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락-요한복음14장20절(체험)170705a-이 근호 목사
가락-요한복음14장20절(체험)170705a-이 근호 목사
시작하겠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0절. 그 20절 전에 19절을 보게되면 '조금있으면 세상이 나를 다시 보지 못할 터이요 세상은 나를 보지 못할 터이요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이렇게 되어있지요.
구획이란 말이 있습니다. 영역을 둘로나눈 것을 구획이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되고, 예수님을 함께 있지 아니하면 예수님을 보지 못하는 것 동시에 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산다는 것의 개념이 둘로 나누어지게 됩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을 경우에는 살고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 라는 것을 어떻게 아느냐 하면은 예수님께서 따로 세상을 떠남으로 떠남으로서 비로소 그것이 확인되겠지요. 같이 있을때는 둘다 살아있는걸로 보인다. 같이 있을때는 둘다 살아있잖아요. 살아있으면서 '내가 보이나? 안보이나?' ' 안보입니다.' '그럼 죽었다.' 그럼 이렇게 되는 거예요.
같이 있을때는 같이 있으니까 너도 인간이고 나도 인간 같은 인간인데 주님이 떠나면서 나는 떠난다고 말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는 떠나는 동시에 살 사람은 나와 함께 있을 경우에만 살 사람이 된다는 말은 이쪽 영역에서는 전부다 살지 못하는 사람, 죽은 사람 되는 거예요. 그렇다면 죽다 살았다 하는 그 토대가 무엇으로 정해지냐 하면은 이겁니다.
'예수님과 함께' 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흔히 이것을 영생이라 하지요.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 이것은 사나 죽으나 영생 얻은 사람이고 '예수님이 갔데 갔어 이제는 안보인데 예수님은 안보여 이제 갔어 한때 살았는데 갔어.' 이렇게 되버리면 그 사람이 어떤 아무리 숨을 쉬어도 죽은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갔어. 가버렸어. 안보인다.' 그렇다면 그들입장이 그렇게되면 예수님이 가버린것이 뭐가 되었냐하면 이게 고아가 되거든요.
집사님이 아까 질문했기때문에 할수 없이 어렵게 할수 밖에 없는데 '옛날에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있었는데, 이 로마 유대인 있었는데 그 사람이 십자가 지고 이제는 갔데. 제자들도 고기잡으러 가고 다 흩어졌데.' '그랬어?' 그럼 이것은 뭐가 되요? 이것은 과거가 되요. 과거
그들은 어디에 살고? 현재에 살고 있고 현재가 되는 동시에 과거는 예수님은 과거의 인물이 되어버리는 겁니다. '아 옛날에 그런 분이 사람이 있었지. 한때 시끄러웠는데 이제 조용해.' 과거가 되잖아요.
이 과거를 순수과거로 만들어 버리면 순수과거란 현재에 포함되지 않는것, 이것이 순수과거입니다. 영원히 과거로 남는거예요. 영원히. 보통 과거가 현재 되어버리면 현재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현재가 현재되기 위해서 밑에 층층이 과거가 누적이 되고 쌓이게 되어있어요. 그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올라올수 없잖아요. 그런데 현재로 전환되지 않는 현재로 나타나지 않는 그러한 과거가 있다면 이것은 현재에 의해서 현재라고 하는 그 자체가 이미 과거와는 다른 영역에 속해버린다는 말이죠.
그것이 순수과거인데 순수과거는 어떤 뜻을 갖고 있냐하면은 이미 다 이미 과거에 다 이루었다. 다 이루었기 때문에 이미 그때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기 때문에 지금 아무리 현재가 되고 미래가 된다 할지라도 이미 의미와 핵심과 중심은 순수과거 그 사건이 이미 핵심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그것은 뭐가 되느냐 하면은 이것이 되는 것입니다.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세상의 중심이 되어버려요.
지금은 젊은 분들이나 현대인의 문제점은 딱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중심이 없습니다. 그냥 휩쓸려져 갑니다. 휩쓸려져 가고요. 제 4차 산업 이건 미래잖아요. 그럼 제 4차산업을 기대한다는 것은 현재도 후딱 날라가 버릴수 밖에 없는 현재입니다. 과거에 살았지만 과거도 날라갔어요. 지금은 현재가 있습니다만은 내일되면 오늘도 날라가 버려요. 그럼 그런사람이 묻는겁니다. '당신은 어디로 갑니까? 어디를 향하여 가죠?' '어휴 뭐 살만큼 살지 뭐, 갈때가지 가보지.' 이거거든요. 갈때까지 가보는 거예요. 그 말은 다른말로 하면 중심이 없어요. 중심이. 아무 중심이 없는 거예요.
마태복음 7장 마지막에 보면 모래위에 지은 집이란 말이있죠. 모래위에 지은 집이라는 예수님께서 그 말 한 이유가 마지막때의 기준에 부합되지 아니하면, 마지막때의 기준, 종말때의 그 기준에 부합되지 아니하면 아무리 열심히 산들 그것은 다 무너질 삶이 되는 거예요. 무너진..
그래서 중요한건 무엇이냐면 마지막때의 기준이 무었이냐 하는 거예요. 그럼 사람들은 뭐라 합니까? 그건 마지막때 가 봐야 알잖아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마지막때 가보는것이 아니고, 이걸 이미 과거에 이미 확정되었다는 거예요. 그것을 저는 뭐라고 한다고요? 저는 이것을 '순수과거'라 하는 겁니다.
