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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170602b 울산강의-레위기 10장 : 막힘자유게시판레위기

20170602b 울산강의-레위기 10장 : 막힘(강의:이근호 목사) 두 번째 시간 시작하겠습니다. 나답과 아비후가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에게는 자기 역할이 있는데 그 역할을 제대로 못했을 때 죽는다는 것으로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알려주는데 주력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로 하시는 것이 아니고 말해 놓고 거기에 위반사항이 죽음이라는 것을 통해서 지시한 내용이 무엇을 담고 있고 무엇을 위해서 제시한 말이라는 것을 대중들에게 알려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지키라고 준 게 아니고 죽어야 마땅한데 꾸역꾸역 살려내시는구나. 이걸 느끼게 하는 거예요. 이것을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개입이에요. 하나님이여, 이것 할 테니까 구원해주세요, 라는 게 아니라 하나님 따로 나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아예 개입해버리면 나는 배역을 맡은 셈이 되고 역할을 맡은 사람이 되는 거예요. 배역을 맡기 때문에 나한테 일어난 모든 인생의 여정은 내가 원해서 이 길로 온 게 아니고 주께서 최적화된 주님을 증거 하는데 이 땅에 만들어낸 그 이후에 가장 최적화된 인생을 살게 하는 겁니다. dna 유전자, 출생한 가정환경, 가족관계, 북한에 있다가 공산당이 싫다고 남쪽으로 내려온 것, 이 모든 것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그리스도가 그 안에 같이 있다는 것을 증거 하는데 가장 최적화된 상황을 의도적으로 만드신 거예요. 그렇게 되면 나는 이렇게 주의 일을 한다는 것으로 나오는 게 아니고, “너는 몰라. 주님이 얼마나 무서운 분인지, 얼마나 거룩한 분인 걸 너희는 몰라. 배역을 맡은 나는 알아.” 이렇게 되는 겁니다. 다른 사람은 하나님을 개무시해도 주님이 개입한 성도는 주님에 대해서 히브리서에 나오는 말씀대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살게 되지요. 이걸 쉽게 말해서 신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두렵고 떨린다는 것은 이런 겁니다. 3~4억 하는 스포츠카를 타고 시속 200킬로로 빼는 거예요. 저도 얼마 전에 광주에서 대구 오면서 시속 220으로 달려본 경험이 있어요. 우리교회 교인 중에 남편이 차를 빨리 모는 게 취미가 돼서 보통 천천히 가면 180 정도고. 상당히 운전하는 그분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운전해요. 그런데 고급차 탔으니까 신나지요. 주님이 차에 태우면 주님은 자기 살아온 인생을 고수하게 돼요. 그러면 주님은 좋지만 주님 차에 동승한 우리는 바들바들 떨지요. 주님 가신 길을 가니까. 주님 가신 길 신나는 길, 십자가의 길로 동승하니까 떠는 거예요. 그 다음 달에 수입이 2500, 그 다음엔 3600 오고, 땅 사서 던져놓았는데 열 배 오르고. 우리는 벌벌 떨어요. 속도가 너무 빨라서. 시험 치면 백점, 수능 0.1%, 외손자 하나가 아이큐 180, 영재발굴단에 나오고. 수학이 좋다 하고. 속도 너무 나요. 또 다른 예를 들면, 딸이 둘 있는데 하나는 독일 남자와 결혼하고 또 하나는 우간다 남자와 결혼하고. 내 뜻대로 안 돼요. 막혀버려요. 공부해서 공무원 됐는데 남자친구가 인디음악 한다는데 밥 먹고 살겠습니까? 아들이 연기한다고 딸 준 부모는 가슴이 덜컹하죠. 연극해서 돈 얼마나 법니까? 뒤에서 빗자루 질하다 본 일 다 보는데. 왜 인생이 이렇게 막히느냐 말이죠. 이것은 괜찮은 인생을 내가 만들어서 갖다 바치는 식이 아니란 말이죠. 