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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170707a 울산강의-레위기 10장 : 제사 안에서자유게시판레위기

20170707a 울산강의-레위기 10장 : 제사 안에서(강의:이근호 목사) 레위기 10장 12절부터 하겠습니다. 제가 읽어볼게요. “모세가 아론과 그 남은 아들 엘르아살에게와 이다말에게 이르되 여호와께 드린 화제 중 소제의 남은 것은 지극히 거룩하니 너희는 그것을 취하여 누룩을 넣지 말고 단 곁에서 먹되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 네 응식과 네 아들의 응식인즉 너희는 그것을 거룩한 곳에서 먹으라 내가 명령을 받았느니라 흔든 가슴과 든 뒷다리는 너와 네 자녀가 너와 함께 정결한 곳에서 먹을찌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의 화목제 희생 중에서 네 응식과 네 자손의 응식으로 주신 것임이니라 그 든 뒷다리와 흔든 가슴을 화제의 기름과 함께 가져다가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을찌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대로 너와 네 자손의 영원한 응식이니라” 이것 안 하면 지옥 갑니까? 방금 읽은 본문을 보면서 우리의 느낌은 뭐냐 하면, 하나님께서 너무 잔소리가 심하다는 겁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규칙이 너무 많아요. 모세가 이걸 제사장에게 지시합니다. 제사장 나라지만 모세가 제일 지도자고 그 밑에 아론이 있고 아론의 자식들이 있어요. 모세가 하나님과 직접 통하는 자리에 있기 때문에 이러한 계명을 언급할 때 계명을 받은 제사장과 아론과 오늘날 이 본문을 보는 우리의 느낌은 계속해서 숙제 같은 과제가 인간 쪽으로 넘어온단 말이죠. 그럴 때 주신 과제를 지켰다면 그 다음에 없느냐? 다른 과제가 또 주어질 거잖아요. 또 주어진 과제 지키면 지난 과제는 더 이상 묻지 않는 거예요? 그게 아니고 지난 번 과제에 엎친 데 덮치는 식으로 계속 과제가 누적이 되고 누적이 되겠지요. 그러면 이걸 다 지킨다는 것은 우리 사적인 개인생활은 언제 합니까? 티비는 언제 보고 영화구경 갈 시간도 없는데? 이것 한다고. 연애할 시간도 없겠다. 한 번으로 끝날 것이면 눈 감고 해드리자고 해치우면 되는 데 계속해서 주어질 건데 나중에 그 무거운 짐을 지다 자빠지고 엎어지지요. 어떤 여자가 시집갔는데 1월에 제사 지냈단 말이죠. 제사 지내보니까 너무 힘들어요. 1년에 제사 한두 번이면 지낼만하겠지. 1년에 한두 번이 아니고 한 달에 두 번, 2월엔 보름까지 해서 세 번, 3월엔 네 번이라면 숨 못 쉽니다. 이혼 감이에요. 이래서는 더는 못 산다고 나오겠죠. 사람들이 레위기 대목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느냐 하면, 안 지켜도 되는 어떤 묘책을 내놓든지, 이 이야기 몰라도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해주시든지, 이것 안 지켜도 다른 것 지키면 구원해주시든지, 레위기 10장 내용을 몰라도 구원에 지장 없도록 해주시든지, 그럴 경우에만 나와 상관없으니까 그냥 보자, 그렇게 되겠는데 만약에 레위기 10장 봤어? 그런데 넌 왜 안 지켰어, 라고 닦달내면 우린 못 견딥니다. 그래서 이걸 보면서 우린 굉장히 힘들어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될 게 있어요. 오늘 레위기 10장 12절부터 하는데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우리는 십자가 또는 예수님이 중보자로 오셔서 예수님의 공로로 하늘나라 간다. 