왜 과거인데 순수과거냐. 순수란 말을 왜 붙였느냐. 현재에 현재가 오게되면 취소가 되는 그런 과거가 아니고, 현재가 되든 앞으로 이천년이 되든간에 여전히 계속해서 손댈 수 없는 계속 그대로 남아있는 그 과거. 다 이루었다는 그 과거. 과거완료. 그것이 중심이 되는거예요. 그것이 중심이 됩니다. 그렇게 복잡하게 하지 말고 그냥 예수믿으라 하면 되는 걸 왜 저렇거 복잡하게 하느냐 이렇게 저한테 반문하신다면, 그래서 어려운 거예요.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하나님중심이 아닙니다. 성경전체가 놀랍게도 인간중심이예요. 사람중심이예요. 사람이 달라서 문제지만...어쨋든 사람중심이예요. 하늘에 있는 추상적인 신을 믿으라고 한적이 없어요. 구약은 예언이고 신약은 완성이잖아요. 그럼 구약예언되고 완성되는 그 복음의 내용이 뭡니까? 이미 하나님이 육신이 된거예요. 그 육신이란 말은 뭐냐하면 사람이 된거잖아요. 그걸 앞뒤줄여서 다 줄여서 딱 간략하게 이야기하면 하나님은 무슨 중심으로 일한다? 사람중심으로 일한다. 사람중심.
하나님이 얼마나 거룩하냐 그것을 기대하고 쳐다보는 중심이 아니고, 사람중심이예요. 사람중심으로 하지 않고 하나님중심으로 신학을 펼친사람이 있어요. 오트란 사람이 있는데요. 신학자들한텐 유명한 사람인데 그게 뭐냐하면 '거룩이란 무엇인가' 책을 지은 사람있어요. 그 사람의 주장을 한번 들어보세요. 주장은 이래요. 종교라는 것은 또 신앙이라는 것은 이 허하고 폐허히고 이 세상이 폐허, 폐허적이고 암울하고 허무하고, 이러한 지저분한 이 세상을 쳐다보는것이 신앙이 아니고 이 세상과 너무나 대비가 되는 이쪽 세상을 이야기 해요.
그게 뭐냐면 거룩하고 찬란한것. 이것을 쳐다보는 것이 그게 바로 종교요, 종교의 본질이요, 신앙이요, 거룩이고 의다. 이렇게 이야기 했어요. 기독교계통에 있는 사람이거든요. 많은 신학자들이 아주 동의를 했습니다. 결국 신앙이라 하는 것은 이 죄많은 세상을 떠나서 우리가 그리던 이게 중요해요 우리가 그리던 우리가 너무나 혹독하게 고생하다 보니까 자연적으로 뭐가 생기겠어요. 제발 이런 세상말고 더 좋은 세상을 자꾸 상상하게 되겠죠. 힘들면 힘들수록 그 쪽 세계를 지향하고 그 쪽 세계를 바라보면서 이 땅에서의 모든 역경과 고생과 힘든것을 견뎌내는 것. 그걸 신앙생활로 본거예요. 참아야 하느니라 이런 것. 고난받아도 이게 순교냐 이렇게 생각하고 견디고, 어려워도 그 나라가 있기때문에 내가 이를 깨물고 믿음 생활 해야지 라고 하는 것이 이게 신앙생활이라는 겁니다.
개혁주의에 개혁주의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 또 개혁주의 신앙을 하는 사람한테는 아주 원한것을 얻은거죠. C.S. 루이스 라는 사람이 있거든요. 들어본적 있어요? C.S. 루이스? 유식한 기독교인. 예 아주 지적인 그리스도인의 표상처럼 되어있어요. 지적인 그리스도인. 예수도 믿고 똑똑하기까지 하고 그것을 뇌섹남이라고 합니다. 뇌가 섹시한 남자라지요. 그렇게 똑똑한 C.S. 루이스 책들이 굉장히 많이 팔렸어요. 무조건 기도만 하라고 하니까 짜증나잖아요 젊은 사람들이. 뭔가 유식한 많이 들은게 있는 가운데 신앙생활 하게되면 더욱더 품격있는 신앙인이 되지 않을까에 대한 모델이 바로 C.S. 루이스인데 그 사람의 사상도 아까 이야기한 오토사상과 거의 흡사하다 보면되요.
개혁주의 신앙에서 아주 그 사람들 심지어 그 사람에 대한 심포지움까지 열어요. 그 사람을 볻받자고.. 이렇게 하는데, 그것 기독교 아닙니다. 하나님 대단하시고 거룩하다 그게 기독교 아니예요. 성경은 아까 뭐라고 했습니까? 사람중심이예요 사람중심.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 입니다. 요한복음 14장에, 내가 너희들과 함께 있다. 너희들 아시다시피 그런데 내가 일방적으로, 하나인데 일방적으로 이렇게 세상과 두 토막을 내버리면 그때부터 나 있는 쪽과, 나 없는 쪽으로 나뉜다. 이렇게 설명하는 것보다도 CF용어로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아로나민골드를 드신날과 드시지 않은 날이 확연히 차이나죠. 확연히 차이나는 거예요.
예수님과 함께있는 쪽과 있지 않은 쪽이 확연히 차이 납니다. 그리고 뭐라고 하냐 하면은 그런데 그때는 너희가 알리라 내가 하는 말을 알리라. 이 말을 다른말로 하면 지금은 너희가 아무리 이말 들어도 무슨 말인줄을 모를 것이다 이말입니다.지금 그것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왜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을 들어도 왜 지금은 모르냐? 오늘 강의의 핵심이예요. 예수님 말씀하시면 딱딱 알아들어야 하잖아요. 도대체 우리한테 뭐가 문제가 되어가지고, 무슨 요소가 주님은 되는데 우리는 왜 안될까? 어떤 요소가 차이가 날까? 그걸 알아야해요. 너희는 알리라. 지금 제가 하는것이 요한복음 14장 20절 끝에 나옵니다. 너희는 알리라. 이말은 뭐냐하면 지금은 지금은 모른다는거예요.