그런 식으론 절대 구원 못 받아요. 주님께서 동승해야 돼요. 허술하기 짝이 없는 누추한 내 인생에 동승하면 이런 고백이 나옵니다. 이 쓸데없는 자라는 고백이 나와요.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공부를 잘해도 쓸데없고, 대학교수가 되도 쓸데없고, 100억짜리 갑부가 되도 쓸데없고, 사장이 되도 쓸데없고, 외무부장관 되도 쓸데없고, 청문회 해도 쓸데없고. 국무총리도 쓸데없고, 대통령 되도 쓸데없고. 항상 남들 앞에서는 대단하지만 주님 앞에서는 쓸데없는 자가 되는 겁니다. 쓸데없는 자가 돼야 목을 쥐고 마음대로 흔들 수가 있어요. 목을 쥐고 흔드는 것이 만화영화에 그 비슷한 게 나와요. <치킨 런>이라는 게 있어요. 닭인데 성질나면 위아래로 흔들지요. 주께서는 치킨 런처럼 우리를 흔드시는 겁니다. 그게 바로 제사장 가정에서 흔들기가 벌어진 거예요. 여기 레위기 10장 초반부터 죽음에 대해서 무려 네 가지나 언급하고 있어요. 첫째는 나답과 아비후가 죽지요. 두 번째는 아까 봤던 6절, 옷을 찢지 말아서 너희 죽음을 면하라. 네가 형 죽었다고 슬퍼서 옷 찢으면 나한테 죽는다. 세 번째는 하나님의 진노가 온 회중에 덮쳐서 제사장 죽으면 다 죽는 거예요. 이건 총리책임제에요. 나라 살림 못하면 내각이 총 사퇴하는 것처럼 제사장이 잘못 되면 백성들도 묻지도 따지지도 못하고 다 죽어야 돼요. 이것은 이유가 있어요. 출애굽기에서 모세가 십계명 들고 내려오는데 그때 언약대상자는 모세 딱 한 명이에요. 다른 사람들은 언약에 대해서 아는 바 없습니다. 내려오는데 여호와 이름을 부르면서 찬양하는데 애굽에서 섬기던 금송아지 만들어놓고 여호와 이름 부르면서 축제를 벌이고 있는 거예요. 아까 이야기한대로 죄가 뭐냐? 언약 밖에 있는 게 죄죠. 다 죽어야 되는 거예요. 안 죽이기기 위해서 사전에 언약 판을 깨버립니다. 애써서 들고 온 하나님이 주신 귀한 언약 판을 백성들 살리기 위해서 깨버려요. 언약 없던 시절로 돌아가요. 하나님께서 그 다음에 약속합니다. 내가 저 백성들 진멸해야 하나님다운데 네가 그렇게 기도하니까 조건이 있다. 이제는 모세 말을 따르는 자는 살고 모세 말을 따르지 않는 자는 죽이고. 이렇게 된 거예요. 그래서 모세 시키는 대로 삼천 명이 죽었어요. 형제가 형제를 죽였습니다. 그런 집구석이 이스라엘이에요. 하나님이 개입 안 하면 이런 사단 안 납니다. 중국산 라이터로 하든지 성냥불로 하든지 향냄새만 피우면 되지 않느냐? 이건 언약 바깥의 이야기에요. 언약을 모르는 사람들이, 인간들이 상식적으로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는데 언약이 없으면 구원도 천국도 없고 하나님이 함께 있음도 없어요. 정말 하나님이 영원히 함께 있으려면 하나님의 언약 방식이 그 안에 내주해야 돼요. 그러려면 하나님의 언약대로 실시돼야 돼요. 하나님이 언약을 실시하기 위해서 장소가 일단 죽음으로 터를 깔아놓는데 그 깔아놓은 터에서 나답과 아비후가 장렬하게 희생된 겁니다. 제사장이 죽었대. 왜? 향로불로 바꿔서 했다고 죽었단다. 그런 무서운 분이 우리와 함께 있네. 글쎄 말이야. 그런데 우리는 안 죽게 되었대. 왜? 제사장끼리 조치를 잘해서. 어떻게 조치했는데? 그것은 바로 세 번째, 네 번째가 7절에 나옵니다. “여호와의 관유가 너희에게 있은즉 너희는 회막 문에 나가지 말아서 죽음을 면할지니라” 옷을 찢지 않았기 때문에 둘 죽은 것으로 마감이 됐어요. 회막 문 앞에 있는 진 밖의 사람들한테는 진노가 임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화산이 터져서 용암이 흘러내리는데 그래서 산 밑에 촌락에 막 덮칠 판인데 그걸 제사장이 막은 겁니다. 아론이 막은 거예요. 어떻게 막았습니까? 인간적인 죽음으로 보지 말고 하나님의 언약의 실효성, 언약의 무서움, 그것을 살리는 방편으로 하나님이 죽음 사건을 일으켰다는 그 취지를 앎으로써 그들은 살은 겁니다. 쉽게 말해서 주님의 십자가에서 자기 아들 죽일 때는 현재 살아있다는 모든 인간은 실상은 산 자가 아니고 죽은 자라는 그 취지가 살아있다면 그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 영생이 들어있는 사람이에요. 