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강-YouTube강의(거짓 선지자)170606-이 근호 목사
192강-YouTube강의(거짓 선지자)170606-이 근호 목사
오늘은 제192강, 제목은 ‘거짓 선지자’입니다. 성경에 선지자라고 단어가 하나만 나오는 것이 아니고 앞에 거짓이 붙은 거짓 선지자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우리가 상식으로서는 선지자는 아무나 자기 하고 싶어 되는 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진짜 선지자가 하나님이 보내신 자라면 그러면 거짓 선지자는 그럼 누가 보냈느냐, 예레미야29장19절에 보면 나와 있습니다. “이는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그들에게 보내되 부지런히 보내었으나 그들이 나 여호와의 말을 듣지 아니하며 듣지 아니 함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렇게 해서 참된 선지자는 보냈지만, 그들이 그 선지자의 말을 선지자로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가 뭘까요? 왜 선지자가 이렇게 하나님이 보내셔도 왜 보지 못했을까요? 그것은 바로 그 땅에 거짓 선지자들이 이미 진을 치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선지자와 거짓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이 땅이 그냥 건전한 땅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게 드러나지요.
선지자가 없는 땅과 선지자 하나 보낸 땅의 비교가 아니고 참된 선지자를 보냈지만 그것을 선지자로 인정하지 못하는 이미 다른 선지자가 진치고 있다는 말은 이 세상이 그냥 선지자가 없는 게 아니고 거짓선지자로 장악돼 있는 그러한 세상이라는 겁니다.
그게 예레미야29장31절에 보면 나오지요. “너는 모든 포로에게 글을 보내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느헬람 사람 스마야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스마야를 보내지 아니하였거늘 그가 너희에게 예언하고 너희로 거짓을 믿게 하였도다” 이렇게 되어있어요. 방금 요 두 구절을 가지고 한번 결합을 시켜봅시다.
결합을 시켜버리면 이 땅에서의 참된 선지자다. 라는 특징이 나와요. 그것은 뭐냐, 참된 선지자의 말을 사람들이 안 좋아한다는 겁니다. 듣기 싫어한다는 거예요. 이것은 갈라디아서1장에서 나오지요. 내가 사람을 좋게 하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다. 예레미야 구약도 마찬가지지만, 신약 때 와서도 이 세상은 달라진 게 없어요. 똑같습니다.
자, 사람들은 내가 누구냐, 또는 내가 어떻게 살아가느냐 사람들은 거기에 관심이 있어요. 하나님한테 관심이 있는 게 아니고 자기가 어떻게 잘 될 것이냐 관심 있지요. 거기에 대해서 선지자는 뭐라고 이야기하느냐 하면 니가 놓여있는 동네가 어떤 동네냐를 알아야 된다는 겁니다. 니가 살고 있는 이 터. 이 터가 어떤 터인가를 알아야 되겠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자기 몸 편하고 자기 계획대로 잘 되게 되면 살기 좋은 세상이고, 참 아름다운 세상이고 살만한 세상이고 아마 부담을 느끼지 않고, 아~ 이런 정도로 계속나아가면 나는 언제든지 행복해질 수 있다는 희망을 깔아놓을 만한 세상으로 그렇게 세상을 보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동안 이 세상에 물을 푹~ 젖어들었다고 보면 돼요.
우리라는 것이 이게 단독으로 내가 나를 만드는 게 아닙니다. 주변에 내 사고방식과 생각을 형성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주변에서 사상들이 우리한테 쏟아집니다. 그러면 쏟아지게 되면 우리는 판정을 제대로 해야 되는데, “저것은 참된 선지자의 말” “이것은 진리” “이것은 진리가 아님” 판정을 해야 될 텐데 그 판정하는 그 잣대나 평가기준이 이미 물 들었어요. 죄로 물 들었습니다.
죄로 물 들어서 참된 선지자의 말을 안 받아들이는 정도가 아니고 핍박을 해버리고 그 참된 선지자를 반대로 생각합니다. 어디서 나한테 마귀 말을 이야기해요. 참된 선지자의 말을 마귀 말로 이해를 하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여기서 한 번 정리 정돈할 필요가 있지요.
