유가 뭐냐 하면 철학은 있는 데서부터 있는 대로 가거든요. 있는 데서 있는 걸 설명하거든요. 철학은 아무리 해도 거짓말될 가능성은 없어요. 설명할 대상이 있기 때문에. 그런데 성경은 설명할 대상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눈에 안 보이잖아요. 훨씬 더 어렵잖아요. 그러면 사람들은 어떻게 가장하고 기만하느냐 하면, 없는 예수를 여기 있다고 가장하고 기만하고 그 다음에 성경을 봅니다. 기만은 기만으로 끝나요. 실제로 예수님이 살아계셔서 체험하는 사람과 있다고 신자라고 가장하고 신앙인 척해서 성경 보는 사람은 결국 너무 어려워서 나중에서 철학이 차라리 쉽다고 느껴질 정도로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자괴감에 빠질 거예요. 내가 듣고 싶어 하지 않는 걸 아주 괴로운 일입니다. 여기 있는 나, 여기 존재하는 내가 얼마나 향상되고 개선되는지 그 소리 듣고 싶어 하는데 말씀은 여러분 속에 안 보이는 주님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때문에 자기가 있다고 여기는 사람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없는 존재에요. 정리해봅시다. 성경은 없는 분에 대해서 이야기하거든요. 그런데 철학은 있음에서 있음으로 나오잖아요. 그러면 현재 우리는 뭘 부정하고 부정해도 여기 있다는 걸 부정 못하잖아요. 그만큼 우리를 스스로 보기에 철학적이에요. 여기서 만약에 제가 이 자리에 있지 않고 여기에 펀드매니저 와서 투자할 좋은 펀드 소개할 테니까 여러분에게만 특별히 알려줍니다. 내가 아는 사람 있는데 이번에 이 동네 땅 값 오릅니다. 넣어두시면 열 배 오릅니다, 라고 했을 때 듣기 싫다고 뛰쳐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아주 특이한 사람이에요. 나는 펀드매니저한테 주의 십자가 복음을 듣기 원했는데 그 소리 안 나온다고 나가버리면 다른 사람들이 의아해할 거란 말이죠. 마찬가지로 복음을 이야기할 때 철학 이야기하면 듣기 싫어 나간 사람은 별로 못 봤어요. 그건 평소에 우리들이 정신병자기 때문에 그래요. 정신병자는 다른 말로 하면 비정상이에요. 태어날 때부터 정상이 아니에요. 예수님 보시기에 비정상이에요. 그러니까 예수님의 작업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비정상인 것을 정상으로 만들어서 자기의 나라, 천국에 데려가고자 말씀을 줬기 때문에 그 과정을 우리가 그대로 반복하고 답습해야 돼요. 출발을 비정상으로 하는 거예요. 나는 있다. 이게 비정상이에요. 이것부터 문제 삼는 거예요. 나는 여기 있습니다. 주님은 그게 나와 무슨 상관있는데 그 이야기를 왜 하는데? 하나님에겐 아들이 있는 게 중요하지 내가 여기 있는 건 안 중요하거든요. 사람은 내가 여기 있음부터 시작해서 여기 있는 나를 죽어서 좋은 나라 가게 해주세요, 라고 그렇게 강권하고 요구하는 권리가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겁니다. 교회 나왔으니까 천국 넣어주세요, 라고 한다면, 네가 무슨 권리로, 무슨 자격으로 갈래? 거긴 내 나라야. 네가 가고 싶다고 해서 갈 수 있는 나라도 아니고 가기 싫다고 해서 못 가는 나라도 아니고. 천국은 예수의 나라거든요. 예수님의 나라는 자기 원하는 자만 데려가는 나라에요. 따라서 앞에 무슨 말을 해야 되느냐 하면, 네가 원하는 것을 내가 묵살하겠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너는 묵살당해도 마땅한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는 이야기를 내가 지금부터 할게, 라는 이야기입니다. 그게 성경에서 나오는 겁니다. 소위 복음 아는 교회를 봅시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으로 여기 왔습니다. 