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보
고린도후서 8:1-5 연보연보는 돈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과연 성도가 언약으로 구원되었다면 그 이후에는 언약이 전개되어 펼쳐진다는 이야기입니다. 만약에 성도가 돈을 신에게 바쳐서 구원되었다면 돈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지겠지요. 연보와 관련해서 특히 명심해야 될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은 시편 49:6-8의 말씀입니다.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풍부함으로 자긍하는 자는 아무도 결코 그 형제를 구속하지 못하며 저를 위하여 하나님께 속전을 바치지도 못할 것은 저희 생명의 구속이 너무 귀하며 영영히 못할 것임이라” 하나님을 향하여 재물을 바치는 것이 헛수고인 이유는, 그 재물이 바치는 자에게는 너무나도 귀하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구원을 받은 자라면 구원의 고귀함을 발생시키는 차원에서 재물이 상대적으로 영생보다 더 귀한 것이 아닌 고백으로 터져 나오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연보입니다. 성도의 모든 행위는 형식보다 더 귀한 내용이 그 형식에 실리는 식으로 표출하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얼마 내면 됩니까? 수입의 몇 %내면 됩니까?”라는 식으로 연보가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디에 쓰여지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냥 내기만하면 연보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연보의 소비처는 ‘언약’을 증거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그 어느 누구도 구원받을 자격없음”을 분명히 하는 곳입니다. 이 원리는 세상 사업의 홍보 원리와 정반대 논리를 지니고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주는 만큼 더 많은 양으로 회수되는 것을 고려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연보는 받는 쪽이 도리어 의아해하는 식입니다. 마치 구원된 자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의아해하는 이치와 같습니다. “안 주어도 되는데 주시는군요”를 체험하게 합니다. 즉 연보를 주는 쪽이나 받는 쪽 모두가 자신의 죄인인 점이 더욱더 드러나는 식입니다. 아무 것도 아닌 존재를 인정해주는 식으로 연보는 주어지고 받아지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