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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Re..행14" 1- 7 (전도 현장)우리교회사도행전

Re..행14: 1- 7 (전도 현장)

이름 : 이근호(IP:)

전도 현장

2004년 10월 20일 본문 말씀: 사도행전 14:1-7

14:1 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14:2 그러나 순종치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형제들에게 악감을 품게 하거늘
14:3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저희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거하시니
14:4 그 성내 무리가 나뉘어 유대인을 좇는 자도 있고 두 사도를 좇는 자도 있는지라
14:5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원들이 두 사도를 능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14:6 저희가 알고 도망하여 루가오니아의 두 성 루스드라와 더베와 및 그 근방으로 가서
14:7 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

하나님의 '사람 다루기'에 대해서 사람들이 대단히 오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개별적인 관점에서 사람을 다룬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과 다릅니다. 하나님은 인간 전체를 한 덩어리로 봅니다. 그것이 바로 '아담 안'이라고 합니다.

모든 인간은 '아담 안'에서 동일합니다. 비록 너 나의 관계에서 서로 독립적으로 딴 인간들이지만 하나님은 모두를 한 '아담 안'에 들어있는 자라고 규정지어버립니다. 즉 개별적으로 딴 사람이 차등이 난다고 여기는 사고방식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보시는 관점과 맞지 않습니다.

모든 인간은 뿌리가 있습니다. 물론 각자의 부모는 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그 부모의 부모와 또 그 부모의 부모를 찾아가면 결국 모두는 한 아담에서 파생되어 나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람 보기는 올바른 관점입니다.

모든 인간을 한 통속으로 다룬다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사실을 우리에게 던져줍니다. 즉 "자기만의 특별한 행동 여하에 따라서 다른 사람과 다른 운명을 가질 수 있다"는 완전히 엉터리 생각이라는 겁니다.

너 나 할 것이없이 모두 '아담 안'에 놓여 있기 때문에 아무리 남들과 차별나고 뛰어난 행동을 보이면서 살아도 그것으로 다른 운명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보시기에 한 아담에 속한 그 안에서의 행동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하나님의 관점을 모르고 단지 남들과 다른 삶을 살므로서 자신의 운명과 바뀌고 확정될 것이라고 여깁니다. 왜 이런 잘못된 생각을 하게 될까요? 그것은 인간은 각각 개별적으로 독립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지음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은 인간 사회의 상식에서 나온 생각이지 결코 성경에 근거해서 나온 생각은 아닙니다. 이 인간 세상에서의 모든 일이란 본인의 결정이 최종 결정입니다. 예를 들면 집 계약하면서 자기 인감 도장을 찍게 되어 있지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의 도장을 계약서에 찍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처럼 남은 남이고 나는 납니다. 그런데 이런 버릇을 그대로 가지고 천국 가는데도 써먹을려고 합니다. 즉 천국문에다 자기 도장 찍어서 열고 들어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도장은 소용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도장은 개인적인 도장이 아니라 기껏해야 옛 아담의 도장일 뿐입니다.

천국은 아담 안에 있는 그 누구의 도장, 즉 자기 도장도 안되고 위대한 성인의 도장도 도움이 안됩니다. 그 사람이나 우리들이나 똑같이 하나님에게 취급받는 '아담 안'에 속한 사람일 뿐입니다.

천국은 천국인을 맞아야 합니다. 그것을 찍어주시는 분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에 의해서 인맞은 사람만 구원됩니다. 왜냐하면 천국은 우리 인간 소유로 등기되는 것이 아니라 영원토록 '예수님의 나라'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을 더 깊이해 보겠습니다. '아담 안'에 있는 사람들의 생리가 혼자 있는 것이 정상입니까 아니면 더불어 사는 것이 정상적인 삶입니까? 당연히 생리적으로 인간은 혼자보다 더불어 살게 되어있습니다.