제가 설교해서 천국을 보낼 건데 기존교회는 복음이 없기 때문에 못 갑니다. 그러나 나는 복음을 전하기 때문에 내 말 듣고 믿으면 구원받습니다. 얼른 보면 복음이 있는 교회 같지요. 뭐가 빠졌습니까? 과연 내가 그런 덕을 볼 자격이 있는지가 빠져 있지요. 그건 노인 상대로 사기 치는 것과 똑같아요. 여러분 건강을 위해서 귀한 상품 갖고 왔으니 가실 때 화장지 한 통, 계란 한 판 가져가시고 물건 사세요. 이것과 차이점이 뭐예요? 처음부터 과연 우리가 구원받을 자격이 있는 것부터 나와야 된단 말이죠.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내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기대조차도 그게 죄가 될까하는 생각을 갖고 있어야 돼요. 내가 죽어서 천당 가야 한다는 이런 포부, 순박해 보이고 순수해 보이는 우리 입장에선 그런데 그게 순수가 아니라 나를 망치는 화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구원에 대한 욕망의 출처가 수상해요. 주님한테서 나온 게 아닙니다. 내가 존재하는 것부터 출발하면 이런 실패는 늘 나오는데 우리가 약간 위로가 되는 것은, 이런 실패는 우리만 하는 게 아니고 시편을 받았던 그 당시 이스라엘 자체가 집단적 실패자들이에요. 우리가 기분 좋은 것은 주께서 이스라엘을 실패자로 간주하고 시편을 전했다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와 똑같은 입장이에요. 우리는 어떤 실패자냐 하면, 시편 알아서 복음 끄집어내서 구원받아야지. 이러한 실패를 날마다 되풀이 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 점에서 이스라엘과 다를 바 없어요. 똑같아요. 지금 있음에서 있음으로 나가는 것이 문제라면 하나님께서 있음을 없음으로 바꾸는 작업을 하는 겁니다. 있으니까 말이 많아. 대표적으로 욥기에 나오잖아요. 욥기의 초반부는 욥이 말이 많다는 것이고, 끝부분에선 욥이 입을 다물었다는 차이가 있어요. 욥이 자기가 있으니까 이걸 덩치라고 하는데 덩치가 있으니까 어떻게 감당을 해야 되잖아요. 배고플 때 밥 먹어야 되고, 사업해야 되고, 싸울 땐 싸우고, 좋은 건 좋다. 덩치가 가만있는 게 아니고 자꾸 뭔가 요구를 하는 거예요. 요구, 욕구, 욕망이 있고 충동이 일어나요. 욕망은 자꾸 성공하면서 불만족을 자처하는 겁니다. 그러면 욕망을 욕망으로 자아내는 게 충동이에요. 이걸 충동질이라 해서 욕망을 만들어내요. 우리 내부에서 충동질이 있다면 나는 껍질에 불과해요. 아무 힘도 못 쓰고. 저는 이걸 각질층이라 봅니다. 각질층은 굳은살을 깎아내잖아요. 그런데 또 생기잖아요. 깎아내면 또 생기고. 깎아내도 또 생기는 것은 바로 충동에서 생기는 거예요. 충동, 욕망, 욕구의 특징은 인간의 이성으로 감당이 안 된다는 겁니다. 대표적인 것이 결혼생활이 오랜 된 사람은 이래요. 결혼 초반에는 손만 잡아도 짜릿하고 가슴 조마조마하고 그렇잖아요. 그런데 결혼생활 30년 하면 무던하죠. 아내가 어떤 모습을 해도 감흥이 일어나지 않는 거예요. 그걸 제가 지난 낮 설교에서 가구는 말을 건네지 않는다. 도정환의 시에 나오는 거예요. 그냥 바라보기만 할 뿐이죠. 바라보고 어디에 써먹을까, 이것만 생각하죠. 쓸모없으면 버렸으면 좋겠다는 정도로. 아무리해도 감흥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 내가 여자에 대해서 아무 감흥이 없다고 오해하면 안 돼요. 그래서 둘이 오랜만에 억지를 부려서 해운대 갔습니다. 거기에 얼마나 젊은 사람들이 많습니까. 거기서 어떤 느낌이 온다면 결국은 내 안의 충동과 욕망이 나이 많아서 죽은 게 아니고 살아있는데 그걸 자극할 수 있는 환경이 제한돼있었던 거예요. 억울하다고 따지지 마세요. 따라서 인간의 이성보다 요구, 욕망이 세요. 욕구는 동물적으로 보면 돼요. 배고플 때 밥 먹고, 잠 오면 자고. 욕망과 욕구 사이에 협상해서 내가 요구하는 것은 이렇게 하지만 이것이라도 만족해야지, 라고 타협하는 것이 요구가 되는 겁니다. 