주님이 우리 속에 들어올 때는 그 취지를 살려주기 위해서 우리에게 온 겁니다. 그래서 성도는 하나님의 움직이는 성전이 되는 겁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살아있는 걸 신약에선 성령이 임했다 하거든요. 성령이 임한 사람의 특징이 있어요. 사람을 그다지 겁내지 않아요. 이걸 더 확장해서 말하면, 자기 미래에 대해서, 장래에 대해서 그다지 두려워하거나 겁내지 않습니다. 사람이 장래에 대해서 겁내지 않는다는 말은 자살하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제가 시카고에서 누구 자살 이야기를 했던 모양이에요. 그런데 어떤 분이 그걸 못 마땅하게 여겼다는데. 우연히 차가 와서 박아서 죽었다. 저는 이걸 자살로 보지 않아요. 그냥 교통사고로 죽은 거죠. 그런데 제가 말한 자살은 준비 작업을 본인 손으로 했다는 거예요. 그것도 차분하게. 자살하는 준비 작업을 차분하게 하면서 그걸 저는 성령이 시킨 일이라고 도저히 믿지 못하겠어요. 성령께서 시켰다는 생각이 안 든다는 말입니다. 악령이 시키면 시켰지. 그런데 전에 복음 전했다는 이유 때문에 그 사람의 자살은 나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그 생각이 나로선 납득이 안 돼요. 에이 죽자 해서 홧김에 죽는 건 이해되는데 그게 아니고 치밀한 준비 작업이 있다는 것, 제 정신에. 그것까지 성령이 하셨다는 그 말에 저는 동의가 안 되네요. 아무리 그 전에 복음을 많이 전했다 할지라도. 제가 왜 자살하지 말라고 하느냐 하면, 바로 주님이 개입해서 주님과 일에 관련된 죽음이 있어요. 본인이 안 죽어도 주께서 알아서 죽이거든요. 골프 치다 주는 사람도 있고 잠자다 꿈꾸다 죽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산에서 빙판에 미끄러져 뇌진탕으로 죽는 사람도 있고. 죽어도 주님이 죽여야지 내가 나를 왜 죽입니까. 성질 급해서 그래요. 조금 기다려 봐요. 죽이길 겁니다. 역할 맡아서 죽이십니다. 나답과 아비후는 자기 역할 맡아서 한 거예요. 이 본문 보면서 나답과 아비후는 나쁜 놈이라고 지목하지 마세요. 우리는 그럴 권한이나 자격이 안 됩니다. 어차피 엘르아살과 이다말도 죽어요. 하지만 역할이 다르고 배역이 달라요. 그래서 불이 나왔는데 여기서 생각해봅시다. 레위기 9장 24절을 누가 읽어보세요.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른지라 온 백성이 이를 보고 소리 지르며 엎드렸더라” 지금 백성들이 갑자기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서 위임식 하는 제물을 다 태웠단 말이죠. 놀랬어요. 놀랬다는 말은 하나님이 존재함을 실존해 있음을 알려줬잖아요.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그 다음 날 와서 불이 없으면 하나님이 안 계신 겁니까? 그걸 주의해야 돼요. 불이 나타난 걸 통해서 하나님이 실존한 것을 안다할지라도 그 다음에 불이 나타나지 않더라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함을 믿어야지요. 왜 제가 그런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맨날 예수님에게 하는 말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기적을 보이란 거예요. 그럴 때 주님께서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부정적으로 묘사한 거예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있음을 이래서 있다고 이야기하지 않고 우리가 이 정도로 개판이니 계시다는 뜻으로 이야기하는 거예요. 우리가 이 정도로 엉망이고 죄 짓고 개판이니까 주님이 함께 계시다고 이야기해요. 주님의 뜻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평생 짓게 하는 겁니다. 