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강-YouTube강의(종교놀이와 신앙)170620-이 근호 목사
195강-YouTube강의(종교놀이와 신앙)170620-이 근호 목사
195강, 제목은 ‘종교놀이와 신앙’입니다. 교회가 있다는 것은 사람들이 몰리게 되어있고 사람들이 행동하는 것이 무의식적으로 무엇을 추구하느냐 하면 즐거움을 추구하게 되어있어요. 인간은. 행동할 때.
그래서 공부할 때도 뭐하느냐 하면 즐겁게 하라, 이렇게 하지요. 반도체에서 일할 때도 즐겁게 해다오. 뭐든지 세상을 즐겁게 하고 싶어 해요. 돈이 중요하지만, 단순히 돈만 보고 무슨 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 일에 뭔가 맞다는 느낌. 맞다는 느낌이 뭐냐 하면 일을 하면 돈 이상의 다른 즐거움이 나한테 주어진다. 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행동할 때 나한테 즐거움을 주지 아니하면 어떤 모임이라든지 어떤 자리에 가지는 않겠지요. 물론 강제로 일을 시킬 수는 있어요. 하지만 그것이 오래 갈 수는 없고요. 계속 오래 일하고 계속 반복해서 그 일을 한다는 것은 그 일이 지금 즐겁다는 이야기에요.
그러면 사람들이 교회를 왜 가느냐, 교회 가는 게 즐거운 요소가 있기 때문에 가는 겁니다. 그러면 교회는 뭐냐 ‘종교놀이’하는 곳이에요. 종교놀이 하는 곳. 거기에 대한 성경 구절가지고 어떻게 갖다 붙이던 간에 노는 재미. 노는 재미인데 종교 놀이하는 재미가 기대가 되게 되면 그 교회에 가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신앙은 뭐냐 하면 아무것도 기대할 자격 자체가 우리가 안 된다는 겁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교회라는 이 종교놀이터에 가서 하게 되면 그 신앙을 갖는 것도 나한테 놀이가 돼요. 신앙을 갖는 것도.
신앙을 갖게 되면 목사가 뭐라고 하는가 하면, “신앙을 갖는 것은 곧 능력을 갖는 겁니다. 초인적인 능력을 갖는 겁니다. 중보기도 해서 응답받을 수 있는 응답 권을 갖는 겁니다.” 라는 식으로 홍보를 해버려요.
그러면 내가 기도해서 또는 중보기도해서 뭔가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면 그것은 교회 다닐 때 정말 즐거운 일이고 재미난 게임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사람들은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면 내 신앙이 비례하면 비례한 만큼 내 기도에 응답도 빈도수가 늘어난다는 생각을 갖게 되겠지요.
내 기도의 응답의 빈도수가 늘어나게 되면 나에게 보다 많은 즐거움이 찾아오게 되는 겁니다. 그거 아주 괜찮은 게임이고 즐거운 게임이에요. 교회 놀이가. 내가 여기 존재한다는 것이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자기가 자기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니까 이것은 인간이 갖고 있는 타고난 욕망과 합치가 되는 거예요.
‘아~ 내가 필요한 존재구나!’ “나, 존재가치가 있구나! 무의미한 게 아니네.” 라고 할 때 한껏 다가오는 것이 이 땅에 더 살고 싶은 생각이 있고 자부심 생기고 뿌듯하게 돼요. 사는 게.
그런데 신앙이라 하는 것은 뭐냐 하면 어디서 나오느냐 하면 십자가에서 나오거든요. 십자가지신 분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신앙이란 말이죠. 그러면 그 신앙은 내가 존경을 하고 게임을 벌이고 하는 이거하고는 전혀 상관없이 돌발적으로 찾아오는 겁니다. 이게 뭐냐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시는 분의 신앙이 우리에게 찾아오는 겁니다.
그러면 예수님만 그런 고백을 하는 게 아니고 우리가 수시로 회사 들어갔다 짤리고 들어갔다 짤리고 수시로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그럼 내 뜻이 뭐냐 하면 나는 즐겁게 살기를 원하는 게 내 뜻이에요. 내 존재함의 보람을 느끼는 게 내 뜻이에요.
그런데 그걸 차단시키고 그걸 찢어버리고 깨부수는 식으로 다가올 때, 내일 일은 내 일이 아니라는 것. 내 인생이 아니고 주께서 어디로 인도할지 그건 내 소관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 내가 아무것도 예상하지 못한 것을 믿는 거예요. 로마서8장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소망한다. 그런 뜻이지요.
누가복음14장11절에 그런 말씀이 나옵니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자기가 높아지는 것이 굉장히 즐겁고 재미나는 게임이 되는 겁니다. 축구할 때 지는 게 취미가 되어 축구하는 사람은 별로 없지요. 축구선수가 되어가지고. “맨날 나는 지는 게 소망입니다.” 하면 취직 안 시켜줍니다. 축구팀에 안 불러주지요.
