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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안양20170512b히13장20절(법망)-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

안양20170512b히13장20절(법망)-이 근호 목사

자, 봅시다. 아까 법망이라 했지요. 법망. 갈라디아서에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일부러 율법으로 전 세계를 율법으로 촘촘하게 깔아놨어요. 왜 깔아놓는가, 어떤 사람도 저주 받을 수밖에 없음을 알려주기 위해서. 율법을 준 것은 저주아래 있게 함이라. 법망이 쫙 깔렸지요. 그러면 제가 법망이 깔렸다 한다면, 여러분은 이렇게 생각할 거예요.

“목사님, 그건 예수 믿는 사람 이야기고. 안 믿는 사람은 지 맘대로 살데요.” 안 믿는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게 아니에요. 자기 욕망대로 살아요. 그런데 그 욕망대로 사는 게 자기한테 점점 자기를 불리한 쪽으로 몰아가는 힘이 됩니다. 가만히 있으면 별 탈 없는 것을 계속 욕망대로 설치면 설치는 대로 자기를 파면의 길로 몰아넣는 뭐가 되느냐 하면 짐이 돼요. 짐.

뭐냐 하면 안 믿는 사람은 인생 자체가 짐이에요. 자기 등위에 자기를 삼키는 독사 키운다. 이리 보시면 됩니다. 독사. 내면에서 나온 독사가 등을 타가지고 독사가 시키는 대로 갈 수밖에 없어요. 도박하는 주부들 보세요. 도박 왜 합니까? 돈 따려고 가는 거예요? 처음에는 그럴 수 있는데 그 다음부터는 돈 따려 하는 게 아니에요. 그 짜릿한 그 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독사가 등을 탄 거예요. 독사가.

술 중독된 사람들. 모든 중독이 다 그래요. 축구에 중독, 골프에 중독, 낚시에 중독, 등산에 중독, 사냥에 중독, 담배에 중독, 전부 다 독사 다 키운 거예요. 자기가 한 거예요. 자기는 지 맘대로 하는데 절대로 자기 마음이 아니에요. 독사의 마음이지요. 독사가 마음대로 시키는 대로 자기는 그럴 수밖에 없어요. 김유신장군 이야기 있잖아요. 전쟁을 해야 되는데 자기 말이 귀생 집에 턱하니 가는 거예요. 평소의 말은 입장은 이래요. 평소에 니 하던 대로 했을 뿐이에요. 그런데 어디 이게 칼 들고 말의 목을 쳐버리잖아요. 말이니까 목을 칠 수 있는데 인간은 자기가 자기를 지배하는 악마를 목을 못 칩니다.

인간은 악마가 이끄는 대로 가야 돼요. 그래놓고 하는 말이 나는 교회도 안다니고 좋다. 내 맘대로 한다. 이러거든요. 나는 하나님을 안 믿는 이유가 뭐냐, 나는 젊을 때 내 맘대로 살고 싶다는 거예요. 인간은 지 맘대로 사는 게 없어요. 지 욕망대로 살아요. 지 욕망대로.

돌아서서 말합니다. 내가 술 안 먹는데 내가 왜 술을 먹었지? 다시는 술 안 먹고 운전대 잡는다 하더니 내가 왜 잡았지? 사람은 피조물입니다. 여러분, 이 피조물 아세요? 뭔 뜻입니까? 자기가 창조 안 했잖아요. 그럼 창조를 누가 하느냐, 주님이 했겠지요. 주님이 했는데, 그 창조 세계에 주님만 계시는 게 아닙니다. 바로 악마가 있는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주님은 악마를 통해서 인간으로 하여금 악마의 종이 되게 만들었습니다. 악마의 종이 되고 다시 그 중에 얼마를 주님의 종으로 되게 하는 그 과정을 통해서 경로지요. 아까 패스. 경로를 통해서 예수님의 주되심을 증거케 하는 거예요. 방금 이야기한 이것이 성경 전체 복음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은 자기이름 주를 위해서 하는 거예요. 제가 이리 이야기해가지고 여러분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게 되면 여러분들이 이런 공격을 받을 수 있어요. 성경에 그런 게 어디 나오느냐, 시편135편4절, “그 이름을 찬양하라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야곱 곧 이스라엘을 자기의 특별한 소유로 택하셨음이로다” 명확하지요. 명백하지요.

교회 가는 사람들이 왜 교회에 갑니까? 나의 행복을 위해서. 나의 가정을 위해서. 아니지요. 아니지요. 아니다 말이지요. 성경은 뭐라고 되어 있느냐, 너를 위해서 주님이 계신 게 아니고 여호와라는 자기 이름을, 여호와 이름을 찬송하라. 여호와 이름을 한 자로 주라 해요. 하나님이 아니고. 장차 오실 주님이 여호와 이름이에요. 이름으로 오신다. 이 말이에요.

이름이라 하는 것은 인간의 세계에서는요, 보이지 않는 것이 인간세계, 피조 세계에서는 전부 다 뭘로 바뀌느냐 하면 보이는 것으로 바뀌어요. 보이는 것으로 바뀌어버리면 이게 한계가 있다니까요. 보이는 것을 표현하는 것을 언어라 하는데, 언어는 한계가 있어요. 그러니 성경의 원어라는 게 없어요. 그냥 언어에요. 히브리 언어, 헬라 언어지. 언어란 그 당시 살던 사람 이야기에요. 그냥. 무슨 이게 신비로운 능력이 나오는 게 없어요. 언어에 무슨 신비로움이 나옵니까? 각자 현미경으로 보면 점들의 연결일 뿐인데. 종이에 인쇄된 것뿐인데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어쨌든 간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보이는 것은. 허상은 아니고 그냥 허상을 대리한 거죠. 이걸 가지고 아까 뭐라고 했느냐, 은유라고 해요. 알레고리라고 하는 거예요. 은유. 지금 이 세상은 은유의 바다에요. 은유의 바다고 꿈이라고 해요. 꿈. 꿈같은 거예요. 꿈꿀 때는 꿈이 현실인 줄 알지 꿈인 줄 몰라요. 꿈은 언제 꿈인 줄 아느냐 하면 꿈을 깰 때 꿈인 줄 알지요.