이 원칙은 오늘날 우리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로마서 7장에 보면 사도 바울에게도 주어졌어요. 내가 선을 원하지만 내 속에 다른 뭔가 있어서 날마다 나로 하여금 죄로 사로잡아오는 거예요. 그게 성령 받은 사람에게 나올 고백이에요. 성령 안 받으면 그런 고백 안 나옵니다. 성령 받았기 때문에 남들 보기에 참 착하다, 천심이다, 마음이 천사라고 해도 본인은 본인을 알아요. 내가 어떤 착한 일이 있더라도 그걸 자랑하고 뽐내려고 하는 이기주의적 자기 위주의 욕심으로 사용하려는 다른 악이 같이 나온다는 것, 선이 있는 곳에 더 센 악이 있다는 걸 알아요. 그걸 통해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합니다. 오호라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내가. 내가 참 그냥 혼자 둬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고백합니다. 이걸 제가 부정적으로 묘사한다는 거예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있음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거예요. 그 뒤에 뭐라고 합니까? 찬송하리로다. 이 죄에서 우리를 건져내신 주님을 찬양한다고 돼있어요. 이게 부정적으로 묘사한 거예요. 주님이 있다, 주님이 이렇게 해줬다고 긍정적으로 묘사한 게 아니고 내가 뭘 해도 죄래, 부정적으로 나와 함께 있고 주님이 개입했다는 것을 고백한단 말이죠. 그걸 지금 레위기 10장에서 이야기하는 거예요. 레위기 10장은 뭐냐? 이스라엘 전체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그것도 위임식 한 날 그 밤에. 위임식 했다고 제사장 끝난 게 아닙니다. 이제부터 제사장을 주목해야 돼요. 제사장 집단에서 하나님과 관계한다는 제사장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까 한 이야기를 하면 모세가 십계명 판을 깨버렸습니다. 삼천 명 죽고 난 뒤에 약속했습니다. 모세 말 들으면 살고 모세 말 안 들으면 죽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 돌 판을 만들어요. 글자 안 써진 돌 판을 들고 다시 하나님 만나러 갑니다. 어떤 사람은 시내 산 아홉 번 갔다, 일곱 번 갔다고 하는데 의미 있게 간 것은 세 번 내지 네 번밖에 안 돼요. 빈 돌 판에 주께서 글씨를 새겨 줍니다. 그러면 하나님 일은 백성들과 상대하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과 모세와 상대해요. 모세는 두 명이 아니고 한 명입니다. 모세율법에 의해서 한 명인데 모세 뒤에 모세언약을 하는 배역을 맡은 자가, 아론언약이란 말은 없어요. 모세언약의 더 깊이 있는 내용을 형 아론이 보여주면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제사장 제도, 아론의 자식들이 제사장이 되는 거에요. 그러면 제사장은 언제 사라지느냐 하면, 모세언약이 사라지는 날 하나의 세트로 돼있는 아론의 제사장도 같이 날아가 버리죠. 그러면 모세가 언제 날아갔습니까? 야곱의 열두 아들 가운데 모세는 레위지파입니다. 레위지파가 유다지파로 바뀌어요. 유다의 자손에서 메시아가 나와요. 그럼 처음부터 유다로 나오지 왜 레위지파를 거쳐서 모세율법이 우리를 구원한 것처럼 착오를 일으키게 만드느냐? 이게 스크린 작전인데 축구장에 골대가 있어요. 여기서 반칙을 했어요. 이때 유명한 메시란 사람이 공을 찹니다. 그런데 앞에 상대방 선수들의 비워주고 차라는 게 아니에요. 스크린을 짜요. 그런데 놀랍게도 상대편도 스크린을 같이 짜요. 아군과 적군이 섞여서 스크린 짜요. 앞에 장벽이 있으니까 메시가 어디로 차는지 몰라요. 앞에 너무 가려서. 그래서 찰 때 빨리 빠져줘야 돼요. 앞이 훤히 보이도록. 이 작전이 레위지파란 말이죠. 앞에 공차는 게 유다지파고. 너무 쉽게 해서 맞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레위지파는 모세와 관련돼있어요. 모세는 행함으로 구원받는 거예요. 