용돈 십만 원 원하지만 당신이 없다하니 오만 원만 달라 할게. 이게 요구가 되는 거죠. 이성적인 것이 가미가 되면 요구가 되는 겁니다. 그러나 백날 해봐야 충동이 참지 못하죠. 이걸 한 자로 이야기할 수 있어요. ‘욱’하는 거예요. 남자들 술 먹을 때는 욱이 나와요. 그래서 술 먹는 사람과 결혼 안 하는 게 좋아요. 언제 욱이 나올지 몰라요. 억눌렀다 한꺼번에 욱이 나오니까 이성적이 아니에요. 술을 먹는다는 것은 충동이란 엔진에다 휘발유를 꽉꽉 채우는 그런 짓이 돼요. 언제 필요할 때 술김에 했다는 핑계로 욱이 나와 줘야 마음에 차있는 마그마가 배설이 되면서 혼자서 해소되는 기쁨을 주는 겁니다. 욕망은 성공이 실패한데서 불만족이지만 충동은 실패를 통해서 만족하는 겁니다. 실패를 한두 번 해보면 실패 안 하면 이상해. 제 말이 무슨 뜻이냐 하면 만약에 집에 있는데 누가 예상치 못하게 참외를 한 바가지 줬다. 이건 좀 이상해. 찝찝해. 주께서 참외 값 이상으로 다른 걸 빼앗아 가려고 은혜로 주셨는가. 요즘 아내한테 얻어맞는 남편들이 많답니다. 처음엔 장난삼아 때렸는데 나중엔 안 맞으면 집안에 여자가 없는 것 같아. 외로워서 못 살아. 누가 때려주는 사람이 있어야 돼요. 폭력 말고 평소에 말로 때려주는 아내가 갑자가 죽으면 그 남자 우울증 걸립니다. 잔소리 없이는 움직이지 않거든요. 아내도 남편한테 잔소리해야 자기 존재감이 생깁니다. 이 포도를 먹으라고 준 거예요. 먹으려는 순간에 아내가 봅니다. 전에 보니까 당신 포도를 막 먹는데 잘 보고 먹어라. 한 소리해야 돼요. 지금 먹는 걸 소재로 해서 옛날 잊었던 소설까지 다시 끄집어내는 거예요. 기분 나빠서 에이(속으로 해야 돼요), 하네. 먹는 순간 당신은 포도 먹을 때 달리 먹어야 돼. 또 잔소리를 해요. 그래서 신발 신고 나가려고 하니까 또 신발 신는 것을 잔소리해요. 항상 잔소리할 대상들이 쏟아내야 된다니까요. 그들 부부가 사는 방식이에요. 그런 남편이 죽었다든지 이혼해서 다른 남자를 만나더라도 매치하기 힘들어요. 솔직하게 수입이 얼만지 묻고 싶지만 속으론 전 남편처럼 내 잔소리를 다 들을 용의가 있습니까? 차마 그 소리를 못하잖아요. 그래서 재혼한다는 것이 힘든 거예요. 자기 이성적인 것 말고 감추어진 것까지 용납할 수 있는 대상자, 이건 오랜 세월동안 숙달되고 숙성되어서 만든 작품이 남편/아내란 말이죠. 그걸 흔히 이젠 얼추 잘 맞는다. 이게 전부 다 있음이란 말이죠. 숙성된 인간의 자기밖에 모르는 충동을 누가 만드느냐? 주님께서 만듭니다. 주님께서 아담으로 하여금 아담의 자식을 계속 쏟아내게 만드는 겁니다. 왜 그렇게 하시는가? 그게 이유가 있어요. 오늘 시편에 보게 되면, 복 있는 자는 주야로 율법을 묵상하는 자죠. 질문이 이렇게 됩니다. 법은 무엇을 노리느냐? 법은 무엇 때문에 이 땅에 왔느냐? 하나님이 그냥 조용히 계시면 되는데 왜 시내 산에서 모세를 통해서 법이라는 것을, 십계명, 제사법을 주셔야만 했느냐? 언제 달라고 했습니까? 인간들이 회의해서 요구한 적 없어요. 일방적으로 하나님이 주셨단 말이죠. 하나님이 주실 때는 목적 없이 주신 적이 없거든요. 주실 때 생존을 위해서 살아가는 자들을 밑에 깔아놓고 주게 됩니다. 생존이 우선이죠. 생존의 실체가 있어요. 생존은 산다는 거죠. 누가 사는데? 내가 살죠. 내가 살기 위해서 몸부림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게 얼마나 정신병자고, 비정상적이고, 어리석나 하면, 이미 인간은 선악과에 의해서 죽게 돼있어요. 여기서 어려운데 죽음이란 심장이 정지되는 거잖아요. 하나님은 죽음을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죽음은 네가 자리하고 있는 위치가 에덴동산이냐, 아니면 에덴동산 바깥이냐 그걸 물어서 네가 죽어 있느냐, 살아있느냐고 물어요. 신기하죠. 숨을 쉬고 레슬링하고 격투기하고 야구하고 해운대 놀러가고 우리 둘이 예수는 안 믿지만 90평생 해로하면서 크루즈 여행 다니고 했는데 그 자리가 법이 우선이 안 되는 내가 우선이 되는 자리를 그냥 답습하고 있는 겁니다. 