그래서 주님은 이 세상을 다 끝내고 난 뒤에 끝난 그 안목을 우리에게 줘버리면 성도는 알아요. 이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성도 아닌 사람은 나는 하나님도 안 믿고 나는 좋다. 내 마음대로 산다. 내 마음대로 사는 게 그게 꿈속을 헤매고 있는 거예요. 꿈속을 헤매는 거예요. 아까 종이를 뭉개져버리면 종이가 구겨져버리면 같이 구겨져서 아무것도 아닌 거예요.

이 세상에서 언어라 하는 것은 먼저 사물이 있고 허망한, 꿈같은 것이 먼저 있고 거기다가 아담보고 이름을 지으라 했다 말이죠. 그런데 유일하게 딱 실체가 있고 이름을 짓는 게 아니고 실체는 없는데 이름부터 나온 게 뭐냐, 여호와 이름뿐이에요. 여호와 이름은, 여호와 이름이 하는 일들은 이 세상 사람들이 납득이 안 돼. 납득이. 왜냐하면 바다가 갈라졌다는 것은 납득이 안돼요. 그런데 주의 이름으로 지팡이 하니까 갈라진 거예요.

사람들은 신기하다고 본거지요. 히브리인들도 신기하고 애굽군대도 신기한데 주님의 입장에서는 신기한 게 아니고 무지하고 어리석지요. 무지하고 어리석은 거예요. 인간은. 자기 보이는 것 그게 전부라고 아는 겁니다. 보이는 것을 요즘 말로 하면, 아까 꿈이라고 했는데, 요즘말로 하면, 이걸 과학이라고 합니다. 과학.

과학이야기는 내가 요번 주일 낮에 약간 설명을 했지요. 주일 낮에 아카시아향기 이야기했고 수력발전소 이야기한 거 기억나십니까? 5월달 되면 우리 동네에 아카시아향기가 퍼졌지만, 사람들은 거기에 머물지 않고 자기 입속에 아카시아 향기를 계속 하기 위해서 껌을 만든다고 했어요. 그러면 아카시아의 존재 의미가 껌 씹으라고 준 겁니까? 아니지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으로 만들 때 껌이 돼버리고 아카시아 향기는 분명히 보이는 거지만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아카시아 향기를 줬건만 인간은 보이지 않는 쪽으로 가는 게 아니고 과학적으로 가버립니다. 향기 좋네. 저걸 아카시아 껌으로 만들면 더 좋겠다. 이렇게 나와 버려요.

물이 있다. 물이 왜 흐르는지 몰라요. 그런데 인간들은 위에서 아래쪽으로 에너지 위치 내에서 운동에너지로 바뀌게 되면 거기에 터진을 돌려서 구리에다가 전류가 흐르게 되면 팽팽 돌리게 되면 전자석의 원리에 의해서 회전해버리면 전기가 흘러요. 그 전기를 가지고 유지를 시키고 피라밋을 하게 되면 열을 강화하고 필라멘트로 빛을 유지하는데 백열전구를 1889년도에 만들었어요.

그걸 만들어버리면 그 다음부터는 밤새 공장 밤 근무해도 괜찮아요. 그 밤 근무하게 되면 거기서 노동조합이 생겨요. “일 고만 시켜라! 우리도 이제 자고 싶다.” 그러니 사회라 하는 것은 기술발전이 에너지의 다룸에 의해서 사회가 변천이 된다는 이론이 나온 겁니다. 인류의 사회는 에너지를 어떻게 다뤘느냐, 곡물에너지냐 아니면 지하자원 석탄이냐, 석유냐 나중에 원자력이냐 이것에 따라서 사회 자체가 달라져요. 사회가 달라지면 아까 이야기한 양심도 달라져요. 양심도.

자, 하나님의 이름이라 하는 것은 인간이 생각했던 그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에요. 그럼 인간들 세계에서는 누굴 호칭할 때 뭘 부릅니까? 이름을 부르지요. 그럼 인간들 언어세계에서는 호칭을 부른 자가, 이름을 붙인 자가 갑이 되고 이름을 당한 사람은 을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목사나 대통령 이름을 함부로 부르면 안돼요. 종속의 의미를 붙여서 해야 돼요. 문재인 대통령 그냥 하면 안돼요. 님 자를 붙여야 돼요. 문재인 대통령 각하. 대통령 님자를 불러야 돼요.

우리교회에 보면 결혼한지 30년 됐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자기 아내이름을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있어요. 이름을 불러요. 처음에는 좀 그랬는데, 이제 보니까 굉장히 이게 아가서 내용대로 같아요. 내 누이여, 누이같이 하는 거예요. 처음부터 가족이었던 것처럼 그렇게 호칭을 하더란 말이죠. 지금은 굉장히 아름답게 보여요. 처음 볼 때는 약간 이상했어요.

동등 됨이 훼손되지 않는가 생각했는데. 이상규 집사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아이고~ 이름을 이야기해 버렸네. 연선아~ 이렇게 불러요. 아내 이름을. 그런데 그 연선집사님은 아주 좋아해요. 이름을 표현하는데. 그런데 내가 생각하건데 한 번 바꿔보자. 상규야~ 라고 부른다면 참겠느냐, 저 쪽의 연선아~ 는 되는데, 상규야~ 라고 부를 때, 과연 상규가 가만히 좋아하겠는가,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종속의 의미가 있습니다.