시대 풍습이 바뀌어져서 혼자 사는 것에 대해서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은 없지만 뭔가 자연스럽지 못하고 정상적인 삶의 모습이 아닌 것으로 간주됩니다. 그래서 구약 성경에 보면,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돌보라 나는 자비의 하나님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고아나 과부나 나그네를 모두 외톨이 신세입니다. 이 신세가 하나님 보시기에도 정상적이지 않기에 사랑으로 돌봐주어야 될 대상자라는 겁니다.

이처럼 '아담 안'에서 더불어 사는 것이 정상적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 안'에서 홀로 있는 것이 정상적인 삶일까요 아니면 더불어 있는 것이 정상적일까요? 이 역시 더불어 있는 것이 정상적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안'으로 구원된 사람은 누구와 더불어 있는 겁니까? '아담 안'에 있을 때는 같은 인간들과 더불어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 안'에서 우선 예수님과 더불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함께 계시지 않는 '예수님 안'이란 거짓말입니다. 그렇다면 이미 '예수님 안'으로 구원된 자는 어떤 식으로 예수님이 계시는 걸까요? 바로 이점을 말해주는 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오늘 본문 3절에 보니,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저희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거하시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도는 '예수님 안'에 놓여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당연히 홀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대하는 사람은 왠지 두 사도가 초라해보이고 불쌍해 보이고 안되 보이지 않습니까? 왜 이런 기분이 드느냐 하면,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 안'에 사람을 볼 줄 알아야 하는데 자꾸만 '아담 안'에서 보는 관점으로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을 보니 그렇게 측은해 보이지 않을 수 없다는 겁니다.

또한 행여야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이같은 사도 바울의 운명처럼 몰아갈까봐 지레 겁을 집어먹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이점을 아셔야 합니다. '아담 안'에서 하나님께서 동일하게 보고, 또한 동일하게 다루듯이,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들도 하나님이 동일하게 보고 동일하게 다루시는 겁니다.

즉 쉽게 말해서 이 세상 사람들의 관점에서 볼 때 한량없이 외롭고 쓸쓸하고 초라하게 보이는 모습을 갖게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3절의, 말씀을 가만히 들여다 보세요. 분명 사도들은 '주께서' 도와주셔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결코 혼자 놓여있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세상적으로 자기 편은 몇 명되지 않아야 결국 그 곳에서 도망치듯이 나옵니다만 그렇다고해서 동정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도의 권세는 세상과 우주의 권세보다 더 센 권세가 함께 계십니다. '표적과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보세요. 분명 그들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누군가가 함께 하고 계시는 겁니다.

이러한 '예수님 안'의 원칙은 사도들에게만 국한 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예수님 안'에 있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쓸데없이 세상으로부터 동정심을 유발하려고 세상을 너무 의식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유대인들에 예수님의 복음전파 자격에 대해서 시비걸고 나왔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의 권세가 하늘로부터 온 것이냐 사람에게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냐?"라고 말입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의 신세가 너무 처량에서 사람들로부터 주목과 관심을 받기 위해 일부로 별난 털옷을 걸치고 광야로 나선 것이 아닙니다. 튀어보려고 물 세례 준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권세가 그와 함께 있기에 그는 거침없이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외칠 수 있었습니다.

바로 그 권세에 의해서 예수님은 참 메시야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하시는 모든 것이 사람에게로 온 것일까요 하늘로부터 온 것일까요? 물론 하늘로부터 온 것입니다.

이런 구조는 사도 바울에게나 오늘날 성도인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예루살렘의 살던 아주머니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측은해 보였던지 동정심을 보였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 딸들을 위해 울어라"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의 현 처지도 모르는채 그저 '아담 안'에서 감히 '예수님 안'에 놓인 자를 잘못 평가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자신을 자꾸만 '아담 안'에 그대로 있는 자라고 보고 세상 사람들이 평판에 따라서 의기소침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성도는 사도 바울처럼 예수님의 관리를 받고 있는 자들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신앙 방해자는 남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일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고서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동일하게 쓰시는 가를 알면 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눈에 보이지 않는 분과 우리가 지금 사귀는 관계에 놓여 있음을 감사하게 여기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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