미국 갔다. 복음 얻으려 미국 가지 않잖아요. 미국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구경하러 가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여행갈 때 콩고, 나이지리아 안 가고 캐나다, 미국, 뉴질랜드 가잖아요. 콩고, 나이지리아는 지옥이거든요. 지옥 구경할 것 뭐 있습니까. 사람들이 배울 게 없으면 여행 안 갑니다. 서유럽 여행갑니까? 아프리카 더운데 안 가고. 수단 가지요. 소말리아 반군들 어떻게 사는지 구경하지요. 이라크 북쪽 IS에 가서 총기 사용 어떻게 하는 관광은 왜 안 됩니까? 사람들은 자기가 점점 개선되려하거든요. 성장하고 발전하고. 배울 게 없으면 돈 많이 주고 그런데 안 갑니다. 이 세상에서 아직까지 배울 게 남아있는 데가 어디 있느냐? 케냐, 페루 아니에요. 서유럽이에요. 가진 자가 어떻게 멋있게 사느냐? 핀란드. 그런 데 가서 가구 사오고. 미국 캐나다, 뉴질랜드, 호주 그런 데 가잖아요. 문제는 핀란드나 살기 좋은 나라에 가면 뭐라고 합니까? 여기는 낙원 같다. 여기에 내가 끼어들면 좋겠다. 문제는 거기에 끼어들려면 세금을 많이 내야 돼요. 다시 말해서 한국에 사는 생존의 방식과 핀란드, 노르웨이의 생존의 방식이 달라요. 낙원 같기 위해선 세금은 50% 이상 70%씩 내야 된단 말이죠. 미국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게 있어요. 의료보험이 비싸서 차비 계산해도 한국에 오는 게 싸요. 그것 때문에 미국 교포들도 한국에 와요. 임플란트하려고. 낙원이란 인간의 망상입니다. 내가 여기 있는 생존의 방식을 그대로 고수하면서도 잘 사는 것, 계속 살아 있음을 영원토록 이어갈 수 있는 것을 사람들은 유토피아, 낙원으로 본다고. 그러니까 주님 가신 길 갈래, 낙원 갈래, 하면 낙원이라 하거든요. 주님 가신 길, 십자가의 길 그 뒤에 부활의 나라 있잖아요. 빌립보 3장에서 사도 바울이 나는 부활에 참여하기 위해서 십자가로 가는 거예요. 그런데 사도 바울처럼 되려고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어요. 한구교회가 이야기하고 목사가 이야기하는 그 나라에 가도 싶지 사도 바울이 이야기하는 천국은 가기 싫어요. 왜냐하면 사도 바울의 이야기에는 조건이 있어요. 살아있는 나를 죽은 자로 확인하는 조건 하에 그 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주님의 안목에 내가 죽은 자가 돼야 돼요. 죽은 자가 되려면 모든 재산을 교회에 바치고 기도원에 가서 사느냐? 아니요. 내 식으로 나를 죽은 자로 만들지 못하는 겁니다. 이게 슬픈 소식이 아니고 돈 좋아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기쁜 소식이에요. 돈을 교회 갖다 바쳐도 절대로 산 자가 죽은 자가 되지 못합니다. 그런데 돈 없이 값없이 죽은 자가 될 수 있어요. 값없이 돈 없이 하니까 갑자기 이사야에 나오는 말씀인데 영생과 관련돼 있잖아요. 영생에 가기 이전에 중간 과정이 있어요. 값없이 돈 없이 죽은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자리를 주님께서 네가 뭘 해도 죄인 된 자리로 바꿔주시면 죄 값은 사망이기 때문에 우리는 죄를 짓고 있는 가운데 이 자리가 죽음의 자리가 되는 겁니다. 부부가 되면 좋은 점이 뭐냐 하면, 부부가 되기 전엔 격식을 갖춰야 된다는 겁니다. 부부가 되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그걸 완료라고 해요. 이미 관계가 완료가 됐거든요. 그래서 내가 과연 주님 보시기에 죽은 자리에 와 있는지 어떻게 아느냐 하면 시제, 시간관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죽님 보시기에 죄인으로 죽은 자가 돼버리면 내가 느끼는 과거-현재-미래는 흐르더라도 그건 완전히 무시되고 주님의 확정된 시간이 주어집니다. 