앞에 뭐가 붙냐하면 ‘그날에’ 그날에 너희는 알리라 되어있거든요. 그날에 너희는 알리라. 그러니까 지금은 모른다. 그러면 이 말을 누가 하냐면 예수님이 이야기 해요. 지금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있습니까? 떨어져 있습니까? 함께있어요. 예수님과 함께 있을때는 영생이고 예수님이 떨어져 있으면 예수님이 안보이는 곳에 있으면 그것은 저주가 되는 겁니다. 그러면 제자들 입장에서 예수님이 이런취지로 이야기하는 그 취지 자체가 왜 자기한테 이런이야기 하는지를 그걸 모르는 거예요. 그걸..지금 함께 있잖아요. 함께 있는데 갑자기 지금은 아니고 그날에는 알리라. 그럼 지금은 왜 모르고 지금은 뭐 때문에 우리가 왜 모르게 되느냐예요. 지금은 그들이 모르는 이유는 그들이 안다고 여기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이유가 제자들에게는 과거와 현재 미래로 되어있기때문에 제자들에게는 뭐가 없다? 그날이 없어요. 그날이 없습니다. 지금 자기 시간 이것이 인간은 자기 시간에서 못 벗어납니다. 자기 시간이 전부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 왜 인간은 시간에서 못 벗어나냐하면은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와 미래의 내가 같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같은 것을 뭐라하냐면 이것을 동질성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동질성.
그렇다면 제자들이 과거나 현재나 미래가 동일하다면 그와같은 시간의식가지고 누굴 쳐다보고 있냐면 바로 예수님을 쳐다본단말이죠. 예수님은 지금의 예수나 과거의 예수나 얼마전의 예수나 지금의 예수나 미래의 예수나 동일한 예수일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왜? 본인이 동질성이 있기때문에 예수도 같은 분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근데 이걸, 구획을 주님께서는 구획을 정해버려요. 구획을 정해버리면 예수님이 떠나버리면 예수님이 있던 자리에 뭐가 남아있느냐 하면 제자들이 상상했던 헛된 예수의 인식을 우리가 가졌다는 그 자리가 여기 여백으로 남게 됩니다.
막상 그 사람이 가고 난 뒤에는 내가 생각하지 않은 예수님은 내가 생각하지 못한 그 분이였고, 막상 평소에 내가 생각했던 예수는 이게 존재하지 않는 예수였던 겁니다. 내가 존재하지 않는 예수를 함께 있다고 착각들을 한겁니다. 왜 그런 착각을 했는가 하면은 예수님 중심이여야 되는데 내 중심으로 계속 유지하고 있었던 거예요. 내가 중심있는 내가 저 예수가 예수인줄 나는 안다라고 자기입장에서 그렇게 생각한겁니다.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죠. 그러면 예수님을 떠날때는 지금 문제가 뭐냐하면 그들과 함께있어서 구원하면 되는데 주님은 자꾸 거리를 유지할려 하고 떠날려고 하는 거예요.
제자들 입장에서는 떠날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그동안 잘지냈잖아요. 떠날이유가 없다는 거예요. 주님은 떠나야 오신다는 거예요. 떠나야.. 안떠나면 너희들의 착각하는 그 예수가 나인줄 계속 착각이 계속 되는 거예요. 그 착각하는 이유가 뭐냐하면은 과거현재미래 시간을 하고 있기때문에 어제의 예수나 오늘의 예수나 미래의 예수나 그렇게 될꺼라 생각하는 것이고, 주님께서는 새로운 시각을 하는겁니다.
순수과거란 말 했지요. 아무리 앞으로 시간이 역사가 오래된다 할지라도 그런 시간의 흐름에 구애받지 않고 이미 한순간에 모든 것이 구분이 완료가되는 결정적 거기 그 시간으로 너희들이 시간자체가 바뀌어져야되요. 이게 바뀌어져야 내일죽으나 오늘죽으나 오늘 심장이 멈추거나 이게 아무 의미가 없는 거예요. 아무 의미가..이게 왜냐면 이미 중심이 내가 원하는 내 시간적 중심이 아니고, 내가 안만든 중심, 주님이 만들어서 그 중심에 우리를 집어넣은 중심이 수입된다면 1년 더 사나 2년 더 사나 이미 구원받기는 마찬가지가 되는 거예요.
그럴러면 정을 뗀다 하죠. 너희들이 나를 생각했던 그 정 있잖아요 정, 초코파이 정 이런거 이걸 떼야됩니다. 정이라는 것은 내 중심에서 나오기 때문에. 제가 주일 낮에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누굴 만나는 것은 그 사람속에 내가 진정 사랑하고 싶은 것이 나한테 발견될때까지만 사귀고 내가 아무리 상대방을 훑어 봐도 내가 사랑하고 싶은 것이 없을때는 뭐라고 하냐면 이렇게 이야기 해요. '우리 헤어져' 이렇게 '그럴러면 헤어져!' 자기가 원하는 것이 안나오는 거거든. 이것은 결혼 10년 20년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20년 살다가도 행여나 내년되면 나올까 싶어서 또 살아도 안나올때는 '우리 헤어져 성격안맞아' 헤어져야되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결혼이라는 것이 뭐냐하면 이거예요. 결혼뿐만 아니라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특히 결혼이란 두 사람이 함께 죽기위해서 만나는 겁니다. 순수과거로 볼때에 동반자살이라 하죠.동반자살. 혼자 죽으니까 심심해서 같이 껴안고 죽겠다는 거예요. 어차피 인간은 죽어요. 죽을때 혼자 죽는것보다 같이 죽게되면 뭐가 나오냐 하면 자식이 나옵니다. 자식이 나와요. 자식이 생명이예요. 둘이 죽어야 자식 나오는 겁니다.