행함이 없으면 찝찝해. 기도 안 하면 찝찝하고, 성경 안 보면 찝찝하고, 교회 안 나가면 찝찝하고. 이래서 구원 되겠나, 하고 뭔가 찝찝해요. 거기에다 모세율법은 만약이 지키지 못하면 들어가도 저주받고 나가도 저주받는다는 거예요. 저주받는 항목을 보게 되면 끔찍합니다. 온갖 전염병은 다 들어오고, 맨날 전쟁에서 도망가고, 자식들 다 죽고, 농사는 가뭄 들어서 바짝 말라버리고. 한재에 전염병, 자식은 망하고 집안은 풍비박산 나고 이혼하고 아이 죽고 온갖 것 다 있어요. 생존에 연연하고 있는 인간의 입장에서는 자기 인생을 자기가 책임진다는 그런 인식이 있는 인간으로선 말씀 안 지키려야 안 지킬 수 없어요. 반대로 지키게 되면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고 오래 살고 자식이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가 되지 않고. 온갖 좋은 건 다 있어요. 그래서 인간들이 입장은 이래요. 좋은 것도 좋지만 아예 좋은 것도 없고 나쁜 것도 없고 둘 다 없었으면 좋겠어요. 그냥 내 능력 역량대로 인생 살만큼 살고 싶은데 갑자기 언약이 쳐들어오니까 이건 빼도 박도 못해요. 어느 쪽 할래? 축복할래, 저주할래? 낑낑 거리면서 저주 안 받을래요. 해봐라. 해보니까 십계명 다 걸려요. 헉헉거리면서. 이런 하나님 못 믿겠어요, 하면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네가 사대까지 저주받는다. 자기 때문에 후손이 피해 본다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 없지요. 그러니 율법이라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더욱더 저주 아래 있게 함이죠. 우리로 하여금 이 땅에서 큰소리 칠 입장이 못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겁니다. 죄를 더 죄 되게 하는 거예요. 그런데 감사하게도 이 율법에 예수님이 같이 참여하는 거예요. 우리만 당하는 저주를 죄 없으신 분이 저주를 받음으로서 이제는 죄 없으신 분이 동창생이 돼버렸네. 이젠 믿을 것은 주님만 믿어야 돼요. 나는 못 하지만 주님은 다 해내셨다는 다 이뤄냈다는 사실만 의지할 뿐이에요. 이제는 내가 뭘 했다고 나를 주목하는 게 아니고 주님만 주목하는 거예요. 주님께서 개입하셔서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내 자랑 못하도록 지금의 여러분 인생을 허락하신 겁니다. 지금 형편에서 어떤 것도 내가 나 된 것은 내 행함을 내 인생에 투자해서 그런 것이라는 말을 못하도록 그렇게 하게 하신 거예요. 못하도록 한다고 안 할 우리가 아니잖아요. 그래서 막히는 거예요. 잘 나가다가 턱턱 막히는 겁니다. 인생이. 예측 못할 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내일 되면 또 기다릴 거예요. 이게 아닌데. 이건 내가 생각한 게 아닌데. 예측 안한 사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범사에 늘 감사할 준비가 돼있어야 돼요. 내일 되면 주께서 무슨 재주로 날 놀랠지. 또 무슨 일로 날 깜짝 놀라게 만들까. 주님께선 우리에게 개입하신 이유가 있어요. 쉽게 이야기하면 악기 연주자가 연주하지 않을 때도 악기 연주할 능력이 있지요. 악기 연주할 때만 연주하고 연주 끝나고 난 뒤에 내가 뭘 할지 모르는 그런 건 아니잖아요. 건축가가 집을 짓지 않더라도 건축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요. 이게 바로 악마적인 생각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이렇게 봐요. 지금은 안 하지만 나이 들면 교회 잘 다닐 거야. 마치 그럴 자질과 능력이 있는 것처럼. 이렇게 되면 예수님 빼놓고 하나님과 자신과 직접 거래하는 셈이 돼버려요. 주님 시켜주이소. 이건 육십 돼서 하고 이건 한 달 뒤에 해야지. 자꾸 미루고 해요.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자질이 있다고. 