가락 모임에서 했는데 이게 순수과거이에요. 보통 과거는 지나가면 과거가 기억이 될 뿐이에요. 기억하는 당사자가 현재에 속하기에 과거를 기억하는 거예요. 기억은 다른 말로 추억이죠. 옛날 여고생시절을 추억한다는 것은 지금은 여고생이 아니란 뜻이잖아요. 어디까지나 흘러가버린 과거잖아요. 과거가 그립지만 없는 겁니다. 없기 때문에 자꾸 추억하고 기억하는 겁니다. 그래서 현재란 하나님이 주신 인간이 받는 형벌 같은 겁니다. 형벌을 자처하는 게 사랑이에요. 사랑하지 않았으면 이런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 것을. 최초의 라면이 무슨 라면인지 알아요? 아재 개그인데. 바다가 육지라면^^ 그 가사를 보세요. 저는 예수님 말씀이 생각나요. 네가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다면 산을 옮겨 바다에 빠뜨리리라. 아마 애인이 일본으로 간 모양이라. <바다가 육지라면>(조미미) 얼마나 멀고먼지그리운 서울은파도가 길을 막아가고파도 못갑니다바다가 육지라면바다가 육지라면배 떠난 부두에서울고 있지 않을 것을아아 바다가 육지라면눈물은 없었을 것을 그리워한다는 것은 놓쳐버린 대상을 바라보는 형벌 같은 거예요. 그런데 이 그리움이 우리를 살게 만드는 욕망이에요. 자꾸 없는 것을 그리워해요. 그리움 자체도 형벌하고 나도 벌 받고 있고. 주님께서 주시는 순수과거란 쉽게 말해서 등받이 같은 거예요. 등받이는 내 등 뒤에 있지요. 십자가란 순수과거, 이건 나의 현재가 될 수 없는 거예요. 나는 십자가를 기억한다. 불신자입니다. 나는 십자가를 추억한다. 그건 지옥 갈 사람이에요. 현재 십자가에요. 그래서 갈라디아서 3장 1절에 십자가가 눈앞에 보인다. 똑같은 내용이 마태복음 3장에 나옵니다. 세례요한이 하는 말이에요.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지금 여기 와있다 이 말이에요. 가까이 왔다는 것은, 축구할 때 공 간다는 뜻이거든요. 내가 패스할 테니 공 받으란 거거든요. 결국 복음은 시간 안에 있어요. 내가 아는 시간에는 복음이 없어요. 순수과거, 이미 확정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잖아요. 옛날 구약사람들은 십자가 내다보면서 그들은 구원받았고, 그들이 죽고 난 뒤에는 하늘나라에 같이 있었습니다. 엘리야와 모세가 변화산에서 예수님과 이야기한 것 여러분 아시잖아요. 정말 오늘 강의에서 이 점이 어려워요. 법은 나의 과거가 아니라 지금 나와 함께서 있어서 법이 요구하는 대로 우리를 지금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법이 뭘 요구하는지 아직 이야기하지 않아요. 미리 정답을 말하면, 법이 요구하는 것은 영생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이 땅에 살면서 뭘 잃어버렸습니까? 이건 너무 쉬운데. 선악과 따먹었잖아요. 그런데 뭘 못 따먹었어요? 이제 정답을 아시겠죠. 아담과 하와가 생명을 못 따먹었어요. 그러면 생명을 못 따먹은 이유가 뭐냐 하면, 원래 낙원에 에덴동산에 있었으면 따먹을 수 있었을 거예요. 주님께서 생명을 못 따먹게 한 조치가 그곳에 못 있게 만들었어요. 추방되어서 이 땅에 온 거예요. 그러니까 인간이 땅에서 사는 게 정상이 아니에요. 땅에는 비정상인 인간들만 태어난 거예요. 태어날 때부터 비정상이고 전부 다 정신병자들이에요. 정신병자란 제 정신이 아니란 말이죠. 인간이 제 정신이 아니란 말은 다른 정신이 장악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게 악마의 정신. 악마의 정신은 목적이 딱 하나밖에 없습니다. 어쨌든 살아야 되지 않겠느냐? 사는 게 우리 존재의 목적이란 겁니다. 살아야 될 이유가 뭐냐? 살기 위해서. -끝- 머리 허연 여자가 외무부장관 됐잖아요. 그분이 하기 싫다했습니까? 하고 싶다했거든요. 왜 하고 싶었을까요? 