동침이라는 것은 한몸되어서 같이 죽는 연습하고 있는거예요. 죽는 연습이예요. 사랑한다는 것은 죽는 연습이예요. 안죽고 살라면 사창가 가면 되요. 돈내고 하면 되요. 그러나 부모가 같이 한침대 눕고 같이 한방에 잔다고 하는 것은 우리둘이 죽고, 죽는 사이에서 새생명 남기고 우리는 장렬하게 그만 사라지자 이 애기예요. 그런 뜻이라니까요. 왜? 어차피 세상은 죽을려고 태어난거 거든요. 내가 너무 바르게 이야기 해서 문제입니까? 자식 낳았으면 우리는 은퇴해야되요. 죽음이라는 사건으로 은퇴해도 괜찮아요. 이게 자식이라는 생명, 그래서 사랑하는 자에게는 자식을 준다 태의 열매라 하나님의 복은 태의 열매라 되어있잖아요. 시편에 보면 나오잖아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자식을 낳는 창세기 5장에도 나오고 아담이 몇살때 애 놓고 죽었다 하죠. 자식 놓는 이유는 죽음이 없이는 생명이 안나온다는 그러한 은유를 이 땅에 완전히 깔아놓는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하시는 하나님 중심이 되셔서 하시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어떤일을 하고 계신가를 보여주는 그런 모습으로 형상을 입은 우리 인간들이 그 일을 하게 된겁니다. 오늘 너무 욕심은 내지 않겠습니다. 오늘 강의 무지무지 어려운데요. 그래도 성급하게 하지않고 논리를 전개해 차분히 가겠습니다. 제가 아까 인간중심이라 했잖아요. 인간중심. 이거 중요한겁니다. 사람중심. 하나님은 저 높은곳데서 일하는게 아니고, 이땅에서 사람속에서 일을해요. 사람속에서 일을 해야 사람들은 자기가 은유인줄 모르고 하나의 비유거든요.
보이지 않는, 하니의 상징. 뭔가 감추어져 있는 그 관계를 나타는 현상으로서 살아가는걸 모르고 자기가 자기 사는게 이게 전부인줄 알고 있다 이 말이죠. 전부인줄.. 그러면 주님께서 이땅에사람중심, 인간중심이기때문에 육신으로 오셨잖아요. 뛰어들었거든요. 합세가 된거예요. 합세가 되면서 하나님이 뭘 보여준게 있어요? 예수님 빼놓고 다른 사람들 사는 그 모습과 같은 인간인데도 불과하고 예수님 사는 모습과 확연하게 차이 나겠어요? 안나겠어요? 예, 차이가 나죠. 그 차이나는 것을 이제 말씀드리겠습니다. 차이나는 것을..
그 차이가 어떤식으로 나느냐 하면은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었잖아요. 선악과를 따먹었으니까 여기서 질문드리겠어요. 질문 3개 던져보겠습니다. 1. 선을 아는 나와 악을 아는 내가 같은가? 이 질문 무슨 뜻이냐하면 내가 선을 알때 악을 아는 나는 잠시 휴식중이냐? 이말입니다. 내가 선을 행할때 잠시 악을 행하는 나는 보류하다가 선이 딱 끝나는 그 순간에 이제는 내 차례야 하고 악을 저지르는 그렇게 순번제로 되어있느냐 하는 문제예요. 이런 질문들 안해보셨어요? 두 번째는, 지금 선과를 따먹은게 아니고 악과를 따먹은게 아니고 선악과를 따먹었다구요.
제가 지금 질문드리는 것은 선악과를 따먹었으니까 인간속에 선악과요소가 원칙이 들어왔을거냐? 들어왔을때 선과 악은 어떤관계로 이렇게 흩어지고 모이고 어떻게 활동하느냐 그걸 제가 질문던지는 겁니다. 선을 행할때 악은 stop하다가 선 끝나고 악을 행하는지, 악을 행할때는 선은 잠시 보류하다가 악이 끝나고 선을 행하는지 이런 식으로 지금 끊어져서 가는지?두번째 질문은 뭐냐하면은 선과 악이 어떻게 어떤식으로 통합되느냐? 하는 겁니다.
선과를 따먹은게 아니고 악과를 따먹은게 아니고 선악과를 따먹었는데 선과악은 서로 대치관계예요. 대립이라구요. 선이 악에 포함되고 악이 선에 포함되게 되면 이건 하나로 모여질수 있는게아니라는 말이죠. 악은 악이고 선은 선이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내몸은 몇개입니까? 내몸은 하나의 몸. 내몸이 하나인데 어떻게 선악이 이 안에서 서로 대치되는 두개의 성질이 하나로 같이 들어설수 있느냐 이겁니다.
세번째가 뭐냐하면 선과 악 자체가 이 저주의 근거가 되었죠. 선악과 따먹었기 때문에 저주 받았잖아요. 죽었잖아요. 죽음이란 저주입니다. 죽음이라는 저주 받았잖아요. 그렇다면 여기서 어떻게 벗어날수 있느냐? 작은 제목: 선과악을 모른다. 나는 모른다해서 벗어나느냐? 아니면 선과악을 다 이루어서 벗어나느냐? 둘중에 하나입니다. 선과 악에 대해서 난 그런거 몰라요. 몰라요 해서 벗어나느냐? 아니면 선과 악의 취지를 다 이루었다해서 벗어나느냐 어떻게 벗어나느냐? 이 질문을 이 질문에 답변을 할려면 선악과 누가 만들었어요? 인간이 만들었습니까? 하나님이 만들었죠.
그러면 선악적인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은 이미 이 선악과를 만드신 분안에 이 해답이 이미 들어있다고 봐야되요. 그러면 하나님에게 이미 하나님에게 뭐가 있다? 선악과 요소가 있는겁니다. 그래서 우리와 함께 우리가 함께 했다 해서 선악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어요. 창세기 3장에 알고 있단 이말입니다. 그럼 방금 한 이 질문에 대해서 답변한 내용이 우리는 이렇게 이게 분열되고 갈등 일으키고 이렇게 되는데, 주님께서는 그렇게 하늘나라는 그렇게 갈등되고 분열일으키지 않고 분명 통일되어 있을거란 이말이죠. 통일되어 있을때 어떤 식으로 통일되어 있겠느냐 하는 겁니다.