그러나 예수님을 꽂아준 이유가 뭐냐 하면, 네가 한 것은 하나님이 안 받는다는 겁니다. 예수님 자신 한 것만 받아요. 그러면 아버지가 우리힌테 죽음으로 쳐들어오기 전에 예수님이 먼저 우리를 붙들고 단도리를 해야 돼요. 저 어릴 때 그런 것 많이 봤어요. 아버지가 화가 나서 매 들고 죽인다고 할 때 엄마 역할은 뭐냐 하면, 때리려는 아이를 커버해요. 앞으론 잘한답니다, 다시 안 그런다고 해, 하고 등짝을 대주죠. 사실은 사전에 연습을 한 거죠. 때리는 척하고. 아내가 남편한테 시켜요. 그래야 아버지로서 가오가 사니까. 하나님은 때리고 예수님은 내가 선택한 사람이라고 죄 없다고 의인이라고 품어주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매일같이 그리스도를 생각나게끔 그러한 사태가 우리 인생에 말씀으로 개입하는 거예요. 그게 제사장 그룹에서 해야 될 일이고 그게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주님의 뜻으로 끌고 가는 방식이에요. 이걸 정리하면 결국 뭐가 필요하냐 하면, 이스라엘 내에서는 계속해서 희생이 필요합니다. 희생에서 나중에 십자가, 하나님의 아들의 희생까지 연결하기 전까지 어디서 나오느냐 하면, 동물 제물 희생에서 지금 레위기 10장에서 제사장이 죽어요. 동물에서 인격화 됩니다. 인격화가 나중에 십자가에 그냥 보통 인간이 아니고 하나밖에 없는 하나님의 독생자가 죽습니다. 이것이 언약 안에만 들어있기 때문에 언약 밖에는 다 죄가 되는 거예요. 동물 잡아서 죄 용서되는 게 아닙니다. 동물 희생이 제사장 희생을 통해서 장차오실 예수님과 사전에 연결돼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거예요. 동물 희생으론 안 되니까 예수님을 보내는 게 아니고 예수님을 미리 보낼 사전 준비 작업으로 어린 양을 보낸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을 요단 강가에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사람이라 했습니까? 어린 양이라 했지요. 그리고 예수 십자가, 연관 있잖아요. 이게 바로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구원의 능력은 여기서만 나와요. 사람의 행함에서 나온 게 아니고 예수 믿고 헌금 드리고 그런데서 구원의 능력이 나오는 게 아니고 오직 예수님에게만 나와요. 그러면 이 희생을 반복해야 되지요. 반복할 때 아까 갈라디아서 3장 1절에 있잖아요. 십자가가 눈앞에 보이거늘. 그러면 예수님은 우리 앞에 얼굴 내밀고 있다, 이렇게 와야 됩니까? 아니죠. 예수님이 함께 있음을 어떻게 표현한다 했습니까? 부정적으로. 그 부정적이 뭡니까? 주님이 함께 있어서 내 자랑을 못하는 하는, 나는 내 인생 내가 투자하고 노력해서 고생고생해서 이만큼 일궜다는 자기 인생인 것처럼 자랑질 못하게 만듭니다. 그동안 신앙 생활한다고 애 많이 썼는데 어지간히 절제 많이 했고 그만큼 참은 게 있어서 이 정도로 신앙생활 한다는 식으로 자기 신앙을 자랑 못하게 합니다. 자식 넷 잘 키우고 빌딩이라도 갖게 된 것은 그동안 장로하면서 감사헌금 많이 해서 그렇다는 그런 자랑은 마귀가 그런 짓합니다. 내가 외국에서 신학박사 딴 것은 주의 은혜다. 그런 것은 마귀가 그런 짓하는 거예요. 신학박사가 죄인이다. 이건 성령 받은 사람이나. 그냥 죄인이죠. 진짜 주 안에서 죄인이라고 할 뿐입니다. 박사학위 딴 것도 죄니까. 언약은 주님만 하시죠. 우리는 언약을 이룰 수 없습니다. 언약의 혜택만 받을 뿐이죠. 내 새끼 때리지 말라고 커버해주는 것은 주님만 하시지 엄마 붙든다고 덜 맞고 이런 것 없어요. 주님이 커버해주는 거예요. 모든 죄를 동에서 서가 먼 것 같이 죄를 옮겨버려요. 영구 없다고 끝나는 게 아니고 죄가 없어요. 죄 어디 있나? 없네. 주님 혼자 놀고 있어요. 죄 많은데 어디 있지? 없어졌네. 아이고, 예쁜 것.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 원래 사랑하는 관계는 그래요. 일방적으로 사랑을 저쪽에 투사해버립니다. 주님이 일방적으로 그렇게 한다니까요. 