아담으로 하여금 앞에 동물들 지나가면 이름을 불렀다는 말은 어차피 다 니한테 종속될 존재다. 니는 책임지고 저들로 하여금 영광 돌리게 하라. 책임을 지고. 아담의 이름으로. 그리고 여자가 먼저 태어났습니까? 남자가 먼저 태어났습니까? 남자가 먼저 태어났지요.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들 때에 어차피 남자, 여자 만들 걸 처음부터 진흙가지고 두 개 만들면 안 됩니까? 두 개 만들고 두 개에다가 성령 집어넣고 만들면 되는데 왜 달랑 하나를 만들어놓고 갈비대가지고 왜 뽑아서 절차를 일부러 꾸며 나가느냐 말이지요. 그 절차에서 뭘 아느냐 하면 호칭하는 자와 호칭 받는 자를 생기게 만드는 겁니다. 이름의 의미. 내가 여자라 함으로서 여자는 남자가 있음에 여자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여자는 단독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고 남자 있음을 드러내기 위해서 여자가 있는 겁니다. 남자 있음을.

물론 죄 짓고 난 뒤에는 그 남자가 예수님이지만. 남자가 예수님이에요. 남편 사랑하기를 주 안에서 해야 되지, 그냥 남편 사랑하면 안돼요. 그건 동업자가 되니까. 같이 사업해서 같이 털어먹고 할 동업자 되니까 안 되고 주안에서에요. 주 안에서 라는 말은 남자 여자 사이에 둘이 맺어준 관계가 주님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요번에 주례사 한 번 들어본 적 있습니까? 거기 주례사에서 제가 강조한 것은 ‘이상한 현상’이에요.

왜 남녀가 서로 사랑하느냐 말이죠. 모든 남자가 다 모든 여자를 사랑하지 않고요, 어떤 여자가 오면 튕겨버려요. 재수 없다고. 그런데 특정여자에 대해서는 사랑을 표시하는데 누가 그렇게 했고,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느냐 말이에요. 이게 특이성이다 말이죠. 원래 인간은 누굴 사랑하지 않게 되어있어요. 왜냐하면 태어나면서부터 자기 밖에 모르는 체로 교육받았어요. 가정에서. 자기밖에 몰라요.

자기밖에 모르는데 어떤 길을 가는 여자를 보고 반했다. 아낌없이 모든 걸 다 주고 싶어 해요. 아낌없이. 차 니 탈래? 니 해. 가방? 골라잡아. 두세 개 골라잡아. 물론 돈 있는 사람한테만 해당되지만. 저도 제 아내한테는 결혼할 때 그렇게 했어요. 대구 대명시장에 가가지고 먹고 싶은 거 마음대로 골라잡아 먹어. 뭐냐 하면 납작 만두, 떡볶이, 김밥, 요정도 됐어요. 오늘 마음대로 먹어. 오늘 내가 돈 뿌린다. 결국 납작 만두 먹는데요. 몇 년 후에 가봤는데 맛없어요. 그 때는 맛있었는데 지금은 맛이 없어요. 입이 돋았나봐. 입이 교만한 모양이지요.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에게 왜 아낌없이 주는 겁니까? 왜 주는 거예요? 여자도 마찬가지고요. 왜 그러는가, 이게 누가 개입했다는 겁니다. 개입한 거예요. 설명이 될 수 없어요. 개입한 겁니다. 그러니 부부가 된다는 것은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 되는 게 아니고 이건 하나님께서 그렇게 짝지어 준 거예요. 짝지어 줬지요. 인간은 이미 죄인이지요. 죄인에게 짝지어 줬으니까 거기서 뭐가 발생되겠습니까? 죄가 발생되지요. 시커먼 죄인 짝지어 줬잖아요. 그러면 관계가 뭐냐, 시커먼스가 나오겠지요. 여기에 뭐가 나오느냐, 희생이 나오면서 이 관계에서 주님이 등장합니다. 십자가 복음이.

그러니까 법망을, 사랑이 먼저고 그 다음에 헤어짐은 안 돼! 라고 이야기함으로 말미암아 도저히 이것은 같이 살아도 이미 헤어진 관계에요. 인간은. 도파민의 역할에 의해서 좋다고 하는 거 몇 개월 안갑니다. 몇 년 안가요. 그래서 제가 울산강의에서 그런 이야기했잖아요. 차는 왜 5년마다 바꾸는데. 배우자는 5년마다 바꾸면 안 되는 이유가 뭔데? 나이50쯤 넘으면요, 야~ 우리 고만 살자 정말. 니나 나나 지독하다. 왜 이리 붙어 사는데? 서류가 복잡해서 그냥 사는 거예요. 자식도 있고 하니. 어차피 각방 쓸 거. 여름철에 덥다고 각방쓰기 시작해서 겨울 지나도 계속 쓰고 있고.

어떤 말씀도 한 몸이 한 몸 되는 인간 없어요. 이 땅에 없다니까요. 같이 살고 같은 침대에 눕다고 해서 사랑하는 거 아닙니다. 그냥 관성의 법칙이죠. 사랑의 물리학 하는 게 있거든요. 왜 질량은 부피에 비례하지 않는가. 이리 나온 시가 있어요. 도깨비라는 드라마에 나와요. 도대체 인간은 내가 어떻게 하는 게 아니고 나를 장악하고 있는 죄가 나를 마음껏 부린다니까요. 물론 그 죄는 뒤에서 예수님의 조정 받아요. 악마가 우리를 다룰 수 있지만, 악마의 모든 그것도 예수님의 허락 맞고 하는 거예요. “고것 까지만. 욥한테는 가서 욥의 생명은 빼앗지 마! 그건 내가 허락하지 않았어.” 허락 하에서만 마귀가 우리를 시험한다 말이죠.