그 하나님의 생각이 그대로 육신으로 오신분이 누구다? 예수님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 아버지 안에 있는 모든 요소가 예수님으로 드러났다면 그러면 하나님 안에 뭐가 있다? 선악적인 요소가 있다 하니까 이걸 다르게 이야기 하면, 하나님 안에 뭐가 있다? 악이 있다는 뜻이예요. 하나님 안에 악이 있다. 악한 하나님? 생전 처음 들어봤죠? 시편이나 구약에 보세요. 하나님 어떤 하나님이다? 선하신 하나님, 선하신 하나님이예요. 그리고 악은 우리한테 누굴 집어넣느냐하면 악마에게 해당되지, 하나님 앞에선 악이 해당되지 않죠.
그런데 이 문제가 이천년동안 신학자들를 골치아프게 했어요. 악마는 악하죠. 근데 악마를 누가 만들었습니까? 하나님이 만들었죠. 잘만드는데 원래 천사를 잘 만드는데, 하나님이 한눈판 사이에 악마가 악을 저질러서 그렇게 악이 되었다면 하나님은 어떤 책임이 있느냐면 왜 한눈 왜 파느냐 말이죠. 늘 감시를 잘하고 있지. 악마가 예수님을 대들기 위해서 갑자기 천사가 악한 천사가 되었다면 왜 그것을 주님께서는 그걸 왜 사전에 조치를 못하고 방비를 못해가지고 악이 유발되도록 그렇게 허용했느냐 하는 그 문제입니다.
제가 이렇게 이야기 하면 '그건 너무 목사님이 현실성이 없고, 그저 상상하거나 그냥 논리만 따지게 되면 취미로 논리따질때 그런식으로 따진게 아닙니까?' 이렇게 하지만 선악과 따먹은 당사자 누구입니까? 우리문제예요. 이게 우리 문제라구요. 만약 이 문제가 해결 안되게 되면 우리는 뭐를 우리 안에서 자꾸 균열이 일어나요.
예수 믿는것이 선한 일입니까? 예수믿는 일이 선한일이 되버리면 성령이 오실 필요가 없어요. 왜냐하면 선악과 따먹은 내 중심에서 내가 선한것중에 보니까 예수믿으라 하는 것이 있어가지고 그것을 발휘해버리니까 구태여 성령이 안와도 내 안에 있는 선을 내가 선하게 맘을 선하게 먹으니까 내가 구원받게 되어버리면 이것은 자력구원이 되어버립니다. 자력구원이 되요. 그러면 그것은 여러분 아니라고 보죠. 아니라고 보죠.
그러면 여러분들이 예수 믿게 되었다는 것은 여러분이 어떤 선과악중에서 어떤 마음이 동원되어서 예수믿게 되었습니까? 둘다 아니예요? 그럼 성령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호소합니까? 찾아왔어요? 안 찾아 왔어요? 분명히 찾아오지요. 찾아와가지고 그 다음에 뭐하십니까? 선악을 무시하라고 이야기 한거예요? 어떻게 이미 선악을 따먹단 말이죠. 이미 선악이 있단 말이죠. 선악적인 의식이 있단 말이죠. 질문한 내가 나쁘죠? 해답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선악이라는 것을 만들때 하나님부터 출발하면 안되요. 항상 모든 출발은 예수님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예수님부터..지금 자꾸 인간이 상상해가지고 예수님은 아들이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해서 아들로 가게 되면 아들도 이해될것이라 생각하는데, 예수님, 예수님 이야기부터 해야되요. 예수님 이야기를 뭐라하냐면 복음이라고 합니다. 복음. 사도바울이 갈라디아 1장에서 내가 복음을 알았다 할 때 그 복음은 뭐냐하면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알게 된거예요. 그 어떤 인간에게 배운게 아니예요.
그렇다면 그 말은 뭔가 하면 예수님이 하시는 이 지상의 일이 아무리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도 지상에서 해석해야할 예수님의 일은 계속 줄곧 공생애때와 마찬가지로 똑같이 진행이 되는 겁니다. 그걸 제가 대구 강의에서 로봇팔이라고, 로봇팔로 되있어요. 로봇팔이라 했지요. 이걸 로봇팔이라고 너무 유치하게 했는데 그럼 고상하게 이야기 할께요. '성령의 방사' 성령의 방사가 뭐예요? 스파이더맨 할때 거미중 확~사방으로 퍼트리는 거죠. 성령께서 퍼트리는 위에서 하나님 보좌우편에서 방사해버리는것 방사. 방사라는 것은 불교에서 물고기 이렇게 방유하듯이. 성령을 확~그러니까 이 방사보다 차라리 로봇팔이 낫다니까요.
로봇팔로 해가지고 전부다 이렇게 한꺼번에 다 장악해버리면 이 세상이 뭐가 되냐면 이 세상은 하나도의 공백이라는 누수없이 모두가 누구 세상이냐면 예수님 세상이 되고 그 중심은 뭐냐?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 교회가 곧 세상의 중심이고 교회의 머리가 주님이니까 그걸 가지고 에베소서 1장끝에 보면 만물에 충만중에 충만이라. 예수그리스도가 아니계신곳이 없는거예요. 모든것이. 그렇다면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는 것은 하늘쳐다보고 알아낸게 아니고, 이 지상에서 우리들에게 일어나는 모든일, 그 제자들끼리 일어나는 모든 일 뿐만 아니고 오늘날 성도들에게 일어나는 모든일 심지어 불신자에게 일어나는 모든일도 그게 어디에 속하느냐? 이것이 주님의 일, 유일한 주님의 일. 정말 상상해서 생각한일 말고 이땅에서 일어난 주님의 일입니다.