참된 선지자의 말을 반대로 한다는 자체가 내가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하면 이렇게 반박이 될 수 있어요. 나는 참된 사람인데, 참된 사람이 볼 때에 잘못된 것들이 왔을 때 잘못됐다고 이야기 할 수도 있지 아니하냐, 이런 경우도 생각할 수 있거든요. 참된 분이 왔는데 내 쪽에서 잘못되어서 거부한 경우도 있고, 그런데 정말 엉터리 같은 마귀의 종이 왔는데 나는 참되기 때문에 마땅히 거부할 경우, 그런 경우도 있다 말이죠.
그 둘 중에 어느 쪽을 우리가 선호하느냐가 문제가 아니고 어느 쪽이 항상 우리에게 나타나느냐, 그걸 우리가 파악해야 되는데 이렇게 증거하게 되면 이게 정답이 될 것 같습니다. 참된 선지자의 말을 내가 곧이곧대로 들을 때는 어떤 특징들이 나와요. 그 특징이 뭐냐 하면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내가 이 더러운 세상이 좋다고 이 더러운 세상이 뭐 그리 좋다고 더 오래 살려고 애를 쓰고 있는 이 세상의 성향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이 세상에 붙들고 이 세상에서 자기 무사안일과 자기의 행복만을 챙기면 그것이 진리인양 여기면서 살아가는 것.
‘내 몸 하나 따시고 내 몸 하나 편하고 내 몸 하나 건강하고 내 주변의 가족과 나와 관련된 쪽이 상당히 내 뜻대로 내 예상외로 만족스럽다면 그걸로 더는 소원 없다.’ 하는 그런 식으로 살아갈 때 그 사람은 주님 사랑하지 않고 자기 사랑하는 문제성 있는 사람입니다. 자, 여기서 인간들이 교회를 왜 세우는지 왜 교회를 출석하는지 교회 가서 은혜 받았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다시 한 번 정리할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진짜 선지자, 사도들이나 예수님이나 많은 선지자들은 이 땅에서 아벨처럼 핍박을 받았어요. 그렇다면 결론은 간단합니다. 핍박을 받는 분이 있는 그런 분이 설교하는 교회가 참된 교회겠지요. 누가 핍박한다? 교인들이 오히려 목사를 핍박하는, 그런데 그 핍박받는 이유가 단 한 가지 바로 우리는 십자가 앞에서 죄인이라고 그걸 고발하는 단지 그 이유 때문에 교인들한테 환영받지 못하고 핍박을 당할 때 그 교회가 참된 교회입니다.
그렇다면 그 교회는 참된 진리를 전하고 복음 전하는 건 좋은데 이 교회가 운영이 될 리가 있습니까? 전기세 낼 값도 안 나올 것이고. 목사 생활비는 고사하고 운영비도 안 나올 것인데 그 교회가 되겠습니까? 바로 교회가 복음이 전파할 때까지만 교회를 운영하는 그게 잠깐 있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교회.
줄곧 참된 교회는 이 가짜 교회들 속에서 그런 식으로 우연적으로 출몰하는 식으로 사라졌다가 사람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또 성령에 의해서 나타났다가 또 반복적으로 밉상 받고 미움 받으면서 그렇게 교회는 소멸되고 또 나타나고 그것이 바로 참된 선지자의 기능이 반복되는 그런 교회입니다.
거기에 비해서 이 땅에서 늘 사람들에게 인기 있고 안정적인 것은 하나님의 보내지 않은 자가 설교하는 교회, 사람을 기쁘게 하는 교회, 사람들이 원하는 행복과 자기 사랑에 충족시키는 설교를 내뱉는 교회.
“예수를 언급하고 삼위일체를 언급해도 결국은 여러분은 행복해야 됩니다.” 라는 그걸 마지막설교의 결론으로 내놓는 교회. 악마의 교회 그 교회는 이 땅에서 영원할 것입니다. 이 땅이 영원할 까지만 영원할 겁니다. 이 땅이 멸망 받을 때 같이 멸망당하는 교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