그럼 마귀는 뭐라고 합니까? 그 못 지킬 것을 뻔히 알면서도 우리가 살아온 게 나 잘났어! 나는 남보다 더 착해! 이걸 어릴 적부터 계속 심어줬으니까 자기 의를 유지하고 그걸 지켜내는데 온 전력을 다해요. “참, 니 같은 여자니까 내가 평생 살아준다.” 이 말 자체가 뭔 뜻이에요? 그만큼 나는 인내성 있고 훌륭한 남편감이라는 거죠. “으이구~ 남 말하네. 나는 어디 니하고 살고 싶은 줄 아나. 나도 착한 아내 만만치 않거든. 나 신사임당이거든.” 결론은 이거에요. 주께서 붙여주니까 아직까지 헤어질 어떤 상황을 허락지 않은 거예요. 이게 법망입니다.

그건 왜냐, 우리에게 행복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고 법이 어떻게 작용하는가. 이걸 보여줌을 위해서. 이걸 두 자로 하면 ‘세상’이라 합니다. 이걸 세상. 우리는 이 어두움의 세상에 속해요. 세상에 속하는 것은 법을 확 집어넣어줘 버려요. 법망으로 확 깔아놓으면 그 법망가운데 인간이 얼마나 잘난 체하고 변명하고 구차한 핑계를 매일같이 아침, 저녁마다 핑계 대는데 아침, 저녁 핑계 대는 걸 가지고 4자로 ‘새벽기도’ 천주교 같으면 ‘새벽미사’ 아침, 저녁마다 핑계 대는 거예요.

오늘도 어려운데 나왔으니까 주께서 아시지요? 복은 알아서 주세요. 이런 식으로. 복 받을 자격도 없는데 계속 복 달래. 내 하나 정성 봐서.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이걸 봐서. 복 달래. 왜 줘야 되는데? 잘났으니까. 왜 잘났는데? 그건 묻지 말고. 하나님 그건 묻지 마세요. 타고난 보석이니까.

법망이 있는데 어떻게 잘난 사람이 있습니까? 로마서3장처럼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는 거예요. 그러면 의인은 없나니 의인이 하나도 없으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가, 처참하게 살아도 우리는 군말 하지 말아야 돼요. 우리가. 이 정도 망가져도 더 망가진들 우리에 대해서 반항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게 사도로 하여금 고난의 길을 가게 하신 거예요. 고난의 길을. 사람이 어려울 때는 밥 먹고 잠자는 것도 너무 너무 감사해요. 화장실에 뜨신 물 나오는 거 있잖아요. 6.25때까지 갈 거 없이 60년대만 해도 이런 부자동네 어디 있습니까? 그건 진짜 옛날 60년도에 구봉서, 서영춘이 나오는 영화에 나오는 부잣집 동네, 그 동네나 나올 일이지. 소파 이렇게 있고 비실용적인 소파 있잖아요. 들지도 못하는 거. 부자 흉내 내려고 하는 계단으로 해서 2층 올라가는. 그 동네만 뜨신 물 나오지 나머지 동네에는 연탄가스해서 그날 밤 안 죽고 살면 그 다음날 또 살고. 그 다음 또 연탄 피워서 또 연탄가스 안 체이면 그 다음 살고 그런 시절이었어요.

저는 연탄가스 마시고 3번 죽었다 살아났어요. 놀라지 마세요. 다들 그렇게 안 살았습니까? 전부 다 연탄가스 새는 거예요. 어머니가 늘 가는데 잊어버리면, 또 보일러 공사도 엉망으로 해서 군데, 군데 가스 다 새네. 턱 턱 갈라져가지고. 옛날 시멘트도 없었는 모양이라. 시멘트도 이상히 발라가지고. 군데 가스가 다 새가지고 온 식구가 다 캑캑 토하고 다 그랬어요. 어려울 때.

1945년도 2차 대전 미국에서 굉장히 어려웠었어요. 이 사람들도 전쟁한다고. 2차 대전 끝나고 난 뒤에 그 사람들이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았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옛날 어려울 때를 생각해가지고 노래가 열심히 일하자. 바르게 살자. 착실하게 살아야 하나님의 신의 복을 받는다. 이런 식으로 기독교 의식이 있어가지고 윤리로 했는데.

그 다음 2차 대전 이후에 경제가 급속도로 발달하고 난 뒤에 자식들이 고생을 모르는 거예요. 고생을 모르는데 어른들은 “우리 할 때는 힘들었는데 공부를 안 해! 이제는 이렇게 잘 사는데 공부도 안 해.” 막 따지니까 젊은 애들이 반항기 하면서 나온 장르가 뭐냐 하면 로큰롤입니다. 로큰롤의 대장이 누구냐, 엘비스 프레슬리에요. 반항과 저항이에요. 이게 계속 반복됩니다. 1990년도에 나왔던 랩입니다. 랩이 왜 나옵니까?

자본주의 격차가 생기니까 거리에 있는 아이들이 기존의 모든 노래 가락을 반항투로 막 내뱉는 것이 랩이잖아요. 아프지 말고 행복하자. 양화대교에서 매일 드라이버하는 지 아버지 생각하면서. 자이언티가 불렀던 랩있잖아요. 랩하는 것이 전부 반항기에요. 반항기.

우리집에는 매일 나 홀로 있었지
아버지는 택시 드라이버
어디냐고 여쭤보면
항상 '양화대교'

아침이면 머리맡에 놓인 별사탕에 라면땅에
새벽마다 퇴근하신 아버지
주머니를 기다리던
어린 날의 나를 기억하네
엄마 아빠 두 누나
나는
막둥이, 귀염둥이
그날의 나를 기억하네
기억하네

행복하자 우리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그래 그래

내가 돈을 버네 돈을 다 버네
엄마 백원만 했었는데
우리 엄마 아빠
또 강아지도 이젠 나를 바라보네
전화가 오네 내 어머니네
뚜루루루 아들 잘 지내니
어디냐고 물어보는 말에
나 양화대교 양화대교

엄마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아프지 말고
행복하자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그래 그래
그때는 나 어릴때는 아무것도 몰랐네

그 다리위를 건너가는 기분을
어디시냐고 어디냐고 여쭤보면 아버지는
항상 양화대교
이젠 나는 서 있네 그 다리 위에

행복하자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아프지 말고
행복하자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그래 그래

나이 많은 사람들은 저게 노래야? 저 랩은 벌써 우리 있을 때 있었거든요. 흥부가 어떻고! 흥부가 어떻고!