여러분들이 길을 걷는다든지, 산을 올라가든지, 식사를 한다든지, 빨래를 한다든지, 이 모든 것은 무슨일이되요? ‘주의 일’이 됩니다. 주의 일이. 주의 일을 할때에 선악을 아는 사람은 뭐냐하면 이게 착한일일까? 나쁜일일까? 이렇게 생각하잖아요. 그게 착한일이냐? 나쁜일이냐? 그렇게 생각하면 안되고 이게 주의 일로 보면 되요. 착한일이냐 나쁜일이냐는 따지는 것이고, 이 설겆이 하고 빨래하는것이 주의 일이 되버리면 이것은 믿음에 관한 일이예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고요. 믿음이 없이는.
그말은 뭐냐하면 막살아라는 말이되요. 절대로 이세상에는 막 사는 일이 있다? 없다? 막 사는 일이 있을수가 없어요. 전부다 주의 일이 되기 때문에 그래요. 결국 안믿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주께서 허락하신 일을 하는 거예요. 그러나 그들은 왜 지옥가느냐? 그날에 너희가 알리라에 해당되지 않고 너희가 끝까지 그들은 모르다가 지옥가서 아는 거예요. 내가 평소에 당구 300치는데 당구400치는게 주의 일인것을 몰랐고, 볼링치면서 스트라이크 한것도 주의 일인것을 몰랐던거예요. 모든 일이 주의 일인것을 몰랐던 거예요. 그걸 가지고 뭐라고 하냐 하면은 주님께서 이것을 아까 방사라고 했죠.
이것을 말로 옮기겠습니다. 팽창입니다. 팽창. 하나님께서 자신을 팽창할때는 뭘로 팽창하냐면 말로 팽창합니다. 언어로 팽창했습니다. 그 대표적인것이 무엇이냐면 선악과를 따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이건 누구보고 이야기 했어요? 코끼리 보고 이야기 했습니까? 뱀보고 이야기 했습니까? 해바라기 보고 이야기 했습니까? 누구보고 이야기 했습니까? 바로 어덴동산에서 누구보고 이야기 했죠? 인간보고 했죠. 그래서 인간중심이예요.
하나님의 형상이 있는 인간보고 이야기 했죠.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로 무엇으로 되어있다? 말, 언어로, 말로 되어있어요. 그 말씀이 뭐가 되요? 육신이 되는 거예요. 말씀이 육신. 말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팽창한겁니다. 하나님이 알고 있는 그 내용이 팽창하면서 어디까지 팽창하느냐면 예수그리스도의 다 이루었다 하심 거기까지 팽창이 되면서 예수님 십자가 죽으심으로서 십자가에서 뭐라했어요? 다 이룬거예요. 그런데 방금 제가 한 이야기를 제자들은 제자들이 성령밖에는 모를거예요. 왜냐하면 예수님은 개체가 달라요.
자기 키 얼마 몸무게 얼마 개체 있잖아요. 예수님도 저 개체가 따로 있어요. 그리고 예수님과 자기 사이에는 이만큼 거리가 띄어져 있습니다. 같이 손잡고 있는거 아니잖아요. 띄어져 있어요. 떨어져 있다면 예수님도 여기 있고 나도 여기 있고 그것을 합한 것을 사람들은 뭐라하냐면, 그 합한것을 세상이라 이야기 하고 그 이세상을 만들것은 누가했냐하면 하나님 아버지가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것이 오해인거예요. 이게 오해인거예요. 이게. 사람들은 아버지를 몰라요. 그런데 제자들은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의 아버지를 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어떻게? 포괄적으로, 절대적으로, 모든것의 모든 것. 이정도 알았으면 이정도 아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설때 그래도 틀렸단 소리를 안들을거라고 지레짐작 생각하는 겁니다. 그것 틀린겁니다. 그것 틀린거예요.
예수님이 다시 이야기 하겠어요. 예수님이 하나의 몸으로 오셨잖아요. 그럼 거기에 뭐가 되어있어요? 그것이 전부다 하나님 뜻이 거기에 하나님의 뜻이 이땅에 팽창 된거예요. 예수님은 중심이 되고, 그리고 예수와 관련된 제자들은 하나님의 팽창된겁니다. 그리고 제자들과 예수님 사이에 어떤 풀이 잡초가 피어있다. 그 잡초는 누가 만들었습니까? 주님하고 제자들하고 2m 떨어져 있는데 2m 사이에 잡초가 피어있습니다. 잔디가 있습니다. 그 잔디 누가 만든거예요? 하나님이 만든것이죠. 하나님이 왜 만들었습니까? 바로 말씀으로 만드신 거예요. 말씀으로 만드신 거예요.
그러면 제자들이 예수님 저기 있고 나 여기있고 잔디있고 잔디 누가 만들었나 하나님, 나 있고 그걸 동그라미 치는 겁니다. 그 밥상 해놓고 그 파리들어오지말라고 덮는거 있잖아요. 요새 사람들 알아요? 파리가 있을때 밥상에 덮는 모기장 밥상 덮는것, 이렇게 덮어씌우면, 그 위에 덮어씌우면 그 위에 누가 계시다? 하나님이 계시다 라고 제자들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게 잘못이예요. 그렇게 생각하면 안되요.
바로 예수님이 하나님이고, 그 예수님과 연관지어서 자기들이 있는겁니다.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밥상보가 예수님이예요. 그런데 이제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갑니다. 올라가면 제자들은 뭐라고 하느냐. 아이고 우리놔두고 가시면 안되잖아요. 우리 놔두고 가시면 안되잖아요 했죠. 사도행전에 나오잖아요. 주님 가시면 우리는 어떻게 됩니까? 기도했잖아요. 우리 놔두고 가시면 안됩니다 했을때에 주님께서 뭐라했습니까? 40일지나면 너희에게 뭐가 온다? 성령이 오지요. 성령이 오게되면, 천사가 하는말이 왜 쳐다보느냐? 주께서 다시 오신다. 내가 너희와 세상끝날때까지 함께 있을것이라 마태복음 28장에 그러고 난뒤에 오순절날 뭘 보냈습니까? 성령을 보냈잖아요. 누가 보냈습니까? 예수님이 보내셨잖아요.