이건 확정된 거죠. 확정된 복음으로 우리는 받아들입니다. 오늘 본문은 레위기 10장이란 말이죠. 모세가 잔소리를 되게 합니다. 무슨 말인지도 몰라요. 음식은 아는데 ‘응식’은 또 뭡니까? 무슨 이런 단어가 있는지. 도대체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면 되는데 레위기 10장 당시에 모세가 딴소리하지 말고 그 당시에 미리 당겨서 모세가 예수님 소개하면 되잖아요. 오늘 본문에 예수님 이야기 하나도 없단 말이죠. 이방인인 우리는 조상 제사도 안 드리는데 이런 제사 있겠어요? 이것까지 주어지면 우리는 어떻게 하라고? 지금이라도 양 한 마리 잡을까요? 양 잡아도 안 돼요. 옷도 맞춰야 되고, 한두 가지가 아니란 말이죠. 레위기 10장에 이르는데. 따라서 결국 우리와 상관없는 거라면 아예 안 봐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어요. 내 구원과 관련이 없다면 그냥 넘어갑시다, 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넘어갈 수 있다면 레위기 10장이 여기 적혀있겠습니까? 이게 다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돼있습니다. 레위기 10장과 연관된 예수님과 레위기 10장을 모르는 예수님이 다릅니다. 예수라고 해서 다 구원받는 게 아니고 레위기 10장 내용과 관련지어진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는 거예요. 따라서 예수라는 껍데기 안에 레위기 10장을 채웁시다. 만두 속 넣듯이 찐빵 앙꼬 넣듯이 우리가 흔히 아는 상식의 예수님에다 레위기 10장을 채우면 되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채우는가? 그건 제가 설명해드리겠습니다. 16절부터 20절에 나오는데 간단하게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모세와 모세의 지시를 받은 아론이 의견충돌이 일어났습니다. 이건 반란이죠. 이건 도발한 거예요. 감히 그 당시 하나님의 중계자라 할 수 있는 모세에 대해서 아론이 달려들고 놀라운 반발을 하는 겁니다. “모세가 속죄제 드린 염소를 찾은즉 이미 불살랐는지라 그가 아론의 남은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노하여 가로되 이 속죄제 희생은 지극히 거룩하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거룩한 곳에서 먹지 아니하였느뇨 이는 너희로 회중의 죄를 담당하여 그들을 위하여 여호와 앞에 속하게 하려고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 그 피를 성소에 들여오지 아니하였으니 그 제육은 너희가 나의 명한 대로 거룩한 곳에서 먹었어야 할 것이니라”(16~18) 모세가 조카들을 나무라요. 그런데 그 당시 유대인들은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만 오늘날 우리는, 울산중공업 다니는 사람들이 무슨 의미인지 알겠어요? 속죄제 제물에 두 종류가 있어요. 제사장을 위한 속죄제물은 먹지 말고 제단에서 다 태워야 됩니다. 그런데 일반인들의 속죄제물은 제사장이 일부를 반드시 먹도록 돼있어요. 그런데 모세가 보니까 고기를 안 먹은 거예요. 그래서 모세가 화를 내면서, “내가 규례를 아는데 너희들이 왜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왜 안 먹었어!” 상급자가 밑에 제사장들을 나무랐단 말이죠. 그러면 잘못됐습니다, 라고 하면 독자들이 납득이 되거든요. 