그러니까 뭐냐하면 이 세대가 반항하는 대상 찾아서 헤매는 거예요. 반항하는 대상 찾아서. 그래서 제가 얼마 전에 설교시간에 그랬잖아요. 모든 세상은 분노한다고요. 모든 게 분노해요. 젊은 아가씨들이 나이트클럽에 가는 게 지 분노를 푸는 겁니다. 기성세대에. 대구시내에 중소기업 사람들 없어서 난리에요. 일할 사람이 없어가지고.

그런데 서울에 오면 25%가 젊은 사람들이 실업자에요. 안가요. 중소기업에. 지 장래를 생각해서 안 간다고요. 이래가지고 내 몸 망가지겠다. 사실 중소기업에 다녀보면 몸 망가지는 거 맞아요. 환경이 장난이 아닙니다. 진짜 환경 나빠요. 시각, 청각, 촉각 다 나빠요. 중국에서 뭐 날아온다고요? 공장 안 가봐서 그래요. 공장에 가면 미세먼지 그거 양반입니다. 이렇게 맑은 하늘을 두고 마스크하고 이상하다. 공장에 가보세요. 왜 끝나고 난 뒤에 소주에 삼겹살 먹는 이유가 뭡니까? 진폐증 다 걸렸는데. 몇 년 하면 진폐증 다 걸려요. 그래야 거기서 단가 빠지는 거예요. 그래서 장사가 되는 거예요. 힘들기 짝이 없어요. 법망에서 인간은 주님이 주신 이 저주에 아까 뭐한다 했습니까? 반항한다 했지요. 오늘 제목은 반항입니다. 반항하는 세대. 반항하는 세상.

자, 이제부터 어렵습니다. 아까 이 세상은 뭐로 되어있다? 언어로 되어있다. 언어는 뭐로 되어있다? 은유다. 은유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식으로 설득시키지요. 그런데 거기에 예외의 규정이 있었습니다. 뭐라 했습니까? 주의 이름이죠. 주의 이름이 딱 오게 되면 이 세상은 갈라집니다.

세례요한이 오면서 뭐라고 했습니까?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니는 누구?” 하니까 “니는 누구야?” 세례요한은 말을 안 해요. 나 누구다. 라고 말을 안 해요. 자기가 눈에 실체가 있더라도 세례요한의 기능은 이 세상의 없는 쪽의 기능을 부여받아서 나와요. 그래서 나는 오실 분의 스피커다. 소리다. 오실 분의 소리에요. 이 오실 분이 소리니까, 그냥 오시는 게 아니고 이 세상과는 다른 세상을 몸에 감고와요.

그 세상이 무슨 나라냐 하면 그게 바로 심판의 나라입니다. 심판의 나라는 의미가 있어요. 뭐냐 하면 심판 없는 곳에 구원도 없어요. 유대인들은 심판 안 거치고 구원받으려고 한 겁니다. 이게 주님의 원리에 위배되는 거예요. 심판해도 마땅합니다. 하는 자에게만 구원이 주어줘요. 자기를 부인하는 자에게만 구원이 주어줘요.

“나, 부처 믿을까? 예수 믿을까? 예수 믿어야지.” 이런 과정 구원 없어요. 반드시 뭐가 됐던 목사가 됐던, 장로가 됐던 나는 심판 받아 마땅하다. 이러하지 않으면 그 사람에게서는 구원의 나라가, 하나님나라가 안 나옵니다. 심판의 나라가 오지요. 뭐가 있다 했습니까? 이름은 없어요. 기능만 있지 이름은 없지요. 이름이 없다는 것은 이 땅에는 실체가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름이 없고 다른 나라가 왔을 때 예수님을 통해서 이 땅에 오게 되면 결국 이건 뭐냐 하면 저항과 마주치지요. 마주쳐서 여기서 아까 뭐가 나온다고 했습니까? 저항이 나오고 반항이 나오는 겁니다. 이쪽은 뭐가 되느냐 하면 침노함이 되고, 하늘나라는 침노함이 되고 이쪽은 거기서 어디를 우리나라를 공격해! 반항하고 저항합니다.

요 가운데 마주침이 있겠지요. 고 마주침을 가지고 오늘본문 13장 20절에서 뭐라고 하느냐 하면 ‘언약의 피’라고 설명합니다. 아~ 언약의 피하는데 이거 몇 분 걸렸어요? 80분 이상 걸렸어요. 언약의 피. 언약의 피를 이렇게 설명해야 돼요. 이렇게 설명하지 않고 “여러분, 예수님이 피 흘렸습니다. 피 믿으면 구원받아요.” 이렇게 되어버리면 어디 파운데이션 찍어 바른 것처럼 피 찍어 바르면 구원 되는 줄 알고 있어요.

그러니 뭐냐 하면 ‘아~ 행함으로 구원받는 게 아니고 믿음으로 구원받는구나! 그러면 전에는 절에 가서 행함 했는데 나는 이제 교회 왔으니까 믿는 걸 소유해야지.’ 이리 되지요. 그럼 뭐가 가만히 있어요? 행하는 나도 멀쩡하고 가지는 나도 멀쩡해버리면 나는 멀쩡한 가운데서 구원받는 식이 되는 그런 법칙은 피 앞에서는 없어요. 그래서 교회건 성당이건 내가 이단이라고 하는 이유가 그 온 사람들로 하여금 심판 속에 집어넣어야 되는데 말씀으로, 전부 다 멀쩡하다고 장려하고 있어요. 독려하고 있어요. “아이고, 멀쩡하더니만 우리 교회 와서 더욱 더 멀쩡해지시기 바랍니다.” 그러고 있다 이 말이죠.