그렇다면 그런일을 그런일이 있기전에 앞당겨서 오늘 본문을 봅시다. 오늘 본문을 봤을때 제자들이 지금 무슨 오해하고있다는것을 아시겠습니까? 아직도 이 제자들의 오해를 모르겠습니까? 제자들의 오해가 하나님을 안다는 것이 문제라니까요. 그리고 하나님은 사실은 하나님은 아버지를 몰라요. 아버지를 누가 아느냐. 예수님만 알아요. 예수님만 안다구요. 지금도 마찬가지고 예수님만 알아요. 그리고 하나님의 모든뜻은 누구에게 맡겼습니까? 다 예수님께 맡겼어요. 그 예수님이 중심이고, 우리는 다 팽창된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십자가로서 뭐하냐 하면 수축시켜버렸어요. 수축시켜버리면 모든 하나님의 뜻은 이 안에 응축되있다. 응축이 되잖아요. 그리고 동시에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버리면 선악이라할때 악은 뭐냐하면은 예수님을 안믿는게 악이 되는 거예요. 예수님을 안 믿는게..예수님을 안믿는게 악이 되기 때문에 현재 제자들이 선악을 알고 있잖아요. 그럼 선악알때 이 선악 자체가 뭐가 된다? 이게 뭐냐? 악이되어버려요. 왜냐면 모르기 때문에. 뭘몰라? 예수님이 중심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 말고 하나님 따로 있어요. 지금 여러분이 잘 이해가 안되는 것 같은데, 지금 제자들은 뭐냐하면 예수님이 아들인건 알아요. 아들이지만 아들이기 때문에, 아버지가 따로 있다 이 말이죠. 저도 참 이것 설명할때 제일 어려워요. 아들이기 때문에 아들 여기 있다면 내가 여기있고 2m앞에 아들있잖아요. 그럼 아버지는 어디있어요? 아버지는 이 전체를 포괄하는것을 아버지라 보잖아요. 이게 아니라니까요! 이게 아니고, 내가 여기 있고, 예수님 여기 있으면 합쳐서 아버지가 있다하면 이 자체가 틀리고, 지금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너희는 아버지를 몰라 아버지는 예수님만 알아요.
예수님이 중심이 되어버리면 우리는 내가 여기있고가 아니라, 사실은 예수님 안에 있는 거예요.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는데, 떨어져있으니까 나는 여기 있고 예수님은 저기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고 가니까 어디로 가십니까? 우리 놔두고 어디로 가십니까? 이렇게 나온거예요. 그런데 그날이 되어서 성령이 오게되니까 아무리 저 멀리 전도하고, 아프리카 가도 우리는 주님 안에서 벗어날수 없음을 그날에 너희가 그 다음에 알리라. 심지어 주님안에서 죽는다 할지라도, 절벽에 떨어져서 죽는다 할지라도 여전히 누구안에 있어요? 예수님 안에 있는거예요.
그러면 이것을 처음부터 친절하게 가르쳐 주면 될것인데 왜 하느냐 하면은 반드시 내가 뭐가 문제고, 뭐가 모르고 있고 뭐가 착각하고 있는 그 경과를 반드시 그 절차를 겪어야되요. 우리가...예 이것을 겪어야 된다고..이것을 겪지 않으면 이게 말로해서 될 문제가 아니고, 십자가 죽어야 되거든요. 십자가라 하는 것은 기껏 우리가 이것밖에 몰랐습니다를 분명히 드러내야되요. 내가 아무리 지식으로 주의 말씀 잘 이해해도 나는 주안에 있도록 할 조치가 능력이 우리한테 없다는 것을 아는 겁니다.
그러면 어떤사람이 목사님 질문있겠습니다. 그들은 몰랐는데 성령이 오고 난뒤에, 그들은 예수님과 따로 있었는데, 성령오고 난 뒤에 아! 주 안에 있게 되잖아요. 라고 하는데 그게 아니고, ‘알리라’ 라는 말이 무슨뜻이냐면 이게 순수과거가 되버리면 인간의 모든 과거 현재 미래가 아무리 흐르더라고 이미 그 순수과거에 대한 하나의 그림자로서 순수과거를 증거하기 위해 이땅에서 한시적인 그런 인간적인 시간에 있었던 거예요.
전에는 따로 있었는데 이제부터 들어왔다가 아니라,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들의 시간 관념이고 제가 순수 과거란 말한 이유는 순수과거는 현재에 포함이 안되는 순수과거, 보통 과거는 현재가 되어버리면 밑에 오면서 과거로 변화되고 맙니다. 과거는 날라가고 현재는 과거를 대신하거든요. 절대로 그렇지 현재가 과거를 대신할수 없는, 그냥 영원한 과거로 남는 순수과거. 다 이루었다는 것. 과거 어느지점, 우리역사의 어느지점이 아니고, 창세전부터 있었던 어떤 순수과거.
그리고 시간이 창조되면서 순수과거를 증거하게한 은유로서의 이땅에 과거 현재 미래란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겁니다. 제가 이렇게 복잡한 이유가 뭐냐? 복잡한 이유가 그 당시 제자들이 지금 예수님 말을 못알아 듣는다 이 말이죠. 못알아듣고 오늘날도 마찬가지 입니다. 왜 못알아듣는가? 뭐냐하면은 인간은 자기가 중심이예요. 판단도 내가 해야되고 믿어도 내가 믿고 항상 우리가 주체로 등장하거든요.