역시 아론도 인간인지라 실수했구나, 하겠는데 18절에 보면, “그 피를 성소에 들여오지 아니하였으니 그 제육은 너희가 나의 명한 대로 거룩한 곳에서 먹었어야 할 것이니라”라고 고기를 먹어야 했었다, 라고 하니까 19절에 하는 말이, “아론이 모세에게 이르되 오늘 그들이 그 속죄제와 번제를 여호와께 드렸어도 이런 일이 내게 임하였거늘 오늘 내가 속죄 제육을 먹었더면 여호와께서 어찌 선히 여기셨으리요 모세가 그 말을 듣고 좋게 여겼더라” 이게 무슨 말이냔 말이죠. 상당히 어렵지요. 이게 대드니까 어려운 거예요. 어딜 감히. 시내 산에서 직접 하나님 만나서 명령 받은 사람에게 아무 소리 말고 잘못됐다고 하면 되는데 시키는 대로 안 해서 죄송합니다, 하면 되는데 막 대드는 거예요. 지가 어떤 의견이 있는 것처럼. 이것이 오늘날 레위기 10장이 담긴 예수님이 우리에게 다시 다가와야 돼요. 이걸 설명하기 위해서 두 개의 단어를 적어보겠습니다. 법칙과 규칙, 이 두 단어를 차이를 두겠어요. 법칙은 이미 확정된 겁니다. 모든 내용이 확정됐으니까 폐쇄적입니다. 융통성이 없어요. 반드시 지켜야 돼요. 규칙은 그때그때 주어진 새로운 상황에 따라서 유도리라 하지요. 융통성을 가질 필요가 있을 때는 폐쇄적이 아니고 미확정적이고 개방적이에요. 법칙이란 모세의 의견이에요. “일반인들이 드린 속죄 제물에 대해서 제사장이 먹으라 했는데 왜 안 먹었어?”라고 했고, 아론의 주장은 규칙에 해당되는 겁니다. 법칙대로 했어도 우리 아들 둘 죽었잖아요, 하는 겁니다. 누가봐도 아론의 아들 아답과 아비후가 향로 불 잘못해서 죽었잖아요. 아론은 그렇게 해석하지 말자는 겁니다. 이게 굉장히 어려운 거예요. 향로 불을 바치는 것이 법칙으로 작용해서 죽은 게 아니고 그 향로 불과 관련 없이 아답과 아비후는 하나님 보시기에 죽을만해서 죽었다고 이해해야 된다는 겁니다. 겉으론 하나님 보시기에 향로 불은 핑계고 그 두 아들은 언젠가는 또 다른 이유로 하나님 앞에 죽어 마땅한 존재로 우리 앞에 시범 조로 제시됐다는 겁니다. 무엇이 잘못되어 죽었다면 잘못된 게 원인이고 죽음이 결과가 되잖아요. 그런데 그걸 뒤집어보자는 겁니다. 죽이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향로 불을 빌미로 삼았다고 보자는 겁니다. 그렇다면 나답과 아비후는 죽음으로써 인간들이 이해하는 제사법이 더 이상 수정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그것에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내가 생각하는 법칙이 율법이 포함하고 있는 내용의 전부가 아니라는 이야기에요. 되게 어렵지요.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서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다. 나는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묻습니다. 그게 맞는다고 생각하나? 저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믿습니다. 맞습니다. 만약에 그 내용이 아니라면 그게 전부가 아니라면 어떻게 할래? 저는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법칙으로 했는데요? 그렇게 이야기한 것이 만약에 52살 때라 합시다. 그리고 53살까지 산다고 칩시다. 52살 때 예수님 십자가 피로 용서받는다는 걸 알았다면 그 법칙이 53세 때도 똑같은 이야기한다고 해서 52세 때 이야기한 사고방식이 그대로 인수받았을까요, 달라졌을까요? 같을 내용일까요, 다른 내용일까요? 달라져요. 왜? 내가 다르기 때문에. 내가 달라졌어.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찬송가를 처음에는 눈물 흘리면서 불렀습니다. 그런데 3년 6개월 7일 만에 그 노래를 불렀을 때 눈물 납니까? 4절까지 지겨워죽겠다. 3절이면 좋았을걸. 찬송가는 왜 이렇게 길어. 유행가는 2절로 끝인데 찬송가는 4절까지. 