“옛날에는 몰라서 나쁜 짓했지만 이제는 알았으니까, 원래부터 양심이 있는 사람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하나님의 형상은 생명체니까 주께서 은혜 주셔서 교회까지 오셨으니까 이제는 소홀히 했던 하나님의 형상 본받기에 매진합시다. 나와 같이 1단계, 2단계, 제자 훈련받고 교육받으시고 피접하시고 이런 거 다 부흥회하시고 기도발 발휘하시면 여러분 전부다 훨씬 더 개선된 질이 개선된 사람이 되어서 천국 갈 겁니다.” 이렇게 되어버려요. 이건 유대교와 똑같은 거예요.

마주침이 없어요. 마주침이 없으면 뭐가 없다? 피가 안 생기지요. 주께서는 피가 기어이 생길 때까지 계속해서 그들로 하여금 니가 저항 안하고 배기나 보자. 하는 모든 종교가 몽땅 일어나서 하나 예외 없이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를 배신하는데 가표를 던지게 만들어요. 되지도 않는 바라바 살인강도를 해가지고. 어느 거 할래? 본디오 빌라도가 지 맘대로 하는 게 아닙니다. 주께서 하라 하셔서 하는 거예요.
예수를 죽일까? 바나바를 죽일까? 하니까 예수를 죽이고 저 자를 풀어주세요. 아까 이야기했지만 안 믿는 사람들이 지 맘대로 사는 게 아니에요. 지가 결정하는 것도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라 하는 그 힘에 의해서 모든 행동을 결정하는 겁니다. 명절날 모든 가족이 모여가지고 자, 고스톱한번 치자. 이건 여자들끼리 치고. 남자들끼리는 장기 할까? 바둑 할까? 하거든요. 뭐 지적으로 논다 이거지요. 자, 장기 할까? 바둑 둘까? 선택하는 거 무슨 힘입니까? 그것은 복음을 저항하는 힘이지요.

고스톱치자. 한 판 치자. 뭡니까? 저항하는 힘이에요. 고스톱칠 때 왜 칩니까? 그냥 하면 안 되고 형님, 내기 한 번 합시다. 10원 뺑이 할까? 100원뺑이 한 번 합시다. 10원뺑이는 노인정에서 하는 거고. 그럼 1000원짜리 하나 할까요? 오늘 형님 돈 내가 따먹는다. 나중에 형님하다가 술만 들어가면 그 때부터는 욕하고 싸움까지 가고.

이게 뭐냐하면 예수님 없이도 우리는 재미나게 삽니다. 하는 걸 보여주는 거예요. 나는 그리스도가 그렇게 아쉽지 않습니다. 복음이 그렇게 고귀하지 않고 나는 내 시간 행복하게 보내는 고스톱치고 바둑 두는 이 시간이 내가 선택한 내가 결정한 내 의지로 선택한 나의 행복 이룸. 행복 달성이란 말이죠.

그 사람들이 뭘 모르느냐 하면 이걸 모르는 거예요. 법망을 모르는 거예요. 법망을 몰라요. 그렇게 재미있으면 뭐가 재미 없어요? 십자가 복음만 재미없는 거예요. “자, 형님 한 번 쳐 봅시다. 화투 돌리고.” “그런데 말입니다. 빨간 단풍을 보니 예수님의 십자가가 생각나네요.” “그런 소리 하지 말라 했잖아. 니 나한테.” “자, 장군아! 십자가 받아라!” “니 그런 소리 하지 마!” “대마가 다 죽었네요. 십자가 죽음 앞에서 모든 인간은 185,000명이 죽었다는데.” “그런 소리 하지 말라 했지.”

자연스럽게 사는 게 뭘까요?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귀하고 사랑스럽다는 게 가장 자연스러운 거예요. 법망만 끊고 십자가만 없으면. 세상 그렇게 멋드러진 세상이에요. 그렇게 괜찮은 세상이에요. 구원받은 사람이 잘못이 있다면 복음을 알게 된 잘못 외에는 다른 잘못 없습니다. 복음만 안 들어가면 가족끼리 그렇게 행복하고 복음만 안 들어가면 자식까지 싸울 일 없고. 그래서 옛날 말에 그른 말 하나도 없어요. 종교가 하나가 되어야 가정이 화목하다는 거예요. 평안하다는 거예요. 그른 말 하나도 없어요.

제사지내라 하면 제사 지내면 되고 대대가문의 족보 있는 가정에 종갓집 며느리 돼가지고 살면 돼요. 문제는 종갓집이 이렇게 꾸겨진다는 거예요. 이게 문제라서 그렇지. 종갓집 불타 버린다 이게 문제래서 그렇지. 그것만 안 들었다 치면 언약만 안 들었다 치면 그렇게 편한 거예요. 만약에 시가집이 교회 간다. 그 교회 따라가면 되는 거예요. 가정이 화목하기 짝이 없어요. 그 시어머니, 시아버지 마음이 흐뭇한 거예요. “주여! 내 평생 농사 다 지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저 자식, 며느리 이 교회 나와서 주께 같이 봉사하게 됐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며느리 입장에서는 ‘아이구 그 까짓 거 효도도 해주는데 그것도 못해줄까?’ 할 수 있는 문제에요.

그런데 시어머니는 착각하고 있다고요. 교회 다니면 구원받는다고. 복음만 안 들어가면 아무 문제없어요. 아무 문제없어요. 복음만 안 들어가면. 그러면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까 복음을 안 믿으면 되는 거예요. 복음을 믿다가 안 믿어서 안 믿게 된다면 처음부터 성령세례 안 받은 사람이에요. 호기심으로 그냥 한 번 들어본 거예요. 호기심으로.