사람이 자기가 중심이 될 때, 중심이 되면서 나타나는것을 뭐라하냐하면 그것을 가지고 이렇게 이야기 해요. 영어로 하면 meaning, 우리말로 하면 의미라는 겁니다 의미. 어느 그저 나는 남자라는 그 프로그램있었죠. mbc에서 나도 남자다? 군에 가는 프로 뭐있습니까? 아! 진짜 사나이. 진짜 사나이 보면 거기 코미디언 몇명하고 연예인들 가가지고 입대를 했어요. 입대를 하는데, 박명수라는 개그맨이 나이가 제일 많은니까 임시적으로 분대장되어가지고, 신고를 하는 거예요.
신고합니다. 나 박명수 외 6명은 입대를 신고합니다. 뭐 이렇게해야되는데, 이게 그 안되는거예요. 입대를 신고합니다 이렇게 해야하는데, 입대라 안하고, 뭐라고 이야기 했냐면 이렇게 이야기 했어요. '입주' 왜 입주라 했냐면 평소에 군에 제대한지 오래되어가지고 항상 생각하는게 아파트입주를 생각하는 거예요. 이제 내가 살던 동네아니고 다른동네, 나 외 6명은 여기 부대 입주를 명받았습니다. 입주. 그 입주란 말이 어디서 나왔겠어요? 자기의 생활환경에서 나온 단어잖아요.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사람중심으로, 자기 아들을 사람으로 보내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쓰는 말은 사람말이예요? 하늘 말이예요? 사람말이예요. 왜냐 어디까지나 하나님중심이 아니라 누구 중심이다? 사람중심이다. 사람중심인데 사람중심이란 말을했는데 사람들 사는 그 시제, 단어, 개념 흔히 말하는 헬라어 히브리어 아람어 말이죠. 백날 분석해도 아무것도 안나오는 것. 그것 가지고 사용을 하는데, 그 사용하는 이유가 뭐냐 못알아 먹는 겁니다. 왜냐하면 이미 선악과를 따먹은 상태가 자기 중심이 되고 말았어요. 의미가 이미 개념자체에 자기 의미가있고, 이게 뭐냐? 무엇으로 이어지느냐 내 중심으로 이어져요. 내 중심.
나는 예수믿는다. 그러니까 나는 구원받는다. 이게 누구 중심이예요? 내가 예수믿는데 옆사람이 구원받습니까? 아니잖아요. 주님 어떻게 하면 주께 영광돌립니까? 이거 보세요. 이 말이 누구 중심이예요? 나 중심이잖아요. 어떻게 하면 우리교회가 잘될까? 이게 누구중심? 나중심이다 이 말이죠. 어떻게하면 내가 중보기도해서 저 사람을 꼬실까? 이게 전부 나 중심이단 말이죠. 나 중심이니까 거기다가 아무리 요한복음 14장을 설명해도 이미 구축이되어있어요. 내 중심으로. 이걸 성경공부해서 누가 구원받는다? 나 구원받을거야. 어디가는데? 내가 묻고 싶어요. 어디가실려고 하십니까?
예수믿고 지금은 예수믿기전에는 그리스도와 함께 안했는데 예수믿고 난후에는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려구요 이러거든요. 그게 바로 엉터리예요. 그게..그게 엉터리라고요.. 우리는 순수과거 아래서는 야곱에 태어나기전부터 이미 야곱을 알고, 에서가 태어나기전에 에서는 미워하고 이미 정해져있어요. 그 우리는 내 시간을 버리고 순수시간으로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방사되어서 이제 방사알겠죠? 로봇팔 알았을때 그때 우리는 뭐냐? 내 중심이 아니고 누구중심? 드디어 하나님께서 생각했던 그 예수중심에서 우리는 그 안에 우리가 아는 거예요.
한번 봅시다. 20절 그날에 내가 아버지 안에 내가 너희가 내 안에 그 다음에 너희가 알리라. 지금은? 너희가 안다? 모른다? 모른다. 전혀 지금 몰라요. 성령 보혜사가 안왔으니까. 19절에 봅시다. 좀 있으면 세상이 나를 보지 못할 것이요 너희는 나를 보리니, 그 다음에 이는 내가 살았고 그 다음에 뭡니까? 이는 내가 살았고 그 다음에 너희도? 너희도 살리라 되어있죠? 그러면 너희는 지금 뭐하다? 지금 죽어있다는 거예요. 지금 너희는 죽어 있다는거예요.
지금 이런말해도 지금은 모르고 성령이 와서 다시 그때 요한복음 14장 내용을 다시 보게되면 '아~ 산다는걸, 이런걸 산다라고 하는구나. 예수님 중심이 될때 그것을 산다하는거고, 예수그리스도 아니면 아니되고, 그것은 죽음이 되요. 비록 그 지옥마저 하나님께서 손 댄 장소라고 할지라도, 그리스도를 모르면 그것은 저주받은 자가 되고 그리스도를 알면 영생을 얻는것입니다.
그게 요한복음 3장 끝에 한번 봅시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죠.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죠. 그럼 제자들이 예수님을 모를때엔 진노에 있다가, 예수님을 알고 난 뒤에는 영생을 받겠습니까? 이게 오늘 강의한 내용 아는가 연습문제. 어떻습니까? 예수님 모르고 고기잡을때는 저주아래 있다가 예수 딱 믿는순간 영생얻는 거예요? 아니죠. 아닙니다.
예수님중심이 되어버리면 소급해서, 뭐든지 소급해서 주께서 고기잡으라 해서 고기 잡았었고, 그때는 나를 모른다고 부인해 베드로가 예수님을 3번씩 부인하게끔 주께서 그렇게 하게 하게끔 하셨기때문에 그것도 주님께서 중심이 되도록 베드로 내가 배반하는게 아니고 주께서 중심되도록 베드로로 하여금 배반하도록 허용 하신거예요. 모든게.. 그러니까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든것이 그리스도 중심일수 밖에 없어요. 찬양합니다. 그러지 말고 주님이 중심입니다. 이러면 되요. 10분 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