왜 같은 찬송가인데 시간이 좀 지났다고 별 감흥이 없는 이유가 뭡니까? 찬송가는 안 바뀌었어요. 시시각각으로 내가 바뀐다고요. 52살에 십자가 알았다고 53살에 써먹을 생각하지 마세요. 율법은 우리가 생각하는 법칙이 아닙니다. 율법은 인간의 입장에서 늘 바뀔 수밖에 없는 규칙의 입장에 있어요. 그런데 규칙은 주님 쪽에서 바뀐 게 아니고 우리가 바뀌니까 바뀌는 나를 끝까지 따라붙기 위해서는 변신과 변신을 계속해서 반복되는 겁니다. 갱신과 갱신을 계속하는 거예요. 이래서는 무슨 뜻인지 모를 테니까 제가 어떤 문장을 이야기할 테니까 사실은 방금 이야기한 것보다 더 어려운 이야기지만 들어나 놓으세요. “세상사는 인간 힘으로 좌우되는 게 아닙니다.” 맞아요, 틀렸어요? 맞지요. 지금 우리나라에 비가 안 와서 가물지요. 여기선 비 오는지 모르지만 대구는 십일 동안 3미리 왔어요. 일주일 동안 비 한 방울 구경도 못했어요. 그러면 농사짓는 사람들은 걱정되지요. 그런데 왜 걱정합니까? 지구 담당자가 누굽니까? 하나님이죠. 지구가 하나님 것으로 하나님 자기 마음대로 관리하는데 제 삼자가 왜 주제넘게 끼어듭니까? 제대로 알아서 관리하고 있는 거예요. 이스라엘은 3년 6개월 동안 비 한 방울 안 왔습니다. 비 안 오고 굶어죽지요. 죽으라고 비 안 온 거예요. 죽어야 될 인간이 살아나면 하나님이 관리 잘못하신 거예요. 죽을 자는 죽이고 살릴 자는 살려요. 왜냐하면 이 세상 담당자가 주님이기 때문에. 그걸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세상사는 인간 힘으로 좌우되는 게 아니다. 이게 맞다고 동의했습니다. 그러면 이 말은 맞습니까? “세상사는 하나님에 의해서 좌우된다.” 이 말이 맞아요, 틀려요? 세상사는 인간의 힘으로 좌우되는 게 아닙니다. 반대로 세상사는 하나님에 의해서 좌우된다. 이것도 틀린 말이에요. 그러면 바른 말은 뭐냐 하면, “세상사는 하나님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힘으로 좌우된다.” 이게 맞는 말이에요. 앞의 말과 다른 점이 뭐냐 하면, 앞에는 문장이 하나밖에 없는데 뒤에 이야기하는 것은 두 문장을 합친 게 차이 나요. 이게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우리 인간 입장에서는 세상만사는 하나님 뜻으로 된다는 말을 하나님이 정답으로 쳐주질 않아요. 왜냐하면 무책임하기 때문에. 내가 하는 일은 하나님이 다 시켜서 하는 것이기에 난 책임 없다. 이게 얼마나 얍삽한 짓이고 무책임한 짓입니까? 남을 때려놓고, 도둑질해놓고 이건 하나님이 허락해서 한 일이니까 내 책임 아니다. 이게 얼마나 싸가지 없는 짓이에요. 지구에 비 안 오는 것은 하나님 뜻이지 내 뜻 아니다. 그래서 죽을래? 논에 물 안 대고 넌 놀래? 사람들은 법칙을 무엇과 연관시키느냐 하면, 하나님과 연관시키는 거예요. 그런데 법칙과 규칙 둘 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연관시키는 겁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어떤 율법을 줬다고 할 때 율법의 뉘앙스가 법칙에 해당돼요. 그래서 인간은 어떤 실수를 하느냐 하면 나는 법대로 했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책임 없고 죄인 아닙니다, 라는 실수를 하는 거예요. 나는 어릴 때부터 십계명 지켰습니다. 영생 얻기 위해서 뭐가 필요한지 알려주시면 또 지키겠습니다. 이게 마태복음 19장에 나오는 부자 청년의 치명적인 실수였어요. 십계명을 법칙으로 본 거예요.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준 법이기 때문에 성경 말씀이기 때문에 이거 그 자체로 완벽하다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께선 그게 듣기 싫은 거예요. 