성령이 와버리면 주께서는 내기합니다. 빠져보려면 한 번 빠져보지. 주님 표정은 이 포스에요. 느긋하게. 그래 안 믿고 싶으면 안 믿어봐! 니 마음대로 해봐! 니가 십자가를 거부하고 싶으면 거부해봐! 이걸 가지고 목회라고 하는 거예요. 오지 마! 이게 목회라는 거예요. 너 오라했어?

지난 수요일날 인간은 교회 만들기 봉쇄돼 있다. 대전강의에서 했어요. 인간은 교회 만들기에 봉쇄돼 있어요. 교회는 절대로 인간이 못 만듭니다. 왜? 머리가 아니기 때문에. 못 만들어요. 그런데 요새는 사람 모이고 간판 걸고 교회라 하잖아요. 그게 엉터리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우리의 성도는 뭐냐 하면 앞으로 안 믿어볼까? 를 해보세요. 앞으로. 나는 이제 복음 모른다고 한 번 해보세요. 그게 되거든 처음부터 구라였습니다.

여기 오늘 본문에 보면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히브리서13장20절에 “양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 뭐했다고요? 이끌어냈지요. 여기서 살았다는 말은 언약의 피를 안 사람은 산 사람이고, 그걸 모르는 사람은 죽은 자에요.

그러면 이미 언약의 피로 말미암아 살았다는 사실을 스스로 한 번 취소해 보자 이 말입니다. 취소. 그게 취소가 되게 되면 자기가 알아서 믿은 거고, 가짜고, 취소가 안 되면 어떻게 됩니까? 진짜 주님이 나한테 찾아와서 언약의 피를 담은 거라고 보시면 돼요. 그런데 그게 한 번 아니라 해서 되는 게 아니고 한 번 하다가도 5년 뒤에 될 줄도 모르잖아요. 그러니 어차피 우리는 5년 뒤고 10년 뒤고 그건 우리가 할 바가 아니에요. 왜냐하면 미래에서 현재로 과거로 다가오는 쪽이기 때문에 미래에 대해서 미리 앞당겨서 걱정하려 하는 것은 그건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자, 21절 봅시다.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케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무궁토록 있을찌어다 아멘”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케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원하는 것은 누구 소원입니까? 예수님 소원이지요. 우리 소원 아니지요.

따라서 우리는 그냥 살아보란 말이죠. 살아보면 그리스도가 좋아지는 순간 올 거예요. 그러면 이건 내가 예수님 좋아야 구원 받는다는 내 의지가 아니고 누구 소원이 나의 모든 것을 장악했다? 순간. 그리스도의 소원이 히브리서13장21절 그 내용이 우리에게 강제적으로 우리에게 작용을 한 거예요. 이러한 입장을 가지고 뭐라고 하느냐 하면 말씀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말씀의 사람.

말씀의 사람이라 하는 것은 말씀이 현재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사람. 그러니까 말씀의 사람에서 이 사람은 뭐냐 하면 종속이에요. 종속되고 말씀이 주인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종속된 종이 자기 목표나 자기 인생에 어떤 희망 이걸 가질 필요 있어요? 없어요? 없어요.

그렇다면 이걸 한 번 현실화 시켜봅시다. 잠이 오지요. 오늘 배운 거 슬슬 정리해 봅시다. 인간은 보이는 것들 속에 쌓여있습니다. 이 보이는 것들 속에 쌓여있기 때문에 서로의 이름을 부르면서 이름을 지었다 했지요. 이 보이는 것을 가지고 사람들은 뭐라고 하느냐 하면 현실이라고 현실 세상이라고 하는 겁니다. 아주 자연스러워요. 성경공부 끝나자마자 느껴지는 그 세계. 오늘 뭐 했나? 이런 거. 아까 토마토 몇 개먹었는데 그것밖에 기억 안 나네. 이런 거. 토마토가 보이니까.

말씀은 아 보여요. 보이는 세계에 오는 거예요. 홍해를 통과했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통과하고 난 뒤에 홍해 생각했습니까? 아니면 물 없는 거 생각했습니까? 물 없는 거 생각한 거예요. 이게 인간이에요. 절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보여주지 아니하면 그건 길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주께서 보여주고 그 다음에는 니가 알아서 가라. 이런 건 없어요. 이런 구원은 없습니다. 처음과 끝이 한결같이 동행해서 이끄시는 거예요. 한 20년 신앙생활 했기 때문에 내가 알아서 잘 하겠습니다. 그런 거 없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하지 말라니까요. 밤새지 말란 말이야! 하는 거 나오잖아요. 신앙생활하지 말란 말이야! 신앙생활하지 마세요. 하게 되면 마귀가 7귀신 들끓어서 그렇게 간섭을 해대요. “기도하는 자세가 삐딱하니 똑바로 해!” 하고 간섭이 그리 많아요. “지난 번 전세금 받았잖아. 왜 목돈 받고 십일조 안 내!” 이런 식으로 공갈협박 들어오는데 “니 반만 내다가 니 나중에 부부끼리 다 죽을 수 있어.” 이미 죽었어요.

그 때는 이렇게 해야 돼요. “니 헌금 반 내서 죽을래?” 하면 “그래, 죽여라! 죽여.” 그래야 이게 성도가 성도됩니다. “그래, 죽으면 안 되지. 죽으면 자식 어떻게 돼?” 이런 걱정하면 안돼요. 이미 죽은 사람이에요. 우리는. 이미 죽은 걸로 간주하고 이미 우리는 어릴 때, 소학교 때, 중학교 때, 어떻게 살았는가, 우리는 필마로 돌아다니면서 폐허된 세상에 그냥 돌아다니는 거예요. ‘아, 주께서 이런 식으로 빠져나왔구나!’ 그걸로 우리로 하여금 체험케 하시는 거예요.