백내장수술해도 예쁘고. 주께서 그렇게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 기뻐함을 입었다는 그 증거만 찾으면 돼요. 매일매일 살면서. 주께서 무슨 짓거리를 했는데 이것도 예쁘게 보시는가, 그 증거만 찾으면 그게 뭐냐? 자기를 부인하는 모습이란 말이죠. 그렇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서 반드시 죽음 사건, 희생 사건이 반복되면서 주님이 우리 안에 개입된 걸 알 때 우리는 산 제물이 돼요. 우리 몸이 이 시대에 하나님의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라 했는데 우리가 제물로 취급당하는 겁니다. 주께서 우리를 귀한 제물로 보죠. 성령이 임하면 우리는 성전이 되면서 제물로 보죠. 그 다음에 제가 걱정돼서 말씀드립니다만 제가 이렇게 말씀드렸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구원받을 능력이 자체적으로 소지한 것처럼 생각하시면 여러분이 마귀한테 쫓기게 됩니다. 전에는 기도하면 병도 낫더니만 요샌 기도해도 병도 안 낫고 방언도 안 터지고 신앙이 맛이 갔구나. 연습해, 훈련해. 자꾸 이런 유혹을 받게 돼요. 밧데리 좀 채울까? 기도원에 가서 주여, 쌍둥이처럼 집 사달라고 기도하는 것처럼. 내려오면서 밧데리 95% 충전됐다 하고. 사흘 지나면 25%로 내려가고. 어디 방전 됐나? 또 채워야 되고. 마귀가 맨날 그런 짓시킨다니까. 금요철야기도 가는 사람들 이유가 뭔데요? 습관화됐어요. 습관화는 뉴턴의 관성이 법칙이라고 하는 거예요. 뉴턴의 관성의 법칙이란 뭐냐 하면, 로켓이 먼 목성이나 화성에 갈 때 많은 연료를 싣고 가려면 얼마나 커야 되겠어요. 염려하지 마세요. 대기권만 벗어날 힘만 있으면 그때부터 우주는 진공상태기 때문에 가만있어도 방향만 맞추면 알아서 목성까지 간단 말이죠. 그처럼 사람이 신앙이 없으니까 그 허접함을 종교 능력으로 채우는 겁니다. 어떻게 채우느냐? 옆에 김 집사, 박 집사 보니까 기도하는데 5분, 10분해도 방언 터지고 막 나오거든요. 그야말로 빅데이터에요. 기도할 용어들이 많이 누적이 돼있어요. 얼마나 연습했으면 그랬습니까. 금요일에 커피 마시면서. 어떻게 하면 기도를 5분 동안 하나? 너도 해봐. 처음엔 안 되지만 자꾸 해보면 기도의 달인이 되는 겁니다. 푹 쑤시면 기도 나오고 나와요. 설교, 강의도 마찬가지에요. 설교, 강의 잘한다고 그 목사 성도 아닙니다. 일종에 재주지요. 숙달된 재주지요. 여러분도 직업 다 치우고 유투브 보고 설교 흉내 내면 잘할 수 있습니다. 기도 잘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 모든 종교적 시도가 막힘 앞에 다 헛수고입니다. 그렇게 해서 신앙 좋다고 과시하려는 모든 것이 아무짝도 소용없고 막힐 때 막히도록 해주신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지요. 그것 없이는 성도 아니지요. 부정적으로 표현된 주님이 나와 함께 있음을 부정적으로 묘사됨으로서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 온 거예요. 누가복음 18장에 바리새인, 한쪽은 세리. 누가 구원받았겠어요? 누가 봐도 바리새인이죠. 남을 토색하지 않았으니까 놀라운 사실은 간음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세리는 고갤 못 들고 죄인이라 할 때 죄인이라 한 사람이 천국 갈지 누가 알았습니까. 예수님은 완전히 우리 생각과 반대로 왔어요. 이 세상은 예수님 생각과 반대인 악마의 통치를 받기 때문에 그래요. 모든 사고방식이 반대로 됐기 때문이 주님이 건지는 방식도 반대로 건지는 겁니다. 그 바리새인은 주장하기를 간음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간음 안 하고 지옥 간 거예요. 병신 같이 간음도 못하고 지옥 가고. 참 내. 그리고 십일조 했다는 거예요. 십일조 하고 지옥 가고, 간음 안 하고 지옥 가고, 남의 것 도적질 안 하고 지옥 가고. 쪼다도 그런 쪼다. 이쪽은 다 해보고 천국 가고. 