왜냐하면 성경말씀이 오류 없고 완벽하다는 그 고백이 인간 입에서 내뱉기 때문에. 인간 입에서 내뱉는 그 주둥이가 미워. 어떤 분이 이런 이야기했어요. 누가 복음을 전하는데 그 복음의 내용에 하자가 무엇입니까, 복음의 내용에 문제가 있습니까? 복음은 아무리 전해도 하자가 발생되게 돼있어요. 왜냐하면 인간이 전해서 누구 한 명도 구원 못 받아요. 성령이 오셔야 구원돼요. 말발 좋고 설득 잘한다고 구원받는 게 아닙니다. 구원은 성령의 몫이지 인간 전도자의 몫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한 명도 구원 못했어요.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고. 천국 가 보세요. 주님이 알아서 구원한 사람이에요. 어떤 사람이 구원할 수 있습니까? 구원할 수 없습니다. 불교 좀 안다는 사람과 복음 아는 사람이 대화한다고 하면, 불교 알고 인문학, 철학 좀 공부한 사람은 소위 기독교인들의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 미리 반박할 준비를 해요. 날 설득해서 신자 만들어봐. 사도행전에도 나오잖아요. “아그립바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아그립바가 바울더러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바울이 가로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 뿐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노이다 하니라”(27~29) 만약에 이렇게 이야기해봅시다. 성경 말씀에 예수 믿지 않는 자는 영생이 없고 저주가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구원을 받습니다, 라고 이야기하면 저쪽에선 기다렸다는 듯이 그 성경 누가 썼는데? 내가 알기에는 성경을 누가 쓴 게 아니고 나중에 편집했는데 편집한 내용이 온전치 못해서 도마복음을 집어넣느냐, 마느냐 지금도 의견이 분분한 그러한 미확정적이고 불완전한 성경책으로 인간이 만든 저서를 하나님의 책이라고 우기면서 나한테 들이미느냐, 라고 이야기하면 여러분은 뭐라고 하겠습니까? 성경에 보니까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3:16,17) 이건 성령으로 썼습니다, 라고 궁색한 변명을 하게 되면 안 믿는 사람, 공부 좀 한 사람이 그 내용도 성경 안에 있잖아. 성경 바깥에서 이야기해. 성경 바깥의 하나님의 어떤 뜻으로 이야기해야지. 성경으로 공격하려고 했는데 성경 덮자고 하면 졌다고 할까요? 안 믿는 사람의 특징은 뭐냐 하면, 있음에서 나와요. 그 있음 가운데 풀도 새도 있지만 가장 확실한 것은 내가 여기 있다는 거예요. 있는 내가 죽어서 천국 가든 지옥 가든 결정은 내가 한다는 거예요. 내 앞에 있는 네가 하는 말이 납득되면 믿어줄게. 있음에서 있음으로 출발해요. 성경책으로 들이대면 성경도 거기 있잖아요. 모든 것이 있음이 돼버려요. 그러면 복음 아는 사람은 이렇게 해야 돼요. 있는 것 말고 없는 걸 이야기해야 돼요. 성령께서 말씀하시기를 예수를 믿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을 얻으리라 했습니다. 그러면 저쪽에선 성경이야기하다 자기 공격에 차질이 일어났지요. 어? 성령께서? 성령은 눈에 안 보이니까 빼고 이야기하자고 하겠지요. 바로 네가 판단하고 있다고 하기 때문에 네가 생각하는 그것은 성령이 하시는 일을 놓치고 있다고 이야길 해야 돼요. 나는 내가 아는 게 전부기 때문에 그 안에서 이야기하는 자체가 잘못이에요. 그것은 바로 성령이 하는 일을 못 보니까 놓치고 있는 거예요. 모세가 율법 안에서 이야기하자는 거예요. 나는 하나님께 이런 지시를 받았다는 거예요. 