보이는 세상이 현실입니다. 이건 누가 봐도 안 믿는 사람도 동의할 거예요. 보이는 세계가 현실세계에요. 현실세계. 그리 믿을 것은 인간밖에 믿을 게 없어요. 과학자들은 아인슈타인 믿어야 되고요, 생물학자는 다윗 믿어야 돼요. 과학자니까. 똑똑한 사람이니까. 그리고 지금 젊은 사람은 대통령 믿어야 되고. 북한은 핵만 믿어야 되고, 하여간 보이는 세계만 믿어야 돼요. 집에서 노는 아내는 남편 돈만 믿으면 되고. 연금 탈 때 계산 잘해서 연금 누락됨이 없이 해야 되고 이런 것만 하면 돼요.

이게 자연스러워요. 자연스럽다. 같은 말로 전혀 이상스러운 게 없다. 요걸 빨간 걸로 씁시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이게 은혜 되네. 마지막에. 충만해요. 이게 되고 그 다음에 이렇게 해놓고 성경공부 해버리면 성경공부는 선택사항이에요. 필수과목 아니고 해도 되고 안 해도 돼! 이걸로 충분하니까.

그런데 보이지 않는 세계는 주의 이름으로 와요. 주의 이름. 주의 이름은 세례요한처럼 와요. 그러면 세례요한은 기능으로 작용해요. 기능으로. 기능으로 와버리면 이것으로 충분하다. 하는 이 자체가 주의 말씀에 의하면 이렇게 살다가 심판받고 이렇게 살다가 결국 끝은 넓은 길로 가고 멸망의 길로 간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알게 돼요. 알게 되면 그 아는 것 자체가 이미 기능이 개시된 거예요. 아는 것 자체가. 그럴 때 우리는 뭘 느끼는가 하면, 이게 바로 시간의 굴레에요. 시간의 굴레.

시간의 굴레에요. “살았던 과거 주워서 현재가 이루었으니까 미래는 이렇게 풀릴 것이다. 충분하다. 그것으로 끝. 내 앞에 딴 소리 하지 마! 나 이걸로 살겠어.” 하다가 “그래, 이제 살다가 죽으면 아~ 이게 그리스도와 상관없는 인생. 이건 교회 다니나 안 다니나 다들 사는 인생. 그럼 내가 차이나는 게 어디있어요? 어떤 차이나요? 아무 차이나는 게 없어요. 그러면 이것으로 충분하다? 다시 옛날로 한 번 돌아가 봐.” 그럼 옛날로 돌아가 보세요.

돌아가 보는데 주께서 가만두지를 않지요. 왜냐 하면 말씀의 종이 되어야 되기 때문에. 그 다음에 오는 게 뭐냐, 기능으로 말씀이 장악하게 되면 “니가 지금 이것으로 충분하고 이리 살아도 나는 정상이고 이거 해도 더는 필요 없다. 이것에서 더 바램은 나의 죄가 됨이라.” 10월 어느 날에 가사 나오지요. 이것보다 더 바램은 죄가 됨이라. 나와요. 그걸로 충분한데 여기에 기능이 오게 되면 바로 이것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도저히 납득이 안 되는 쪽으로 빠져나가 버렸어요.

그게 뭐냐, 인간들은 똑똑하고 지혜로운 자인데, 주께서는 오히려 반대로 도저히 믿지 못할 어리석은 분으로 가버렸지요. 그럼 우리는 닭 쫒던 개라는 것을 깨닫지요. 주님은 빠져나갔어요. 그럼 빠져나왔으면 그 빠져나온 것을 어떻게 알았지요? 찾아왔기 때문에 빠져나온 거예요. 주님께서 찾아오면 함께 있어요. 함께 있으니까 이제부터는 이 기능을 하는 거예요. 이 기능을.

이것으로 충분한 건 맞는데, 이게 바로 멸망에 예수님을 십자가 못 박아 죽었기 때문에 이게 주님 앞에 죄가 되고 옛날 조상 우리 아담의 행세그대로고 이것 때문에 우리는 지옥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요. 그 아는 자체가 행위로 나타나요. 인간은 반드시 행위는 아는 것에서 나오게 되어있거든요. 그럼 행동이 어떻게 나오느냐, 복음 전하고, 예수님 믿어라, 이리 나오는 게 아니고 그냥 똑같이 해요. 똑같이 하는데 재미가 없어. 이 세상이.

드라마 봐도 뻔하고 인간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그 다음에 어디 해외에 놀러나가도 “아휴, 집구석이 제일 편하다.” 알고 자식 잘돼서 좋네. 사법고시 합격해서 얼마나 부모로서 보람이 있나. 하는데 그래, 좋긴 좋은데 그게 다가 아니래. 사법고시 한다고 더 좋은 게 아니잖아요. 뭐 됐다고 좋은 게 아니고. 이상하게 이 세상에 대해서 어떤 미련이 없고 재미가 없어. 이 세상이.

재미가 없고 마음 같으면 그냥 자는 잠에 자다가 포근히 자다가 그냥 잠이 안 깨도 아무 상관없는 거예요. 그게 바로 고린도전서7장에 보면 아내 있는 자는 없는 자같이 하고 돈 있는 자는 다 쓰지 못한 것같이 하라. 왜? 세상은 내가 늙어가는 것처럼 꾸준히 쉬지 않고 주께서 우리를 멸망시키는 기능을 지금도 충분하다고 여기는 기능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개도 늙어가고 있고. 다 모든 것이. 이젠 거울보기도 싫어. 사진 찍으라 하면 도망가. 귀신 나오면 안 되니까. 점점 더 우리는 차질없이 주의 법망대로 계획대로 실시하고 보고 계시고 있는 중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누가 이 세상을 폄하하고 이 세상을 욕하겠습니까. 그동안 나를 지켜온 세상, 고마운 세상, 아름다운 강산, 모든 것이 좋았는데 주님이 여기서 핍박을 받았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고 납득이 되지 않을 정도로 너무 세상 적이지 않았습니까. 이제는 도리어 예수님을 이해할 수 있는 신앙인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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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202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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