무슨 십일조를 했겠어요. 충격입니다. 복음은 충격이에요. 내가 그동안 알았던 게 전부 다 마귀가 지옥 보내려고 심어준 사고방식들이에요. 그런데 그게 관성 때문에 모태신앙, 어릴 때부터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그것 안 하면 당장이라도 진짜 저주받을까봐 벌벌 떠는 거예요. 물론 그것 안 하면 당장이라도 공부 못하고 부도나고 집에 불날 수 있어요. 하지만 그건 저주가 아니에요. 오히려 저주로부터 건져내기 위한 주께서 주신 합당한 최적화된 환경입니다. 네가 가진 것 때문에 벌벌 떠니 가진 것 빼앗아버린다. 전에는 저주로 해석했는데 이젠 축복으로 해석해라. 그렇지 않으면 넌 죽어. 그렇지 않으면 그런 일이 없으면 반대 사고방식을 못 가진다는 겁니다. 끝으로 생각해보겠습니다. 제사장들 역할은 장차오실 예수님과 관련돼있어요. 제사장들은 제사를 드립니다. 백성들은 말하기를 제사 지내기에 하나님께 용서받는다는 거예요. 말은 쉬워요. 하지만 제사드릴 때 제사장들은 얼마나 겁나지 압니까? 불을 잘못 드리면 당장이라도 불이 자신을 삼키는 굉장히 위험한 공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에요. 무시무시한 직업이에요. 조금만 삐딱하면 죽을 수 있는 거예요. 그 심정을 백성들은 모르는 거예요. 얼마나 위험한지. 복음을 아는 목사가 설교를 할 때 시간 때우려고 하는 게 아니에요. 무서운 거예요. 복음 아닌 다른 것 전하면. 조금이라도 인간이 행함을 전하면 이거는 주께서 가만두지 않는 거예요. 조금이라도 세상적인 목적을 기대케 한다든지 조금이라도 세상적인 부귀영화에 목표를 은근히 두게 만드는 그런 설교를 내뱉으면 사탄의 종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하시면 교회 부흥된다든지 이렇게 하시면 복 받는다든지 한다면 차라리 태어나지 말아야 될 목사에요. 결혼식장에 가면 그런 목사 많습니다. 기도하는 목사, 결혼식 설교하는 목사 레퍼토리가 뻔합니다. 그래서 결혼식 가기가 곤혹스러워요. 그래서 어떤 분은 점심부터 먼저 챙기기도 하는데. 만약에 밥 먹고 난 뒤에 그런 소리 들으면 소화가 안 되잖아요. 그래서 저는 절대로 예식 마치기 전에 점심 안 먹습니다. 그 이야기가 복 받습니다. 아들 낳고, 딸 낳고 목사 입에서 그런 소리 나오면 안 되지요. 지가 하나님 아니잖아요. 주께서 적합하게 배역을 줄 거예요. 자식이 없으면 없는 배역을 맡은 것이고, 아프면 아픈 역할을 맡은 거예요. 아프다가 낫는 역할이면 그렇게 되고. 소경됐다가 눈 뜬 것처럼 그건 주님께서 그렇게 하신 거죠. 그러나 복은 내가 얼마나 꿀리지 않고 가졌느냐가 아니라 바로 주님의 실존입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있다는 것, 그게 복이에요. 주님이 나와 함께 있어서 나로 하여금 주님의 증인 되게, 주님을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한다는 이것이 복입니다. 왜? 일찍 당겨서 살아가는 천국의 생활이 바로 성도기 때문에. 죽어서 가는 천국이 아니고 살아있을 때 이미 주와 함께 있는 것이 온 몸으로 체득돼야 됩니다. 그건 희생이에요. 주님을 위한 희생. 기도하겠습니다.하나님 아버지, 내 인생 잘 되기 위해서 혹시 예수 믿진 않았습니까? 그런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우리인 것을 자인하고 그런 인간을 그냥 두지 아니하시고 함께 있으니 천국이요 복인 것을 우리가 깨달을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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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201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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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