일반인들이 드린 속죄제는 고기를 먹는 것이 법칙에 맞는다는 겁니다. 아론이 말하기를 모세가 말대로 그렇게 하든, 안 먹든 간에 나답과 아비후가 죽었지요. 그 죽음 앞에서 그런 규칙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말이죠. 이게 19절에 “그 속죄제와 번제를 여호와께 드렸어도 이런 일이 내게 임하였거늘” 자기 두 아들이 죽은 일이 벌어졌는데 그까짓 것 먹고, 안 먹고 그게 무슨 의미가 되느냐 그 말입니다. 그렇게 하면 죽은 아들이 살아 돌아오느냐 말이죠. 아니거든요. 당신 말대로 법칙을 완벽하게 지켰다고 자부한들 하나님이, “너희들의 완벽함을 당할 수가 없네. 너희 소원대로 너희들에게 일임하마.” 이렇게 나오시겠느냐 이 말입니다. 여러분도 사회생활하면서 그런 경험 많잖아요. 아들 수능 앞두고 평소에 안 하던 짓을 해요. 갑자기 성경을 보다든지 새벽기도에 나간다든지 발등에 불이 떨어졌으니까 뭔가 해야 되지 않습니까. 갑자기 열심 내고 교회 충성도 하고 그동안 몇 번 빼먹은 십일조도 한꺼번에 완납하고 해서 아들 수능 점수가 중요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잘 보인다고 하거든요. 보통 열한 시 10분에 오던 사람이 갑자가 열한 시 10분 전에 와서 준비 찬송도 같이 하고. 이렇게 한 이유가 발등에 불 난 게 있기 때문에 하는 거예요. 마음을 정갈하게 하고 조신하게 하고 나쁜 생각, 나쁜 행동 멀리하고 했는데 점수가 예상대로 안 나왔어. 여러분 어떡하면 좋아요. 자기 딴에 온갖 아양을 다 떨었는데. 거기다가 아들이 엄마 약을 올리네. 엄마, 기도발 영 시원찮네. 엄마 신앙까지 의심합니다. 엄마가 신앙적으로 권위를 갖춰야 엄마 말발 하나하나가 아들에게 진리로 전달되는데 아들은 그걸 지켜보면서 믿을 마음 준비를 했는데 점수는 깎였을 때 재수는 따 논 당상이라. 그럴 때 여러분은 마음정리는 어떻게 합니까? “세상일은 하나님 마음대로 하는구나.” 이렇게 하죠. 그게 아니란 말이죠. 역시 이근호 목사 말이 맞아. 세상은 주의 뜻대로 하는 거야. 자꾸 내 핑계 대지 마세요. 그게 하나님 주권이 아니에요. 하나님 주권은 없어요. 하나님을 법칙화시킨 이것을 실패로 끝나도록 한 게 하나님 일입니다. 내가 이런 짓거리해서 하나님을 좌지우지 하고 조정하려 한 은근히 숨어 있는 그 자체를 무산되게 만들 때 그 사람은 복 받은 겁니다. 하나님은 저기 전능하신 분으로 계신 분이 하나님이 아니고 내 행동에 따라서 달리 반응하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내가 모든 걸 포기했을 때 예상 밖의 기쁜 일이 생기도록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모든 걸 포기했을 때 예상 밖의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이에요. 그런데 전번에 예상 안 했더니만 복을 주셨잖아요. 따라서 이번에도 예상 안 하면 복 주시겠지 기다리다가 그걸 무산시키는 분이 하나님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일이란 나 하기 나름이에요. 내가 어떻게 하든 나는 되어지는 모든 일에 대해서 영향력을 줄 수 없음을 이론이 아니고 내가 그 실습에 참여케 해서 깨닫게 합니다. 요새 티비에 요리하는 것 많아 나오죠. 그걸 보게 되면 누구나 그렇게 할 것 같아요. 막상 레시피대로 직접 요리하게 되면 예상 밖에 끊어야 될 것들이 너무 많아요. 전화가 와도 받지 말아야 되고 그렇게 집중할 때 내가 예상한 대로 안 돼요. 그럴 경우에 어떻게 하느냐 하면 내가 요리한다고 될 리가 없어. 초반에 포기할 마음을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면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간에 되게 맛있는 음식이 돼요. 