겉으로 이야기한 걸 봅시다. 내가 외부에서 얻었던 지식과 지혜로 마지막으로 국가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서 국민을 위해서 봉사하겠습니다. 그 여성은 뭐가 문제냐 하면, 자기보다 더 국가를 위해서 봉사하고 외교적으로 실력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그러니까 자기뿐이라고 내세워야 돼요. 당신을 외무부장관 시키겠습니다. 가만있어 봐요.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 있는지 조사해봐야 합니다. 조사 얼마나 걸리는데? 한 40년 걸립니다. 그러면 안 되잖아요. 기본적으로 안에 들어있는 게 뭐냐 하면, 나는 나를 빛내기 위해서 살아갑니다. 왜 빛내야 되는가? 내가 여기 존재하기 때문에 그래요.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할 때 이유는 딱 하나에요. 내가 여기 존재한다는 자체가 충족적인 이유에요. 교회에서 교인들이 목사 나가세요. 못 나간다. 왜? 나니까. 내가 나가기 싫다는 거예요. 해운대에서 어떤 부자가 만 원짜리, 오만 원짜리 태우더라. 원래 한국에서 화폐를 태우면 법에 어긋나는데 태우더라. 자기 돈 태우는 거나 선탠해서 태우는 거나 똑같은 거예요. 내 돈 내가 하는데 네가 보태준 것 있어? 다른 말로 하면 내가 여기 있으니까 그냥 움직여보는 거예요. 세상 진리는 없지요. 진리라 하는 건 다 핑계고 그 안에는 내가 여기 있다는 거예요. 그 나라는 게 각질이죠. 그 안에 또 들어있는 게 있죠. 뭐가 있느냐 하면 충동인데 그 충동이 인간을 괴물로 만드는 겁니다. 그런데 나만 괴물이 아니고 에브리바디 괴물이거든요. 다 괴물이란 것은 한 사람의 괴물에서 나왔다는 뜻이에요. 아담과 하와. 왜 괴물이냐? 따먹어야 될 걸 못 따먹어서 그래요. 영생의 나무를 못 따먹었지요. 그래서 하는 행세가 못 따먹은 티를 감추고 영생의 나무처럼 흉내를 낼 수밖에 없어요. 돈으로 안 되는 게 어디 있어? 축복? 돈이 복이에요. 복 있는 사람은 날마다 돈을 버는 사람. 이래야 자기가 쓰는 시편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고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이걸 바꾸고 싶어. 돈 있는 사람은 지 쓰고 싶은 대로 쓰는. 마음은 충동은 복 있는 사람은 지 하고 싶은 대로 한다 해놓고, 억지로 읽으려 하니까 찡그려가면서 읽고 오늘도 시편 공부했으니까 진짜 내가 원하는 걸 주셔야 된다고 떼쓰고. 자기 한에 맺혀서. 내가 시편 공부했으니까 내 한은 풀어줘야 되지 않습니까. 왜? 나 여기 있으니까. 우리는 모든 진리를 내가 여기 있음부터 출발해서 진리라고 규정하는 거예요. 내가 원하는 걸 진리라 하는 겁니다. 버스 타고 오다보니까 여자 사장과 직원들이 몇 명이 사무실에 물건을 옮기는 광경을 봤어요. 저 사장님은 사업을 하는 이유가 뭘까? 복음을 위해서? 절대로 그런 생각 안 들어요. 살기 위해서. 그러면 살아가는 주체가 누구냐? 본인이죠. 본인이 살만한 사람인지 죽어 마땅한 사람인지 그 사람이 사업하기 전에 그걸 다 정하고 난 뒤에 했을까요? 그런 걸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했지요.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는 것은 할 짓이 없어서 그 일을 하는 거예요. 농사짓는 사람은 그것 아니면 할 짓이 없어서 하는 거예요. 사업하는 사람도 마찬가지고. 국가를 위해서 공무원 준비하는 사람들 거의 없어요. 역시 60세까지 근무하고 연금 받고 사는 것은 공무원이 최고더라. 자기를 위해서 공무원 하는 거예요. 국가와 국민에서 봉사한다는 말을 날려야 자기 사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그런 멘트를 장착할 뿐입니다. 전부 다 미친 사람이에요. 