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의 등받이 170711
20170711a 부산강의 : [시편]2(1편)-율법의 등받이
(강의:이근호 목사)
우리가 몇 년 동안 철학과 복음 이야기를 하다가 지난달부터 시편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철학은 어렵고 성경은 쉽다고 생각하는 데 저는 반대에요. 시편을 보면 성경은 인간의 철학과는 비교 안 될 정도로 굉장히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이유가 뭐냐 하면 철학은 있는 데서부터 있는 대로 가거든요. 있는 데서 있는 걸 설명하거든요. 철학은 아무리 해도 거짓말될 가능성은 없어요. 설명할 대상이 있기 때문에. 그런데 성경은 설명할 대상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눈에 안 보이잖아요. 훨씬 더 어렵잖아요.
그러면 사람들은 어떻게 가장하고 기만하느냐 하면, 없는 예수를 여기 있다고 가장하고 기만하고 그 다음에 성경을 봅니다. 기만은 기만으로 끝나요. 실제로 예수님이 살아계셔서 체험하는 사람과 있다고 신자라고 가장하고 신앙인 척해서 성경 보는 사람은 결국 너무 어려워서 나중에서 철학이 차라리 쉽다고 느껴질 정도로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자괴감에 빠질 거예요. 내가 듣고 싶어 하지 않는 걸 아주 괴로운 일입니다.
여기 있는 나, 여기 존재하는 내가 얼마나 향상되고 개선되는지 그 소리 듣고 싶어 하는데 말씀은 여러분 속에 안 보이는 주님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때문에 자기가 있다고 여기는 사람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없는 존재에요. 정리해봅시다. 성경은 없는 분에 대해서 이야기하거든요. 그런데 철학은 있음에서 있음으로 나오잖아요. 그러면 현재 우리는 뭘 부정하고 부정해도 여기 있다는 걸 부정 못하잖아요. 그만큼 우리를 스스로 보기에 철학적이에요.
여기서 만약에 제가 이 자리에 있지 않고 여기에 펀드매니저 와서 투자할 좋은 펀드 소개할 테니까 여러분에게만 특별히 알려줍니다. 내가 아는 사람 있는데 이번에 이 동네 땅 값 오릅니다. 넣어두시면 열 배 오릅니다, 라고 했을 때 듣기 싫다고 뛰쳐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아주 특이한 사람이에요. 나는 펀드매니저한테 주의 십자가 복음을 듣기 원했는데 그 소리 안 나온다고 나가버리면 다른 사람들이 의아해할 거란 말이죠.
마찬가지로 복음을 이야기할 때 철학 이야기하면 듣기 싫어 나간 사람은 별로 못 봤어요. 그건 평소에 우리들이 정신병자기 때문에 그래요. 정신병자는 다른 말로 하면 비정상이에요. 태어날 때부터 정상이 아니에요. 예수님 보시기에 비정상이에요. 그러니까 예수님의 작업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비정상인 것을 정상으로 만들어서 자기의 나라, 천국에 데려가고자 말씀을 줬기 때문에 그 과정을 우리가 그대로 반복하고 답습해야 돼요. 출발을 비정상으로 하는 거예요. 나는 있다. 이게 비정상이에요. 이것부터 문제 삼는 거예요. 나는 여기 있습니다. 주님은 그게 나와 무슨 상관있는데 그 이야기를 왜 하는데? 하나님에겐 아들이 있는 게 중요하지 내가 여기 있는 건 안 중요하거든요.
사람은 내가 여기 있음부터 시작해서 여기 있는 나를 죽어서 좋은 나라 가게 해주세요, 라고 그렇게 강권하고 요구하는 권리가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겁니다. 교회 나왔으니까 천국 넣어주세요, 라고 한다면, 네가 무슨 권리로, 무슨 자격으로 갈래? 거긴 내 나라야. 네가 가고 싶다고 해서 갈 수 있는 나라도 아니고 가기 싫다고 해서 못 가는 나라도 아니고. 천국은 예수의 나라거든요. 예수님의 나라는 자기 원하는 자만 데려가는 나라에요. 따라서 앞에 무슨 말을 해야 되느냐 하면, 네가 원하는 것을 내가 묵살하겠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너는 묵살당해도 마땅한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는 이야기를 내가 지금부터 할게, 라는 이야기입니다. 그게 성경에서 나오는 겁니다.
소위 복음 아는 교회를 봅시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으로 여기 왔습니다. 제가 설교해서 천국을 보낼 건데 기존교회는 복음이 없기 때문에 못 갑니다. 그러나 나는 복음을 전하기 때문에 내 말 듣고 믿으면 구원받습니다. 얼른 보면 복음이 있는 교회 같지요. 뭐가 빠졌습니까? 과연 내가 그런 덕을 볼 자격이 있는지가 빠져 있지요. 그건 노인 상대로 사기 치는 것과 똑같아요. 여러분 건강을 위해서 귀한 상품 갖고 왔으니 가실 때 화장지 한 통, 계란 한 판 가져가시고 물건 사세요. 이것과 차이점이 뭐예요?
처음부터 과연 우리가 구원받을 자격이 있는 것부터 나와야 된단 말이죠.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내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기대조차도 그게 죄가 될까하는 생각을 갖고 있어야 돼요. 내가 죽어서 천당 가야 한다는 이런 포부, 순박해 보이고 순수해 보이는 우리 입장에선 그런데 그게 순수가 아니라 나를 망치는 화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구원에 대한 욕망의 출처가 수상해요. 주님한테서 나온 게 아닙니다.
내가 존재하는 것부터 출발하면 이런 실패는 늘 나오는데 우리가 약간 위로가 되는 것은, 이런 실패는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