짜도 맛있어요. 이게 뭐냐 하면 내 자신이 애초에 내 성과를 눈으로 목격하겠다는 기대를 처음부터 포기했기 때문에. 스스로 자기를 거기에 대해서 걸치지 않았기 때문에. 이게 자기 부인이라는 겁니다. 아론이 하는 이야기는 이겁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실 때는 율법을 지키는지 여부에 따라 벌이 오는 게 아니라 주님께서는 그 벌조차도 새로운 율법으로 추가된 내용으로 우리에게 새롭게 인식하게 되는 관계 속에 놓여있다는 것이 아론의 생각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여기 있고 우리가 여기 있고 중간에 제사법, 율법이 있다. 이건 맞는데 맞는 게 맞는 게 아니라니까요. 율법으로 우리를 덮쳐버려요. 마치 지붕이 무너지는 것처럼. 하늘 있고 지붕 있고 방안에 내가 누워있다. 맞지요. 그러나 하나님이 위에서 누르면 지붕이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은 고려 안 합니까? 그들은 고려 안 해요. 왜 그러냐 하면 하나님 있고 지붕 있고 방 있다는 것을 내가 알았기에 설마 이걸 아는 나에게 하나님께서 지붕을 누를 리가 없을 것이라고 자기의 안전과 자기 행복을 하나님을 이용해서 먼저 챙기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겁니다. 율법은 우리 좋으라고 있는 게 아니에요. 율법은 앞에 다가올 재앙을 미리 대처하라고 준 게 아니란 말이죠. 오히려 반대입니다. 주님이여, 어떤 재앙이 오더라도 저는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런 인간으로 변하라고 율법을 준 거예요. 하나님을 사랑하기는커녕 자신을 사랑해서 자신은 손톱만큼도 다치지 않도록 그저 하나님께 안부하는 쪽으로 빌고 순종하는 것, 그건 전혀 율법의 정신과 동떨어진 거예요. 그건 신앙이 아니고 이용입니다. 그건 잘못된 거예요. 당하면 당할 때도 감사히 당해야지요. 가만있는데 지붕이 무너졌다? “아이고, 안 됐네.”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것 틀린 말이에요. “이번 기회를 통해서 나는 죄인인 것을 알았습니다.” 이게 정답이에요. 나는 가만있는데 하나님이 눌러서 무너졌으니까 내 책임 아닙니다. 이게 정답이 아니고, 우리 집이 폭삭 망하고 난 뒤에 내가 그동안 평안한 것도 나의 오만이었고 내가 마땅히 평안해야 돼, 라고 한 것도 자만이었습니다. 나의 객기였고 나의 시건방짐이었습니다. 자인하는 기회를 주께서 주신 거예요. 그러니까 제사법이나 모든 것 하나하나가 예수 그리스도에 내용을 집어넣어봅시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려 오신 분이 아니죠. 우리를 박살내려 오신 분이죠.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박살나도 마땅한 자고. 예수님이 이런 말했다고요. 세리와 창기가 너희보다 먼저 천국 간단 이야기를 했잖아요. 왜 세리와 창기를 주께서 거론했느냐 하면, 그 당시에 세리와 창기가 가장 지탄받는 사람들이었어요. 지탄받을 만하지요. 더럽게 돈을 벌었잖아요. 돈을 벌어도 정말 지저분하게 돈을 벌었잖아요. 남의 가정 파탄 나든 말든 지 입에 밥 들어가면 최고다. 그게 창녀가 그게 세리란 말이죠. 남이야 죽든 말든. 돈이란 흐름이 제한돼있거든요. 내가 과도히 가져오면 나 때문에 우는 사람이 많거든요. 세리와 창기는 난 몰라. 나만 배부르면 그만이야. 이런 짓거리한 게 세리와 창기에요. 그런데 주님께선 세리와 창기가 천국에 먼저 간다고 했지요. 그러면 우리는 다 세리와 창기가 될까요? 그런 뜻이 아니고 주님 앞에서는 누구든지 세리와 창기와 다를 바 없다는 것. 주님께 구원받을 때 나는 세리라서 감사해요. 이럴 게 아니고 너는 세리, 창기 이전에 죄인이야. 