대외적으로 원하는 것과 돈을 벌려면 남이 요구하는 걸 해줘야 되잖아요. 남들이 요구하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과 안 맞으니까 인간이 찢어지는 거예요. 찢어지면서 계속해서 내 욕구와 욕망과 충동이 작동이 되는데 충동이 아까 실패하면서 만족이 있어야 되는데 충동과 욕망이 오는데 너무 피곤하게 되면 자살로 이어집니다. 살려고 그렇게 애썼는데 이제는 끄집어낼 거짓말이 바닥이 났을 때는 죽는 게 최고 편해요. 그래서 자살하는 거예요. 더는 거짓말 못하겠다. 더는 인 척하지 못하겠다. 가식과 기만의 솜씨가 바닥났어. 그래서 죽는 겁니다. 법은 요구하는 게 있습니다. 생명이 없는 선악과를 따먹지 못한 자에게 법이 온 거예요. 가만있는데 법이 온 거예요. 그런데 법에 마중 나온 인간들은 딱 걸렸어요. 이 법에 살면 지금 내가 사는 방식 그대로 더 오랫동안 번창하고 아무 하자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여기고 그 법을 덥석 잡은 겁니다. 그들이 누구냐? 이스라엘 사람들. 그들은 다 망했습니다. 십계명을 주고 법을 준 이유가 애굽에 살던 속성이 그들은 지리적으로 애굽이란 땅에서 광야로 나왔을 뿐이지 그들의 존재의 위치는 여전히 애굽 사람이에요. 애굽 사람에게 율법이 왔으니까 살려고 지키는 율법이 도리어 그들을 더욱 더 죽게 만들었지요. 정리해봅시다. 하나님께서 법을 주셨다. 인간들은 기본적으로 나는 살아야 한다. 이유가 뭐냐? 살아있기 때문에. 절대 안 죽었어요. 법이 하늘로 주어집니다. 저것 지키면 내가 희망하는 그 낙원, 살더라도 행복하게 살 수 희망은 저 법에 달려있다. 법을 지키자. 십계명 지키자. 만약에 십계명 안 지키면 저주 받아서 사는 데 더 힘들어지고 나한테 손해가 되고 이득이 오지 않고. 만약에 법을 지키면 이득이 되면서, 이득이 된다는 것은 남이 아니라 내가 살고 싶으니까 나한테 이득이 된다고 잡는 겁니다. 그런데 이 법이 누구한테 주어지느냐 하면 중간에 예수님한테 주어집니다. 출애굽기에선 어린양한테 주어집니다. 중간에 가로채기 한 겁니다. 법이 인간에게 주어졌을 때 법은 인간에 본래 담겨있는 괴물적이고 악마적인 품성을 법이 노출시킨 겁니다. 법의 핵심은 십계명이 아니에요. 법의 핵심은 제사법이에요. 제사법은 죽음을 다뤄야 할 법이에요. 죽음을 다루니까 그 죽음은 귀한 죽음이겠지요. 그 귀한 죽음에 어린양이 들어갑니다. 양, 소가 들어가지요. 그렇다면 애굽에 있을 때 그 법을 준 게 아니고 애굽에서 어린양을 통해서 나왔잖아요. 어린양 잡으면 죽음의 사자가 그냥 넘어간다는 아이디어를 그 당시 히브리인들이 지어낸 겁니까?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이 준 거지요. 사람들이 참 기본이 안 된 게 뭐냐 하면, 하나님 쪽에서 뭔가 내려오게 되면 그 결과가 하나님 쪽으로 회수된다는 당연한 논리를 생각하지 못해요. 하나님 쪽에서 나한테 귀결되도록 마감되도록 줬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나는 중간과정으로 거쳐서 주께서 간다는 생각을 못하는 거예요. 주로부터 와서 주로 말미암아 주께로 간다는 생각을 못하고 자기 좋으라고 줬다는 거예요. 그것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을 때 주님의 취지를 몰라서 그래요. 주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왜 쫓아냅니까? 낙원에 있는 두 나무는 너 먹으라고 준 나무가 아니란 말이죠. 생명나무도, 선악과나무도 먹으라고 준 나무가 아니에요. 동산 중앙은 우주의 중심이에요. 우주의 중심에 있는 두 나무 선악과와 생명나무는 따먹으면 안 돼요. 선악과를 따먹고 난 뒤에 생명나무가 따먹을 수 없는 나무인 것이 들통 났지요. 선악과 따먹었으니까 생명나무 허용할게. 이게 아니에요. 선악과와 생명나무는 서로 내부적으로 연결돼있어요. 선악과 따먹기 전에는 그걸 몰랐지요. 알 수가 없는 거예요. 인간은 바보라니까요. 