어떤 축구선수는 돈을 480억인가 줬는데 축구 안하고 저 미국에 놀이공원에 놀러갔답니다. 상하이 축구팀에 테베즈라는 선수가. 480억을 줬는데. 축구 안하고 놀러갔다 온 모양이에요. 중국의 팬들이 나가라고 난리에요.
사람이 낮아지기 위해서 사는 사람 없어요. 사람한테 비웃음받고 실패자라는 소리 들으려고 인생사는 사람 없습니다. 그런데 믿음이라 하는 것은 뭐냐 하면 그러한 이야기를 들음으로서 예수님의 가신 길과 자기가 가야될 길을 주께서 이끄시는 길이 같은 노선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이 싸움이 무슨 싸움이냐, 나는 내가 즐겁기를 원한다. 종교놀이를 통해서 하는 그것과 신앙은 완전히 충돌이 되겠지요. 두 번째 생각할 것은 이 종교놀이가 계속 즐거운데 이제 교회 좀 승진할 거 다 승진하고 일반 평신도에서 서리집사에서 돈 내고 장립집사 돈 더 내가지고 장로 됐다. 그 다음부터는 재미없어요. 권태와 지루함이 생깁니다. 하나님, 삼위일체 이제는 지겨워. 예수 십자가도 지겨워.
그러면 교회를 뭐로 만들겠어요? 이제는 재미나는 놀이터로 만들겠지요. 어떤 장로가 됐는데 교회가 재미없다. 그러면 장로가 돼가지고 무슨 친목회를 만들던지 하겠지요. 독도 가서 기도하는 친목회 이런 거 만드는 거예요. 일본에서 선교하기. 일본 후쿠오카 온천 놀러갔다 오기. 여 권사님 바자회 하느냐 수고했는데 권사님들 모시고 제주도 놀러갔다 오기. 모세의 기적을 맛보기 위해서 목포가보기. 하여튼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그냥 놀러가는 것.
사람 모였으니까 니나 내나 지겹잖아. 교회 왔다 갔다 하는 게. 그러니까 무슨 낚시회, 회 만들어가지고 계속 즐거움 거리를 유발하는 거예요. 맛집 찾아다니고 이런 거.
그런데 신앙생활은 처음부터 예수님의 사랑에 깊이와 높이에 더욱 더 들어가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행위나 태도, 자기의 포부가 점점 더 이게 깨트려지고 좌절됩니다. 점점 더. 그런데 그 좌절되는 내 꿈이 깨어지더라도 점점 더 괜찮아져요. 내 꿈이 깨어지더라도. 오히려 신나.
다음에는 또 뭘로 나를 작살내려고 하시는가. 1억짜리 깨던지 발로 밟던지 반도체 깨던지. 이렇게 해서 작살내던지. 깜놀하지요. 깜짝 놀라게 만들어요. 내 인생을 뭘로 째고 찢어버릴지. 주님의 하루, 하루 이끄시는 가운데 세심한 주님의 손길을 느끼게 되지요.
그래서 신앙은 뭐냐 하면 내가 따로 만드는 신앙판을 주께서는 용납을 하지를 않습니다. 그게 1억짜리든 2억짜리든 깨어버리지요. 내가 이만큼 이 교회 와서 몇 년간 신앙생활 했던 그 과거의 이력을 날마다 용납하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비해서 종교 놀이하는 사람들은 여러분, 명절날 식구들 모이면 안 믿는 사람들 제사지내고 그 다음에 덕담 좀 하고 복 받으라, 누구 딸 시집가야 되지 않느냐 그런 소리하고 성적 이런 거 묻다가 본론 들어갑니다. 본론 들어갈 때 뭘 끄집어내느냐 하면 담요하고 화투 끄집어내지요. 다시 반복해서 그 화투판을 낼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이 종교 놀이는 종교 놀이가 좀 새롭게 하고 싶으면 담요하고 화투판 끄집어내듯이 예배부터 먼저 시작하고 시작합시다. 계속 이렇게 끄집어내는 거예요. 종교 놀이를 하는 거예요. 그런 식으로. 그리 되면 뭔가 주께서 커버 해줄 줄 알고. 그걸 경건한 모임으로 만들 줄 알고 하는 거예요. 모든 것이 정기적으로 행사처럼 행사 치루듯이 진행되는 겁니다.
그런데 신앙은 뭡니까? 내 신앙을 따로 구축 못하도록 주께서는 저지하는 것을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날마다 그것마저도 죄인인 것을 깨닫게 하시는 거예요. 그게 신앙과 종교놀이의 차이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