구원하는 것은 예수님 몫이거든요. 오늘날 구원은 이미 죽으신 분의 힘이 우리를 자기 죽음의 세계 속으로 끌고 가는 그 힘이 구원의 힘이에요. 죽음의 힘이 나를 끌고 갈 때 구원된다 이 말입니다. 살아있는 내가 발광해서 구원되는 게 아니고 죽음 저편에 성공적으로 건너가신 분의 힘, 그게 성령의 힘이거든요. 그 부활의 힘으로 우리에게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우리를 질질 끌고서 죽음으로 들어가는데 성공하게 만드십니다. 십자가와 부활에 이를 때까지 주님의 모습은 뭐냐? 죄도 없으시면서 죄인의 모습으로 아버지 앞에 끌려갔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시건방지게 맨날 죄 지으면서도 마치 얼추 의인인 척하는 우리를 주님께서 가만두지 않지요. 말씀으로 우리를 죄인 만들어버려요. 그 만드는 방법은 나름대로 율법 지켰다고 하고 아들 수능 치는데 겸손했다고 했는데 전혀 우리 예상대로 안 되게 될 때 우리로 하여금 죄인이란 소리가 절로 나오게 만듭니다. 우리 뜻대로 안 되는 것 중에 아들 수능 점수가 떨어지고 얘가 아픈 것만 있는 게 아니에요. 그냥 던져놓은 땅인데 갑자기 건물 짓는다고 건설회사에서 산 값에 백배를 쳐준다고 제발 팔아달라고 나올 때 우리 입에서 감사합니다, 라고 하면 안 되고, “주여 죄인입니다.” 이렇게 나와야 돼요. 갑자기 쓸모없는 땅 도로 난다고 해서 보상금 받은 경험들 없어요? 보상금 받고 갈등 생기지 않던가요? 도대체 이 보상금의 몇 프로를 헌금해야 할지 갑자기 그 걱정이 들지 않던가요? 인간 속에 얼마나 악마의 유혹과 욕망이 겹겹이 쌓였기에 주께서 떼도, 떼도 계속해서 나와요. 계속해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뽑아내는데 52살에 얼추 다 나왔다고 했는데 53살, 54살에도 나올 게 또 있고. 70살에 나올 게 또 있고. 그렇게 나올 때 우리는 얼마나 변명을 합니까? 십자가 복음을 압니다. 성경말씀 압니다. 알면 뭐합니까? 그게 아는 거예요? 네 행동하는 것 봐서 진짜 그게 아는 것인지 착각한 것인지 정말 안다면 죄인 중에 괴수란 말이 나올 것이고, 하필이면 저에게 이런 재앙을 주십니까? 네가 뭔데? 네가 뭐 특별하다고 하필 저에게, 라고 하는 거야. 평소에 우리가 자신에 대해서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는 거예요. 십자가 앞에서 벽에 고정된 십자가가 아니에요. 집에 있더라도 떼란 소린 안 하겠는데 십자가가 우릴 갖고 놉니다. 울산 바닥에서. 매일같이 십자가로 우릴 활용해요. 십자가가 율법의 완성이거든요. 우리는 십자가를 법칙화시키지만 주님께선 십자가를 규칙화시켜요. 오늘까지 알고 죽으면 되는데 내일 또 살면 내일치의 십자가에 담긴 내용이 새롭게 규칙이 갱신 됩니다. 그렇게 갱신되면 우린 지식을 확보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주님의 십자가에 놀아난다는 이것이 중요해요. 십자가에 놀아날 때 우리는 십자가의 증인되는 겁니다. 여러분이 말씀을 위반할 때 죄의식을 느끼던가요, 아니면 불행할 때 죄의식을 느낍니까? 어느 쪽입니까? 여러분이 기분이 안 좋을 때 죄의식을 더 느끼지 않습니까? 요새 우울해. 내가 무슨 죄 지었나? 요즘 내가 왜 불행하지? 그만큼 사람들은 말씀 모르고 자기의 행복이냐, 불행이냐 기분 따라서 그때그때 말씀을 이해한다, 한계가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면서 10분간 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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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