인간은 처음부터 바보가 된 이유가, 자기중심이 아니었음을 모르기 때문에 바보가 된 거예요. 내 중심으로 살면 사는 게 아니고 죽는 짓이란 사실을 아직도 모르고 있는 게 바보에요. 강정화든 문재인도 마찬가지고. 박근혜도 마찬가지고. 최순실도 마찬가지고. 세상에 유명하다는 자들은 죽은 자들이 유명해요. 정작 자기가 죽은 자라고 아는 사람은 인기가 없어서 별 유명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예수란 사람이 역사책에 안 나와요. 나중에 후대에 나오지 그 당시에 그렇게 유명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에게는 순수과거가 아니고 그냥 현재가 되면 사라질 과거에요. 없어질 과거에요. 주님이 의도한 거예요. 그걸 사라지는 매개자라 합니다. 왔다가 빠져버리는 겁니다. 여기서 이분이 하나님의 아들이거든요. 제가 질문할게요.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바치라 해서 바쳤지요. 그러면 아브라함 있고 아들 있고 장작 준비하고 칼, 불 준비했을 거예요. 이삭의 입장에서는 제물이 빠져있지요. 그런데 아브라함 입장에서는 다 마련돼 있어요. 빠진 게 없어요. 그러니까 아브라함과 이삭 사이에 대화가 소통이 안 된다는 말은 각자 자기중심으로 살아가는 거예요. 아버지 입장에서 이삭은 죽어야 될 자로 보지만 이삭 본인의 입장에서는 절대로 죽을 이유가 없는 거예요. 그것이 아브라함언약 안에 신앙 안에 이질적인 두 요소가 함께 들어가 있는 겁니다. 똑같은 아브라함 제사를 드리면서도 동행하면서도 주님이 우리를 보는 것과 내가 주님을 보는 것과 주님이 원하는 이미지가 아니고 내가 살려는 이미지로 주님 이미지를 억지를 붙이니까 우리는 예수를 믿는 게 아니고 예수란 이미지를 경유해서 나 자신의 믿음을 믿는 게 된다니까요. 교회에서 복음을 전하면 뭐합니까? 복음 믿는 나를 믿는데. 제가 던지는 질문은 이겁니다. 거기에 아브라함의 제사에서 사라지는 매개자가 누굽니까? 그건 아브라함도 몰랐고 이삭도 몰랐고. 바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사전에 알려주지 않은 정보가 있었어요. 타이밍 맞추어 수풀에 양이 잡힌다는 그 내용은 없어요. 이걸 가지고 주님이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바꿀 때는 사라지는 매개자가 다녀가야 돼요. 히브리인들이 애굽을 나오려면 그냥 나오면 안 돼요. 사라지는 매개자가 다녀가야 돼요. 그게 어린양이에요. 그 어린양을 제사법을 통해서 광야에서 계속해서 상기시키고 반복하는 겁니다. 매일같이 제사를 드리는 겁니다. 귀한 죽음이에요. 왜 귀한 죽음이냐? 거기는 실체가 없기 때문에. 그냥 낯선 죽음만 남기도 떠나버리면 우리는 매일같이 죽음에서 주님 보시기에 죽은 자에서 산 자로 매일같이 교체가 되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 시간은 흐르지 않아요. 순수과거기 때문에. 이미 우리는 완료된 정지된 시간 속에서 반복적인 모습으로 죽을 때까지 죄만 짓는 사람들이에요. 기쁘게 죄만 지을 수 있는 이유가, 이미 그 죄에 대한 값은 우리 앞에 마주하고 있고 같이 있기 때문에. 주님이 다 용서했다는 십자가, 순수과거로써 온 십자가 앞에서 우리는 죄인이라는 순수과거로 같이 짝을 이루는 겁니다. 10분 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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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199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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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